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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에 슬랙이 많다 해서 그걸 꼭 비난할 건 아니다. 슬랙은 범인의 눈에나 그게 슬랙으로 보일 뿐, 만든 이의 입장에서야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집어 넣은 것일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이런 판단을 내릴 때, 언제나 제작자의 (외부에서 잘 알 수도 없는) 의도만을 기준으로 삼을 건 아니다. 이를테면 몇 달 전에 내가 보고 여기다 리뷰도 쓴 브라이언 드 팔마의 영화 같은 게 그렇다. 유명한 '목신의 오후'의 몇 씬을 집어 넣고, 분할 화면으로 살인 시퀀스를 같이 꾸린 걸 놓고, 감독 본인이나 그를 옹호하는 비평가들, 일반 관객들이 여러 주장을 펴는 걸 보았다. 이 경우, 그 옹호론에 객관적(...) 근거가 없으면 이는 괜한 변명이나 진영논리식 편들기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앨런 파커가 언제나 제 영화를 만들 때, 꼼꼼한 도면대로 면도날 하나 들어갈 틈 없이 제작을 수행하는 건 아니다(최소한 내 봐 온 바로는 그렇다). 하지만 이 작품을 두고서는, 정말 이 사람 여기에 목숨 걸었었구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들 만큼, 건물이 무너지지 않게, 어쩌다 모진 풍파에 실금이나 생길 여지도 주지 않게, 꼼꼼히 잘도 구상하고 튼튼히도 지어 올렷다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결과물이 이룬 성취에 쉬 수긍하거나 찬사를 보낼 마음이 냉큼 들지는 않더라도, 지은 사람이 저렇게 공을 들였으면 최소한 그 노고와 진지함에는 경의를 표할 줄 알아야 한다. 이 영화의 의도, 특히 플로팅 부분을 놓고는 많은 논의가, 심지어 국내에서도 뜨겁게 있은 줄 안다. 꼭 보면 지적 능력 떨어지고, 논리적 사고력 부족하고, 기본 상식 못 갖춘 애들이 목소리는 최고치로 높여 악을 쓰고, 어느 진영에 가담해서 극단 논리만 펴면 승자가 되는 줄로 착각하는데, 이런 풍조가 뿌리 뽑히기 전까지는 사회에 발전이라는 게 있을 수 없다. 양아치는 안이건 밖이건 물을 꼭 흐리는 게 예외가 없는 법칙이다. 이하 전부 스포일러이므로 영화 안 본 분들은 읽지 말 것. 다들 잘 안 하는 이야기만 최대한 애써 적어 보겠다 인디언 농담 중에 이런 게 있다. 기독교는 자살을 금한다면서, 왜 '그 양반' 자신은 자살했는가? '순교(그 양반 케이스 제외)'가 탈종교 입장에서 보면 광의의 자살에 해당할 수 있다. 이 영화에서 콘스턴스의 경우, 자살을 가장한 순교라 본다면(이들 '데스워치'의 성향은 시민사회운동 단계를 넘어 거의 종교적 열정이 지배하는 모습이다), 데이비드 게일 선생의 경우 순교를 가장한 자살로 보는 게 내 생각이다. 첫째,. 순교에는 어떤 반대급부가 따라서는 안 되는데, 게일 선생의 경우 이타적 동기에서의 몸값 수령(그리고 전달)이었다고는 하나, 어떤 금전적 대가가 끼어들었다는 점에서 이를 순교라 보기 힘들다. 대의를 위해 죽는다는 엘리트 특유의 허영이 작용한 게 크고(이런 심리가 콘스턴스에게는 없었음), 이런 인간들내면에 순수한 의미에서의 종교적 열정이 일어나기는 힘든 법이다. 다만 그는, 극중에서 끊임 없이 되뇌는 것처럼, 현대의 소크라테스가 되고 싶었던 열망이 제법 크게 작용했을 텐데, 이는 그저 학자로서의 명예욕에 가까울 뿐이다.(심지어 이건 소크라테스 본인도 마찬가지) 콘스턴스, 그리고 게일은 과연 '사형 폐지'라는 대의를 위해, 자살에 가까운 방법으로 목숨을 던진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出捐에는 반드시 급부가 따라야 한다는 미국식 사고를 철저히 반영한, 기묘하게 세속적인 '변형 순교'라고 불러 줘야 마땅하다. 마지막 장면, 뭔가 슬픔을 담고 있는 듯, 아니면 떳떳지 못한 짓이라도 저지른 장난꾸러기가, 귀가하는 부모를 떠올리며 걱정에 잠기듯, 두 방향으로 곡예운전하는 듯 불안정한 게일(케빈 스페이시 분) 선생의 표정을 보며, 우리는 이 기이한 인신공희가 기만적 대중조작이 판치는 현대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진지하게 반추할 필요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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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추천해 주었지만 디비디를 구하지 못해 볼 수 없었습니다. 시장보러 간 마트의 대여점에서 운 좋게 구해 어제 3번 보았습니다. 우연히(?) 게일 교수(케빈스페이시)의 삶이 꼬이지 시작하고 죽음을 앞두고 있는 유일한 친구 콘스탄스(로라 리니)와 ..... 반전이 흥미진진해서 영화적 재미를 더해 주었습니다. 음악이 참 좋았는데 알란파커 감독의 두 아들이 함께 작업을 했다고 합니다. 작업하면서 한 번도 싸우지 않았는데 이것이 기적이라고 감독이 인터뷰를 했습니다. 강추~ |
| 영화.. 멋진 영화인거같다.. 무언가를 하고나서 기록하는것을 좋아하는터라 잠깐 기록해보겠다. /영화는 책처럼 뭔가 말할수없는거같다. 이영화 내용이 뭘까 재밌는건가 좋은영화인가 궁금해하는것은 나도 경험해 보았기에 잘알지만. 이것저것 그냥 모르고 보는것도 괞찬은것같다. /괞히 재미만 따지면 영화의 다른모습과 의미를 상실하게 되니.. 어쨌든 영화를 친구에게 추천받아 보게 되었다. 대략 뭔 감동적이다라고 하길래 놔뒀다가 시간이 없어서 한동안 못보다 오늘 보았다. /내용은 정말 tv 드라마 같으면서도 심오했다. 전체적으로 다보고나서는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좀있어서 인터넷으로 찾아보고 그렇다는걸 알게 되었다 ... /정말 나라, 국가의 잘못된 제도는 변하기가 얼마나 어렵다는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꼭 바꿔야 된다는것 또한.. 가끔 무료할때 보면 괞찬을 영화에 한표 던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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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제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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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배우 케빈 스페이시가 나와서 그럭저럭 관심은 있었더랬는데, 아는 형이 추천해서 꾸역꾸역 보게된 영화.
명성있는 감독 앨런 파커 감독의 작품이고, 그 감독이 열렬한 부시의 비판자이며 사형제도의 반대자라면. 그리고 이 영화의 원제가 'The life of David Gale'이라면. 이 영화는 조금 더 고민했어야하거나, 아니면 좀 더 근원적인 질문을 던져야 했다. 영화 중간의 장면처럼, 마구 공격을 해대다가 주지사의 질문 한방에 할 말을 잃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는 느낌이랄까.
사형수의 인종비율에 대한 문제(사회구조적 문제)라던가, 처벌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이 완전히 부재한 상태에서 스릴러의 형식을 빌려 사형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해보고자 했다면, 결과는 이도저도 아닌 그야말로 정력낭비가 된 셈이고 그 반대로 사형제도를 하나의 소재로 빌려 재미있는 스릴러를 만들려고 했다면, 이 영화는 너무 폼을 잡았고, 거기다 너무 잘못된 소재를 잡고 만 꼴이다.
생각해보라. 이 영화를 보고 난 사람들이 실제로 사형 반대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보게 될런지. 그리고 무엇보다 사형 반대를 옹호하는 입장에서 만든 이 영화의 사형반대론자들이 결국 자신들마저 생명을 수단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범죄를 줄이고 예방하기 위한 큰 목적'을 위해 사회악 몇 명쯤은 희생해도 된다고 이야기하는 '저들'의 화법과 무엇이 다를 것인가... 하는.
이 영화보다 훨씬 덜 실제적이고 더 추상적으로 이야기하는 것 같은 '데드맨 워킹'이 생각나는 건 왜였을까. 리얼리티를 살리겠다는 섣부른 욕심보다는 차분하고 진지한 고민 속에서 '핵심'을 건드리는 '데드맨 워킹' 쪽에 나는 몰표를 주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