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레미야는 흔히 눈물의 선지자로 알고 있다. 그만큼 이스라엘의 시련과 고통의 한가운데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삶을 살아간 사람이다. 그는 엘리야의 놀라운 능력이나 이사야의 카리스마도 없이, 나약하고 항상 눈물로 고뇌하며 인간성에 기인한 하나님의 선지자였다. 나는 이러한 약함과 좌절의 번민이 가득한 예레미야는 별 관심이 없었다. 엘리야의 놀라운 능력의 발걸음들, 다니엘의 기막힌 승리의 삶을 더 동경하였다. 하지만, 내 삶의 부분들이 잘못 되어감을 느꼈을때 예레미야에 대해 궁금해지기 시작하였다. 도대체 예레미야는 왜 그렇게 약하게, 또한 앉은 시대를 살아간 것인지,, 잠깐씩 살펴보는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의 말씀과 예레미야의 그에 대한 호소,, 탄원들이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왜 이스라엘이 바벨론과 앗수르로 인한 고난의 시간들을 보내었는지 그리고 거기에서 예레미야의 의미를 찾아내려고 이 책과 함께 죄악이 극에 달한 예루살렘으로 떠나보았다. 유진 피터슨만의 독창적인 면은 과거의 한정적인 사실들을 현대의 시점에서 그만의 감각으로 재창조해냄에 있다. 우리는 그의 책을 읽을 때 마다 그의 유려한 표현들의 과거의 일들이 우리의 눈앞에 회화적으로 펼쳐지는 경험을 하게된다. 이책은 그러한 부분이 매우 두드러진다. 그러면서 예레미야가 본 이스라엘과 하나님, 진정 하나님의 원하시는 뜻을 발견해나가는 예레미야를 따라가고 있다. 죄악이 가득한 시대, 하나님의 진노와 그 악에 맞서 백성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하는 한편 그 진노의 손길을 거두어달라고 탄원하는 예레미야, 그러나 갈수록 악이 흥하여 지는 이스라엘은 그 죄의 댓가를 치르게 되고 ,,,, 예레미야는 눈물 가운데 번미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의 원망과 고통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네가 보행자와 달려도 피곤하거늘,, 어찌 말과 함께 달릴 수 있겠느냐'고 말씀하시며,, 우리의 삶의 본질과 우리의 방향성에 대해 바로 말씀하신다. 그분을 통하여 일어나고,, 독수리 날개침 올라감 같은 발걸음을 소망하는 더 높이 있는 것을 추구하는 것, 그 의미를 놀랍게도 가장 죄악이 가득한 곳에서, 가장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하나님은 깨닫게 하신다. 그리고,, 그 하나님은 토기장이에 대한 말씀을 하신다. 누구나 다 아는 토기장이의 비유, 그분의 선하신 뜻을 따라 우리의 맡겨진 사명을 다해내는 삶, 매일 우리를 빚어내시는 '일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을때 우리는 진정 그분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며 그분을 직접 보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원망이나 좌절, 죄로 인한 고통을 넘어서 하나님의 뜻과 그 소망의 실상을 보게 될 것에 대해 우리는 말과 함께 경주할 수 있는 '주와 함께 달려가는' 승리의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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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예레미야의 삶을 통해 하나님 앞에서 한 사람으로서 제대로 사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생각해 보도록 만들어 주는 책. 자신의 이름과 같은 책을 남기긴 했지만, 예레미야라는 인물의 개인적인 삶의 여정을 성경에서 읽어내는 일이 쉽지만은 않음에도, 저자는 무리할 정도로 상상력을 개입시키지 않으면서도 훌륭하게 이 일을 해냈다.
2. 감상평 。。。。。。。
먹고, 일하고, 잠시 여가를 즐기고, 쉬고, 또 다시 먹고 일하고가 반복되는 실제의 삶을 살아가면서, 어떻게 더 높은 차원의 영원한 삶에 대한 소망을 품고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은 모든 세대를 통틀어 사람들이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제다. 사람에 따라서 그 질문의 형태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지만, 죽을 때까지 즐기는 것만을 지상 최대의 목표로 삼는 세속적 쾌락주의자들도, 엄숙한 계율 아래서 하루하루 조심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수도사들도 실은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저자인 유진 피터슨은 이 책을 통해 그런 ‘온전함을 향한 목마름’을 채울 수 있는 유일한 길에 관해 이야기 한다. ‘우리를 개미집 수준으로 격하시켜서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끌어 모으고 소비하는 일에 허둥거리도록 마드는 사회’(17)에 대해 반격을 취하는 것이 그 첫 걸음이고, ‘소망에 깊이 뿌리박은 행동’을 통해 ‘하나님이 장차 이루실 그 미래에 참여’(210)하는 일이 그 결론 즈음에 있다. 물론 그 과정에는 그분이 늘 함께 하신다.
결국 이 모든 일들은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곳에서 벌어지는 것들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이 세상을 포기하고 저기로 빠져나가기만을 바라며 사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 그 온전함이 실현되는 것들을 미리 보고 경험하면서 완성될 그 나라를 기대하는 모습이 되어야 한다. 여기도, 거기도 모두 그분의 창조세계이니 말이다.
전작인 다윗에 관한 책과는 약간 결이 다른데, 아마도 예레미야라는, 좀 더 혹독한 사회로부터 정면으로, 그리고 좀 더 오랫동안 고난을 겪어왔던 인물을 중심에 두고 진행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갈수록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 어렵게 만드는 지금의 세상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시의적절한, 좋은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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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출근길에 유진피터슨의 '주와 함께 달려가리이다'를 다 읽었다. 저녁무렵 자리에 누워서 책을 보는데 퇴근무렵부터 계속 아프던 머리가 사라지지 않아서 책을 보다가 거의 다 읽어가는 듯 했는데 그만 장을 마치지 못하고 잠들었다. 출근길에 다 읽을 것을 예상했는데.... 세상에 한장 남은 것이었다. 나머지 뒷부분은 참고문헌이 실려진 부분이었는데 ^^ 너무 오랫만에 신앙서적을 읽어서.. 그리고 예레미아서를 아직 한번도 처음부터 끝까지 다 통독하지 못하여 나름의 묵상한 부분이 적었던 터라 쉬이 읽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역시 유진피터슨 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되었는데 언제나 그의 신앙은 2000여년 전의 성경이 오늘도 여전히 우리에게 들려주는 메시지임을 여실없이 드러내어준다. 탁월한 목회자이자, 학자, 그리고 풍부한 상상력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에게 전해주는 자임을 다시한번 깨닫게 된다. 이 책을 덮고 다시 앞부분을 펼치면서 생각했던 것은 그가 처음 시작한 이야기의 시작이 마지막 부분에 가서 다시 결론을 짓고 있음을 알게되었다. 물론 처음에는 그냥 서두이거니 하고 그렇게 흘러갔는데 구성있는 짜임새에 다시 한 번 유진피터슨! 이라고 감탄하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크게 들을 수 있었던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첫번째는 믿음에 의존하는 삶에 관한 것인데 그것은 불확실한 세상에서 확실한 것에 의존하며 살아가기를 결국 원하는 사람들이 '현대사회'라는 거대한 흐름에 맞추어 살아가는 방식을 택함으로서 우리에게 남겨진 삶에 관한 것인데 예레미아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히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을 보여준다. 두 번째는 바스홀이 예레미아를 가두고 때리어도 예레미아는 사람들에게 회개하고, 죄를 알게하는 말씀을 전하는 것을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늘 날 많은 교회들이 죄에 대한 설교보다는 복에 대한 설교를, 그리고 열심히 말씀을 전하는데 준비하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되지만 예레미아는 어느 이방민족에게 보내는 메시지에서도 그러한 안일함을 택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세번째는 포로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사람들이 이 땅 자신이 현재 위치한 삶에서 우리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하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오직 미래만 꿈꾼다면 현재의 삶은 그다지 기쁘지도 않을 것이며 열심히지도 못할 그러한 모습이다. 마지막으로는 예레미야는 자신의 상황을 하나님앞에서 솔직하게 아뢰고 자신에게 보다 안락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그는 안락함 보다는 자신이 살아야하는 예언자적 삶을 택하였다는 것이다. 또한 성경에서 말하는 진리를 개인적인 차원에서 우리가 모두 경험하기를 바라고 그럼으로서 참 진리가 되는 과정을 유진피터슨은 단호하게 말한다.
예레미아서에서는 이처럼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보다 성숙함을 갖추고 이 땅에서 살아가기를 희망한다. 시작부에서 언급하였듯이 우리는 개개인이 목적없이 창조되지 않았고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면서 맞이하게 되는 눈앞의 어려움에 무릎꿇고 포기하기를 원하지도 않으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는 믿음을 허락하셔서 그분께 의탁하고 힘을 얻어 말과 달려도 지치지 않을 능력을 주실 분이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쉽게 부딪히고 넘어지는 문제들은 대부분 그러한 큰일이라기 보다는 좁은 세상에서 자신의 창조사역을 넘어서지 못하고 현대가 요구하는 인간상에 맞추어진 삶에 불과하다.
내 믿음있는 신앙이 내 삶의 근간을 이루고 성숙함으로 이땅을 살아가지 않는 이상 내가 고민하는 문제는 문제가 아닐 수도 있음에도 삶의 영혼을 피폐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예레미야는 분명 우리와는 다른 삶을 살았음에 틀림없다. 그리고 예레미야와 같은 인물을 주변에서 보는 것도 쉽지는 않다. 하지만 그 역시도 심히 두려워 하였고 인간으로서 우리가 느끼는 모든 나약함을 다 가지고 있었다. 예레미아와 우리가 다른 것은 인간본성 자체가 아니라 그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에 의지하며 살았다는 것이다.
왜 그토록 그것이 어려운지 잘 알지 못한다. 나 또한 그렇게 살고 싶음에도 하루가 멀다하고 순간순간 밀어 올라오는 내안의 죽지못한 내 자아가 나를 믿음에 의지하지 못하게 한다. 하지만 진정 우리가 참 기쁨을 회복한 그 때를 떠올려보면 그것은 주님이 가르쳐준 대로 살아갈 때의 일이다.
책을 읽으면서..한 동안 방황하고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진채로 인간적인 지식을 추구하는 기쁨에 빠져서 생활했던 내 모습을 떠올려본다. 어느 누구도 책을 보고 영화를 보고 하는 것에 대하여 그것을 나쁘게 말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 안에서 밀려오는 여러가지 복합적인 감정에 따라 나는 스스로 생각해본다. 이전의 책처럼 쉽게 읽혀진 것은 아니었지만 나 또한 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내가 믿음있는 신앙으로 돌아섰다고 자신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요시아 왕이 종교적으로 다시 회복하기를 바라며 진심으로 애를 썼지만 많은 이스라엘백성들이 무뎌진 마음까지 성전과 함께 바로 세워진 것은 아닌 것처럼 나에게도 믿음의 뿌리가 내리기 위해서 다시금 말씀에 메달리고 묵상하고 기도하는 그러한 삶이 필요한 건지도 모른다. [인상깊은구절] 예레미아의 상상은 우리주변 곳곳에 스며있는 하나님의 실재에 눈을 뜨게 하며, 삶을 내면으로부터 볼 수 있도록 하고, 우리가 하고 있는 일,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하고 계신일이 무엇인지를 반드시 검토하게 만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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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들어가보지 못했던 예레미야서.
이 책으로 조금 건드려보았다.
유진피터슨의 인도따라 예레미야서를 살짝 산책해봅니다.
더 많이 연구하고 살펴보아야겠지만..
유진피터슨의 독특한 글과 내용으로 많은 도움을 받았다.
굿~ 추천합니다.
주와 함께 달려가겠습니다.
예레미야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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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을 읽게된 가장 큰 이유중 하나는 이책이 예레미야에 대한 내용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책을 읽고 나서 내가 느낀 점은 이것은 비단 예레미야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알수 있는 것은 우리 각사람이 하나님의 뜻대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일 것이다. 바로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에게 어쩌면 대단한 의미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된다.
난 이책을 읽고 사람들과 정말 많은 얘기들을 나눌 수 있었고,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다시한번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깊이 반성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믿음의 사람의 목표는 가능한 한 편안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깊이 있게 그리고 철저하게 사는 것이다. 삶의 현실을 다루고 진리를 발견하고 아름다움을 창출하고 사랑을 실천하면서 말이다."
예수믿고 복받는 것이 전부인 것처럼 그리고 그 복의 내용이 온갖 세상적인 것인 것처럼 얘기되어지는 오늘과 같은 시대에 정말 꼭 읽어봐야 한다고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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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년 전 유진 피터슨의 “다윗,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이란 책을 읽고 그의 책은 이번이 두 번 째이다. 지난 번에는 너무 오랜 기간에 걸쳐 조금씩 읽느라 좋다고 생각하면서도 사실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이번에는 방학기간이라 여유가 있어서, 유진 피터슨의 매력에 푹 빠져 이 책을 읽을 수 있었다. 평소에 예레이먀에 대해서는 접할 기회가 별로 없었고, 통독을 할 때도 단순히 피상적으로만 이해하고 그쳤기에, 멀리 할 수 밖에 없는 성경이었는데, 이번 기회에 예레미야에 대해 좀더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참 유익했다. 예언자 예레미야.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세상에 눈이 어두워 있을 때, 사람들의 무시와 조롱을 당하면서도 이스라엘에 대한 멸망을 예언하며 꿋꿋이 하나님의 살아계신 말씀을 전한 참 선지자. 유진 피터슨의 풍부한 성경적 상상력과 문학적 수사가 동원되어 예레미야의 삶을 새롭게 조명할 수 있었는데, 전체적으로 이 책에 대한 느낌을 적는다면, 영적으로 깨어있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실제적 삶에 중점을 두고 싶다. 아이러니하게도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일수록, 실천적인 사람이 아닌 탁상공론만을 일삼는 관념적이고 비실제적인 사람이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예레미야의 도전적이고 실제적인 삶을 접했으면서도, 단순히 유진 피터슨의 문학적 기법에만 푹 빠져 감상적인 독서에 그칠 뿐, 나의 삶이 여전히 폐쇄적이고 감상적인 사람으로 변화됨이 없을까봐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나의 주변의 신실하다고 하는 그리스도인들을 돌아보아도, 예배와 교회행사의 부분에서는 하나님의 사람인 것 같지만, 세상 속에서는 별다르게 빛을 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신앙은 지성이나 감정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 손과 발을 통해서 완성되는 것임을 다시금 절감하게 되었다. 또 하나, 우리가 영적으로 깨어있으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예레미야와 같은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면 좀 더 선교적인 마인드를 가질 필요가 있음을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결국 하나님께서 관심을 가지고 계시는 부분은 실제적인 영혼 구원의 문제이다. 우리가 우리가 속한 세상 속에서 진실하고 신실하게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너무 소박한 그리스도인의 삶에 만족하지 않고 선교적인 마인드로 세상을 바라볼 때, 하나님께서 더욱 나의 삶을 통해 역동적으로 역사하시는 것 같다. 물론 그 둘의 균형점을 잃어버리지 않는 선에서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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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처럼 살 순 없을까? 정답은 살 수 있다.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예레미야와 같이 성경에 등장하는 영웅들의 허와 실을 구별해야한다. 미국인들이 제일 좋아하는 영웅이 누군지 아는가? 스파이더맨이다. 슈퍼맨은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하다. 배트맨은 엄청난 부를 소유하고 있다. 하지만 스파이더맨은 아니다. 그냥 평범하다. 아니 평범하다 못해 찌질하다. 영웅이지만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공감하는 것이다. 성경의 영웅도 마찬가지다. 영웅이라 해서 완벽한 모습만 보여주지 않는다. 인간적인 연약함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눈 먼 장님처럼 영웅의 모습만 보려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영웅을 찬양하며 내 신앙의 대리 만족을 얻기도 하고 반대로 그렇게 될 수 없음을 알고 좌절하며 죄책감을 느낀다. 둘 다 문제다. 하나님은 이러한 인간의 연약함을 매우 잘 아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동역자로 우리를 세우신다. 그분은 우리가 우러러 보는 영웅의 명암을 정확하게 아신다. 그리고 자신의 자녀로 편을 나눠 주시는 데, 우리가 어떤 방향을 선택하는지에 따라 편을 나누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우리를 자신의 편으로 택하셨다. 우리를 택하신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을 주셨다. 그분은 과분할 정도로 베푸시는, 관대하신 분이다. 우리의 모든 삶이 그분으로부터 주어진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을 거부한 자들은 비뚤어지고 복잡한 인생을 살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은 예수님뿐 만이 아니라 예레미야도 보내주셨다. 예레미야를 받은 우리는 그저 그렇게 살 수 없다. 우리도 예레미야처럼 살아야 한다. 예레미야는 개혁자다. “교회는 날마다 개혁 돼야 한다!” 맞다. 개혁은 단순히 외부의 변화가 아니다. 내부의 변화까지 포함 한다. 사실 외부보다 내부의 개혁이 훨씬 어렵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삶으로 전했다. 삶이 있는 말씀이 진정한 개혁이다. 이러한 삶은 말씀을 대언하는 예언자가 가지고 있는 구체적인 상상력을 통해 나타난다. 구체적인 말씀이 개혁의 원동력이다. 예레미야는 기도의 사람이다. 기도란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시간이다. 친밀함이랑 나와 하나님이 가장 깊고, 가장 사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그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깊은 소통을 했다. 기도는 인간적인 모습을 하나님께 여과 없이 공개하는 시간이다. 사실 주와 함께 달리는 것은 좋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속에서 겪는 상처, 어려움, 두려움, 분노, 외로움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예레미야의 온전한 인격과 영적인 민감성은 빙산의 일각이다. 은밀한 기도가 공공연하게 드러나는 우리의 모습을 좌우한다. 기도는 인간 예레미야와 위대한 선지자 예레미야를 동시에 볼 수 있는 안경이다. 누구나 예레미야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쉽지는 않다. 반드시 통과해야할 산들이 있다.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한다. 모든 영역에 일어나는 일들을 하나님보다 세상이 보여주는 해석에 더 의존하고 있다. 조상의 말이라고 250년간 지켜온 레갑 족속이 참으로 귀하다. 하물며 하나님 말씀은 어떻겠는가. 슈퍼맨 콤플렉스. 우리의 적이다. 예레미야는 신이 아니다. 슈퍼맨 콤플렉스는 결국 내 힘으로 다 하려는 것이다. 모든 것을 내려놓자. 예레미야의 기도를 기억하자. 영웅은 내가 스스로 영웅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래야 예레미야를 제대로 볼 수 있다. 제대로 볼 수 있을 때 나도 그렇게 될 수 있다. 예레미야서는 시시하게 끝을 맺는다. 예레미야가 영웅인지, 실패자인지 정확하게 말하고 있지 않다. 우린 어떤 식으로든 결론을 원한다. 그는 그가 있고 싶지 않은 이집트에서, 그를 몹시도 괴롭히는 백성과 함께 있으면서 흔들리지 않은 신실한 삶, 용기 있는 삶을 살았다. 결론은 중요하지 않다. 그렇게 사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예레미야처럼 우리도 주와 함께 달려가자. 설령 도착하지 못 한다 해도 말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