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2)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0%
  • 리뷰 총점8 10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8.0
  • 50대 8.0
리뷰 총점 종이책
황석영, 『심청』
"황석영, 『심청』" 내용보기
시간이 배제된 세계를 떠도는 주체의 서사 - 황석영, 『심청』       황석영은 『심청』에서 설화 속의 여성 영웅을 불러내어 모성의 위대성을 다시 한 번 성찰한다. 온갖 고난을 헤치고 자기 정체성에 도달하는 영웅의 서사는 20세기 초 한 여성의 삶을 바탕으로 폭력이 지배하는 지금 이곳의 세계를 치유하는 담론으로 호출되는 것이다. 『심청』이라는 소설의 뿌리를 형성하고 있
"황석영, 『심청』" 내용보기

시간이 배제된 세계를 떠도는 주체의 서사

- 황석영, 『심청』

 

 

 

황석영은 『심청에서 설화 속의 여성 영웅을 불러내어 모성의 위대성을 다시 한 번 성찰한다. 온갖 고난을 헤치고 자기 정체성에 도달하는 영웅의 서사는 20세기 초 한 여성의 삶을 바탕으로 폭력이 지배하는 지금 이곳의 세계를 치유하는 담론으로 호출되는 것이다. 심청이라는 소설의 뿌리를 형성하고 있는 설화적 구조는 실상 오래된 정원오래된 정원이야기나, 손님의 오구굿 이야기에서 반복적으로 표현된 구조이다. 두 작품 속의 설화적 구조가 작품의 배경을 형성하고 있다면 심청에서 설화적 논리는 이 소설을 서술하는 밑바탕으로 작용한다. 근대라는 폭력의 세계에 저항하는 수단이 전근대적 설화의 논리라는 점은, 황석영이 이야기하는 모성성이 전통적인 세계의 모성성에 기반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심청에서 모성성은 심청이라는 여성 영웅의 행동을 규정하는 기준으로 나타난다. 열다섯의 나이에 중국을 넘나드는 상인들의 제물로 팔리고, 종국에는 남자들의 성적 노리개로 전락하는 심청의 상황은 그녀가 보살의 현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쉽게 소설적 정당성을 얻는다. 여러 모습으로 변신하여 사람들의 깨달음을 돕는 관음보살의 형상은 여러 이름으로 살아가면서도 심청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잊지 않는 심청의 형상과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열다섯 나이로는 견디기 어려웠을 상황에 여러 차례 직면하면서도 심청은 언제나 그러한 상황을 묵묵히 수용한다. 마치 자신이 자발적으로 상황을 선택한 것처럼, 심청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빠르게 판단하고 그에 따라 어떤 상황이든 쉽게 적응한다. 열다섯의 소녀가 지닐 수 있는 내면 심리가 부재하다는 지적은 여기서 가능할 터인데, 어떻게 보면 관음보살의 현신인 심청에게 이러한 내면의 갈등은 불필요한 과정일 수도 있을 것이다.

 

심청이라는 존재는 이미 작가의 관념 속에서 구성된 존재로 형성화된다. 심청의 고난은 관음보살이 스스로 선택하는 고난의 상황과 연결되며, 그로써 언제나 해결될 수 있는 고난으로 비쳐진다. 고난은 심청이 겪지만 그 고난을 조절하는 존재는 작가이다. 심청의 내재적인 과정을 따라 심청의 형상이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관음보살이라는 절대적 기준을 통해 심청의 형상이 구성되는 셈이다.

 

따라서 심청이 어떤 이름으로 불리고, 어떤 삶을 살든 그녀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겪을 이유가 없다. ‘심청이라는 이름은 관음보살이라는 종교적 형상과 어울려 심청의 정체성을 공고하게 한다. 몸을 보시함으로써 수많은 생명들을 살려내는 심청의 행동은 관음보살에 내재된 의미를 현실화화는, 그래서 이미 그녀에게 운명적으로 부여된 삶을 살아내는 과정에 다름아닌 셈이다. 결국 문제는 작가가 관음보살의 현신이라는 모티브를 심청의 삶과 연관시키는 까닭을 밝혀내는 것으로 모여진다. 모성성을 체현한 관음보살의 형상이 심청의 형상과 겹쳐진다면, 작가는 관음보살의 종교적 희생정신을 모성성의 근본 조건으로 제시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관음보살과 심청이 공통적으로 모성성을 구현하는 존재라는 점을 찾아낸다고 해서 이 소설의 모든 문제들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심청은 현실을 살아가고 있고, 또한 현실 속에서 자신만의 개별적인 삶을 살아가야 한다. 관음보살의 형상은 이상적인 기준일 뿐, 그것은 심청이 겪어내는 현실의 경험 속에서 재구성되어야 한다. 남성들의 성적 노리개에서 류큐라는 작은 왕국의 왕후에 이르는 심청의 삶의 역정은 버림받은 타자들을 향한 배려의 삶이었다는 점에서 관음보살의 희생정신과 상당히 닮아 있는 듯하다.

 

성적 노리개로 대상화된 여성들을 대하는 심청의 마음에는, 또 류큐의 백성들을 대하는 심청의 마음에는 고통 받는 사람들의 상처를 보듬으려는 어머니의 마음이 자리 잡고 있다. 그것은 오래된 정원의 한윤희가 말한 모성적 위대성의 현실화일 것이다. 심청의 삶에 드리워진 긍정적 의미는 그녀의 삶이 이처럼 고통받는 사람들의 현실과 맞닥뜨리고 있다는 점에 있다. 심청은 고통스런 현실에서 도피하지 않고 그 현실과 싸우고 있으며, 그 싸움은 항상 고통받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전개된다. 자식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시선으로 감싸여진 이러한 상황은 실상 황석영의 모성 담론에 새겨진 현실적인 의미로 제시될 수 있다 하겠다.

 

그러나 심청의 이러한 삶은 황석영의 관념에 뿌리 깊이 박힌 여성의 삶이라는 점에서 치명적인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심청의 정체성은 심청의 삶 속에서 모성성이라는 화두를 빌미로 철저하게 은폐된다. 심청이 죽는 순간까지 기억하는 심청이라는 이름의 정체성은 그녀가 태어난 조선에 뿌리를 두고 있다. 자신을 팔아버린 나라를 향한 심청의 그리움이 심청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근거이다. 제물로 팔려 조선을 떠난 소녀가 자신이 태어난 나라라는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 조선으로 복귀하는 서사는 뿌리에 대한 운명적 논리로 해석될 수는 있을지언정, 심청의 정체성, 다시 말해 심청의 주체성을 포괄하는 논리로 발전할 수는 없다.

 

심청은 자신의 삶 속에서 모성적인 존재로서의 희생적인 삶을 실현하지만, 그것은 심청이 찾은 삶이라기보다는 모성성을 체현한 존재가 걸어가야 할 운명적인 길로 나타난다. 누가 심청에게 그러한 운명을 부여했는가? 오래된 정원의 한윤희가 오현우의 그늘 속에서, 오현우의 현실 적응을 위해 매개항으로 기능한 바 그대로, 심청 역시 한 남성 작가가 지향하는 세계를 건설하기 위한 관념적 매개항으로 기능한다. 제국주의의 폭력을 고스란히 몸으로 받아낸 삶, 그럼에도 폭력에 폭력으로 대항하지 않는 한 정신의 삶은 결코 이 세상에서는 실현될 수 없는 삶이다. ‘정신대 문제가 여전히 이 시대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지 않은가.

 

폭력은 폭력을 당한 사람들의 뇌리에 기억의 이미지로 남는다. 그 기억이 치유되지 않는 한, 모성성의 정신은 현실화되기 힘들다. 심청의 삶에서는 고통받는 주체의 상처가 치유되는 과정은 없고, 그 상처를 감싸안는 모성성의 정신만 오롯이 부각된다. 여성 영웅은 상처받을 수 없다는 것일까. 황석영의 설화적인 논리는 이 지점에서 작품의 현실성을 떨어뜨리는 요소로 작용한다. 심청20세기 초의 제국주의 현실이라는 가파른 상황을 다루고 있지만, 정작 제국주의의 현실은 심청의 삶과는 동떨어진 관념적인 배경으로만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예전 어느 강변 마을에 아름다운 여인 하나가 나타났더란다. 나는 부모형제가 없는 사람으로 재물도 영화도 원치 않으나 내가 가진 경전을 외우는 이에게 시집을 가련다구 그랬다지. 여러 사내들이 다투어 그네와 정분을 나누었으나 마지막에 마씨 댁 총각이 경전을 외워 장가를 들게 되었구나. 혼인을 하자 마자 몸이 아프다며 방에 들어가 쉬던 여인이 죽더니 삽시간에 육신이 재처럼 흩어져 금색 뼛가루가 되고 말았다더라. 며칠 후에 한 선승이 지나다가 보고 그이는 관음의 화신이었다고 그러더란다. 정분의 허망함과 살림의 덧없음을 깨우치려고 잠깐 보이셨다는구나.” (심청하권, 306307)

 

 

소설의 말미에 나타나는 이 이야기가 심청이 살아낸 실제의 현실일 것이다. “정분의 허망함과 살림의 덧없음을 깨우치기 위해 지상에 내려온 존재가 관음보살이고, 심청이다. 설화적 현실이 제국주의라는 폭력의 현실을 허망한 것으로 규정하면서 소설은 끝을 맺고 그와 더불어 제국주의의 풍파에 휩쓸려 고통스런 여행을 한 심청의 삶 역시 그 허망함의 세계로 빠져든다. “남들 해치지 말구 살거라라는 심청의 유언은 설화적 현실에서 제기되는 진실의 보편성을 강조한다. ‘남들을 해치지 말라는 보편적 진실을 이야기하기 위해 황석영은 20세기 초의 제국주의 현실을 불러내고, 또 심청이라는 설화적-민중적 영웅을 불러낸 셈이다.

 

하지만 허망함을 강조하는 설화적 현실이 부각되면서 심청이 겪어야 했던 고통스런 삶은 현실의 저편으로 사라진다. “실컨 울고 난 사람의 웃음을 지으며 죽음을 맞이하는 심청의 형상에는 죽은 자의 편안함만 남아 있을 뿐, 그가 겪은 타락한 현실의 그림자는 완전히 지워져 있다. 영웅으로서의 심청의 삶은 있지만, 여성으로서 당해야 했던 심청의 삶은 사라졌다. 동아시아의 이곳저곳을 에둘러서 조선이라는 공간으로 돌아온 심청은 자신의 고향에서 영웅적인 죽음을 맞이한다. 남은 것은 관음보살의 현신이라는 심청의 존재감 뿐이다. 제국주의의 폭력을 증명하는 한 여인의 몸은 이렇게 관음보살의 현신이 되어 설화적인 세계라는 몰역사적인 세계로 사라져버린 셈이다.

 

결과적으로 황석영은 심청이라는 모티브를 통해 모성성을 실천하는 한 여인의 희생적인 삶을 구현하고 있다. 하지만 여성의 희생적인 삶은 모성성의 담론에 규정된 삶으로 나타날 뿐, 심청의 주체성에 근거한 능동적인 삶으로 표출되지 않는다. 심청의 희생적 행위가 능동적으로 비쳐지는 것은 심청의 행위를 이끌어내는 작가의 관념이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모성성이라는 이름으로 은폐된 작가(남성)의 시선은 심청의 비주체적인 행동을 주체적인 행동으로 보이게끔 한다. 요컨대 소설 속에서 심청은 주체화의 과정을 통해 새로운 인물로 거듭나는 듯싶지만, 실제 그것은 작가의 관념 속에서 재구성된 모성성의 화신으로 한정되어 나타난다. 모성성과 주체성의 경계에서 모성성으로 복귀하는 심청의 서사는 황석영이 이른 모성성의 맥락이 여성의 주체성을 배제하는 남성의 시선에 종속되고 있음을 다시 한 번 입증한다고 하겠다.

o*****s 2017.10.21.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 심청 (하)
"- 심청 (하)" 내용보기
심청이 열 다섯이 아니었다면...심청이 여자가 아니었다면....심청이 효심이 지극하지 않았다면....무엇보다 심봉사가 눈이 멀지 않았다면....이 모든 이야기는 달라졌을까...더 행복해졌을 수도 더 불행해졌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저 이야기는 이야기임을 주지시키면서 그녀의 스토리 속에서 빠져나와야할지도...작가 황석영의 심청은 좀 다른 이야기로 전개된다. 그 시
"- 심청 (하)" 내용보기
심청이 열 다섯이 아니었다면...
심청이 여자가 아니었다면....
심청이 효심이 지극하지 않았다면....

무엇보다 심봉사가 눈이 멀지 않았다면....

이 모든 이야기는 달라졌을까...더 행복해졌을 수도 더 불행해졌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저 이야기는 이야기임을 주지시키면서 그녀의 스토리 속에서 빠져나와야할지도...

작가 황석영의 심청은 좀 다른 이야기로 전개된다. 그 시작은 같았으나 심청은 중국으로 건너가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하지만 다가온 삶은 죽음보다 훨씬 못한 것일수도 있는 삶이었다. 한 세상 태어나 가난하다고 해서 누군가의 노리개로 전락하는 삶이 어떻게 인간다운 삶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작가는 심청에게 순간 죽지 않는 삶을 허락했다. 그리고 열 다섯이라는 어린 나이로 많은 실수들을 하면서도 심청은 꿋꿋하려 노력했다. 사실 중국이라는 큰 나라안에서도 교육받지 못한 어린 심청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별로 없었을 것이다. 그 시절의 여인들이 그러했듯이 심청에게도 선택하러 폭은 좁았을 것이며 그리하여 가장 잘 알고 잘할 수 있는 것을 하며 돈을 모으로 삶을 살았을 것이다. 

중국 노인으로부터 젊은 남자, 마음 주었던 정인, 돈을 위해 몸을 빌려주었던 수많은 남자들과 서양남자, 일본남자에 이르기까지 심청은 참 다양한 남자들을 품었다. 거의 대부분 타의에 의해서지만 그래도 심청은 자신을 놓지 않으려고 무단히 애쓰며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살아남았다. 

소설을 읽으며 가장 중요했던 것은 살아남았다는 것이 아닐까 싶어졌는데, 한 편 씁쓸해졌던 이유는 열 다섯, 그 순간 물에 빠져 죽는 것이 더 나은 삶이었을까, 이렇게 질기게 살아남은 삶이 더 나은 삶이었을까 선택할 수 있다면 심청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 하는 것이다. 

나는 심청이 아니기에 선택할 수는 없지만 [타이타닉]의 로즈처럼 살아남아도 자신의 의지대로 멋진 삶을 살 수 없다면....살아남았다는 것이 의미가 있는 일일까....자꾸만 생각하게 된다.


i*****i 2010.08.2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