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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하 식민지배 시기 한국의 근대 공업화의 초석이 다져졌다는 견해에 당신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이른바 식민지 근대화론은 이미 조선 사회 내부에 근대적 속성을 갖추고 있었다는 맹아론과 극렬히 대립한다. 그러나 계량주의 역사, 치열할 정도로 정교한 실증적 통계적 분석 앞에 우리는 감정적 혹은 정치적 인식으로 식민지 근대화론을 부정하기에 무력함을 느낀다. 호리 교수의 이 책은 바로 이러한 점에서 많은 한국인들에게 당혹감을 느끼게 할 것이다.
그렇다고 그가 일제식민지배를 '축복'이라 말하는 것은 아니며 자신의 견해를 식민지옹호론으로 읽힐 것을 경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오늘날 NICs의 하나인 한국의 경제적 위상과 성과를 1960년대부터 설명하고자 하는 연구경향을 비판한다. 식민지 정책이 조선의 자주적 발전을 압살하고 왜곡시킨 점에만 관심을 집중할 것이 아니라 식민지기에 일어난 새로운 경제적인 변화가 해방 후의 한국사회를 어떻게 규정했는가 역시 조망해야 한다는 그의 지적에 이의를 표명하기 어렵다.
한국의 경제사가들은 기본적으로 1930년대 식민지 조선의 급격한 공업화는 일본 자본에 의한 군수공업의 이식에 의한 것이고 조선인에 의한 공업의 생산소비와는 기본적으로 무관하다는 공통된 신념을 담아낸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이를 정론으로 인식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 김철의 식민지공업비지론, 박현채의 민족경제론, 서상철의 이중경제론이 하나하나 논파되는 것을 목도하게 될 것이다. 논박의 여부를 떠나 호리 교수의 철두철미한 '통계' 앞에 놓인 '실증'앞에 곤혹감을 감추기 어렵다.
이 책이 담아내고 있는 1930년대 일본에 의한 조선의 공업화를 인정하다 할 지라도 당시 임노동자들의 생활수준에 대한 분석은 결여되어 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사실 식민지근대화론 그 자체를 역사왜곡이라 할 수 없다. 다만 우리는 식민지근대화론이 식민지배를 미화하는 논리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우려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설혹 한국의 자본주의의 기반은 1930년대 일제에 의해 마련되었다 할 지라도 그로 인해 발생한 임금노동자의 생활수준이 소작농 혹은 소작조차 잃은 고농(농업노동자)의 생활수준보다 하락하였음을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
호리교수는 대규모의 이농을 낳을 만큼 임금노동자의 수입이 소농의 그것보다 나을 것임은 유추하지만 정작 도시의 임금노동자는 소농 혹은 고농(농업노동자, 그 한 유형이 머슴)과는 달리 식료품을 직접 구입해야 하기 때문에 실질 생활수준은 오히려 하락할 수 있다. 이는 개인적인 가설로 검증을 받은 것은 아니다.
끝으로 이 책은 각 장마다 미주를 따로 처리하였으며 각 장마다 소결론을 내리고 있다. 또한 사항, 인명색인을 따로 구성하여 연구서로서 성의를 다하고 있다. 첨부된 통계자료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 두고두고 읽을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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