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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의 사상과 성격_조선 총독부 편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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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이야기하는 조선의 식민지배의 정당성에 대한 발언들을 들어보면, 하나같이 일본에 의한 조선의 식민지배는 당연한 결과였으며 조선은 일본에 감사해야 한다. 는 식의 논리가 내재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내 독서편력이란 것이나 취향이라는 것이 종횡무진 갈피없는 덕에 이런 책도 만나게 되는구나.   제목이 화려하다. 일제가 식민통치를 위해 분석한 조선인의 사상
"조선인의 사상과 성격_조선 총독부 편저" 내용보기

일본이 이야기하는 조선의 식민지배의 정당성에 대한 발언들을 들어보면, 하나같이 일본에 의한 조선의 식민지배는 당연한 결과였으며 조선은 일본에 감사해야 한다. 는 식의 논리가 내재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내 독서편력이란 것이나 취향이라는 것이 종횡무진 갈피없는 덕에 이런 책도 만나게 되는구나.

 

제목이 화려하다.

일제가 식민통치를 위해 분석한 조선인의 사상과 성격/대외비/1927 조선총독부.

 

도대체, 일본은 조선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고 어떤 사고과정을 통해 식민지배의 정당성을 운운할 수 있는, 우리가 볼 때엔 한도 끝도 없이 뻔뻔한, 망언들을 태연히 늘어놓을 수 있게 되었을까? 하는 궁금증을 가져본 적도 많다.

그들의 태도에서는 일말의 거짓이나, 의심을 찾아볼 수 없이 당당하고도 떳떳해 보였다.

정말 믿을 수 없지만 그렇게 느껴졌다.

이 책이 알려준 것은 그런 것이었다.

 

그들이 조선인의 사상과 성격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갖고 있었는지 그래서 어떻게 해야만 한다고 믿었는지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대외비라함은 조선인들이 이 책을 읽지 못하게 하라는 의미일터, 자신들이 조선인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밝히고 싶지 않았을 그들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정말 당당히, 떳떳이 자신은 조금도 의심할 바 없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는 완벽한 믿음을 두르고 조선인에 대한 폄하와 왜곡을 늘어놓고 있는데 누가 당사자들에게 읽히고 싶겠는가.

푸념이요 탄식만 나올테니 책 이야기를 하도록 한다.

 

조선인이 처음부터 현재(식민지배당시)와 같은 성정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라고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러함에도 거슬리는 것은 지리적, 자연적 조건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현재와 같은 근성을 갖게 될 수 밖에 없었다는 동정론이 가장 먼저 등장한다.

그들(일본)의 식민 지배가 필요한 가장 큰 이유는 저열하고, 미개한 조선인에 대한 구제다.

사실 이 책의 머리말 다음에 오는 장의 제목은 "조선인의 자랑"이다.

하지만 이 자랑이라고 적어둔 것이 우스운 것은 전부 조선인의 발언을 모아둔 것이라는 거다.

한마디로 "이것이 너희의 자랑거리더냐? 그렇다면 그것이 정녕 자랑거리인지 아닌지 밝혀주도록 하지."라는 투다.

 

책이 절반을 넘어갈 때까지 쭈욱~ 한다는 소리가 대략 이런 거다.

조선은 지리적으로 대국에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사대주의를 띌 수 밖에 없었다.

조선에는 조선 특유의 사상이나 문화가 존재하지 않으며 지나(중국)과 내지(일본)의 영향하에서 형성된 것 뿐이다.

조선인은 그러한 지리적, 문화적 배경상 열등하며 수 많은 성격적 결함을 지니고 있기에 우리의 지도가 필요하다.

별로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그렇고 그런 이야기들 뿐이었다.

 

정말 웃을 수 밖에 없었던 점은 그들은 진정으로 마음 깊은 곳에서 그렇게 믿고 있으며,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질과 지형까지 들먹여가며 우리 민족의 중심사상에 종속과 후진성이 내재해있다고 깔아뭉개는 꼴을 보고 있자니 울화가 솟구쳤다.

 

각오하고 읽기 시작했건만 막상 보니 또 울컥하게 된 거다.

이따금 칭찬이라고 하는 말이 한글을 칭찬하면서 언문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이 "언문"이라는 말 자체가 한글의 폄하형인 것을.

그럼에도 울컥하는데 온 정신을 쏟을 것도 아니었다.

여기서 흥분해버리면 그들이 이야기하는 대로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잘 듣고 그렇지 않음을 증명해가는 것만이 내 할 수 있는 일인 것을.

"반면교사"라 함을 여기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거기에 폄하 일색이지만 그들이 폄하의 근거로 들고 있는 모든 것이 왜곡되기는 했지만 엄연히 실제하는 특징이기도 했다.

조선 총독부라는 기관에서 편저한 것이다보니 한 사람의 저작만 담긴 것은 아니었다.

총독부 내에서도 조선에 대한 평가가 갈렸던 모양이다.

200쪽을 넘어가면서부터는 앞선 내용의 서술자보다는 좀 더 우호적이고 그나마 객관성을 회복한 모습을 보이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자신들의 우월성과 조선인에 대한 식민 지배의 절대적 필요성에 대해서는 동의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런 식이다.

미개하고 가엾은 이 작은 민족을 우리가 도와주어야지, 우리가 이끌어주어야지, 안그러면 누가 할 수 있겠어?

그들을 중국에서 독립시키는 것만이 수천년간 이어진 사대주의에서의 탈피의 유일한 길이야. 라고 이야기하는.

웃음만 나왔다.

 

그리고 이따금 가슴에 박힌 가시를 후비듯 뜨끔한 이야기도 던진다.

대표적인 예로 당파심에 대한 뼈아픈 지적이다.

 

174쪽

"그러나 그 어느 나라도 조선인과 같이 구식의 당파심에 사로잡혀 주의 주장에 입각하지는 않는다. 조선인같이 가계, 계급, 신앙, 이익을 토대로 쉽게 공고한 당파를 만드는 자를 나는 여태껏 듣도 보도 못했다."

일본인도 감탄하는 당파심에 대한 이야기다.

 

사실 어느 나라에나 있을 수 있는 것이 당파다. 문제는 위기를 바라보고 있으면서도, 그 위기의 심각성을 인식하면서도 멈추지 못한다는 것이다.

 

내 가슴이 후벼패이는 것 같았다.

아니라고, 그렇지 않다고, 부정의 부정을 하고 싶었으나 내 보는 것이 그러한 모습인 것을 어찌 하겠나. 이렇게 무력한 나를.

 

이 책의 오류를 지적하자면 사실 끝도 없다.

몇가지 예를 들자면.

 

우리에게 문화적으로 열등하다 독특한 것이 없다고 이야기하지만.

추사 김정희의 추사체를 앞다투어 배우고 연구하고 있는 곳도,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훔쳐가서는) 보유하고 있는 곳도, 퇴계 이황의 사상과 생애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는 곳도, 조선의 문물을 받아들이기 위해 가장 힘썼던 것도 일본이다.

자신들이 중국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문화의 보급과 발전에 오래 전부터 기여해 왔다고 우기지만 실상은 반대로 우리에게서 일본으로 간 정황이 역사에 분명히 나타난다.

심지어 고구려가 일본의 지배를 받았다고 이야기하는데(여기서 임나일본부설이 나오네), 호우명그릇만 봐도 알수 있듯이 정 반대다.

스스로 무덤파지 마라.

 

자주적이지 못하고 사대적이며 쉽게 타국에 동화된다고 하는데 그랬다면 수천년 동안 일어나고 스러진 중국의 어느 나라에든 벌써 먹혔겠지 여전히 독립된 국가로 존속할 수 있었겠는가?

너희 총독부의 의견처럼 사대적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또 너희가 인정하는 것처럼 그것은 전략이기도 한 것이다.

 

또한 중국에 늘 복속된 개념으로 존속해온 것이 아니라 대등하게 맞서서 경쟁을 벌였던 역사가 더 길고 진정한 의미로 속국이 되었던 기간은 그리 길지 않다. 더하기 빼기도 못하나?

조선인이 쉽사리 별 것도 아닌 이유로 자살한다고 하는데, 우리가 보기엔 너희가 더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목숨을 내던지는 것으로 보이거든.

남의 눈에 티끌은 보이고 자기 눈에 들보는 보지 못한다는 말은 이런 곳에 쓰는 것이 아닐까 싶다.

 

암살하기 잘하는 민족이라고 그랬나?

너희 역사를 둘러보면 길었던 투쟁의 기간동안 얼마나 많은 적 장수, 지도자들이 너희가 자랑하는 '닌자'들에게 목숨을 잃었겠는가?

 

위생이 불량하다 했는가?

우리나라는 환경이 좋아서 너희처럼 늘 온천에 들어가야하고 부패와 오염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왜 이해하지 못할까?

환경이 다르면 생활 방식도 자연히 달라지게 된다는 그 당연한 사실을 왜 바로 보지 못하는가?

 

지질이 오래되어 구식이라고 했는가?

화산하나 없다고 했는가?

그래서 너희 섬나라처럼 매번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화산과 어느날 일어날지 모르는 지진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에 떨어야만 하겠는가?

우리 나라는 안정적인 지질과 지형 덕에 느긋하고 유한 성정을 지니게 되었지만 너희는 그 불안에 떨던 성정으로 인해 폭급하고 잔인하지 않던가?

 

에라, 더 이야기해 무엇할까. 조목조목 반박하는 것도 지치는고.

 

하지만 모두 부정하고 부인하기엔 아까도 적었지만 가슴 뜨끔한 이야기도 많이 담겨있다.

내가 바라보는 나는 왜곡되기 쉽다, 타인이 바라보는 나 또한 왜곡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서로의 평가와 판단을 모두 알고 객관적인 비교라는 저울에 달아보는 것은 필요하다.

내가 발견하지 못한 단점을 그들이 이야기해주니 이 어찌 좋은 스승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스스로를 비관하고 자괴감에 빠질 필요는 없다.

그들은 우리를 폄하하기 위한 왜곡을 가미한 의견을 제시하는 것 뿐이다.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해나가면 되는 것 뿐이다.

 

누가 이야기 했던가? 화내면 지는 것이라고.

그의 말이 틀렸다면 무시하면 되는 것이고, 그의 말이 옳다면 조용히 고쳐가면 되는 것 뿐이다.

이 책이 왜곡과 비난 일색이었다면 아마 결국 참지 못하고 던져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부분에서 장점으로 인정하고 있는 것도 있다.(자기들이랑 비슷한 점에 대한 인정이지만 말이다.)

 

조선인의 용모와 태도가 일본인과 비교하여 관옹옹양(관용하며 서두르지 않고 느긋하다는 뜻)함은 칭찬해야 할 특성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우리의 민족성.

냄비근성이라든가 빨리빨리의 습관이 사실은 우리나라 고유의 성정이 아니라고 이 책에서는 여러번 이야기하고 있다.

오히려 그와 정반대의 성정인 느긋하고 관용적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러한 성정을 잃어버리고 만 것은 마지막에 즈음하여 조선총독부에서 예견한 어떤 예언이 맞아떨어진 것 같아 씁쓸했다.

 

그 예언이라 함은 다음과 같다.

이 책에서는 조선인의 아름다운 기질로 관옹옹양, 순종, 낙천 세가지를 이야기한다.

반대로 단점으로 형식주의, 비심미적, 문약, 당파심, 공사혼동을 이야기한다.

 

서술자가 걱정하는 것은 다섯가지의 단점을 세척하기 위해 일본인이 조선인에게 베푸는 감화가 세가지 미질을 불식시키킬 것이라는 것이다.

이미 일본인에게는 결여되어있는 세가지 아름다운 기질.

증거 현상으로 양반의 보행이 안상함을 잃어버리고, 장죽의 길이가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들어보인다.

 

문명은 인간의 생활욕을 앙양하므로 본분에 안주하는 데서 비롯된 낙천주의의 유지는 어렵게 되고, 유교의 권위가 쇠퇴하면서 사회질서는 흐트러질 것이며, 개인의 권리 사상이 성해져 순종의 미덕이 일일 박약해진다. 고 이야기한다.

 

어떠한가? 우리의 판단으로 일본인도 인정한 세가지 아름다운 기질을 우리는 얼마나 잃어버렸나?

일본은 세계에서 으뜸으로 조종하기 어려운 국민으로 조선인과 인도인을 이야기한다.

그만큼 정체성이 강함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사대적이고 독특한 문화를 소유하지 못했으며, 쉽게 동화된다는 이야기도 사실은 우리의 정체성에 혼란을 가하기 위함이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이 책이 대외비로 분류된 이유는 아마 이 책에 적힌 왜곡된 우리의 민족성을 보면 우리가 오히려 반발해서 본래의 민족성을 회복하게 될까 두려운 마음에서가 아닐까?

 

비평도 이만큼 혹독한 비평이 또 없을만큼 괴로운 주제를 다루고 있는 책이다.

하지만, 한 번쯤 읽어보기를 추천하는 것은 무엇을 바꾸려고 해도 알아야만 바꿀 수 있는 법이다.

반동의 형성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반동의 효과를 이해하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그것은 절망을 안길 수도 있지만 큰 잠재력을 지니는 자극이 되어 줄 수도 있다.

깨어나지 못하는 이에게 충격요법을 시도하듯, 깊이 침잠한 우리의 민족성을 깨울 수 있다면 이러한 책도 도움이 되리라.

 

본래의 느긋하고 관용적인 우리의 성정의 아름다움을 회복하고 단점을 극복하여 한 번더 그들을 놀래킬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 같다.

나와 깊이 관련된 것을 비난하고 왜곡하는 글을 읽는 일은 괴롭다.

하지만, 분명 그 괴로움은 의미가 있는 견딜 필요가 있는 좋은 괴로움이다.

소크라테스가 게으르고 나태해진 그리스를 깨우는 등애를 칭했듯, 우리를 깨울 수만 있다면 더한 것도 읽겠다.



c*********p 2012.04.20. 신고 공감 3 댓글 4
리뷰 총점 종이책
남이 본 우리, 침략자가 본 우리...
"남이 본 우리, 침략자가 본 우리..." 내용보기
나역시 일본에서 그리 길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말로 의사소통하고 그들과 같이 생활하며 지내다 모국에 돌아와보니,  되려 이곳이 좀 더 낯설고  자신도 한국인이면서 한국사람들은 왜이런데냐? 하며  의아해 하는 경험을 하고 있는 와중에, 우연히 서점에서 책을 구해 보게 되었다.      제목에 쓴것과 같이 이 책을 침략자들이 본 우리로 볼것인가, 아니면 단순하게 남이 본
"남이 본 우리, 침략자가 본 우리..." 내용보기

  나역시 일본에서 그리 길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말로 의사소통하고 그들과 같이 생활하며 지내다 모국에 돌아와보니,

 되려 이곳이 좀 더 낯설고  자신도 한국인이면서 한국사람들은 왜이런데냐? 하며

 의아해 하는 경험을 하고 있는 와중에, 우연히 서점에서 책을 구해 보게 되었다.

 

 

 제목에 쓴것과 같이 이 책을 침략자들이 본 우리로 볼것인가, 아니면 단순하게 남이 본 우리로 할것인가는 독자가 판단할 몫이라고 작가도 서술하고 있다.

 

 몇가지 동의가 되는 부분은 차분히 생각하기 보다는 감정적으로 부화뇌동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 일본인에 비해서 심미적인 감각이 부족하다는것은 나의 경험상으로는  정확한것 같다. 

 

 

 자신은 자신을 알수 없다. 그렇기에 이책은 분석하면서 볼 가치가 있을 것이다.

침략을 위한 분석으로 생각하면 비하와 조롱만이 가득차있을 수도 있겠지만, 침략을 준비하는 기간에 나온 정확한 상황판단일 수도 있을 것이다.

 

 

 

 가장 우리가 약했을때의 모습을 보여주는 내용으로 생각하며, 단숨에 읽었다.

a****n 2010.08.3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