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애의 공식이란 게 시대에 따라 바뀐다. 바뀌는 건 알겠는데, 격렬함이 넘쳐나다 못해 상대를 괴롭히는 걸 좋은 시각으로 받아들여지진 않는다. 애정과 폭력. 아, 그래, 예전에 벨 아저씨가 그런 말을 해줬었다. 상대에 대해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는다면 증오조차 생기지 않는다고. 그러니까 아직도 그 사람이 밉다면 그 사람을 그만큼 좋아하고 있는 거라고.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만약 다른 사람이 나를 그만큼 미워하고 싫어하는데도 그걸 애정으로 받아들이기는 쉽지가 않다.
이유없는 증오, 이유없는 시기, 이유없는 질투란 것도 많기 때문에.
그러니까 저 사람이 나를 싫어한다는 걸 안다면, 나 역시 그 사람을 좋아하기란 어렵다. 어떻게 그 애정과 증오의 미묘한 경계를 우리가 깨달을 수 있단 말인가. 흔한 말로 되는 사람은 어떻게든 된다고 하고, 인연이 있는 사람은 어떻게든 만날 수 있게 된다지만. 과연 그렇게 괴롭힘 당하고 이지메 당하고 고통 당하는 사이, 그 상대를 사랑할 수 있게 된다는 게 있을 법한 일인가.
일단 한 번 눈에 박힌 가시는 '아프다'는 사실만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그 기억을 제거하고 아프지 않은 가시도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건 어렵다. 물론 이 예시 자체가 엉터리이긴 하지만, 이른바 상식, 고정관념을 해체시키기란 그만큼 어렵다는 거다. 한 번 씌인 콩깎지를 무슨 수로 안콩깎지로 만들 것인가. 아, 그래, 그래서 인연이란 말을 쓰는 것이겠지만. 어릴 때부터 사사건건 시비 붙고 이용하려는 남자애를 사랑하고 귀여운 눈으로 바라보는 여주인공의 심정을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내가 이해하든 이해하지 않든 만화야 연재되는 거고, 작품이야 베스트셀러에 올라오는 거지만-_-;; 그렇다고 해서 꼭 이 작품을 싫어하는 게 아니다. 나 역시 재미있게 보고 있는 독자 중에 한 사람이고, 비방 아닌 비방을 던질 생각도 없다. 단지 문화란 게 그 세대의 인식이나 문화, 상식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에, 이런 연애의 공식이 만화로 만들어졌다는 건, 분명 어딘가에 이런 연애의 공식이 허용되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내가 불만인 건 왜 이런 성격 나쁜 연애가 다 있냐는 거다;
거기다 내가 무지막지하게 싫어하는 계급주의에=_= 후후, 핫기믹의 두 주인공이 사는 곳이 사택이다. 그러니까 회사에서 제공하는 아파트 단지로 아파트의 권력구도란 게 회사 간부의 지위를 그대로 답습한다. 일본의 땅값이 비싸기 때문에 개인집을 산다는 건 꿈 같은 일. 세계에서도 순위권에 드는 동경이다보니 어떻게든 사택에서 쫓겨나지 않으려면 간부 부인에게도 잘보여야하는 것이다. 하츠미네 사택에서의 여왕은 바로 료오키의 어머니, 게다가 료오키는 우수한 머리를 가진 인재이기 때문에 더욱 문제가 많다. 료오키와 사귄다는 소문만으로도 하츠미네 식구들은 사택 내에서 왕따와 온갖 괴롭힘을 당했기 때문에 하츠미의 어머니는 같은 일이 벌어지는 것을 끔찍히도 싫어하는데, 정말로 하츠키가 료오키가 사귀게 된 것이다.
그리고 피가 섞이지 않은 남매인 시노구 또한 하츠미를 동생 이상의 감정으로 바라보고, 소꿉친구인 인기절정의 모델 아즈사 또한 하츠미에 대해 묘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아즈사는 하츠미의 아버지를 자신의 가정을 파탄낸 원수로 보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지 못하고, 그런 여러 가지 일들이 얽히고 섞이면서 만들어내는 드라마틱한 이야기들이 강하게 독자를 끌어당긴다.
단순명쾌, 복잡한 듯하면서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 거기에 아슬아슬하게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는. 성격이 나쁘면서도 어린애 같이 투정을 부리는 료오키의 모습에 하츠미가 이끌려가듯, 그렇게 어린애처럼 순수하게 구는 두 사람의 모습에 작품의 묘미가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