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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로레스 클레이본 - 스티븐 킹 Dolores Claiborne (1993)
"돌로레스 클레이본 - 스티븐 킹 Dolores Claiborne (1993)" 내용보기
오늘은 [돌로레스 클레이븐]이라는 스티븐 킹의 작품에 대해서 얘기해 줄게. 사실 난 지금 좀 졸린데, 이 시간에 깜빡 졸게되면 나중에 골때리더라구. 그래서 뭐랄까, 수다나 떨면서 잠을 좀 이겨볼까 해.       좋아.       사람들은 흔히 스티븐 킹 그러면 공포소설작가라고 생각하잖아. 맞아. 그의 작품 대부분이 그러니까 그렇게 말해도 틀린 말은 아니야. 하지만 알 사람
"돌로레스 클레이본 - 스티븐 킹 Dolores Claiborne (1993)" 내용보기

      오늘은 [돌로레스 클레이븐]이라는 스티븐 킹의 작품에 대해서 얘기해 줄게. 사실 난 지금 좀 졸린데, 이 시간에 깜빡 졸게되면 나중에 골때리더라구. 그래서 뭐랄까, 수다나 떨면서 잠을 좀 이겨볼까 해.

      좋아.

      사람들은 흔히 스티븐 킹 그러면 공포소설작가라고 생각하잖아. 맞아. 그의 작품 대부분이 그러니까 그렇게 말해도 틀린 말은 아니야. 하지만 알 사람은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어. 그게 뭐냐면, 음. 단지 공포 소설작가라는 말로 끝나면 섭섭하다는 거지. 말하자면 에드거 앨런 포처럼 말이야. 응. 그래. 포도 물론 공포 소설 작가이긴 하지만 미문학에서 누구도 그를 싸구려 장르소설 작가라고 생각지 않으니까 말이야. 그래. 내가 그들하고 얘기를 해본 건 아니지만 다들 그렇게 말하는 걸로 알고 있어. 설혹 그게 사실이 아닐지라도, 뭐 그리 내 인생에 영향을 미칠만한 내용은 아니니까 진상을 규명하고 나서는 싶은 생각도 없고. 그냥 그렇다고 해두지.

       스티븐 킹도 마찬가지야. 단지 삼류 공포소설을 쓰는 작가 수준이 아니라는 거야. 맞아. 이 작품 돌로레스 클레이본을 보면 으흠, 그말이 수긍이 가.

       차이?

       내 생각에 그건 간단해. 한 명의 작가가 두 종류의 파트를 모두 소화할 능력이 있느냐 하는 거야. 그러니까 말하자면 대중이 환호할 만한 소설을 쓸수도 있고, 반대로 아주 내면적인 순수문학도 멋지게 해낼수 있는 능력도 가진 거지. 그래서 선택은 작가가 하는 거야. 이번엔 뭘 써볼까, 그렇게.

      응? 뭐? 모두 그렇지 않겠냐고?

      천만에. 그렇지 못한 사람이 훨씬 더 많아. 순수문학을 고집하면서 대중문학을 욕하는 사람중에는 독자들을 열광시킬만한 능력이 없는 사람이 더 많아. 그래서 더 씹어댄다고. 그래야 자신이 더 돋보일테니까 말이야. 반대도 마찬가지야. 대중문학을 쓰는 사람중에는 순수문학을 쓰지 못하는 사람이 더 많아. 그래서 똑같이 씹어대지. 뭐하는 작품이냐면서.

       여기서 중요한 게 뭔 줄 알아? 그렇게 떠들어 대는 두 부류의 사람들은 입만 살아있다는 거지. 그까지 거 내가 못써서 안 쓰는 줄 알아? 라고 말은 할 줄 알아도 실제로 써서 보여주는 인간은 별로 없는거야. 온통 주둥이로만 지구를 지키려고 든다니까.

       어때, 사는 게 어디나 비슷하지? 뭐, 별로 새로울 것도 없는 사실이기는 하지. 그냥 죠스바나 혓바닥이 새빨게질 때까지 빨면서 구경이나 하는 거지 뭐. 어차피 두 쪽다 누구 얘기도 듣지 않거든. 

 

      그래 맞아. 눈치깠구나. 그런데 스티븐 킹은 안 그래. 두 장르를 넘나들지. 그러니까 뭐냐면, 이 작자는 즐기는 거야. 자기가 글쓰는 걸 즐기는 거라고. 아마, 그래서 킹의 작품이 재미있는 건지도 몰라. 쓰는 사람이 즐기면서 쓰니까 그 감정이 고스란히 문장에 녹아있다고 해야하나? 아무튼 뭐 그래.

      한국 순수문학을 표현할 때 그렇잖아 왜, 좁은 산도를 통과하는 고통으로 썼다는 둥, 어쨌다는 둥. 그렇게 짜내서 쓰니까 당연히 재미가 없지. 그렇게 해서 명작이나 만들어내면 또 몰라. 대개 아무나 정도의 수준인 작가가 그렇게 말하고는 하지. 절대 자기가 쓸 얘기가 없어서 고생했다는 말은 안하잖아. 원고지 매수 채우느라 뒈지는 줄 알았다고 말이지. 물론 그런 고통을 함께 하고 싶은 사람들이야 걸작이네, 하면서 좋아하겠지만 나처럼 티없이 맑은 소년은 그런 거 별로야. 어차피 뻔한 얘기 고상한 말 써가면서 고통을 마치 인격 수양의 장인 것처럼 포장해봐야 근본이 달라지는 것도 아닌 데 뭐. 고통이 사람을 성장 시키는 건, 책 아니어도 배울 데가 엄청 많거든. 아니, 오히려 책만으로 그딴 걸 알게 되면 입만 까져.

      어쨌든 나는 말이야. 뭐든 결과물을 봤을 때, 아이고, 이 사람, 이거 이 일을 정말 좋아하는 구나, 그런 게 느껴지는 것들이 좋아. 물론 흔치 않지만. 아마 흔치 않아서 더 좋은지도 모르지.

    

      저, 이번 작품은 말이지.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이런 구어체, 처음부터 끝까지 구어체로 되어있어. 돌로레스가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이거든. 문학에서 이런 형식을 종종 볼 수 있지.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구어체인 건 그리 많지 않을 거야. 잡것들은 빼놓고, 명작만 보더라도...으흠, 크리스토프 하인의 [나폴레옹 놀이]라는 작품이 있네. 그거 아주 죽였지. 

      이런 형식이 아주 잘 쓰여지면 말이지. 그야말로 직접 이야기를 듣는 기분까지 들기도 하니까. 맞아. 이 작품도 그렇게 잘 쓰여진거야. 공포냐고? 아니. 아니라니까. 여태 뭘 들은 거야. 으흠....공포는 아닌데 인간 내면의 어떤 것들, 그 심리묘사가 아주 기가 막혀. 그전에 킹의 작품을 읽으면서는 킹이 이 정도로 인간내면에 대한 통찰력이 깊은 줄은 몰랐었거든. 그저, 인간의 공포 심리를 분위기로 잘 표현해낸다, 정도였지. 아, [그린 마일]이란 작품은 좀 달랐지. 그것도 이 작품처럼 뭔가 묵직한 느낌이 있었으니까.

      이 작품은 구어체라서 더 까깝게 느껴지는 것 이외에도 그 비유, 크하. 정말이지 기가 막힌 비유가 엄청나게 등장해서 그걸 읽는 맛만으로도 댓츠 오케이라고나 할까? 뭐, 이런 식의 비유 있잖아.

      그는 먹지말라는 과자를 꺼내다가 엄마한테 들킨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확, 그려지는 거지. 풍경 뿐아니라 등장인물의 표정까지 다 영상처럼 떠 올라. 아, 그래서 난 생각했지. 아아, 킹이란 작가의 공력이 장난이 아니구나.

      그거 알아? 그런 비유를 현란하게 사용하는 작가는 굉장히 유연한 사고를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아서 그들의 글은 웃겨. 각각의 비유가 절묘해서 웃기고, 정말 웃겨서 웃기기도 하고. 이 작품에서 킹이 비유하는 것들을 읽다보면 아아아, 이건 정말 자신이 즐기면서 쓰지 않으면 이런 비유를 할 수 없을 거다, 그런 생각이 든다니까. 산천 초목을 멋진말로 묘사하는 것과는 또 다른 문제랄까?

      중국 작가 중에도 이런 비유를 미친듯이 사용하는 사람이 하나 있지. 한한, 이라고 우리나라엔 [삼중문]이라는 작품이 출간되어 있을 거야.

      현란한 비유를 보고, 또 그 절묘함에 감탄하는 순간들이 많아지면 그걸 우리는 아마 이렇게 표현할 걸?

      혀를 내 두른다.

      그걸 스티븐 킹은 이런 식으로 표현하는 거야. 턱이 나사를 돌려 뺀 것처럼 뚝 떨어져서 혀를 내밀고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뭐 이런 식으로. 왠지 더 리얼한 영상이 떠오르지 않아? 별로라고? 음음, 그래 그렇다면 그건 내 잘못이야. 이 작품에서는 정말 기가막혀. 단지 내가 몇 문장을 발췌하는 게 귀찮아서 내 멋대로 쓴거니까 이해해. 그거 옮겨쓰다보면 잘 거 같거든. 

 

      서스펜스? 그런 거 없어. 그러니까 공포나 서스펜스 뭐, 그런 걸 기대하고 보면 곤란해. 적어도 이 작품에서만큼은 말이지. 그냥 킹의 얘기를 듣는다고 생각하고 보면 굿이야. 여기서의 화자인 돌로레스의 말빨이 장난이 아니거든. 입심좋은 할머니가 쉴 새없이 이야기를 늘어놓는데, 그게 마치 타고난 이야기꾼처럼 맛깔스러우니까 말이야. 그리고 그것만이면 내가 이정도로 칭찬 안하지. 그 와중에도 촌철살인 같은 삶의 통찰을 보여주거든. 인간에 대한 것이든, 인생에 대한 것이든 말이지. 굉장히 진지하게 얘기해야 할 것 같은 내용도 마치 먹다 남은 스팸조각 개한테 던져주듯 툭툭, 내뱉는데 뭐랄까, 우리가 사는 세상을 돌로레스처럼 바라보면, 참 관조적으로, 그리고 그렇게 심각하지 않게 감당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같은 것도 있다 이 말이지. 물론 당면했을 때는 언제나 힘들겠지만 말이야.

 

      어쨌든 술술 읽혀. 내가 말했지? 술술 읽히니까 작가도 술술 썼을 거라는 생각은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고? 보이는 게 쉽다고 과정이 반드시 쉬운 건 아닐거야. 내가 알기론 뭐든 쉽게 하는 게 더 어려운 걸로 알거든. 하수들이나 겉에 보이는 게 쉽다고 그 속까지 쉽게 보는 법이니까. 읽기 쉬운 글이 쓰긴 더 어려울 수도 있어.

      그럼 밥 먹어.

      그전에 내가 맛있게 먹으라고 삼삼칠 방귀로 응원해 줄게.

      자꾸 듣다보면 나름대로 정 들거야.

b******k 2009.05.14.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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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로레스 클레이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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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시 베이츠 주연으로 동명의 영화로도 만들어진, 스티븐 킹의 장편 소설입니다. 스티븐 킹의 스타일이 언제나 그런 것처럼, 비정상적 인물들의 신랄한 언사가 난무하고, 우스우면서도 그 무질서함, 난폭상에 마음 놓고 웃을 수만도 없는 난감함이 교차하는 상황 속에, 뚜렷한 트러블이나 범죄, (다른 작품에서라면) 괴물이 등장하여 긴장이 최고조로 치솟다가, 마치 어린이들의 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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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시 베이츠 주연으로 동명의 영화로도 만들어진, 스티븐 킹의 장편 소설입니다. 스티븐 킹의 스타일이 언제나 그런 것처럼, 비정상적 인물들의 신랄한 언사가 난무하고, 우스우면서도 그 무질서함, 난폭상에 마음 놓고 웃을 수만도 없는 난감함이 교차하는 상황 속에, 뚜렷한 트러블이나 범죄, (다른 작품에서라면) 괴물이 등장하여 긴장이 최고조로 치솟다가, 마치 어린이들의 놀란 가슴을 어루만지며 "이건 현실이 아니란다." 같은 자상한 위로를 던져 주듯, 보편적인 인간의 마음에 잔잔한 감동을 선사하며 끝나는 구조입니다. 그래서 이 책 말미에 실려 있는 "스티븐 킹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란 짧은 글에서, 김성곤 서울대 영문과 교수는 그를 일러 "본격 문학과 대중 문학의 경계에 서 있었고, 이제 그 문학적 성취를 경계 다른 편으로 인정받기 시작하는 작가"라고까지 평가합니다. 스티븐 킹을 장르 소설 집필자가 아닌, 거장 작가의 반열에 올려 놓고 싶다는 뜻입니다. 김성곤 교수는 예를 들어 헤럴드 블룸 같은 이를 두고, "자신의 몰이해와 편견으로, 위대한 작가를 애써 평가절하하는 평론가" 정도로 비판하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저는 스티븐 킹의 문장이나 스타일이, 아직은 B급의 정서나 분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 독자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를 사랑하는 것이지만요.


영화에서 캐시 베이츠가 주연으로 등장했다고 하면, 모르긴 해도 내용이 아주 암울하고 갑갑하거나, 오싹하고 무섭거나 둘 중의 하나일 것 같습니다. 이 소설은 전자입니다. 처음 70여 페이지까지 읽었을 때, 이 책을 고른 것을 후회했습니다. 주인공 돌로레스 세인트조지(결혼 전 성은 클레이본)는, 주정뱅이에다 무능하고 기본적인 인성이 갖춰지지 않은 채 게으르고 교활하기까지 한, 전근대적 폭군형 남편의 전형 같은 위인의 아내였습니다. 돌로레스는, 역시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지 못하고 가난한 형편인데다, 추녀의 얼굴에 성격도 괄괄하지만, 최소한 책임감과 가족애가 뭔지는 아는 여성입니다. 그녀는 대단히 괴팍하고 성질 사나운 수전노 노파의 집에서 가정부로 일하게 되는데, 영미권에서 말하는 컴패니언을 겸한 직분처럼 보입니다(말상대도 해주고 신변밀착형 시중을 드는 역). 하지만 그녀가 주로 치러 내야 하는 일은 거대한 저택의 청소와 집안 정리인데, 워낙 주인 노파의 지시사항이 까다로운지라 원래 몇 주를 배겨내는 피용인이 없었습니다. 돌로레스 역시 성깔이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편이지만, 이 노파가 일단 지시사항과 사전 약속만 충실히 이행하면 다른 걸로는 까탈을 부리지 않는 성격임을 알고, 때로는 고용인과 신경전을 벌이기도 하면서, 고된 노동을 참아 내며 몇십 년을 버팁니다. 이 과정에서, 구경하는 독자로서는 웃음을 참을 수 없는 상황 묘사가 자주 나오지만, 돌로레스의 딱한 처지를 생각하면 그럴 수도 없어 난감한 처지에 놓입니다.


이 소설은, 이제는 노인이 된 돌로레스가 지역 치안 당국에서 파견한 수사관의 조사를 받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정확하게는, 시점이 1인칭 주인공으로 설정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객관적으로 지금 어떤 장면이 펼쳐지는지 들여다 볼 수 없고, 오로지 돌로레스 노인이 자신의 입으로 전달하는 내용에만 의존해서 진상을 따라잡아야 합니다. 돌로레스 노인은 젊어서도 그랬지만, 이제 나이까지 들고보니 무서운 것도 꺼리는 것도 없습니다. 자신을 조사하러 온 경찰관이, 어린 시절 기저귀를 차고 다녔던 모습까지 다 지켜 본 그녀는, 토박이로서, 인생의 선배로서, 자기 인생을 자기 의지대로 영위하면서도 양심에 꺼릴 짓을 아무것도 하지 않은 당당한 인생으로서, 그리고 무엇보다 (나중에서야 밝혀지지만) 두 아이를 세상 누구도 부럽지 않은 성공 인생으로 키워 놓았다는 입장에서, 수사관을 두고 여유 있게, 갖고놀아가며, 주눅들지 않고, 그러나 온전한 진실로만 자신의 진술을 채우며, 유장하고 쫄깃한 표현으로 이야기를, 그 길고 긴 사연을, 펴 나갑니다.


앞서 말했듯이, 이 소설은 캐릭터 돌로레스 클레이본이, 어떻게 해서 한 여인의 몸으로 도저히 극복할 수 없었던 시련을 극복하고, 사랑하는 자식들에게 행복한 인생을 틔워 주었는지에 대한 내용입니다. 앞부분만 보고는, 새로운 각오를 다질 시점에 읽을 책으로는 선택이 적당치 못했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습니다만, 내용 완독 후에야 이 책이 "희망"을 선포하는 의도임을 알았습니다. 김성곤 교수(이 책 역자는 아닙니다)는 말미의 해설에서, 이 소설의 진짜 주인공은 셀리나(돌로레스의 딸)이라고 볼 수 있다고까지 말씀하시는데, 그건 아마 영화를 본 관객의 입장에서 더 수긍이 가는 평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저는 동의하기 힘들고요 ^^). 김 교수는 스티븐 킹의 서사 구조를 두고, "과거의 상흔으로 괴로워하는 주인공이, 결국은 과거로 다시 돌아가 괴물(상징적 의미에서의)을 퇴치하고 귀향한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말합니다(그런데 이 지적 역시, 이 작품보다는 영화에 더 잘 맞는 설명입니다). 김 교수님이, 이 돌로레스라는 캐릭터에 그리 큰 점수를 주는 이유는, 바로 당신 자신이 엄친딸을 잘 키워낸 모범적인 대한민국 아버지라는 사실에도 어느 정도 기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이 소설은 스릴러 장르에 가까우므로 내용을 자세하 밝힐 수 없어서 아쉽지만, 만약 읽고 싶은 분들은 반드시, 소설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보셔야지 그 반대가 되면 좀 곤란하다는 조언을 드리고 싶습니다. 영화는 딸 셀리나의 귀향 장면으로부터 시작하는데, 그건 사실 이야기의 참재미를 좀 감쇄시키는 선택입니다. 그렇게 되어서는 전체적으로 한 불운한 여인의 (다소 궁상맞은) 고생담 쪽으로만 서사의 의미가 축소되기 쉽죠. 앨리스 워커의 <컬러 퍼플>과도 비교해 읽으면 좋을 듯합니다.

v*****7 2015.05.02.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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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로레스 클레이본 - 스티븐 킹 (김승욱 옮김, 황금가지) ★★★★☆
"돌로레스 클레이본 - 스티븐 킹 (김승욱 옮김, 황금가지) ★★★★☆" 내용보기
1992년, 뉴잉글랜드의 작은 섬 리틀톨에서 대저택에 홀로 살던 자산가 베라 도노반이 계단에서 추락해 사망합니다. 수십 년간 그녀를 모셔왔던 60대 여성 돌로레스 클레이본은 그 죽음의 유일한 목격자이자 살해용의자로 지목당합니다. 경찰에 출두한 돌로레스는 괴팍하기 짝이 없는 주인마님이자 말년엔 중풍 때문에 대소변까지 받아내야 했던 베라와의 오랜 애증의 역사는 물론 29년 전
"돌로레스 클레이본 - 스티븐 킹 (김승욱 옮김, 황금가지) ★★★★☆" 내용보기

1992년, 뉴잉글랜드의 작은 섬 리틀톨에서 대저택에 홀로 살던 자산가 베라 도노반이 계단에서 추락해 사망합니다. 수십 년간 그녀를 모셔왔던 60대 여성 돌로레스 클레이본은 그 죽음의 유일한 목격자이자 살해용의자로 지목당합니다. 경찰에 출두한 돌로레스는 괴팍하기 짝이 없는 주인마님이자 말년엔 중풍 때문에 대소변까지 받아내야 했던 베라와의 오랜 애증의 역사는 물론 29년 전 개기일식이 벌어지던 날 남편 조를 살해한 일까지 포함하여 길고도 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언젠가는 읽어야지, 마음만 먹고 있던 스티븐 킹의 ‘돌로레스 클레이본’을 드디어 읽었습니다. 캐시 베이츠 주연의 영화도 보고 싶었지만 소설을 먼저 읽은 뒤로 미뤘는데, 영화도 잘 만들어졌다고들 하지만 아무래도 원작의 힘을 따라가기는 어려울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호러 킹’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킹이지만 ‘돌로레스 클레이본’은 그가 얼마나 뛰어난 이야기꾼인지, 복잡다단한 인간의 내면과 심리를 얼마나 소름 끼칠 정도로 섬세하게 그려내는 작가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수십 년에 걸친 악연과 애증이 기어이 두 여자 돌로레스와 베라를 하나로 묶어주는 휴먼드라마이자 “가끔은 살아남기 위해서 거만하고 못된 년이 되어야 해.”라는 교훈에 따라 가부장적이고 거만하고 폭력적인 남편을 통쾌하게 단죄하는 서스펜스 스릴러이기도 합니다. 자식들을 지켜내기 위해 분투하는 돌로레스의 처절한 모성애라든가 극악스런 겉모습과 달리 새카맣게 탄 속으로 수십 년을 버텨온 베라의 고통스런 인생 역정도 독자의 눈길을 끄는 대목입니다.


물론 킹의 주 무기인 호러라는 양념도 아쉽지 않을 정도로 곳곳에 뿌려져있습니다. 지극히 사실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개기일식이라는 기묘한 우주현상, 사람의 얼굴을 닮은 먼지덩어리 유령, 소름끼치는 비명과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난무하는 악몽 등 킹 특유의 생생한 호러 코드가 위화감 없이 자연스럽게 녹아있어서 이야기의 볼륨감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줍니다.


한 사람은 남편에게 물려받은 어마어마한 재산을 지닌 자산가이고, 또 한 사람은 주정뱅이에 폭력적인 남편에게 시달리며 평생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한 가정부 겸 하녀 신세지만 베라와 돌로레스의 삶은 실은 데칼코마니에 가깝습니다. 특히 기쁨이나 행복보다는 절망과 고통에 잠식된 시간이 훨씬 많았다는 점까지 닮은 탓에 두 여자의 인생을 들여다보는 것은 무척이나 무겁고 편치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흥분, 분노, 욕지거리, 폭소, 비애가 모두 뒤섞인 변화무쌍한 태도로 두 명의 경찰과 한 명의 속기사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돌로레스 덕분에 독자 역시 롤러코스터를 탄 듯 다양한 감정에 휩싸이며 책장을 넘길 수 있습니다. 웃고 있지만 눈물이 나고, 눈물이 나지만 피식 웃음이 나오고 마는, 그런 특별한 책읽기라고 할까요?


가끔 별난 간식을 챙기듯 스티븐 킹의 초중기 작품들을 읽곤 하는데, ‘돌로레스 클레이본’은 그중에서도 좀더 특별한 맛을 만끽한 작품입니다. 조만간 캐시 베이츠가 열연한 영화를 볼 생각인데, 원작을 떠올리며 영화를 보면 그 맛이 더욱 깊고 진하게 느껴질 것 같습니다. 킹의 팬이 아니더라도 기회가 되면 꼭 한 번 읽어볼 것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h****s 2024.06.1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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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들이여, 조심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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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여름 벌써 '스티븐 킹'의 소설을 세번째 만나고 있다. 그 전에 만난 두번째까지의 소설은 어떻게보면 비슷한 주제에, 비슷한 주인공들이 다른 환경에서 산 이야기라고 해야할까? 이번에 만난 『돌로레스 클레이본』은 이전에 만났던 주인공들과는 전혀 다를 뿐만 아니라, 글을 써간 구성 자체도 파격적으로 변해있었다. 우선 처음부터 끝까지 책 제목 그대로 '돌로레스' 여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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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여름 벌써 '스티븐 킹'의 소설을 세번째 만나고 있다. 그 전에 만난 두번째까지의 소설은 어떻게보면 비슷한 주제에, 비슷한 주인공들이 다른 환경에서 산 이야기라고 해야할까? 이번에 만난 『돌로레스 클레이본』은 이전에 만났던 주인공들과는 전혀 다를 뿐만 아니라, 글을 써간 구성 자체도 파격적으로 변해있었다. 우선 처음부터 끝까지 책 제목 그대로 '돌로레스' 여사가 자신의 이야기를 경찰관 앞에서 속기사가 쓰는 중에 스스로 말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육지'과 달리 사람들이 살아가는 흐름이 잠시 정지된 그곳, 섬. '돌로레스' 여사는 그 섬에서 어릴 때 잠깐 실수로 결혼하게 된 폭력 남편과, 아버지에게 성폭력을 당한 큰 딸, 아버지를 피하고 싶어하는 둘째 아들, 그런 아버지와 똑같이 닮아가는 막내 아들과 사는 어떻게 보면 평범한 중년 가정주부이다. 어렴풋한 희미한 기억을 되짚어가보니, 우연하게 이 작품을 영화로 본 것 같은 기억이 있다. 아마 중학교 때 가정시간에 본 것 같은데 확실하진 않지만... 큰 딸을 '육지'에 있는 학교를 보내기 위해서, '돌로레스' 여사는 '베라 도노반'이라는 큰 저택을 가지고 있는 남편을 자동차 사고로 잃은 여자 집에서 일하게 되고, 자신 몰래 모으고 있던 아이들 학비를 찾아서 써버린 폭력 남편에게 서서히 대항을 하기 시작하다가, 베라가 한 말이 마음 속에 새겨져버린 결국 일식이 있는 날 남편을 죽이기로 결심하고 행동에 옮기게 된다. 남편을 죽인 것은 '돌로레스' 여사가 심사숙고하여 계획하고, 검시관의 질문을 잘 피해감으로써 실족사로 결정되지만, 그 이후 우연하게 '베라 도노반'이 계단에서 굴러 떨어질 때 밀대를 가지고 있는 현장을 들키고 경찰서에 끌려가 수사가 진행되면서 자신이 남편을 죽인 이야기를 술술 풀어놓는다. 소설 뒷부분에 일식, 큰 딸 이름에 대한 숨겨진 의미를 풀어 놓은 부분이 있지만, 단순히 소설 아니, '돌로레스' 여사의 이야기에 빠져서 옆에서 듣고 있는 것 자체라도 충분히 섬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돌로레스' 여사가 직접 말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비속어가 대량으로 쓰여져있다는 것 자체가 더 현실감을 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런 구성과 표현을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면 부정적이고 거부감을 일으킬 수 있겠지만, 역시 '스티븐 킹'의 솜씨는 독자를 끌어들이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아내와 자식에게 잘 하고 있을 남편들, 그렇게 될 예비 남편들은 오늘 저녁 아내와 자식들과 함께 오붓한 대화를 나눠보는게 어떨까? 혹시 집 근처에 우물이 있다면 당장 떨어지지 않게 막아야할지도...

[인상깊은구절]
'돌로레스' 여사가 남편을 우물에 빠트리고 환청에 시달리고, 그 심리를 묘사한 부분.
w***i 2005.08.1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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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돌로레스 클레이본Dolores Claiborne을 읽고
"[소설] 돌로레스 클레이본Dolores Claiborne을 읽고" 내용보기
제목 : 돌로레스 클레이본Dolores Claiborne, 1993 저자 : 스티븐 킹 역자 : 김승욱 출판 : 황금가지 작성 : 2006.09.18. “영화도 멋졌지만 소설은 너무 굉장한 거 아녀?” -즉흥 감상- 이것도 사실 읽은 지는 일주일이 다 되어 가는데 오늘에 와서야 감상기록이랍시고 몇 자 적어보기 시작하는군요.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머릿속을 끝없이 메아리 마냥
"[소설] 돌로레스 클레이본Dolores Claiborne을 읽고" 내용보기
제목 : 돌로레스 클레이본Dolores Claiborne, 1993 저자 : 스티븐 킹 역자 : 김승욱 출판 : 황금가지 작성 : 2006.09.18. “영화도 멋졌지만 소설은 너무 굉장한 거 아녀?” -즉흥 감상- 이것도 사실 읽은 지는 일주일이 다 되어 가는데 오늘에 와서야 감상기록이랍시고 몇 자 적어보기 시작하는군요.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머릿속을 끝없이 메아리 마냥 울려 퍼지는 작품에 대한 정보들을 정리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기록을 하고 저장해둬야 하는데 말이지요. 그럼 영화로서 먼저 접했던 이번 작품의 원작을 조금 소개해볼까 합니다. 이야기는 이 작품안의 사건이 있었던 무대인 리틀톤 섬과 주인공들에 대한 짧은 소개를 담은 작가의 서문과 함께 그 시작의 문을 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번 작품의 주인공인 돌로레스 클레이본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 여인이 살아온 이야기로 이어지게 되는군요. 우선은 그 환상적인 일식이 있었던 날 자신의 남편을 살해하게 된 이야기를 시작으로, 지금 이 심문의 자리에 있는 이유 중 하나인 도노반 부인의 죽음에 대한 진실이 그녀의 장황한 이야기 속에서 하나 둘씩 드러나게 되는데……. 아아. 정말이지 대단하게 느껴지는 작품이었습니다. 그 이유인즉 앞서 접했던 영화의 영상미학을 떠올릴 수 있어서이기도 했지만, 원작에 해당하는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주인공인 돌로레스 클레이본의 ‘나’라는 시점으로만 구성되어져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심문과정에서 녹음되는 테이프의 내용을 쭉~ 듣는 기분으로 읽을 수 있었던 작품. 하지만 그 입담하며 비록 순서가 뒤죽박죽이라고 하지만 전체적인 모습이 그려지는 그 장대한 이야기, 그러면서도 각각의 상황에 대한 묘사가 눈에 그려지는 듯한 그 모습에 즐거움의 비명을 지르는 줄 알았습니다. 아아. 일단은 진정해 보렵니다. 영화로 먼저 만난 이 작품은 가족, 특히 자식을 위한 어머니의 인생에 대해 말하는 듯 했다면, 소설로 만난 이번 이야기는 그런 가족적 드라마보다도 살아남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한 강한 여인의 모습을 이야기 한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역시나 대중성을 노리기 위한 불가피한 수정이 가해진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보기도 했지만, 오오 영상물로 만들어진 이 작품 또한 꼭 다시 보고 싶어집니다. 특히 일식이 일어나는 그 광경은 정말이지 예술적인 영상미학으로 제 머릿속에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인생이란 무엇일까요? 태어나서 성장하고 결혼해서 인류의 유전자를 후대에 남기는 행위? 그리고 그것의 반복? 아니면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 이번 작품을 접하고 나서인지 오랜만에 ‘나는 왜 살아가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보고 있는 저를 발견해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럼 운동 나갈 준비를 하며 이번 감상기록을 마쳐볼까 합니다. Ps. 이 작품의 서문에 보니 이번 작품과 소설 ‘제럴드의 게임Gerald''s Game, 1992’이 연관성을 가진 작품으로 설명되어있는데요. 흐음. 일단 저는 잎새 출판사에서 출판한 것 중 두 번째 권만 소장 중에 있습니다. 빨리 온전한 묶음으로 만들어 읽어보고 싶어지는군요.
n*****g 2006.09.2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