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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앉아 조참의 정치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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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부장회의에 들어갔다가 질문을 받았다. 요즘 애들 수업 시간에 대놓고 화장을 하는데 학생부에서는 뭐 하냐. 지도를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뭔가 가이드라인을 내어 줘야 되는 것 아니냐고 한다. 진짜 지도를 해야될지 말아야 될지 고민이 되어서 묻는 게 아니다. 교직 경력 30년이 되어가는 선배의 말씀인데 진짜 의중은 애들을 좀 잡아야 되지 않느냐는 거다. 애들 안 잡고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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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부장회의에 들어갔다가 질문을 받았다. 요즘 애들 수업 시간에 대놓고 화장을 하는데 학생부에서는 뭐 하냐. 지도를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뭔가 가이드라인을 내어 줘야 되는 것 아니냐고 한다. 진짜 지도를 해야될지 말아야 될지 고민이 되어서 묻는 게 아니다. 교직 경력 30년이 되어가는 선배의 말씀인데 진짜 의중은 애들을 좀 잡아야 되지 않느냐는 거다. 애들 안 잡고 뭐하냐 임마 이렇게 안 한 것만 해도 고맙다. 작년부터 학생부가 동료 선생님들의 뒷말을 좀 듣는다. 아무 것도 안 한다, 잘못한 걸 뻔히 보고도 타이르고 만다, 학교가 망가지고 있다... 물론 학생들의 반응은 정 반대다. 학교에서 숨을 쉴 수 있다, 재미있는 일이 많아졌다, 마음이 덜 불편하다... 단위 학교에서 손대기 힘든 대학 입시에 대한 압박을 어쩔 수가 없다. 수업에 지장이 있다면야 몰라도 지 얼굴에 지가 색칠을 하는 걸 왜 다른 사람이 제재해야 하는가에 대한 적절한 반박을 나는 아직 찾지 못했다. 그래서 학교 규정을 집행하는 입장임에도 그냥 버틴다. 지 귀 지가 뚫어서 무거운 쇠붙이 꽂고 다니겠다는데 그걸 왜 보기 싫다고 빼라고 하는 건지에 대해서도 적절한 논거를 찾지 못했다. 그리고 머리 색깔과 학업 간의 유의미한 상관 관계에 대해서도 아직 모르겠다. 그래서, 호흡기에 나쁜 영향을 줄지 모르는 실외화는 실내화로 반드시 갈아신도록, 학교에 대한 소속감과 구성원들 간의 일체감 형성을 위해 등교할 때만큼은 사복 대신 교복을 입도록 하는 딱 두가지만 일관성있게 잔소리하고 있다. 화장을 하는 것 외에는 나를 표현할 길이 없어서 한다는 아이에게, 중학교 때 염색을 많이 해서 이제는 염색을 안 해도 갈색이 나고 머리도 많이 상해서 검은색으로 염색하면 머리가 녹을 거라며 우는 아이에게, 가족이 다 함께 맞춘 목걸이를 선생님이 무서워서 급히 감추다가 꼬여서 영영 못 쓰게 된 아이에게 너는 (누가 정했는지도 모를) 학교의 규칙은 규칙이니까 벌을 받아야한다고 말하는 대신, 그러라고 말했을 뿐이다.

 

본의 아니게 세 학교 째 학생부에서 연달아 7년째 근무하고 있다. 처음엔 모든 아이를 착한 아이로 만들어 보겠다는 희한한 신념으로 좌충우돌했지만, 조금만 마음을 열고 아이들을 보면 그 삶이 보인다. 규정의 잣대로 아이들의 행위와 삶을 재단하기보다 그냥 그 이야기를 듣고 무사히 아이가 그 변곡점을 통과하게 되길 응원하게 된다. 물론 모든 아이가 영화나 만화처럼 샤라랑하고 바뀌진 않는다. 그들에게 받는 상처와 실망도 만만찮다. 하지만 동료들의 오해와 왜곡된 시선만큼 힘빠지게 하진 않는다. 매일매일 지각을 하고 입술은 시뻘겋게, 볼은 복숭아처럼 벌겋게 색칠한 한 아이가 오늘 동아리 시간에 직접 빵을 구웠다며 빵 봉지에 곱게 넣고 고흐의 그림이 인쇄된 포스트잇에 자기가 만들었다고 맛있게 드시라고, 행복하시라고 글귀를 적어 가져왔다. 나는 이 아이에게 너 화장을 왜 그렇게 했어! 하고 말해야 했을까, 아니면 고마워 00야 집에 가서 우리 애기랑 나눠 먹고 인증샷도 보내줄게. 라고 말해야 했을까.

 

회의를 나오면서 전한시대 유방의 개국공신 조참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아래 내용은 https://www.mk.co.kr/news/culture/view/2017/02/75259/에서 일부를 인용했다.)

 

사마천은 정치를 다음과 같이 구분했다. ‘최선의 정치는 백성들을 통제하지 않는 자연스러운 정치, 차선의 정치는 백성들에게 이익을 주면서 이끄는 정치, 보통의 정치는 법으로 다스리는 정치, 그리고 최악의 정치는 백성과 싸우는 정치’라고 규정했다. 조참은 유방과 소하가 백성에게 이익을 주고, 법으로 다스리는 정치의 틀을 마련하자 바로 최선의 정치인 ‘통제하지 않는 자연스런 정치’를 시행한 위대한 정치가였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간섭은 적게 하는 것이 대학 입시에 목줄 채워진 아이들의 숨통을 틔워주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학생자치회를 운영하면서 소설쓰기 대회, 배지 디자인 대회, 로비 음악회, 학습 플래너 대회, 축제 등등 다양한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다양한 행사를 기획하고 실행했다. 혹자는 일만 벌인다고 했지만 나는 아이디어와 기획을 했을 뿐 실행은 학생회 아이들과 거기에 참여하는 아이들이 거의 했다. 통제하지 않아도 저절로 잘 됐다. 문제는 늘, 강력한 선도부 운영에서 왔다. 아무리 빈틈을 줄이려 해도 늘 생겼고, 마찰로 인한 문제가 매일 생겼다. 올해, 선도부와 싸우는 아이는 3월 이후로 없다. 화장, 머리, 장신구에 대한 규정을 작년처럼 복잡하게 적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나라 교서 땅에 개로라는 학자의 명성이 자자했다. 조참은 그를 찾아 천하를 안정시킬 방책을 물었다. 개로는 “청정 무위 淸淨 無爲가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즉, 백성을 다스리는데 여러 가지 법이나 제도, 규제를 간소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그것은 바로 백성을 안심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야 백성이 스스로 편안해집니다”라고 제안했다. 조참은 그 말을 새겨들었다. 오랜 시간 전란에 시달린 백성들에게 또 다시 국가가 ‘무엇을 하라고 강요하거나, 무엇을 지키라고 요구하는 것’이 백성들의 생활을 안정시키는 저해 요인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조참은 개로의 사상과 조언을 받아들여 정치와 법치가 없는 듯이 제나라를 다스렸다.

 

비슷한 맥락의 진술이다. 백성을 다스리는 데(내가 왕도 아니고 학생들도 백성이 아니다. 하지만 그들의 생활을 규제할 수 있는 규정과 규칙을 집행하고 적용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법과 제도가 복잡하면 복잡할 수록 백성들은 시달리고, 들고 일어나고, 서로 싸우게 된다. 조참의 일화 한 가지 더.

 

조참은 제나라를 떠나면서 후임 재상에게 당부의 말을 남겼다. “특히 감옥과 시장을 잘 살펴보세요.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작은 소용돌이가 되어 나라를 흔들 수도 있습니다.” 후임 승상은 더 중요한 곳도 많은데 감옥과 시장을 언급하는 조참의 말뜻을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자 조참이 다시 일렀다.

“내가 말하는 감옥과 시장은 이 세상의 온갖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입니다. 악인도 있고 착한 사람도 있고. 그러면 그곳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억지로 무엇인가를 하는 것보다 자연스럽게, 물 흘러가는 대로 그냥 두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선인은 선인대로 살길을 마련해주고 악인이라 하더라도 최소한 숨 쉴 수 있는 구멍은 남겨줘야 합니다.”

 

악인이라 하더라도 최소한 숨쉴 수 있게 구멍은 남겨줘야 한다는 말이 와닿는다. 학교에는 그야말로 다양한 사람이 모여있다. 다양하다는 말도 부족하다. 천 명이 있으면 천 명이 다 다르다. 그들은 한 가지의 가치로 묶는 것은 불가능한데 그것을 하려고 하니 선생과 학생이 늘 싸우게 된다. 사회적인 규범을 무시하자는 말이 아니다. 우리가 지키라고 요구받는 그 규범들의 내용과 의의를 자세히 보아야지, 규정은 규정이라는 말 속에 숨으면 공론만 되풀이하게 된다. 규정대로만 고집하다가 아이는 징계에 징계를 거듭하다가 학교 밖으로 내몰린다. 현재 학교 밖 청소년의 규모는 상상 이상이다. 수십 만명이 넘는다. 그래도 학교의 울타리 안에 있으면 운 좋으면 마음을 이해해주는 좋은 선생, 좋은 친구도 만날 수 있지만 학교 밖엔 그럴 기회가 말도 안되게 적다. 자기 관리도 어렵다. 학교는 선발 기관이지 배제의 기관이 아니다. 선인은 선인대로 살길을 마련해주고, 악인이라 하더라도 최소한 숨쉴 수 있는 구멍은 남겨줘야 한다.

 

s*************k 2019.06.14. 신고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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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우영 초한지 8 - 인간사 덧없음이 이런것일까?
"고우영 초한지 8 - 인간사 덧없음이 이런것일까?" 내용보기
올 초에 초한지가 영화로 상영되었었다.  이기는 자만이 천하를 가질수 있다는 싸움. 진시황 이후 최고의 패자로 올라선 항우와 큰그릇으로 세상을 담은 또다른 영웅 한나라 유방. 항우는 유방을 제거할 절호의 기회였던 홍문의 연회에서 그를 놓치고 만다.  변방에서 세력을 키운 유방은 한신, 장량 등 뛰어난 부하들과 함께 항우를 맞서며 대결전으로 나아가게 되고, 천하는 둘로 나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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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 초에 초한지가 영화로 상영되었었다.  이기는 자만이 천하를 가질수 있다는 싸움. 진시황 이후 최고의 패자로 올라선 항우와 큰그릇으로 세상을 담은 또다른 영웅 한나라 유방. 항우는 유방을 제거할 절호의 기회였던 홍문의 연회에서 그를 놓치고 만다.  변방에서 세력을 키운 유방은 한신, 장량 등 뛰어난 부하들과 함께 항우를 맞서며 대결전으로 나아가게 되고, 천하는 둘로 나뉘어 두 영웅의 대결전 앞에 모이게 되는 그런 내용의 영화였다.  초한지는 고우영 선생의 말처럼 상큼하고 멋진 드라마다.  압축된 인물들의 너무나 완벽한 이야기거리를 가지고 있으니, 영화와 책을 통해서 꽤 많은 이야기들이 펼쳐졌다.  그리고 지금 나는 작고하신 고우영 선생의 초한지 마지막 권을 함께 하고 있다.

 

 

 

 범증을 반간계로 잃어버린 항우는 마지막 전투를 앞에 두고 있다.  한 5년 12월, 초나라 군대가 해하에서 방벽을 구축하고 있었는데, 군사는 적고 군량은 다 떨어진 데다 한나라와 제후들의 군대에 겹겹으로 포위되고 말았다. 이때 밤중에 한나라 군사들이 사방에서 초나라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고단했던 초나라 군졸들이 하나둘씩 이탈하고 만다.  사면초가(四面楚歌)가 이렇게 생겨났다.  사실, 한나라 군사들이라 해도, 거의 동향사람이니 초나라 노래를 몰랐을리가 없고, 가족이 그리운 이탈병들이 얼마나 많았던지 8천 병사중 8백명만 남는다.

 부하 장졸 8백여명과 함께 포위망을 뚫고 남쪽으로 질주하였으나 음릉에 이르러 길을 잃어 버렸다. 여기서 항우는 한 농부에게 길을 물었으나 그 농부가 일부러 항우에게 길을 잘못 가르쳐 줌으로써 항우는 다시 유방군의 추격을 당하다, 결국은 기마병 26명만 남게된다. 강동 땅이 보이는 오강 나루까지 왔음에도 강을 건너지 않은 항우.  싸움중에 자신의 휘하 병사들이 죽고, 그토록 애지중지 하던 우미인까지 죽었으니, 어쩜 항우는 아무것도 바라는 거시 없었는지도 모른다.  항우와 함께했던 용이 변한 말이라는 오추마저 물에 빠져 죽은 후 자신의 휘하였던 여마통에게 목숨을 내준다.  이렇게 초한의 싸움은 끝이났다.  완벽한 한의 승리, 유방의 승리였다.  유방은 항우와 같은 인물이 아니었다.  초한의 싸움이 끝나자마자 유방이 한 것은 항우를 배신하고 자신에게 온 사람들을 죽이기 시작한다. 힘이있고 지략이 뛰어난 자는 이제 필요가 없어졌을까? 한신을 비롯한 많은 공신들이 유방의 말 한마디에 죽어나가면서 초한지는 끝이 난다.

 

 분명 돈좋아하고 여자 좋아하는 유방은 인격이나 전쟁 능력 면에서 항우보다 훨씬 못했다.  객관적인 전략에서도 항우가 늘 앞섰다.  하지만 외후 승리자는 항우가 아니라 유방이었다.  유방은 이야기 한다. "군막 안에서 작전을 짜 천리 밖에서 승리를 결정하는 능력은 장자방이 나보다 뛰어나다.  나라를 어루만지며 백성들을 위로하고, 군량을 공급하며 운송로가 끊어지지 않게 하는 능력은 소하가 나보다 뛰어나다. 백만 대군을 거느리고 싸울 때마다 승리하여 공격할 때 마다 성공하는 능력은 한신이 나보다 뛰어나다.  이 세사람은 모두 뛰어난 인재인데 내가 그들을 능히 썼기에 천하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항우에게는 범증이 있었지만 그 범증 하나도 능히 쓰지 못해 나에게 사로 잡혔던 것이다"라고 말이다.  초한의 싸움은 이렇게 끝났다.  이랬음에도 장자방을 제외한 모두를 죽인 유방.  '초한지'는 인간사 덧없음의 표본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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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2 2012.06.28. 신고 공감 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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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우영] 초한지 8
"[고우영] 초한지 8" 내용보기
이 글의 목적은 항우와 유방의 쟁패를 만화로 그린 고우영 화백의 <초한지>의 줄거리를 글로 정리하는 것이다. 그것을 통해 나 자신이 초한지의 세계를 이해하게 될 것이고, 초한지의 세계가 궁금한 이들에게도 도움이 되리라고 본다. 역이기는 분노한 전광에 의해 처참하게 세상을 떠난다. 그러나 곧이어 한신의 대군이 제의 수도 임치성에 당도했고, 전광은 야음을 틈타 고밀성으로
"[고우영] 초한지 8" 내용보기
이 글의 목적은 항우와 유방의 쟁패를 만화로 그린 고우영 화백의 <초한지>의 줄거리를 글로 정리하는 것이다. 그것을 통해 나 자신이 초한지의 세계를 이해하게 될 것이고, 초한지의 세계가 궁금한 이들에게도 도움이 되리라고 본다.

역이기는 분노한 전광에 의해 처참하게 세상을 떠난다. 그러나 곧이어 한신의 대군이 제의 수도 임치성에 당도했고, 전광은 야음을 틈타 고밀성으로 탈출한다. 한신은 끝까지 전광을 추적하여 그를 응징하겠다고 다짐한다.

그러나 항우가 보낸 용장 용저가 원군을 끌고 고밀성에 당도하고 전광은 한숨을 돌린다. 용저의 출현을 보고 한신은 일단 진군을 멈춘다. 한의 부하들이 계속 몰아칠 것을 청했으나 한신은 용저는 항우 못지 않은 장수라면서 경계한다.

용저는 예의를 갖춰서 사자를 보내 도전장을 보냈다. 그러나 한신은 의도적으로 사자에게 매를 침으로써 용저를 욕보인다. 분기탱천한 용저가 저돌적으로 돌진했으나 그것은 한신의 계교였다. 유수에 진을 쳤던 용저는 한신의 수공에 말려들어 2만 7천의 군사와 함께 전멸을 당하고 만다. 도도한 물살 앞에서 용맹과 지략은 아무 의미가 없었던 것이다. 

용저가 전사하자 제왕 전광은 항복을 한다. 그러나 한신은 전광을 처형한 것은 물론 끝까지 추적하여 잔여 왕족들을 살해함으로써 후환을 제거한다.이로써 한신은 조·연·제 3국의 영토에 50만대군을 아우르는 세력을 형성한다. 이 소식을 들은 유방은 한신에게 휘하를 거느리고 합류할 것을 명한다. 그러자 연나라 대부로 있다가 한신의 모사가 된 괴철은 이렇게 권한다. 

"제나라 사람들은 신의가 없어서 자리를 뜰 수가 없다는 구실로 유방의 요청을 거절하라. 아울러 평정을 위해 시간이 필요하니 제나라를 다스릴 임시통치권(가왕)을 요구하라."

한신은 파락호 시절에 자신에게 용기를 주었던 연인 상희가 찾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제나라에 둥지를 틀고 있다는 소문을 들으면 그녀가 찾아오리라는 생각에서 괴철의 의견을 따른다.

가왕을 요구하는 한신의 청을 들은 유방은 분노한다. 그러나 한신을 자극하지 말라는 장량의 충고를 받아들여서 동제왕이라는 칭호를 내린다. 유방의 허락을 받은 한신은 제나라에 오래 머물게 될 것이라면서 기뻐하는데, 괴철은 더욱 기뻐한다. 그는 한신이 제의 왕이 됨으로써 촉·한과 더불어 삼국의 정족지세를 만듦으로써 천하를 삼분할 웅지를 품었던 것이다.

용저의 전사를 들은 항우는 오열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한신의 힘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항우는 한신에게 사자를 보내 화친을 제의한다. 세객 무섭이 항우에게 가서 항우의 의사를 전한다. 그때 무섭이 항우에게 한 말이 유명한 토사구팽((야수기진 이엽구팽:野獸己盡 而獵狗烹/야수를 사냥한 뒤에는 쓸모가 없어진 사냥개를 삶아먹는다)이다. 유방은 표리가 부동하여 믿을 수 없는 인물이고, 항우는 신의가 있으니 이 기회에 독립을 하라는 것이었다.

한신도 무섭의 말이 옳다는 것을 동의했다. 그러나 그는 결정적인 순간에 주저했다. 항우는 자신을 집극랑이라는 한직에 두는 등 무시했지만, 유방은 자신을 중용하여 대원수에 이어 제왕에까지 오르게 했는데 그 은혜를 저버릴 수 없다는 것이었다.

무섭이 소득이 없이 돌아간 뒤에 출타 중이던 괴철이 그 소식을 들었다. 괴철은 한탄을 하면서 한신에게 촉·한·제의 정족지세를 설파하며 지금이라도 항우의 화친을 받아들이라고 권한다. 한신은 괴철의 의견이 타당함을 인정하면서도 답을 주지 않는다.

괴철은 그제서야 한신이 제왕이 된 것은 상희때문임을 눈치챈다. 그러나 절망한다. 자신의 힘으로도 상희를 찾을 수 없다. 훗날 한신에게 유방을 배반하라고 한 말이 알려지면 살아남지 못할 것을 예측한 괴철은 고민하기 시작한다. 괴철은 짐짓 광인 행세를 하면서 거리를 헤맨다. 한신은 구명도생을 위한 괴철의 뜻을 짐작하고 방관한다.

항우는 한신과의 화친이 수포로 돌아가자 유방과의 최후의 결전을 각오하고 출전한다. 유방이 응전을 준비하고 있을 때 장량이 누번이라는 거한을 데리고 온다. 유방은 그가 항우의 상대가 되리라는 기대에서 기뻐한다.

초와 한이 결전을 벌이는 순간에 누번의 활약은 빛을 발한다. 누번은 초나라의 환초·정공·옹치·우자기의 네 장수를 상대로 겨루면서 희롱하듯 솜씨를 뽐낸다. 계포·이번·장월·항앙이 나섰지만 그들도 누번의 상대는 되지 못한다. 한나라 진영에서는 "항우, 나오라!"고 소리쳤다.

유방이 여세를 몰아 총공격을 감행하려는 순간 항우가 나서며 벽력같이 고함을 치는 순간 거짓말같은 일이 벌어졌다. 누번은 미처 겨루기도 전에 말머리를 돌려 줄행랑을 놓는 것이다. 항우의 군사가 그대로 몰아쳤다. 누번이 퇴각하는 것을 보고 사기가 떨어진 한의 대군은 그대로 후퇴를 했다. 사태는 급전해서 한의 진영은 무너졌고, 비록 경상이지만 유방은 가슴에 화살을 맞기까지 했다.

서전에서 크게 패한 유방은 성문을 굳게 닫고 한신의 출병을 재촉했다. 유방의 독촉을 받은 한신은 출전을 결심한다. 상희에 대한 미련이나 괴철에 대한 미련도 버린 채…. 괴철 역시 한숨을 쉬면서 한신의 출정을 바라보았다. 한신을 도와 천하를 도모하려던 꿈이 사라진 것을 아쉬워하면서….

상희는 이미 제나라에 와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존재가 한신에게 도움이 될 것이 없다는 판단에서 은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신의 출전을 눈으로 환송한 상희는 사나흘 뒤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사람들은 그녀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묻어 주었을 뿐이다.

한신의 출현은 승전을 목전에 두고 있던 항우에게는 절통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배신자 팽월이 배후에서 보급로 차단을 시도하고 있었다. 항우는 제장들과 함께 작전을 논의했다.

초의 지장인 종리매는 승전의 기세를 몰아서 공성을 계속하여 유방의 수급을 베어야 한다고 진언했다. 그러나 군사인 항백은 유방을 죽이면 다행이지만 보급로가 끊기면 치명타가 되니 철수하자고 주장했다. 종리매는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고 재차 결전을 촉구했으나, 항백 역시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희박한 가능성을 믿고 결솔히 움직였다가 대세를 그르칠 수 있다."라고….

종리매의 계책이 유방을 죽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으나 항우는 항백의 의견을 따랐다. 홍문의 연회에서 유방을 살려주었던 항백은 결정적인 순간마다 항우의 앞길을 가로막는 것이었다. 항우의 군대가 철수를 하는 순간에 유방 역시 야음을 틈타서 형양성을 빠져나갔다. 한신에게 숨어서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한나라는 유비의 50만에 한신의 50만이 더해져서 100만의 대군이 집결했다. 그에 대적하는 항우의 군사는 10만 남짓일 뿐이다. 종리매는 최후의 작전으로 인질로 잡혀 있는 유방의 가족(부모와 처)을 이용하자고 진언했다. 그것이 떳떳하지 못한 일이라고 생각하던 항우도 어쩔 수 없이 종리매의 진언을 받아들였다.

항우에게 끌려온 유방의 부친은 자식의 잘못을 백배 사죄한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생명을 위해서 항우의 의견을 따르라는 글을 유방에게 보낸다. 부친의 글을 받은 유방은 장량의 계교대로 짐짓 취한 척하면서 광태를 보인다. 항우가 자신의 가족을 해칠 인품이 아닌 것을 알고 일부러 화친의 대답을 피한 것이다.

유방의 대응을 들은 항우는 분노한다. 그러나 가족을 죽여봤자 실익이 없음을 깨닫고 그대로 감금한 채 대책을 숙의한다.

한신은 항우를 물리칠 계책을 유방에게 진언한다. 전군을 다음과 같이 10만으로 나누어서 항우를 압박했다.
1진 : 번쾌와 관영이 이끄는 10만
2진 : 주발과 주창이 이끄는 10만
3진 : 근흡과 노관이 이끄는 10만 
4진 : 장이와 장창이 이끄는 10만
5진 : 누번이 이끄는 10만
6진 : 하후영과 왕릉이 이끄는 10만
7진 : 조창과 시무가 이끄는 10만
8진 : 항우에게서 귀순한 영포가 이끄는 10만
9진 : 유방이 직접 제장들과 함께 이끄는 10만 
10진 : 한신 자신이 이끄는 10만

이에 맞서는 항우의 군사는 10만뿐이다. 그러나 역발산기개세의 항우는 의연하게 전장으로 나선다. 한신은 그런 항우에게 야유를 던져서 분노하게 한다. 항우가 일군을 거느리고 돌진하자 한신은 짐짓 후퇴하면서 항우를 압박한다. 종리매는 적의 매복을 염려하면서 항우를 만류한다.

항우는 종리매의 간언을 받아들여 말머리를 돌리려 했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항우의 군대는 이미 본진과 격리된 채 포위망 속에 들어선 것이다.

항우의 괴력은 무쌍했다. 그는 적의 군세에 개의하지 않고 종리매와 함께 좌충우돌 하면서 영포, 하우영, 왕릉, 장이, 장창의 군대와 대결했다. 그 와중에서 5진의 수장 누번은 목이 잘렸고, 거한 누번이 쓰러지는 것을 본 한군은 일시적이나마 주춤하기도 했다. 한신의 작전에 의해 다시 2차 공격이 시작되었으나 항우는 야수처럼 격돌하며 부장급의 장수 3명의 목을 베었다. 급기야 3진의 수장 노관의 목도 날아갔다. 결국 항우는 본진의 군대와 합류하는데 성공했다.

다음날 전투에서도 항우의 군대는 한신의 용병에 농락당했다. 그러나 항우는 역전의 용장이었다. 그는 불리한 전세에서도 꿋꿋하게 버텼다. 한나라 군 역시 초의 군대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가하지는 못한 것이다. 한신도 항우의 용맹에 감탄했다. 항우가 아니었다면 첫날 전투에서 승부가 끝날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나라는 100만 대군이고, 그러나 초나라의 군대는 10만이다. 항우는 숫적으로 절대적인 열세였던 것이다. 그나마 그간의 전투를 거치면서 병력은 5만으로 줄어들었다. 전쟁은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유방은 일거에 몰아칠 것을 지시했으나 장량은 아직은 때가 아니라면서 항우에게 인질로 잡혀 있는 유방의 권속(부모와 처자)을 구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진언했다. 장량은 일단 초의 군사 항백에게 밀사를 보내 유방의 가족에 대한 선처를 부탁했다. 항백은 자신이 책임을 지고 보호하겠다고 약속했다.

유방의 진영에서 항우의 진영으로 사자가 건너갔다. 유방의 권속을 보내주면 군대를 철군하고 화친을 맺겠다는 제안이었다. 항우가 제장들의 의사를 묻자 종리매는 반대했다. 유방은 신의가 없으므로 가족이 생환함과 동시에 다시 표변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항백은 역시 반대했다. 아녀자를 인질로 잡는 것은 떳떳하지 못하고 천하의 웃음거리라는 논리였다. 항우는 항백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항백은 홍문의 연회에서 유방을 살린 인물이었다. 이번에도 그는 유방의 편에 선 것이다. 내부의 결속도 이루지 못하는 초가 어찌 한을 이길 수 있겠는가?

항우와 유방은 단독으로 만나 화친을 약속했다. 유방의 권속들은 한나라로 인계되었다. 항우는 유방과 같은 비열한 무리를 이기지 못하는 것을 한탄했으나, 불리한 상황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유방은 팽성으로 철군하는 항우를 추격하라고 지시했으나 한신이 반대했다. 화친을 맺자마자 깨는 것은 도리에 어긋나고 천하의 민심을 등지는 행위라는 것이다. 그렇게 될 경우 최후의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장량 역시 한신의 의견에 동조하니 유방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다.

우희(우미인)는 팽성으로 돌아온 항우를 따뜻하게 맞았다. 항우는 이제 전쟁은 없을 것이라며 우희를 위로했다. 초나라는 오랜 만에 전란에서 벗어나 안정을 찾았다.

그러나 항우의 야욕은 끊임이 없었다. 그는 휴전 보름 만에 다시 병력을 소집했다. 각각의 영지로 돌아간 한신, 영포, 팽월 등에게도 고릉성으로 집결하라는 소집령이 전달되었다. 한신은 유방의 행동을 역겨워하면서 소집에 응하지 않았다.

유방의 변심을 들은 항우는 어처구니 없어 하면서도 분노했다. 즉시 30만 대군을 동원하는 한편 고릉성으로 진군하려고 했다. 종리매가 만류했다. "화친을 깬 것은 유방이니, 그보다 먼저 움직이지 말아야 누가 그른지 천하에 알리게 되는 것."이라는 논리였다. 패전을 거듭하는 동안 신중해진 항우는 종리매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그 사이에 종리매와 계포는 병력을 정비할 수 있었다.

기고만장한 마음으로 고릉성에 온 유방은 한신은 물론 팽월과 영포 모두 병력을 보내지 않은 것을 보고 당황했다. 장량에게 대책을 물으니 일단 한신의 군사가 온 듯 허장성세로 위장하자고 진언했다. 그러는 사이에 항우의 대군이 고릉성에 당도했다.

유방은 항우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성문을 굳게 닫고 응전을 하지 않았다. 항우 역시 한신이 어떤 계교를 쓰는 것으로 알고 함부로 공격을 하지 못했다. 드디어 초군의 총공세가 시작될 조짐이 보이자 유방은 장량의 계교대로 사흘 후에 교전을 하자는 글을 항우에게 보낸다. 사흘이라도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다.

유방이 계속 응전을 미루자 번쾌, 하우영을 비롯한 한의 무장들이 항의했다. 자신들이 더 우세한 병력을 갖고 있는데 항우를 두려워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유방은 무장들이 목숨을 걸고 싸워서 항우를 물리치겠다고 주청하자 교전을 허락한다.

그러나 항우는 용맹한 장수였다. 번쾌를 비롯한 한의 여덟 장수가 성을 나갔지만 모두 항우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한군은 대패를 하고 급히 퇴각을 하는 과정에서 많은 병사들이 포로로 잡혔다.

장량은 항우가 반드시 대대적인 야습을 할 것이라며 성을 비워야 한다고 간했다. 유방은 그날밤으로 도주했고, 자정을 기해서 총공격을 감행했던 항우는 기회를 놓친 것을 안타까워 했다. 항우는 그대로 군사를 몰아 추격에 나섰다.

장량은 유방을 모신 채 쉬지 않고 도주를 했다. 그 와중에도 장창으로 하여금 항우의 후방을 공격하여 보급품을 불태우고 한신의 군대가 당도한다는 헛소문을 퍼뜨리라고 지시한다.

유방은 무사히 성고에 입성하지만 곧이어 추격한 항우의 군사들이 맹공을 퍼붓는다. 성고의 성곽은 약점이 많아서 지구전에 버팅 상황이 아니었다. 성이 함락되려는 위기일발의 순간에 장창의 군사가 항우의 후방을 급습해서 군량을 불태우는 전과를 올렸다. 그러면서 한신의 80만군이 뒤이어 공격한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항우를 비롯한 초의 제장들의 심정은 참담했다. 유방을 사로잡기 일보 전에 비보를 듣고 사기가 떨어진 것이다. 항우는 한신이 공격을 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급히 퇴각했다. 불세출의 명장 항우가 한신을 두려워 해서 피하는 것을 보고 제장들은 통분의 눈물을 흘렸다.
 
항우의 군대가 물러가고 위기에서 벗어난 유방은 새삼스럽게 한신·팽월·영포가 괘씸했다. 그들이 출병을 하지 않아서 위기에 몰렸던 것이다. 그러나 장량은 그들이 혹시 변심한다면 더 큰 우환이 된다면서 다독여야 한다고 간했다. 유방은 그 말을 받아들여서 한신에게는 3제(제나라 모든 영토)왕, 영포는 회남왕, 팽월은 대량왕으로 직급을 올리면서 장량으로 하여금 출병을 권하도록 전했다.

장량은 유방의 명을 받고 한신에게 떠나면서 흐느꼈다. 유방을 돕기 위해 출사한 것은 자신의 조국인 한나라(전국시대의 한나라)의 부흥을 위해서였는데, 유방으로 하여금 전국을 통일하게 한다는 것은 복국의 꿈을 버려야 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장량은 한신을 찾아가 3제왕에 등극한 사실을 알리면서 유방을 도와 초를 섬멸해 달라고 요청한다. 장량과 한신 모두 한(전국시대)의 유신으로 이심전심으로 마음이 통했다. 한신은 장량의 요청을 수용했다. 장량이 돌아간 뒤에 괴철이 한신을 찾았다. 괴철은 초가 멸하는 순간에 한신 역시 무사할 수 없을 것이라면서 유방의 요청에 응하지 말 것을 재삼 간했다. 한신은 괴철의 의견이 타당함을 인정하면서도 장량과의 의리를 저버릴 수 없다면서 거절한다. 드디어 한신이 15만의 병력을 이끌고 출병하는 순간 괴철은 통곡한다.

장량은 대량의 팽월과 회남의 영포도 설득했다. 각각 대량왕과 회남왕에 오른 두 사람 역시 장량의 제의를 받아들였다.

초를 멸하려는 유방의 군대는 다시 기치를 들었다. 한신의 15만, 영포의 5만, 팽월의 5만, 위나라 20만, 연나라 15만, 낙양 5만, 대에서 온 3만, 유방의 직할대 23만, 승상 소하의 15만, 3진의 군사 6만 등 112만 대군의 지휘권은 한신에게 주어졌다. 유방은 당장 진군할 것을 원했으나 한신은 유리한 지형을 찾으며 작전을 구상했다. 한신은 항우를 구리산 남쪽의 해하로 유인하여 최후의 일격을 가하기로 했다.

한신은 이좌거에게 항우의 유인을 맡긴다. 항우와 막료들이 팽성에서 적군을 맡기로 논의가 되었을 때 이좌거가 팽성에 도착했다. 군사로서 명성이 있던 이좌거는 항우의 막료가 되었고, 그는 감언이설로 항우로 하여금 구리산으로 출병하도록 했다. 

항우가 출정하는 날, 진중의 중군기 깃대가 부러지고, 애마 오추마는 나가려고 하지 않았다. 또한 지금까지 한 번도 전장에 나서지 않던 우희(우미인)가 종군하기를 간청하여 항우는 허락했다. 제장들이 불가함을 간하는 말 등 여러 조짐들도 항우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던 것이다.

구리산에 도착한 이후에 이좌거가 탈영하여 한신에게 감으로써 항우는 계교에 떨어졌음을 알았다. 그러나 다시 돌아가기에는 이미 때가 늦었다. 한신은 신추귀몰한 전략으로 초군의 움직임을 모두 파악하고 있었다.

유방이 직접 나서서 항우를 분노하게 하면서 포위망으로 유인했다. 항우는 계책을 알아채고 전진을 멈췄으나 이좌거가 나서서 참을 수가 없었다. 항우는 울분을 참지 못하고 유방의 진영으로 몰아쳤다. 유방의 군이 겹겹히 에워쌌으나 항우는 괴력을 발휘하며 분전했다. 그러나 초의 수도 팽성이 점령 당한 소식이 오는 등 전황은 불리하기만 했다. 초의 막료들은 일단 마지막 남은 근거지인 강동으로 퇴각한 뒤 후일을 도모하자고 간했으나 항우는 이곳에서 결전을 벌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항우는 용전분투하며 유방의 본진을 향해 돌진했다. 앞길을 막는 한군의 부장들이 8명이나 즉사했다. 그러나 항우의 이동 상황은 그대로 한신에게 노출되어 있었다. 한신은 각 진영마다 대장기를 흔들게 하여 중군의 위치를 감추면서 항우를 압박했다. 항우는 지치지 않고 돌진했으나 유방의 부대를 찾지 못하는 중에 밤이 되었다. 항우는 그제서야 제장을 소집하고 날이 새면 강동으로 퇴각하여 후일을 도모하겠다고 선포했다.

그러나 항우의 계획은 하루가 늦었다. 그날 밤 장량의 계교가 항우에게 최후의 일격을 가한 것이다. 장량은 포로를 통해 애수어린 초나라의 민요를 부르게 하면서 했
다. 들릴 듯 말 듯 갸날프게 이어지는 초의 노래는 초군 진영으로 울려 퍼졌다. 초나라 군사 모두가 알고 있는 처량한 고향 노래였다. 노래 속에서 떠오르는 고향산천과 가족의 모습…. 장졸들은 하나 둘 고향을 바라보며 진지를 떠나기 시작했다. 사면초가의 유래가 된 장량의 작전이었다.

날이 밝았을 때는 항우의 숙부인 군사 항백, 개국공신이자 초의 최고 지장인 종리매, 맹장 계포, 심지어 우희(우미인)의 오빠인 우자기마저 진지를 이탈했다. 항우가 장막에서 나왔을 때는 환초와 주란 등 8백여 명만 남았을 뿐이다. 항우는 절망했다. 그가 남긴 유일한 시문인 해하가(垓下歌)는 이때 나온 것이다.

力拔山兮氣蓋世(역발산혜기개세 / 힘은 산을 뽑고, 기운은 천하를 덮지만)
時不利兮湫不逝 (시불리혜추불서 / 시세 불리하고, 오추마는 움직이지 않는다.)
湫不逝兮可奈何 (추불서혜가내하 / 오추마가 싫다는데, 난들 어찌하겠는가?)
虞兮虞兮奈若何 (우혜우혜내약하 / 우희, 우희여! 이 일을 어찌할까?)


우희는 화답했다.
"한군이 천하를 빼앗아서 사방에서 초나라 노래가 들립니다.
대왕의 의기가 다하셨다면 이 몸도 살 수 없습니다."

우희는 칼을 뽑아서 자진했다. 퇴각하는 항우에게 부담을 줄이려는 최후의 마음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죽음은 항우의 마지막 의욕마저 끊는 일격이었다. 항우는 외쳤다.

"아직도 남아 있는 강동의 용사들아. 가자! 나는 기필코 그대들을 강동의 관문까지 데려다 주겠다."

유방은 항우의 목을 가져오는 자에게 초나라 왕위와 천금을 주겠다고 선포했다. 한의 장졸들은 항우의 목을 노리고 압박했다. 그러나 항우의 앞에서는 추풍낙엽일 뿐이다. 아침부터 한낮이 될 때까지 쉬지 않고 백병전이 이어졌지만 항우는 지치지 않고 강동을 향해 나갔다.

스스로 선봉을 맡은 항우의 돌진은 거셌지만 후미를 맡고 있던 환초와 주란은 낙오가 되고 말았다. 마지막까지 항우를 떠나지 않고 충성을 지키던 그들은 장렬하게 전사했다. 이제 항우를 따르는 병졸은 선발대 100여 명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한군의 공격을 받는 동안 급속히 줄어들어서 28명만 남았다. 항우의 일거수일투족은 한신에게 노출되어 있었던 것이다.

드디어 항우는 강동으로 건너는 오강의 샛강 줄기까지 탈출했다. 왼쪽으로 가면 오강을 만나서 강을 건널 수 있는 것이다. 한신은 항우의 용맹에 감탄하며 생포를 앞두고 실패를 하는 것을 아쉬워 했다. 그러나 길을 묻는 항우에게 초의 백성은 엉뚱한 곳을 알려주었다. 전쟁에서 아들을 잃었던 촌로는 항우에게 원한이 있었던 것이다. 항우는 다시 한의 진중으로 들어섰다.

항우는 다시 한의 포위망속에서 좌충우돌하며 전진했다. 남은 병사는 26이었다. 70여리를 헤매는 동안 한나라 군사의 수급을 1,500여명이나 베는 동안 병력의 손실은 단 2명에 불과할 정도로 항우의 용맹은 절륜했다.
 
밤이 되어서 하룻밤 유숙하게 된 민가에서 항우는 자신이 길을 잘못 들었음을 알게 되었다. 선량한 촌로는 제왕이 자신의 집에 든 것을 광영으로 생각하며 따뜻하게 대해 주었다. 이승에서의 마지막 단잠을 자면서 항우는 꿈을 꾸었다.

진시황의 궁전으로 하늘에서 태양이 떨어졌다. 청의동자가 나타나서 그 해를 차지했다. 그러자 홍의동자가 나타나서 자기 것이라면서 달라고 했다. 청의동자는 불같이 노하면서 홍의동자를 두둘겨 팼다. 홍의동자는 맞으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달라붙었다. 때리다가 지친 청의동자는 "그래 니가 갖어라." 라면서 태양을 던져주었다.

물론 청의동자는 항우였고, 홍의동자는 유방이었다. 일찌기 진시황이 꾼 꿈이었다. 그는 그 꿈을 풀이하지 못했지만 항우는 알았다. 항우는 탄식했다. "결국 천하를 유방에게 넘겨주어야 하는가?"라고…. 그러나 항우는 할 일이 있었다. 자신을 따르며 끝까지 충성을 다한 26명의 강동 자제를 고향으로 돌려보내는 일!

날이 밝자 한군이 다시 밀려왔다. 그러나 마지막 투혼을 발휘하는 항우의 초천검을 막을 자는 없었다. 항우는 한군을 초개같이 무찌르며 오강의 나루까지 왔다. 뱃사공이 말했다.

"소인은 오강 나루의 정장입니다. 폐하가 오실 줄 알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서 배에 오르십시오."

항우는 사공에게 사례를 한 후 26명의 부하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할 일을 다했다. 마지막까지 충성과 용맹을 잃지 않은 용사들에게 감사한다. 논공을 나누어 주지 못하지만 고향에 돌아가서 여생을 마칠 수 있게 하겠다. 승선하라."

부하들이 놀라 말했다.
"폐하, 무슨 말씀이십니까? 먼저 오르십시오."

항우는 실패자인 자신은 강동으로 돌아갈 자격이 없다고 했다. 부하들은 만류했다. '폐하에게 쫓긴 유방이 한에서 힘을 길렀듯이 폐하는 강동에서 그렇게 하시면 된다.'라고…. 항우는 말했다.

"강동 용사의 자랑 3조가 무엇인가? 충성, 용맹, 절대 복종이다. 마지막 명령이다. 26명의 용사여! 승선하라."

부하들은 흐느끼면서 배에 올랐다. 오추마도 함께….  그러나 오추마는 배에서 뛰어들었다. 용의 화신이었던 오추마는 용으로 돌아간 것인가.

항우는 오강 나루터에 단기로 남았지만 한군은 함부로 접근하지 못했다. 그의 용맹을 알기 때문이다. 항우는 자신을 겨누는 한장들 중에서 초의 장수로 있다가 유방에게 귀순한 여마통을 보았다.

"듣자하니 나를 잡는 자에게는 초나라 왕위와 1천금의 상을 준다고 하더군. 나는 이미 모든 것을 포기했으니 이왕이면 옛 부하인 너에게 주겠다. 이리 와서 나를 죽여라."

그래도 여마통은 감히 항우에게 다가오지 못했다. 항우가 스스로 자진하자 그제서야 여마통을 비롯한 한의 부장들이 시신에 덤벼들었다. 항우의 목은 왕예, 왼팔은 양희, 오른팔은 여마통, 왼쪽 허벅지는 여승, 오른쪽은 양무…. 유방은 희희낙락 하면서 5명에게 초의 땅을 나누어 주면서 왕위와 상금을 주었다.

유방은 항복한 항백에게 초에서 여생을 마치도록 했다. 다른 부하들은 행복했을까? 유방은 철저하게 토사구팽을 실천했다.

항우의 부하로 있으면서 휴수 싸움터에서 사로잡았던 유방을 놓아준 전력이 있는 정공은 언제라도 주군을 배신할 자라면서 목을 베었다. 항우의 오른팔이었던 팽월은 불평불만자라면서 목을 베고 그 몸은 젓을 담아 신하들에게 배부했다. 이에 분노해서 반란을 일으켰던 항우의 왼팔 영포는 유방의 군에게 도륙당했다. 통일의 일등 공신인 한신은 3제의 왕위를 빼앗은 뒤 소국인 한왕으로 보냈다가 역심을 품고 있다면서 기름솥에 넣어 죽였다. 이를 본 장량은 관직을 내놓고 고향으로 낙향했다. 그나마 목숨을 구한 것이 다행이었을까?

초한지는 여기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궁금했던 항우와 유방의 항쟁사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삼국지에서 촉한의 유비가 통일대업을 이루지 못한 것이 아쉬웠듯이, 역발산 기개세의 항우가 대업을 이루지 못한 것에 아쉬움이 느껴졌다.

그러면 토사구팽을 실현한 유방은 대대손손 행복했을까? 유방의 아들들은 혹독한 응징을 받았다. 유방이 죽은 후 실권을 잡은 여황후는 유방의 후손들을 도륙냈던 것이다. 그러나 여황후가 죽은 후 여씨 일족 역시 그런 보복을 당했으니 하늘이 무심치 않은 것일까?


y******3 2011.06.03.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