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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사회와 그 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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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산어보를 찾아서』 4권에서는 저자의 정약전에 대한 공감과 자기연민이 가장 깊게 드러나고 있다. 정약전에 대한 공감이 깊어질수록 자기연민도 깊어진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공감과 자기연민은 깊은 절망을 경험해본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감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모순과 불합리, 부조리가 가득한 사회에 대해 정약전이 느꼈을, 그리고 저자가 느끼고 있는 여러 가지 감정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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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산어보를 찾아서』 4권에서는 저자의 정약전에 대한 공감과 자기연민이 가장 깊게 드러나고 있다. 정약전에 대한 공감이 깊어질수록 자기연민도 깊어진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공감과 자기연민은 깊은 절망을 경험해본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감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모순과 불합리, 부조리가 가득한 사회에 대해 정약전이 느꼈을, 그리고 저자가 느끼고 있는 여러 가지 감정들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감정이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건 우이도 주민들이 절벽의 염소 사냥을 하는 장면인데, 저자는 절벽 위의 염소를 보면서 정약전과 자기 자신의 처지가 절벽 위의 염소와 같다고 생각한다. 다소 긴 부분은 링크로 걸고(절벽 위의 염소) 일부분만 인용하겠다. 굳이 작가의 글을 길게 인용하는 것은 이것이 4권의 압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어쩔 수 없는 회의론자다. 염소를 닮아야 하지 않을까? 자신의 위치를 찾고 자신 있게 발을 내디딜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더욱 암울한 것은 나나 내가 아닌 누군가가 스스로 나아가야 할 길을 찾았을 때조차 그것이 사회 전체의 미래를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
중략
)
우이도 절벽의 염소는 자신의 본성에 따라 자연스럽게 살아가고 있지만 결국 인간과 똑같은 운명의 길을 걷게 된다. 꽹과리와 냄비 뚜껑을 시끄럽게 두드려대는 사람들에게 절벽 쪽으로 내몰린 염소는 낙화암의 궁녀들처럼 절벽 아래 바다 속으로 뛰어내린다. 아래쪽에서 배를 타고 기다리던 사람들에게 붙잡힌 염소의 운명은 더 이상 생각할 것도 없다. 정약전이 윤리와 과학이 조화를 이루며 발달해나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하더라도 과학과 이를 이용한 무력에 치중한 나라를 물리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무력은 너무나도 쉽게 그리고 자주 문화와 선을 압도한다. 그렇다면 그것이 옳든 그르든 살아남기 위해서는 과학을 군사력을 경제력을 키워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운명의 고리를 끊는 방법은 무엇일까? 과연 존재하기나 하는 것일까? 수많은 민족과 국가들, 인종과 생명체들을 아우를 수 있는 시각, 지구 전체를 조화로운 유기체적 공동생명체로 볼 수 있는 시대가 과연 찾아올 것인가(302). 

 

그러나 저자는 자기연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의 사유는 한걸음 더 나아간다.

 

정부는 성리학적 신분질서응 고착시켜 상업을 억제했고, 그 결과는 다시 사회와 경제의 발전을 저해했다. 이런 점에서 신분제를 철폐하고 상공업을 진흥하여 부강한 나라를 만들자는 북학파 학자들의 주장은 확실히 선진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이 역시 제대로 실현되지 않았고, 또 가능한 상황도 아니었다. 사회구조의 변혁은 몇몇 선각자의 주도만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사회경제적 조건들이 성숙되고, 무엇보다도 다수 대중들의 주체적인 변화노력이 있어야만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악순환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시대의 흐름을 읽을 수 있게 하는 정보가 유입되었어야 했다. 정조가 서양의 상황을 제대로 인식했더라면, 정약용이 청나라 연행을 다녀왔더라면, 정약전이 서양에 유학을 가서 더 많은 서양 과학기술서적을 읽을 수 있었더라면, 상인들이 자본주의와 산업혁명의 물결이 거세게 일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더라면 상황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386-387).

 

온고지신溫故知新. 우리가 고전을 읽고 옛 사람들의 삶을 읽고 반추하는 이유일 것이다.

[덧붙임] ‘玆山漁譜의 음훈과 관련하여. 저자처럼 현산어보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자 한다면 다음처럼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 가설은 다음 내용에 근거한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 정약전이 유배명령을 받은 곳은 흑산도였지만 정약전은 유배생활의 거의 절반을 우이도에서 보내고 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예전에는 우이도와 흑산도를 같은 섬으로 보았던 것이다. 정약전과 마찬가지로 우이도와 흑산도로 유배지를 옮겨다녔던 최익현의 글을 통해 이러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소흑산(우이도)에서 대흑산(흑산도)까지는 수로로 8백 리다. 예전부터 귀양와서 흑산에 사는 사람은 대흑산이든 소흑산이든 거처를 자기 편의대로 하였다.

 

우이도와 흑산도를 같은 섬으로 보았고, 우이도를 소흑산로 흑산도를 대흑산도로 보았다면 玆山漁譜‘현산어보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이 두 개 합쳐진 게 이니깐 가 흑산도를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다면. 일종의 말장난 같은 건데, 저자가 설명한 정약전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우이도와 흑산도에서의 유배생활 모두를 아우르기 위해 가 아닌 을 썼을 수도 있을 것 같고. 일종의 강조의 의미로 말이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한자에 문외한인 나의 짧은 생각일 따름. ^^

 



c*****g 2011.05.20. 신고 공감 3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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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끼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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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권까지 읽었습니다.이태원 선생님이 대단하신 분이구나 감탄을 아끼지 않으며 읽었습니다. 당시 사회분위기, 시대가 받쳐 주지 않은 천재 학자들의 안타까운 이야기, 그리고 하나씩 현재 그 곳 답사를 통해서 과거를 읽어내는 폭넓은 지식을 배경으로 펼쳐내는 현산어보 이야기는 너무나 재미있었습니다. 날마다 일을 마치고 지쳐 집에 돌아와 하루 한 두장 읽다가 잠든 날들이 수두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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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권까지 읽었습니다.
이태원 선생님이 대단하신 분이구나 감탄을 아끼지 않으며 읽었습니다. 당시 사회분위기, 시대가 받쳐 주지 않은 천재 학자들의 안타까운 이야기, 그리고 하나씩 현재 그 곳 답사를 통해서 과거를 읽어내는 폭넓은 지식을 배경으로 펼쳐내는 현산어보 이야기는 너무나 재미있었습니다. 날마다 일을 마치고 지쳐 집에 돌아와 하루 한 두장 읽다가 잠든 날들이 수두룩 하지만, 현산어보를 찾아서 를 얼른 읽어야지 하는 반짝이는 마음은 변함없습니다. 곧 읽을 5권에 마음이 설렙니다.
e*******r 2024.02.1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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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섬에서 꿈꾼 녹색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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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다시 <현산어보를 찾아서>를 손에 잡았다. 이 책은 총 5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한 권 한 권의 두께가 만만치 않기 때문에(대략 500쪽 분량이다. 그러므로 총 2000쪽 분량인 것이다.) 3권까지 읽고 잠시 접어두었다가 마음과 시간에 여유가 생겨서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비록 굉장히 오랜만에 읽은 책이지만 이 책은 정말 글쓴이의 노력에 다시 한 번 감탄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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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다시 <현산어보를 찾아서>를 손에 잡았다. 이 책은 총 5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한 권 한 권의 두께가 만만치 않기 때문에(대략 500쪽 분량이다. 그러므로 총 2000쪽 분량인 것이다.) 3권까지 읽고 잠시 접어두었다가 마음과 시간에 여유가 생겨서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비록 굉장히 오랜만에 읽은 책이지만 이 책은 정말 글쓴이의 노력에 다시 한 번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4권에서는 앞 권에서와 달리 해양생물보다는 정약전, 정약용 형제의 유배 생활이나 그들의 사상에 대해 많이 살피고 있다. 앞부분에서는 유배 가는 길을 살피고 있는데 특히 정약전, 정약용 형제가 겪어야 했던 옥고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오늘날에는 무죄 추정의 원칙도 있고 고문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지만(사실 우리나라도 20년 전까지는 공공연하게 고문은 자행되었었다.) 그 당시 정약용, 정약전 형제가 당해야 했던 옥고와 고문은 정말 상상이상이었다. 하지만 분명 당시 조선의 법령은 그렇게 비인도적인 것은 아니었으나 말단 관리에까지 이런 의도가 전달되었을리는 만무하였다고 글쓴이는 말하고 있다. 사실 오늘날에도 교도소의 인권 문제는 사각지대임이 분명한 것 같다. 과거 인권연대 사무총장과 이야기를 나눌 때에도 교도소 인권은 선진국에 비하면 굉장히 부족하다고 열변을 토했던 기억이 있다.

 

 이어서 동림사 독서기에서 정약용은 아래와 같이 약전 형에게 말한다. “중이 중노릇 하는 이유를 이제야 알겠습니다. 부모 형제 처자의 정을 느낄 수도 없고, 술과 고기를 먹을 수도 없으며, 음탕한 소리를 늘어놓거나 아름다운 여색을 즐길 수도 없는데 어찌하여 저들이 고통스러운 중노릇을 하고 있겠습니까? 진실로 그와 바꿀 만한 즐거움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 형제가 학문을 시작한 지 이미 여러 해가 되었는데, 일찍이 이곳에서 맛본 것 같은 즐거움을 또 느낀 적이 있었습니까?” 즉 이렇게 아름다운 산천에서 책을 읽고 공부하는 것이 커다란 즐거움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인데 오늘날 우리나라 학생들의 현실은 이와 전혀 다른 듯하다. 공자께서는 “지지자(知之者) 불여호지자(不如好之者), 호지자(好之者) 불여낙지자(不如樂之者)”라고 말씀하셨지만 과연 즐겁게 공부하는 사람이 현재 있는지도 궁금할 다름이다.

 

 그 외에 글쓴이는 정약전이 지구가 둥글다거나 조석에 대해 연구했다고 하거나 현산어보의 생물 분류 체계가 린네의 현대적 분류 체계보다 부족했던 것에 대해 조선의 쇄국 정책 때문에 지식의 교류가 활발하지 못했기 때문에 열심히 속된 말로 쉴드를 쳐주고 있으나 이런 반론에 대해 일리가 있지만 이미 정약전보다 100여 년 전에 뉴턴은 <프린키피아>를 통해 만유인력을 밝혀내어 조석의 비밀을 풀어낸 것에 비하면 변명이 조촐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동료 모임인 <죽란시사>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나 역시 이런 저런 모임이 있는바 정약전, 정약용 형제처럼 이런 아름다운 모임이 되길 바란다. 이제 길었던 <현산어보를 찾아서>도 마지막 권만 남겨두고 있다. 정약전의 마지막을 5권을 통해 살펴보도록 하자.



a******n 2009.12.0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