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지용 시인의 "향수”가 생각난다.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그래도 서울에서 옥천까지 기차타고 내려가면 고향을 안을 수 있었으니 그는 행복했다. 내 고향에 가보면 개천은 복개되었고 내가 살던 집도 사라졌다. 빌딩이 들어섰고 아스팔트 도로가 뒤덮혔다. 초등학교 1학년 때 학교가 끝나면 황금정 빵집 2층 기원에 놀러가곤 했다. 예쁜 누나는 손님도 아닌 우리에게 따스한 보리차 한잔을 주며 반겨주곤 했다. 어느 날 하얗고 까만 바둑알이 얼마나 예뻐 보이는지 주머니에 하나 슬쩍 넣고 나오다가 친구가 일러바쳐 누나에게 다시 드렸다. 그 일이 있은 후 기원에는 다시 가지 못했다. 그 기원도 사라졌다. 그래도 길에 서면 그 자리를 기억할 수 있으니 나는 행복하다.
20세기 초 고향을 영원히 떠나 지구 반대편으로 이민을 간 실향민의 마음은 어떠할까? 캐나다의 국민 작가 가브리엘 루아가 그들의 마음을 그린 4편의 중, 단편이 바로 Garden in the Wind에 실려있다.
첫 번째 이야기, A Tramp in the Door는 오래 전 퀘백을 떠나온 프랑스계 정착민의 이야기다. 풍족하지도 않은 시골에 불쑥 찾아온 자칭 사촌을 차마 내쫒지 못하고 3주 동안 먹여주고 재워준다. 그러나 저녁 식사가 끝나고 밤마다 사촌이 들려주는 고향 소식은 오랫동안 잊었던 고향을 다시 일깨워 준다. 경계를 늦추지 않던 안주인도 성 요셉 성당의 안토니 수사 이야기에는 넋을 잃는다. 고향을 등지고 온 프랑스계 캐나다인에게 세인트 로렌스강, 쎙탄드보프레 대성당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마음 깊숙이 품고 있는 고향이었다. 결국은 들통이 나 집을 나서는 방랑객에게 안주인은 자신의 고향에도 꼭 들르라고 간청하며 아쉬운 작별을 한다.
두 번째 이야기, Where will you go, Sam Lee Wong은 중국계 이민이 겪는 고독을 그린다. 석양 무렵 기차에서 내려 한적한 마을로 들어선 Wong은 식당을 차린다. 찾는 손님은 많지 않아도 서로 친구가 되어 오래전 떠나온 고향 중국, 아일랜드, 스코트랜드를 말하곤 했다. 유전이 발견되어 사람들이 늘자 예전과 같은 식당이 될 수는 없었다. 위생감독에 걸려 식당을 보수하기 위해 건물주를 찾으러 가는 Wong의 눈에 비친 거리의 모습은 고향과 그런대로 비슷했던 예전의 그 마을은 아니었다. 유전개발 때문에 평생을 바친 식당의 문을 닫고 기차를 타고 가다 쓸쓸한 시골역에서 내린다.
세 번째 이야기, Hoodoo Valley. 대평원 기차역에 내린 우크라이나 이민 집단은 대표를 보내 정착할 곳을 찾는다. 가이드가 안내해 준 비옥한 평원은 마다하고 고향 산천과 닮은 척박한 계곡에서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오래전 그들의 조상이 코카서스로 추방되었을 때 레몬 나무를 심고 농지를 개간한 것처럼 그들 역시 그렇게 할 것을 다짐하면서.
마지막 이야기, Garden in the Wind는 4편 중 최고의 작품으로 치는데 과연 첫머리부터 깊은 인상을 준다. 우크라이나를 떠나 처음 대평원에 도착하여 성당을 지으며 사제가 올 것이라 기대하였고 성당 주위에는 마을이 들어설 것이라고 공간도 많이 남겼건만 사제는 장례식이 있던 날 잠깐 들렀을 뿐이었다. 자녀에게 가르쳐 준 것은 우크라이나 말과 춤과 노래 몇 편이 다였다. 정부는 자녀에게 영어를 가르쳤고 상이한 생활양식을 가르치며 떼어갔다. 모두 떠나버린 마을을 제2의 고향으로 생각하며 아무도 찾는 이 없는 성당을 청소하고 집 앞의 작은 정원을 가꾸다 저 멀리 숲을 바라본다. 오래 전 고향 폴란드에서 들었던 바람에 스치는 바로 그 포플러 소리. [인상깊은구절] all beings in this world bore fruit according to the love spent on the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