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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에 관한 짧은 기억
무라카미 류가 쓴 이른바 스탠더드 재즈 넘버 40곡에 관한 소설이다. 무대는 실재하지는 않지만 누구에게나 마음속에 있을 수 있는 하나의 '재즈 바'. 그 비밀스런 곳에서 여자에 치이고 사업에 실패한 다양한 중년 남성들이 사랑에 관한 짧은 기억을 털어놓는다. 여느 평범한 사람들이 지닌 속 깊은 상처와 사는 것의 고통, 그 이야기에 곁들여 들려오는 한 곡의 재즈. 무라카미 류는 이런 소설적 장치를 통해서 우리에게도 친숙한 재즈곡들을 자상하게 해설해준다. 그는 영혼의 피난처와 같은 재즈 바에서 그곳을 찾는 고독한 중년 남성들의 고민을 듣는다. 사랑이라는 공통된 문제를 안고 있는 그들의 이야기 속에는 노스탤지어와 센티멘털리즘의 향기가 물씬 풍겨나온다. 애절한 사연에 절묘하게 어울리는 노래가 가미된 독특한 형태의 소설이다.
p. 19 인간의 고민은 그 누구도 해결해 줄 수 없는 자신만의 것이다. p. 30 나는. 뭐랄까 어떤 시간의 흐름을 한순간에 보았어. 그의 마음 속에서 내가 사라지고, 그 텅빈 공간에 새로운 사람이 들어갔다는 시간의 흐름 말이야. 그것이 그에겐 몇 년이 걸렸 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두 시간짜리 영화를 2초동안 집중적으로 뇌에 직접 삽입한 것 같은 느낌으로 그걸 보았다구. 그건 나라는 캐릭터의 죽음이었어. p. 35 불안이라고 해서 뭔가 신경이 쓰인다거나, 고민이 있다던가 하는 차원의 문제는 결코 아니거든. 내가 지금 이렇게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참을 수 없다는 말일세. p. 72-73 'I'll remember you'를 들었어. 편안해지더군. 좋은 공부가 됐어. 세상에는 편리한 망각과 불가항력의 기억들 뿐만이 아니라, 편리한 기억과 불가항력의 망각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야... p. 260-261 박수 소리가 나더니 플래티넘 블론드의 여자 보컬리스트가 빨간 스팽글 드레스를 입고 미소를 띠며 스테이지에 나타나 갑자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당신을 만나기 전까지 남자를 몰랐던 건 아니지만 저는 혼자였어요.. 당신을 보자마자 마음에 불이 켜졌죠 달라진 세계가 보였어요 오래된 것들이 신선하게 보이고요 제가 한눈에 사랑에 빠졌다는것 당신은 금방 알아차렸죠 그런 사람은 아무데도 없을 거에요 제가 감동하는 것은 당신 뿐 아아, 머리가 혼란스러워요 당신이 나를 어떻게 바꾸었는지 설명해주세요 Bei Mir Bist Du Schon 너무나 훌륭한 당신이란 말이죠 Bei Mir Bist Du Schon 다시 한번 말할게요 당신에게 지배당한다는 말이에요 Bella bella도 wunderbar도 모두 같은 말이에요 의미는 단하나 너무나 훌륭한 당신이라는 것 뿐 그래도 여러번 말하고 싶은 걸요 Bei Mir Bist Du Schon 그리고 키스해주세요 그리고 다 알고 있어, 라고 말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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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그의 글을 읽은 건 짧은 에세이 몇 편 뿐이다. 그리고 남은 인상은 남성적이고, 주위 눈치 너무 안보고, 자신의 스타일이 확실한 사람이겠구나.. 하는 것이다. 언제고 소설을 읽어봐야지..하던 중 이 단편집을 읽게 되었다. 작품 자체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이 그냥 '무라카미 류'니까 하면서 펼쳐든 책이다.
이 한권의 책에는 무려 39편의 짧은 이야기들이 실려있는데 작가의 분신과도 같은 한 인물이 매번 다른 사람을 만나 그들의 사랑에 관한 추억담을 들어주는 형식이다. 위대하거나 혹은 보잘것 없는, 순수하거나 혹은 농염한 여러 종류의 사랑이 등장한다.
그리고 각 작품마다의 제목은 다름아닌 재즈의 곡명이며, 각각의 가사를 직접 번역해서 실어놓고 있다. 한사람 한사람의 사연과 감상에 딱 어울리는, 그래서 위로가 되어주는 재즈곡들을 그들은 같은 재즈바라고 생각되어지는 곳에서 듣는다. 하지만 어떤이는 그곳이 도쿄라고하고 혹은 뉴욕이라 하고, 혹은 모로코라고 하고... 마치 어디서나 그 곳으로 갈 수 있는, 그래서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것 같은 완벽한 재즈바.
읽다보면 이건 좀 무한리필같군.. 하고 느껴지는데 바로 그쯤에서 새로운 변주가 시작된다. 중반을 넘어서면 살짝 양상이 바뀌어 화자가 마침내 그 재즈바를 경험하게 되고, 모호하면서도 그 실체로 조금씩 다가가게 되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개인적으로 여기서부터가 더 흡인력있게 느껴졌다. 구체적인 것들은 부정확하고, 그 느낌만이 남아있는 그 재즈바. 어디에나 있지만 아무때나 찾아갈 수 없는 곳. 상처받은 중년남자들 앞에서 의외로 쉽게 문이 열리는 곳.
"누가 그 재즈바를 만든거죠?" "왜 그걸 알아야만 하는거지? 우리가 피곤에 지쳤을 때, 혹은 스스로 모순에 빠져 출구조차 찾지 못할 때, 혹은 영원히 풀 수 없는 수수께끼, 즉 여자에 관한 일로 번뇌할 때 달콤하고 상냥한 재즈보컬이 있는 가게가 조용히 문을 열어주는 거야...... 단지 즐기기만 하면 되는 거라고."
작가은 맺는 말에서 재즈는 상냥하다고 말한다. 재즈에서 단순한 따뜻함을 느낀다고. 그의 재즈사랑, 다양한 사랑의 양상을 읽을 수 있었고 또한 사이사이에 박아놓은 세상에 대한 그의 담백한 상념들에서 작가의 지적인 면모를 읽을 수 있었던 책이다.
재즈를 사랑하는 당신이라면 필독. 내 저장목록에도 재즈곡이 여러곡 담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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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가지 노래들을 바탕으로한 짧은 사연들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다. 마치 라디오 프로의 음악사연같은, 이야기가 있는 노래가락처럼. 남자작가이고, 다름아닌 '류'의 작품이다 보니 감수성이나 애틋함보다는 사연들의 '일상적인' 모습들이 보여진다. 잔잔하니 흐르는 사연들 속에 어느 순간 나도 그 째즈바에 들어간듯한 기분에 노래들을 직접 뒤지고 싶어졌다. 이 사연들을 곱씹으며 음악을 들으면 한층 색다른 감상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음악에 관한 사연, 로맨틱하지는 않지만 일상적인 사랑 이야기, 신비한 째즈바의 몽롱한 분위기... 사랑을 해보았다면, 류가 얘기하는 사랑에 관한 짧은 기억들을 들춰보고 싶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