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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 .. " 영화를 다 보고 난 후의 한 마디의 감상평이다.
초반 30분만 해도 영 아니라는 느낌이어서, 몇 번이나 그냥 접을까 말까 고민했는데 그래도 평들이 워낙 괜찮았기에 끝까지 한 번 참고 보자는 마음으로 시간을 견뎠다. 그런데 이 영화, 시간이 지나면 갈수록 숨겨져있던 빙산 같은 가치가 드러난달까 .. 대기만성형 (???) 같은 영화라는 느낌이다. 나중에는 정말로 입을 쩍 벌리고 영화를 관람하게 되었다.
어떤 통로가 있다. 마치 앨리스 이야기에 나오는 토끼굴같은 이 통로는, 앨리스가 다른 세계로 가게 해 주었듯 통로를 지나는 이를 다른 세계로 가게 해 준다. 그런데 그 다른 세계가, 물질적인 의미에서만의 다른 세계가 아니라, 다름아닌 타인의 의식 속이라면 ? 오호. 이 엄청나고 괴기한 상상력에서 영화는 출발한다.
찌질한 (영화를 보면 안다 .. 처음부터 끝까지 찌질하다) 인형사가 돈을 벌기 위해 어느 회사에 취직을 한다. 7.5층이라는 요상한 층에 자리한 이곳은 사람들끼리의 소통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이상하고 신비한 도깨비나라 .. 아니 회사다.
어느날 서류정리를 하던 찌질한 인형사는 캐비넷에 가려진 이상한 문을 발견하게 되고 문을 열면 보이는 끝이 없는 듯한 통로로 기어들어가 보게 된다. 순전히 호기심에서 출발한 이 여행은 .. 그를 존 말코비치, 진짜 현실 세계의 바로 그 배우인 존 말코비치의 의식으로 인도한다. 그가 보는 대로 세계를 보고, 느끼고, 생각을 전해 듣게 되는 와중에도 자신의 의식은 살아있다.
단 15분간 지속되는 여행이고, 15분이 지나면 무슨 고속도로 옆으로 떨어져 그 세계에서 나오게 되는 여행이나 그는 그가 추근대던 회사 여 동료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둘은 떼돈을 벌 채비를 하게 된다. 그리고 그 사이 자신의 아내에게도 이 사실을 알려주고, 그녀는 자신도 경험해보고 싶다고 해 결국 그 통로굴을 기어들어가게 되는데 ..
여기서부터 꼬이고 꼬이는 등장 인물들의 인생 역정이 시작되는 것이다. 더 이상의 이야기는 스포가 될지도 몰라서 여기까지 .. 참고로 여기서부터 쓰는 감상 역시 스포가 될 수 있다 ^^ 참고하시길.
생각했던 것보다 영화는 철학적이고, 복잡하고, 어두워서 다 보고 나서도 입을 여전히 벌린채 한동안 벙 ~ 하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영화는 생각보다 철학적이어서, 표면적인 스토리 전개 외에도 무언가 전하고자 하는 의미나 메세지가 더 .. 더 ..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팍 팍 들지만, 머리가 좋지 않은 나로서는 두 번 이상은 보아야 영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텐데 영화 전반적인 분위기가 하도 음울하고 어두워서 도저히 그렇게 하고 싶지가 않아서 .. 한 번 보고 나서 머릿속에 남은 , 얕은 감상평이나마 적어보고자 한다.
1.왜 존 말코비치인가 왜 그 통로를 통해 들어가게 되는 의식의 주인공은 존 말코비치였을까 ? 존 말코비치가 영화 속의 현실이 아닌 진짜 지금 내가 사는 이 세계 속에서는 굉장히 유명하고 대단한 인물일지 모르지만 영화 속에서는 그렇게 성공적인 배우로까지는 그려지지 않는듯하다.
그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에서 만나는 택시 기사도 그렇고 , 인형사의 직장 동료도 그렇고 등등 많은 사람들은 존 말코비치의 출연 영화도 제대로 꿰고 있지 못하다. 그런데도 말코비치의 의식 속으로의 여행을 경험한 사람들은 두 손을 모으고 황홀해한다.
왜 하필 말코비치여야 했으며, 왜 사람들은 말코비치의 의식 세계로의 잠입(?)을 경험하고 그렇게, 그 정도로 희열에 들떠 행복해하는 것일까 ..
어쩌면 그건 그냥 흔하디 흔한 <존>이나 <제인>이어도 상관없는 건 아니었을까 ? 그저 <타인>의 의식 세계라면 어느 누구라도 상관없는 것은 아니었을지 .. 하는 생각이 든다.
주인공 인형사는 왜 인형극을 좋아하느냐는 질문에 답을 하기를 (자문자답이었다. 실제로 그에게 그 질문을 한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아무도 관심가져주지 않는 일개 인형사 '나부랭이'일 뿐. 그래서 그가 더욱 더 <존 말코비치>되기를 희망한 건 아니었을까. 이 이야기는 조금 있다가 ..) 그것은 마치 다른 사람이 된 듯한, 다른 생을 경험하게 해주는 .. 뭐 그런 느낌을 주기 때문이라는 답을 한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대충 이런 뉘앙스였던듯.
인형사가 인형극을 좋아하는 것과 사람들이 존 말코비치 되기를 좋아하는 것이 서로 대비가 되는 것은 아니었을까?
르네 지라르라는 무슨 무슨 학자가 .. 이것도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모방 욕망>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십계명의 마지막 계율은 '네 이웃의 집(혹은 아내,남종,여종,재산..)을 탐내지 말지어다'이다. 나와 남을 비교하고, 타인의 것을 탐냄에서 많은 죄악이 시작됨을 그는 이야기한다. 우리는 직접적인 만남과 간접적인 경험(대표적으로 티비..)을 통해 남이 가진 것을 보며 나의 결핍을 발견하게 된다. 나의 결핍에의 인식은 곧 남의 것을 욕망하는 것으로 치환된다. 꼭 학자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사람은 누구나 모방 욕망이 있다는 것은 지당한 이야기이고 공식적인 전제다.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며 자신이 가진 것에 지극히 만족하기란 뒤틀리고 억압된 인간의 본성상 거의 불가능해보인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의 것이 아닌 다른 이의 것을 탐하며, 나의 생에 만족하지 못하고 다른 이의 생을 탐하고 갈구하게 되는게 아닐지.
그래서 그들이 그토록 황홀해했던 이유는, 그들이 경험한 여행이 <존 말코비치>의 의식이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단지 <타인>의 의식이어서 그랬던 것은 아닐런지. 이를테면, 지금의 내가 아닌 새로운, 다른 모습의 나를 원한 욕망이 이를 통해 드러난 것은 아닐지 하는 것이다.
실제로 그들이 존 말코비치의 의식 속에 잠입하여 경험하는 세계는 정말, 특별할 것이 없는 지극히 평범한 세계다. 영화 속에서 다른 이들의 시선으로 본 존 말코비치의 삶에는 그만이 경험하고 누리는 부나 명예와 명성, 혹은 무대에서의 순간 같은건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그는 방 안에서 대본 연습을 하고, 신문을 보며 빵을 먹고, 전화로 생필품을 주문할 뿐이다.
그토록 평범한 일상 생활, 그 장본인이 길거리에 흔한 <존>이나 <제인>이어도 상관없을 그런 일들을 경험하며 사람들이 그토록 행복해하고 황홀해했던 것은 그 주체가 바로 <내>가 아닌 <남>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었다는 반증은 아니었을지.
덧붙여 바로 위에 쓴 것처럼 개인적인 생각에, 존 말코비치 되기가 반드시 <존 말코비치>되기여야만 했던 사람은 주인공인 인형사 한 사람뿐인 건 아니었을까 싶다.
인형사가 그토록 사람들에게 핍박(?)받고 아내에게 은근한 압박(?)을 받으면서도 인형사 일을 계속하고, 회사에 취직한 후에도 인형사로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 하는 것 -예를 들면 자기소개를 할때 .. 회사에 이미 취직한 뒤에도 그는 자기 소개를 인형사로 한다. 고향이나 출신 학교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 을 보면 어쩌면 그는 <나>가 아닌 <남, 타인>되기에의 욕망이 좀 더 강렬한 사람인 것은 아닐까 싶다. 앞에도 언급했듯 그가 인형사라는 일을 좋아하는 이유는 남이 되어 남의 생을 경험해볼 수 있다는 데 있다. 자신의 현재 처지에 더더욱 만족하지 못하기에 그런만큼 더더욱 남이 되기를 강하게 욕망하는 건 아닐지.
심지어 그는 존 말코비치의 의식을 거의 장악하게 되고 나서도 다른 일을 하는게 아니라 바로 그 인형사의 일을 계속하게 된다.
예전의 자신인 크렉과는 다른 인물인 <존 말코비치>가 되었으면서도 다른 인물과 다른 생을 경험케 해주는 인형극을 계속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 어쩌면 그는 다른 인물인 <존 말코비치>가 되어서도, 또 다른 자신, 또 다른 모습의 생을 계속해서 갈망한 것은 아니었을까 ? 그렇다면 그는 어찌나 현실과 자신에 만족하지 못하는 인물인건지. 어쩌면 그는 그저 <자신의 처지>가 싫어서 남이 되길 갈망했던 게 아니라 <자신>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했던 인물이었던 것은 아니었을지....
아무튼 예전의 크렉이었을때와 달리 존 말코비치로서 공연하는 인형극은 존 말코비치의 배경을 등에 업어서인지 굉장히 성공적이어서 .. 그는 더더욱 <존 말코비치>되기, 혹은 그로 존재하기를 갈구하는 동시에 일종의 만족을 누리게 된다.
다른 삶을 경험할 수 있게 해주는 인형극 .. 그 인형극을 계속해나가기 위해서는 여러 배경과 명예를 지닌 <존 말코비치>라는 인물이 필수적이다.. 는 데에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존>이나 <제인>이어도 상관없었을 인물이 그에게있어서만큼은 반드시 <존 말코비치>였어야하는 것은 아니었을지.. 하는 생각이 들었따.
그러나 결국 그는 영화에서 가장이라고 말해도 좋을만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며 일평생을 형벌과 같은 삶을 살게 된다. 영생을 탐했던 ㄹ..무슨무슨 박사와 그 친구들은 존 말코비치의 삶을 완전히 '빼앗게' 된다. 결국 그런 것이다. 남의 것을 욕망하고, 남의 것을 탐하는 것은 결코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하며 .. 주인공처럼 일종의 벌을 받게 되기도 하고, ㄹ..무슨 박사와 그 친구들처럼 남의 인생을 짓밟고 훔치고 어떤 의미에서는 존 말코비치를 죽인 .. 살인과 다름없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는 무서운 진리가 영화에 담겨져 있던 것은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다.
2.우리는 다 존 말코비치가 아닌가 개인적으로 영화를 보며 충격적이었던 장면들 중의 하나는 자신(의 의식) 안에 자신 아닌 다른 존재가 있다는 것을 처음 자각하게 된 존 말코비치가 절규하다시피 괴로워하며 몸을 떠는 장면이었다.
그때부터 그는 자신 아닌 이질적인 자신 안의 존재로 인해 불안해하며 불쾌해하는 모습들을 보인다.
그 모습에서 오늘을 사는 현대인의 모습을, 아니 인간 전반의 모습, 우리 모두의 모습을 보았다고 하면 좀 ..지나친 생각일까? 아니 어쩌면, 존 말코비치는 자신이 아닌 의식을 자각을 하기에, 자각이라도 하기에 우리보다 나은 처지는 아니었을지. 어디까지나 온전히 장악당하기 전 까지의 이야기이다.
예를 들면 우리는 대부분 인간의 본래 목적은 그게 아닐꺼라고 은근히 생각하고 자라면서 못에 박히도록 들려오는 <출세><성공><명예><돈><학벌>에의 압박에 반항하며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를 외쳐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른이 된 우리의 모습은 모두 행복의 근거와 인간됨의 근거를 결국 -그토록 반항했던- 물질적 성공과 안락에 두고는 듣기 싫어했던 기성 세대의 자리에 앉아 그들의 목소리를 내는 모습.. 에 다름아니다.
혹자는 그런걸 두고 '결국 인생의 진리를 깨달은 것'이라고 이야기하지만, 과연 그럴까 ? 과연 그런 게 인생의 진리일까 ? 그렇다면 왜 드라마와 광고, 현대 사회의 외침과 달리 물질적이고 사회적인 성공을 이룬 자들의 영혼은 그토록 황폐하고 공허하며, 아니 당장 최신 휴대폰, 좋은 옷 좋은 집 좋은 차 ..를 가지게 된 그 다음날 어쩌면 그 다다음날 어쩌면 그 다다다음날 .. 언제건 간에 그 언젠가는 나의 영혼은 공허하며 무언가 채움받기를 갈구하는 것일까. 정말 그런가 ? 광고에서 강요하다시피 화려하게 이야기하는 그 물품을 사면 과연 나는 행복해지는가.
그럼에도 행복이 그런 것들에 달려있다고 믿고 외치는 우리의 모습은, 주인공 인형사의 긴박한 외침에 반응하여 그의 말대로 행동하고 말하게 되는 그리하여 결국은 온전히 그에게 잠식되어 모든 행동과 말과 의식마저 주인공을 따르게 되는 존 말코비치의 그것과 다름아닌 것은 아닐까 .. 대충 이런 생각이 들었따.
이 외의 감상. 3.영화를 반쯤 보다가 문득 등장인물을 찾아보고 싶어 검색해봤는데 .. 카메론 디아즈가 나왔단다. 아니 도대체 어디에 ? 아직 못봤는데. 뒤에 나오나? 하고 영화를 다시 보기 시작했더니 허걱 .. 낯선 배우라 생각하고 신경도 안썼던 이 여자가 그녀란다. 이럴수가.
4.영화는 상당히 <무의식> 혹은 <잠재의식> 이라는 소재에 비중을 많이 두고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주인공의 아내와 직장동료 이 두 여자가 엎치락 뒤치락 하는 공간도 그렇고 침팬지의 행동도 그와 관련되어있다. 하지만 그 이상의 의미는 잘 ?? 모르겠다.
5.영화를 보고 각본을 누가 썼나 봤더니 .. <이터널 선샤인>의 극본을 쓴 사람과 동일 인물이란다. 과연. 과연 정말 그렇다. 이 두 영화 중 어느 하나가 마음에 들었다면, 다른 한 영화도 반드시 마음에 드실 것이다. ^^ <이터널 선샤인> 거의 다 잊어먹었는데 .. 조만간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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