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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2] 서평(書評)을 리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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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이란? 우리가 혼용해서 쓰지만 대체로 ‘서평’이라고 하면 어느 정도 전문성을 가진 사람이 책의 내용과 배경에 대한 객관적이고 분석적으로 소개하는 것이라고, ‘독후감’은 책에서 내가 느낀 주관적인 소감을 쓴 것이며, ‘리뷰’는 책이나 공연 등의 얼개를 추려내어 소개하는, ‘서평’과 ‘독후감’을 모두 포괄하는 것이라고 본다. 요컨대 독후감은 ‘책’이 아니라 ‘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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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이란?

리가 혼용해서 쓰지만 대체로 서평이라고 하면 어느 정도 전문성을 가진 사람이 책의 내용과 배경에 대한 객관적이고 분석적으로 소개하는 것이라고, ‘독후감은 책에서 내가 느낀 주관적인 소감을 쓴 것이며, ‘리뷰는 책이나 공연 등의 얼개를 추려내어 소개하는, ‘서평독후감을 모두 포괄하는 것이라고 본다.

컨대 독후감은 이 아니라 책을 읽은 나에 대한 글이라면 서평은 내가 읽은 책에 대한 글이다. 또한 독후감이 를 위한 글이라면 서평은 그 책을 읽은/읽을 다른 사람을 위한 글이다. 다시 말해 책에 대한 감상을 피력하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행위이지만, 책을 비평하는 일은 그 자체로서 사회적인 행위다. 서평이 피력하는 가치 판단에 객관적으로 설득력이 있는 근거가 요구되는 것은, 사회적 행위에는 당연히 사회적 책임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타당한 근거를 생략한 가치판단은 무책임한 일이다. 반면에 감상은 그것이 아무리 부정적인 것이라 해도 책임을 물을 수 없다.1)

 

 

책세이 혹은 책수다에 대한 잡담

런데 재미있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무모하다고 해야 할까 리더스가이드라는 곳에서 책에 관한 책 <100인의 책마을에 대한 리뷰대회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처음에는 별 희한할 일들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100인의 책마을의 저자 중 한 명이면서 불로그 이웃인 까탈님의 이벤트에 참여해서 예쁜 선물상자에 담김 책을 받고 보니, 시간이 흐를수록 입 싹 씻고 가만히 넘어가기가 점차 껄끄러워지기 시작해서 서평은 아니지만 독후감 수준의 리뷰라도 올리기로 결심하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런데 책을 다 읽어도 막막했다. 도대체 무엇을 써야 할 지.

이 책의 책 머리에도 실린 서평집을 다 읽은 후, 독자의 머릿속에는 과연 몇 권의 책이 남아있을까? 막상 서평집을 봤는데 읽은 책이 별로 없다는 자괴감만 남는 경우도 있다. 그 반대로 읽을 책의 목록이 너무 늘어 부담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무엇보다 책만을 말하다 보니, 무언가 구체적으로 와 닿지 않는 느낌이 들 수도 있다. 이것이 책 읽는 책의 태생적 한계일지도 모른다.2)라는 고백이 정말 절실하게 마음에 다가왔다.

결국 내가 선택한 것은 그냥 펜이 가는 대로(?) 어설픈 독후감이 될 지라도 글을 쓰는 것이었다.

 

보일님은 마라톤에 대한 집착(?)을 고백하면서 과거는 회한을 불러오고 미래는 불안을 불러온다. 그러나 현재는 무 無의 공간, 자유의 공간이었다3) 라고 언급했다. 그의 말처럼 달린다는 것이 어느 순간에 이르면 온갖 잡생각에서 벗어나서 일종의 법열(法悅) 상태에 빠지게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여행을 하는 것도 현재의 나를 이루는 혹은 엮어 매고 있는 무수한 인연의 그물에서 벗어나 아무도 나를 모르는 사람들 속에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유의 공기를 맛보고 싶어서일지도 모른다.

 

을 읽는 것도 그런 것이 아닐까? 의무적으로 읽는 책이라면 모르되 자신의 마음이 가서 책을 집는 순간, 우리는 책을 통해 책을 읽는 순간만큼은 자유로운 존재가 된다.

하지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책수다이건 책세이건 책을 통한 익명이라는 가면 속에 잠들어있는 자신의 은밀한 감정 혹은 생각을 다른 이에게 말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한다.

 

 

100인의 책마을을 위하여……

전과 달리 이제는 ‘0’‘1’이 떠도는 공간에 수많은 자기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공간들이 존재한다. 당신을 사로잡고 있는 충동에 가만히 몸을 맡겨라. 그리고 그 공간들을 자신의 글로 채우면 된다. 서툴다고 겁내거나 돌아서면 아무 것도 안 된다.

황금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갈라 여물지 않는 글을 억지로 짜내는 것도 어리석지만, 기껏 거위가 낳은 황금을 그냥 방치해놓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다.

 

처음부터 서평을 쓴다고 나댈 필요는 없다. 당신이 쓴 리뷰가 누군가 당신의 이름을 부르게 만들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출판사에서 개최하는 리뷰대회나 온라인 서점에서 선정하는 우수리뷰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 이제 용기를 내어 자신만의 책수다를 표현해보자. 지금 당장은 어설프고 어색하겠지만, 중간에 포기하지 않는다면 언젠가 당신도 <100인의 책마을의 또 다른 1인이 될 것이다.



1)  김보일, 김용찬 등, <100인의 책마을>, (리더스가이드, 2010), p. 311

2)  같은 책, p. 10

3)  같은 책, p. 23

w******f 2010.09.11. 신고 공감 9 댓글 17
리뷰 총점 종이책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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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책 안내 다소 독특한 책이라 먼저 소개가 필요할 것 같다. '책세이와 책수다로 만난 439권의 책'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책세이란 '책으로 세상을 이야기한다.' 또는 책 에세이란 개념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내 인생을 바꾼 한권의 책>, <문학의 숲을 거닐다>와 같이 책의 내용과 함께 책에 얽힌 자신의 삶과 경험, 세상보기 등을 적절히 버무린 그런 종류의 책이다. 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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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책 안내

다소 독특한 책이라 먼저 소개가 필요할 것 같다. '책세이와 책수다로 만난 439권의 책'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책세이란 '으로 상을 야기한다.' 또는 책 에세이란 개념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내 인생을 바꾼 한권의 책>, <문학의 숲을 거닐다>와 같이 책의 내용과 함께 책에 얽힌 자신의 삶과 경험, 세상보기 등을 적절히 버무린 그런 종류의 책이다. 반면 책수다는 23인의 저자(책 제목에 있는 '100인'은 다수를 의미하는 대유법인가 보다)가 말하는 책의 주제와 관련해 읽을 만한 책들을 모아 촌철살인의 짤막한 형태로 소개한 부분이다. 한가지 주제에 대해 수다떠는 형식으로 책을 소개한다는 의미이다. 책세이책수다에 소개된 책들이 모두 439권이라고 한다.

 

2. 좋은 점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좋은 책을 소개받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낀다. 거기에 백인백색 사람들이 밝히는 자신의 책읽는 동기와 배경, 인생의 친구가 된 특별한 책에 얽힌 사연들을 소개받는 기쁨이 더해진다. 대부분 책을 낸 경험이 없는 아마추어 작가들이라고 하지만 호락호락하게 보아서는 큰 코 다칠 그런 사람들이다. 한 분야에 수년 아니 수십년의 내공을 쌓은 경륜이 한 구절 한 구절의 글에서 배어나온다. 가식없는 솔직한 느낌으로 책을 통해 얻은 감동을 전하고 나누고 있는 것도 강점이다. 마치 예스 24에서 가끔씩 만나는 멋진 리뷰들을 한꺼번에 만나는 듯한 기쁨이 있다. 사실 몇분들은 지금도 예스24를 통해 만나고 있다.

 

3. 산만한 부분

서로 다른 관심분야와 개성을 가진 분들의 공동작품이라 책을 읽으면서 마치 롤러코스트를 탄 기분을 느낀다. 조용하게 관조하는 듯한 분위기가 잠시후 열정적 감정으로 변하기도 하고, 문학에서 인문, 과학의 세계를 넘나들기도 한다. 좋은 의미로 보면 저자들의 개성과 다양성의 표출이겠지만 가끔씩 관심이 가지 않거나 공감하기 어려운 부문을 만나기도 한다. 자기관심 분야를 중심으로 선택적 글 읽기를 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책수다에 소개된 책들도 조금 컴팩트하게 선정해 설명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4. 나를 돌아보게 하는 것들

현재 내가 하는 일이 스페셜리스트보다는 제너럴리스트에 가깝다. 책 읽기도 이러한 성향을 반영하듯이 여러분야에 걸쳐 폭넓게 읽는 편이다. 이러한 펼쳐나감이 개별 주제를 중심으로 모아지고 연결되는 그런 독서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 주제나 인물에 대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 한 분야를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독서, 이런 것들을 시도해 봐야겠다는 가르침을 받은 소중한 책이였다. 리더십 이론에서와 같이 독서에서도 T자형 독서가 필요하다는 깨달음인 것 같다. 



c******4 2010.09.18. 신고 공감 8 댓글 13
리뷰 총점 종이책
진솔한 책수다에 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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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은 시점이 흥미롭다. 장정일 님의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이란 독서일기를 접했고, <로자의 인문학 서재>로 유명한 이현우 님, 깐깐한 독서 본능을 자랑하는 파란 여우님의 서평집을 재밌게 읽은 후였다. 나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책 이야기'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단순한 엿보기를 넘어 내가 읽은 책을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일 지가 궁금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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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은 시점이 흥미롭다. 장정일 님의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이란 독서일기를 접했고, <로자의 인문학 서재>로 유명한 이현우 님, 깐깐한 독서 본능을 자랑하는 파란 여우님의 서평집을 재밌게 읽은 후였다. 나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책 이야기'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단순한 엿보기를 넘어 내가 읽은 책을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일 지가 궁금하기 때문이다. 낯익은 이름들이 많아 반가운 마음에 책장을 열었다. 아마추어의 글쓰기라 하기에 책을 통해 바라보는 인생의 깊이와 폭이 상당하다.

 

<100인의 책마을>은 기획 자체가 흥미롭다. 소위 파워블로거들의 단순한 서평 모음집이 아니라, '독서는 곧 생활이므로, 내 삶과 독서 경험을 잘 버무린다'란 원칙이 잘 반영된 책수다집이다. '책으로 세상을 이야기하고(책세이), 책으로 수다(책수다)를 떠는 100인의 다양한 삶의 편린들이 행간에 넘쳐 흐른다.

 

문학, 인문사회, 문화, 과학 등으로 분야를 세분화하여 각자 자신의 책이야기를 펼친다. 은이후니님의 '느리게 살기 혹은 더불어 살기'가 첫눈에 들어온다. 예전 장 그리니에의 <섬>에 대한 서평을 감명 깊게 읽었다. 이번 글은 느림의 미학을 통찰력 있게 그린 책들을 소개하고, 현재 뉴질랜드에서의 삶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블로그를 통해 접하는 시습작, 깊이 있는 책읽기와 그에 준하는 삶의 지혜, 에메랄드빛 섬에서 즐기는 오롯한 사색 등이 은이후니님의 강렬한 아우라를 느끼게 한다.

 

에쿠니 가오리와 사랑에 빠진 김수정 님, 문학 속에서 만난 가족을 속도감 있게 그린 김민경 님, <고종석의 유럽통신>, <제 친구들하고 인사하실래요?>, <B급 좌파>, <지구 위의 작업실> 등 '내 삶을 바꾼 책들'을 특유의 개성 넘치는 문장으로 그려나간 김이준수 님. 한결 같이 반가운 마음에, 마치 마주앉아 질펀한 수다를 나누듯 정감이 넘친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의 곡 순서에 따라 고전의 참맛을 내게 선사한 껌정드레스님. 프로필에 '1970년대 서울에서 태어난'을 '1970년에 서울에서 태어난'으로 잘못 읽어 잠시나마 40대로 착각 아닌 착각을 했었다. 껌정드레스님의 글은 이 책에서도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한다. 단순한 서평을 넘어, 생의 깊이와 책읽기의 내공, 1년에 100편 이상 혼자서 영화를 보러가는 마니아적 감수성에 다시 한번 감동을 받았다.

 

이 책을 내게 선물한 까탈님의 글. '마음 가는 대로, 느낌대로' 써내려가는 재즈와의 만남. 평소 음악에 관심이 많은 줄은 알았지만, 꾹꾹 연필로 눌러쓰듯 써내려간 글에서 재즈에 대한 남다른 열정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사실 음악에는 문외한인지라 '재즈'하면 으레 어렵다란 생각을 하게 된다. '어떤 곡, 어떤 연주도 다른 사람의 해석이나 해설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내가 듣고 즐길 수 있어야 그것이 진정한 좋은 음악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재즈가 가지는 진정한 소통 방식이다. 귀로, 몸으로 충분히 느껴 보자. 더 궁금하고 알고 싶다면 재즈에 대해 궁금한 것을 찾아 나서도 결코 늦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 한없는 자신감을 얻는다. 일단은 마음가는 대로.

 

또 한 명 반가운 사람이 이 책의 보론(서평이란 무엇인가)을 쓴 변정수 님이다. <편집에는 정답이 없다>를 통해 에디터십의 의미를 수차례 깨닫게 한 장본인이다. 실제로 뵌 적은 없지만, 아마도 내년 상반기(서울출판예비학교에 입학할 생각)에 뵐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그는 보론을 통해 서평과 독후감의 차이를 설명하고, 서평을 왜 써야하며, 어떻게 써야 하는 지에 대한 지혜를 내게 선물한다. 사실 지금까지 '독후감을 써놓고 서평이라고 착각'한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한다.

서평 역시도 나름의 사회적 의미를 가진 글로서 다른 사람에게 읽히기 위해 쓰는 것이라면, 서평을 쓰는 자신뿐 아니라 그것을 읽는 다른 사람에게도 의미를 가져야만 그 책을 읽게 할 수도 있고, 그 책을 읽은 나의 시선을 전달할 수도 있고 그 책에서 어떤 의미를 더 발견할 수 있을지 토론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서평에 담기는 가치 평가에는 객관적으로 타당한 근거가 제시되어야 하고, 제시된 근거로부터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이 설득력을 지녀야 한다. <중략>

 

서평뿐 아니라 모든 글은 언제나 '도대체 누구 읽으라고 쓰는 글인가'를 분명하게 의식하면서 써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아무리 밤을 새워 가며 열심히 고쳐 쓴 글이라도, 그것이 누구에게 하려는 말인지 스스로 해명할 수 없다면, 그저 '혼잣말'에 지나지 않는다. 심지어 자기 혼자만 보는 일기장에 쓰는 글조차도 '나 자신'이 읽고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지 않고서는 무의미한 단어와 문장의 나열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P316~317

이 책을 통해 '책세이와 책수다로 만난 439권의 책'을 리스트에 담아본다.색인으로 100인의 책마을 수록 도서 목록과 책수다 수록 도서 목록을 소개하고 있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다시 한번 느끼는 거지만, 세상에 존재하는 책은 무한하고, 글 잘쓰는 사람은 더더욱 많다. 마지막으로 추천사로 소개된 김연수 작가의 글을 되뇌여본다. 앞으로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대로 짚은 문구다.

인생은 때로 몇 권의 감명 깊은 책으로 요약되기도 한다. 그게 한 세 권 정도라면 그럭저럭, 다섯 권이라면 보통, 열 권이라면 아주 좋다. 욕심은 그 이상이지만, 일단 열 권 정도면 아주 좋다. 뭘 돌려받든 돌려받지 못하든, 진심을 다해 읽은 열 권. 거기에 우리가 이해한 이 세계의 모습이 다 들어 있다. -P6~7

아직까지 내 인생의 책 한권이라고 할 만한 책을 선뜻 말하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100인의 책마을>에 소개된 저자들이 한없이 부럽다. 그들은 분명 책을 통해 자신의 삶을 제대로 이해하고, 책 속에서 발견한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이다. '아마추어라는 것이 무엇인가? 그저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돈이 돼서 덤비는 것이 아니라 즐거워서 덤비는 것이다. 그 즐거움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려는 것이 진정한 아마추어리즘이다'라고 책머리에 기술하고 있다. 늦었지만 그들의 발걸음을 조심스럽게 따라가고 싶은 바람을 담아본다.



t******2 2010.09.26. 신고 공감 6 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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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하는 힘-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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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책은 가까이 있었지만 다양한 핑계거리와 자기 합리화로 충분히 읽어내지 못했던 나의 지난 날이 생각난다. 다양한 쟝르의 책들과 함께 하지 못했던 지난 날들이 무척 후회스러웠던 것은 예스24 블로그 리뷰들을 경험하면서 실로 편협한 내 사유의 폭과 깊지 못한 심사들이 화들짝 불그레한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다행히 지금이라도 날마다 한 권의 책을 들고 그나마 전전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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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책은 가까이 있었지만 다양한 핑계거리와 자기 합리화로 충분히 읽어내지 못했던 나의 지난 날이 생각난다. 다양한 쟝르의 책들과 함께 하지 못했던 지난 날들이 무척 후회스러웠던 것은 예스24 블로그 리뷰들을 경험하면서 실로 편협한 내 사유의 폭과 깊지 못한 심사들이 화들짝 불그레한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다행히 지금이라도 날마다 한 권의 책을 들고 그나마 전전긍긍하고 있으니 조금은 나아진 셈이다.

 

여기 신선한 느낌의 책 한권이 내게로 왔다. 무척 뜻깊은 책선물이었고 한 권으로 엮어진 내용들의 대부분은 자신에게 어떠한 의미로 다가온 책과의 만남을 통해서 또 다른 책과 조우하게 되는 연계성, 더불어 사유의 폭을 넓히고 적극적인 책읽기의 토대를 보여주는 디딤돌같은 느낌을 준다. 책을 읽는 것과 그 책을 읽고 글을 쓰는 행위는 서로 비슷한 일 같지만 상당한 차이를 보여준다. 단지 읽었다는 이유로 글을 내보여주는 일은 그리 쉽지만은 않기에 충분한 준비와 자신을 다듬는 기회로도 만들 수 있어 어찌보면 어렵지만 그 과정만큼은 매력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한 권의 책을 읽고 리뷰로 정리가 끝난 후 다시 읽어보게 되면 마치 자기 목소리를 녹음하여 듣는 것만큼이나 어색하고 낯설 때가 있다. 왜 그럴까?

생각컨대 솔직한 글읽기와 진솔한 자기경험과 시시각각 변화하는 마음의 크기때문에 완성된 글마저 부끄러운 흔적으로 남을 경우 차후 대비를 위해서 약간의 커버링을 동원한다는 것이 오히려 전체를 흐리게 만드는 일이 되지 않을까?

 

한편 세상을 이어주는 인터넷을 통한 글쓰기가 활성화되면서 누구나가 당위성을 가지고 글을 쓰는 아마추어리즘 또한 책읽기와 글쓰기의 관계를 한층 가깝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한 곳에 모인 저자들의 글은 그렇게 만들어졌고 그래서 무척 친근하고 다양한 생각들을 공유하는 장소가 되었다. 책수다, 책세이라는 말이 그래서인지 무척 어울린다.

 

공유, Sharing(영.쉐어링), Partage(불.빠르따쥬)

<100인의 책마을>속에서 뭔가를 찾아냈다면 바로 이 한마디라 말하고 싶다.

읽는 내내 다양한 저자들과의 생각나눔과 객관성에 다가가고자 하는 부단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공유의 에너지는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쓰는 자와 읽는 자의 관계설정은 공유함으로 이루어진다. 다양한 쟝르의 작품을 읽고 그 작품의 리뷰를 작성하고 또 다시 그 글을 읽게 되는 일련의 행위들이 어떠한 의미를 줄까? 평소에 읽는 리뷰들을 대하는 나의 마음은 다소 편파적이다. 읽고 싶은 책일 경우 미리 보기를 피하기가 일쑤이고 내 머릿속 한계에 도달하는 책들은 아예 넘기는 쪽이다.

아직도 나의 책읽기는 험난한 먼길이다.

 

더구나 글에 대한 소견이나 평가는 내게 큰 의미가 없다. 나는 누군가의 것을 평가할 수 있는 자격도 없거니와 한 줄의 글로써 글동무를 알아가고 세상에 널려있는 책들의 제목을 한껏 즐기는 경험을 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겠다는 기분이다. 떨리는 마음으로 책출간을 기다렸을 여러 글동무들의 마음이 그려졌고 이왕지사 책편식보다는 책탐쪽에 마음을 더 두기로 결심했다.

한 권의 책이 내 옆을 지켜주어 날마다 행복한 날이다.



b*******e 2010.09.22. 신고 공감 6 댓글 17
리뷰 총점 종이책
책을 좋아하는, 그들의 삶에 들어온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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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이 공저자로 들어간 책에 대해 리뷰를 쓰는 일은 참, 어색한 일입니다. 내 글이 아닌 다른 저자의 글을 읽고 쓰면 되는 일이나 그 또한 같은 공저자로서 공치사를 하게 될 것 같기 때문이죠.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각자의 취향이 있으니까, 읽는 사람들마다 선호하는 글이 다르기에 공저자이지만 내가 좋아할 만한 글을 찾아 읽고 그 느낌을 적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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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이 공저자로 들어간 책에 대해 리뷰를 쓰는 일은 참, 어색한 일입니다. 내 글이 아닌 다른 저자의 글을 읽고 쓰면 되는 일이나 그 또한 같은 공저자로서 공치사를 하게 될 것 같기 때문이죠.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각자의 취향이 있으니까, 읽는 사람들마다 선호하는 글이 다르기에 공저자이지만 내가 좋아할 만한 글을 찾아 읽고 그 느낌을 적어보는 것은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하지만 막상 쓰려고 하니 왠지 어색하기만 했는데 아우, 오늘!! 공저자지만 나도 리뷰를 써줘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확 들었어요. 그 이윤 좀 있다가 말할게요^^; 

 

우선, 제가 알고 있는 이 책의 원래 취지는 오랫동안 리뷰를 써온 리더스가이드 회원들에게 조금이라도 보답을 해주자는 차원에서 만든 책이랍니다. 리더스가이드가 창립된지 10년이 되었는데 책 한 권 정도는 내주어야 그 보답을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말이죠. 가급적이면 글 잘 쓰는 리더스가이드 회원 님들을 만방에 소개해주어 원고료로 조금이라도 돈을 벌 수 있는 일이 생기면 좋겠다는 좋은 생각도 했었고요. 그런 게 아니더라도 오랫동안 서평을 써오고, 앞으로도 계속 책을 읽으며 서평을 쓰실 분들이기에 한번쯤은 이런 추억이 될만한 책을 만들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더라죠. 그런 작은 마음이 《100인의 책마을》이라는 책을 출간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답니다.  

 

사실, 이 책에 실린 저자 중에 책을 펴내거나 번역을 하신 저자 분은 세 분밖에 안 계세요. 그 분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아마추어라고 할 수 있죠. 편집 과정에서 나름 다듬었겠지만 사람의 개성이 다 다른데 일률적으로 같을 수는 없을 거예요. 편차가 심한 것은 그것대로 맛이 있을 테니. 그건 작가들의 단편 모음집만 봐도 이해가 될 거예요. 어떤 작가의 글은 너무나 훌륭한데 또 다른 작가의 글은 실망스럽기도 하니까 말이죠. 《100인의 책마을》도 똑같아요. 더구나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들인데 똑같을 수는 없겠죠. 그럼에도 이 책을 읽는 이유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나 아닌, 책을 좋아하는,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삶 속에 풀어나간 책들 때문이에요. 그들은 어떤 책으로 삶을 공유했는지 궁금해지기도 하니까.   

 

전 문학이나 여행서 같은 일정 분야만 좋아하는 독서 편식주의자라 모든 글을 읽으며 공감했다고 하고 싶진 않아요. 그리고 무조건 좋으니까 읽어보라고 하고 싶지도 않고요. 왜냐, 각자의 취향이 있으니까요. 작가들의 단편 모음집을 읽을 때도 좋아하는 작가의 단편이나 맘에 끌리는 글을 먼저 찾아 읽듯이 《100인의 책마을》 역시 골라 읽는 재미가 있을 테고,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분야의 글을 읽다 보면, 같은 책을 좋아하는 독서가로서, 공감을 하는 글이 나오게 마련이죠. 모든 글이 다 좋다면야 바랄 게 없겠지만 과연, 그런 책이 있기나 할까요? 아무튼 저는 《100인의 책마을》을 읽으면서 아래의 글들에 공감을 했답니다. 저와 비슷한 취향을 가진 분들이시라면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도 싶고요. 그 첫 번째가 바로 김수정 님의 <에쿠니 가오리와 사랑에 빠지다>입니다.  

 

저도 한때는 에쿠니 가오리의 전작주의자가 될 만큼 편애하던 작가라 김수정 님이 알고 있는 에쿠니 가오리가 궁금했거든요. 내가 만약 에쿠니 가오리에 대해 썼었다면 어떻게 썼을까? 뭐 그런 생각도 하면서 읽었던 것 같아요. 김수정 님은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들에 나오는 '그녀'들에 대해 잘 풀어내주었어요.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들을 읽을 때는 몰랐는데 그러고 보니 '그녀'들, 정말 하나 같이 매력적이고 연구대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 이런 식으로 에쿠니 가오리와 사랑에 빠질 수 있는 거구나! 읽으면서 살짝 감탄까지 했다지요.  

 

또 껌정드레스 님의 <나의 노트르담 드 파리>는 대단했어요. 뮤지컬을 보고 중세를 이야기한다는 주제 자체가 사실은 놀라웠어요. 조금 방대하다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이 글을 읽고 나니 뮤지컬은 물론이거니와 《파리의 노트르담》을 이제는 읽어줘야겠구나(네, 전 고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아직 읽지 못했습니다-.-;;)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죠. 더구나 뮤지컬을 보면서 배경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관련된 책들을 찾아 읽는다는 일은 정말 책을 좋아하거나 혹은 그 뮤지컬에 홀릭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시간을 할애하면서 중세의 책들을 찾아 읽은 껌정드레스 님이 같은 책을 좋아하고 읽는 사람으로서 존경스럽기까지 하더군요. 와우! 암튼 대단했어요.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김이준수 님의 <다른 삶을 꿈꾸다>예요. 아래 글에 별 3개 주시면서 공저자로서 신랄하게 리뷰를 써주시어 저로 하여금 리뷰를 쓰게 만든 분!! 네, 제가 리뷰를 써줘야겠구나 마음 먹게 만드신 분이세요.^^ 김이준수 님의 리뷰를 읽으면서《100인의 책마을》의 매력은 이런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내가 공저자라고 찬사만 베푸는 리뷰는 쓰지 않겠다. 그동안은 독자였으니까, 내가 비록 이 책으로 저자가 되었을지언정 까놓고 말은 해야겠다.^^ 어이구, 누가 감히 공저자로서 별 3개짜리 리뷰를 쓰겠어요. 《100인의 책마을》저자가 아니고서는 못하는 행동이죠. 멋지세요!!  사실, 김이준수 님은 자신의 글이 너무 '쪽 팔리고 미안하다'고 했지만, 저는 꽤 재미있게 읽었답니다. 글이 아주 독특했거든요.  김이준수 님이 리뷰에 썼듯이 글을 쓴 저자의 취향이 제대로 드러나니깐 말이죠. 만약 《100인의 책마을》이 아니었으면 김이준수 님의 개성은 절대로 드러나지 않았을 거예요. 편집자들은 무섭잖아요. 아니다 싶으면 자기맘대로 마구 빨간 줄을 그으대니까. 그래서 전 김이준수 님의 글이 좋았어요. 잘 읽히고 공감이 갔거든요.(절대로 'F4'라는 단어 때문은 아니라는^^;;)   

 

그가 말하는 F4, '방황과 방랑이 추적대는 내 삶에 어떤 이정표를 제시해' 준 책 4권은 김이준수 님에게 있어 청춘을 관통하는 과정에 적재적소에 나타나 구원을 할 정도로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네요. 그래서 그가 말하는 책들에 대해 읽다 보면 내 청춘을 관통시킨 책들은 뭐가 있을까 고민하게 만들고, 난 왜 김이준수 님처럼 유머있는 글을 쓰지 못할까, 하는 엉뚱한 상상도 하게 되죠. 

 

그 외에도 제 취향의 글은 역시 읽기 쉬운 글들이었어요. 김보일 샘의 <마라톤, 몸속에 길의 고통을 각인하다>는 마라톤을 하시면서 겪은 경험을 마라톤 관련 도서들과 풀어냈는데, 제게 다시 달리기를 하게 만든 글이기도 하죠. 또 표지 때문에 거들떠도 안 본 하루키의 책을 읽어보게 만들기도 했고, 김민경 님의 <엄마의 가슴에는 빨간 약이 필요하다>는 나도 엄마를 생각하며 글 하나 쯤은 써봐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만들기도 했죠. 만약 《100인의 책마을》이 작가들이나 프로 글쟁이들이 쓴 글들을 모았다면, 그냥 읽고만 말았겠지만 책을 좋아하는 평범한 일개 독자이면서 저자인 관계로 그들이 썼다면 나도 어디 한번? 하는 마음을 먹게 만드는 것 같아요. 

 

책을 읽기 시작하고(네, 저는 문학소녀가 아니었고 아주 늦게 책을 읽기시작했습니다), 리뷰를 쓰는 생활을 하게 되면서 책은 제게 늘 삶을 의미를 깨닫게 해주는 중요한 수단이었습니다. 미흡한 글이나마 리뷰라는 걸 올리면서 글을 쓰는 세계로 들어온 것인데, 그래서 저도 《100인의 책마을》에 아무 생각 없이 글을 넣고는 책을 받았을 때, 너무너무 창피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어요. 이벤트 성으로 제작된 책에 블로그 글을 두어 번 올리기는 했지만 인세를 받으며 판매가 되는 단행본에 글이 들어가긴 처음인지라 그것도 글이냐, 는 소릴 듣게 될까봐 초강력 울트라 트리플 왕소심 A형으로서 무척 걱정이 되었던 거죠, 그동안 글이란 제대로 공부하고 많이 써본 사람들이나 쓴다고 믿어왔기에 더욱 그랬을 거예요. 아무것도 모른다면 또 모르지만 그동안 읽은 책이 몇 권인데, 제 글의 수준을 모르겠습니까.^^;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보니 꼭 그런 것 만은 아니더라구요. 어쨌든 우린 작가가 아니니깐요.  

 

아무튼, 좋고 나쁜 것을 떠나서, 저는 《100인의 책마을》에 실린 글들 같은 리뷰가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출판사의 이벤트로 대충 읽고 리뷰나 쓰는 것이 아니라 장석주 시인의 추천사처럼 "책읽기의 열락(悅樂)을 사유의 향연으로 바꿀 때, 그리하여 독서의 총량을 지렛대 삼아 지식 생산자로 나설 때 비로서 독서인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고, 김연수 작가의 추천사처럼 "진심을 다해 읽은 책들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로울 것이며 "인생은 때로 몇 권의 감명 깊은 책으로 요약되기도" 할 테니까요.  그저 평범한 독자들이 글을 써봐야 얼마나 잘 썼겠어. 우습게 보기도 하겠지만 사실, 책 5권을 주제로 삼아 '책세이'를 써내려 가는 일은 '진심'이 없으면 못 쓴다는 생각이 진짜! 들더군요. 그래서 책이 나오고 조금의 창피함을 벗어던지고 나니까, 미비하게나마 소심함을 벗어던질 수 있게 되었는데 리뷰가 삶과 어울려 쓰인다면 굉장히 재미있을 것 같기도 하고, 책소개만 해 놓는 그런 리뷰에 비해 훨씬 읽어내기가 싶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거든요. 그럼, 리뷰의 질도 높아지려나?^^

 

아, 역시 사심이 들어가니 리뷰도 길어지네요. 제가 쓴 글이 들어갔으므로 그런 것은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앗! 마지막으로 《100인의 책마을》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책이라고나 할까요? 그냥 글을 읽어내려가다가 저자들의 삶에 들어간 책들이 궁금해지고, '책수다'에 소개되는 100자 평의 책들을 읽다 보면 '어, 나는 이 주제에 맞는 이런 책도 아는데' 하며 내 독서 실력을 뽐내볼 수도 있답니다. 그러니 책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꼭! 한번 읽어보세요. 439권의 책을 한 권의 책으로 만나볼 수 있는 책은 그리 흔하지 않으니까요! 

j****o 2010.09.10. 신고 공감 5 댓글 4
리뷰 총점 종이책
내게 의미 있는 사람들... 100인의 책마을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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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스가이드에서 책을 냈다. 긴 산고 끝에 출산을 한 기분이랄까. 그곳 회원이 된지 거의 10년이 다 되어 만나는 이 책은 내 자식 마냥 신기하다. 한때 참여도 해 보다, 미뤄지고 어긋나다가 잊혀졌건만, 푹 익은 숙변 같은 프로젝트가 힘 하나 안들이고 갑자기 해결이 되다니!!(무관심의 힘). 소비자의 위치에서 생산자의 위치로까지 도약을 한 그들의 저력이 조금은 부럽다. 리더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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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스가이드에서 책을 냈다. 긴 산고 끝에 출산을 한 기분이랄까. 그곳 회원이 된지 거의 10년이 다 되어 만나는 이 책은 내 자식 마냥 신기하다. 한때 참여도 해 보다, 미뤄지고 어긋나다가 잊혀졌건만, 푹 익은 숙변 같은 프로젝트가 힘 하나 안들이고 갑자기 해결이 되다니!!(무관심의 힘). 소비자의 위치에서 생산자의 위치로까지 도약을 한 그들의 저력이 조금은 부럽다.

리더스가이드와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했다.
1. 먹어본 놈이 맛을 안다고 많이 읽어 본 사람들이 책을 잘 알 것이다.
2. 출판시장으로 쏟아져 나오는 책 들 중에서 (효율적으로) 좋은 책만 골라 읽고 싶다.
인적 네트워크의 가능성과 힘을 빌려보고자 했던 나름 적극적인 독자였던 셈이다. 온라인에 널려 있는 게 리뷰이고 소개글이지만, 신뢰와 권위를 쉽게 부여하기란 여간 쉽지 않은 일이다.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는 시장에 대한 불신이 긴 시간과 경험을 바탕으로 한 안목을 갖추도록 강요하니까 어쩔 수 없었다. 지금은? 괜찮은 책들을 고르는 것 같긴 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무슨 책을 좋아하는지 안다.’, ‘언제 읽어야 하는 지’, ‘왜 읽어야 하는지’ 정도는 아는 것 같다. 오로지 읽는 일만 남았으며, 이것은 매일 먹는 밥처럼 끊을 수 없는 일이 되었다. (요즘은 다이어트 중 ^^;)

이 책에는 꼭지마다 얼굴이 있다. 목소리가 있고, 지문이 있다. 사실 그들이 무슨 책을 말하고 싶어하는지는 2차적인 문제이고, ‘그 사람’을 읽는다는 게 흥미롭다. 알게 모르게 이어지는 생각들, 삶을 대하는 태도를 통해 우리가 세상을 어떤 식으로 보아야 하는 지를 알 수 있다. 물리적으로 단절 되었지만, 맨탈을 확인하니 뭔가 유기적으로 연결 된 것만 같다. 민족, 성, 학연, 지연 따위는 인간을 그룹화하지만, 책 따위는 인간을 링크 해준다는 것이 또 다른 의미로 다가 온다.

삶의 마디마디에 새겨진 문신을 확인하는 것도 재미있다. 대화를 하다 보면 누군가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말을 피에르 부르디외가 했어’. 또는 홉스도 그런 주장을 했지. 레닌이 그랬어. 파울로 프레이리, 레비 스트로스… 솔직히 말하면 이 사람들의 책은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거나 읽은 적이 없다. 하지만 생각의 수염뿌리는 어느새 나에게까지 파고들었다. CSI가 조사하면 밝혀지는 범인을, 내 몸 여기저기에 묻어있는 책과 사람과 사상의 지문들… 추적하면 누가 나올 것인가.

이제는 흔한 래퍼토리가 된 책을 이야기하는 책… 이 책은 어떻게 요리를 할까. 다수의 저자가 써낸 글이 한 권의 책으로 얼마나 조화롭게 정리 되었을까. 조금은 우려했다.
하지만 생각했던 것 보다 퀄리티가 높다.
편집이 보기 좋다. 글에 담긴 책들이 서재에 꽂힌 책처럼 둘러보기가 좋다. 이 책의 어느 꼭지부터 읽어도 좋고, 오히려 문학성, 인문학성 보다 실용성에 더 가치를 둬도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재미는? 잘 모르겠다. 내 취향은 아니니까.
책 읽는 재미 말고, 사람 읽는 재미를 찾는 다면 어느 꼭지에선가 발견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추어지만 프로 못지 않은 글을 발견하는 재미는 나름 쏠쏠하다.

내가 이 책이 나오자마자 읽고 리뷰를 쓰는 이유는 아마도 부채의식이 있는 듯 하다. 딱히 받은 것도 없지만, 딱히 줄 것 없어서 생긴 나의 부채… 내게 의미 있는 사람들이기에 이 책도 의미가 있다.
책은 이렇게 인간적이다.
k*******0 2010.08.28. 신고 공감 5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책에서 사람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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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쓰는 글이 서평이 맞는가?    이 책의 맨끝에 나오는 보론 부분을 맡은 변정수님은 '서평'과 '독후감'을 구분해 줄 것을 독자들에게 주문한다. 서평은 말 그대로 그 책을 평하는 것이고, 독후감은 그 책을 읽고난 느낌이나 생각 등을 자유롭게 정리해서 쓰는 것이라고 했다. 기실 그의 말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부턴가 독후감이란 말대신 '서평'이란 말을 일상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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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쓰는 글이 서평이 맞는가? 

 

이 책의 맨끝에 나오는 보론 부분을 맡은 변정수님은 '서평'과 '독후감'을 구분해 줄 것을 독자들에게 주문한다. 서평은 말 그대로 그 책을 평하는 것이고, 독후감은 그 책을 읽고난 느낌이나 생각 등을 자유롭게 정리해서 쓰는 것이라고 했다. 기실 그의 말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부턴가 독후감이란 말대신 '서평'이란 말을 일상어로 사용하고 있다. 이것이 또 서평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에겐 얼마나 고깝게 보이겠는가? 하지만 또 '서평'을 쓰는 일반독자의 입장에선 '독후감'은 왠지 지난 세기의 구식어처럼 느껴져 어색하게 느껴진다. 지금이 무슨 유신세대도 아니고.  

나에게 있어 '서평'이란 단어가 뇌리에 강하게 박힌 건, 비슷한 시기에 각 인터넷 서점들이 독자들로 하여금 블로그 활동을 적극 독려하면서 사로잡기 시작한 단어는 아닐까 싶다. 어찌보면 일반독자의 그 책에 관한 이야기가 자기네들 매출과도 직결되는 문제고, 독자 또는 고객의 그 책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을 높이 사 '서평'을 좀 더 일반화 시킨 것은 아닌지? 사실 일반독자들 가운데 전문 서평꾼 못지 않은 글솜씨를 가진 사람들이 적지않은 바에야 감히 '독후감'이란 단어를 붙이기도 어색한 일일 것이다.  

인터넷과 블로그가 생기면서 커뮤니케이션이 더욱 활발해졌다. 그전엔 책 한 권을 사려면 신문의 한쪽 귀퉁이를 장식한 신간 안내란이나, 서점에 직접 발품을 팔아 이 책이 나에게 유익한 책인지 아닌지를 취사선택해야만 했다. 그리고 아주 가끔은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에 대한 주례사가 참고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활발해진 인터넷에서의 커뮤니케션 덕분에 우린 앉아서 그 책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그 정보가 출판사의 요란한 선전문구가 아닌 일반독자의 손끝과 혀끝에서 나온다는 점에서 이제 그들은 책 선택의 절대권력은 아닐까?  

나 역시도 얼마 전, 누가 뭐라던 끝까지 도도하게 버텨보리라던 하루키의 <1Q84>의 아성에 무릎꿇게 만들었던 건 출판사의 마케팅 전략이 아니었다. 어느 날 문득 보게된 어느 독자의 '서평' 때문이었다. 그것도 그 사람은 하루키 예찬론자라면, 나는 비판은 하지 않더라도 냉담했던 사람이었다. 그만큼 일반독자의 입김이 세 진 것이다. 돌아앉던 부처님도 다시 바로 앉게도 만드는 게 일반독자라면 말 다하지 않았는가? 그에 비해 진짜 서평꾼들의 서평을 눈여겨 보는 예는 일반독자들로선 거의 드문일일 것이다. 그 수준이 거의 문학평론 수준이라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고 특별한 목적이 있어야 참고 삼아 읽게되는 것이다. 아, 물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마이클 더다나 고 장영희 같은 분들은 그 유려하고도 위트 넘치는 문체에 반해 '이 사람이 말하는 책이라면' 하며 혹해서 책을 사고 싶게도 만드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게 쓰는 사람은 또 얼마나 있겠는가? 

독자들이 읽지 않는 글.  즉 소통할 수 없는 글은 그 글쓴이가 아무리 유명하다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쓰는 서평이 서평이 아닐리 없고, 일반독자들 중 본인의 글을 서평이라고 하기에 부담스럽다고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간극은 어떻게 좁혀 볼 수 있을 것인가?

 

우리가 쓰는 책에 관한 글은 책세이일 것이다.         

 

 사실 '서평'이란 단어도 마음에 썩 드는 단어는 아니다. 변정수님의 말도 있고, 너무 딱딱하고 권위적이기도 하다. 아무나 취해선 안 될 것만 같은. (그러나 취해 보고 싶기도한) 그래도 '독후감' 보단 낫긴 하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책세이'란 말이 돌기 시작했다.  그건 이름하여 책+에세이의 합성어이고 <100인의 책마을>을 기획한 리더스 가이드에서 유포하기 시작한 단어인 것 같다. 적어도 난 그렇게 알고 잇다. 거기서부터 듣기 시작했으니까. 누가 유포했건 확실히  '서평'이란 단어 보단 훨씬 편안하고 격식을 갖춘 느낌이다.  

물론 책세이라고 해도 '과연 내가 책에 관해 에세이를 쓸만 한가?' 반문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게 싫으면 '책잡담', '책수다'도 좋을 것이다. 책을 읽다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생각을 적는 것이다. 그게 자신의 신변잡기일 수도 있고, 평소 생각했던 어떤 소신이나 비판일 수도 있다. 자신만의 프리즘으로 내가 느끼고 생각한 것을 자연스럽게 풀어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오히려 독자들, 블로거들에겐 더 먹힌다는 것이다. 입소문 마케팅이란 게 그런 것이 아닌가?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지만 그래서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올라간 책들이 꽤 있다. 그런 책들은 처음엔 주목을 끌지 못했다. 아무리 출판사에서 "이 책 너무 좋습니다" 해도 믿지 않는다. 그러나 읽어 본 사람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이런 적도 있다. 입소문 마케팅의 중요성을 알고,  출판사에서 일반독자를 상대로 책을 나눠주고 서평을 부탁하기 시작했다. 그때 적지 않은 사람은 어떻게 꽁짜로 책을 받고 험한 말을 할 수가 있냐고 착한 마음을 품은 독자들도 많았다. 나 역시도 그랬고. 하지만 반드시 현금이 안 들어간다고 그것이 공짜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시간도 돈이다. 아니 때론 그 보다 더한 가치를 지녔다. 읽는 시간. 서평 쓰는 시간. 그 시간을 뺀다면 분명 다른 책을 읽었거나 다른 활동을 했을 거다. 내 시간이 중요하면 남의 시간도 중요하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갖는 건 나약하고 무책임한 소리다. 중요한 건 책을 무조건 좋게 말하는 것에 있지 않고, 내가 느끼는 진실을 말하는 것뿐이다. 독자의 말한마디가 출판의 미래를 바꿀 수도 있는 것이다.  

좋은 것에도 나쁜 것이 있으며, 나쁜 것에도 좋은 것은 섞여있기 마련이다. 아무리 별 다섯 개를 줄 수 있는 훌륭한 영화에도 옥에 티는 있는 법이다. 팝콘을 먹으면서 영화를 보고, 과자를 먹으면서 그 영화에 시시콜콜한 부분까지 얘기하면서, 왜 책은 그러면 안되는 것인가? 책이 어떻게 하면 대중의 입에 오르내릴 수 있을까?를 생각하여 책의 디자인 혁명은 가히 눈물 겹고 놀랍까지 하다. 악평 보다 더 나쁜 건 무관심이라 하지 않는가? 그 책이 사람들 기억속에 잊혀지지 않기 위해 들어가는 땀방울을 생각해 본적이 있는가? 어느 책에선가, 한 사람이 열보를 가기 보다, 열 사람이 한보를 가는 것이 더 낫다고, 했다.유려한 한 편의 전문 서평 보다, 일반독자 10명이 책을 가지고 한마디 잡담을 하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 그래서 책세이 또는 책잡담이 더 중요해졌다.  

 

책에서 사람이 보인다.            

 

이번에 펴낸 <100인의 책마을>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그것은 무엇보다도 책에서 책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책에서 사람이 보인다는 것이다. 그 사람의 말고 글이 그 사람을 증명한다고 했다. 하지만 여기에 더 추가할 것은 그 사람이 읽고 있는 책이다. 이것은 전문 서평가도 해 보지 못한 일이다. 그들은 오로지 책에 관한 이야기만 할 수가 있다. 자신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못한다. 해도 아주 단편적으로 할 뿐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보니 책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보였다.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이. 특이하게도(?) 나는 책에 소개된 저자들 중 몇몇은 오프에서 만난 적이 있다. 책이 좋아 만나기 시작했는데, 유감스럽게도 책에 대한 얘기 보단 딴 얘기로 흘러간 적이 많았던 것 같다. 그래서 정확히 이 분들이 지금까지 뭐에 관심이 있으며, 무슨 책을 읽어왔는지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었을 때야 비로소 아, 이 분들이 이런데 관심이 있었구나 새삼 그 사람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사람을 새롭게 아는 것. 또 그 사람을 통해 내가 평소에 관심을 갖지 않았던 분야에 대해 흥미를 갖게 되는 것. 이것처럼 즐겁고 기쁜 일이 또 어딨겠는가? 이 책은 확실히 그런 부분을 충족시켜 줬고, 평소 관심 분야나 인생관을 책으로 말하고 있어 좋았다. 그런 점에서 나는 사회나 교육에 관심이 많은 김이준수님이나 전재훈님의 글이 와 닿았고, 특히 김이준수님의 약간은 까칠하면서도 개성 넘치는 글이 참 인상적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생태 환경에 관심이 많은 김원국님이나 소일님의 글도 새롭게 와닿았고, 이 분들이 '이 책 읽어 볼만해요'라고 내미는 책들이, 평소 인터넷 서점을 서핑하다 이미 알고 있는 책들이지만 이 분들의 입담을 거치니 더 읽고 싶어졌고 새로웠다. 개중에 어떤 책은 평소 그다지 마음을 두지 않았던 책인데 '그래?'하며 나의 촉수를 건드리는 책들도 많았다.  

또한, 강한 영적 체험을 지성의 칼날로 다듬고 계신 권성권님이나, 교회의 사회적 책임에 관심이 많은 짙은 잿빛구름님, 무엇보다 인생을 다른 패러다임으로 살고자 원했던 은이후니님은 한번쯤 만나 그들의 솔직한 세계관이나 인생관을 듣고 싶어졌다. 또한, 과학은 늘 나의 열등분야고 취약분얀데 그리 어렵게만 볼 것은 아니겠구나라며 생각을 바꾸게 만들어준 김보일님의 문장은 가히 명문이다 싶다. 그 밖에 지면상 일일이 열거할 수 없는 저자들의 글들은 마치 나에게, "책에 대한 관심을 포기하지 마세요.  시야를 넓혀 보세요."하고 응원해 주는 것 같다. 사실 나이가 먹으면 먹을수록 책을 아무리 좋아한다고 해도 시야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이 책의 사용법에 관하여(또는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책 중에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여름언덕)이란 책이 있다. 유감스럽게도 난 아직 이 책을 읽어보지 못해 이 책에 관해서 뭐라고 할 말이 없다. 하지만 골자는 뭐 대충 그런 거다. 책에 대해서 말할 때 꼭 읽고 얘기해야 하는 것인가? 읽지 않고도 말할 수 있는 것에 대해 몇가지 방법을 제시해 놓고 있다. 사실 나는 책에 대해 관심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 앞에서 책을 많이 읽은 사람처럼 오해를 받고 살아왔다. 결코 많이 읽은 것이 아니라고 솔직히 말해도 믿지 않는다.  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다. 나도 공동저자로 참여했지만 개중 한 두권은 내가 아직 실제로 읽지 않은 책임을 이 지면을 빌어 고백한다. 이것이 나중에, 몇년 전 사회 유명인들의 학력 위조 파문에 버금갈 사태를 불러 올런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나는 또 어디선가 읽지 않은 책에 대해 읽은 양 떠들고 앉아 있을 확률에 매우 높다. 그것은 내가 이 책 <100인의 책마을>을 읽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무려 439권의 책을 다루고 있는데, 내가 그 중 몇권은 읽은 양 떠들고 앉아 있지 앉을 거라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으랴? 나는 그렇게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않으며 어쩌면 난 이 순간 이 책을 공범자로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바로 이 책은 그런 책이다. 읽지 않아도 읽은 양 할 수 있는 책. 책에 대한 편견을 깨트려 주는 책. 그래서 유식한 척 할 수 있는 책. 그런다고 누가 흉보고 비난할 수 없는 책. 왜냐구? 부제처럼, 책잡담이고, 책수다고, 책에세이니까.  음하하하~   

오랜만에 사람 만나는 것도 좋지만 만나면 나누는 얘기 안 봐도 비디오다. 결혼한 사람은 자식 얘기, 남편, 시댁시구들 얘기. 남자들은  시국 얘기 아니면 주식 얘기, 건강 얘기다. 소모적이라는 걸 알면서도 꿀 먹은 벙어리인 양 할 수 없으니 떠들어 댄다. 그러지 말고 책 얘기하면서 인생을 논하고, 사회를 걱정하고 이러면 멋있지 않나? 그냥 이상이라고만 말하지 말고 실천해 봤으면 좋겠다. 

 

여기서 돌발퀴즈!  이 책에 공동저자들 중 다수가 가장 많이 권한 책은 어떤 책은? (이 글을 읽으시는 분은 잠시 뒤 이 글 말미에서 확인해 보시길)

 

 

나의 글에 대한 변명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쓴 글은 도저히 읽어 줄 수가 없어 뛰어 넘어갔다. 내 글이 인쇄되어 책으

로 나오면 좋을 줄 알았다. 그래도 명세기 사람으로 태어나서 작가가 되어보고 싶은 때도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확실히 알았다. 내가 쓴 글을 인쇄되어 나와도 못 읽는다는 걸. 그건 내가 세상을 다시 태어나 문단을 쥐락 펴락하는 인기 작가가 되어도 같은 마음이지 않을까 싶다. 내가 가장 못 보는 것 중의 하나가 내가 박힌 사진 보는 건데 꼭 그 느낌이다. 물론 그러면서도 은근히 때론 호들갑스럽게 자랑했다.  아마 이 책의 공동저자들 중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을 줄로 안다. 하지만  뭐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것 아니다.  기회가 오면 또 도전하고 싶다. 대신 더 잘 써야지.

무엇보다 초야에 묻힌 서평의 고수들(나는 좀 그렇지만) 그들을 이름하여 '재야의 고수'라고도 하는데 이들을 기어이 끌어내어 빛을 보게 해 준 리더스 가이드 제작진 여러분께 이 지면을 빌어 심심한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 아직도 재야의 고수들은 많다. 그들도 발굴해내 빛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책잡담을 더 재밌고 유익하게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유감스럽게도 100인이라고 해 놓고 23인 밖에는 안 나오지 않았는가.     

 

돌발퀴즈 정답: 다수의 공동 저자들이 권한 책은, 데이빗 소로의 <월든>이었다.    

 

m****9 2010.09.11. 신고 공감 3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 어떤 취향을 가지고 있는가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 어떤 취향을 가지고 있는가" 내용보기
박상미의 말마따나, 취향은, "삶의 미세한 결들 속에 숨은 매력적이고 거추장스러운 문제"이다.   누구든 취향이 있겠지만, 그것을 스스로 알고 있거나 알려고 하는 노력은 부족하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것에 기뻐하고 슬퍼하는지, 많은 이들이 자신을 아는 일에 생각만큼 충실하지 않다. 아마도, 지금 사회가 강요하는 '스펙'과 '사이클'에 자신을 맞추다보니 그런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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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미의 말마따나,

취향은, "삶의 미세한 결들 속에 숨은 매력적이고 거추장스러운 문제"이다.

 

누구든 취향이 있겠지만, 그것을 스스로 알고 있거나 알려고 하는 노력은 부족하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것에 기뻐하고 슬퍼하는지, 많은 이들이 자신을 아는 일에 생각만큼 충실하지 않다. 아마도, 지금 사회가 강요하는 '스펙'과 '사이클'에 자신을 맞추다보니 그런 '사태'가 벌어지지 않나 싶다. 삶의 미세한 결을 내동댕이치고 마는.  

 

어쩌다, 혹은 운좋게도 공동 저자로 참여하게 된 책에 대해 씨불거리는 것은 다소 남세스로운 일이겠다. 그냥 하나객담(실없고 하찮은 이야기)으로 여겨주면 되겠다.

 

 

1. 우선, 글을 싣게 된 과정. 한때, '원튀'(원고 먹고 튀는 사람)이 아닐까, 의심도 했다. 자주 일어나는 일은 아니지만, 그런 일을 당해본 입장에선, 트라우마인 게지. 아무리 허섭한 글일망정, 거기엔 내 마음과 시간과 내가 있으니까. 그런 일을 당할 경우, 절로 입에서 튀어나온다. "식빵(신발), 꽃 같다. 된장."

 

거의 1년여 전에 청탁을 받았다. 낑낑대며 긁적이다가 글을 넘겼다. 오래 걸리지 않을 것처럼 말하기에, 그리 믿었다. 잘 아는 사람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못 믿을 사람도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나 깜깜 무소식이었다. 청탁자의 블로그에도 비밀글로도 물어봤으나, 답도 없다.

 

'신발, 당했나...'하는 생각이 들고, 걍 포기하고 있을 무렵, 연락이 왔다. 처음 내는 책이다보니,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늦어졌단다. 그리고 진도가 빨라지더니 뚝딱뚝딱. 뭐, 우여곡절 끝에 나왔다. 

 

따져보면, 공저자로 이름을 올렸지만, 첫 책이다. 이전에 역시 공저로 나온 책들은 뭐랄까, 대회 수상작들 모음집이니 이벤트성이랄까. 허허, 내가 박힌 책이 나오는구나. 별 일이 다 있구나. 근데, 책으로 나온 나를 읽어보니, 아 신발, 쪽 팔려. 이런 졸필을 책으로 내놓다니. 끙. 괜히 다른 저자들에게도 초큼 미안시럽더라.

  

 

2. 뭐, 쪽 팔리고 미안한 건 그렇고. 23명의 공저자. 꽤 많은 사람들이다. '책세이(책+에세이)와 책수다로 만난 439권의 책'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러프하게 말해, '이 책(들)은 내 삶에 어떻게 삼투압했나'이다.

 

각 저자의 글을 읽다보면, 그 사람이 나온다. 물론, 완전하지는 않으나, 취향이 나온다. 삶이 묻어난다. 괴테가 그랬다지. "지금 네 곁에 있는 사람, 네가 자주 가는 곳, 네가 읽는 책들이 너를 말해준다." 

 

저자들이 읽은 책들이 곧 저자를 말해주고 있는 셈이다. 누군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다면, 그 사람의 책을 보면 된다. 모든 것은 아니지만, 일정부분 그 사람이다. 취향이다. 곧, 그 사람의 삶의 결과 매력을 엿볼 수 있다.

 

그래서일까. 책은 편차가 심하다. 저자가 스물셋이나 되다보니, 어쩔 수 없었겠지만, 균질하지 못한 데서 나오는 거부감이 있다. 읽고 나서, 글에 묻은 결이 영 아니어서, 왜 실었을까, 의문도 생기는 글도 있다. 물론 불균질함이 장점이 될 수도 있다. 롤러코스터 타듯 재미있을 수도 있다.

 

나의 글도 그런 면에서 숙청의 대상이겠다. 글에 언급한 선생님들, 내 인생의 F4에게 참으로 민망하고 죄송스럽다. 일부 그런 글이 보여서, 다른 좋은 저자들의 글을 갉아먹지 않았나 싶다.

  

오해는 말자. 당연히 좋은 글도 풍성하다. 혹, 책을 읽게 된다면, 별로 믿을만하진 않은 권유지만, 은이후니님의 <나는 천천히 가기로 했다>, 김원국님의 <환경 활동가, 그 열정의 이름으로> 등은 책과 삶이 맺는, 책보다 중요한 삶이 알차게 담겼다. 강추다.

 

나도 마찬가지지만, 다들 힘들게 나를 담아서 썼을 거다. 좋은 결과물을 내놓은 저자도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한 저자도 있을 것이다. 힘들게 책 낸 과정을 대충이나마 알고 있으니, 편집자나 출판사에 대고 뭐라고 할 공저자의 입장은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인정해야 한다고 믿는다. (글 쓰고 책 만드는) 노동의 가치와 결과물로 나온 책의 가치는 별개의 것이라고.

 

 

3. 이 책이 단순히 책수다로 끝나지 않기를 나는 바란다. 책에 대한 이야기는, 곧 공저자들이 언급한 책에 대한 호기심과 읽기로 이어지면서 삶과 세상에까지 삼투압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최성각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책보다 더 놀랍고 대단한 것이 바로 이 세상"이라고. 그리고 이 책에 추천사를 써주신 장석주 시인도 이런 말씀을. "독서인은 단순히 책을 읽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가끔 언급했지만, 책 많이 읽는다고 자랑질하는 인간이 나는 영 미덥지 않다. 그래, 니가 그렇게 많은 책을 읽어댔는데, 뭘 어쩌라고. 책읽기를 통해, 진짜 세상과 만나야 하고, 삶과 융화돼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최성각 선생님도 역시 이 말씀도 빠지지 않고 하셨다. "책에만 빠져 있는 삶이 매우 한심하고 불쌍하다."

 

날림글을 끼워넣어서 미안하긴 하지만, ≪100인의 책마을≫은 책이 세상에서 어떯게 존재하고 존재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더불어 각 저자의 삶이 묻은 책을 통해 어떤 세계를 위해 살아가고 노동해야 할 것인지도 고민하게 한다. 뭣보다 각 저자의 취향을 엿보는 재미도 있다. 아, 이 사람은 이런 결을 가지고 있구나. 내 옆의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나? 그 사람이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 물어보라.

 

나의 허섭한 글은 곧 블로그를 통해 공개하겠다.

 

 

* 표지의 캘리그래피. 좀 마음에 안 든다. 힘이 느껴지질 않는다. 100인이나 되는 책마을인데도. 책마을을 드러내는데도 미흡하다. 아쉽다.  

 

 



j******2 2010.09.10. 신고 공감 3 댓글 10
리뷰 총점 종이책
서평가들의 독서자랑. 도토리 키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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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인의 책마을'은 온라인에서 활동 중인 파워 블로거와 몇 몇의 저자들이 쓴 서평 으로 한 권의 책을 만들었다. 전체 문학, 인문사회, 문화, 과학 등 네가지로 분류하여 전체 439권의 책을 소개하고 있다.읽는 것이 생활이 되어 버린 활자 중독자들이 책에 대한 각자의 생각과 느낌을 편안하게 적어 두었다. 독서란  시각을 통해 문자를 인식하고 이성으로 이해하며 심장으로 감동을 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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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인의 책마을'은 온라인에서 활동 중인 파워 블로거와 몇 몇의 저자들이 쓴 서평 으로 한 권의 책을 만들었다. 전체 문학, 인문사회, 문화, 과학 등 네가지로 분류하여 전체 439권의 책을 소개하고 있다.

읽는 것이 생활 되어 버린 활자 중독자들이 책에 대한 각자의 생각과 느낌을 편안하게 적어 두었다. 


독서란  시각을 통해 문자를 인식하고 이성으로 이해하며 심장으로 감동을 얻는 적극적인 사고행위이다. 이런 세계에 대한 자기 인식의 폭을 넓혀주고 인류 문명의 지적 축적물을 접함으로써 자신의 것으로 내재화함으로서 새로운 가치체계를 창조할 수 있다.


그러나 단지 읽기만으로 국한된다면 온전히 한 권의 책에 담긴 깊은 진리를 통찰할 수 없을 것이다. 수많은 책들을 읽었지만 그 내용을 스스로 정리하여 말할 수 없다면 그것은 빈 껍데기를 읽은 것에 불과할 것이다. 그래서 옛날 선비들은 책상머리에서 마르고 닳도록 암송을 했으며 반복적인 필사를 하며 그 의미를 이해하고자 노력했다. 정약용 선생은 학문하는 방법으로 '넓게 배우고 까다롭게 묻고 조심스럽게 생각하며 정확하게 의미를 분멸하며 독실하게 실천하라'고 했다. 독서가 학문의 궁구에서 차지하는 역할의 중요도를 볼 때 다산선생의 말씀은 독서의 올바른 길잡이이기도 하다.

이처럼 한 권의 책을 읽는 것은 대충 눈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보기의 과정이 아니라 머리와 가슴으로 완전히 이해하는 숙성의 과정이다. 이런 것들이 전제될 때 우리는 한 권의 책에 대해 말할 수 있다. 

서평은 그 결과물이며 책의 핵심내용과 가치, 독자의 반응이 집약된 또 하나의 책이다.

서평을 쓴다는 것은 타인들의 삶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공적인 행위이기도 하다. 하나의 서평에 의해 해당되는 책을 찾아 읽고 만일 삶의 방향이 바뀔 수 있다면 서평이 개인 혁명의 시발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서평가들은 나름 온라인에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사람들이다.

몇 몇은 수준미달이며 몇 몇은 보통이며 몇 몇은 고수의 서평가들이다.

단지 한 권의 책만으로 평하지 않고 연관된 책들을 함께 소개하고 평함으로써 마치 여러 편의 책을 읽는 듯 하다. 서평도 통합과 융합의 개념이 도입되어 문학에서 철학으로과학에서 문학으로 예술에서 철학으로 다기다양하게 엮게 있어 꼬리에 꼬리를 무는 형태이다. 그렇지만 이 책은 표지와 편집 체계가 저급하고 싼티가 물씬 풍긴다. 

내가 읽어 본 책이라면 자신의 생각과 대차대조하며 평할 수 있고 굳이 읽어 보지 못한 책이라도 작은 책 읽기의 동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권하고 싶은 책은 아니다.

j****i 2016.02.15. 신고 공감 3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책읽기를 즐겨하는 독자들이 책에 관해 말하기 시작한다
"책읽기를 즐겨하는 독자들이 책에 관해 말하기 시작한다" 내용보기
1. 줄거리 。。。。。。。                             책읽기를 즐겨하는 독자들이 책에 관해 말하기 시작한다. 전문적인 필자도 있는가 하면 처음으로 책에 자신의 이름(혹은 닉네임)을 넣은 이도 있다. 온오프라인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스물 두 명의 저자들이 ‘책에 관한 책’이라는 콘셉트로 저마다 생각하던 것들을 글로 옮겼다. 단순히 책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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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책읽기를 즐겨하는 독자들이 책에 관해 말하기 시작한다. 전문적인 필자도 있는가 하면 처음으로 책에 자신의 이름(혹은 닉네임)을 넣은 이도 있다. 온오프라인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스물 두 명의 저자들이 ‘책에 관한 책’이라는 콘셉트로 저마다 생각하던 것들을 글로 옮겼다. 단순히 책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서로 연결된 주제를 담고 있는 책들을 하나의 이야기 속에 녹여내며 자연스럽게 인용하고, 소개하며, 평가한다는 데 이 책만의 독특함이 있다.

   

 

 

2. 감상평 。。。。。。。                    

 

     내가 쓴 글이 들어 있는 책에 대해서 쉽게 좋다 나쁘다는 평을 하기는 어렵다. 최소한의 양심이랄까. 그래도 내가 쓴 글은 간만에 깔끔하게 쓰였다. 초고 단계부터 수십 번을 넘게 읽어봤지만, 근래 이 정도로 괜찮은 내용과 형식의 글은 못 써본 것 같다.(읽고 나서 이게 제일 잘 쓴 거란 말이야? 라고 한다면 어쩔 수 없다.;;;)

 

 

     앞서 소개한 것처럼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다양한 저자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써 내려갔기에 ‘한 권’의 책으로 보면 분명 산만한 데가 있다. 편집자들이 애써 항목을 만들고 그 안에 글을 다듬고 배열해 두었지만, 이는 편이 상 그런 것일 뿐 논리적인 순서나,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다. 독자마다 관심 있는 분야를 선별적으로 택해서 읽어나갈 수도 있고, 평소에 많은 관심을 갖지 않았던 분야들에 대해 간단한 소개를 받는 식으로 읽어나갈 수도 있다. 정 관심이 없다면 그 분야나 글을 대충 읽고 넘어가도 전혀 무방하다. 즉, ‘한 권’의 책이 아니라 ‘여러 권의 책들’로 이해하면 이 책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분명 다양한 저자는 다양한 독자들의 취향을 어느 정도 받아낼 수 있다. 하지만 모든 글의 수준을 비슷하게 맞추기란 꽤나 어려운 작업. 이 책에 실린 글 중에도 단지 책 소개에 급급하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들도 있고, 또는 반대로 자신의 생각들을 주장하느라 책에 관한 소개가 미흡한 것들도 있다.(굳이 평가하자면 내 글은 후자 쪽의 문제일까.) 하지만 이 역시 앞서와 같이 ‘여러 책들’로 이해하면 못 이해할 것도 아니다.

 

 

     책으로 세상을 이야기한다는 의미의 ‘책세이’(이 단어는 공교롭게도 책으로 에세이를 엮어낸다는 뉘앙스도 준다)라는 컨셉트 자체가 매우 신선하다. 나름 수백 권의 책을 읽어봤지만, 아직 이런 식의 책은 본 적이 없다. 전에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독자들이 베르나르의 글쓰기를 흉내 내 쓴 글을 엮은 『나무 2』라는 책을 읽고, ‘출판 자체가 재미있는 시도인 책’이라는 평을 한 적이 있었는데, 이 평가는 이 책에도 그대로 붙여도 좋을 것 같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단지 ‘아마추어스러운(?) 글들’이라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책은 사람을 지혜롭게 해 주는 법. 적게는 수년, 길게는 십 수 년의 책읽기 내공을 지닌 분들의 작품이다. 결코 가볍게 날아가는 깃털 같은 책은 아니다. 다양한 분야에 있어서 독서의 길을 잡아주는 책이라고 할까? 혼자서 이 길을 찾아가는 것은 지난하다는 것은 책을 좀 읽어본 사람이라면 다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들이 당신의 그 괴로운 여정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p*********n 2010.09.05. 신고 공감 2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