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벼르고 벼르던 고우영의 초한지(8권)를 손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주말농장에도 가지 아니하고 읽었습니다. 남들은 몇 시간이면 읽어치운다는 만화를 이틀을 꼬박 다 채워가며 읽었습니다. 주말 내내 딸이 제 주위 반경 1미터 밖으로 떨어지지 않고 착 달라 붙어있었던 것도 한 이유가 되겠지만 원래 그림 보는 속도가 느린 것이 주된 원인입니다. 만화도 평소에 좀 읽어 본 사람이나 빨리 읽지, 저처럼 만화 대여점에 제 돈 주고 간 일이 없는 사람에게는 글을 읽으랴 그림을 보랴 더 정신이 없습니다. 누가 옆에서 만화책 보는 제 모습을 봤다면 무슨 대단한 철학서적 읽는 줄 알았을 것입니다. 하하하~ 표정은 심각했을지 모르지만 참으로 재미있게 봤습니다. 그렇다고 유쾌하지는 않았습니다. 초한지의 결말은, 아시다시피, 교토사양구팽(狡兎死良狗烹)으로 끝납니다. 그야말로 허무합니다. 수많은 싸움이 벌어지는 동안 장수와 병졸들의 목이 댕강댕강 잘려나가고, 허리가 싹둑싹둑 잘려나가고, 몸둥아리가 좌우 균등 분할되는 장면을, 고우영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리고 있습니다. 여자는 그저 남정네의 노리개이고, 대의(?)를 위해 변절은 밥먹듯하고... 그 전형적인 인물로 날건달 유방을 그리고 있습니다. 한신의 표현대로 '구역질나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초한지를 읽었으니, 아니 보았으니, 거창하게 뭐 느낀 거 없냐구요? 없습니다. 예전에 삼국지를 두어번 읽고 나서, 뭔가 '깨달은' 것처럼, 술자리의 안주로 삼아 떠든 적이 있었는데, 부끄럽습니다. 삼국지가 청소년 필독서로 선정되고 불멸의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된 것 역시 부끄럽습니다. 뭐 제가 선정한 것도 아니지만 말입니다. 거기서 무엇을 본받으라는 건지, 요즘 많이 헷갈리고 있습니다. 초한지도 역시 마찬가지구요. 삼국지 초한지를 읽어야 세상 사는 법을 깨닫는다는 말은 군대 가야 사람된다는 말이나 다름 없는 것 같습니다. '세상 사는 법'과 '사람된다'는 말에 어떤 답이 있겠습니까. 고전을 꼭 읽어야한다고 강변하는 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나, 고전 - 결국은 역사를 읽지 않을 수도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제 말은 그저 호들갑 떨며 읽지는 말자는 뜻이었습니다. 마치 거기에 무슨 답이 있다는 듯이 말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아침부터 횡설수설합니다. 죽은 한신의 시체를 찾아 떠나는 괴철처럼 말입니다. 죽은 한신의 시체를 얻으러 가는 괴철은 이렇게 말합니다. "알고도 범하는 것이 사람의 실책이며, 모르는 듯 누리는 것이 인간의 권세인가?" 고우영의 초한지는 이렇게 끝이 납니다. |
| 이른바 고전으로 불리는 책이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날까지 사랑받는 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비록 오랜 옛날에 쓰여져 지금과는 전혀 다른 배경을 갖고 있긴 하지만 그 속에는 세월이 지나도 변함이 없는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력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초한지는 진나라 말기부터 전한의 건국까지 비교적 짧은 시기의 역사를 다룬 책이다. 하지만 금의야행,사면초가,권토중래,토사구팽 등 인간사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즈는 많은 고사성어를 남긴 고전이기도 하다. 또한 고우영 초한지의 머리말에도 나와있다시피 중국 역사서 중에서 초한지만큼 상큼한 드라마를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삼국지와는 달리 초한지에는 이야기가 유방과 항우라는 두 인물의 대결로 압축되는데다 짧은 기간동안 극적인 사건이 반복적으로 제시되면서 장중한 결말로 치닫기 때문이다. '삼국지'와 '수레바퀴'에서 보여주었듯이 고우영은 역사와 인물에 대한 독창적인 해석과 위트를 초한지에서도 그대로 펼쳐보이고 있다. 고우영 만화의 주요 특징 가운데 하나는 간결하면서도 인물의 성격과 감정이 잘 드러나는 캐릭터이다. 특히 초한지에는 주요 인물의 개성이 다른 어느 작품에서보다도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사람 좋아 보이는 순박함과 어리숙함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비굴한 행동과 잔인한 행동도 태연하게 하는 유방, 힘은 산을 뽑을 만하고 기세는 천하를 뒤덮는다는 역발산 기개세의 영웅이지만 우직하고 과격한 항우, 겉보기에는 연약한 귀공자 같지만 냉정하고 치밀한 한신 등 참신한 인물해석이 눈에 띈다. 하지만 그래도 캐릭터들이 낯설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유방은 삼국지의 유비와 한신은 일지매와 닮은 것처럼 전혀 다른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그 바탕에는 고우영 특유의 캐릭터가 숨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인물 소개에서 작가는 한신을 '일지매'와 '제갈량'으로 분했던 배우라며 익살스럽게 소개하고 있다) 고우영의 초한지는 원작과는 다른 그만의 독특한 스토리를 전개하고 있다. 즉, 유방과 항우의 대결이라는 기본적인 줄거리를 유지하면서도 때로는 한신의 눈으로 때로는 장량의 눈으로 독자적인 이야기가 펼쳐지는 식이다. 본래 전국시대 말기 진나라에 멸망당한 한나라의 왕족 출신으로 난세에 어떻게든 살아남아 나라를 재건하기 위해 기생의 기둥서방 노릇도 하고, 동네 불량배 가랑이 사이를 기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던 한신. 그 때문에 동족에게도 멸시를 받고, 항우 밑에서 일개 창잡이로 종군하는 등 온갖 어려움을 겪은 뒤에 마침내 한의 대원수를 거쳐 제나라 왕이 된 그의 이야기는 파란만장한 인생을 겪은 사람에게서 느낄 수 있는 묘한 감동을 불러 일으킨다. 물론 동네 건달에서 황제가 된 유방, 한 때 천하를 호령했으나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항우같은 초한지의 주인공들의 이야기도 흥미롭게 전달된다. 고우영은 고전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많이 썼지만 그의 만화는 성인 만화의 시초로 여겨진다. 그것은 그의 만화에는 자신만의 에로티시즘이 유쾌하게 펼쳐지기 때문이다. 과거 독재 정권시절에는 그런 장면들이 많이 삭제되었지만 이번 복원판에는 곳곳에 삽입되어 읽는 맛을 더해주고 있다. 특히(하필 이름이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유방이 점령하려는 성을 여자로 비유하여 마치 애무하듯 서서히 성무을 여는 장면은 사서에서 유방이 인의를 앞세워 항복을 권유한 고사를 절묘하게 빗댄 점을 상기해 볼 때 정말 참신한 표현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보통 역사서는 승자의 입장만을 밝히기 쉽다는 점 때문에 유방의 장점과 항우의 단점은 실제보다 더 부각될 염려가 있다. 하지만 고유영의 초한지는 이 두 주인공에 대해 균형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즉, 두 사람의 이미지 - 유방의 관대함과 항우의 포악함 -는 사실로써 그대로 두되, 비록 잔인하긴 했지만 아울러 솔직함과 인간미도 갖고 있었던 항우의 모습을 전달하려 노력했고, 통일 후 숙청 과정에서 볼 수 있다시피 큰 공을 세운 부하들을 '토사구팽'시키는 유방의 몰인정함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고우영의 초한지가 진정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일종의 '권선징악'의 과정처럼 알려진 유방과 항우의 대결이라는 평면적인 내용이 아니다. 그것은 초한지의 처음과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초한전으로부터 유래된 장기이야기에서 확인 할 수 있다. '사람 세상살이 바로 장기판과 같나니... 누구는 지는 편 마(馬)가 되어 고단하다네. 이기는 편 차(車)라고 해서 좋을까 보냐? 이기기 위해서는 졸(卒)하고도 바꾼다네' 즉, 고우영의 초한지는 초와 한의 대결이라는 짧은 역사 속에 인생사의 다양한 모습이 압축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제각기 파란만장하고 극적인 유방과 항우, 한신과 같은 인물들의 삶은 바로 그러한 인생의 표본처럼 보인다. 초한지가 고전으로써 여지껏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이유는 인간사에 대한 깊은 통찰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고우영의 초한지는 이러한 원전의 의미를 고스란히 담고 있으면서도 상쾌한 유머와 세상살이의 지혜 그리고 인생의 비장함까지 느끼게 하는 만화의 고전이라 할 수 있다. 고전이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고 오늘날에도 많은 사랑을 받듯이. 고우영읜 초한지가 주는 재미와 감동은 2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변치 않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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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무더위가 기승을 떨치고 있다. 매스컴에서는 기상관측이래로 가장 오랫동안 열대야가 이어지고 있다는 등의 더위관련 기사를 내뱉고 있다. 40도가 넘는 폭염이 전국을 휩쓸고 있다는 앵커의 맨트는 이 더위에 더욱 더 주눅 들게 한다. 더운 날씨로 인해 집중도 되지 않고, 가뜩이나 열대야로 인해 잠들기(물론 밤늦게 중게 하는 올림픽의 영향도 있지만...) 어려운 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이럴땐 그저 쉽게 읽어 낼 수 있는 책이 이 무더위와 싸우고 밤늦은 새벽 중계시간을 기다리기에는 최고의 피난처가 아닌가 한다. 그래서 선택한 책이 바로 고우영의 “수호지”이다. 만화책이 주는 친밀함과 가벼움, 그리고 고우영만의 유머스러움과 위트가 적절히 조화되고. 거기에 섹슈얼리즘까지 가미한 그의 작품이야 말로 잠 못드는 이 여름밤 더위와 싸우기는 제격이 아니겠는가?? 초한지'는 초나라의 항우와 한나라의 유방이 대결하며 유방이 한나라를 건국해 가는 과정을 그린 대하소설이다. 허허실실로 사람을 끌어들이는 유방과 원리원칙으로 사람을 내치는 항우, 천민 출신 유방과 명문 귀족 출신 항우 대조적인 두 지도자와 그 주변 인물들의 대립과 처세 그리고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의 장세 판단 등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어필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중국 역사서 중에서 초한지만큼 상큼한 드라마를 찾아보기도 쉽지 않다. 그 배경과 사건이 유방과 항우라는 비교적 단순하게 압축된 인물의 맞대결이기 때문일 게다. 항우(項羽, BC233~BC202)는 진(秦)나라 말기 하상(下相: 지금의 강소성 숙천宿遷 서남) 출신으로 이름은 적(籍), 자는 우(羽)이다. 항우는 키가 8척이 넘고 세발 달린 큰 솥(鼎)을 들어 올릴 수 있을 정도로 힘이 셌다.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라고 칭할 정도로 힘이 셌던 항우, 하지만 그가 가진 원칙주의자 적인 성품으로 인해 의제를 죽이고, 진나라 병사 20만을 생매장하여 그 원성을 드높였다. 항우는 비록 전쟁에서는 용맹하였지만 민의를 얻는것과 인재등용에서는 실패하였다. 그에 반해 유방은 지금의 장쑤성[江蘇省] 펑현[豊縣]에 해당하는 패(沛) 땅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가업을 돌보지 않고 유협(遊俠)의 무리와 어울렸다. 한낮 이름없는 시골의 서민출신이며 한량이었던 유방은 성격이 대담하고 치밀하며 포용력이 있어, 부하를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데 능숙하여 항우와의 대결에서 최후 승자가 되어 한의 왕이 될수 있었다. 그가 스스로 한왕에 오르고 나서 한 애기를 보면 그가 최후의 승자가 된 이유를 알수 있다. “나는 장량(張良)처럼 교묘한 책략을 쓸 줄 모른다. 소하(蕭何)처럼 행정을 잘 살피고 군량을 제 때 보급할 줄도 모른다. 그렇다고 병사들을 이끌고 싸움에서 이기는 일을 잘 하느냐 하면, 한신(韓信)을 따를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이 세 사람을 제대로 기용할 줄 안다. 반면 항우(項羽)는 단 한 사람, 범증(范增)조차 제대로 기용하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천하를 얻고, 항우는 얻지 못한 것이다.”라고 했다. 《초한지》를 보면 항우는 계속된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지만 공고한 후방을 건설하지 못하여, 줄곧 전후방에서 작전을 동시에 수행해야 하는 다소 불리한 입장에 처하게 되었다. 항우는 제후들을 분봉하면서 다소 공평성을 상실하였는데, 이때 불만을 품은 제후들이 유방에게 동조함으로써 항우는 정치적 고립에 빠졌다. 이외에도 항우는 비록 전쟁에서는 용맹하였지만 인재등용에서는 실패하였다. 따라서 원래 항우의 휘하에 있었던 한신(韓信)·진평(陳平) 등이 모두 항우를 배반하고 유방에게 투항하여 유방의 핵심 참모가 되었으며, 심지어 그는 자신의 핵심 참모였던 범증(范增)을 믿지 못하여 많은 실책을 거듭하게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항우가 전선에서 거둔 성과를 상실한 반면, 유방은 오히려 전선에서의 패배를 정치적 승리로 전환시켰다. 한(漢) 5년 12월, 초나라 군대가 해하(垓下: 지금의 안휘성 영벽靈璧 동남)에서 방벽을 구축하고 있었는데, 군사는 적고 군량은 다 떨어진 데다 한나라와 제후들의 군대에 겹겹으로 포위되고 말았다. 이때 밤중에 한나라 군사들이 사방에서 초나라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크게 놀란 항우는 "한군이 이미 초나라 땅을 모두 빼앗았단 말인가? 어찌하여 초나라 사람들이 저리도 많은가?"라고 탄식하였다. 그는 애첩 우희를 불러 함께 술을 마시면서 비분강개한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는 부하 장졸 8백여명과 함께 포위망을 뚫고 남쪽으로 질주하였으나 음릉(陰陵: 지금의 안휘성 정원현定遠縣 서북)에 이르러 길을 잃어 버렸다. 여기서 항우는 한 농부에게 길을 물었으나 그 농부가 일부러 항우에게 길을 잘못 가르쳐 줌으로써 항우는 다시 유방군의 추격을 당하게 되었다. 항우는 황급히 군사들을 이끌고 탈출하여 동성(東城: 지금의 안휘성 정원현 동남)에 이르렀다. 이때까지 살아남은 항우의 군사라고는 단지 기마병 28명뿐이었으나, 그들을 추격한 한나라 장수 관영의 군사는 기마병 5천명이었다.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판단한 항우는 비장한 결심을 하였다. 항우는 마지막 투혼을 발휘하여 마침내 포위망을 뚫고 동쪽으로 달려가 오강(烏江: 지금의 안휘성 화현和縣 경내)에 이르렀다. 그러나 항우는 오강을 빨리 건너라는 사공의 권유를 뿌리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고우영은 고전을 누구보다 맛깔스럽게 표현하는 능력을 타고난 만화가다. 어떤 고전이든지 그의 손이 닿으면 언제나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된다. 그것은 무엇보다 독특한 캐릭터로 표현된 등장인물들이 살아 움직이며 어떤 상황이든지 소화해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삼국지> 유비에 느물느물함이 70%쯤 첨가된 듯한 ‘유방’, <수호지> 무송에 냉정함과 저돌성을 100%를 더한 듯한 항우. 일지매에 비장함을 더한 한신 등 주요 인물들은 분명 새로운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그 인물들이 낯설지 않은 것은 이미 우리에게 익숙해져 있는 고우영 인물들의 원형이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외에 유방의 동서인 개백정 번쾌, 부인인 여후. 특히 유방의 부군사로 등장하는 역이기의 좌충우돌하는 모습은 고우영만이 그려낼 수 있는 해학이 담겨있다. 고우영의 <초한지> 첫 장면은 장기판에서 시작한다. ‘초나라와 한나라의 전투를 축소해 놓은 것이 장기판의 유래’라는 1차원적 차용이 아니라 세상과 장기판이 비슷하게 돌아간다는 풍자를 이끌어 내기 위함이다. 사람 세상살이 바로 장기판과 같나니… 누구는 지는 편 마(馬)가 되어 고단하다네. 이기는 편 차(車)라고 해서 좋을까 보냐? 이기기 위해서는 졸(卒)하고도 바꾼다네…(1권 4쪽) 마지막 장면 역시 항우의 죽음이 아니라,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일부러 미친 짓을 하고 다녔던 괴철의 대사로 끝맺는다. 항우가 죽고 유방이 권세를 잡은 후 한신이 토사구팽 당하자 괴철의 입을 빌어 “나는 정말 미친 것인가, 알고도 범하는 것이 사람의 실책이며 모르는 듯 누리는 것이 사람의 권세인가” 하는 대사와 함께 작가는 나레이션을 통해 ‘내가 졌다. 장이야, 장 받아라’로 막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초한지》에는 이렇듯 무수한 영웅들의 무용담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항우와 우미인, 그리고 한신과 상희의 애틋한 사랑도 있다. 천하를 호령하며 천하의 대세를 다투는 싸움에서도 한 여인을 향한 그들만의 지고지순한 사랑애기도 있다. 《초한지》를 처음 보는 것은 아니지만 초한지를 볼 때마다 인물에 대한 호불호는 달라진다.. 예전에는 그 출신을 넘어 인재등용에 성공하여 천하를 쟁취했던 유방이 크게 보였었다. 어차피 세상은 승자만 기억하는 말이다. 하지만 이번 고우영의 《초한지》에서는 천하를 얻고 나서 유방에게서 내쳐져 끓는 기름솥에서 삶아죽었던 한신이 눈에 더 들어왔다. 고우영의 《초한지》의 주인공은 유방이 아니었다. 유방은 단순히 하늘이 그에게 내려준 천운 때문에 왕위를 얻은 것으로 표현된다. 아마도 작가도 한신에게 더 애틋함을 실어서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기녀의 기둥서방을 하고 부랑배의 가랑이 사이를 기어가는 치욕을 당하면서도 자신의 때를 기다린 한신, 소하, 장량과 더불어 한을 일으킨 3대공신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내쳐짐을 당한 한신, 가녀린 몸매와 예쁘장한 얼굴로 표현되는 지고지순함을 가진 한신. 그는 왜 자신이 나서야 될 때를 기다리는 인내는 알고 있었지만 천하를 3분하자는 모사 괴철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토사구팽(兎死狗烹) 당했을까? 그가 가지고 있는 지고지순함이 그의 순수함으로 인해 주공에 대한 충성심이 나아가야 할 때와 물러나야 할 때를 알지 못한 걸까? 그가 그렇게도 경멸했던 유방인데도 말이다. 중용(中庸)은 시중(時中)이라 했다. 즉 중용은 때를 기다림이고. 찰나를 얻는 것이라 했다. 즉 타이밍이라는 애기다. 한신 그는 그가 나설 타이밍은 알았지만 물러난 타이밍은 잡지 못한 것인가? 아님 승리의 축배에 취해 자신이 물러날 때를 읽지 못한 것인가? 어쩌면 미친척하고 천하를 주유했고, 한신의 시신을 염해준 괴철이 세상을 더 잘 읽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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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삼국지를 재미있게 읽고서 초한지를 사달라고 해서 이러저리 구경하던중 어린이 독후감 대회 참여작이라는 글이 두개나 올라 있어서 중1 아이에게 주려고 구입했는데, 성인용 인것 같아요. 읽고 있는데 뺏기도 뭐하구 새로 사주자니 아깝구... 어린이용으로는 적합하지 않은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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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의 승자
초한지 속 최후의 승자는 유방 이다. 진정한 승리.. 그딴 거 치우고.. 결국 하고 싶은 거 하고, 되고 싶은 거 된 넘은.. 유방, 이 녀석밖에 없다.
고우영이 묘사하는 유방은... 운빨 쥰나게 좋은 한량이다. 힘이 센것도 아니요, 머리가 좋은 것도 아니요.. 술과 여자를 좋아할 뿐이었지만, 좋은 인재를 거느린 덕에 황제가 된다. 물론, 좋은 인재를 알고.. 중용한 것도 지혜일테지만, 황제로서의 철학이나 신념은 찾아보기 힘들다.
한나라의 황제가 된 이후, 개국공신 한신을 죽이고.. 장량을 떠나보낸 것만 봐도.. 유방의 그릇은 넉넉치가 못하다. 그럼에도, 하늘은 그를 선택했다. 왜? 물론, 이건 답이 없다..
승리의 요인은?
다만.. 항우, 한신, 장량... 등 다른 초한지의 주인공들과 유방의 차이점이 있다면, 유방은 부드러웠다는 거다.. (<- 헉, 이 문장은 좀 에로틱...-.-;;) 항우의 자부심과 자신감은 때로 공포스러울 정도였고, 한신과 장량은 지혜로웠지만, 신념을 꺾는 일이 별로 없었다..
뻣뻣한 막대는 힘을 주면 부러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유연한 고무막대는 부러지는 일이 없다.. 구부러질 뿐이다.. 비열해야 할 때 비열하고, 굽신거려야 할 때 굽신거리던 유방처럼. 살아남기 위해 무엇에든 유연히 대처하는 것.. 그것이 유방이 최후의 승자가 된 원인은 아닐까.
사실, 이건 어느 사회.. 어느 집단에서나 마찬가지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뻣뻣하게 구는 녀석들은 어디나서 눈밖에 나기 마련. 요즘처럼 경쟁이 심하고, 세상살기가 어려운 때에.. 회사에 잘 붙어있으려면.. 유연한 조직 적응 테크닉은 기본 스펙이어야 겠지.
유방, 한신, 그리고 정신 분열증
하지만 이런, 유방같은 애들이 넘쳐나는 사회는... 정신 분열증의 사회가 될 것만 같다. 어제한 말, 오늘한 말, 내일할 말..이 다르고.. 그게 다르다는 것 조차 모르고.. 왜 그런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내가 누구인지, 무얼하는 놈인지.. 도 감을 잡을 수 없는.. 그저 지금의 안정과 쾌락만 지키는 게 지상의 과제인.. 그런 인간들만 차고 넘칠 것 같다.
그래서 좀 무섭다... 흠좀무.
초한지를 읽으면서, 심정적으로 가장 동화되었던 인물은 한신..이다. 조국에 대한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한낱 인간 나부랭이의 나약함을 보이기도 하고, 지쳐쓰러질 때쯤 누군가의 사랑을 통해 다시금 성장하고 성장하던 소년... (같은 청년) 한신, 이 아름답고 비극적인 인물을 어찌하면 좋은지..
유방이 자신의 분열증을 계속 끌어안고 사는데 비해, 한신은 자신의 정신 분열증을.. '성장'을 통해 치유한다. 왕족의 신념을 가지고서도, 천민의 가랑이 사이를 지나가야 했던.. 분열증적 행동은, 자신의 생각과 고민을 한단계 업그레이드 시키면서 극복된다..
끊임없이 배우고 성찰하는 과정에서, 자기 안의 모순을 해소해 나가는 것. 이것이 한신이 유방과는 질적으로 다른 점이다. 하지만 그는 결국 황제에 오른 유방에게 비참한 죽음을 당한다..
도대체 누구의 삶이 더 나은 것이었을까.
인생극장
한신 같은 녀석이 넘쳐나는 사회에서는.. 결코 2MB, 공정택 같은 넘이 왕좌를 차지하진 못 할 것이다.. 이들의 당선은 대한민국의 분열증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니까.
출발조건부터가 다른 서민들이.. 오히려 무한경쟁과 성공신화에 친화적인 현실인 거다! 늘 당하기만 하던 이들이어서, 좀 더 빨리 사회에 적응해 손해를 보지 않으려는 것일 수도 있다. 사회와 정부에 맞선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잖아.. 그 싸움에서 승리하는 건 더 어려운 일이고.
하지만 모순을 진리로 끌어안고 산다는 것도, 사람으로서 참 괴로운 일이다. 인생에 정답이 어디 있겠냐마는... 그래도 고민은 한번 해보자.
유방과 한신.. 나의 선택은 무엇일지. |
| 역발산기세의 항우와 모든 사람들을 포용하는 유방의 성격이 극명하게 구분이 되면서 한신과 장량, 소하, 범증등의 머리싸움등 여러가지 볼거리와 작가특유의 유머감각이 살아있는 작품이다. 특히 마지막에 자신을 황제로 세우는데 고생했던 한신마저도 자신의 사후를 염려해서 끝내 죽이고 마는 유방의 비정함은 한편의로 세상을 살면서 자신이 살길은 마련해 두어야 한다는 생각마저도 들게하는 대목이다. 특히 깔끔하게 편집되어 있지 않고 아무렇게나 그려 놓은 듯한 그림은 편안한 마음으로 볼만한 책이다. 한번 시간이 날때 가벼운 마음으로 읽은 후에 깊이 생각할 거리를 남겨주는 책인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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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편하게 읽기는 어려운 책이더군요.. 역사를 알고자 이 책을 선택했는데,너무나 정리가 산만해서 내가 무엇을 읽고 있는지 헷갈리고요..특히나 애들과 같이 볼려고 구입했는데,몇페이지 읽고 바로 포기해 버렸습니다..절대 애들이 볼 책은 아닙니다.애들과 같이 보시려는 분들은 참고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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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시절까지만 하더라도 초한대전에 대한 아는 바는 없었다. 그러나 역사도 아닌 다른 과목 선생님께서 초한고사를 꺼내 가끔 이야기를 풀어주셨다. 그에 힘입어 시바료타료가 쓴 '항우와 유방'을 읽었다. 기숙사에 기거하고 있어 책을 사보기 쉽지 않은 여건이었지만, 어렵사리 책을 사서 읽었다. 인터넷으로 책을 사보기 시작할 즈음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blog.naver.com/seung46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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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우영 화백의 그림은 거칠다. 아무렇게나 대충 휘갈긴 듯 그려냈지만 그것은 무관심과 무성의가 아니라 '일필휘지'에 가깝다. 수묵화의 달인이 한 붓에 쓱쓱 그려낸 산과 내가 아름답듯 고 화백의 그림은 아름답다. 거기에 고전을 읽어내는 실력은 명불허전. 그저 알려진 대로 만화로 옮겨만 놓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시각으로 고전을 새로 그려낸다. 어떻게 이 책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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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한지는 무척이나 유명한 이야기다. 아마도 그 유명함은 삼국지와 비교해도 뒤지
지 않을 정도로 우리에게는 익숙한 이야기다. 우리가 흔하게 접하게 되는 다양한
고사성어들이 초한지에서 나오기도 했으며, 못해도 유방이라든가, 한신, 장량, 항
우의 이름 정도는 한 번 이상은 모두 들어 봤을 것이다. 그만큼 초한지는 익숙한
이야기와 익숙한 이름들을 만날 수 있는 이야기이며, 대부분의 고전이 그러하듯 초
한지도 그 결말을 익숙하게 알고 있다. 결론은 유방이 항우와 싸워 한나라를 세우
는 과정이니 말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면 장기라는 너무나 익숙한 놀이의 배경이
되는 것이 바로 이 초한지이니 더욱더 우리에게는 익숙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한지를 제대로 처음부터 차근히 그 이야기를 읽어 본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마치 우리가 맥베스나, 로미오와 줄리엣 등의
세익스피어의 작품들을 읽지 않아도 마치 읽은 것으로 착각을 할 정도로 그 내용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다이제스트한 요약
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많은 것을 분명 고전이라는 이름이 붙는 작품들은 갖고 있
다. 그리고 그러한 작품들을 조금더 재미있게 풀어서 옛날 이야기처럼 들려주는 탁
월한 능력을 발휘한 작품이 바로 이 고우영 선생님의 초한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
다.
고우영 선생님의 작품들을 보면 우리나라의 이야기들로 그린 작품들도 있지만, 많
은 작품들이 중국의 역사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을 소재로 그린 작품들이 많은 부분
을 차지한다. 그리고 그러한 작품들은 원작 소설보다 훨씬 매력적으로 고우영이라
는 작가의 멋진 구성으로 다시 태어난다. 너무나도 생생하게 말이다.
사실 역사를 읽는 즐거움은 과거를 살았던 이들의 삶에서 우리의 삶을 발견하고,
더 나아가 변하지 않는 사람들의 본성에 대해서 한 번쯤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런 점에서 단순하게 나열되는 이야기가 아닌 너무
나도 생생하게 펼쳐지는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단순화하면서도 더 나아가서는 분
명 화가 날 정도로 적나라하게 펼쳐 보이는 것은 그러한 작품들에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을 극대화하게 된다. 그리고 분명 고우영 선생님의 초한지는 그러한 부분에
서 너무나도 큰 즐거움을 전해 준다.
항우의 너무나도 우직한 행동들에서 답답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며, 유방의 그 끝
갈데 없는 천박함에 짜증이 날 것이며, 한신에게서, 장량에게서, 그리고 무수히 쏟
아지는 인물들의 다양한 삶에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 고전의 즐거움이며,
그러한 즐거움을 극대화해서 펼쳐 보이는 것이 바로 고우영 초한지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도 적절한 작가의 평을 더해서 말이다.
그리고 이 작품을 읽다보면 이제는 저 하늘에서 작품활동을 하고 있을 고우영 선생
님을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고전을 이 세상에 끌어내 살아있는 고전으로 만든 선
생님을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