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 년에 네 번 바뀌는 계절 외에도 나에겐 하나의 계절이 더있다. 매해 지금쯤이면 느껴지는 여름에서 가을 사이의 미묘한 헛헛함을 어떻게 설명하면 당신이 나를 이해하게 될까. 도렷하게 느껴지는 이 막막한 소요가 단지 내가 여름 태생이라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살아온 시간 내내 여름이 정서 한군데를 찌르는 듯 아팠던 게 사실이지만 나는 대부분의 여름을 기억하지 못한다. 온 힘을 다해 열정을 쏟아부어야 하는 여름의 열기가 사라질 때. 사라지지 못해 안달하는 여름은 왜 이다지도 쓸쓸하고 서글픈 기분인지. 철든 스무살부터 쭉 생각한다. 지킬 것이 없는 계절, 앞으로만 흐르는 계절이 조금은 두렵다. 작년에 떠난 가을이 여름의 뜨거운 구애를 물리치는 이때. 태양마저 앗아갈 듯한 희미한 체념이 몸안 가득 스며들면 가장 따스하고 편안한 영화를 찾게 된다. ![]()
우연한 기회에 함께 살게 된 이름도 성도 나이도 제각각인 세 사람. 나이 지긋한 남자와 다소 젊은 남자(스승과 제자 관계) 그리고 아직은 어리다고 할 수 있는 아리따운 아가씨의 미묘한 동거는 이유없이 가슴을 콩닥거리게 만든다. 로맨스, 드라마, 미스터리까지 이 영화는 관객이 원하는 삼박자를 고루 갖추고 있다. 모든 사실이 밝혀진 후 재회한 두 사람이 파티를 주최한다. 화면을 가득 채우는 빛깔은 온통 연두빛이다. 마을 사람들이 서서히 들어차면서 물오른 축제장 안을 물 위를 거닐듯 춤추는 두 사람. 앞서 모닥불 앞에 둘러앉아 노래하고 듣는 장면 역시 기시감 짙은 뻔한 장면이지만 이 영화 속에서라면 더이상 뻔하지 않다. 사랑의 거의 모든 유형을 찾을 수 있도록 배치한 소재들도, 흘러나오는 컨트리 음악도, 잔디밭에 앉아 한 편의 잘 그려진 그림을 감상하듯 강물처럼 유유히 흘러간다.
![]()
별로 큰 것을 바라지 않는 사람들이 주는 작지만 소중한 열망이 보인다. 소망이 작다는 의미가 아니라 쓸데없는 욕심의 찌꺼기를 버리고 착실하게 제 삶을 꾸려나가는 법을 아는 사람들이란 뜻에서의 존경심이 생긴다. 욕심만큼 사람을 비참하게 만드는 것도 드물다. 누군가 다시 물으면 마음의 비타민이라 표현하는 게 감동의 아이콘을 가장 잘 설명하는 방법일 것 같다. 가을의 끝을 간신히 부여잡은 여름이나 더위를 물리치지도 못했으면서 찬바람을 두려워하는 나에게 세상은 먼지같고 별빛같고 풍요로우면서도 애처롭다. 내년 늦여름 어느 밤에도 혼자서 감동에 몸을 떨며 이 영화를 보게 될까. 오랫동안 이 느낌을 간직하고 싶다. 그렇지만 다른 때보다 빠르게 겨울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기도 한다. 변덕과 체념은 언제나 하나처럼 오고간다. 이런저런 이유가 복합적 에너지로 작용하여 오늘 하루 나는 정말 행복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