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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차려진 식탁이 눈앞에서 나를 유혹한다. 날 먹어요! 과연 먹어도 되는 것일까? 화려한 식단도 아닌 엄마가 차려주는 영양가 만점의 식탁, 미리암은 식당 "셰 무아"를 내기 위해 거짓말쟁이가 되었으며 사기꾼이 되기도 했다. 대출을 받기위해 은행대출계에 호텔경영학교 출신에다 리츠 호텔 주방에서 일했다고 말한 것이다. 선의의 거짓말이라고 말하긴 뭣하지만 결국 대출에 성공했고 지금 "셰 무아"라는 식당이 그녀에게 있었다. 미리암이 식당은 처음 하는것이며 일할줄 모른다는 것도 그녀의 불운이었다. 철저한 준비를 하고도 실패하는것이 식당이거늘 그녀는 즉흥적으로 선택한듯 싶었다. 그녀가 잘하는것은 맛있는 음식을 만들줄 안다는것 그것만이 유일한 장점이었다. 그렇지만 "셰 무아"는 손님들에게 빠른 회전을 원하는 그런 장소가 아니다. 집에서 밥을 먹듯 느긋하게 맛을 음미하며 먹을수 있는 그런 곳이다.
그녀는 이제 혼자가 아니다. 가족같은 친구들이 생겨났다. 평범한 주부였던 미리암이 남편과 이혼한후 홀로서기를 하기까지 힘들었던 과정이 책속에 나와있다. 아이들과 헤어져야 했고 먹고 살아가는 걱정을 해야 했으며 무엇을 해야 할지 걱정해야만 했다. 아직도 미리암은 현실속에 장착하지 못하고 환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방황한다. 아직 모든 것에 서툴지만 벤이 있어 그녀는 잘 적응해 나갈것이다. 나는 주방에서 음식을 하고 벤은 홀에서 서빙을 한다. 어느새 우리집은 아고라(광장)이 되어 있었다. "셰 무아"에서는 무엇이든 주인이 내놓는 음식을 마음놓고 먹을 수 있다. 엄마가 해주는 가정식 백반과 같은 그런 주문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음식을 직접 가져다 먹기를 바라는 유아들을 위한 미니 셀프서비스 코너고 마련되어 있다. (훗~ 왠지 내가 식당광고를 하고있는 것 같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엄청 잘 할수 있다고 믿으며 할수 있다고 고집부리기를 좋아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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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자극받은 식욕때문에 나중에라도 이 책을 생각하면 배가 고플 것이다. 신산한 삶의 비밀을 가진 여자, 미리암이 연 식당같지 않은 식당 '셰 무아(Chez moi)'에서 향기로운 스프와 달콤한 케이크를 먹는 나를 상상한다. 아마도 나와 미리암은 잘 통할 것이다. 이미 삶의 한 고개를 넘은 사람끼리이니 말이다. 지적이고 똑똑하고 그리고 냉소적인 미리암은 유쾌한 대화 상대가 될 것이 틀림없다. 그녀는 아마도 내게 만드는데 세 시간이 걸리는 요리를 해 줄 것이다.
마흔이 넘은 그녀는 얼마 전 스스로에게 내린 유형을 끝내고 파리의 뒷골목에 간판도 없는 식당을 시작한다. 따로 잠잘 곳을 얻을 돈이 없는 그녀는 식당의 예쁜 녹색 부인용 소파에서 잠을 자고 커다란 개수대에서 샤워를 한다. 늘 따라다니는 과거의 기억에 밤마다 괴로움에 시달리는 그녀가 기다리는 것은 구원의 푸른색 트럭이다. 그러나, 아직도 신선한 자연을 그대로 가득담은 그 트럭을 스스로 부를 용기가 없다. 자신은 그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싸고 영양이 있는 음식을 사람들에게 대접하고 싶다는 그녀의 작은 소망은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녀는 재료값이나 세금따위는 생각하지 못하고 음식값을 안 받기도 하고, 첫 손님이었던 귀여운 여고생들에게 평생 4유로에 식사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한다. 그러던 그녀에게 천사같은 벤이 나타난다. 파리 최고의 '보이'인 벤은 조금씩 그녀를 달라지게 하고, 미리암은 반항한다. 세상과는 오로지 음식만으로 소통하고 싶었던 미리암, 과거에 대한 회한과 아들에 대한 끝없는 그리움으로 눈물없는 밤을 갇지 못했던 그녀는 꽃가게의 벵상과 날개없는 천사 벤 그리고 푸른 색 트럭의 알리와 전직 수학교사 바바라와 함께 조금씩 자신을 드러낸다. 어치피 삶이라는 게 숨겨진 많은 허방들을 짚으며 건너가는 것이라면 언제쯤 우리는 이 삶의 구렁에서 자신을 감출 수 있겠는가. 그것은 우리가 이 생의 끝을 보지 않는 이상은 어려운 일일 것이다. 수많은 원인모를 고통에 시달리는 밤을 보내면서도 다음 날 아침의 맑은 햇살에 잠시 웃을 수 있는 것이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미리암이 살고 싶었던 삶은 이 세상에 존재하기 어려운 것이다. 사람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끝까지 거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맑은 햇살에 꽃 향기에 맛있는 음식에 그래도 잠깐이라도 행복한 것, 그것이 삶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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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먹어요가 무얼 뜻하는무 사뭇 궁금했다. 처음에는 제목에 집착하다 보니 책 내용에 몰입이 되지 않아 힘들었다 그러므로 혹시나 책을 읽고 싶은분은 제목에 너무 연연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싶다. 책을 읽다보면 날 먹어요란 제목을 달게되었는지 저절로 이해가 되기 때문이다. 미리암은 은행에서 위조된 서류로 사기대출을 받아 식당을 개업한다. 그런데 그녀의 행동이 이상하다. 개업식을 하기도전에 식당을열고 장사를 하기시작한다. 물론 개업홍보는 전무하다 다만 그녀가 신경쓰는건 식재료와 어떤 손님이 올지에대해서만 걱정을하고 준비를 한다. 홍보를 하지 않는 식당에 손님이 올 리가 만무하다 오지 않는 손님과 상해가는 식자재를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리면서 죄책감을 느낀다. 그녀의 유일한 손님인 여고생두명을 단골로 잡기위해 음식값을 반액 세일해준다. 그런데 이게또 우습다. 미리암은 단골로 잡기위해서라는 명분을 주지만 그녀들에게 맛있는 식사를 저렴하게 주기위한 변명같이 느껴진다. 장사가 되지 않음을 괴로워 하거나 아타까워 하는 모습을 전혀 느낄수가 없다. 더구나 그녀는 식당 간판조차 달지 않았다. 분명 식당 이름은 세 무아라고 말하는데 밖에 걸린 간판이 없어 손님은 식당이 운영중인지 조차 알지 못한 것이다. 미리암은 새로운 웨이터를 구하고 서서히 손님들에게 알려지게된다. 그리고 독특한 운영방식과 음식이 신문에 나게되는데 그녀는 그일을 좋아하기 보다는 공포스런 반응을 보인다. 그리고 미리암의 독특한 행동에 대한 진실이 드러나게 된다. 그녀의 과거를 통해 여성이란 존재의 성에대해 생각해 볼수 있었다. 우리는 성에 대해 말하기를 꺼려한다. 더구나 부모님이 대상이되면 조개처럼 입을 다물고 그들에게 성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그런일은 있을수 없지만 그럼에도 말하지 않으려 하는 우리들에게 현실을 똑바로 보라고 말하는 듯 하다. 그녀는 세상에 얼굴을 내밀고 세 무아를 통해 과거와 대면하고 자신의 잘못과 그로인해 고통받은 아들에게 용서와 화해를 하게된다. 내가 이글을 통해 배운건 어머니도 사랑받고 싶어하고 또한 성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여자라는 것이다. 나또한 어머니면서 간과했던 아니 모른척 하고 싶었던 주제를 이책은 우리들에게 말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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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삶에 좌절한 채 살아가던 한 여인이 ‘셰무아’라는 식당을 차리면서 자신만의 삶의 정원에 다시금 물을 주고, 돌보면서 아름답게 가꾸어 가는 내용이다. 이 책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아무래도 이와 비슷한 영화들에 대한 좋은 기억들 때문이었다. ‘줄리&줄리아’와 ‘초콜릿’ 영화들이 바로 그것이었다. 먹음직스런 음식을 만들면서 자신의 삶을 가꾸는 여성들의 모습은 가장 여성스러우면서도 여성들의 감성을 자극할 만한 내용들이었다.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를 정성껏 준비하는 기쁨이 여성들 자신의 기쁨, 행복과 그대로 대치된다는 것 자체가 여성 감성을 그대로 자극한다. 남성들과 달리 여성의 감성을 자극 하는 내용들은 대체적으로 사랑이야기 그리고 모성애, 그리고 누군가를 위해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는 기쁨이다. 이런 내용들은 여성의 본능을 자극하면서 그 이야기를 통해 여성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이 책은 이 모든 내용들이 포함되어 나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했다. 주인공 미리암은 중년여성이다. 보통의 중년여성이라면 가정을 꾸리며 남편의 사랑을 받고, 아이들을 기르며 살아갈 텐데. 이 여성은 완벽을 추구하는 남편에 대한 혐오감으로 집을 나오게 된다. 사랑했던 어린 아들을 향한 모성애 또한 남편의 모습이 아들에게 겹쳐지면서 더 이상 본능적으로 뿜어내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그래서 남편과 어린 아들을 떠나 집을 나오게 된다. 이 사실만으로 그녀는 삶의 좌절을 겪게 된다. 그렇게 떠돌다 그녀는 어린 아들에 대한 그리움과 환상을 품은 채 우연히 서커스 단에 들어가게 된다. 그곳에서 서커스 단원들을 위한 음식 준비를 하며 지내게 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자신의 음식점 ‘셰무아’(우리집) 라는 식당을 차리고 삶의 방향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돌리게 된다. 물론 음식점의 간판을 달 만큼, 식당 홍보를 할 만큼 가지고 있는 물질적 여유는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누군가를 위해 음식을 준비하는 기쁨만으로도 행복해 하며 식당을 운영한다. 그리고 하늘이 도왔는지 아르바이트 생 벤이 나타나 그녀를 돕는다. 그의 도움으로 처음과 달리 점점 손님들이 찾아오게 되고, 식당은 번성하게 된다. 이렇게 알려진 식당에 미리암이 그토록 그리워하던 아들도 찾아오게 된다. 그리고 미리암은 아들을 위해 정성껏 음식을 준비하며 행복해 한다. 이 책의 제목은 ‘날 먹어요’다. 음식은 같은 음식이라도 준비하는 사람에 따라 다른 맛이 난다고 한다. 아마도 마리암이 준비한 음식은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행복하면서도 정성 가득한 음식이었을 것이다. 음식을 먹는 사람에 대한 사랑과 배려가 그녀가 만드는 음식 안에 녹아들었을 테니 말이다. 날씨가 싸늘해진 요즘 선물처럼 다가온 가슴 따뜻한 이야기였던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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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하나 내세울 것 없는 중년여성인 주인공 미리암은 스스로 모성애의 부재로 괴로워하다가 결국 가족으로부터 버림받고 방황하다 먹고 살기 위해 위조한 서류로 대출을 받아 ‘셰 무아’라는 식당을 연다.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은 여자가 연 가게의 이름이 “나의 집”이라니 역설도 이런 역설이 없을 것이다. 그녀는 그렇게 자신의 집 (사실 그 가게에서 먹고 살기 때문에 말 그대로 집이긴 하다) 에서 다른 사람들을 먹이기 시작한다. 몸이 커지는 케이크와 작아지는 주스가 나오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따왔다는 책의 제목을 다르게 생각해 보았다. 직역하자면 “아기를 먹인다” 이지만 아기를 키운다는 의미도 되는 ‘feed a baby’. 혹시나 해서 ‘양육하다’라는 단어를 프랑스어에서 찾아봤더니 거기서도 “젖을 먹이다. 음식을 먹이다. 먹여 살리다”라는 의미가 들어 있었다. 미리암의 ‘요리사’라는 직업에 담겨있는 의미가 여기에 있는 건 아닐까 남편에 의해 없어진, 혹은 정말로 처음부터 없었던 모성애를 찾고 싶어 다른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직업을 선택하게 된 것은 아닌지. 언뜻 보면 실패한 인생인 미리암에게 공감을 갖게 되는 것은, 아이를 둔 여성이라면 ‘반드시’ 있어야만 한다고 말하는 모성애의 부재가 아니라 사회적 통념에 의해서, 그녀 자신이 스스로 선택했으나 확신하지 못하고 지속한 결혼과 그 속에서 잃어버린 자아에 대해 고민하다 결국은 극단으로 치닫고 말아버린 불쌍한 여성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미리암은 오직 ‘자신’을 위해 연 식당에서 수호천사와도 같은 친구를 만나게 되고, 다정한(?) 이웃과 관계를 맺으며 새로운 삶과 희망을 갖게 된다. 작가는 주인공이 처한 현실과 독백, 그리고 상상까지 사실적이고 꼼꼼한 묘사로 잘 그려내고 있다. 또한 이야기 중간에 나오는 프랑스 가정 요리에 대한 소개도 색다른 재미를 준다. 이 소설은 한 여성의 비뚤어진 삶에서 다시 희망을 찾고,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을 오감을 자극하는 요리의 레시피처럼 그려낸 소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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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을 접할 때에는 많은 요리와 레시피가 담겨있기에 맛있는 요리들을 실컷 맛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소설책에서 이렇게 자세하게 요리의 이야기를 담은 책은 그리 흔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요리에 관한 이야기나, 작은 음식점 '쎄 무아(나의 집)가 어떻게 성장하느냐를 보여주는 책은 아니었다. 그 이상의 많은 이야기. 즉, 자신이 선택한 결혼이었고, 가정이었지만, 무참하게 무너져서 세상의 가장 낮은 곳까지 내려간 40대 미리엄이 음식점을 운영하면서 자아를 찾아가는 이야기였다. ![]() 그녀의 식당은 '셰 무아' . 프랑스어로 나의 집이라는 뜻이다. 그만큼 엄마가 만들어주는 사랑이 담긴 식당인 것이다. 미리엄은 '나는 사랑으로, 사랑에 의해 요리를 한다.'고 이야기한다. ![]() 추락할 만큼 추락해서,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던 그녀. 위조한 문서로 은행 대출을 받아서 식당을 차리기는 하지만, 처음부터 돈을 벌 생각은 없었다. 그냥 누군가에게 맛난 음식을 만들어 주고 싶었기에 차린 식당일지도 모른다. 아마도, 자신의 아들을 생각하면서 따뜻한 밥 한끼 먹이고 싶은 생각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미리엄이 왜 6년동안 남편과 자식으로부터 자신을 숨기면서 살아야만 했을까? 이 한 문장이 의미하는 바를 책의 많은 부분을 읽은 후에야 깨닫게 되는 것이다.
미리엄은 자신이 원했던 결혼이지만, 확고한 신념도 없었고, 완전무결과 신뢰감 만족을 보장하는 남편에 의해서 지쳐가고, 아들을 출산한 후에 자식 자랑을 늘어 놓다가 날아온 남편의 이유 모를 따귀 한 대. 그리고, 아들은 커가면서 너무도 완벽하여 엄마의 손길이 미칠 틈조차 주지를 않고, 그런 가운데 우울증과 함께 찾아온 함정. 그 함정이 가정을 파탄시키고, 그녀를 세상의 뒤편으로 숨어 버리게 만든다. 타인과의 관계도 어설프고, 아니 원하지 조차 않는 그녀에게 찾아온 두 사람. 뱅상과 벤. 활기가 없던 식당에 생동감을 가져다 주는 벤. 그러나, 미리엄과는 너무도 다른 식당에 대한 열정. 많은 독자들은 이 책의 제목인 '날 먹어요'의 의미도 궁금할 것이다. 이것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날 먹어요'라는 글자가 적힌 케이크를 먹은 앨리스가 몸이 커지고, '날 마셔요'라는 글자가 적힌 주스를 마시자 앨리스가 작아진 그 이야기를 떠올려 보면 어렴풋이 알게 될 것이다. 앨리스가 원하는 크기의 모습이 되기 위해서 '먹고, 마시기'를 거듭하면서 자신의 원래 크기로 가기 위한 노력을 했듯이, 미리엄이 자신의 아픈 상처에서 벗어나 진정한 삶의 크기를 찾아가기 위해 자아 정체성을 찾아 가기 위한 노력을 이야기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날 먹어요'는 자신의 정성이 담긴 음식을 먹으라는 의미와 그것이 곧 미리엄 자신을 사랑해 달라는 의미, 자신을 이해해 달라는 의미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의 문장들은 참 낯설다. 문장(글)의 향연이라고 해야할 정도로 화려하고도 섬세하게 치장된 문체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간단하고 단순한 문장들이 아닌, 수식과 열거와 비유 (은유)로 가득찬 문장들이기에 어느 정도의 분량을 소화하기 전에는 익숙한 모습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그만큼 미리엄의 심리를.. 갈망을.... 희망을.... 치밀하고도 섬세하게 표현해 나가는 것이다. ![]() 6년이란 긴 세월을 아들을 그리워하며 살았을 엄마의 마음 역시 애잔하게 다가온다. 앞으로 그녀는 인간관계를 원만하게 해 나갈 수 있을 것인지, 새로운 사랑을 할 수 있을지. 그리운 아들과의 만남은 이루어 질 수 있을지.... 이 모든 이야기가 작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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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이혼 후,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해야만 하는 미리암. 43세 중년의 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위조된 서류로 당당하게 대출을 받아 작은 식당을 열었다. 하지만, 사업을 성공시키고자 하는 의지와 열정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식당 이름도 '셰 무아(나의 집)'이어서 이 가게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 잘 알 수 없고, 메뉴도 시시각각 변한다. 개업 첫 날은 손님을 기다리며 혼자 공상에 잠기기도 하고 한편으론 마음의 준비도 안된 자신에게 손님이 찾아올까 두려워하기도 한다. 요리를 좋아하고 자신의 요리를 맛 보여주는 것 자체만으로 만족감을 얻는 그녀. 얼렁뚱땅 차린 식당이지만, 이익에 연연하지 않고 저렴하고 다양한 고급요리를 제공하면서 입소문도 나게 되고, 그녀의 남다른 사업에 동조한 청년 벤이 그녀를 도와 식당을 꾸려 나가게 된다. 장사는 잘 되었지만, 각종 청구서는 자꾸 쌓이게 되고, 그녀는 과거와 현실 사이를 오가며 괴로워 하기도, 행복해 하기도 한다.
한 때는 한 남자의 아내로, 아들의 엄마로 평범하게 살았지만, 남편의 따귀 한대로 인해 모든 생활과 생각이 달라졌다. 남편에 대한 증오와 산후우울증까지 더해져 감정은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극한을 치닫게 되고, 그 촛점이 아들에게로 향해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마음 속엔 미움이 가득차게 된다. 아들 위고의 친구 옥타브와 불륜을 저지르게 된 미리암, 여자와 엄마라는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면서 스스로 현실을 도피하고자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런 마음이 새출발을 시도하는 미리암에게 문득 찾아와 괴롭게 하기도 하고, 도움을 주기 위해 찾아온 젊은 청년 벤에게서도 어쩔 수 없는 이성적 감정들이 새록새록 살아나기도 한다.
이 책에는 요리책을 방불케 하는 특별한 프랑스 요리들이 많이 나온다. 오소부코, 드라제, 크로크뮤스,푸타르그 꿀, 이포포타무스, 생선 타진, 미네스트로네 등 요리가 등장하는데, 이 요리들의 특성을 잘 알고 있다면 책에 대한 이해가 더 용이했을 것 같다. 이 점은 오히려 프랑스 요리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고 관심을 갖게 하는 매력도 있었다.
순탄치 않은 40대 중년의 이혼녀의 홀로서기. 그녀의 성격은 매우 예민하고 섬세하면서도 성적으론 음지의 성향을 띤다. 작은 칭찬에도 행복해하는 모습은 소녀 같이 순수함을 주다가도 인간 내면에 감춰진 본능적인 감정들을 자제하는 능력은 부족한 것 같았다. 하지만 요리를 사랑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대접하고 싶은 마음만은 순수하고 사랑스러웠기에 주변에는 그녀를 도우려는 이웃이 늘 존재하는 것이다. 마무리가 좀 더 행복했으면 좋았을텐데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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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그야말로 이야기다. 물줄기가 흐르고, 우리는 그 흐름에 맡기고 배를 띄워 논다. 노를 젓지도 않고 돛을 펼치지도 않는다. 그저 빙글빙글 대야에 담긴 아이마냥 하늘이 빙글 빙글 도는 걸 보고 바람이 부는걸 보고 강둑에 툭툭 부닥치며 내려간다. 얼마나 자유롭고 평화로운가. 이야기는 중요하지 않고 내가 어디로 흘러가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평안하게. 가끔 배가 뒤집히고, 내가 왜 이런 짓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도 잠시. 흘러간다. 사랑을 하는 건 어떻고 고민을 하는 건 어떤가. 필요한 것은 이 작은 통 하나이고 우리가 흘러가는 것은 내 탓이 아니다. 강물이 흐르기 때문이고 세상이 기울어졌기 때문에 중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 그것이 세상과 자연의 이치이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흘러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