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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에 대한 그림을 그리기 어려운 시기에 혁명의 아픔을 읽는 것은 허허한 일이다. 그런데 많은 이들의 기억에도 없는 데카브리스트를 찾아서 떠난 한 노마드의 여행기가 눈에 밟힌다.
‘지구 시대의 슬픈 여행자’라는 수식어가 붙는 하영식의 여행기 ‘얼음의 땅 뜨거운 기억’(레디앙 간)은 단순한 여행기를 넘어선 여행의 기록이다. 그 땅의 역사를 이해하고 한을 되살려주는 여행기인데, 그 주체가 그 지역 사람이 아니라 이방인이라는 점에서 더 반가운 여행기이기도 하다.
2009년 6월 13일 한 남자가 인천항에서 배를 주워탄다. 대련항에 도착한 그는 치치하얼을 경유해 러시아로 들어간다. 긴 시베리아 횡단 열차로 우선 도착한 곳은 이르쿠츠크다. 그곳에는 데카브리스트의 지도자였던 트루베츠코이와 볼콘스키의 집이 있다. 그리고 책은 러시아 근대사를 연 ‘데카브리스트’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간다.
의회를 해체했지만 강력한 왕권을 통해 러시아를 정비한 표도르 1세(Pyotr I, 1672~1725)의 시대가 지나고, 어중간한 시기를 지나던 러시아는 1812년 나폴레옹의 침략을 맞는다. 나폴레옹의 날씨에 대한 이해부족과 영국, 프러시아 등의 연합군에 의해 1814년 3월에 파리가 점령당한다. 그런데 점령군으로 파리를 찾은 러시아의 장교들은 프랑스 혁명을 통해 너무나 넓고 풍부해진 정치의 매력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약 10년 후인 1825년 12월14일 상원광장에서 3천명의 군인이 모여 봉기를 일으킨다. 하지만 당시 지도자였던 트루베츠코이가 현장에 나타나지 않는 등 미숙한 준비로 인해 봉기는 진압되고, 지도자 다섯명이 1826년 7월13일 처형되고, 나머지 군인들이 강등의식을 거친 후 시베리아로 유형된다. 마지막까지 짜르에 굴복하지 않은 의지를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와 혁명의 기운으로 감동적인 삶을 산 이들을 ‘데카브리스트’라고 부른다.
그들은 동료가 처형된 다음날 이루크츠크에서 멀지 않은 치타, 네르친스크 등에서 노역자로 힘든 나날을 보낸다. 다행히 유형자들의 부인이 찾아와 최악의 삶을 면할 수 있었다. 물론 그 부인들도 남편만 버린다면 안락한 삶이 보장되어 있지만 볼콘스키의 부인 마리아나 트루베츠코이의 부인 예카테리나나 등이 그 형극의 길에 들어서고, 남편의 주변에서 또다른 유향의 길을 맞는다. 당시 권력자들이 “완전히 굴복한 이들의 초라한 영혼과 처참하게 찢겨져 더 이상 날 수 없는 자유의 날개”를 원했지만 부인들의 강인한 의지로 굴복하지 않고 살아남은 데카브리스트들의 삶을 찾아가는 여정은 날씨처럼 혹독하지만 아름답다.
책의 전반부가 데카브리스트들의 탄생과 여정이라면 후반부는 이 정신을 이어받거나 인연이 있었던 문인들의 이야기가 주류를 이룬다. 책은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파스테르나크의 흔적을 찾는다. 사실 세 사람은 근대 문학의 절대적인 인물들이라 할 수 있으며, 이들의 간극에는 고리키나 레닌 등의 흔적도 연결되어 있다. 필자는 농노를 해방한 톨스토이와 사형 집행의 순간에 풀려난 도스토옙스키의 삶을 대조하면서 그들의 흔적을 흥미롭게 찾아간다. 특히나 재미있는 것은 두사람의 부인들이 가진 성격이 흥미롭게 비교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물론 스탈린 정부의 집필 방해에도 ‘닥터 지바고’를 쓴 파스테르나크의 의지와 러시아에 대한 무한한 애국도 감동적이다.
책의 마지막은 모스크바나 예카테린부르그 등 시베리아 횡단 철도의 도시들의 크고 작은 역사들이다. 특히 예카테린부르그는 1917년 2월 혁명으로 권력을 잃은 니콜라스 2세의 가족이 연금되어 있다가 비밀리에 처형당한 곳이다.
니콜라이 1세가 혁명 시도자들을 처형한 것이 1826년이니 90년여만에 역사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바뀐 셈이다. 어떻든 그 시간에 데카브리스트의 숭고한 정신은 혁명의 싹을 키운 셈이다.
책의 후반에는 두가지 흥미로은 이야기가 나온다. 하나는 초반기 시베리아 상권을 장악하던 중국 동포들이 좌절하는 과정을 담은 것이고, 하나는 저자가 북한에서 온 3명의 노동자를 만난 에피소드다. 특히 중국 동포들 가운데 깡패들이 나와 중국인 상인이나 러시아 경찰을 끼고 우리 동포의 상권을 흔들었다는 이야기는 우리 민족의 나쁜 습성을 보는 것 같아서 뼈저리다.
1996년 1월 첫 시베리아 횡단을 시작으로 거푸 그곳을 여행했던 저자는 시간에 구예받지 않고 유려하게 그곳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해박한 문학과 역사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쓴 글이어서 읽기도 편한데, 거기에 여행기의 특장까지 살아있는 책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시베리아 열병을 불러온다는 자작나무에 대한 이야기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 이야기까지 더한다면 이 책은 우리나라에 시베리아 열풍을 몰고 올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봤다.
어떻든 그는 이 시대 아주 괜찮은 노마드이자 디아스포라다. 생각켄데 그를 데리고 시베리아의 횡단열차를 탈수 있다면 그보다 더 큰 행복은 없을 듯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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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지만 내 나라 역사도 제대로 공부하지 않은 나는 남의 나라 역사에도 무지하다고 솔직히 고백하련다. 그런데 이 책은 러시아의 자유와 혁명에 대한 발자취를 따라가는 여정이었기에 책 읽기가 좀 망설여졌지만 첫 페이지를 읽은 후 약간은 안심이 되었다. 첫 시작은 여느 여행서적과 다름없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불안함과 기대를 안고 떠나는 한 여행자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나중에는 기차를 타고 거대한 러시아의 영토를 지나다닐 수 있었던 저자가 오히려 부럽기까지 했다. 그러나 앞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이 여정은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한 나라의 민중들이 목숨 바쳐 지켜내야 했던 자유에 대한 갈망과 울림이 곳곳에서 묻어나왔고 그 역사의 현장들은 성스럽기까지 했다. 태어나면서부터 자유는 선택이 아닌 필수인양 자연스럽게 부여받은 나는 독재,사회주의,혁명...이런 말들은 책으로만 배웠기에 귀족으로서의 권리와 특권, 더 나아가 자신의 목숨까지도 스스럼없이 던져버린 그 옛날 혁명가들의 모습들이 고통스럽게 각인되기 시작했다. 자유를 억압하기 위해 제일 먼저 출판물을 검열하고 지식인을 탄압하는 건 러시아도 마찬가지였는데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 파스테르나크의 생가와 무덤을 찾아가고 그들의 인생을 들여다본 과정들은 그들을 위대한 작가로만 만나기보다는 한 나라의 지식인으로써 겪었을 인간적인 고뇌와 순수한 문학에의 열정을 감히 상상할 수 있었던 독특한 경험이었다. 이 책의 저자는 세계 분쟁 지역 저널리스트라고 한다. 그만큼 그의 눈은 세계 속에서 더 멀리 움직이고 있었고 이 책을 쓰기위해 수집한 방대한 자료와 인터뷰글을 보면 그동안 그런 여정이 글자가 아닌 그의 정신에 오롯이 영향을 미친 것처럼 보였다. 거친 시베리아 땅을 밝으면서 그는 우리에게 무엇을 전하려고 했던 것일까? 저자는 차가운 러시아 땅을 열차로 횡단하면서 그 무엇보다도 뜨겁고 강렬했을 그들의 역사를 가슴 깊이 받아들이고 있는 듯 했다. 나 역시도 책을 다 읽은 지금, 봉기가 실패하고 자신이 처형될 줄 알면서도 조국 러시아와 후세를 위한 길이기에 끝까지 의지를 굽히지 않았던 릴리예프의 목소리가 전해져 가슴속에 잔잔한 울림으로 파고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