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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묵은 해와 새해를 가르는 12월 31일의 밤처럼, 삶의 갈림길에서 보내는 그 밤은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까? 오늘이 지나면 이제껏 자란 곳을 떠나 낯선 곳에서 꿈꾸던 일을 이루어가야만 하는 젊은이들의 마음을 잘 보여주는 영화가 바로 조지 루카스 감독이 1973년에 만든 <청춘 낙서 American Graffiti>다.
네 젊은이의 모습을 보며 영화 속에서 '당신은 1962년에 어디에 있었나요?' 하는 물음에, 사는 곳은 달랐어도 한때 그와 비슷하게 앞날을 걱정하고 사랑을 찾으려 애쓰던 때가 생각날 것이다.
2. 1962년 미국 캘리포니아의 어느 고을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사내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하루를 보냈을까?
사내랍시고 마음에 드는 아가씨를 졸졸 따라 다니거나 꼬드기려고 애를 썼을 테고. 그리고 밤마다 할일 없는 사람처럼 차를 몰고 다니며 온 마을을 쏘다녔을 테고. 때로는 다른 사람들 앞이라 허세를 부리려 못 마시는 술도 마셨을 테고, 짖궂게도 엉뚱한 짓을 해서 어른들을 놀라게 했을 것이고...
갓 어른이 된 젊은이들이 하는 짓은 먼 미국이나 우리 나라나 크게 다를 바가 없을 것이지만, 우리보다 잘 사는 곳이어서 우리는 자전거도 없을 때 그네들은 차를 몰고 다니면서 놀았다는 게 다르다.
마을에서 같이 자라고 같이 어른이 되어가는 네 사내 녀석들도 같은 길을 걸어간다.
동부의 대학에 합격을 하고 다음날이면 떠나야 하는 커트 핸더슨(리차드 드레이퍼스)은 멋진 차를 몰고 가는 금발의 아가씨를 본 다음부터는 쫓아 밤새 거리를 쏘다닌다.
멀리 가서도 공부를 잘 하라고 장학금으로 2,000달러를 받을 만큼 범생이인 커트한테는 이 밤이 범생이를 벗어날 마지막 밤인양 못된 짓을 일삼는 파라오 무리와 같이 어울린다.
스티브 볼랜더(론 하워드)는 커트와 같이 동부의 대학으로 가야 하지만 홀몸이 아니어서 쉽지 않다. 사귀던 로리 핸더슨(신디 윌리엄스)이 놀아주질 않으니 답답하다. 크리스마스 때면 다시 만날 것이라고 달래지만, 로리는 다른 말을 늘어놓는다. "새집을 구하려고 헌집을 떠나야 하는지, 새 동무를 사귀려고 옛 동무를 떠나가야 하는지 모르겠어..."
그런다고 스티브가 그냥 주저앉아 가지 않을 사람도 아니고...스티브는 오히려 한 술을 더 떠서 말한다. "우리 이제부터 다른 사람을 사귀어도 그냥 두고 보자..."
로리는 약이 올라 삐진다. "그래~ 멀리 가서 나 말고 다른 아가씨를 사귀겠다고...가까이 오지마! 다른 사내가 없어도 너하고는 춤을 안 춰!"
3. 다음날에도 커트나 스티브처럼 동부의 대학으로 갈 일이 없는 두 녀석이라도 젊은 피는 어쩔 수 없다.
자동차 정비공장에 다니는 존 밀러(폴 르 맷)는 노란 빛깔의 아담한 차를 몰고 밤길을 나섰지만, 같이 타고 다니면서 놀만한 마음에 드는 짝을 찾지 못했다. 그런데 일이 엉뚱하게 꼬여 쥬드의 어린 아우인 캐롤(맥켄지 필립스)이 옆자리에 타게 되었다. (나같이 잘 생기고 멋있는 사나이한테 어째 이런 꼬맹이가 옆에 타다니 복도 복도...)
존은 누구냐고 물어보는 동무들한테 기 죽기 싫어서 사촌 아우라 둘러대기나 하지만, 캐롤은 큰 오빠같은 존과 같이 다니는 게 그저 좋아 쫑알쫑알 거린다.
넷 가운데 얼굴이 가장 받쳐주지 않는 테리(찰스 마틴 스미스)도 밤 마실을 나섰지만 봐주는 이가 없다. (얘들이 눈이 삐었어...이 차만큼 멋있는 차가 어디 있다고...이런 차를 모는 이 몸을 몰라주다니...)
아예 사냥에 나섰다. "어이, 너 이 차 타라..." (한때 우리나라에서도 입에 오르내리던 말들이다.) 길가던 데비 던햄(캔디 클라크)은 어처구니가 없다. 그런데 얼굴은 영 아닌데 몰고 다니는 차는 좋다. "너같이 못생긴 사람 차는 안 타!" 해야 하나, "차 구경만 하고 내릴 거니까 조금만 가보자..." 하나.
4. 이 영화 다음부터 조지 루카스 감독이 만든 <스타 워즈>에 나오던 해리슨 포드도 밥 팔파로 나온다. 존 밀러와 차 몰기 내기를 하다가 들판으로 차가 뒤집어지는 얄궂은 모습을 보이지만....
같이 보던 아내는 영화가 화끈한 맛이 없이 밋밋하다며 텔리비전을 보러 방으로 들어갔지만, 나는 오래된 미국 노래를 들으며 젊은이들의 설익은 사랑 놀이가 즐겁기만 했다. '온리 유 Only You (and You Alone)' '와 와 Ya Ya' '락 어라운드 더 클락 (We're Gonna) Rock Around the Clock'...귀에 익은 노래들이 나올 때는 옛날 기웃거리던 찻집에 있는 듯하다.
게다가 스티브한테 삐진 로리가 홧김에 밥 팔파의 차를 타고 가는 것이나, 테리가 술을 사려고 가게를 기웃거릴 때나 데비와 차에서 사랑을 나누려 할 때나, 범생이를 벗어나 보려고 커트가 파라오 무리들과 같이 저지르는 일 따위에서, 샛길로 빠지는 대목도 아슬아슬 하기는 하지만 지나치지 않아 마음이 놓이는 영화다.
5. 화면은 그런대로 봐줄만 하지만 깔끔하지는 못하다. 소리도 그럭저럭. 보너스는 푸짐하다. 어떻게 만들었는지 그 때의 감독과 배우들이 나와 온갖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나온 사람들을 소개도 글로 하고 있다. 그러나 모두가 그림의 떡이다. 영어로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디브이디를 만들 때 보너스도 우리말로 옮겨 놓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많이 아쉽다.
디브이디 껍데기에는 영화가 185분이라 쓰여 있다. 세 시간을 내기 어려워 여러 차례 보기를 망설였는데, 112분짜리 영화였다. 사람을 놀리는군...보너스까지 더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