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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피아노과외교사이다. 이책에 대해 알고 주문한 건 아니고 번역자인 이현주님의 글들을 민들레라는 잡지에서 가끔 본 기억이 나서 그냥 좋을 것 같아서 책을 주문했는데, 역시 이현주님이 번역한 책다웠다. 내아이는 탈학교이기 때문인지 이책을 읽으며 교사들이 이 책을 읽고 몇만분의 일이라도 이책을 가슴으로 받아들여 아이들을 대한다면 현재의 공교육이 바뀔거라고 믿는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 줬더니 자기 학교 선생님께 꼭 보여 드려서 자기 선생님이 변해야 한다며 두아이가 책내용을 베껴 갔다. 그걸 학교에서 보여 줬다가 선생님께 맞는다고 말렸는데도 자기선생님께 꼭 보여야 한다고 베껴 갔다. 아이들을 늘 대하는 직업을 가진 나는 이책을 늘 천천히 읽으며 아이들을 틀에 가두지 않고 아이들이 날아 다닐 수 있는 하늘 같이 되도록 노력하는 마음이라도 가지려고 노력하고 싶다.책의 모든 부분들이 버릴 것 없이 소중했다.아이들과 지내는 모든 분들은 꼭 이책을 읽어보라고 하고 싶다. [인상깊은구절] 모르는 것이 진실의 시작이다. 아는 척 하는 것은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먼저 그대가 무식하다는 사실을 깨달아라. 그제야 그대는 알기 시작할 것이다. 학생이 곧 자신의 치료자이다. 자기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 때, 그 때에 그는 배울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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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장 - “좋은 교사는 나쁜 학생의 교사 아닌가? 나쁜 학생은 좋은 교사에게 도전 아닌가? 이 말이 이치에 어긋난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그대가 아무리 많은 학위를 땄더라도 그대는 길을 잃고 말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위대한 신비이다.”
도(道)를 말로 표현할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도가 아니라는 도가(道家)의 가르침에 따라,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 81장을 '배움'을 주제로 다시 풀어쓴 이 책을 읽고 난 감상을 글로 표현하기 어렵다면 그것은 패러독스인가? 아니면 그래도 내가 도(道)의 진정한 의미에 한 걸음 다가선 것인가 '가르치는 이와 배우는 이를 위한 도덕경'인 이 책은 윤리학도로서 대학원을 통해 학업을 계속하고 있는 학생으로서의 나와, 일선 중학교에서 공교육의 일부를 담당하고 있는 교사로서의 나, 둘 다에게 필요했다. 배움에도 도가 있다면 그 뜻에 따라 바른 자세로 배우고, 또 가르침을 받는 학생들에게도 그 길을 제시하고 싶었다. 물론 숙고하며 정독했지만, 짧은 분량에 함축된 깊은 의미를 온전히 이해했다고 단언하기 어렵다. 다만 여러 과정과 절차에 따라 인위적으로, 사회에서 요구하는 지적 · 정서적 인간 양성 및 바람직한 변화만을 '교육'이라고 한정해서 이해하고 있는 나의 속견을 바꾸는데 일조했다. 전형적인 동양의 전통 사상을 서양인이 풀어쓴 점과, 개신교 성직자인 목사가 이 책을 번역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진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통하기 마련인 듯하다.
- 54장 - "道와 하나 된 교사는 배움터에서 쫓겨나지 않을 것이다. 배움의 道를 따르는 교사는 작별인사도 없이 떠나는 일이 없을 것이다. 그의 이름은 세월이 흘러도 존경받을 것이다. 그대의 배움 속에 道가 있게 하여라. 진짜 사람이 될 것이다. 교실에 道가 있게 하여라. 학생들이 활짝 피어날 것이다. 학교에 道가 있게 하여라. 모범학교가 될 것이다. 나라에 道가 있게 하여라. 백성이 서로 어울리며 살 것이다. 이것이 과연 그런 줄 어찌 알 것인가? 그대 자신을 들여다보아라. 모든 것이 '하나'를 가르치고, 그러고 지나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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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의 도덕경 81장을 미국인인 저자가 ‘배움’을 주제로 풀어 썼다. 짧은 경구들은 교실에서 교사가 어떤 자세로 학생을 이끌어야 하는가에 대해 깨우침을 주는 한편 인간이 평생 여러 가지 다른 맥락에서 수행하는 ‘가르치고 배우는 일’의 근본을 성찰하게 한다. 슬기로운 교사는 학생들 위에 있다. 그런데 그들이 무겁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학생들을 앞에서 이끈다. 그런데 그들이 조종당한다는 느낌을 받지 않는다. 학생들은 그를 존경한다. 그가 배움의 場에서 학생들의 성적을 놓고 겨루지 않기 때문에 그들도 그와 겨루지 않는다. 그는 교실 뒤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다. 가장 훌륭한 교사는 모든 교사가 잘 가르치기를 바란다. 가장 훌륭한 지도자는 자기를 따르는 자들과 하나될 수 있다. 가장 훌륭한 안내자는 여행길에 오른 사람들을 섬긴다. 가장 훌륭한 학생은 배움터에서 다른 학생과 함께 공부한다. 그들 모두 협동과 협력의 가치를 잘 알고 있다. 겨루기를 즐기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 놀이하듯 한다는 말이다. 이런 식으로 그들은 어린아이 같고 道와 조화를 이룬다. 실패는 기회다. 남을 탓하면 끝없이 탓하게 된다. 슬기로운 교사는 자기 몫의 일을 충실히 감당하고 자신의 과오를 스스로 고쳐 나간다. 자기가 꼭 해야 할 일을 하되 남에게 자기처럼 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중심에 머물러 있기 우월과 오만을 없애버려라. 학생들이 행복해 할 것이다. 판정과 규칙을 치워버려라. 학생들이 바르게 처신할 것이다. 빡빡한 과제와 등급을 내다버려라. 아무도 잔꾀나 속임수를 쓰지 않을 것이다. 부드럽게 훌륭한 교사는 학습계획을 부드럽게 짠다. 교재에 묶여 진도 나가는 데만 급급하지 않는다. 훌륭한 교사는 선입견에 얽매이지 않고 눈 앞에 일어나는 것에 대하여 언제나 마음을 열어놓는다. 탁월한 교사는 모든 학생이 가까이하기 쉬운 교사요, 그 누구도 거절하지 않는 교사다. 교사의 교사들 무서움이 배움터를 지배해서는 안된다. 무서워하면서 배우는 일은 지속되지 않는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서 배운다. 어른들은 배우기 위해서 논다. 심각한 배움 속에도 놀이 정신이 있어야 한다. 교육의 황폐화가 극에 달한 이 시점에서 교사, 학부모, 학생, 정부당국등이 한번쯤은 읽고 마음속 깊이 되세겨야할 경구들로 가득하고 현실이 그렇지 못한 것을 옛 선인들의 촌철살인적인 한마디 한마디가 맘속깊에 울림으로 이 현실을 조금은 잊을 수 있고 이 국가, 사회의 구성원인 나 스스로 이 교육현실을 되세기고 반성하게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