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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비아톨(Homo Viator), 여행은 지속된다
"호모 비아톨(Homo Viator), 여행은 지속된다" 내용보기
우이도에서 머물던 정약전은 어떤 이유에선지 대흑산도로 거처를 옮겼고 그곳에서 유배생활의 대부분을 보내게 된다. 그러나 정약용이 해배될지도 모른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그는 다시 우이도행을 결심한다. 동생에게 험한 뱃길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해배는 차일피일 미루어졌고, 결국 정약전의 죽음으로 이들 형제는 영원한 이별을 맞게 된다(12).   다섯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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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이도에서 머물던 정약전은 어떤 이유에선지 대흑산도로 거처를 옮겼고 그곳에서 유배생활의 대부분을 보내게 된다. 그러나 정약용이 해배될지도 모른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그는 다시 우이도행을 결심한다. 동생에게 험한 뱃길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해배는 차일피일 미루어졌고, 결국 정약전의 죽음으로 이들 형제는 영원한 이별을 맞게 된다(12).

 

다섯 권으로 이어지던 해양생물에 대한 연구와 정약전의 삶에 대한 반추는 이번 권에서 마무리가 된다. 긴 여정은 정약전의 고향인 마재마을에서 끝이 난다.

 

마재 마을이다. 정약전이 태어난 곳, 동생과 함께 물고기를 잡으며 뛰놀던 곳, 그토록 돌아오기를 그렸으나 끝내 돌아오지 못한 곳, 그의 고향마을이다(351).

 

정약전의 묘소를 찾아가는 것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셈이다. 묘소에서 막걸리를 구석구석 돌려 뿌리고 절을 하는 것으로 정약전의 자취를 따라갔던 7년에 종지부를 찍는 저자에게는 온갖 감회가 한꺼번에 밀려든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앵자산 기슭에 누워 있는 거인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굴곡 많은 삶을 살았던 것도 부족해 죽어서까지 수천리를 떠돌아야 했던 기구한 인생이었다. 그러나 정약전은 불운에 굴복하지 않고 당당히 맞섰다. 외딴섬에서의 유배라는 최악의 상황을 해양생물연구의 호기로 삼은 것은 누구도 흉내내지 못할 발상의 전환이었다. 그리고 피땀어린 연구 결과 정약전은 우리에게 『현산어보』라는 조선 후기의 타임캡슐을 남겨주었다. 앞으로 그의 일생과 업적들이 하나둘 조명되어 정약용과 더불어 조선 후기를 빛낸 위대한 인물들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게 될 날을 기대해본다(377-378).

 

실제로도 컸던 키만큼이나 거인이었던 한 인물의 인생과 그의 학문 성과를 살펴보는데 장장 7년의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그것을 다섯 권의 책으로 엮었다. 정약전이나 장창대와 마찬가지로 저자인 이태원 역시 열정적인 사람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런 열정이 내면 속에 충만하기에 여행이 끝난 후에도 여행은 끝나지 않고 오랫동안 지속되며, 때로는 그 열정이 타인에게 전염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그 사람들 중 하나가 나였다고 고백하는 것으로 나의 긴 여행도 마무리하려고 한다. 실로 가슴 따뜻한 시간이었다.

 

[덧붙임] 전권에 걸쳐 감정이입을 하게 만드는 인물이 장창대이다. 5권에서는 장창대에 대한 애정과 연민, 아쉬움이 곳곳에 묻어난다. 이러한 연민은 현실에 기인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짠해질 수밖에 없다. 저자가 느끼는 아쉬움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에 깊이 공감하기에.

 

장창대는 주변생물에 대해 깊은 지식과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능력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지지도 않은 채 쓸쓸히 잊혀져갔다. 조선시대를 통틀어 장창대와 같은 사람은 수도 없이 많았을 것이다(300).

 

장창대가 홍대용이 꿈꾸던 세상을 만났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세밀한 관찰력과 자연의 원리를 꿰뚫는 식견,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방식에 주위의 지원까지 뒷받침되었더라면 아마도 당대의 위대한 과학자나 교육자로 이름을 떨치지 않았을까?(301)

 

르네상스기 유럽의 상황은 이러한 점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문예부흥의 물결이 도래하면서 유럽에서는 뛰어난 예술적, 학문적 역량을 지닌 천재들이 역사상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거침없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들 대부분이 이탈리아의 조그만 도시 피렌체 출신이거나 이곳에서 활동하던 인물이었다는 사실이다. 피렌체가 수많은 르네상스 영웅들의 온상이 된 데는 메디치라는 거대한 가문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메디치 가문은 상업과 금융업을 통해 벌어들인 막대한 부의 상당 부분을 예술과 학문에 투자했다. 대학의 설립과 운영을 지원하고 훌륭한 교수를 초빙햇으며, 엄청난 장서를 갖춘 도서관을 건립하고 재능 있는 예술가와 학자들에게 격려와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만약 이들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레오나르도 다 빈치나 갈릴레이 같은 과학자들이 뜻을 펼치지 못하고, 르네상스나 서양의 근대화 과정 자체가 지체되는 상황이 벌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메디치 가문이 서양사에 미친 영향을 지대했다. (중략) 그런데 우리의 상황은 어떠한가. (중략) 입만 열었다 하면 노벨상과 빌게이츠를 외치지만 천재는 늘 태어나며, 천재가 없는 것은 천재를 천재로 자랄 수 없게끔 하는 이유가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간단한 사실을 생각하지 않는다. 장창대는 탁월한 과학적 재능을 지녔고, 그 열의 또한 대단했지만 끝내 자신의 능력을 맘껏 펼쳐보지도 못한 채 지금은 찾아오는 이 하나 없는 남해의 외딴섬에서 이렇게 쓸쓸히 잠들어 있다. 오늘날의 한국이 또 다른 장창대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뒤돌아봐야 할 때다(303-304).



c*****g 2011.05.20. 신고 공감 2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