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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같은 진실.. 여성의 삶..
"허구같은 진실.. 여성의 삶.." 내용보기
여성이 핍박받는 사회의 분위기는, 같은 여자도 잘 못느낀다. 억압이 없어서가 아니라 수백, 수천년동안 억압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어린 소녀가 아버지를 위해 바다에 뛰어드는 행동을 효라고 강요하는 가부장 문화와 연꽃 속에서 살아나 왕비가 되는 신데렐라의 판타지를 읽으며 나는 고등학생이었을 때까지 심청전의 주제는 효와 행복이라고 생각했다. 나를 가르치셨던 초,중,고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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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핍박받는 사회의 분위기는, 같은 여자도 잘 못느낀다. 억압이 없어서가 아니라 수백, 수천년동안 억압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어린 소녀가 아버지를 위해 바다에 뛰어드는 행동을 효라고 강요하는 가부장 문화와 연꽃 속에서 살아나 왕비가 되는 신데렐라의 판타지를 읽으며 나는 고등학생이었을 때까지 심청전의 주제는 효와 행복이라고 생각했다. 나를 가르치셨던 초,중,고 선생님 그 누구도 그 속에 감춰진 또다른 면을 가르치기는 커녕 생각조차 못했을 것이다. 내가 감상과 생각의 표현을 잘 못해서 조리있게 말을 못하겠다. 아무튼 이 심청이가 겪는 애환과 슬픔을 소설의 재미를 극대화를 위해 오버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주류 사회에 감춰지고 밟혀진 소수 문제에 대한 인식이 아직도 부족한 것이다.
a****o 2004.05.03. 신고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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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문학의 전환점.
"황석영 문학의 전환점." 내용보기
황석영 본인, 심청을 자신의 전반기 문학을 정리하는 의미를 가진 작품이라 말한 바 있다. 하지만 나는 그의 전반기 문학의 정리는 이미 손님에서 충분히 이루어졌으며 심청의 완성도는 손님에 비하면 부족한 감이 있지 않나 싶다. 오래된 정원이나 손님에서 작가는 우리 민족의 비극에 천착하며 그 의미를 탐구하고 갈등의 해법을 제시했는데 특히 손님에선 형식 면에서도 또다른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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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본인, 심청을 자신의 전반기 문학을 정리하는 의미를 가진 작품이라 말한 바 있다. 하지만 나는 그의 전반기 문학의 정리는 이미 손님에서 충분히 이루어졌으며 심청의 완성도는 손님에 비하면 부족한 감이 있지 않나 싶다. 오래된 정원이나 손님에서 작가는 우리 민족의 비극에 천착하며 그 의미를 탐구하고 갈등의 해법을 제시했는데 특히 손님에선 형식 면에서도 또다른 해법을 제시하며 한바탕 살풀이 판을 벌였다. 허나 심청에선 먼저 형식의 면에서도 그가 주장하는 '신명'의 글쓰기란 과연 무엇인가 의심스럽게 만들 정도로 새로운 면도, 손님에서 이루어낸 성취의 연장도 찾아볼 수 없었다. 물론 심청이 가진 미덕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 세련되고 품위있는 문장과 넓은 시선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다만 나는 그가 손님에서 이루어낸 문학적 성취에 비하면 본작이 미치지 못하는 점이 많으며, 특히 그의 전반기 문학의 총정리라고 말하기엔 미흡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그래도 이렇게 평점을 후하게 줄 수 있는 건 앞서 말한 심청의 미덕을 평가한 결과이며 앞으로 그의 작품 활동에 대한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g******6 2003.12.20.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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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청의 눈을 통해본 동아시아 근대사
"심청의 눈을 통해본 동아시아 근대사" 내용보기
동아시아는 서양 열강의 침략을 통하여 근대사를 형성하여 왔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하에서 피지배층의 고단한 삶을 유추하기란 그리 어렵지만은 않을 것이다. 저자는 시대상황에 대한 깊은 이해와 뛰어난 상황설정으로 '아하 그럴수도 있었겠구나'하는 말이 저절로 나올 정도로 흥미롭게 이야기를 전개해 나아간다. 지역별로 전해오는 심청에 대한 구전설화의 기반이 이러한 상황에서 나
"심청의 눈을 통해본 동아시아 근대사" 내용보기
동아시아는 서양 열강의 침략을 통하여 근대사를 형성하여 왔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하에서 피지배층의 고단한 삶을 유추하기란 그리 어렵지만은 않을 것이다. 저자는 시대상황에 대한 깊은 이해와 뛰어난 상황설정으로 '아하 그럴수도 있었겠구나'하는 말이 저절로 나올 정도로 흥미롭게 이야기를 전개해 나아간다. 지역별로 전해오는 심청에 대한 구전설화의 기반이 이러한 상황에서 나올수도 있었겠구나 하는 추측을 하는것은 이책을 읽어본 독자라면 누구나 수긍할수 있는 가정일것이다. 그러나 단지 시대상황에 대한 묘사에만 그쳤다면 이 소설의 재미는 반감되었을 것이다.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주인공 나름대로의 생존논리와 그 와중에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고민과 노력은 읽는 이의 마음을 뭉클하게 한다. 비록 소설이지만 동아시아 근대사의 핍박받았던 민중의 삶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던 책이다
s*****9 2004.02.12.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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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을 수 없는 일이 실제로 있었으리라, 탁월한 상상력으로 빚어낸 리얼리티
"있을 수 없는 일이 실제로 있었으리라, 탁월한 상상력으로 빚어낸 리얼리티" 내용보기
심청이 인당수에 빠져 죽지 않고, 그녀의 깊은 효심 때문에 바다도 감복하여 용궁에서 살아났으리라는 옛사람들의 상상력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그 용궁은 바로 바다 건너 중국 땅, 그 용궁에서 심청은 왕비가 아닌 일종의 '양공주'로 다시 태어난다. 어찌 아니 그랬겠는가? 황석영이란 탁월한 리얼리스트는 열다섯 처녀의 목숨을 보이지 않는 용왕에게 바쳤다는 사실을 도저
"있을 수 없는 일이 실제로 있었으리라, 탁월한 상상력으로 빚어낸 리얼리티" 내용보기
심청이 인당수에 빠져 죽지 않고, 그녀의 깊은 효심 때문에 바다도 감복하여 용궁에서 살아났으리라는 옛사람들의 상상력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그 용궁은 바로 바다 건너 중국 땅, 그 용궁에서 심청은 왕비가 아닌 일종의 '양공주'로 다시 태어난다. 어찌 아니 그랬겠는가? 황석영이란 탁월한 리얼리스트는 열다섯 처녀의 목숨을 보이지 않는 용왕에게 바쳤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고, 그리하여 철저히 자료조사를 해보니 많은 조선 처녀들이 매춘녀로 팔려갔었다는 사실을 확인했으리라. 매춘녀로 팔려간 심청이 어떻게 살았을 것인가? 그것은 뻔한 일이기도 하고, 참으로 궁금한 일이기도 하다. 이 소설 속에 그 답이 있고, 그 답 이상의 답을 독자들이 소설 속에서 찾아낼 것을 요구하고 있다. 황석영의 '심청'은 단지 중국에만 머물지 않는다. 중국에서 대만으로, 싱가포르로, 다시 대만으로, 일본에서 머물다가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오니, 그녀가 돌아온 길은 모두 진흙탕이었다. 그 진흙탕이란 근대 동아시아의 역사다. 그 역사를 고스란히 밟고 심청은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녀의 삶을 잘 들여다보면 세상의 뭇 여성들의 삶에 다름아니다. 남성의 세계로부터 끊임없이 위협당해야만 하는 존재, 그럴수록 잡초처럼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하는 것이 곧 뭇 여성들의 삶이다. 그러나 심청의 삶은 뭇 여성들의 삶과는 확연히 다르기도 하다. 그녀의 삶은 수난 속에서도 언제나 능동적으로 자신의 세계를 구축해나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심청이란 여성은 곧 동양을 상징하는 듯하다. 능멸당하면서도 마침내는 고결한 연꽃이 될 존재, 그러기에 그녀는 늙어서 삶을 완성하는 순간, 곧 죽어가는 순간 한 송이 연꽃, 연화보살로 영원히 살게 된 것이다. 재미있으면서도 슬프고, 오랫동안 음미해야 할 소설, 특히 마지막 부분을 여러 번 반추해보아야 하는 소설, 아니 반추해볼 수밖에 없는 소설이다.
b******t 2003.12.19.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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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당당하다 하여도
"아무리 당당하다 하여도" 내용보기
아버지 눈 뜨게 해보겠다고 몸을 판 처녀가 있었다. 물 속에 제물로 바쳐진 그네는 용궁으로 가게 된다. 용궁에서 살던 그네는 결국 눈 뜬 아버지도 만나게 된다. 효녀 심청의 이야기는 동화 속에서만 보아온지라 실제로 '심청전'이 어떠한 내용을 가지고 있는지 정확히 알지는 못한다. 그저 동화와 꼭 같지는 않으리라는 짐작만 해볼 뿐이다. 이 심청전을 황석영님이 다시 썼다. 소설 '
"아무리 당당하다 하여도" 내용보기
아버지 눈 뜨게 해보겠다고 몸을 판 처녀가 있었다. 물 속에 제물로 바쳐진 그네는 용궁으로 가게 된다. 용궁에서 살던 그네는 결국 눈 뜬 아버지도 만나게 된다. 효녀 심청의 이야기는 동화 속에서만 보아온지라 실제로 '심청전'이 어떠한 내용을 가지고 있는지 정확히 알지는 못한다. 그저 동화와 꼭 같지는 않으리라는 짐작만 해볼 뿐이다. 이 심청전을 황석영님이 다시 썼다. 소설 '심청'으로. 작가의 이름만으로도 호기심을 자극하는 '심청'. 이 소설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근대화 되는 초기, 동북아시아를 무대로 활동한 심청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심청은 제물로 바쳐진 것이 아니라 뺑덕어멈의 생각 때문에 팔린 것이고, 그것은 물 속에 몸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중국으로 팔려나가는 것이었다. 그네는 처음에는 부잣집 노인 양반에게 들어갔다가 중국 이곳 저곳에서 몸을 팔다가, 네덜란드인과 함께 살기도 하고 나중에는 일본으로 가서 요정을 열기도 한다. 결국은 조선에 돌아와 눈을 감고. 심청이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낸 여성으로 그려지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읽는 내내 마음은 편치 않았다. 내 몸을 도구 삼아 남자들을 농락해서 성공하겠다는 그 생각을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성매매의 시작은 의도적인 것이 아니었으나, 나중에는 성매매를 이용하여 잘 먹고 잘 살게 되는 그 상황을 보고 '참 주체적이고 멋진 여성이로고'라는 생각을 하기에는 내 깜냥이 그 만치가 안된다. 찝지름한 기분은 어쩔 수가 없고. 동북아시아가 유럽 열강들에 의해 억지로 개화라는 것을 하게 되는 과정 속에서 한 여인네가 어떻게 살아냈느냐 하는 것이 몸을 파는 일과 떼어져서 생각할 수가 없었다는 것. 잘 모르겠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인지, 그냥 그럴 수도 있는 것인지. 심청의 말은 아직도 날 헷갈리게 한다.

[인상깊은구절]
청이는 세상에 벌어진 남자와 여자의 서로 다른 관계에 대해서 눈치를 채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청은 키우에게 속마음을 보이듯이 말하곤 했다. 나는 힘이 좋아. 힘을 가지고 싶어요. 힘은 여자 것이 아냐. 키우의 애매한 말에 대해서 청이는 분명하게 표현했다. 힘있는 것을 꾀어서 가지면 되잖아요. 키우는 잠시 어두운 얼굴이 되었다. 그럼 평생 남자를 사랑할 수는 없지. 청이 결연한 태도로 중얼거렸다. 나는 유혹할 거예요. 그러다가 내 맘대루 그만두면 지들이 어쩔 거야.
y********1 2004.06.2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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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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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초에 사두었던 책을 읽다가 그만둬서 다시 꺼내 읽었다.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매춘을 통한 심청의 삶과 서구열강속에 허우적되던 동아시아의 모습은 적나라하게 들어난다조선에서 중국상인들에게 팔려가 중국과 대만,싱가폴,오끼나와,일본을 거쳐 다시 조선으로 돌아온 심청 그 끝도 없을것 같은 여정은 조용한 암자에서 웃음을 띠며 (작가:실컷울고 난 후의 미소) 끝났다.하지만,
"심청" 내용보기
작년 초에 사두었던 책을 읽다가 그만둬서 다시 꺼내 읽었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매춘을 통한 심청의 삶과 서구열강속에 허우적되던 동아시아의 모습은 적나라하게 들어난다
조선에서 중국상인들에게 팔려가
중국과 대만,싱가폴,오끼나와,일본을 거쳐 다시 조선으로 돌아온 심청
그 끝도 없을것 같은 여정은 조용한 암자에서 웃음을 띠며 (작가:실컷울고 난 후의 미소) 끝났다.
하지만, 작가의 말처럼 그것은 끝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모양은 이렇소만 나는 부처님도 믿지 않소. 이 사람은 서양인이니 기리시탄이겠지요. 기리시탄의 선의는 저희끼리만 일본이나 중국이나 안남 인도 등지에서는 모두 등쳐먹는 수단일 뿐이외다"<하권 270페이지,센신의 말 중>
"내가 마지막 장면에 후일담처럼 '심청'의 임종을 그리면서 이 멀고 먼 길을 희미한 웃음으로 끝낸것은, 이 지역 사람들의 사람들의 삶이 헛수고가 아니었음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아니 헛일이었다면 또 어쩌랴,다시 시작하는 수밖에..."<작가의 말 중>
2005/01e

우리의 역사에서 참 슬픈 일들이 많았다.
거의 알려지지 않거나, 알려지더라도 잘못 알려진 일들이 많다.
그런데 그 사건들에 뛰어들어 하나하나 진실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 있다.
참 용기있고 소중한 사람들이다.
황석영도 그런 사람이다.
이 소설도 그런 황석영의 참면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었다.
지나간 과거에서 시대의 지혜를 배웠다.<2004t>
j***9 2009.05.3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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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심청> - 지금도 여전한 심청의 아픔
"황석영, <심청> - 지금도 여전한 심청의 아픔" 내용보기
황석영의 <바리데기>를 읽고 나서 이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바로 책읽기에 돌입했다. <바리데기> 후기에 보면 작가의 인터뷰 내용이 나오는데 작가 황석영은 21세기의 신자유주의와 19세기의 제국주의가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바리데기>와 <심청>이 연결된다고 했다. <심청>은 한국 고전소설의 심청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작품 초반 아버지 심봉사
"황석영, <심청> - 지금도 여전한 심청의 아픔" 내용보기

황석영의 <바리데기>를 읽고 나서 이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바로 책읽기에 돌입했다. <바리데기> 후기에 보면 작가의 인터뷰 내용이 나오는데 작가 황석영은 21세기의 신자유주의와 19세기의 제국주의가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바리데기>와 <심청>이 연결된다고 했다.

<심청>은 한국 고전소설의 심청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작품 초반 아버지 심봉사가 눈을 뜰 수 있도록 공양미 삼백석에 팔려 가는 심청의 모티브가 그대로 차용된다. 돈을 구하기 위해 몸을 팔아야 했던 시대상을 그대로 투영한 것이다. 그래서 심청은 19세기 노예상들에 의해 머나먼 중국으로 팔려 간다. 물론 한국에서의 심청은 인당수에 빠져 죽은 자이다. 심청의 정체성은 여기에서 완전히 파괴된다. 사형수(혹은 범죄자)의 처지에서 특수부대원으로 활용됐다는 '실미도 사건'의 일부 이야기처럼 말이다.

자신은 '이미 죽은자'라는, 돌아갈 곳이 없다는 정체성의 파괴는 삶을 자포자기하고 눈앞의 현실에 쉽게 따르도록 만든다. 그래서일까? 심청은 처음으로 팔려간 곳에서 아무런 저항도 없이 순순히 그 삶을 따른다. 그러나 한 번 덧씌워진 굴레는 쉽게 벗어지지 않았다. 인생이 새롭게 시작되는가 싶더니 강간을 당하고, 인신매매되어 몸을 파는 매춘부가 된다. 인생의 인연을 만나는가 싶더니 이별을 당하고, 집안이 풍비박산되어 다시 홀로서기를 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 된다. 정체성의 파괴는 심청이 떠돈 지역과 이름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심청이면서 렌화로, 로터스, 제임스댁, 렌카로 불려져야했던 그리고, 한국을 떠나 중국의 난징, 진장, 지룽, 싱가포르, 일본의 류큐(오키나와), 나가사키, 제물포 등등을 전전해야 했던 심청은 그야말로 무자비한 제국주의 시대의 희생양이다.

 

"나는 팔려와서 아직도 몸값에 매여 있는 거야. 청이는 다시 생각해보았다. 그러면 나는 지금 자유로워지고 싶은 걸까. 이 세상 천지 어느 곳에도 자유로운 사람은 없어. 돈이 많으면 어떨까. 그래도 자유롭지는 않을거야. 다들 불쌍하게 허덕거리다 나중에 늙어서 혼자 속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잠자리를 더럽히고 똥오줌 지리면서 죽어갈 거야. 나는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그리고 아무도 사랑한 적이 없는데.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는 아득한 세상의 끝에까지 와서 아무 데도 내 맘대로 돌아갈 수도 없잖아. 제임스 말대로 개화된 양인들은 이 넓은 세상을 모조리 저희에게 맞게 새로 만들 수 있을까." (하권, 34면)

 

그러나 심청은 절대로 약하지 않았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희망을 품었으며, 제임스의 정처가 되어 편안한 삶을 보장받을 수 있었는데도 이를 거부하고 자신만의 길을 찾아 나선다. 창녀촌의 사생아를 돕고,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돌보며 제국주의 시대의 아픔을 제국주의적인 방식으로 풀지 않고 제국주의의 아픔을 치유하는 방식으로 풀어나간 것이다.

<심청>을 통해 19세기 제국주의의 풍랑과 그 속에서 아픔을 겪어야했던 한 여인의 기구한 삶을 엿보았다. 이것이 당시의 아픈 현실을 이해하는 것으로 족해야 하는데, 가슴 언저리에 여전히 회한이 남는 건 작가의 의도처럼 당시의 시대상과 기구한 삶을 살아야했던 그네들의 모습이 여전히 지금도 21세기 신자유주의라는 이름 아래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누군가 이야기하기도 했지만, 왜 이러한 모순은 다시금 반복될 수밖에 없는 것일까? 작가의 <심청>과 <바리데기>를 통해 정말 진지하게 생각해보아야 한다. 이러한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지금 이시각에도 자행되고 있는 제국주의와 신자유주의의 모순을 이해하고 이를 거부하는 것이다. 그래야 제2의, 제3의 심청과 바리가 생겨나지 않을 것 아닌가.

 

by 꽃다지, 2007년 8월 24일

l*******g 2007.08.2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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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청, 그녀의 삶속에 녹아든 조선의 역사
"심청, 그녀의 삶속에 녹아든 조선의 역사" 내용보기
황석영 선생님, 하면 은근히 기대하게 되는 바가 있는데 나는 꼭 섬세함, 그리고 그 뒤의 치열함이 기대가 되고 은근히 나에게 뭔가 역사 의식을 심어줄 것을 나도 모르게 기대하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을 처음 읽는 동안은 좀 벙-했다 나는 막 상상하기를 그냥 현대에 살고 있는 누군가의 얘기를 그리며 그녀를 심청에 빗댄 것이 아닐까 그리고 또 암울한 우리의 현대사가 막 펼
"심청, 그녀의 삶속에 녹아든 조선의 역사" 내용보기
황석영 선생님, 하면 은근히 기대하게 되는 바가 있는데 나는 꼭 섬세함, 그리고 그 뒤의 치열함이 기대가 되고 은근히 나에게 뭔가 역사 의식을 심어줄 것을 나도 모르게 기대하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을 처음 읽는 동안은 좀 벙-했다 나는 막 상상하기를 그냥 현대에 살고 있는 누군가의 얘기를 그리며 그녀를 심청에 빗댄 것이 아닐까 그리고 또 암울한 우리의 현대사가 막 펼쳐지지 않을까 뭐 이런 생각을 마구 하면서 봤는데 진짜 심청이 얘기다 인당수에 제물로 바쳐진 후 다시 건져져 중국으로 팔려가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게 되는 얘기 헉 심청이 창녀야 남자 하나 잘꼬셔서 성공하려고 해 처음에 황석영 선생님이 무엇 때문에 이 소설을 쓴 건지 어안이벙벙하면서 읽었던 것 같다 전작들과 너무 달라서 시간이 지나고 근대 동북아시아의 거칠은 역사를 함께 겪으며 함께 무너지기도 하고 함께 성숙하기도 한 그녀를 보며 황석영 선생님의 그 방대함에 다시 또 감탄한다 역시 글은 아무나 쓰는 게 아니라면서 손님에서 굿의 형식으로 한민족의 역사와 한을 잘 풀어냈다면 이번엔 역사와 함께 성숙해가는 한 여성의 모습을 통해 좀더 방대한 역사를 거부감없이 잘도 써내려갔구나 그래, 부족한 자 감탄밖에 더 보내랴 그런데 정말 신기한 건 남자 소설가들이 어쩜 그렇게 여성을 더 섬세하게 그려낼까 그리고 그러내는 여성들은 어쩜 그렇게 하나같이 다 완벽하고 아름다울까- 태백산맥의 소화, 오래된 정원의 윤희, 현의노래의 아라 김진명 소설들에 꼭 등장하는 한명씩의 완벽한 여자들 그리고 심청의 청이까지 박경리 선생님도 토지를 쓰실 때 서희의 외모 묘사에 정말 크게 신경을 쓰셔서 상상만 해도 범접할 수 없는 완벽한 여인이긴 했지만 그래도 서희의 무너진 모습 약한 모습 다 보여줬는데 남자작가들이 그려낸 여성의 모습은 다들 너무 완벽해 보이니 남성들의 여성에 대한 환상은 죽을 때까지 깨지지 않는 게 아닐까, 뭐 이런 생각도 해본다

[인상깊은구절]
나는 팔려와서 아직도 몸값에 매여 있는 거야. 청이는 다시 생각해보았다. 그러면 나는 지금 자유로워지고 싶은 걸까. 이 세상 천지 어느 곳에도 자유로운 사람은 누구도 없어. 돈이 많으면 어떨까. 그래도 자유롭지 않을거야. 다들 불쌍하게 허덕거리다 나중엔 늙어서 혼자 속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잠자리를 더럽히고 똥오줌 지리면서 죽어갈거야. 나는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데 그리고 아무도 사랑한 적이 없는데.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는 아득한 세상의 끝에까지 와서 아무데도 내 맘대로 돌아갈 수도 없잖아 <하.34> "예전 어느 강변 마을에 아름다운 여인 하나가 나타났더란다. 나는 부모형제가 없는 사람으로 재물도 영화도 원치 않으나 내가 가진 경전을 외우는 이에게 시집을 가련다구 그랬다지. 여러 사내들이 다투어 그네와 정분을 나누었으나 마지막에 마씨 댁 총각이 경전을 외워 장가를 들게 되었구나. 혼인을 하자마자 몸이 아프다며 방에 들어가 쉬던 여인이 죽더니 삽시간에 육신이 재처럼 흩어져 금색 뼛가루가 되고 말았다더라. 며칠 후에 한 선승이 지나가 보고 그이는 관음의 ㅘ신이었다고 그러더란다. 정분의 허망함과 살림의 덧없음을 깨우치려고 잠시 보이셨다는구나." 청이 한참씩 쉬었다가 다시 말하려고 애쓰는게 안쓰러워서 기리가 그만 쉬시라고 하자 다시 또 이렇게 말했다. "참 갈 길은 멀기두 하다. 남들 해치지 말구 살거라." 그네는 품속에서 뭔가 꺼내어 기리에게 내밀었다. 그건 오래전에 그네가 고향 황주에 갓다가 절에서 찾아온 자신의 위패였다. 아직도 흐릿하게 심청지신위(沈淸之神位)라는 글씨가 보였다. 청은 간신히 속삭였다. "나 가거든 화장하여 바다에 뿌려다우. 그것도 함께 태워버리고..." 심청은 눈을 감고는 한 번 빙긋이 웃었다. 오물조물한 입이 조금 움직였을 뿐, 실컷 울고 난 사람의 웃음처럼 그건 아주 희미했다 -대미(大尾)- <하.306-307>
w*****u 2005.03.0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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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청,버진워즈,비곗덩어리...
"심청,버진워즈,비곗덩어리..." 내용보기
태어나자마자 어머니가 죽은 갓난 심청을 안고서 동냥젖을 먹이러 성치도 않은 몸을 이끌고 마을의 여인네들을 찾아다니는 심청의 눈먼 아버지 심학규의 가시고기 뺨치는 부성애와, 그런 아비의 눈을 띄워주겠다고 열다섯의 꽃다운 나이에 인당수에 빠져죽을 것을 자청하는 소녀 심청의 효성...대단히 한국적-여기서 말하는 ''한국적''이란 이조시대부터 끈질기게도 우리사상의 터줏대감
"심청,버진워즈,비곗덩어리..." 내용보기
태어나자마자 어머니가 죽은 갓난 심청을 안고서 동냥젖을 먹이러 성치도 않은 몸을 이끌고 마을의 여인네들을 찾아다니는 심청의 눈먼 아버지 심학규의 가시고기 뺨치는 부성애와, 그런 아비의 눈을 띄워주겠다고 열다섯의 꽃다운 나이에 인당수에 빠져죽을 것을 자청하는 소녀 심청의 효성...대단히 한국적-여기서 말하는 ''한국적''이란 이조시대부터 끈질기게도 우리사상의 터줏대감 노릇을 해온 ''유교정신''을 말한다.-인 정서를 자극하며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끔 강요아닌 강요를 하는 이 작품을 우리는 다시 볼 필요가 있다. 심학규의 선량하지만 멀어버린 눈으로가 아니라-아마 우리가 눈이 멀었다면 심학규처럼 선천적인 요인이 아니라, 유교사상의 세뇌라는 후천적인 요인때문이겠지-딸이 몸판 돈으로나마 개안수술이라도 해서 제대로 뜨여진 눈으로 말이다. 여기서, 장선우 감독의 영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에서 성냥이 라이터로 바뀌어 있는 것에 주목해보자. (물론, 귀이개나 이쑤시개등의 역할을 겸할 수 있다는 장점에서,라이터보다 성냥을 선호하는 사람도 아직 있다는 걸 인정하는 바이지만) 하긴, 누가 요즘 라이터를 놔두고 성냥을 쓰겠는가? 같은 맥락에서, 광신도들의 모임이 아니고서야 누가 요즘에 제사지내겠다고 사람의 생명을 거액을 주고 사겠는가? (심청이가 살던 시대에도 유모 귀덕어미는 이들을 보고 "그런 미친 놈들이 있소?" 라고 했다) 그렇다면, 21세기의 심청이는 적어도 제사용도로 자기 몸을 팔아서 눈먼 아버지의 개안수술비용을 댈 수는 없다. 할 수 없다면? 밥짓고 빨래하고 바느질하는 솜씨와 열다섯의 꽃다운 나이, 그리고 미모라는 ''인적 자산''을 최대한 활용하여 심청이 첫 번째로 할 수있는 일은 아마 남의 집 가정부로 들어가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그런 식의, ''바르고 정직한'' 벌이가 뻔하다는 사실을 어린 심청이가 실감하게 될 때쯤이면? 그녀는 아버지의 개안수술비용과 새장가비용을 마련하기위해 어떠한 ''최후의 수단''을 준비할까? 그 결과를 짐작하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서울의 모명문사대의 1999년도 논술고사에서는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라,아버지에 대한 효심으로 인당수에 몸을 내던진 심청이와, 보불전쟁때 적국인 프러시아의 장교에게 동침요구를 받고서 조국애 때문에 분노했다가도 동족애때문에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던, 불 드 쉬프라는 프랑스의 매춘여성에게서 공통점을 찾도록 요구한다. ''가난하지만 깨끗한 선비집안'' 에서 자라난, 순결한 열다섯살의 양가규수 심청이와 매춘부에게서 공통점을 찾으라니? 아마 일부는 이런 요구에 심한 반발심을 가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들 두 인물간에는 적어도 두 가지의 공통점이 있다. 첫 번째, 두 가지 욕망의 대립과 이율배반(아버지의 눈을 띄게하고 재혼도 시켜드릴 수 있는 돈을 마련하고싶다는 욕망과, 팔려가지않고 살고싶다는 욕망간의-심청, 짐승같은 적국의 장교에게는 죽어도 몸을 내주고싶지않은 욕망과,동족인 프랑스인들이 무사히 역을 통과했으면 좋겠다는 욕망-불 드 쉬프)으로 인한 갈등과 한 가지 이념실행자체에 있어서의 방법론적인 갈등(내 생명을 바쳐서라도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해드리는 것이 효냐,아버지의 곁에 함께 있어드리는 것이 효냐?-심청, 적국의 장교와는 죽어도 동침하지않는 것이 애국이냐,내 몸을 한 번 팔아서라도 동족들을 도와주는 것이 애국이냐?-불 드 쉬프)을 함께 겪는 상황에 직면했다는 것이다. 두 번째, 이 선택의 기로에 서서 두 여성은 자신을 희생하는 쪽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물론 심청이 내놓은 것은 ''생명''이었고 불 드 쉬프가 내놓은 것은 ''자존심''과 ''섹스''라는 분명한 차이가 있지만, 어쨌든 두 여성은 ''하지않는 쪽''이 아닌 ''하는쪽''을 선택했다. 이 두 여성은 엄밀히 말하면 자신이 굳이 희생해야할 의무가 있는 것이 아님에도, 가족애(효)내지는 동족애(이 경우, 그 결과가 얼마나 비참한 것임을 <비곗덩어리> 를 읽어본 사람이면 알 수 있다)에 때문에, 또는 그러한 효나 애국이라는 이데올로기에 자신을 내던져 희생해야한다는 교육(혹은 세뇌)으로 인하여 공공연한 희생을 자처한다. 또한 여성들이 전통적으로 앓고있는 강박증중의 하나, 가족애, 또는 보다 아름다운 어떤 이념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여야만 한다는 ''착한여자 컴플렉스''의 일종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두 작품에서 볼 수 있는 명백한 차이는, <''비곗덩어리>의 경우 희생이라는 것의 대가가 얼마나 부당한 것인가를 자연주의 소설답게 매우 처절한 모습으로 그려냈다. 문제는 <심청전>인데, 전통적 유교적 사상인 ''효''의 정신에 입각하여 자신을 희생한 심청이가 그러한 선행의 대가로 용왕비가 되며,아버지의 눈까지 뜨게 하는 것으로 결론을 맺고있어, 선행(유교적인 관점에서)과 희생에 관한 강렬한 세뇌교육효과를 발휘하며 유교사상의 교과서적 위치를 점해왔다는 사실이다. 오태석은 그의 희곡 <심청이는 왜 인당수에 두 번 몸을 던졌는가>에서 순수하고 착한 심청이를 현대로 끌어들여 오늘날 우리사회의 비인간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따라서 그의 연극 <심청이는 왜 ...>는 우리가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선, 악, 진리에 대한 우리의 관습적 믿음을 근본적으로 회의하며 낯설게 바라보게 해준다. 그는 고전에서의 심청이가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하여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심청의 효심에는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순수하고 가난한 처녀를 돈을 주고 사서 무자비하게 물 속으로 뛰어들게 만드는 장사꾼들의 비인간성에 주목하고 있다. 이 작품은 <심청전>을 지독하게 패러디하여 비인간화로 황폐화된 오늘의 세계를 보여 주고 있다. 이 작품의 결말은 모든 여자들이 뛰어내리기 위해 치마를 뒤집어쓸 때 정지하고 만다. 이러한 결말은 원래의 심청이와 또 다른 여자들의 대속에도 불구하고 이미 비인간화의 끝으로 치달은 오늘의 우리 사회가 쉽게 구원받을 수 없음을 보여 준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g******l 2006.05.21.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다시 보는 우리 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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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서두를 꺼내야 할까? 이 책을 막 읽고난 지금 주인장의 기분은 들떠있다. 뭐랄까? 대단한 걸 접하고 난 다음의 희열감이랄까? 맨 처음 이 책을 본건 신문에서였다. 우리 부대에서 보는 조선일보 - 아마 전군이 이 신문을 보지 않을까 한다 - 에서 매주 토요일이면 '조선BOOKS'라고 하는 조그만 정보지가 곁들여져 나오는데 거기에는 신간 도서에 대한 것과, 그런 책에 대한 다양한
"다시 보는 우리 고전~" 내용보기
어떻게 서두를 꺼내야 할까? 이 책을 막 읽고난 지금 주인장의 기분은 들떠있다. 뭐랄까? 대단한 걸 접하고 난 다음의 희열감이랄까? 맨 처음 이 책을 본건 신문에서였다. 우리 부대에서 보는 조선일보 - 아마 전군이 이 신문을 보지 않을까 한다 - 에서 매주 토요일이면 '조선BOOKS'라고 하는 조그만 정보지가 곁들여져 나오는데 거기에는 신간 도서에 대한 것과, 그런 책에 대한 다양한 내용들이 실려있다. 거기에서 황석영에 대한 소개와 함께 나온 책이 바로 이 심청이었다. 한 여인네의 운명을 통해 본 민족적 애환이라고 해야할까? 뭐 그런 내용이란다. 솔직히 주인장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주제요, 스타일의 책이었다. 황석영도 그 이름이 유명하고 그의 작품도 몇몇 읽어봤지만 - 최근에는 그가 쓴 삼국지를 4권까지 읽었다 - 그의 문학 세계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었기에 그냥 책 잘쓰는 유명한 사람 정도로만 알고 있는게 전부였었다. 그런데 왜 이 책을 보게 됐나? 지금은 전역하고 없지만 선임병 중 한명이 이 책을 보고 있는 걸 우연히 본 것이다. 어떤 내용이냐, 재미있냐 등등 물어봤을때 그 선임병이 한말은 "야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보게 됐다. 조금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남자들만 있는 군대라는 집단에서 그런 류의 정보는 상당히 인기가 있다. 하지만 다 읽고난 지금은 상당히 기분이 좋다 - 이상한 생각은 하지 말기를, 그런 쪽으로 기분이 좋다는게 아니니까 - 동기야 어쨌든 - 황석영님한테는 죄송하지만 - 읽고나니 이 책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책이 대단하다기보다는 쓴 사람이 대단하다는 말이 더 정확하겠지만 말이다. 심청 하권을 다 보면 이 책에 대해 어떤 사람이 쓴 비평이 실려있고, 작가 자신이 쓴 후기도 담겨있다. 모더니티니, 자본주의니 뭐니 별의별 말이 다 나오지만 주인장은 그런 어려운 말은 잘 모르겠고, 그저 책을 읽은 그대로 느낀 것만을 여기에 한번 적어보고 주인장 나름대로의 생각도 같이 곁들일까 한다. 내용은 15세의 심청이가 인당수에 빠지는 조건으로 공양미 3백석을 받아가는 뺑덕어미와 심봉사, 그리고 그렇게 시작된 심청의 우여곡절, 80세가 다 되어 겨우 조선으로 돌아와 삶을 끝마칠때까지 한 여인네의 삶을 그려내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주인장이 가장 신기해했던 것은 황석영이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을 구체적으로 - 그것도 상당히 자세히 - 설정해 놓았다는 사실이다. 구한말, 더 자세히 말하면 서양 열강들이 동점해 중국을 난도질하고, 러-일 전쟁, 청-일 전쟁 후 일본이 조선을 강점할 때까지 반세기, 그야말로 역동의 반세기 이상을 청이는 겪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심청이에 관련된 소설이 여럿 있었다고 하는데 주인장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더욱 흥미로웠던 건지도 모르겠다. 심청은 인당수에 던져졌다가 다시 건져졌고 렌화 - 연화의 중국식 발음 - 라는 이름으로 중국 부잣집 할아버지의 시첩으로 팔린다. 당시 중국 상인들이 조선의 가난한 집 딸들을 이런 식으로 사다가 뱃사람들의 제물로 쓰고, 또 다시 부잣집 시첩으로 팔아버리는 일이 종종 있었던 모양이다. 여기서부터 심청은 더 이상 조선땅에서 태어나자란 심청이 아니다. 그녀는 '렌화'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이것이 그녀의 첫번째 변신이다. 그녀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녀는 다른 사람이 된 것이다. 그녀는 우선 난징으로 갔다가 다시 진장으로, 다시 타이완의 지룽으로 흘러가고 그 곳에서 만난 외국인의 첩으로서 싱가풀로 가면서 다시 로터스 - 연화의 영문식 표기 - 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여기서 그녀는 '로터스'라는 사람으로 다시 한번 태어난다. 또한 그 곳에서 다시 돌아와 류쿠를 거쳐 나가사키로 가기까지 심청은 렌카 - 연화의 일본식 발음 - 라는 이름으로 살아간다. 그렇게 일본으로 가면서 '렌카'로 다시 태어난 심청은 일생동안 4개의 이름을 갖게 된 것이다. 분명 그녀는 한명의 자아체다. 그리고 렌화-로터스-렌카 역시 연화, 연꽃이라는 동일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한개의 자아에 3~4개의 명칭, 이것만으로도 그녀의 삶의 애환을 대표할 수 있지 않을까? 또한 그렇게 여러개의 명칭을 얻기까지 그녀 자의적인 의지라기보다, 외부에 의한 타의가 대부분이었다는 점이 더욱 보는 이로 하여금 절실한 심정을 느끼게 한다. 그렇게 다양한 삶을 살던 그녀는 나중에 고향으로 금의환향하면서 비로소 심청으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기까지 무려 65년이라는 어마어마한 시간이 흘렀고 이미 고향땅은 자신이 예전에 보고 듣고 자라던 그런 곳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세계의 흐름에 부응하고 있었다. 그리고 편안하게 삶을 마감할 수 있었다. 그동안의 고생에 보답하려는 것처럼 말이다. 또한 자세한 시대적-공간적 배경의 제시는 이 소설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더 이상 판소리, 전래동화의 한 종류로만 느끼게 하지 않는다. 지금 생각해보면 작가의 의도였겠지만 구한말 격동의 시대만큼 여인의 애환을 그려내기 쉬운 배경도 없었을 것이다. 그 수많은 우여곡절은 한 여인의 삶을 통해 당시 조선이 처했던 상황, 아시아가 처했던 상황을 잘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그 시대의 중심에 심청이 서 있는 것처럼 느끼게끔 해준다. 그로 인해 독자는 현실성있게 그녀를 이해하는 것이리라. 막연히 조선시대에 살던 한 여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구한말 격변하는 시대에 살던 한 억센 여인의 이야기로서 말이다. 보면 알겠지만 '매춘'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청이의 삶은 흘러간다. 어린 나이에 늙은 할아버지의 회춘용 시첩이 되고 그 할아버지가 죽자 그 셋째 아들에게 몸을 허락하는 대신 그를 따라간다. 그리고 그녀가 배운건 일급 창기로서의 자세였다. 아울러 심청은 남자라는 존재에 대해 그녀의 생각을 정립해 나간다. 그녀는 세상을 힘이 지배하는, 격동하는 존재로 인식했으며 그 세상을 지배하는 건 남자, 그리고 그 남자를 지배하는 것은 바로 여자라는 간단한 원리를 깨닫는다. 이제 남자는 그녀가 살아가는데 있어서 이용해야 할 존재다. 능동적인 삶을 살아가는 모습, 심청이 살아가면서 성숙해지면서 점점 드러나는 그녀의 성격이 바로 이것이다. 적극적이고도 능동적인 그녀의 삶은 보는 이로 하여금 대단하다고 느끼게끔 한다. 하물며 남자가 봐도 이럴진대 같은 여자가 보면 어찌할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책 중간에 보면 이런 대사가 나온다. "남자는 돈 버는 것에 매달려 허덕인다. 그 짓밖에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뭐 대강 이런 대사인데 심청이 세상에 대해 내뱉은 강렬한 비난같이 들린다. 마치 권상우가 '말죽거리 잔혹사'라는 영화에서 "대한민국 학교! 다 X까라 그래!"라고 외치는 것처럼 말이다. 주인장은 예전에 '노는 계집 창'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처음에는 역시 신은경이 나오는 야한 영화였기에 본 거였지만, 볼수록 신은경이라는 여자가 점차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무슨 메세지를 남기려는 듯 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이전에는 미군 기지 부근에서 양공주를 했던 여자가 썼던 자전적 소설도 본 적이 있었다. 한결같이 밑바닥에서부터 살아온 여인의 삶을 통해서 사회에 대해 뭔가 표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그렇게밖에 자신이 살 수 없게 된 사회와 그 사회를 그렇게 만들어낸 남성들에 대한 강한 저항감, 여자의 위대함에 대한 부분이 아닐까 한다. 세상 모든 것의 어머니, 대지의 여신이라고 불릴만큼 무한한 포용력을 가진 그런 여자의 위대함 말이다. 심청은 여기서 더 나아가, 포용력에서 끝난게 아니라 남자를 주도할 수 있는 적극성, 강한 개척 정신까지 내포하고 있다. 그 표현이 바로 심청이 싱가폴과 류쿠에서 실시한 고아원 설립이다. 지룽에서 기녀 생활을 하면서 창녀가 낳은 자식이 어떻게 길러지는지 깨달은 심청은 자신이 아끼던 동생이 애를 낳다가 죽자, 그 아이를 자신의 딸처럼 기른다. 그리고 양인의 첩으로 싱가폴에 가서 살면서 그녀는 고아원을 짓는다. 주인장은 왜 하필 고아원 사업일까하고 생각해봤다. 그것은 바로 아이와 모성애로 대변되는 여인의 모습을 표현하기 위함일 것이다. 심청은 20대가 되면서 성숙한 여인의 내면을 다질 수 있겠 됐고, 그러면서 여인의 본성을 깨닫게 된 것 같다. 자신의 버려진 처지, 먼 이국땅에서 몸과 마음을 원하지 않는 타인에게 빼앗긴 그녀는 자신같은 처지에 있는 아이들의 삶을 다독거려 준다. 여기서 여자의 포용력이 극에 달한다. 자신의 상처를 뛰어넘어 남의 상처까지 다독거리며 끌어안을 수 있는 그런 포용력 말이다. 여기까지 읽으면서 책을 읽는 독자는 황석영이 심청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게 무엇인지 느낀다. 거기다가 시대적 배경에 맞는 심청의 삶은 당시 한국인과 아시아인의 삶마저 대변해주는 것 같았다. 서양인의 잣대, 서구주의가 팽만한 세상에 마치 경종을 울리듯이 말이다. 심청은 상처입은 소녀에서 성장해 적극적이고 개방적인 아가씨, 세상의 모진 풍파를 겪으며 그것들을 끌어안을 수 있는 여인으로, 고향을 그리워하며 세상 속에서 잊혀져가는 노부인으로 그 모습을 변모시킨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삶의 굴곡은 근대화 시기, 아시아와 그 아시아를 노리는 서양인의 모습과도 잘 들어맞는다. 주인장이 이런 문학 작품을 즐기지 않아서 있는 감정, 느낀 그대로를 두서없이 썼는데 부족한게 분명 있을 것이다. 결론을 말하자면 주인장에게 참 많은 것을 느끼게 한 작품이라는 것이다. 행여나 주인장이 쓴 글이 이 작품의 가치를 조금이라도 깍아내리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s*****m 2005.02.0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