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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총점 종이책
진화론은 진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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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모 소감에서 밝혔듯이 나는 학교에서 배운 대로, 공학도답게, 애매모호한 것을 싫어하니까, 결정적으로는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과 ‘지상 최대의 쇼’를 읽었으므로 진화론의 편에 서서 보기로 작정했으니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다시 한번 진화론을 확인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일단 진화론은 빅뱅이든 뭐든 최초의 시점에서 출발해서 자연 선택의 과정을 거쳐서 원생동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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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모 소감에서 밝혔듯이 나는 학교에서 배운 대로, 공학도답게, 애매모호한 것을 싫어하니까, 결정적으로는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지상 최대의 쇼를 읽었으므로 진화론의 편에 서서 보기로 작정했으니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다시 한번 진화론을 확인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일단 진화론은 빅뱅이든 뭐든 최초의 시점에서 출발해서 자연 선택의 과정을 거쳐서 원생동물부터 고등동물까지 발전해 왔고 현생의 동물이나 식물은 진화 과정상 현시점에서 최종 산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어서 원숭이가 인류의 조상이라는 말은 터무니 없는 모함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주장은 이미 150년 전에 다윈이 발표를 했으나 그러한 학설은 이전에도 있어 왔지만 다윈이 갈라파고스섬의 탐사 이후에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발표한 것이다. 이러한 다윈주의는 필연적으로 기독교 측의 반발을 불러 올 수 밖에 없었고 이러한 공방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으며, 최근에 영국의 리처드 도킨스가 진화론의 조심스러운 행보에 엔진을 달아 무신론까지 들고 나와서 제대로 싸움이 붙었다.

 


<난 이 사진을 보면서 얼마나 통쾌하던지>

 

진화론에 대한 종교계측의 반발은 모르면 암말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생명의 기원에 대해서도 알려진 것이 없으니 말을 하지 말라는 것이고 현시점에서 달성된 인간의 지성에 까지 이르기 위해서는 신의 개입이 없으면 꿈도 꾸지 말라는 것이지만 하나하나 규명이 되어 가고 있는 중이다.

최초의 순간은 빅뱅이라는 것이 있었고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우주 팽창설이고 어쨌든 현재까지는 이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태초의 카오스에서 생명체가 발생되는 것에 있어서도 카오스의 스튜에 번개 등등의 이런 저런 시뮬레이션의 결과 생명체 발생이 실험실에서는 성공하였다고도 한다.

종교계측의 반박에는 하나를 규명하면 또 다른 것을 내놓으라고 하는 억지가 있어왔다. 이러다가는 인간의 진화 과정 전부를 실험실에서나마 증명하지 못하면 믿지 못하겠다고 하거나, 그도 저도 아니면 그래도 나는 신을 믿는다라는 얼버무림으로 끝날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신과 다윈, 끊임없는 논쟁의 역사. 여기에서는 학교에서 가르쳤던 진화론이 일반인에게는 배운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모양이다. 물론 여기에는 수 십 억년의 너무나 긴 세월을 간단하게 축약하기도 어렵고 학교 교육이라는 것이 그 원리를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는 탓도 있을 것이다.

 

2부에서는 종교계의 주장에 힘을 실어줄 지적설계론과 진화론의 공방전을 다룬다. 지적설계론을 간단하게 얘기하자면 진화론의 과정에서 증명이 되지 않는 부분을 신의 영역으로 남겨 두자는 말이다. 이것이 종교계도 달래고 과학계도 달랠 묘책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 근거로는 환원불가능한 복잡성 이론이라는 것을 들고 있는데, 이러한 복잡성은 그보다도 훨씬 복잡한 것도 지금 읽고 있는 감염에서는 기생충의 복잡다단한 여정에서 기생충이 숙주를 유도하는 과정을 보면 그런 복잡성보다 훨씬 더 복잡한 것도 기생충 따위가 다 할 수 있는 모양이고, 세균이 항생물질에 대항해서 진화하는 과정을 보면 지적 설계론 따위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3부에서는 진화론과 종교의 치열한 설전에 대한 것인데 종교측의 주장에 따르면 무신론을 과학으로 포장한 것이 진화론이라고도 하고 진화 자체를 신이 유도한다고도 한다. 종교의 잣대로 진화론을 재거나 애써 설명해 놓은 것을 신이 다 했다고 까지 뺏아가기도 한다. 종교측으로서는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다는 것이 측은해보이기도 한다. 여기에 대해 종교계 인사들의 인터뷰가 들어 있는데 불교는 불교는 운좋게도 인간 등장 이후부터 시작하는 것이라서 논란의 여지에서 한발 빼고 있다- 담담하게 과학은 과학일 뿐이라고 싸우지 말라고 충고한다.

 

마지막 장에서는 신과 다윈의 만나지 않는 평행선으로 마무리 짓는다. 진화론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논쟁에 대한 것 보다는 지상최대의 쇼를 먼저보라고 권하고 싶다. 자연선택이라는 길고 긴 여정에 대해 수많은 실례를 들어서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그리고 고등동물에 한참 못 미치는 단순한 미생물의 생존 방식에 대해서는 내가 지금 읽고 있는 감염을 읽어보면 자연선택이라는 것이 미생물에 까지 이르는 개체에 있어서 얼마나 절체절명의 과정인지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절체절명의 긴 과정을 거치면 얼마만큼 생존 능력이 발전할 수 있는지도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l********y 2010.10.24. 신고 공감 14 댓글 24
리뷰 총점 종이책
진화 對 창조 그 끝은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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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우리는 리처드 도킨스, 에드워드 윌슨, 스티브 존스, 윌리엄 뎀스키, 마이클 베히등 세계적인 석학들의 저서을 통해서 진화론, 지적설계론고 그 밖의 창조론에 대한 서구의 열띤 공방을 접해왔고 이러한 담론에 대해선 국내의 저명한 학자들에 대한 고견을 사실상 접해보질 못했다. 그나마 2009년 <종교전쟁>이라는 책을 통해서 종교와 과학간의 갈등에 대해서 일반독자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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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우리는 리처드 도킨스, 에드워드 윌슨, 스티브 존스, 윌리엄 뎀스키, 마이클 베히등 세계적인 석학들의 저서을 통해서 진화론, 지적설계론고 그 밖의 창조론에 대한 서구의 열띤 공방을 접해왔고 이러한 담론에 대해선 국내의 저명한 학자들에 대한 고견을 사실상 접해보질 못했다. 그나마 2009년 <종교전쟁>이라는 책을 통해서 종교와 과학간의 갈등에 대해서 일반독자들에게 화두를 던져준것 이외에는 우리사회에 진화론 對 창조론 구도에 대한 심도깊은 논쟁은 거의 없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진화론에 대해서 우리는 극히 과학적인 사실로 인지하고 있으나 최근에 실시된 여론조사의 결과는 사뭇 충격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물론 창조론자들의 입장에서는 극히 실망스러운 수치이겠지만) 대한민국의 40%가량의 사람들이 진화론을 믿지 않고 있다는 통계 그중에서도 개신교 신자들은 60%가량이 진화론을 믿지 않는다는 통계가 나오면서 이제 우리사회도 진화 대 창조 내지는 과학 대 종교의 허심탄회한 담론의 장이 마련되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신과 다윈의 시대>는 이런 측면에서 굉장히 시의적절한 책이라고 하겠다. 다윈의 <종의 기원>은 여러가지 측면에서 패러다임의 변화를 가져온 어머어마한 혁신이었다고 볼 수 있다. 기원전 그리스에서 철학에서 제기되었던 인간과 자연철학에 대한 비중이 로마제국과 중세를 거치면서 신학 즉 종교가 모든 가치관을 대변하면서 신을 떠난 사유의 확장은 극히 위험한 발상이었다. 이런 의식구조에 일대 변혁을 가져온 것이 바로 다윈의 종의 기원이었고 그중에서도 [자연선택론]은 당시로서는 충격이 이만전만이 아니였다. 신을 닮았고 신을 대신해 이 지구상을 통치하는 우리가 원숭이와 같은 존재일 뿐이라는 사실에 세계는 경악 그 자체였고 특히 종교계는 마치 핵폭탄에 피폭된 것처럼 아노미상태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다윈의 사유를 시발로 그동안 신학의 하부개념에 만족해야 했던 많은 분야의 학문들이 본연의 위치로 자리잡게되는데 다윈만큼 기여한 학자도 없다고 해야 할 정도로 이제는 다윈의 진화론을 과학적인 사실로 인지하고 있다. 물론 아직도 근본주의 개신교와 이슬람교등의 입장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판도라같은 상자이지만 대체적으로 진화에 대한 보통사람들의 생각은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사실에 대해서 우리는 어쩌면 괄호밖에 존재하고 있었다고 할 정도로 사회적인 관심이나 이슈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근현대화의 역사적 기원이 타율적이고 시간적인 추이에서 서구선진산업국에 비해 급속로 이루어진 관계로 이러한 학문적 기반이나 토론의 장이 마련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 사정이 달라지고 있고 달라져야 할 것이다. 세계적으로 가장 짧은시간내에 가장 많은 개신교신자을 확보한 나라이자 추기경을 배출한 나라 그리고 유전공학분야에서 상당한 기술력을 가지고 있는 나라인 우리사회에서 이점에 대한 서로간의 논쟁이나 토론 자체가 없다는 것은 아무래도 이해하기 힘든 문제이고 오히려 상당한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숙한 토론문화에 익숙하지 못한 사회에서 토론자체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을 견지하게 되면 각자의 사고가 독설화 되어버리는 경향이 농후하고 이러한 추이는 결국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극단적인 이분법적인 사고만을 양상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면에서 <신과 다윈의 시대>가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세지는 분명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여기서 진화 대 창조, 인간 대 신에 대한 우열을 가리자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동안 진화의 입장에서 바라본 신과 종교, 종교의 입장에서 바라본 진화와 과학이라는 평행선을 달리는 두 명제에 대한 일반적인 접근을 가지고 과학과 종교의 역활에 대해서 심도 깊게 생각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자는 취지가 강력하다. 특히 이 책의 출간 의도가 어느 한편의 진영에 일방적인 판정승을 끌어내는 제로섬 게임 매치는 아니기 때문에 종교와 과학의 반대 논거 또한 많은 부분에서 수긍이 가는 점이 있다. 종교를 위한 종교, 과학을 위한 과학이라는 이분법적인 사고에 익숙한 독자들에게 과학과 종교가 상생할 수 있는 계기 마련에 일조를 하는 책임에 분명하다. 양측의 담론이 일방통행이 되어서는 결국 그 어떠한 담론도 지지를 받지 못한다는 점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동안 양 진영은 서로의 담론에 대해서 극과 극을 달리고 있고 서로의 견지를 묵살하고 있다. 에드워드 윌슨의 <생명의 편지>에서 과학과 종교가 화해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나마도 어느 쪽의 견해가 주가 되는냐에 대한 논거로 유명무실해진 형편이다. 하지만 이러한 작은 시도가 양측 진영의 화해의 밑거름이 될 것은 틀림 없는 사실이다. 지금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과학과 종교의 진정한 화해와 협력이다. 이 양측진영의 대결은 모든 인류에게 해악만을 가져다 줄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한 것이다. 이러한 때에 <신과 다윈의 시대>은 양측의 화해 가능성과 그리고 독자들로 하여금 한쪽 사고에 편협될 수 있는 오류를 피할 수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과학적 담론인 보편타당성을 종교에도 적용해야 하고 종교적 담론인 사랑,평화을 과학에 적용 한다면 분명 일류의 한발짝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l******e 2010.09.06. 신고 공감 9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필요한 논쟁이라고 생각한다.『신과 다윈의 시대』
"필요한 논쟁이라고 생각한다.『신과 다윈의 시대』" 내용보기
새로운 지적 세계를 넓혀 뇌를 자극하다.   읽는 내내 흥미로웠다. 제목이 주는 심각한 만큼 어렵지 않았기에 느낄 수 있었던 흥미이지 않았나 싶다. 150년 전 다윈이 쓴 『종의 기원』이 출판되지 과학계는 물론 종교계까지 들썩였다. 다윈은 이미 진화에 대한 아이디어가 있었지만 이제까지 유럽 사회를 지배해 기존의 원칙을 과감히 깨어야하는 것을 의미하였기에 감히 발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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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지적 세계를 넓혀 뇌를 자극하다.


  읽는 내내 흥미로웠다. 제목이 주는 심각한 만큼 어렵지 않았기에 느낄 수 있었던 흥미이지 않았나 싶다. 150년 전 다윈이 쓴 『종의 기원』이 출판되지 과학계는 물론 종교계까지 들썩였다. 다윈은 이미 진화에 대한 아이디어가 있었지만 이제까지 유럽 사회를 지배해 기존의 원칙을 과감히 깨어야하는 것을 의미하였기에 감히 발표를 못했을 정도였으니 당시 사회의 충격은 얼마나 컸겠는가. 그 이후로 지속되어 온 창조론과 진화론의 지리한 싸움에 대해 일반 대중이 이해하기 쉽게 각각 입장을 정리하여 논쟁의 초점을 명쾌하게 제시하여 독자가 판단을 내릴 수 있게끔 구성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 두입장의 논쟁의 본질은 무엇일까? 왜 이 싸움은 끝내지 못하고 뜨거운 감자로 계속 남아 있는가? 두 질문을 중심으로 책 내용과 내 생각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지적 설계론과 진화론의 싸움


  제목만 보면 신, 즉 창조론과 다윈, 즉 진화론의 싸움으로 비쳐진다. 크게 보면 마치 무신론 대 유신론으로 보이기도 한다. ‘유신이다 무신이다’를 떠나 먼저 이야기해야 할 새로운 이론이 있다. ‘지적 설계론’이다. 지적 설계론이란 어떤 지적인 존재가 세상을 계획적으로 설계하고 만들었다는 이론이다.(37p) 생명의 진화가 아닌 이 우주만물은 고도의 지적인 존재가 계획하고 설계하여 창조된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환원불가능한 복잡성” 이론의 설명도 가능해진다. 지적 설계자가 생명체를 만들 때 이미 복잡하게 만들어 놓았고, 미리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그 능력이 점점 더 복잡하게 발휘될 수 있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진화론자 입장과 전혀 반대되는 주장이다. 진화론에서는 “단순→복잡”으로 변화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변화 과정에서 핀치새를 예로 들며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같은 종이라 할지라도 각기 다르게 변이되는 “자연선택론”¹을 주장한다. 처음부터 생명체는 완벽할 필요가 없고 환경에 따라 변화하며 진화한다는 것이다. 날개가 다려 있다고 해서 날개를 나는 데만 쓰이는 것이 아니라 분비의 기능이나 몸의 균형을 잡는 기능만으로도 쓰일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 ‘환원불가능한 복잡성’에 대해 비판하는 예라고 볼 수 있다. 또 지적 설계론은 지적 설계자를 신으로 대체하여 창조론을 뒷받침하기 위해 볼 수 있고 이를 ‘틈새의 신’이라고 반박한다.

  그러자 지적 설계론자들은 지적 설계자가 반드시 신이라는 것은 알 수 없으며 그 실체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더라도 이 세상의 탄생을 이야기할 때 그냥 창조하진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진화론에서는 우주의 변화, 생명체의 변화 과정에서 유용한 학문일지 몰라도 우주의 기원, 생명체의 탄생의 시작을 증명하지는 못한다며 태초의 탄생을 단순히 화학작용으로 보는 것에 대해 경계한다. 진화론자 입장에서는 또, 그 부분이 지금은 과학적 증명이 불가능하지만 과학이 모든 것을 밝혀주지 못한다며 언젠가는 밝혀질 수 있는 부분이라고 반박한다. 그러자 다시 지적 설계론자들은 과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은 과학이라 볼 수 없고 그것을 제외시켜 말하려는 것은 ‘실체를 바라보는 잘려진 관점’이라고 공격한다.

 


논쟁은 필요하다.


  이렇게 두 입장의 설전은 많은 공감과 우려가 동시에 나타났다. 하지만 학문이라는 것은 논쟁이 있어야 발전한다고 보기에 이 논쟁이 에너지 소모로만 볼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설전 속에 다른 논거와 반박 논증을 찾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그 과정은 인간의 철학과 사유의 깊이, 과학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주리라 본다.

 


학교에서 창조과학을 가르칠 것인가


  긴 논쟁이 지속되는 동안 동시에 부딪치는 것은 ‘신은 있느냐 없느냐’ 까지로 확대된다. 그래서 더 예민한 주제가 되는 것이고 특히 종교인 입장에서 보면 기존의 창조주인 신에 대한 부정으로 이어질 수 있는 진화론이 위험하기 짝이 없는 학문으로 간주될 수 있다. 우리나라 교육과정에서 과학을 배우다보면 특정 종교를 교육할 수 없기 때문인지 창조론의 시각은 없고 진화론의 시각만이 들어 있다. 물론 창조론이 과학이 아니기에 지적 설계론으로 대체한다하더라도 우리 과학 책에 지적 설계론의 입장은 없다. 나 역시도 창세기에 나오는 장면이 연상되는 창조론에는 동의하지 않았었고 진화론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남자의 갈비뼈로 여자를 만들다니,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지금은 성서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진 않겠지만 과학을 배우던 학창시절에 접했던 창조론은 허황된 종교적 상상이라고 치부했다.(참고로 나의 종교는 천주교이다. 그럼에도 신앙심이 약했던 것인지 그렇게 생각했다.) 이미 나는 은연중에 진화론에 길들여져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성경의 문구 하나하나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믿지만 말이다. 이러한 모습을 대변하듯이 진화론만 교육하는 미국의 아칸소 주에서는 창조과학을 교과서에 싣자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고 실제 이와 관련한 재판까지 열리기도 했었다. 결국 창조과학은 과학이 아닌 종교라는 결론이 났지만 말이다.

 


논쟁의 끝은 있을까


  책에서는 미국과 한국에서 두 이론의 대립이 심하다고 한다. 그 원인에 대해 미국식 기독교의 전파가 된 한국에서 기독교 근본주의 움직임이 강할 수밖에 없고 두 국가가 비슷한 분위기가 나타난다고 해석하는 학자가 단연 눈에 띈다.

  도대체 이 논쟁은 결론을 내어야 할까, 끝이 있기는 한 걸까? 그렇다고 대안이 있는가? 명쾌하게 O,X 또는 예, 아니오로 대답할 수 있기는 힘들다. 극한 대립은 서로에게 불편하고 서로를 몰아세울 뿐이다. 그래서 두 이론 서로의 양보를 이 책에서는 권하고 있다. 창조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창조론은 과학이 아니고 진화론은 신념과 철학체계가 아닌 과학이기에 이 두 개를 같은 선상에 놓고 설전을 벌이는 것부터가 잘못된 것이 아닌지 반문한다. 차라리 유신적 진화론처럼 종교에서는 우주 만물의 태생을 제외한 변화를 진화론을 끌어와 설명하고 진화론에서는 과학적 증명이 된 부분만 진화론으로 설며한다면 극단의 창을 서로 겨누지 않아도 되지 않느냐고. 과학과 종교를 같은 범주에 포함시키지 않는 것부터 시작되었으면 한다는 결론을 이 책에서 내린다. 조화나 중용이 가장 어려운 중심잡기가 아니던가 끝없이 한 쪽으로 치우치진 못한다. 넘치면 비워지고 비워지면 채워지기에 이 논쟁의 흐름도 그 적정선을 찾아가는 과정일런지 모른다.

 


논쟁의 긍정적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며


  우리는 걸핏하면 다양성을 인정해라, 서로를 배려하고 양보하라고 하지만 논쟁의 중심에 선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확고한 신념이라 그런 말들이 귀에 안들어오는 것일 수도 있다. 억지로 화해시키기보다 우리가 알아서 판단을 하고 입장을 취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 생각한다. 물길을 억지로 바꾸면 둑이 터지듯이, 내 판단 또는 대중의 판단은 흐름대로 맡기면 되지 않을까. 꼭 하나를 선택할 필요가 없다는 사람은 또 그리 생각하면 되는 것이 아닐까. 둘 다 결국 공공선과 삶의 이상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기에. 그리고 그것은 극단의 대립만이 지속되지 않으리라는 실낱같은 희망도 보이기에.





1.자연선택론 : 생존에 조금 더 유리한 방향으로 변이하는 것(97p)

오타발견 : 204p 10번째 줄, 배재→배제



YES마니아 : 로얄 g********s 2010.10.05. 신고 공감 8 댓글 17
리뷰 총점 종이책
종교는 그냥 종교이어야.. 과학은 그냥 과학이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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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출간된 진화론과 창조론에 관한 책이라 처음엔 얼떨떨 했다. 이제까지 외국서적들만 보아온 나에게 이건 분명히 사건이었다. 그래서 주저 없이 선택한 책이기도 하다. 2009년 EBS 다큐멘터리로 방송되었던 것을 책으로 묶어내었다고 한다. 그때 뭐 하느라 이런 프로를 못 보았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진화론과 지적설계론에 대하여 해외 석학들이 집필한 책들은 많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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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출간된 진화론과 창조론에 관한 책이라 처음엔 얼떨떨 했다. 이제까지 외국서적들만 보아온 나에게 이건 분명히 사건이었다. 그래서 주저 없이 선택한 책이기도 하다. 2009 EBS 다큐멘터리로 방송되었던 것을 책으로 묶어내었다고 한다. 그때 뭐 하느라 이런 프로를 못 보았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진화론과 지적설계론에 대하여 해외 석학들이 집필한 책들은 많고 또 우리나라에서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진화론과 창조론이 토론이나 논쟁거리가 된다는 사실이 흥미롭기도 하고 고무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 자신이 아무리 진화론으로 무장되어 있다고 해도 과학과 종교는 엄연히 다르다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진화론과 관련된 논쟁들에 대하여 알려주는 입문서 성격을 띠고 있다는 생각이다.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진화론이나, 지적설계론 등 관련 있는 책들을 찾아서 읽겠지만, 일반인들에게는 학교에서 그냥 스쳐가며 배운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어찌 보면 생소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EBS 다큐프라임 제작팀이 전해주는 진화론에 대한 논쟁의 역사는 우리에게 진화론과 지적설계론에 대한 모든 것과 국내의 현실을 알려준다. 더군다나 국내외 석학 16, 그것도 진화론과 지적설계론에서 서로 각을 세우고 있는 세계적인 석학들의 인터뷰가 실려있는 것이 마냥 신기하기만 하다.

 

4부로 되어있는 책은 1부에서 진화론과 지적설계론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진화론이 발표된 지 150, 다윈이 태어난 지 200년이 되는 2009년 미국인중 39%, 영국인중 48%만이 진화론을 믿는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EBS 다큐프라임 제작팀이 국내 최초로 조사한 결과 62%의 사람들이 진화론을 믿고 있다고 한다. 진화론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면 대답은 두가지중 하나라고 한다. 하나는 과학적 증거가 불충분해서 라고 하는데, 이것은 진화론이 30억년에서 45억년에 이르는 지구의 긴 역사를 다루기 때문에 사람들이 쉽게 믿지 못하는 이유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다른 하나는 종교적 신념과 배치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과학과 종교가 어긋나고 있는 한 모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대부분 진화론에 대한 지식을 학교에서 얻는다. 그러나 이것은 진화론자나 반진화론자 모두가 불만이라고 한다. 진화론 자들은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이 진화론의 가장 중요한 원리는 가르쳐주지 않는다고 하며, 반진화론자들은 잘못된 사실을 가르치고 있다고 주장한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진화론에 대한 오해는 인간이 원숭이에게서 진화해 왔다고 믿는 것 이라고 한다. 그러나 인간과 원숭이는 약 500만년 전 같은 조상에서 갈라져 나와 자신의 계통에 따라, 따로 진화해온 최종 산물일 뿐이다. 이에 반해 지적설계론은 어떤 지적 존재가 세상을 계획적으로 설계하고 만들었다는 이론으로, 이들은 지적설계이론이 종교와 다르다고 주장하고 있다. 종교는 특정한 신을 이야기 하지만, 자신들은 지적인 어떤 존재에 대해서만 얘기하지 신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찌 보면 궁색한 변명이 아닐 수 없다. 지적설계론이 비록 창조론 이후에 나온 이론으로 창조론과 그 궤를 달리한다고 하지만 종교로써는 의미가 있을지 몰라도 과학은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지적설계론의 논리적 토대를 만든 필립 존스는 그의 저서 [심판대 위의 다윈]에서 진화론과 창조론을 과학이 아닌 무신론과 유신론이라는 두 개의 상충되는 세계관사이의 대결이라고 결론 내리고 있으며, 지적설계론의 과학적인 이론적 바탕을 마련했다는 책으로 평가 받는 [다윈의 블랙박스]에서 마이클 베히는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이란 이론으로 진화론을 비판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윌리엄 뎀스키는 [설계 추론]에서 수학이론을 통하여 지적설계론을 지지하고 있다고 한다.

 

2부는 진화론과 지적설계론의 공방전에 대하여 쓰고 있다. 공방전의 제1라운드는 지적설계론의 가장 핵심적인 이론이라는 마이클 베히의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이론으로 시작되었다. 어떤 조직이나 기구는 특정한 구성요소들로 이루어져 있고, 그 구성요소들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그 하나하나는 아무런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며, 또한 하나라도 분리되면 나머지 구성요소들도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이, 이 이론의 핵심내용이다. 따라서 생명체를 이루는 세포는 구성이 복잡하기 때문에 진화를 통해서 복잡하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복잡하게 만들어져야 세포로써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라고 한다. 이에 대하여 진화학자 제리코인은 이렇게 이야기 한다.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 이론은 지적설계론자들이 처음 주장한 것이 아니고, 19세기부터 등장한 진화생물학을 반박한 첫 이론 이었다고 한다. 그 당시 그들이 예로 든 것은 사람의 신체기관 중 눈과 혈액응고시스템 이었으며, 이것들이 이제는 어떻게 진화되어 왔는가가 밝혀지자 다른 것으로 그 예를 바꾸고 있다고 말한다. 이들이 진화되어 올 때 지적설계자는 어디에도 없었다고 제리코인은 이야기 하고 있다.

 

공방전의 제2라운드는 자연선택론 이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진화론에 대해서 오해를 하고 있는데, 그것은 진화론이 생명의 탄생을 우연이라고 주장한다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진화는 자연선택을 통해서 진행되어온 것으로, 생명의 탄생에 대하여 언젠가는 과학으로 밝혀질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여기에 대해 지적설계론자들은 자연선택이 맞을지라도 태초의 생명은 누군가 설계해야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생명의 탄생에 대하여 아직 과학이 증명을 하지 못하는 것이 진화론의 반대쪽 사람들이 끊임없이 진화론을 공격하는 내용이다. 여기에 윌리엄 뎀스키는 진화론이 절대로 생명을 탄생시킬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기도 한다.

 

3부와 4부는 진화론과 종교에 대한 내용이다. 리처드 도킨스는 유전자가 신을 만들었다고 주장하며, 에드워드 윌슨은 종교를 사회행동과 생물학적 진화를 포함하는 사회진화의 일부분으로 보고 있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인지철학자 대니얼 데닛은 진화론을 인지과학에 적용하여 진화심리학이라는 학문을 만들기도 하였다. 진화론자들은 인간의 마음이나 도덕성도 물질 진화의 결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에 반하여 종교 쪽에서는 다윈 자체가 또 하나의 신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무신론을 과학으로 포장한 것이 진화론이며, 무신론도 자체로 하나의 종교로 보고 있다. 21세기 복음주의 신학의 대표주자인 앨리스터 맥그래스는 종교가 위협적이고 영향력이 있을 때 어김없이 등장하는 것이 무신론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종교철학자 앨빈 플랜팅가는 신이 진화의 과정에 개입해 모든 변화의 과정에 함께 있었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진화론을 믿는 사람들은 62% 정도이며, 종교 별로 조사해보면 무신론자와 불교도는 68%, 천주교는 83%, 그리고 개신교는 39% 정도가 진화론을 믿는다고 한다. 불교는 무시무종(無始無終)의 종교로 시작도 끝도 없으며,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보고 있으며, 천주교는 신에 의한 진화를 믿기 때문에, 진화론은 과학적 이론으로 보고 있다고 한다. 그에 반하여 개신교는 진화론은 과학이 아닌 무신론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그 비율이 낮다고 한다. 창조론과 진화론의 논쟁이 유독 미국과 한국에서 심한 것은 기독교 근본주의의 영향이며, 한국은 해방 후 미군과 함께 이 땅에 들어온 기독교의 영향이라고 한다.

 

진화론이나 지적설계론이 격렬한 논쟁을 하며 종교적 함의를 가지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우주와 생명의 기원과 관계된 이론들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신념과 관련된 문제들인 이것은 정신이 먼저인지, 물질이 먼저인지 인간의 도덕기준과 마음에 대한 진실을 말해주는 단초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다위니즘 근본주의자라 칭하지만 무신론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철학자 마이클루스는 종교와 과학은 다르다고 분명하게 이야기 하고 있다. 과학은 법칙의 성질에 대해서 말해주지만, 종교는 법칙의 의미에 대해서 말해주는 것 이라고 한다. 전통적인 기독교는 과학과 종교를 받아들일 수 있는 공간을 가지고 있었으며, 진화론의 경우도 다윈의 진화론은 과학이론 이지만, 지금의 신진화론은 사회적 다위니즘을 포함하여 이제는 총체적 철학에 가까워졌다고 말한다.

 

생명의 기원에 대하여 200년 전에는 종교가 대답할 영역이었지만, 이제는 과학이 대답해야 하는 영역이라는 말에 공감이 간다. 생명의 역사가 6000만년이라고 믿는 것은 종교의 역사이지 과학의 역사는 아닌 것처럼, 종교와 과학은 자신의 길을 가야 한다는 생각이다. 상대의 영역은 상대에게 넘겨주고, 그것을 인정하면 그만인 것을 왜 종교가 과학을 넘나드는지, 진화론이 왜 논쟁의 대상이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 자신이 유신론자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신론자도 아닌 것처럼, 과학도 종교도 그 자체이었음 좋겠다는 생각이다.



k*****1 2010.09.28. 신고 공감 6 댓글 16
리뷰 총점 종이책
진화론과 反진화론의 쟁점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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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런 논쟁을 왜 하는가에 주목 할 필요성을 느낀다. 진화론은 생물학이라는 과학의 영역에 있는 여느 과학이론과 다를 바가 없다. 과학은 가설과 경험적 실험 등을 통하여 검증하고 그래서 보편적이랄 수 있는 진실을 밝히는 과정을 갖는다. 그래서 이 진실을 뒤집는 새로운 진실이 밝혀지면 수정되거나 폐기되기도 한다.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었던 과학적 진실은 둥그렇다는 증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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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런 논쟁을 왜 하는가에 주목 할 필요성을 느낀다. 진화론은 생물학이라는 과학의 영역에 있는 여느 과학이론과 다를 바가 없다. 과학은 가설과 경험적 실험 등을 통하여 검증하고 그래서 보편적이랄 수 있는 진실을 밝히는 과정을 갖는다. 그래서 이 진실을 뒤집는 새로운 진실이 밝혀지면 수정되거나 폐기되기도 한다.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었던 과학적 진실은 둥그렇다는 증거에 폐기되었으며, 인력에 의해 인간이 지구에 붙어있다는 진실도 발견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왜 유독 진화론을 향해서만은 유일신을 믿는 종교론자들이 자기검증 체제를 갖는 과학에 맡기지 않고 억척스러운 개입과 논쟁을 야기하는 것일까?

 

사실 이 저작물은 과학으로서의 진화론을 전제로 하지 않는 것 같다. 단지‘생명 탄생’의 말할 수 없음을 이유로 신비주의와 초월적인 그 무엇에 대한 다분히 종교적인 규명의 갈등에 맞추어져 있어, 세간의 유일신 근본주의자들의 창조론과, 기계론적 이상주의로 의사(擬似)과학이라 할 수 있는 지적설계론을 과학이론인 진화론에 대립시키는 잘못된 전제와 구성을 하고 있다. 이러한 실례로 미국에서 지적설계론이나 창조론을 진화론과 같이 과학 교과서에 실어야 하느냐 마느냐 하는 사법부의 판결 이야기로 시작하는 것과 같이 과학이 아닌 것을 과학교과서에 반영하려는 기이한 기독교 복음주의자들의 행동을 소개하는 것처럼 이미 반영이 기각된 황당한 일화를 담는 것이 그것이라 하겠다.

 

또한 과학적 진리가 마치“사회적 분위기에 영향을 받는”것이라는, 즉 진리란 상황에 따라 바뀌는 것이라는 극단적 상대주의적 논리를 보이기도 하며, 편의주의적 논의로 과학을 종교적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표명하기도 하고, 영국의 특수한 현상을 보편적 세계의 현상으로 확장하여 무신론을 유신론에 대한 또 다른 종교인 듯 인식케 하는 신중치 못한 표현으로 객관적 성찰을 저해함은 물론 진화론의 과학적 논쟁이라는 본질을 흐리기도 한다.

 

어쨌든 주된 논점으로 제기하고 있는 진화론에 대한 비판으로 시작된 기획인 만큼,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이라는 지적설계론자들의 진화론의 비판적 논의가 서두를 장식한다. 교과서에 잘못된 설명을 이유로 진화론 전체가 잘못되었다고 주장하거나, 눈과 같은 생물체의 기관을 예로 들어, 환원할 수 없는 복잡성을 가졌다는 이유로 그 누군가 지적설계자가 생명을 창조했다는 영적 신비로 자연을 설명하는 기계론적 이상주의자들의 주장을 장황하게 나열하고 있다. 결국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이론적 토대로 과학을 흉내낸 의사과학을 과학인양 오해토록 배열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어처구니없게도 “진화론이 믿는 사람이 점점 많아진다는 이유로 종교의 교의처럼 되어버렸다.”는 논리의 비약으로 본질을 훼손하기도 한다.

 

특정 과학 이론을 신뢰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종교의 교의’가 된다고 하면, 만유의 인력의 법칙, 상대성 이론 등등 오늘의 사람들이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모든 과학이론은 저마다의 종교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결국 유일신의 창조론이라는 신념을 지키기 위해 야기되는 비과학적 논쟁의 합리적 타당성이라는 정당성을 부여하는 정말 기괴한 논의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태초의 생명 탄생이라는‘발생학’에서 다루어야 할 분야를 진화론에 대입하여 학문적 경계를 혼동시켜 생명체의‘진화’에 대한 과학적 논증인 자연선택이론을 중심으로 하는 진화론을 무능한 과학처럼 비추는 태도와 같이 바람직하지 못한 논의도 보이고 있다.

 

한편 합리주의 이성중심의 오늘의 사회가 과학의 물질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음은 모두가 주지하고 있는 사실이며, 이로 인한 가치의 재고로서 과학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은 인류의 미래 가치에 대한 고뇌로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허나 진화론에 대한 종교주의자들의 비판을 물질주의로까지 확장하여 포괄적 과학비판의 일환으로 몰아넣는 것 또한 본질을 호도하는 무지한 자세라 아니 할 수 없다. 또한 한 지적설계론에 경도된 사람의 말을 인용하면서 “과학과 종교라는 다른 영역”이니 만큼 영역을 존중하자고 제안하기도 한다. 이는 과학은 종교적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라는 적대의식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진화론이라는 과학이론 자체에 끊임없이 신비주의와 종교성을 주입하려는 편협성을 스스로 멈추지 않으려는 거친 의지라는 저의임을 숨기려는 것과 같다.

 

물론, 이 저작이 리처드 도킨스를 비롯한 에드워드 윌슨, 데니얼 데닛, 제리 코인과 같은 저명한 진화론자들과 마이클 베히나 윌리엄 뎀스키라는 의사과학자들의 지적설계론, 그리고 앨빈 플랜팅카와 같은 창조론자들의 견해를 적절히 배열하여 각각 그들의 이론과 직접의 인터뷰를 통해 생생한 주장을 소개하고 있는 형식으로, 진화론과 종교의 간극을 좁혀보자는 취지임을 천명하고 있으나, 저마다의 주장을 산만하게 배열하기만 하고 있어 프로그램 기획의 진의를 명확하게 파악하기가 곤란하기도 하다. 다만, 진화론에 적의를 보이는 창조론자(지적설계론자 포함)들이 제기하는 논의의 쟁점을 집중적으로 조명하였다는 점과 과학과 종교의 갈등, 진화론의 발전적 현황에 대한 개괄적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는 정보로서의 유익성을 지니고 있다 하겠다.

 

과학은 새로운 입증이 발견되면 기존의 이론은 스스로 폐기된다. 입증할 수도 검증할 수도 없는 신비주의를 과학이라고 주장하거나 불과 6,000년 전에 생명이 창조되었다고 주장하는 황당한 창조론은 과학으로서 다툴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수없이 시중에 나도는 反진화론을 표명하는 저작들의 주장을 지나치게 확대하여 이념적 대립으로 그 갈등을 키우고, 나아가 인류 사회의 분열을 조장하는 발아점이 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종교적 신념을 가진 이들은 자신들의 신앙을 존중하면 될 것이고, 과학은 과학 그자체로서 논박되고 다투어야 할 것이다. 종교로서 과학을 파괴하고, 과학으로 타자의 신념을 훼손하려는 행태는 지양(止揚)되어야 할 것이다. 진화론은 과학이다. 이를 전복할 새로운 과학적 증거가 발견 되었을 때 비로소 논의와 비판의 의의와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닐까...

리뷰 총점 종이책
과학과 종교의 공존을 주장하여 종교의 손을 들어주는 편협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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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창조되었는가? 진화되었는가?   인간은 창조되었을까? 진화되었을까? 이와 같은 근본적인 물음에 대해 생각해보고 고민해 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경쟁이 심화된 오늘날 현대 사회에서는 돈벌이와 직접 관계가 없는 이런 질문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보는 것은 낭비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에드워드 윌슨의 말처럼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안다면, '우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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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창조되었는가? 진화되었는가?

 

인간은 창조되었을까? 진화되었을까? 이와 같은 근본적인 물음에 대해 생각해보고 고민해 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경쟁이 심화된 오늘날 현대 사회에서는 돈벌이와 직접 관계가 없는 이런 질문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보는 것은 낭비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에드워드 윌슨의 말처럼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안다면, '우리가 누구인지' 그리고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에 세상의 기원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하는 일을 멈출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는 진화와 창조의 문제가 본격화 된 것은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이 2007년에 출판되고 난 다음일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도킨스는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논증하였는바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후 우리 나라에서 이에 대한 논쟁이 꾸준히 계속되었고 EBS에서도 다큐멘터리를 통해 진화와 창조의 논쟁을 소개하였고 그 다큐멘터리를 책으로 만든 것이 바로 이 책이다.

 

 


  

 

과학과 종교의 공존을 주장하는데 그 속 뜻은? 


 지금까지 수 많은 진화론과 창조론을 다룬 책을 읽어 봤지만 이와 같이 읽고 나서 화가 나는 책은 처음이었다. EBS 다큐프라임 제작팀은 나름 공평한 입장에서 인터뷰하고 책을 썼다고 말하고 있지만 나는 그런 의견에 절대 동의할 수 없다. 양 측 모두에게 공평한 척 하면서 실제로는 한 쪽의 손을 들어주는 것은 오히려 다른 진화론과 창조론 책에서 하나의 주장만을 일관되게 하는 것보다 더 문제가 많은 것이라고 하겠다. 한 마디로 표현하면 이 책은 과학과 종교의 공존을 주장하여 교묘하게 종교의 손을 들어주는 책이라고 하겠다.(마치 2MB처럼 친서민 정책을 외치면서 부자 감세 하는 것과 다름 없다.) 


 

 

 

  

 

이 책은 과연 공평하게 집필되었는가? 

 

 솔직히 말해보자. 이 책이 과연 공평한 관점에서 집필된 것일까? 진화론에 대한 반대 논거로 '지적 설계론', '창조과학'그리고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등을 예로 드는데 소개하는 것 까지는 그렇다고 하자. 그런데 내용을 살펴보면 중립적인 입장에서 소개하는데 그치지 않고 은근히 진화론을 비판하고 창조론을 뒷받침하는 듯한 표현이 담겨 있어 읽는데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물론 EBS 다큐프라임 제작팀에 대해서는 최대한 공평하게 썼다고 당연히 부인하겠지만 한 가지 예를 들어보도록 하겠다. <들어가는 글>을 보면 진화론을 비판하고 있는 지적설계라는 이론을 소개하며 '그 정당성을 떠나서 진화론에 도전하는 이론이 끊임없이 존재해왔다는 사실 자체가 매우 흥미롭다'고 말하고 있다. 초등학생이 봐도 이 문장의 속 뜻은 진화론에 보다는 진화론에 도전하는 이론에 호감을 가지고 있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런 점은 각 학자들의 인터뷰에서도 알 수 있다.

 각 챕터 마지막에는 진화론과 창조론을 지지하는 학자들과의 인터뷰가 실렸는데 진화론을 지지하는 학자에게 하는 질문은 진화론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질문이 많았고 창조론을 지지하는 학자들에게는 그런 질문은 하지 않았다. 예를 들면 에드워드 윌슨과의 인터뷰에서 "하지만 단순히 종교가 진화의 산물이라고 하기에는 종교에도 그 나름의 설득력 있는 논리가 있지 않습니까?"라는 질문을 하였고(p.152) 도킨스에게 한 "모든 종교에 반대하십니까? 종교에 이점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p.142)라는 질문은 종교의 이점을 묻는 질문을 한 데 비해 진화론을 비판하는 입장인 마이클 베히의 인터뷰 질문에는 "다위니즘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이 무엇입니까?"(p.68)와 같이 마이클 베히가 좋아할 만한 질문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적 설계론을 소개한 것은 아직 우리 나라에 지적설계론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많은 상황에서 소개할 만하다고 하더라도 지적설계론이 지금까지 오랜 시간 검증되어 과학적 증거가 누적된 진화론과 동급 이론(지적 설계론을 Theory라 부를 수 있는 지도 의문이다.)은 분명히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적 설계론을 진화론과 같은 수준의 과학이라고 여기고 있다. 또한 이른바 '창조 과학'에 대해서는 웃음 밖에 나오지 않는다. 창조 과학을 대해 중립적으로 서술해보니 오히려 처음 듣는 사람은 이에 대해 그럴 듯 하구나 하고 생각하기 쉽다. 왜 과학자가 창조 과학을 '과학'이라고 부르지 않는지 아는 사람이라면 창조 과학에 대한 이런 서술에 대해 불만이 많은 것은 당연할 것이다.

 또한 마지막 결론 부분 역시 문제가 많다. 요약하면 종교와 과학은 서로 존재하는 평면이 다른 것이고 서로 존중해야 한다고 하였는데 이런 입장은 종교를 두둔하는 결론이다. 한 마디로 종교와 과학은 서로 다투지 말고 잘 지내자라는 뜻인데 지금까지 종교인이 과학자의 검증 요구를 묵살해 온 논리와 다른 점이 없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그나마 중립적으로 진화론과 창조론에 대해 체계적으로 설명하려고 노력한 책이니 만큼 처음 이런 논쟁에 대해 접한 사람에게는 추천할 수 있는 책이라고 하겠다. 다만 이 책을 읽은 후에 진화론과 창조론에 대해 좀 더 '정확'하게 알아갈 필요는 있을 것이다.


 

a******n 2010.12.08. 신고 공감 3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세계관은 개인이 결정할 나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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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최초로 자아를 인지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들기 시작한 고민은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 '세상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하나님은 어떻게 스스로 존재하는 걸까'에 대한 의문이었다. 이 세가지 질문은 아무리 오랫동안 생각을 한다고 해도 먼지 만큼의 실마리도 찾아지지 않고, 빛이 하나도 없는 어두운 밤의 시골길을 걷는 것마냥 생각이나 상상으로는 조금도 알아낼 수 없는 답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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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최초로 자아를 인지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들기 시작한 고민은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 '세상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하나님은 어떻게 스스로 존재하는 걸까'에 대한 의문이었다. 이 세가지 질문은 아무리 오랫동안 생각을 한다고 해도 먼지 만큼의 실마리도 찾아지지 않고, 빛이 하나도 없는 어두운 밤의 시골길을 걷는 것마냥 생각이나 상상으로는 조금도 알아낼 수 없는 답들이었다.

그러던 중 성경을 조금씩 읽어가면서, 그리고 어디선가 강연 내지는 책을 통해서 창조과학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 그 때 어찌나 흥분되고 심장이 뛰었는지 모른다.

생명의 처음에 대한 답.

이것이 바로 나의 세계관의 근간이었다.

 

나에겐 하나님의 창조법칙에 의해 세상이 시작되었다는 가치관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안경이 씌여져 있다. 따라서 걸러서 볼 수 있는 시각이 있으므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을 보아도 그의 허풍당당한 소설 속 신들의 세계를 따라 읽으며 호탕하게 같이 웃어넘길 수 있다.

하지만 교과과정 가운데 세상의 시작에 대한 이론이 진화론만 소개되고 그것만이 과학적으로 밝혀진 사실인양 교육되는 현실과 책, 영화 등 일반 문화 속에 녹아있는 진화론이 자연스럽게 학습되는 현재의 시스템을 바라보는 마음에는 불편함과 안타까움이 있다.

 

이런 싸움은 15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다위니즘의 시작과 더불어 지금까지 세계 곧곧에서 일어나고 있다.

흥미롭게도 교과과정에 진화론만 소개되는 우리나라에서 진화론을 믿는 사람의 비율은 60%정도 밖에 안된다고 한다. 기독교 국가인 미국은 40%정도이다.

진화론과 창조론의 대립은 평행선을 달리고 있지만, 진화론은 과학이고 창조론은 종교라는 시각에서 그 내용을 판단하게 되면 이미 비교할 수 없는 이론들이 되어버리고 만다. 어느 인터뷰이의 비유처럼 '설악산은 1700미터야', '아니야 치악산은 1300미터야' 하며 싸우는 것과 비슷한 꼴이다.

따라서 이런 세계관의 선택은 개인이 결정해야 한다고 본다. 따라서 공정하게 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하는게 아닐까?

 

'창조과학'이라는 말만 들어도 심장이 벌렁벌렁 거리고 그 이야기를 듣고 공부하는 것이 신나고 재미있었던 때가 있었다. 따라서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창조의 증거들에 대한 연구결과, 노아의 홍수에 대한 증거들에 대한 책과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진화론과 창조론에 대한 입장 차에 대한 책을 즐겨 보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진화론에 대한 책들은 천편일률적으로 창조론에 대한 시각이 몽상가들의 집단을 바라보는 것 같은 삐뚤어진 시각뿐이었다.

 

이제 [신과 다윈의 시대]를 이야기 해 보자면, 이 책은 보기 드물게 중립적인 위치에서 창조론 (지적설계론) 쪽의 주장과 진화론쪽의 주장을 적절하게 비교하며 그 양편에서 가장 최전선에 선 학자들을 중심으로 그들의 책 내용과 직접 인터뷰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

따라서 진화론과 창조론에 대한 관심이 있으나 그 과학적인 내용이 힘들었던 독자들에게 양쪽의 불꽃튀는 대결을 좀 더 쉽게 접근하여 다가갈 수 있도록 소개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읽고 싶었으나 책장이 쉬이 넘어가지 않아서 언젠가는 읽어보리라 생각하며 제목만 차곡히 수집하고 있었던 지적설계이론과 그것에 맞서는 리처드 도킨스의 책들에 대하여 기본 개념을 잘 정리해 주어서 하나씩 도전해 볼 용기가 난다.

 

필립 존슨 [심판대 위의 다윈] : 진화론이 과학적 근거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자연주의 철학에 근거한다고 주장

 

마이클 베히 [다윈의 블랙박스] :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이라는 이론으로 유기체들을 구성하는 작은 조각들로 따로 떼어 놓았을 시에는 그 기능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생명체는 복잡하다는 것. 즉, 편모를 예로 들어 편모가 분당 10000회의 회전속도로 움직이는데 이런 기능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구성요소가 250여 가지나 된다. 그 중 하나라도 없다면 아예 그 기능을 수행할 수가 없으므로 처음부터 정확한 위치에 구성요소들이 조립되어 있어야 하는데, 오랜시간 진화에 의해 저절로 구성요소들이 자리를 잡아 갈수는 없으므로 지적인 존재의 설계가 있어야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윌리엄 뎀스키 [설계추론] : 수학의 확률이론을 통하여 지적설계론을 지지. 생명체가 우연히 탄생했을 확률이 없다는 뎀스키의 주장에 대한 진화 생물학자 스티브 존스의 반박내용이 아이러니하다. 실험적으로는 아직까지 성공하지는 않았지만, 3억 5천만년이라는 시간동안 단 한 번은 그런 일이 일어 났을 수 있었다. 지금 창문을 열었을 때 세상의 모든 산소 분자가 사라져 죽는 경우는 확률이 낮을 뿐이지 전혀 불가능 한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앞으로 수업중 확률의 범위가 0이상이 아니라 0초과라고 가르쳐야 할까?

 

리처드 도킨스 [이기적 유전자] : 동물의 이타적인 행동은 이기적인 유전자의 복제본을 퍼뜨리기 위한 수단이며 인간은 도구일 뿐이라는 주장,

리처드 도킨스 [눈먼 시계공] : 시계공이 정교하게 시계를 설계하듯이 신이 생명을 창조했다는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쓰여진 책, 자연선택이 바로 눈먼 시계공으로 의도 없이 생명이 만들어 질 수 있음을 주장.

리처드 도킨스 [만들어진 신] : 종교를 정신 바이러스라고 하고 이 책 이후 무신론 운동을 펼침

 

엘리스터 맥그래스 [도킨스의 신], [도킨스의 망상] : 도킨스와 같이 대학에서 생물학을 공부하다 생명의 기원에 대한 성찰 중 기독교를 믿게 되고 도킨스의 종교에 대한 비판을 하나하나 변증하는 책을 씀.

 

이 외에도 진화론에 대한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 하는 학자들, 진화론과 인문사회학의 통섭을 이야기하는 학자들 이야기도 나오지만 거기까지는 다음에 소화를 시켜야 할 듯 하다.

 

YES마니아 : 로얄 d******h 2010.10.06. 신고 공감 2 댓글 1
리뷰 총점 종이책
당신은 '진화론'을 믿으세요?
"당신은 '진화론'을 믿으세요?" 내용보기
<진화론>이라고 하면 흔히들 '원숭이'에서 '사람'으로 짜잔~하고 변신한 것을 떠올리기 십상이다. 이는 잘못된 상식이며 진화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 여러 세대를 거쳐야 일어나는 것이지 '포켓몬'이 진화하듯 휘릭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또한 현재의 원숭이가 오랜 시간이 흐르면 사람이 된다는 것도 <진화론>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어쨌든 이런 잘못된 상식이라도 우리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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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화론>이라고 하면 흔히들 '원숭이'에서 '사람'으로 짜잔~하고 변신한 것을 떠올리기 십상이다. 이는 잘못된 상식이며 진화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 여러 세대를 거쳐야 일어나는 것이지 '포켓몬'이 진화하듯 휘릭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또한 현재의 원숭이가 오랜 시간이 흐르면 사람이 된다는 것도 <진화론>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어쨌든 이런 잘못된 상식이라도 우리 나라에서 <진화론>을 믿는 사람들이 그닥 높지 않게 나왔다. 개인적으로 참 믿을 수 없는 조사결과인데, 그 까닭으로 <종교적인 믿음>과 상반되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꽤나 높았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교(기독교)에서 말하는 <창조론>과 다른 '믿음'이기에 아무리 '과학'이라고는 하지만 <진화론>을 곧이 곧대로 믿기는 힘들다는 의견이 참 많단다.

  또 한 가지 의아스러운 점은 같은 '그리스도교'이고, '같은 성경말씀'을 따르는 <가톨릭>과 <개신교>가 <진화론>에 대해 말하는 관점이 서로 다르다는 점이다. 먼저 <가톨릭>에서는 종교와 과학은 별개의 것이기에 얼마든지 '종교적 신념'을 지키면서 '과학(진화론) 연구'를 할 수 있다는 관점이었다. 그러나 <개신교>에서는 <진화론>에서 말하는 것이 '성경 말씀'과 명백히 상반되기 때문에 결코 인정할 수 없다는 관점이었다.

  그런 <개신교>쪽에서는 '과학'조차 <성경 말씀>의 '문자 하나하나 해독'하기에 이르러 오래 전에 <창조과학>이라는 것을 '만들어(?)' 내었다. <창조과학>을 자세히는 모르지만 간략히 표현하자면, 46억 년이나 되는 <지구의 역사>를 부정하고 약 5000여 년 전에 하나님이 '6일'만에 창조했다는 성경 말씀 '그대로' 이해하기 때문에 심지어 '공룡'과 '사람'이 함께 뛰어노는 장면조차 <(창조)과학적 사실>이라며 주장하는 과학이다.

  이는 <과학>이라고 말하기조차 부끄러울 정도이기 때문에 과학자들도 그저 <맹목적인 신앙심>으로 치부하며 아예 상대조차 안 한단다. 그런데 오늘날 <과학자들>을 경악(?)케 하는 <지적설계론>이 등장하고 나서는 부쩍 경계를 하며 아주 심각하게 대립, 논쟁을 벌이고 있단다. 아직 우리 나라에서는 공개적 담론조차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얼마 전 리차드 도킨스가 쓴 <만들어진 신>이 쓰여질 즈음부터는 본격적인 대결양상을 벌이고 있으며, 아주 팽팽하게 논쟁을 하고 있다.

  이 책의 상당부분도 바로 이런 논쟁 양상을 풀어 내고 있다. 다름 아니라 <진화론 vs 지적설계론>이다. 앞서 말한대로 <진화론>을 옹호하는 과학자들은 <창조과학>은 상대조차 하지 않는다. <창조과학은 '과학'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적설계론>에는 핏대를 올리며, 심지어 학교에서 <과학>시간에 가르쳐서는 안 되는 '이론'이라고 강변한다. 왜냐 하면, <지적설계론>은 진화론이 생명이 진화하는 '과정'은 잘 설명할지 몰라도, 가장 중요한 '생명 탄생의 비밀'을 밝혀내지 못하므로 '완벽'하지 않은 이론이라며 <진화론의 맹점>을 들쑤시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학교현장에서 아이들에게 과학시간에 <진화론>을 가르친다면, 반드시 <지적설계론>도 함께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어느새 논점은 '과학시간'에 <지적설계론>을 가르쳐야 하느냐 마느냐로 이어진다. 이것은 <지적설계론>이 '과학'이냐, 아니냐에 대한 심각하고 철학적이며, 동시에 종교적인 담론이 이루어져야 한다. 단적으로 보았을 때 <지적설계론>은 절대 '과학'일 수가 없어 보인다. 왜냐면 <지적설계론>의 핵심이 사람처럼 '복잡한 존재'가 진화론에서처럼 단세포에서 '우연히' 만들어졌다는 것을 믿기 힘들기 때문에 반드시 이런 일련의 과정을 '설계'할 '지적인 존재(이를 테면 신(神))'가 있어야 가능하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과학'을 설명하는데 '신'이 개입한다면 결코 '과학'일 수 없다는 관점이 <진화론>을 옹호하는 과학자들의 보편적인 입장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신'이 꼭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유일신'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기에 <지적설계론>을 특정 종교를 대변하거나 옹호한다고 볼 수는 없다. 그렇지만 이를 '과학'으로 볼 것이냐, 말 것이냐는 두고두고 논란거리다. <과학>은 증명과 검증이 가능해야 하는데, '신의 존재'를 어찌 증명할 것인가? 아무리 <지적설계론>을 옹호하는 과학자들이 '고물상에 태풍이 불어 닥친다고 태풍이 지나가고 난 뒤 747비행기가 만들어 질 수 없다'며 그러므로 분명 <지적인 존재>가 증명된단다. 그렇지만 이런 귀납적이고 간접적인 증명만으로 '신의 존재'를 증명한들 모든 과학자들을 속시원히 해갈(?)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렇게 <진화론>이 공격(?)받고 있는 까닭은 그만큼 <진화론>이 빈틈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창조과학(과학이라기보다는 종교에 가까운)>만큼 많은 사람들이 홀딱 넘어간 정도로 끌림(?)이 없기도 하고, <지적설계론>처럼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식으로 설명이 쉽지도 않다. 그러다 보니 <진화론>을 좀 더 '대중화'하기 위해 <종교화>시키려는 것일까? 요즘 리차드 도킨스가 추진하고 있는 일련의 행보를 볼작시면, <과학이 종교화>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쉽지 않다.

  과학자들은 일단 증명되고 검증되지 않는 <사실>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신의 존재> 따위는 믿지도 않을 뿐더러,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것조차 결코 '과학'일 수 없다고 본다. 그래서 과학자라면 <무신론자>라고 주장하며, <신앙을 지닌 과학자>가 있다면 하루빨리 '커밍아웃'하길 바란다고 주장하기에 이른다. 얼마전 <스티븐 호킹> 박사가 [위대한 설계]에서 "신은 없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다보니 <종교계>와 껄끄러운 관계가 되는 것은 물론, 맹신도들에 의해 집중공격을 받기 일쑤다. 그러면 또 <무신론자 과학자들>은 더욱 강력하게 주장하는 것을 반복하면서, 자신들을 옹호하고 지지해줄 '신자(信者)'를 찾는 듯한 행보가 "과학을 종교화하려는 것이냐", 더 나아가 "과학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는 <과학만능주의>에서 탈피하라"라고 비난받기에 이르렀다.

  <과학만능주의>란 지금은 아직 인간의 지성이 모자라 신을 대신해 모든 것을 해결하지 못하지만, 나중에는, 언젠가는 <과학>이 발달하여 모든 궁금증과 비밀을 풀어낼 것이며, 인류가 당면한 모든 문제를 비롯해서 하나뿐인 지구를 구하는 것조차 <과학>이 해결해 줄 것이니 인류가 믿고 의지할 것은 신이 아니라 과학이다...뭐, 대충 씨부리면 이런 내용이다. 중세시대 유럽을 휩쓴 <그리스도교> 일변도의 삶의 폐해를 경험한 유럽인들이기에 <과학만능주의>조차 맹신에 빠지면 위험하다는 사실은 쉽게 인지할 수 있다.

  그런데도 도킨스를 위시한 <진화론 옹호 과학자들>은 <과학>의 순결함을 <창조과학>이나 <지적설계론> 따위에 더럽혀(?)지지 않기 위해 참 애를 쓰고 있다. 또한 수많은 종교인들은 과학자들의 이런 행보를 자신들의 종교에 위협을 가하는 행위로 간주해 둘 사이의 갈등은 쉽게 풀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과학>은 과학이고, <종교>는 종교이다. 서로 다루는 범주가 다르고 말하는 의의가 서로 다르다. 또한 <과학>은 '지적 호기심'은 풀어줄 수 있을지언정 '삶의 지표나 위안, 그리고 행복'을 얻기에 모자름이 너무 많다. 마찬가지로 <종교>는 내 삶을 더욱 경건하며, 진정한 삶의 목적을 보여주며 행복에 이르는 지름길을 제시해주기도 하지만 '사물의 이치'를 사리에 맞게 분별하게 해주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과학>과 <종교>는 서로 '공존'하여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 '수단'이 되어야지 그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 삶 자체를 피곤하게 만들 필요는 없다고 본다. 이 책의 마무리도 이런 의도여서 공감하였다.

  서로 양보할 수 없는 <무엇>이 갈등을 일으키게 한다. 그리고 그 갈등은 종종 사소한 다툼으로 이어지고 크게는 전쟁에 이르기도 한다. <진화론>이 모든 과학을 대변하지도 않으며, <지적설계론>이 종교라고만 보기에도 힘든 상황이다. 그렇기에 이 논쟁을 <과학 vs 종교>로만 볼 수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 도식화시키면 시킬수록 갈등이 풀리기는커녕 오히려 심화되고 불난 데 부채질하는 격이 될 것이다. 오해는 오해를 부르는 법이니 서로 똘마니를 이끌어 패싸움으로 번지게 하지 말아야 한다고 본다.

  이런 싸움이 아직 우리 나라에는 상륙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나마 다행으로 생각되지만, 일부 <개신교>를 중심으로 <지적설계론>을 격하게 옹호하며, 미국에서와 마찬가지로 학교현장에서 <가르쳐야 할 내용>으로 추진하려는 속셈이라면 머지 않아 강 건너 불구경뿐 아니라 시커멓게 타버린 제 집을 보게될 것이다. 아무쪼록 논쟁은 논쟁으로만, 담론은 담론의 장에서만 해야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제발 재밌는 불구경은 강 건너에서만 하길...욕심쟁이 같더라도 이것만은 제발...내가 바라는 것은 월드피~스(")34-34-36~



YES마니아 : 로얄 이달의 사락 z******8 2011.07.01. 신고 공감 2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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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나지 않는 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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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에서 방영한 다큐멘타리인 신과 다원의 시대가 책으로 출간이 된것인데 이책은 진화론자들과 창조론자들 그리고 지적셀계론을 말하는 석학들의 의견을 모아놓은 책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별로 주목을 못받고 있는 인간및 생명의 창조의 비밀을 논하는 이야기들인 진화,창조,지적설계의 3대 이론을 살명하고 관심을 높일 생각으로 만들어진 책인것 같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일반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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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에서 방영한 다큐멘타리인 신과 다원의 시대가 책으로 출간이 된것인데 이책은 진화론자들과 창조론자들 그리고 지적셀계론을 말하는 석학들의 의견을 모아놓은 책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별로 주목을 못받고 있는 인간및 생명의 창조의 비밀을 논하는 이야기들인 진화,창조,지적설계의 3대 이론을 살명하고 관심을 높일 생각으로 만들어진 책인것 같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일반적인 사람들은 별로 관심을 가질만한 이론이라고는 생각을 하지 않는데 그러한 이유로는 무슨 결론이 나오더라도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인류에게는 그러한 사실이 새삼스러운 결과를 만들어 놓을것 같다고는 생각을 안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창조가 되었든 진화를 하였든 모두 상관이 없이 현재의 인간의 모습으로 살아가는데 아무런 불편이 없고 생활을 하는데 있었써도 불편을 주는 일들은 없기 때문에 무엇으로 결론이 나질는 의문이지만 결론이 상관은 없다는 생각을 해본다.

 

1. 창조론의 생각

 

대체로 창조론은 유일신을 믿는 종교에서 나오는 이야기 들인데 인간이나 동물들과 같은 모습으로 이루어 지는데는 어떠한 절대적인 신이 있어써 그가 모든 것을 만들어야지만 이러한 완성이 된 모습을 유지할수가 있고 자신들의 교전에 그러한 사실이 나오기 때문에 믿어야 된다고 이야기를 한다.

 

2. 지적 설계론의 생각

 

1번의 창조론과 비슷한 생각이라고 할수가 있는데 우주의 지적으로 고등한 생명체가 지구를 찾아와서 자신들의 설계도를 가지고 생물들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러한 이유로는 생명체를 이루는 부분들의 기능이 너무나 복잡 하여서 진화로는 이루어 지는것이 어렵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어떠한 생명체가 무슨 생각으로 만들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들이 설계한 대로 진화가 이루어 지고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설명을 하는 사람들이다.

 

3. 진화론자들의 생각

 

모든 지구상의 생물들은 언제 인지는 몰라도 우연한 기회로 만들어진 최초의 생명체에게서 분화가 되어서 수많은 종류로 나누어 지고 그들이 점점 생활을 하면서 현재의 모습을 만들어 왔다는 이론을 설명하고 있다.

 

과학의 발전으로 점점 많은 이론이 생기고 증거가 만들어 지고는 있지만 모든것을 설명하는데는 한계가 있는 학문이다.

 

4. 이러한 이론들을 바라보는 종교계의 관점

 

이슬람 : 절대적으로 창조론을 신봉하고 진화론은 무시하고 있다.

 

천주교 : 진화론을 일부 받아 들여서 작은 범위의 진화는 인정을 하지만 큰 범위는 인정을 안한다.

 

기독교 : 유럽의 기독교는 별로 신경을 안쓰는 분위기 이고 미국의 복음주의 개신교쪽에서는 진화라는 말이 성경에 없기 때문에 절대로 반대를 한다.

 

불교 : 진화론의 원리가 불교의 기본 정신과 거의 일치를 하므로 진화론쪽으로 본다.

 

과학계의 입장은 일부의 사람들은 서로의 관점을 지키려고 싸움을 하지만 일부는 과학과 종교의 입장과 범위가 다르므로 싸움보다는 서로간의 조화를 이루어서 접점을 찾기를 바라는 사람들도 있다.

 

결론을 내리자면 다원이 비글호를 타고 갈라파고스섬에서 새를 조사하던중에 내린 결론인 진화론이 그동안의 유럽을 지배하던 성경의 창조론을 신봉을 하던 사람들의 인식에 새로운 이론을 더하고 그러한 이론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서로의 세력 싸움의 양상으로 가고 있다고 할수가 있는데 이러한 이론들의 문제는 오랜 시간이 흘러야 지만 결론이 나올것으로 생각이 된다.

 

일부의 과학자들의 생각대로 과학과 종교는 서로의 가치관이 다르므로 서로의 영역에서 도움을 주면서 사람들의 생활에 도움을 주는 쪽으로 발전을 하였야 된다고 생각을 해본다.

 

별로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진화,창조론에 대한 의견들을 보면서 느낀점은 어떠한 결론으로도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욕구에는 별로 지장을 줄것 같지는 않다고 생각을 한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k****3 2010.09.27. 신고 공감 2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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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다윈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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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론과 진화론중 어느것이 맞는가에 대한 토론은 결론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영국의 박물학자 찰스 다윈은 인류가 하등동물에서 발전을 거듭한 진화의 결과물이라고 파악한 ‘종의 기원’을 발표해 19세기 과학계를 뒤흔들었다. 그러나 이 책이 출간된 당시 종교계는 많은 비난을 쏟아냈고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인류는 하나님으로부터 지음받았으며 예수가 인류를 구원했다는 기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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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론과 진화론중 어느것이 맞는가에 대한 토론은 결론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영국의 박물학자 찰스 다윈은 인류가 하등동물에서 발전을 거듭한 진화의 결과물이라고 파악한 ‘종의 기원’을 발표해 19세기 과학계를 뒤흔들었다. 그러나 이 책이 출간된 당시 종교계는 많은 비난을 쏟아냈고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인류는 하나님으로부터 지음받았으며 예수가 인류를 구원했다는 기독교적 세계관이 지배하는 시대에 인간이 하등 생물체에서 진화했다고 하는 주장은 그 당시로서는 받아즐여지기 어려운 학설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2부작이었던 다큐멘터리의 내용과 당시 미처 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더욱 보강해 담고 있다. 

2009년 방송된 EBS TV 다큐멘터리 '신과 다윈의 시대'는 다양한 시각에서 진화론을 바라보면서 기존 다큐와 차별화를 시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주축은 창조론을 주장하는 종교계와 진화론의 대표주자인 다윈에 대해 조명하고 있다. 진화론과 지적설계론, 종교이론 등 어렵게만 생각되는 과학과 철학 문제를 쉽게 설명한다

 

일반적으로 과학과 종교는 오랫동안 적대관계에 있어 왔다. 그리고 신념과 과학이라는 것을 등에 업고 각각 평행선을 달려왔다. 하지만 창조론자는 창조주의 명령에 따라 갑자기 나타난 것은 없고, 모든 것은 수십억 세대를 거쳐 형성되었으며 오늘날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옛날의 종에서 천천히 발전해 나왔다는 것이다. 반면에 진화론자들은 인간도 다른 모든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진화과정의 산물이며 따라서 인간의 지적능력은 생물학적 진화의 매커니즘에 의해 형성되고 제한된다는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과학과 신, 진화와 창조는 하나가 다른 하나를 배척하는 대안이 아닌, 상호보완적관계라 말할 수 있겠다.

 

새롭게 안 사실중에서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미국, 영국에서는 진화론을 믿는 사람이 절반이 안되었으며, 우리나라는 62% 정도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전공이 어학인 나로서는 과학에 대해 거의 문외한이다. 하지만 여기에 실려져 있는 글들은 일반대중을 위한 쉽게 써져있는 편이라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과학이 다룰 수 없는 또 하나의 영역이 형이상학이다. 책을 읽어가면서 진화론의 시대에 과학과 종교를 어떻게 화해시켜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라는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던것 같다.

k****7 2010.09.23.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