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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번 생각해 보아야할 자유에 대해서...
"누구나 한번 생각해 보아야할 자유에 대해서..." 내용보기
자유, 어느새 우리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말이 되었다. Freedom, 우리가 굳이 강조하지 않더라도 자유가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방송에서, 신문에서, 라디오에서, 집에서, 학교에서, 회사에서, 우리는 자유를 만끽하고 있는 듯하다. 정말 그럴까? 이 시점에서 자유가 무엇인지, 역사를 되짚어 보는 여행을 한다. 자유, 그것이 너무나도 어색했던 옛날 자유가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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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어느새 우리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말이 되었다. Freedom, 우리가 굳이 강조하지 않더라도 자유가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방송에서, 신문에서, 라디오에서, 집에서, 학교에서, 회사에서, 우리는 자유를 만끽하고 있는 듯하다. 정말 그럴까? 이 시점에서 자유가 무엇인지, 역사를 되짚어 보는 여행을 한다. 자유, 그것이 너무나도 어색했던 옛날 자유가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지 다시 한번 돌아가보자.

자유란 고정된 그 무엇이 아니다. 어쩌면 상당히 아이러니 한 것이다. 자유란 가치가 고정되어 있다면 전혀 자유롭지 못할 테니까.. 그처럼 자유를 둘러싼 역사는 변화에 변화를 거듭해왔다. 

또한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종류의 자유가 있다. 부모들이 생각하는 자유가 다르고, 우리 아이들이 생각하는 자유가 다르다. 선생님이 생각하는 자유가 다르고 학생들이 생각하는 자유가 다르다. 정치가 들이 생각하는 자유가 다르고, 국민이 생각하는 자유가 다르다.

도대체 자유란 무엇일까? 그 옛날 자유가 태어나던 날, 자유는 크나큰 산통을 동반하며 태어났고, 기나긴 가시밭과 힘든 여정의 길을 걸어왔다. 또 한 번 아이러니, 자유는 결코 달콤한 꿈, 이상은 아닌 것인가? 과연 자유는 우리가 싫어하는 그 무엇인가를 위한 자유는, 어떠한 것인지, [우리가 싫어하는 생각을 위한 자유]를 통해 그 해답을 생각해 보고 싶었다.

공기, 물, 우리가 흔히 풍족하다고 생각하는 자원들이 있다. 흔히 공공재, 또는 무한재라고 부르는 것들이다. 하지만 최근 여기서 강조하지 않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고, 또 깨달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 공기와 물은 더 이상 우리가 ’자유’롭게 향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갖고 있는 또 하나의 오해, ’자유’ 그것은 과연 무한한 것일까? 자유란 우리에게 그저 주어지는 것일까?

세계 제 2차대전이 끝나고 시작된 냉전 시대는, 구소련의 해체, 중국의 시장경제화로 막을 내린듯하다. 그리고 시작된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로 인해 우리와 국경을 마주한 북한을 비롯한 몇몇 국가를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에는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 과연 그럴까?

[우리가 싫어하는 생각을 위한 자유]는 미국의 수정헌법 1조의 역사를 바탕으로 위와 같은 질문을 던지게 만들었고, 또 그 답을 스스로 생각해 보게 만들어 주었다. 

안타깝게도 제목부터가 상당히 어렵게 느껴진다. 표지에는 무슨 말인지 모를 영어 활자들이 가득하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차지할 만큼 좋은 내용들이 [ 우리가 싫어하는 생각을 위한 자유] 안에 누군가 ’자유’로이 읽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이 책은 과거 금지도서로 지정된 과거가 있다) 또한, 이 책은 ’당신이 생각한 것 처럼 지루한 책이 아니다’, 오히려 이 책은 당신의 생각을 앞뒤로 늘려주고, 척추측만증에 걸린 것 마냥 휘어져 있는 생각을 곧게 펴줄 것이다.

1984년 레이건 정권 당시 텍사스에서 정부에 항의하며 거리 시위를 하던 시위대 중 한명이 미국 국기에 불을 질렀다. 그는 ’공경 대상’에 대한 훼손을 금지한 텍사스법을 어긴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대법원은 그 판결을 뒤집고 국기를 불태우는 표현적 행위가 수정헌법 1조에 의해 보호된다고 판결했다. 브레넌 대법관은 의견서에 이렇게 썼다. 국기 훼손 행위를 처벌하는 것은 이 상징을 그토록 숭배할 만한 대상으로 만드는 바로 그 자유를 약화시킨다.

미국 사회에서 정치와 유명인에 대한 풍자는 흔한 일이며, 정말 원색적인 비난도 서슴지 않는다. 그리고 음모론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도 넘쳐난다. 그리고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인쇄물 또는 인터넷으로 주장하고 발표할 수 있다. 개중 몇몇은 맨 정신으로 봐주지 못할 만큼 혐오스럽고 역겹기 까지 하다. 과연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미국의 이 예외적인 자유는 어디서 오는가? 흔히 나오는 대답은 "수정헌법1조다. 미국 헌법의 그 수정조항은 다른 무엇보다도, "의회는... 의사표현이나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는... 그 어떤 법도 만들 수 없다.." 고 규정한다.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책을 읽어 나가면서 난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미국의 자유를 수호하고 있는 절대적인 힘을 가진 듯한 이 수정헌법 1조는 십수년이 지나도록 그 역할을 해내지 못했다. 그렇다면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앞에서 말했듯이 수정헌법 1조는 언제나 처럼 그 자리에 변함없이 있었다. 그렇다면 무엇이겠는가? 

수정헌법 1조는 1791년 이래로 늘 극적이었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마찬가지다.

그렇다. 변한 것은 수정헌법 1조라는 무대 위의 배우인 대중들이다. 수정헌법 1조를 이해하는 대중들의 시각이 변하고, 수정헌법 1조에 대한 판사들의 판결이 역사처럼 쌓이면서 수정헌법 1조를 둘러싼 이야기가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게 된 것이다.

오늘날 수정헌법 1조는 소송에서 자주, 성공리에 원용된다. 대법원과 그 밖의 법원들은 자유로운 의사표현과 언론의 자유에 관한 수정헌법 1조의 보장 내용을 이행한다. 그래서 대법원의 의견이 1919년에야 처음으로 수정조항에 따른 자유의 요구를 지지했다는 사실, 그리고 그것이 반대의견이었다는 사실은 새삼 놀랍게 느껴진다.

일단 수정헌법 1조를 법으로 집행하기 시작한 후에도, 자유의 길은 쉽지 않았다. 수정헌법 1조는 그 누가 보더라도 절대적이며, 직접적인 방법으로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주장한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수정헌법 1조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었던 듯하다. 수정헌법 1조는 절대적으로 하얀 도화지 또는, 그저 투명한 물과 같다.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가치가 너무도 절대적이고 직설적이기 때문에, 오히려 그 뜻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그 모습은 마치 야누스의 얼굴 처럼 성격을 달리하는 것이 되어 버렸다.

수정조항의 언어는 모든 것을 아우르는 듯 보이지만, 진정 그것은 말이나 글로 표현되는 내용이 어떠하든 법이 그에 반하는 조치를 취할 수 없다는 뜻인가? ... ... 거꾸로 수정헌법 1조는 말로 표현되거나 글로 인쇄되지 않은 어떤 행위들을 보호하는 것으로 해석되어왔다. ... ... 미국 국민에게 수정헌법 1조를 부여한 사람들은 그 조항이 어떻게 적용되어야 하는지에 관한 세부 규칙을 제공하지 않았으며, 그러기를 원하지도 않았다.

수정헌법 1조에 대한 해석은 제자리에 있지 않았다. 같은 법을 두고 같은 판사가 시간을 두고 서로 다른 판결을 내리는 신뢰성에 큰 흠이 가는 일들이 비일비재 했다. 심지어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빌어먹을 징집’이라는 문구 때문에 기소된 젊은이가 수정헌법 1조에 의해 보호된다고 했던 대법관은 후에, 그와 같은 판결에 반대하는 의견에 동조하기도 했다. 이처럼 수정헌법 1조는 그 해석을 둘러싸고 수많은 질문과 의문을 남기며, 그 어떤 가치 보다 수많은 쟁점을 쏟아 내었다. ’수정헌법 1조는 허위진술도 보호하는가?’, ’사생활이 지니는 의미는 무엇인가?’, ’누가 언론인가?’ ’무엇이 음란물인가?’ 등등

자유란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것 처럼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에서 등장하는 긍정의 힘 역시 그렇다. 연금술사는 그렇게 될 것이라 믿으며 자연 속의 징조를 따라 움직이면 세상의 모든 힘이 그렇게 되도록 도울 것이라 말한다. 하지만, 그런 힘 조차, 우리가 움직이지 않으면, 우리가 그것을 찾겠다는 의지를 갖지 않는 이상, 우리에게 주어 지지 않는 것이다.

산에 길이 있더라도 사람들이 찾지 않으면 금새 길은 무성히 자란 풀들에 가려져 사라져 버린다. 멋진 음악이 있더라도 그 음악을 듣고 연주할 사람이 없으면 소용이 없듯이, 자유란 그저 그 자리에 있는 것일 뿐, 그 위에서 자유를 향유할 수 있는 사람들의 ’의지’가 없다면 자유는 그저 잠자는 사잠와 같을 뿐이다.

[우리가 싫어하는 생각을 위한 자유]는 자유를 위한 생각을 싫어도 하게 만드는 힘을 가진 듯하다. 이 한권의 책으로 지금껏 배우고 알고 있던(비록 아는 것이 라고는 자유 두글자 뿐이었지만) 모든 것보다도, 생각해 왔던 모든 것 보다 더 많은 질문을 던져주었고, 그에 대한 대답을 함께 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큰 선물은, 이 책이 던지는 대답에 대해 나 스스로 의문을 던지고 다시 생각해 보도록 해주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미국의 수정헌법 제1조 가 걸어왔고 걸어 가야할 길, 그리고 이 땅을 밟고 있는, 이제는 5천만이 된 우리들이 밟고 가야할 자유의 길 또한 이와 비슷한 것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능동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자유의 길이어야 할 것이다.



t********n 2010.10.26.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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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보고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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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보고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이라는 말이 있다. 직역하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뜻이지만 특정한 사실이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석된다는 의미로 쓰인다. 이 말은 우리 현대사를 대표하는 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권력을 손에 들고 있는 사람들이 그에 대항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무차별적으로 행했던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 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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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보고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이라는 말이 있다. 직역하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뜻이지만 특정한 사실이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석된다는 의미로 쓰인다. 이 말은 우리 현대사를 대표하는 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권력을 손에 들고 있는 사람들이 그에 대항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무차별적으로 행했던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 분명 그렇다. 이는 오래되어 이미 기억 속에서 사라진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간에도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우리 헌법에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는 국민의 권리 또한 이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으로 일구어온 정치적 민주주의의 결과 많은 부분에서 국민의 권리가 확보되어 온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국민의 기본 권리를 보장하고 있는 헌법정신이 구현되고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왜 이러한 일이 끊이지 않고 벌어지는 것일까?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러한 답답한 심정을 정치적 민주주의가 실현되고 있다는 미국의 경우를 거울삼아 우리의 현실을 냉철히 돌아보게 하는 저서를 만나게 되어 매우 흥미롭게 읽었다. 퓰리처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미국의 저널리스트 앤서니 루이스의 저서 ‘우리가 싫어하는 생각을 위한 자유’를 통해서이다. 이 책은 미국의 수정헌법 1조를 근거로 이 조항이 미국 내에서 어떻게 국민의 기본 권리와 충돌하는 다양한 사건들을 판단하는 근거로 작용하게 되는지의 과정을 법원의 판결을 실례로 분석하며 해설하고 있다.

‘의회는 국교를 설립하거나 종교의 자유로운 실천을 금지하는, 그리고 의사표현의 자유나 언론의 자유, 또는 사람들이 평화롭게 회동할 수 있는 권리와 불만사항의 시정을 정부에 청원할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는 그 어떤 법도 만들 수 없다.’

이는 미국의 수정헌법 1조다. 어떻게 보면 지극히 원론적인 이야기로 보이는 이 법조항이 미국국민들의 기본권을 지키는 키워드로 작용해 왔다. 이는 우리 헌법에서 보장하는 기본 권리와 커다란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오늘날 국민의 자유가 철저히 보장되는 나라로 대부분 미국을 지목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이 책을 읽어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해소된다. 저자는 수정헌법 1조를 근거로 해서 의사표현의 자유, 표현의 자유와 사생활, 언론의 자유 등을 중심적으로 살피고 있다. 권력에 의해 침해받는 권리를 지켜나가는 최후의 보루는 이를 근거로 해석하고 판단하며 판결하는 법원의 판사들에 의해 지켜져 왔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대법원 판사들은 권리와 충돌하는 사건에 대해 수정헌법 1조의 해석에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즉, 무엇을 보고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의 문제였다. 이는 수정헌법 1조가 가지는 의미가 결코 고정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무엇이든 시대가 변함에 따라 그것을 판단하는 가치기준 또한 변하게 마련이다. 그렇기에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따라 그 결과는 전혀 다르게도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의 법관들은 이 수정헌법 1조를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고 확장하며 권력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방향으로 확대 해석해 온 것이라는 점을 주목하게 된다. 특히, 표현의 자유가 사생활을 침해해서 심각한 피해를 불러오게 된 때에 그 중심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또는 언론의 자유는 무한정 보장되는 것이 맞는지 등 서로 충돌하는 가치를 판단할 때 근거하는 것이 바로 수정헌법 1조의 해석이었다고 보는 것이다.

저자는 ‘삶이 살 만하려면 자유롭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이 지켜지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용기’라고도 말하고 있다. 법관들이 법을 해석하는 용기, 권리를 지키고 확대하려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유는 투쟁의 결과물이라고 하는 것이리라.

우리나라 권력의 중심에 있는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미국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자신의 가치판단의 모델로 미국을 생각하는 경우도 많은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그 미국이 지켜온 수정헌법 1조의 정신을 지켜가려는 사람들이 모습은 배우지 못하는 것일까?



m*****8 2010.10.2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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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의사표현의 자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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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매체에서 ‘명예훼손’이라는 말을 수없이 들어왔지만, 그게 진짜로 무슨 뜻인지는 전혀 몰랐다는 생각이 든다. 또 ‘의사표현의 자유’라고 하면 무조건 ‘진보’려니 생각했는데, 그것도 참 편향적인 생각이었다. 이 책의 장점은 무엇보다도 시각이 객관적이라는 것이다. 거슬리지 않고 중립을 지키고 있어 좋다. 사회를 바라보는 균형 있는 시각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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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매체에서 ‘명예훼손’이라는 말을 수없이 들어왔지만, 그게 진짜로 무슨 뜻인지는 전혀 몰랐다는 생각이 든다. 또 ‘의사표현의 자유’라고 하면 무조건 ‘진보’려니 생각했는데, 그것도 참 편향적인 생각이었다. 이 책의 장점은 무엇보다도 시각이 객관적이라는 것이다. 거슬리지 않고 중립을 지키고 있어 좋다. 사회를 바라보는 균형 있는 시각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비록 조금 어렵긴 해도, 공들여 읽어볼 만한 책이다
j****3 2010.09.0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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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싫어하는 생각을 위한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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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미법계 보통법common law-판례가 구속력을 가지는가 하는 점에서 성문법주의 대륙법체계와 구별-이 전통적으로 채택 적용되어 온 미국 수정헌법 1조와 관련한 역사를 판례를 중심으로 다룬 책이다. 『우리가 싫어하는 생각을 위한 자유』라는 서명에서 짐작할 수 있듯, 미국 수정헌법 1조는 의사표현의 자유에 관한 헌법 조항이다. 미국 수정헌법 1조는 "의회는 국교를 설립하거나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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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미법계 보통법common law-판례가 구속력을 가지는가 하는 점에서 성문법주의 대륙법체계와 구별-이 전통적으로 채택 적용되어 온 미국 수정헌법 1조와 관련한 역사를 판례를 중심으로 다룬 책이다. 『우리가 싫어하는 생각을 위한 자유』라는 서명에서 짐작할 수 있듯, 미국 수정헌법 1조는 의사표현의 자유에 관한 헌법 조항이다. 미국 수정헌법 1조는 "의회는 국교를 설립하거나 종교의 자유로운 실천을 금지하는, 그리고 의사표현의 자유나 언론의 자유, 또는 사람들이 평화롭게 회동할 수 있는 권리와 불만사항의 시정을 정부에 청원할 있는 권리를 제한하는 그 어떤 법도 만들 수 없다.(Congress shall make no law respecting an establishment of religion, or prohibiting the free exercise thereof; or abridging the freedom of speech, or of the press; or the right of the people peaceably to assemble, and to petition the Government for a redress of grievances.)"고 말하고 있다.

 speech, press, 그리고 assemble 등을 통한 표현의 자유의 의미와 범주는 법률적, 정치적인 해석상의 논쟁이 늘 함께하였다.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이러한 논쟁의 역사를 살펴보며, 핵심 쟁점과 그와 관련한 사례를 통해 시대의 흐름에 따라 해석이 어떻게 진화하거나 또는 회귀해왔는지 곰곰히 따라가보자.

 오랜 옛날에나 오늘날에나 선동적 명예훼손의 논지를 그대로 답습하여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목소리는 늘 존재해 왔다. 미국의 태동기와 미국법의 성장기에, 두 번의 세계대전 기간 동안, 매카시 광풍이 미국을 휩쓴 레드 콤플렉스 기간 동안, 베트남전 기간 동안, 심지어 911 이후 현재에도 여전히, 미국의 고질적인 애국적 히스테리는 미국민이, 그리고 인류가 오랜 세월동안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쌓은 가치들을 단기간에 무너뜨리기도 하였다. 가뭄 속의 샘물이 더욱 귀하게 느껴지듯이, 암흑의 시대에 자유를 논증하고 변호하는, '일견 타당하고 정당해 보이는 논리'의 어두운 부분과 맹점을 날카롭게 파해치는 주옥같은 명문장들의 인용구문을 읽으며 감동에 젖어 보자. 나 또한, 러셀이 말했듯, 명료한 사고와 선의의 가치는 서로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선의에서 피어난 지성의 향연만이 우리 인류가 오랜 시간 갈망해왔고 값비싼 댓가를 치러 차례차례 손에 넣어온 신성한 가치를 명료하고 아름답고 거룩한 논변으로 비호할 수 있고, 이는 이 시대에도 여전히 요구되는 우리의 사명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 책이 우리에게 남긴 숙제를 생각해 보자. 의사표현의 자유와 사생활 문제, 언론의 면책특권 문제, 공포와 억압의 문제, 그리고 '우리가 싫어하는 생각의 표현'의 자유의 문제, 경쟁하는 다른 이익들, 그리고 사상의 자유에 이르기까지 공부하고 숙고하고 고뇌하고 토론해야 할 과제는 산더미처럼 남아 있다. 언론에게는 명문적인 면책특권을 부여하여야 하는가? 사생활과 정치 사회적인 공익의 문제를 어떻게 조율할 것인가? 전쟁과 테러리즘의 시대에 공포와 억압에 맞설 논거는 무엇인가? 성에 관한 표현, 인종주의와 증오를 부추기는 표현을 규제하여야 하는가? 공직자들은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표현하는 것을 허락받지 않아야 하는가? 선거 기간동안 핵심 쟁점에 관한 언급이 금지되는 국내 선거법은 어떤 점에서 문제가 있는가? 사상의 자유가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이는 역사의 영역, 철학의 영역, 법의 영역, 윤리학의 영역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의 영역에 속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의사표현의 자유에 관한 글로 홈즈 대법관에게 영향을 미친 제카리아 채피는 '우리는 왜 사상의 자유, 의사표현과 언론의 자유를 원하는가?'에 대한 답을 두 개의 큰 범주로 나누었다. 하나는 개인적 이익이고, 또 다른 하나는 진실을 획득하는 데서 얻어지는 사회적 이익이다. 이 때 개인적 이익은 만약 삶이 살 만하려면 자신에게 필수적인 문제들에 관해 자신의 의견을 표현해야 하는 많은 사람들의 필요를 말한다.

 사상의 자유에서 얻어지는 사회적 이익은 서로 다른 여러 방식으로 표현되어왔는데,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은 1859년의 저서 『자유론』에서 사상의 자유에서 얻어지는 사회적 이익에 대한 유명한 철학적 기초를 놓았다. 그 것은 억압된 의견 안에 사회가 필요로 하는 모든, 또는 부분적인 진실이 담겨 있을 수 있다는 점을 핵심으로 한다. 아울러 거짓된 신념조차도 값진데, 이는 그에 관한 토론의 과정이 반대 관점의 진실을 시험하고 확인해주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홈즈 대법관은 1919년에 밀의 주장에 강력한 표현을 부여했다. "사상의 자유로운 거래야말로 그 궁극의 선이라는 염원에 보다 잘 도달할 수 있는 길임을, 진실을 시험하는 최선의 기준은 시장경쟁 속에서 스스로를 수용시키는 생각의 힘임을" 믿게 될 지도 모른다고 썼다.

 진리 도달의 가능성과 민주주의의 만개와 민주공화정 시민적 삶의 성립을 위해서 사상과 의사표현의 자유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기본권이라 하겠다.

 

 누구도 훼손할 수 없는 이 당연하고도 지고한 가치를 위해 싸워온 역사에 경의를 표한다.

p******s 2012.02.2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