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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초월한 막장 드라마를 보다?
언젠가부터 "막장드라마"라는 말이 유행이다. 불륜을 초월한 패륜적인 요소는 물론이고 보통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든 과도한 설정까지 저런 이야기가 현실 속에서 있을 수 있을까 싶은... 그런 "막장" 설정을 욕 하면서도 중독성(?)이 있어 보게 되는 그런 드라마. 드라마를 잘 챙겨보지 않는데, 책을 통해 막장을 접하게 될 줄이야...
손창섭의 장편소설 [삼부녀]를 읽었다. 손창섭이란 이름을 들으며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잉여인간]이다. 고등학교 땐가 읽었던 것도 같은데 내용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으면서도 "잉여인간"이란 제목 자체가 무척 선명하게 머리 속에 새겨져서 지워지지 않는 작품이었다. 음. 그 잉여인간을 썼던 손창섭의 작품이다. 사실 손창섭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거의 없었다. 우연한 기회에 이 책을 읽게 되면서 그에 대해 좀더 알 수 있었다. 그는 1922년 평양 출생이란다. 앞서 말한 "잉여인간"으로 1959년 동인문학상을 받았고, "1960년대 초반부터 작품활동이 뜸해지다가 1973년 홀연히 일본으로 떠났다."(책 앞날개), "최근까지 아내와 함께 도쿄에서 거주해 오던 그는 2010년 6월 지병으로 타계하였다."(책앞날개)는 안타까운 이야기까지 알게 된 것도 물론 이 책을 통해서다. 그랬구나..
널리 알려진 작가가 이렇게 종적을 감추고 묻혀서(?) 생을 마감했던 것, 청소년 필독 소설이라고 알아왔던 [잉여인간]을 썼던 사람이 이렇게 "막장드라마"적인 소설을 쓰기도 했었다는 것,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놀랐던 두 가지다. 이 책은 그가 일본으로 떠나기 직전 한국에서 썼던 마지막 작품이라고 한다. "1969년 12월 30일부터 1970년 6월 24일까지 모두 29회에 걸쳐"(p242) [주간여성]이라는 잡지에 연재했던 작품이다. 작품을 연재했던 주간여성이라는 잡지의 성격이 그러하듯 이야기는 "세태적 통속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p244). 지금으로부터 40년전에 씌여진 작품이 어떻게 이렇게 파격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을까 싶을 정도로 혀를 끌끌 차게 하는 이야기라 읽는 내내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주인공은 40대 후반의 강인구. 여동생의 남편과 불륜행각을 일삼다가 발각이 난 뒤로도 죄의식이라고는 없는 아내와는 이혼한 상태. 보경, 보연 두 딸과 식모와 함께 나름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던 그였지만 아내가 다시 그들 앞에 나타나면서 그의 가정은 다시 한번 혼란스러워진다. 강인구 또한 친구로부터 소개받은 여대생과 원조교제를 하게 되고, 이혼 후 다방을 차린 그의 전처는 남자 관계가 복잡하기는 변함이 없고. 친자식처럼 키웠지만 그의 딸이 아니었던 보경은 지금의 시각으로 봐도 놀라울 정도로 자유분방한 이성관을 가지고 있다. 그런 가족들을 보면서 혼란해하는 보연. 결국 두 딸은 각자의 길을 찾아 집을 떠나 버리고 강인구는 여대생 경희와 한 집에서 계약 교제를 벌이고, 거기다 친구가 죽으면서 부탁한 딸 경미까지 한 집에서 살면서 새로운 "가정(?)"을 꾸린다. 헉....! 뭐 이런 막장들이 다 있냐 싶을 정도로 놀라운데 더군다나 이 글이 씌인 시점이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이라는 것은 더욱 놀라운 일이었다. 만약 이 글을 드라마로 만든다면 욕 많이 먹겠다 싶을만큼....
40년 전의 글을 보면서 그 시대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은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쓰러진 친구에게 병문안을 가면서 강인구와 친구가 선물로 구입한 것은 "과일통조림과 계란"(p153) 몇 꾸러미였고 강인구와 친구가 일과 후 종종 들러 스트레스를 푸는 곳은 "색시"가 있는 "요정"이었다. "통행금지 시간"이 있는 시대였고, 강인구가 여대생과 원조교제를 하면서 지불하는 금액은 한 달에 "6만원"이었다.
이 글을 발굴(?)해 내어 다시 펴낸 서울대학교 국문과 교수이자 문학평론가인 방민호 교수는 책 말미에서 "'막장 드라마'의 이면"이라는 제목으로 이 글에 대해 분석하고 있는데. 글쎄다.. 이면까지는 잘 모르겠고, 내게는 그저 놀랍고도 파격적인 시대를 초월한 "막장 드라마"로 이 글이 기억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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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리하고 선득한 칼날을 손에 쥐고...
근대를 향해 갈팡질팡 질주하던 대한민국 사회를 날것 그대로 도려낸...
시대를 앞서간 천재...
손창섭...
책장의 마지막을 덮고도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이 땅을 떠나기 전...
그는 무엇을 본 것일까...
눈부신 절망일까...
검붉은 욕망일까...
달콤한 희망일까...
떠난 자는 말이 없고...
그가 남긴 처절한 문장만이...
침잠하듯 고요히 증언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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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근대소설에서 막장 드라마는 비교적 일찍 시작되었다. 내가 읽어본 소설 중에 막장 드라마의 시초는 염상섭의 <사랑과 죄>(1928)다. 탐정소설 작가로 알려진 김내성도 비슷한 시기에 막장 드라마로 전개된 장편소설을 발표하였다. 이 시기에 막장 드라마가 소설의 주된 스토리가 된 이유는 이 소설들이 신문연재소설이기 때문이다. 신문연재소설은 독자들에게 재미와 흥미를 끌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니 소설가들은 작품의 의미는 둘째로 치더라도 일단 독자들의 흥미를 끌어야 했다. 우리가 흔히 아는 막장 드라마의 조건은 일단 주인공에게 출생의 비밀이 있다는 것이다. <사랑과 죄>의 주인공인 지순영에게는 출생의 비밀이 부여된다. 두번째 남녀의 연애관계가 성립하는데 이들에게는 결혼으로 나아가는데 엄청난 고난을 겪어야 한다. 이것을 일컬어 '혼사장애 모티프'라고 한다. 연애관계에 있던 남녀 주인공이 알고보니 남매간이라는 것. 이것보다 강력한 혼사 장애는 있을 수 없다. 염상섭은 <사랑과 죄>에서 남녀 주인공이 법적으로 남매간임에도 불구하고 둘의 연애를 성사시키는 무리수를 두게 된다. 이번에 읽은 손창섭의 <삼부녀>는 1969년부터 1970년까지 <주간여성>에 연재된 소설이었다. 여성지에 발표된 소설이니만큼 독자들의 흥미와 재미를 끌기 위해서는 비교적 감각적이고 선정적인 이야기 전개가 필요했을 것이다. 4-50년전 이야기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이야기는 파격적이다. 부동산업을 하고 있던 강인구는 아내와 별거 중이다. 3년 전 아내가 처제의 남편과 불륜을 저지른 일로 인구는 아내를 집에서 쫓아냈다. 인구는 동종업계에서 일하고 있던 계 사장을 통해 여대생을 소개받게 되고, 인구는 그녀에게 생활비와 학비를 대어주는 조건으로 조건만남을 하기로 한다. 오늘날로 말하면 원조교제격이다. 여대생이라는 점에서 법적인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았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인구가 아내를 쫓아내고 여대생과 연애하고 있을 무렵 그의 두 딸들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재결합시키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인구는 불륜으로 쫓겨난 아내와 다시 결합하는 것을 완강하게 거부하였다. 딸들의 강청에 못이겨 아내를 다시 만나보았으나, 결국은 가족이 모두 헤어지는 결과를 초래하고 만다. 첫째딸 보경이는 엄마에게 가고, 둘째 딸 보연이는 외삼촌 집에 맡겨지게 되었다. 인구는 두 딸을 내보내고 원조교제를 하던 경희와 병으로 갑자기 죽은 친구가 부탁한 친구의 딸을 집으로 초청한다. 집을 나간 대신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두 딸이 생긴 것이다. 손창섭이 말하고 싶은 것은 소설의 제목에 드러나듯이 <삼부녀>다. 혈연으로 엮인 가족만이 가족이 아니라 사랑과 정으로 엮인 관계도 가족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손창섭은 이 소설을 마지막으로 돌연 일본으로 가서 2010년 사망할 때까지 일본에서 산다. 손창섭은 한국 사회가 가족주의 혈연주의로 똘똘 뭉쳐 있는 사실에 치를 떨었던 것은 아닐까?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면서 혈연, 지연, 학연으로 똘똘 뭉친 한국 사회를 비판하는 시선이 느껴진다. 최근에 있었던 공기업 채용 비리가 모두 이런 맥락 속에 놓여 있다. 가족주의와 가부장제는 한몸으로 붙어 있다. 가족 안에서 아버지는 돈을 벌어서 가족들을 부양해야 하고, 아내는 집에서 남편을 내조하고, 자녀들을 잘 보살펴야 한다. 그런 의무감이 부모들을 억압하고, 자녀들은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이것이 정상일까? 부모들이 자녀들을 보살피고, 교육해야 하는 것은 거룩한 의무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역할이 그들을 억압해서는 안 된다. 아버지는 아버지이기 이전에 한 인간이며, 어머니도 어머니이기 이전에 한 인간임을 깨닫는 것이 곧 철이 드는 것이다. 가족은 가족이기 이전에 서로가 한 인간임을 인정하고,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해야 한다. 부모가 자녀들을 한 인격체로 대하듯이, 자녀들도 부모를 자녀들에게 사랑을 주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해야 한다. 그런 건강한 가족관계가 성립되기를 손창섭은 기대하고 있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