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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에 이틀 동안 EBS에서 십계를 방영했다. 1956년작인 이 영화는 그 당시 인기 영화 장르였던 종교 영화 중에서 대표적인 작품이다, 어릴때 티브이로 봤지만 그때는 그저 홍해가 갈라지는 스펙터클한 장면에만 눈길이 갔는지(당시로서는 동공이 확대될만큼 놀라운 시각효과 였다) 영화 전체 내용이 기억이 잘 안났는데, 지금은 맘잡고 이 영화를 이틀에 걸쳐 다 봤다. (3시간 40분 짜리 긴 영화라서 어쩌면 "다 봤다"라기 보다는 "다 뗐다"가 더 어울리는 표현이겠다.) 옛날 영화 특유의 연극적인 연출과 연극적인 대사가 주를 이룬다. 람세스가 네프레티리를 칼로 내리치려 할 때 네프레티리는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내려치기 전에! 먼저 그 칼에 묻은 모세의 피를 보여주시오!" (팍! 끝!) 라고 멋지게 대사를 낭송하는 장면은 지극히 옛날 영화 다운 연극스러운 연출과 대사다. 촌스럽다고 생각말고 당시 영화의 기준으로 보면 멋스러움이 배어있다. 게다가 지금 영화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CG없는 거대한 스케일과 엄청난 인원의 엑스트라, 긴 상영시간, 그리고 스펙터클한 장면들은 십계를 대작 영화에 올려두는 요소들이다. 이집트인들은 유대인인들을 노예로 부린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신이 이집트의 신보다 더 위대하다고 믿는다. 마침내 유대인들의 구원자 모세는 신의 힘을 빌어 이집트를 무참하게 벌하고 유대인을 이집트로부터 탈출시킨다. 영화에서 신은 절대적이고 전지전능하다. 또한 두렵고 무서운 존재이기도 하다. 나는 영화를 보면서 이집트 병사들이 홍해 바다에 수장되는 끔찍한 장면을 보고 기겁을 했다. 물론 이집트인 = 노예지주,인종차별자 = 악, 이라는 설정이긴 하나 그 악인 이집트인을 벌하는 게 너무나도 잔인하다. 이집트에 역병을 돌게 하고 나일강을 피바다로 만들어 이집트인을 죽이는 열 가지 재앙은 아무리 악이라도 끔찍한 벌이다. 파라오가 유대인의 첫 아이들을 잡아 죽이게 했다고 해서 유대인의 신도 이집트인들의 첫아이들을 모두 다 죽인다는 보복은 끔찍하다 못해 공포스럽다. 신은 자신을 섬기는 유대인들에게 신의 권능을 보여주기 위해 (비록 악하다 하더라도) 타종교 타민족은 잔인한 희생양이 되어도 좋은걸까...다 커서 이 영화를 보니까 이런 의문이 가지에 가지를 틀어 갈라졌다. 홍해 바다가 갈라져서 동공이 커지는 건 어릴때 뿐이었다. 당시에 영화를 보던 미국인들은 신이 악을 벌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멘"을 외쳤겠다. 이집트인들은 이교도인데다가 노예지주와 인종차별자이니까. 하지만 2,500여년전의 그런 악행이 벌받는 것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이던 그들은 겨우 100년전 그들의 땅에서 일어났던 흑인차별과 가혹한 노예제는 신께서 그냥 봐주셨다고 생각할까. 오락적인 볼거리도 많은 영화지만 3시간 40분 이라는 긴 시간은 이 종교영화를 보면서 영화의 오락적인 재미에만 빠져들지는 못하게 만든다.
구약성서의 모세 5경에 나오는 신의 모습은 이처럼 전지전능 하면서도 무섭고 두려운 존재다. 신을 믿지 않는 자나 신앙심이 약한 자에게는 가혹한 벌을 내리고, 타종교에게는 무서운 재앙을 내리는 것이 구약성서속의 신이다. 역사속의 많은 지배자들은 신의 두려움을 통치에 이용했다. 다신(多神)보다는 절대적인 유일신이 통치에 유리하다. 지배자는 그 두려운 절대신의 힘을 이어받은 메신저의 모습으로 스스로 이미지화 하여 사회의 기강을 잡는다. 나는 아주 어렸을 때 길을 가다가 어떤 아주머니를 만났다. 그 아주머니는 나의 팔을 붙잡고 "예수 믿어라. 예수 안 믿으면 불구덩이 지옥에 간다!"라고 무서운 목소리로 말했다. 어린 나는 지옥불이 무서웠는지 아직도 아주머니의 억양과 느낌이 기억난다. 그래서 그때는 종교란 교리를 떠나서 '안 믿으면 큰일 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에게는 '믿지 않으면 죽어서 지옥간다'라는 말은 폭력이다. 타종교 타민족에게 우리 신 믿지 않으면 죽인다라는 말도 폭력이다. 신이 절대적인 두려운 존재에서 "자비로운" 신의 모습으로 바뀐 것은 예수 이후이다. 예수는, 지배자가 율법을 강요하기 위해서, 통치와 사회기강을 다잡기 위해서 신을 이용하는 행위를 규탄하며 민중 운동을 일으켰다. 예수는, 신은 아버지이고 인간은 자식들이며, 신은 인간의 잘못과 악행을 눈물과 희생으로 떠안는 자비로운 존재로 사람들의 인식을 바꿨다.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제도화 시켜서 전유럽으로 전파시킨 역할을 하였지만, 기독교가 이후에 전세계적으로 뻗어나갈 수 있었던 것은 핍박받던 민중은 어느 땅에서나 존재했던 까닭이었다. 사랑과 평등을 강조한 예수의 실천주의 메세지는 그 민중들의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이다. 나는 예수의 말씀과 가르침에 동화되지만 예수를 신격화 하지는 않는다. 예수를 신으로 만든 기독교의 삼위일체설은 기독교가 제도화 하는 과정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기독교보다 유대교나 이슬람교에 가까울라나.ㅎ 나는 교인들이 흔히 말하는 무신론자다.) 십계 영화 리뷰 쓰다가 괜한 종교관으로 새어버려서 죄송하다. 하지만 예수의 탄생과 그의 희생을 기리는 명절인 크리스마스에는, 예수가 부여한 "자비로운 신"의 모습을 그리는 영화를 방영해주는게 알맞다고 생각했다. "십계"처럼 안 믿으면 다 죽이는 공포스러운 구약 속의 신이 나오는 영화는 크리스마스 특집 영화로서는 꽝인 선정이다. 크리스마스는 사랑이다. : : : ps: 영화가 하도 길어서 1부, 2부로 나뉜다. 원작도 중간에 인터미션까지 있다. 1부의 모세는 인간적이다. 이집트의 왕자와 군인으로서 권세를 누리고, 사랑해서는 안되는 공주를 사랑하고, 왕위 계승 때문에 형 람세스의 질투를 받고, 또한 유대인 친모를 만나면서 고뇌를 한다. 그렇게 인간적인 모습의 모세에서 찰턴 헤스턴의 연기가 빛을 발하지만 2부의 모세는 딱딱하다. 오직 신의 메신저로서 역할을 하며 언제나 근엄하다. 인간적인 모습이 없어서 홍해가 갈라지는 장면이 나와도 2부는 지루했다.
네프레티리는 왕비가 될 공주니까 장자인 형 람세스의 여자인 셈인데, 사랑해선 안될 네프레티리를 사랑하며 갈등하는 1부의 모세
분장이 확 바뀐 2부의 모세. 네프레티리는 여전히 모세를 사랑하지만 그런 네프레티리의 구애에 모세는 사랑은 옛말이고 그녀에게 신의 말씀만 전파하려 한다. 에궁~~. 1부의 매력적인 모세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버려 낯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