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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나 친숙한 나라, 꽤나 친숙한 사람들이다. 우리네 아버지,형님 들이 전쟁에 참여하여 상호간에 피해를 주었고, 수교한지가 20여년이 지나고 주변에 아는 베트남 사람, 혹은 자주 보는 베트남 사람이 꽤 있다. 혹은 그들과 관련된 이야기를 주변에서 꽤나 들었다. 혹은 친척이 된 베트남 사람도 있다. 바로 내 사촌 제수싸가 베트남 사람이다. 베트남과 사돈이 되어 버린 것이다.언젠가 베트남에서 두 명이 각각 따로 연수를 온 적이 있었다. 어찌나 꼼꼼하고 손솜씨가 좋던지 감탄을 한 적이 있었다. 회사의 베트남 법인이 있어 사원들이 수시로 베트남에 들락거린다. 결국 베트남은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생긴 것이다. 그런데 베트남에 대해서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주변에서 들은 것과 피상적으로 보는 것, 그것이 다가 아닌가? 물론 공부는 좀 하기는 했다. 이영희 선생의 '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 '베트남전쟁', 더글라스 파이크의 '베트남 공산주의 운동사', 쟝 라꾸뛰르의 '베트남의 별' 등 종전 이전의 베트남에 대해서는 그렇다. 그 책들은 소위 戰士들의 활약상, 화약냄새 매케하게 나는 책들로서 종전 이전의 상황과 역사와 인물에 관한 책들이었다. 물론 그것들이 현재의 베트남에 대한 기초가 되어야 하는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그 이후의 상황들, 그 전개에 대한 노정들, 생각들, 사람들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다.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모르지 않는가? 인식의 단절이다. 현실에서 더 구체적으로 옆에 와 있는 베트남인 데 오히려 아는 것은 없다. 그리고 베트남과 관련된 책들을 찾아보면 그렇게 많지가 않다. 그러던 중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나온 고마운 책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이 책이다. 본 서는 베트남의 일상과 베트남인들의 생각, 관습, 그리고 현재의 개괄적 상황들에 대해서 오랜동안 거기서 생활해 온 기자의 눈으로 본 것에 대한 것들이다. 사진과 더불어 서술되어 있어서 알기 쉽고 읽기 쉽다. 그리고 우리가 잘못 알고 있었던 상식들을 바로 잡아 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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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성장세는 눈부시다. 중국이나 인도처럼 거대한 폭풍이 밀어닥치는 모양새는 아니지만, 향후 이들 국가보다 더욱 발전한 모습을 보일 가능성도 보인다고 몇몇 이들은 점친다. 동남아시아의 많은 국가들이 불교에 기반한 문화를 가지고 있는데 반해 베트남은 우리에게도 친숙한 유교 문화권에 속한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작은 키, 전형적인 동남아시아인의 모양새를 하고 있는 베트남인들이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면 이에 버럭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급성장한 경제로 인하여 점점 더 훤칠해지고 있는 베트남인들의 생김새를 고려할 때 머지 않아 우리와 정말로 유사해지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여행경비로 인해 동남아시아 국가를 한 번 즈음은 다녀오는 것이 당연시되고 있는 요즘인데다 한국의 농촌 남성들의 배우자로도 우리나라에 많은 베트남 여성들이 진출해 있기에, 여느 때보다도 베트남과의 관계는 살가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비슷한 듯하면서도 다른 베트남 문화에 정확히 눈을 뜨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은 은퇴해 제2 의 인생을 살고 있는 저자는 연합뉴스 초대 하노이 특파원이었다. 2000년에 대한민국 최초로 베트남 특파원 임무를 3년간 수행했고, 2006년에 다시 한 번 특파원 생활을 했다 하니 순간적으로 방문해 단기 체류하며 즐기다 오는 이들에 비한다면 확실히 베트남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2010년에 출판된 책인지라 지난 2년 동안의 발전사까지 반영되진 않았겠지만, 베트남을 이해하는 데에 필요한 기본은 다 들어있지 않나 생각이 든다. 우선 베트남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있었으니 바로 호 아저씨로도 불리곤 하는 호찌민이다. 베트남을 사회주의 국가로 만든 장본인이기도 한 그는 특정 이념에 기댐에 있어서도 철저히 민족을 고려한 민족주의자였다. 무엇보다도 그가 현재까지 베트남인들의 머릿속에 생생하게 살아있을 수 있게 된 데에는 생전에 그가 보여준 청렴하고 강직한 성품의 덕이 크다. 권력을 움켜쥐면 사적인 부귀영화 추구에 바빠지는 것이 인간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많은 지도자들은 부정축제를 반복하다 좋지 않은 말년을 맞기도 하였다. 헌데 호찌민은 달랐다. 마치 무소요의 삶을 실천하다 간 양 그가 남긴 물질적인 부분은 그리 많지 않았다. 대신 그는 베트남인들이 대를 이어가며 간직할 정신을 남겼다. 그가 남긴 영적인 부분이 오늘날 베트남의 경제성장을 가로막는 요인이라는 평도 있는 줄 안다. 하지만 국가의 기틀을 확립하는 데에 절대적인 영향을 준만큼 한순간에 이를 저버리는 일은 불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현실은 가난하지만 베트남인들은 나름의 꼬장꼬장함(?)을 유지하고 있었으니 바로 승리한 그들의 역사 때문이었다. 서양 제국주의에 의해 영토를 짓밟힌 국가가 아시아에 어디 한둘이겠느냐마는, 베트남의 경우 결과적으로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점에서 여느 국가와 달랐다. 심지어 그 전쟁이 한 국가를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었다. 프랑스, 미국, 중국, 일본까지. 정체성을 위협하는 숱한 움직임에 그들은 굴복하지 않았다. 이는 소수의 지도자들이 지닌 지혜 덕분이 아니라 국민 모두가 전장에 나선 덕분이었다. 우리에겐 악명 높은 ‘베트콩’이었지만 베트남인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베트콩이 되어 적과 싸웠다. 자유주의 영역의 수호를 위해서였던 우리식의 베트남 전쟁 해석 역시 그 땅에서는 민족의 해방을 위해 미국에 맞서 벌인 전투였다. 안타깝게도 우린 그 땅에서 많은 부정을 저질렀다. 한국군이 생성한 악으로 인해 여전히 많은 베트남인들이 고통 받고 있다는 사실이 껄끄럽지 않다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다. 그러나 베트남은 자국의 경제 성장을 위해 한국이 지난 날 이룬 길을 모방하길 꿈꾸고 있다. 급속히 이룬 경제발전의 원동력으로 보이는 것들을 모조리 습득하면서 그들은 현재 노력 중이다. 다만 한국과 베트남의 정서가 다분히 다르기에 우리 것의 일방적인 이식은 성공을 거두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어찌 보면 우리보다 더욱 개방적이고 서양식 사고에 익숙한 베트남인들이다. 양국의 교류가 거듭될수록 문화적인 차이로 인해 겪는 어려움도 많아지고, 물론 경험에 의해 극복되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차이야 얼마든지 교류에 의해 이해 가능한 부분이다. 다만, 아직까지 경제적으로 낙후되었다는 이유로 그들을 한 수 낮게 바라보는 우리의 자만심 어린 시선만큼은 고쳐야 할 것이다. 그들은 우리의 동반자이지 하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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