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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미술시간은 정말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입시준비로 여념이 없는 나날이었고 예체능 시간마저 사라지려는 시기에 일주일에 딱 두 시간 주어진 그 과목이 좋았던 이유는 내 운동화나 내 손가락을 사물삼아 스케치하는 일이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따금 미술이론 강의를 준비하셨던 점잖은 미술 선생님, 그 분의 인상은 지금도 기억속에 남아있다. 운동장을 향해 열린 창문을 통해서 들어온 빛이 교탁위에 올려진 정물에 비춰진 밝고 어두운 부분에 대해서 내 도화지를 손질해주셨던 분이셨고 가끔씩 음악을 덧붙여 그림도 설명해 주셨는데 그게 자세히 뭔지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그런 강의를 듣는 것이 좋기만 했다. 왜 이해하지도 공감도 안되지만 그런 이론이 있다는 사실에, 그런 안목을 길러가는 과정이 점수와 상관없이 반가웠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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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에 대해서는 도통 문외한인 나에게 저자가 작품을 감상하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전시중인 작품을 둘러보기 전에 먼저 분위기 있게 생긴 사람을 찾으라고 한다. 그리고 그 사람을 그대로 따라 하면 된단다. 어떤 작품은 그냥 지나치기도 하고, 또 어떤 작품 앞에서는 시간을 끌기도 하란다. 물론 심각한 표정은 필수라고 한다. 아~ 그렇게 하는 거구나. 난 예술감상 이라는 것이 딥다 어려운 것 인줄 알았는데.. 1권에서 저자를 따라나선 미(美)에 대한 여행은 2권에서도 계속된다. 1권에서는 가상과 현실에 대하여 에셔와 함께 미학을 탐험했다면, 2권에서는 마그리트와 함께 한다. 주술 안에서 함께 공존하던 가상과 현실이 분리되면서 고대예술이 시작되었고, 가상을 포기하면서 중세예술이, 그리고 다시 가상의 부활과 함께 근대예술이 시작되었음을 저자는 1권에서 설명했다. 이제 저자는 지금까지 아름다움을 찾아 여행하는데 도움을 주었던 가상을 파괴하고 있다. 벨기에화가인 초현실주의 화풍의 마그리트를 에셔대신 가이드로 선택한 그는, 현대예술이 어떻게 가상을 파괴하는지, 그리고 예술이 어떻게 해서 하나의 소통체계가 되는지를 탐험하고 있다. 저자는 현대예술의 특징을 대상성이 파괴된다는 데서 찾고 있다. 예술은 이제 아름다운 가상이기를 포기한 것이다. 우리는 흔히 그림을 현실 혹은 허구 속의 대상과 동일시한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오면서 대상성이 파괴되고, 이는 형태와 색채의 해방을 가져온다. 예술은 더 이상 가상이 아니라 또 하나의 현실이 된 것이다. 가상대신에 새로운 현실을 창조한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마그리트 역시 에셔와 마찬가지로 그의 작품 속에서 이율배반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아니 이율배반이란 인간의 조건이라고 말하고 있다. 다만 에셔의 이율배반이 수학과 논리학의 형식체계에 관심을 둔, 인간사유의 형식에 들어있는 패러독스라면, 마그리트는 철학적인 것, 즉 실재론과 관념론의 대립에 관심을 둔, 인간사유의 내용이 가진 패러독스를 말했을 뿐이다. 그러나 저자는 예술세계에서 이율배반이란 한갓 가상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보면 에셔의 ‘뫼비우스의 띠’나 마그리트의 ‘알렉산더의 노동’ 모두 딜레마가 아니다. 3차원에 사는 우리는 평면에서 일어나는 그것들을 해체하여 딜레마를 해소시키면 되기 때문이다. 가상이 파괴되고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것이다. 또한 현대예술은 하나의 소통체계이기도 하다. 철학의 영원한 주제는 주관과 객관의 문제이고, 현대미학은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철학자들의 노력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한다. 예술가는 스스로 발신자가 되어 작품을 구상하고, 물질적 형태로 구현하면, 독자는 작품감상을 통하여 예술가가 발신한 정보를 해독하게 된다. 즉, 예술은 이제 정보 소통의 과정이 된 것이다. 그런가 하면 선대와 후대, 개인과 개인의 소통에도 참여한다. 예술작품들은 닫혀 있으면서도 동시에 열려있기 때문이다. 작품의 텍스트 자체는 닫혀있어 그 누구도 그걸 변경할 수 없지만, 그 완결된 텍스트에서 저마다 다양한 의미를 끄집어 낸다. 비평이라는 피드백을 통하여 작품은 당대에서 후세로, 또 개인에서 개인에게로 그 해석이 열려있다고 한다. 2권 역시 1권과 마찬가지로 미술에 국한되지만은 않는다. 철학과 음악 등, 장르를 넘나들며 아름다움을 찾아 나선다. 저자는 미학이란 이러한 예술적 아름다움이고, 예술은 표현에 의해서, 표현은 직관에 의해서 나타난다고 말한다. 또한 예술적 직관이란 일상적인 직관이며, 따라서 미학이란 누구나 갖고 있는 일상적인 직관을 연구하는 것이라고 한다. 저자는 에셔와 마그리트 외에도 많은 현대 화가들의 작품을 등장시킨다. 세잔, 피카소, 마티스, 고흐, 렘브란트, 달리.. 그러나 나는 그들이 고전주의인지, 인상주의인지, 아니면 초현실주의인지, 입체파인지를 떠나, 알 것도 같고, 모를 것 같기도 한, 작품 속 의미를 찾아내려 애써본다. 저자는 이제 미학이란 더 이상 골치 아픈 학문이 아니라고 하는데, 그건 저자에게나 해당되는 말인가 보다. 여전히 나는 골치가 아픈 것을 보니..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들려주는 대화는 그나마 이해를 도와주던데, 그것도 온전히 이해가 되진 않았다. 나의 무지를 다시 한번 느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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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美學)! 아름다움을 공부하는 학문! 아름다움이란 것이 주관적 판단에 많이 좌우될텐데 이것을 하나의 학문으로 정립한다는 것 자체부터가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나혼자 아름답다고 하면 혼자만의 아름다움으로 끝날 뿐이지만, 모두가 아름답다고 하면 이것을 다른 이야기가 된다. 주관과 객관, 가상과 현실, 추상과 현실 사이를 넘나들며 존재하고 있는 아름다움의 세계를 유쾌한 미학자 진중권은 기발한 방법으로 우리들 앞에 끌어와 보여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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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 오디세이 2] 권에선 벨기에의 초현실주의 화가 마그리트의 작품 세계를 다루고 있다. 마그리트의 작품은 언뜻 비합리적으로 보이지만 철저하게 논리적이고 철학적인 근거 위에 서 있다고 한다. 그의 작품 세계는 인간의 조건, 사물의 교훈, 이율배반이라는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이 책에선 그러한 마그리트의 작품 세계와 앞서 1권에서 다루었던 판화가 에셔와의 작품을 통한 철학적인 비교를 통해 그들의 미적 세계를 설명해 주고 있다.
에셔와 마그리트는 3차원 공간을 파괴한 작품이 몇 점 있다. 그림을 보면 언뜻 그림 속에서 하나가 빠진 상태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고 거기서 또다른 가상의 세계를 생각하게 만든다. 현대 미술 세계의 한 가지 특징이 '대상성의 파괴'라고 하니 그렇게 낯설게만 볼 것만 아닌 듯하다. 마그리트는 그러한 작품 속의 대상성의 파괴가 의미없음의 파괴가 아닌 하나의 파괴를 통한 새로운 진실의 세계를 창조한다는 점이다.
현대 예술 작품을 감상하다보면 '어~ 이게 과연 작품이 될 수 있는지, 이 작품을 통해 작가가 표혀하고자 한 게 무엇인지?' 참으로 난해한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다. 저자는 단번에 현대 예술 작품 감상에 있어서 그러한 작가의 의도를 읽으려고 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현대 예술 작품에선 고전 작품에서 보여주었던 하나의 대상의 의미 전달이 아닌, 미적 전달을 표현하고자 하고, 작품의 텍스트에서까지 나오려는 시도를 하고 있어서, 하나의 작품에서 하나의 의미를 캐내려는 것은 무리이고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까지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현대 예술 작품을 감상에서 하나의 예술 작품을 통해 그 작품을 감상하는 관객들의 입장에서 다양한 생각과 수많은 해석이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작품을 창작함에 있어 그러한 의미 전달에 크게 연연해 하지 않음이 현대 예술의 특징으로 볼 수 있다.
또한, 2권에선 1권에서와는 다르게 문학책과, 철학가들의 사상 그리고 음악가까지 예술 분야의 모든 장르를 아울러서 마그리트의 작품 세계를 분석하고 있다. 가상 세계를 파괴해서 또 다른 현실을 창조하는 것이 현대 예술 세계 특성이다보니, 책 속에 나오는 작품들 중 상당수가 내 눈을 속이고, 나또한 작품에 속는 이중고를 치뤘다. 작품이 '안'에 있는지, 혹은 작품이 '밖'에 나와 있는지가 불분명하고, 그러한 불분명함을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대화를 통해 또다시 조목조목 설명한다. 때론 난해하다.
마그리트 [저무는 해] 작품을 보면 도대체 내가 실재로 그림을 보고 있는지, 그림 속의 대상이 실제로 밖에 있는지 내 의식 속의 '상'과 바깥의 '세계'를 비교하기가 힘들 정도이다. 그러면서 마그리트 작품을 보는 순간 보는 내 의식 속의 처음 느낌과 작품에서 보이는 세계가 구분되지 않는다. 그냥 내 의식 속에 떠오르는 하나의 '상'이 어느덧 그 작품의 전체 '상'이 되어서 내 의식 속에 박힌다. 프랑스의 철학자 메를로-퐁티는 그러한 내 의식 세계가 주관과 객관의 대립을 극복하는 데 그 문제 해결이 있다고 한다. 신체 속에 정신이 있고, 그 정신은 신체 속에 있으니 실재와 표면이 겹침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일까.
마그리트의 작품 세계를 설명하는 것 중에 가장 흥미를 끈 부분은 죽은 사물의 부활 즉, '낯설게 하기' 부분이다. 마그리트 작품의 소재가 일상 생활에서 우리가 흔히 보는 소재를 표현한 것들이 많은데, 관람자들은 이미 그러한 것에 특별한 미적 특성을 부여하지 않는다. 그래서 마그리트는 그러한 일상성의 소재를 '낯설게 하기' 방법을 통해 새로운 작품 세계를 열어 준다. 얼마나 기발한 착상인가?? 사물을 고립, 변경하거나, 잡종화 등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낯설게 하기를 보여 주고 있다. 예를 들면, 사람의 하체에 물고기 상체를 붙여서 작품을 만드는 것을 들 수 있다. 언뜻 그러한 작품을 통해 예술 세계의 질서가 무질서로 바뀔 수도 있는 순간이지만, 음악의 음계가 하나의 규칙성을 갖고 음을 만들어 내듯이, 미술 작품도 그러한 방법을 이용해 무질서 속에 질서를 잡아가게 된다는 설명이다.
현대 예술 작품의 다의성과 다양성 그래서 갈수록 난해함을 지금까지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는 나 조차 모르겠다. 다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어느 하나의 작품을 놓고 그 대상성에 대한 지나친 의미 해석을 하지말고, 내가 보고 느끼는 그대로가 또다른 하나의 작품을 바라보며 생각해내는 것이 다양성 중의 하나일 수 있으니 용기를 가져보자는 거다. 그래서 수학자 괴델의 '불완전성의 정리' 가 더 다가온다. 자~~ 3권으로 계속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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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아름답다 말할 것인가. 이것은 너무 주관적인 문제 아닌가. 그런데 '미학'이랜다. 학문이라면 객관적이란 뜻 아닐까. 그럼 예술은 무엇인가. 인간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특정한 활동? 너무 모호한 의미 아닌가.
사실 이런 고민을 자주 하지도 않는다. 그저 몸짱, 얼짱하는 이 사회의 외모 중심주의를 비판하고 싶을 때나 나와 코드가 잘 맞지 않는 예술 작품(흔히 영화)을 감상할 때면 이런 생각을 가끔 할 뿐. 이러니 '미학'이란 학문도 그저 학문 이름만 들어봤을 뿐 학문적인 영역으로 접해본 적은 없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초짜에게 꽤나 매력적이다. 진중권식의 툭툭 던지는 문체나 어려울법 한 것을 가볍게 풀어나가는 것이 미학이 어렵지만은 않다고 생각하게 되니 말이다. 또한 다양한 예술 작품의 사진이 실려있는 것도 반가운 일이다. 그림 많고 글씨 큰 책은 누구나 편하다는 느낌을 가지게 마련이니까.
이 책은 인류의 탄생 이후 예술이 처음 시작되었을 때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를 다룬다. 예술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추어 예술의 흐름을 잡고, 예술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철학자들의 사유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도 이야기한다. 그리고 미학이라는 학문이 등장한 이후 그 안의 사조들도 다루고 있다. 몇 천년의 역사를 책 두 권에 잡아낸다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가상대화, 화가 에셔와 마그리트의 작품을 기반으로한 전개 등 다양한 기법을 사용하여 책을 이끌어간다.
예술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유희, 노동, 주술 기원설이 있는데 이 중 가장 설득력있는 것은 주술이다. 처음에 예술과 주술은 등가였다. 그러다 예술의 역기능(터부의 일상화 등)이 커지자 현실과 가상을 분리한 예술이 등장한다. 고대 예술 중 자리가 좀 잡힌 게 바로 이집트와 그리스다. 이 둘은 상당히 다른 모습을 나타낸다. 이것은 두 나라의 환경 차이 때문이라고 한다. 환경과 인간의 상호 영향성이 이때는 환경의 영향이 더 컸는 모양이다.
극은 어땠을까. 비극은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디오니소스 제전의 합창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예술 탄생에서 보았듯 제의에서 예술이 떨어져나온 경우다. 비극은 디오니소스의 지혜(가혹한 삶의 진리)를 아폴로의 아름다움으로 감성화한 것이다.
그럼 반대인 희극은 어떤가. 희극과 관련한 책인 <장미의 이름="">에 나오는 웃음과 관련한 말은 굉장히 매력적이다. "웃음은 인간에게 불을 가르쳐준 프로메테우스도 몰랐던 기술, 즉 두려움을 감추는 기술이다"(p187). 이러한 웃음을 자아내는 희극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희극은 실재보다 못한, 우리가 실재라고 믿던 것보다 열등한 인간과 세계를 그림으로써, 성인의 삶이 우리에게 보여준 서사시보다, 비극보다 더 열등한 것을 그림으로 써 진리에 도달하는 하나의 방법을 제시한다고 한다. (p189)
잠깐 객관성과 관련한 이야기. 예술과 아름다움은 과연 객관적일 수 있을까. 사람들은 흔히 원근법을 객관적인 방식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멀리 있으면 사람 키가 작아지고 가까이 있으면 사람 키가 커지고 그러지는 않는다. 눈은 그렇게 보지만 본질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그러면 본질의 객관성은 아니다. 그렇다고 원래 모습대로 그리자면 과연 원래 모습은 뭔가. 그것 또한 어려운 문제다. 이래서 미에 관련한 담론이 생기고 결국 미학도 탄생했나보다.
미학이란 말을 처음 만든 사람은 바움가르텐으로 감각이란 뜻의 그리스어인 에스테시스(aesthetics)라는 말에서 미학이라는 에스테티카(aesthetica)라는 말을 만들어냈다.
이제 본격적으로 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무엇을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을까. 소크라테스는 유용성, 플라톤은 선(善), 근대인은 인식이라 말했다. 또 수천년간 진리, 도덕적 교훈 없는 순수 예술은 타락한 것으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다르다. 칸트는 예술은 형식이며 상상력의 소산이자 천재의 산물이라 말했다. 또 인간은 공통감을 가지고 있어 보편 타당적인 미의 기준을 갖는다고 했다. 사람들이 예술 작품에 대해 평가하는 것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은데.
현대 예술은 어떤가. 현대의 예술은 대상성이 파괴되었다. 재현이 아니라 추상적인 것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현대 예술의 특징으로 추상(단순화), 표현(내면 감정), 레디메이드(기성품)를 꼽는다. 피카소는 형태를, 마티스(야수파)는 색을 해방시켰다. 여기에 더이상 점, 선, 면의 예술이 아니라 체(體), 즉 오브제가 나타난다. 일상적 사물이 예술에 들어온 것이다. 한 옛날 예술가들이 봤다면 아마 혀를 끌끌 차지 않았을까.
미의 해석에 대해 나오면서는 상당히 어려운 고민거리들이 나타난다. 우선 첫째는 선입관과 관련한 문제다. 선입관이라 하면 당연히 부정적인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런데 선입관이 없다면? 아예 판단 자체가 불가능하다. 여기에 대한 저자의 설명이 걸작이다. 안경이 찌그러졌으면 어쩌냐고? 가령 중세의 안경은 태양이 지구를 돌게 만들지 않았냐고? 하지만 어쩌랴, 안경을 벗으면 아예 볼 수가 없는데....(p162, 163) 이제껏 생각해보지 못한 문제라 아주 신선했다.
두번째는 예술과 예술가의 욕망 승화에 관련한 문제다. 저자는 이루지 못한 욕망을 승화시킨 것이 예술이라 말하면서,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은 예술이 아니라 말한다. 금지된 것이라면 교묘히 변형시켜야 한다면서. 예술을 해석하는 다양한 시각을 보여주려 애쓰던 작가가 자신의 입장을 강하게 드러내는 유일한 부분이라 굉장히 와닿았는데, 저자의 말에 완전히 동의하기는 어렵다. 욕망을 나타내어 아름다울 수도 있지 않을까? 솔직함의 매력은 없는건가.
많은 지식과 고민거리를 안겨준 이 책. 이 책을 읽고 내가 쓴 글이 더 어렵게 느껴질 만큼 이 책은 학문의 전반적 개괄을 담고 있는 개괄서로 보기에 쉬운 편이다. 이런 책을 만나는 것은 다방면에 지식을 가지지 못한 나같은 사람에게는 아주 반가운 일이다. 다른 분야를 만나는 두려움, 이러한 책으로 날려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인상깊은구절] '나 혼자 꿈을 꾸면, 그것 한갓 꿈일 뿐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함께 꿈을 꾸면, 그것은 새로운 현실의 출발이다.' - 훈데르트바서 "신이 창조한 이 세상은 부분적으로 추도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오히려 그것 때문에 전체적으론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다."장미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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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는 그 무엇을 알 수 있게 하는 2 |
| 사실 미술사의 흐름을 알지못했던 대학교 새내기시절에 이책을 접했을때는 조금은 어려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신선한감동정도를 느꼈을뿐입니다.. 그때에는 흐름 그 자체를 읽으려하기보다는 마그리뜨와 에셔의 작품에담긴 발상이 그저 흥미로워서였는지도 모르죠.. 어쨌건 나이가들고.. 이제는 미술사의 흐름을 대략적으로나마 알게된후에 다시 이책을 훑어보았을때.. 뭐랄까.. 작은 희열같은것이 책장을 넘기는 내내 저와 함께했습니다. 특히 2권에 저술된 내용들은 현대미술의 흐름을 명확하게 포착하고계신것같아 정리도 쉽고 고개도 끄덕이고.. 그렇게 되더라구요..^^ 보고또보고..보면볼수록 전에 이해하지못했던것들을 새로이 깨닫게됩니다.. 개인적으로 정말 소중히 생각하는 책이고.. 또.. 다른분들께도 꼭 추천하고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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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오디세이 2 마그리트와 함께 탐험하는 아름다움의 세계 저: 진중권 출판사: 휴머니스트 출판일: 1994년 1월15일 미학오디세이 1권을 끝낸 후, 바로 2권을 읽었다. 현대예술 이전까지 헤겔을 마지막으로 1권은 마무리가 되었다. 예술의 종언을 이야기한 헤겔이지만, 본서에서 언급한 대로 예술은 더욱 다양한 형태로 발전했다. 현대예술의 모습을 보자면 추상, 표현, 레디 메이드로 압축해서 설명할 수 있다. 추상예술은 대상의 구체적인 형태를 기하학적으로 단순화하는 경향을 표현예술은 대상보다는 주관의 내면적 감정을 표현한다. 레디 메이드는 기성품으로 예술작품을 만드는 것이다. 여기에 더한다면 초현실주의가 있을 것이다. 의미 정보를 중시했던 고전회화에서는 형태나 색채가 주제에 종속되어 있다. 그러나 재현을 포기한 현대예술에서는 내용이나 주제가 있을 수 없다. 색과 색채라는 형식 요소 자체가 가진 아름다움 즉 미적정보만이 있을 뿐이다. 기호의 성격을 잃은 이상, 이제 작품은 논리적으로 일상적 사물과 구별되지 않고, 그 자체가 하나의 아름다운 Object가 된다. 이를 현대예술의 오브제화라고 할 수 있겠다. 현대예술의 시작을 연 것은 화가인 세잔(Paul Cezanne)이었다. 그는 인간의 지각은 혼란스로운 것으로 규정했다. 인상주의의 빛나는 표면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사물에 실체감과 입체감을 준다는 목표를 가졌다. 모자이크 단편이라는 건축적 구성으로 대상을 제시하려고 했고, 이는 입체주의자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입체주의자들은 사물을 여러 시점에서 본 시각적 단편들을 모아 그것을 하나의 평면에 재조립하려고 했다. 한편, 마티스 (Henri Mattisse)는 풍부한 색채와 빛나는 표면을 발견하고 대상에서 해방된 색채의 자유로운 배열을 추구했다. 새롭게 시작된 현대예술의 물결 속에서 미학자들의 이론도 풍부해졌다. 세잔을 좋아했던 메를로 퐁티는 주관과 객관의 대립을 극복하고자 이것이 미처 분리되지 않은 지각의 세계로 돌아가고자 했다. 그의 방법은 ‘살의 존재론’으로 사물의 외적인 가시성은 신체 속으로 들어와 내적인 가시성이 된다고 한다. 사물은 내 속에 그들의 현존에 관한 육화의 공식을 새겨놓고, 모든 회화는 이러한 우리 신체 속에서 일어나는 이 비밀스럽고 열광적인 사물의 발생을 탐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고전주의와 인상주의의 대립을 넘어서려는 세잔과 비슷했다. 베네데토 크로체는 예술작품은 관조활동, 일종의 인식으로 보았다. 즉, 예술작품은 예술가의 머리 속에 있다고 생각했다. 논리적 인식(학문)은 보편자를 인식하지만, 직관적 인식(예술)은 개별자를 인식한다. 논리적 인식이 개념을 생산한다면, 직관적 인식은 개개 사물의 이미지를 산출한다고 보았다. 직관은 감각을 넘어선 어떤 정신적 능력이며 진정한 직관은 표현으로 보았다. 크로체의 미학은 현대 표현론의 예술적 강령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예술은 더 이상 외부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그것의 출발점은 예술가의 내면이다. 에티엔 수리오는 예술은 제작하는 활동이 본질이라고 하여 창설(instauration)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창설은 잠재적인 것을 구체적인 것으로 옮기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마르틴 하이데거는 진리란 진실의 속성 혹은 지식의 올바름이 아니라 껍데기를 벗겨낸 사물의 본래 모습이라고 말했다. 진리의 일어남이 미라고 부른다. 예술작품 속에서 밝힘과 가림의 투쟁은 세계와 대지의 투쟁으로 나타난다. 하이데거는 철학의 종언을 이야기하며, 예술은 철학보다 위대하다고 했다. 예술이 존재의 진리를 열어주기 때문이다. 니콜라이 하르트만은 예술은 우리를 위한 존재, 우리에 대한 존재라고 했다. 지각하고 관조하는 활동이 있어야만 비로서 예술작품은 ‘작품’으로 성립될 수 있다고 보았다. 로만 잉가르덴은 많은 형용사를 동원하다고 하더라도 문학작품에서는 여전히 규정되지 않은 부분이 남기 마련이고 이는 독자가 알아서 채워야 된다고 말했다. 이를 구체화라고 한다. 한스 게오르크 가다머는 선입관(선판단)은 우리 사회가 이제까지 쌓아왔고, 또 우리가 성장하면서 배워온 어떤 지적전통, 세계관, 가치관 따위로 이해의 지평이 된다. 작품의 근원적 진리가 따로 있는게 아니다. 진리는 시대마다 독자에게 새로이 열린다. 이렇게 시대마다 새롭게 열리는 여러 진리들이 다 근원적이다. 예술을 진리와 연결시키는 것은 예술을 인식으로 보는 것과 같다. 칸트와 달리 예술을 진리에 연결시킨다. 예술작품은 독자가 참가해야 성립되는 놀이로 이 안에 독자는 텍스트의 규칙을 지키는 가운데 나름대로의 의미를 끄집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이저(W. Iser)는 불확정성을 적극적으로 평가하여 문학적 효과의 조건으로 보았다. 미에는 무엇을 말하느냐 보다 무엇을 말하느냐가 중요하다. 독자는 책을 읽는 가운데 텍스트 내용을 다시 한번 미적으로 구체화한다. 텍스트 효과구조와 독자의 반응구조가 상호작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수용미학은 독자의 적극적인 수용의 측면을 결합하여 작가나 작품이 아니라 수용자 중심의 예술론을 만들어냈다. 비트겐슈타인 (Wittgenstein)은 철학적 문제들은 언어의 사용법을 오해한데서 발생한다고 믿었다. 이로 인한 논리실증주의자들은 검증 가능성을 기준으로 철학에서 검증할 수 없는 모든 명제를 제거하려고 했다. 그러나 대안으로 제안된 인공언어는 학술용어에 이는 다시 애매한 일상언어에 뿌리를 가진다. 언어는 어휘와 문법으로 구성되어 있고 인접성의 원리에 다라 접근연합, 낱말의 대치가 낱말들 사이의 발음 혹은 내용의 등가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을 유사연합이라고 한다. 유사성 장애가 있는 사람은 환유적, 인접성 장애가 있는 사름은 은유적이다. 입체파 화가들은 환유의 축, 초현실주의자들은 은유의 축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웨이치는 예술의 본질이 없으며 전통적 미학의 본질주의 오류를 지적했다. 예술의 개념을 정의함에 있어서 개념을 열어두는 것이 예술의 창조력을 위해서 더 낫다고 보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이드가 공상을 통해서 욕망을 총족하고, 이를 현실에 가지고 돌아오는 것이 예술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서 초현실주의자들은 큰 환영을 했다. 수학자인 버코프는 미란 질서와 복합성의 함수라고 말했다. 미적정보는 엔트로피, 의미정보는 네그엔트로피다. 고전주의 예술은 의미정보를 추구, 현대예술은 의미정보를 단순화하고 미적정보를 강화했다. 여러 학자들의 미학이론이 소개되고 있는데, 이해하기가 그렇게 쉽지는 않았다. 도식화도 시켜보고 내용을 따라가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생각해보면, 저자가 마지막에 이야기한 악의고리가 가장 마음에 남았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식체계가 사실은 본질적으로 불완전한 기반에 토대를 두고 있다는 것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을 대하는 우리의 해석도 무척이나 다양한 것 같다. 이 책을 읽었다고 미학에 대해서 많이 알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나의 이해의 지평이 넓어진 것으로 본다. 3권을 기대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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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마그리트에 관심을 가지 게 된 이유는 아이들 동화책때문이다. 아이들이 어릴 때 아이들 '교육' 때문이라고 우기기는 했지만 사실은 내 욕심 때문에 엄청나게 그림동화책을 사들였다.
그 중에서 안소니 브라운의 책은 거의 다 사들였다. 내용도 재미있지만 그림 때문이었다. 한동안 그의 그림책에 매료되었는데 막상 아이들은 그 그림에 대해 시큰퉁했었다.
안소니 브라운은 자신의 그림책 그림에 여러 유명화가들의 그림을 차용했는데 그가 제일 많이 차용한 화가가 마그리트이다. 자연스럽게 마그리트에게 관심이 이어지고 마그리트를 전면으로 내 세운 미학 오딧세이2를 읽게 되었다.
몇 년 전에 서울 시립미술관에서 마그리트전을 하였는데 이 책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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