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때 사법고시 보겠다고 마음먹은 적이 있다. 누구나 그렇듯 물론 잠깐 이었다. '우리 같은 사람이 고시 아니면 길이 있나?' 뭐 이런 생각이었다. 뒤에 막걸리 한 사발 먹고 '우리 같은 사람이 고시는 무슨' 이렇게 됐다. 그 엄청난 공부량에 기가 질렸고, 매력적인 모범 답안을 만들기 위해 펜글씨까지 배우는 고시생들의 눈물겨운 고군분투에 질렸었다. 근데 내 친구 중에는 벌써 십오년을 신림동 고시촌에 박혀 있는 녀석도 있다. 올해 39세, 그 친구는 연애도 안하고 당연히 결혼도 안했다. '그런 것'은 고시에 합격하고 난 뒤의 일로 미루어 놓았기 때문이다.그 친구가 없을 때 다들 걱정하고 그 친구가 있을 때 다들 아무 말도 안한다. 그 친구에게 고시는 이미 종교가 되어 있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기 때문이다.무엇이 그를 그런 종교에 빠지게 만들었던가? 결혼을 하고 아이 한 둘을 가진 친구들은 지금 애들 공부시키느라고 난리다. 사십을 며칠 앞둔 家長들, 삼팔선,사오정이란 지뢰밭을 필사적으로 헤쳐나가고 있는 그들에게 직장문제 보다도 더 큰 문제는 자녀 교육 문제다. 우리의 부모 세대가 '내 자식들 만은 나의 전철을 밟지 않게 하겠다'는 생각으로 우리를 공부시켰듯 우리 친구들도 '내 자식들만은 좀 자기뜻대로 세상살아가게 하고 싶다' 뜻에서 '공부'를 생각한다. 그러나 길이 보이지 않는다. 결국 학원에 보내고, 조기 유학을 생각하고,좀 더 시설이 좋은 사립 초등학교와 좀 더 나은 '학군'을 생각한다. '어떻게 부모가 애 영어 잘하라고 혓바닥 수술을 하니?'하다가도 '아이 혀밑을 자르면 정말 영어 발음이 좋아질까'를 몰래 생각한다. 돈이 있거나 없거나 방문학습지 한 두개를 받아보고 문고판 학습교양도서를 전질로 사들인다. 그러면서도 늘 자괴감에 빠진다. 뉴질랜드로 캐나다로 교육이민을 떠나는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애들만 부모 잘못만나 세상에 뒤처지는 아이가 되겠구나.' 무엇이 내 친구들을 이렇게 '죄인'으로 만들었을까? 나는 아직 미혼이고 아이가 없다. 그래서 결혼한 내 친구들이 그렇게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딱 꼬집어 말할 수 없는 것이 있었다. '너도 결혼에서 애 낳아봐라 그렇게 되나?' 이런 질타가 돌아올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이런 우리 세대 부모의 '자식에 대한 폭력적 학습 욕망'의 원인을 확연히 알 수 없기도 했다. 그런데 나는 이 책 <옛사람 59인의="" 공부산책="">을 보면서 그런 안개가 걷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답은 이렇다. ''나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 특히 우리 세대는 공부가 뭔지를 모른다''였다. 옛날 사람들, 우리가 알고 있는 퇴계 이황, 율곡 이이, 다산 정약용, 세종대왕, 이런 사람들 정말 공부 무지하게 했더라. 요즘 고시공부는 댈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조선의 대학자요 위대한 사람이라서 어떤 시대에 무슨 책을 냈고, 뭐 그런 걸 달달 외워 시험을 보았고, 그 덕분에 대학도 갔지만 그들이 무슨 공부를 어떻게, 왜 했는지 모른다. 왜 위대한지 모른다. 이제 그들은 내 지갑 속에서 천 원짜리 오천 원짜리, 만 원짜리 지폐가 되어 있을 뿐이다. 대부분이 그렇듯 물론 나는 만원짜리 세종대왕을 제일 좋아한다. 우리가 이렇게 그들을 알고 있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지금 세상의 교육 현실이 이렇게 되었다. 그들이 공부했던 세계가 '출세하는 공부'가 아니라 '우주와 사람을 알고 우주와 사람이 조화를 이루어 복된 세상을 만드는 길을 찾는 공부' 였다는 것을 우리는 모르고 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퇴계 처럼 율곡 처럼 다산 처럼 세상에 널리 이름을 떨치는 사람, 조정에 나가 영의정이나 하다 못해 이조좌랑이라도 되라고 애들을 닥달하고 있다. 이유는 그것이다. 저자의 의도가 거기에 있었는 지는 확실히 모르겠지만 개인적인 내 생각은, 이 책을 읽고 많은 사람들이 '공부'를 포기하였으면 좋겠다. 이 책이 말하는 '참된 공부'의 길이 자신에게 맞지도 않고,자신도 없고 하기도 싫다면 빨리 '공부'를 포기하고 보다 더 자신이 즐겁고 행복해 지는 길을 찾아 갔으면 좋겠다. 세상에 자신에 맞는 '참된 공부'의 길은 꼭 책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더 이상 사람들이 <공부기술> 이라던가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 <하버드 수석의="" '인생="" 7막7장'=""> 따위의 얕은 수작에 속지 안았으면 좋겠다. '공부'는 기술이 아니며, '공부'는 쉽지도 않고. '공부'는 늘 수석이 되라고 하는 것이 아니며 그렇게 되지도 않는다. 이 책 속의 이 말이 가슴을 친다. 다산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아들의 공부를 독려하며 하는 말이다. "너는 왜 공부를 게을리 하느냐? 우리 가문이 폐문되어서 그러느냐. 폐문이면 과거시험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 공부하기에 더 낫지 않느냐. 폐문에서 벼슬아치는 나오지 않지만 학문을 크게 이룬 사람은 더 많지 않으냐?" 나는 이 책을 읽고 이런 말을 할 줄 아는 아버지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하버드>공부가>공부기술>옛사람> |
| 대학 다닐 때부터 나는 과거지향적 취향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이였다. 그래서 한문과 서예에 관심이 있었고 책도 역시 전공과는 많이 무관한 것들만 뒤적거렸는지 모르겠다. 한문 문장에 대한 추억이 한가지 있는데 중학생 때였다. 당시에도 약간 한 물 간 안현필 선생님의 <삼위일체>라는 영어참고서로 공부를 한적이 있는데, 중간중간 근학을 권면하는 옛사람의 일화를 소개한 글이 있었다. 그 중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少年易老 學難成 一寸光陰 不可輕 男兒立志 出鄕關 若學不成 死不還 공부를 하기 위해 떠나는 사람의 각오를 담은 글인데, 서예시간에 선생님께 보여드리면서 써 달라고 졸랐던 기억이난다. 대학 때는 인근 대학에 한문교육과가 있어서 소개를 받아 향교에서 선생님이 오시는 학당에 다닌 적이 있었다. 논어 강의를 듣는데 세 권의 양장본 책을 사야했다. 天地人이라고 각각 써있는 두꺼운 책은 말 그대로 옛책을 복사해서 지금의 양장 기술로 묶어놓은 것이였다. 상투머리에 관을 쓰시고 수염을 기르신 서당 선생님이 노래하듯이 읽어 내려가시고 한 자 한 자 해설을 덧붙여 설명해 주시는 것이 즐거웠고 모두들 진지했다. 가끔 군것질 거리를 사서 드리면 수강생들과 나눠 먹으면서 좋아하시던 모습이 아른거린다. 지금도 책장에는 이 책들이 가지런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다 잊어버린지 오래다. 바쁘게 살아온 탓도 있다. 지금은 옛사람의 글을 조상들의 방법대로 읽고 새기는 사람이 요즘 얼마나 될 것인가. 이런 생각을 차근 차근 하게 된 것은 이 책 <옛사람 59인의="" 공부="" 산책="">을 잡고 나서이다. 이 책은 조선시대 왕과 학자, 평민 출신의 독서에 대한 열정과 기담을 소개한 책인데 우리 조상들의 독서에 대해 생각해 볼 점이 많았다. 조선시대는 지식과 소유가 불평등 했던 사회였고 유교사상을 바탕으로 한 관념론에 몰입된 폐쇠 사회였다는 것이 나의 고정관념이였다. 그러나 책을 읽어가면서 우리 조상 나름대로 치밀하고 진지한 진리 탐구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고 기존 생각을 뒤엎는 탐구정신을 보여준 진정한 연구자도 많았음을 알게 되었다. 해당 자료가 남아 있지 않거나 부족해서 단편적으로 소개된 내용도 많았지만, 책을 통해 전달하고자한 의도를 충분히 알수 있었다. 첫장에서는 세종대왕의 독서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학문을 좋아했기로 유명한 세종은 한 권의 책을 1100번 읽었다 라는 말이 있다. 어려서부터 주위 사람들이 건강을 염려할 정도로 책을 손에서 떼지 않아 읽고 있던 책을 모두 걷어간 적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 권의 책을 숨겨 읽었고 천백번을 읽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주목할 점은 ''사가독서제''라는 제도를 만들어 집현전의 젊은 관료들에게 일정 기간 휴가를 주어 독서에만 전념하게 했다는 것이다. 지금의 안식년이라고 할 만한데 세종이 독서에 쏟은 관심을 알만했다. 학자 중에는 미암 유희춘 이란 분에 관한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기록에 의하면 ''유희춘은 책을 몹시 좋아하는 것이 마치 음악과 여색에 빠진 것처럼 좋아했다'' 라고 전해진다. 책 읽을 때 유념해야 할 사항으로 '' 부지런히 읽을 것, 잘 기억할 것, 정밀히 생각할 것, 분명히 분별할 것, 잘 기술할 것, 독실히 생각할 것'' 을 지키고 가르쳤다고 한다. 다산 정약용의 독서에 대해서 읽어가면서는 놀랍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우리가 배워 아는 교육에 대한 이론이나 교재 개발에 관한 것은 대부분 서양의 철학과 방법론이 주류이다. 그러나 이미 다산은 아동 교재에 큰 관심을 갖고 있었다. <천자문>의 단점을 비판하면서 단순 기억 및 암기를거부하고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해야함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즉, 어린아이의 입장에서는 미지의 단어의 나열인 교재는 타당하지 않으며 지식을 열어주는 것이 교육의 근본 목적이여야 하며 의미를 헤아리기 어려운 네글자 조합은 학습의 원리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같은 교재로 질리도록 반복해서 지도하는 서당식 교육은 학생들로 하여금 염증을 갖게 하고 학습 효과가 떨어진다는 점도 지적했다. 실천적인 다산은 이러한 아이디어를 구체화하여 직접 아동 교재를 개발하여 사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특히 유배 기간 동안 자녀들에게 권학하는 편지글은 구구절절 간절한 것이였다. 그외에도 책만 읽는 바보(看書痴傳)으로 유명한 청정관 이덕무의 일화, 극기 공부를 강조한 남명 조식의 공부 방법, 사물의 이치에 대해 창조적으로 사색하고 궁구한 후에 글을 읽어 증명하였다는 화담 서경덕의 이야기 등이 옛사람들의 독서와 공부에 대해 존경심을 갖게 했다. 책의 뒷부분에는 천민 출신으로 책과 글에 대한 열망을 불태웠으나 아깝게 사라져간 많은 인물들의 단편들이 소개되어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 문화와 학문에 대한 자긍심을 갖고 책 읽는 자세에 대해 조금은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책 읽기를 마치고 장그르니에의 <섬> 서문에 김화영 님이 쓴 글을 다시 한번 음미해 보았다 ''장인 마리오 프라시노가 고안한 장정 도안에 의거하여 그리예와 페오의 아틀리예에서 조소한 경문지에 50부의 특별 장정본을 따로 인쇄하였다>라고 써놓은 것을 읽을 때면 마치 깊은 지층 속에 묻혀 버린 문화를 상상하는 듯하다. 그런 책 속에는 먼 들판 끝에 서 있는 어느 외로운 창의 밤늦은 등불 빛이 잠겨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제 사람들은 썩지 않는 비닐로 표지를 씌운 가벼운 책들을 쉽사리 쓰고 쉽사리 빨리 읽고 쉽사리 버린다. 재미있는 이야기, 목소리가 높은 주장, 무겁고 난해한 주장, 재치있는 경구, 엄숙한 교훈은 많으나 <아름다운 글="">은 드물다''아름다운>섬>천자문>옛사람>삼위일체> |
| 왕, 선비, 여성, 평민 등, 조선 시대를 살았던 옛사람들의 공부에 대한 열정을 담담한 필체로 기술한 책이다. 처음에 책을 읽기 전에는, 일반 자기관리법 서적처럼, 독서자에게 공부를 하도록 강하게 촉구하는 강렬한 구절이나 그러한 분위기 조성하는 선동적인 내용이나, 또는 옛사람들의 구체적인 공부법이 상세히 기술되어 있을 것이라고 예측하고 글을 읽었지만, 막상 책을 읽다보니 내가 예상했던 바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즉, 이 책을 다 읽고 ,나도 어서 공부를 해야겠다라는, 소위 약발도 별로 강하지 않고, 이러이러하게 공부를 해야겠다는 구체적인 방법을 얻을 수도 없다. 그 이유로는 우리 나라 사료가 부족한 탓도 있을 터이고, 지은이가 자신의 상상력을 발휘하여 없는 말을 보태는 것을 그다지 탐탁치 않아했을 수도 있고, 가능하면 변형 없이 사료에 적혀있는 그대로 진실되게 보여주어야겠다는 사전 생각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유가 무엇이던 간에, 옛사람들의 공부에 대한 노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에 대해 역사적 기록에 근거하여 가감없이 기술해 놓았기 때문에, 별다른 감흥 없이 담담히 읽을 수 있다. 어쩌면 담담히 읽을 수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너무 자극적이고 너무 새로운 것은 금방 식상하고 질려버리지만, 담백하고 단순(simple)한 것은 그 맛을 음미할수록 그 전에는 알지 못했던 깊은 맛이 느껴지는 경우가 많듯이, 이 책도 그렇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다보면, 논어를 몇 천 번 읽었네, 맹자를 몇 천 번 읽었네, 하는 이야기는 수도 없이 읽을 수 있다. 책을 한 번 읽는 것은 안 읽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고, 적어도 세 번은 읽어야 그 내용에 대해 조금이나마 아는 척 할 수 있다고 생각을 가지고 있던 나에게, 몇 천 번, 그리고 가끔씩 만 번 넘게 책을 읽었다는 내용을 읽은 나로서는 담담한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하이라이트는, 동사강목의 저자인 안정복의 동문인 상사 신후담에 대한 내용이다. "하빈노인(신후담)이 5, 6세 때부터 글을 일긱 시작하였는데 이제 60세가 되어 병들어서 죽게 되었다. 그래서 평생에 읽은 글의 횟수를 기록해서 어린 손자에게 보여주었다. 나는 [중용]을 가장 많이 읽었는데, 만 번을 읽은 뒤로는 숫자를 세지 않았으나 아마 수천 번을 밑돌지는 않을 것이다. [대학]은 5천 번을 읽은 뒤로는 숫자를 세지 않았으나 만 번에서 그리 멀지 않을 것이다. [서경]과 [주역]은 각각 수천 번을 읽었고, [시경], [논어], [맹자]는 각각 천여 번을 읽었고, [소학]은 백여 번을 읽었고, [예기]와 [춘추좌씨전]은 각각 오십 번을 읽었고, [삼전]은 그 반, [주례], [의례], [효경]은 각각 수십 번을 읽었다. [이정전서], [주자대전], [심경], [근사록], [성리대전]은 종신토록 읽었다. 그 중에서 백 번 혹은 오십 번씩 초독(抄讀)한 것이 있다. 심씨가 편찬한 [백가유찬]은 수십 번을 읽었는데, 그 중 [도덕경], [음부경], [남화경], [참동계]는 수백 번까지 읽었으며, [한위총서] 중에서 [대대례], [왕씨역례], 초씨와 경씨의 [역문], [신공시설] 같은 종류는 각각 수십 번을 읽었으며, 태사공의 [사기]와 한문공의 [창려집]은 백 번 혹은 수십 번을 초독했다. 그 밖에 읽은 횟수가 수십 번에 못 미치는 것은 기록하지 않으며, 많이 읽었더라도 단편과 짧은 글도 기록하지 않는다. 손이떨려서 글씨가 제대로 되지 않아 억지로 써서 너에게 주니, 너는 부디 이 유업을 잘 잇기 바란다." 예전에 엠씨스퀘어 광고 중에서 '그냥 열심히 하면 된다'라는 말을 듣고,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고, 또 공부하는 시간도 중요하지만, 공부하는 방법 역시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나에게, 정말 열심히 하면 되겠구나, 라고 깨닫게 해 준 글귀였다. 독서백편 의자현(讀書百遍 意自現)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 외에도 공부는 공부 그 자체로서 의미가 있다라는 내용이나 공부는 온 몸과 온 마음을 다해서 해야한다는 등의 내용 등이, 각 선비들의 사례를 들어 이야기되고 있다. |
| 공부를 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다. 이름을 외우거나 주소를 외우는 것으로 부터 시작하여 대학입시와 박사, 전문적인 것들을 배우는 것 까지 배움은 끝이 없이 가능하다.. 그러나 "왜하느냐?"라고 묻는다면,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성공하려고, 박사가 되려고, 직업을 얻기위해서, 남들이 하니까..... 무시 당하지 않으려고, 대학은 나와야지?, 사람구실하려면..... 공부를 하고 싶어서, 그러나 시간이 없어서.. 주경야독을 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이제 시간과 환경 모든 것들이 공부를 하고 싶게 하고, 공부를 하는 것에 벼슬을 앉힌다. 그런데도 왜그리 방황하는 사람들이 많은가.. 한국인의 독서량은 현저하게 낮은가? 우리가 말하는 공부는 배움이 아니라,베끼기에 그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일것이다.. 그 이유가 나 자신의 절실한 이유이가 보다는 어쩔수 없는 것이기에 그러한 것이다.. 이책은 그러한 모습을 가지고, 아무 반성조차 하지 않던 나 자신에게도 커다란 느낌표를 준 책이었다. 그리고 이제 "왜 하느냐""어떻게 하느냐""무엇을 하느냐"라는 물음에 자신있게 대답하고 싶어졌다. ^^ 공부를 시작하기에 앞서 먼저 보면 더욱 좋을듯하다! |
| 요즘은 요령으로 공부하는 사람이 많은듯 싶다. 소위 벼락치기는 기본이고. 대학가의 강의실 책상엔 컨닝할 자료가 수두룩 하다. 이책을 보면. 옛 위인들이 정말 성실이 공부해 나갔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같은 책을 300번이상 읽어야 책을 놨다는 일화에서 부터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이책은 일화를 나열된 식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약간 지루한 감이 있다. 초등학교 고학년에서 중학생 들이 읽어보면 좋은 책이 아닐까 싶다. 현재 조카 녀석 하나가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내가 읽은 이책을 선물할까 한다. 이 책이 녀석의 공부 패턴(?)을 바꿨으면 하는 바램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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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가르치고 배우면서 살아간다. 우리가 흔히 아는 공부라는 것을 하고 항상 입에 "공부해라"라는 말을 달고 산다. 하지만 깊이 공부가 무엇이고 왜 해야하는가는 가르켜주지 않고 단지 어떻게 해라라는 것만을 가르친것 같다. 나 자신이 먼저 공부에 대해서 깊이있게 생각해보지 않은것 같다.나 자신부터도 학교에 다니는 것만이 머리속에 지식을 간직해두는 것만이 공부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공부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내가 하는 공부가 진정한 공부인가를 말이다. 이 책은 왜 공부해야하는가라는 철학적인 문제를 풀어준다. 거창하고 어려운 말을 통해서가 아닌 우리가 아는 조선시대의 위인들의 삶을 통해서 공부가 단지 머리뿐만이 아니라 생활과 행동도 같이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나 자신이 행동으로 옮길만한 공부를 하고 있는지 반성해 본다. [인상깊은구절] 공부란 몸에 배어야 마음속에 간직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