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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으로 태어난 우리는 통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언제나 크고 작은 통증이 우리와 함께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내 몸이 이상하여 통증을 느낀 것은 아마 수없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통증이 딱히 기억에 남는 것이 없는 것을 보면, 그다지 심한 것은 없었던 모양이다. 아니면 그 시점이 지났다고 벌써 잊은 것 이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증에 관한 기억을 끄집어 내자면 아마 치통이 아닌가 싶다. 어려서 충치 하나 없이 튼튼하던 이가 어느 시점이 되자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심하게 흔들리는 어금니를 하루,이틀 미루다 보니 어쩔수없이 뽑아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하도 통증이 심해서 병원에 가니 잇몸이 상해있어서 뽑지를 못한다고 한다. 진통제를 주는데 진통제로도 해결이 되지를 않는다. 그야말로 통증이었다. 남들은 알지 못하는, 나만이 알수 있는 그러나 계량화 할수 없는 통증이었다. 결국은 견디다 못해 예부터 내려오던 무식한 방법으로 내가 뽑아버리고 나니 통증이 멎었지만.. 이 책은 통증에 관한 책이다. 의사, 과학자, 철학자, 문학가, 종교인, 간호사 등 11명이 각각 고유의 이론과 체험을 통해 얻은 통증에 관한 지식을 써놓은 책이다. 따라서 이 책이 다루는 것은 의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고통이 아니라 오로지 통증이라고 한다. 통증과 고통은 언어학적으로는 혼용되지만 통증전문가에게는 엄연히 다르다고 한다. 통증은 신체기관의 지엽적 신체상해와 관련이 있고 물리치료사가 다루는것 이지만, 고통은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차원에서 사람의 온전한 상태를 위협할만한 전반적인 현상이라고 저자중의 한 사람인 베르나르 칼비노는 말하고 있다. 그를 비롯하여 11명이 발표한 내용을 엮은 이 책은 3부로 되어 있으며, 1부는 통증을 다루는 의료진의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고, 2부는 통증에 대한 철학적, 종교적, 문학적 세계를 들여다 보고 있다. 마지막으로 3부는 통증에 대한 처치 방법을 분석하고 있으나, 주로 프랑스에서의 통증 처치에 대한 법제화 과정을 다루고 있다. 그러면 통증이란 무엇일까? 국제통증학회에서는 통증의 정의를 ‘세포조직의 실제적 또는 잠재적 상해와 관련된 또는 그러한 통증의 표현들로 묘사된 불쾌한 감각적, 감정적 경험’이라고 말한다고 한다. 이러한 통증은 어떠한 성분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그리고 신경생리학적으로 우리 몸은 통증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그 전달경로를 설명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통증 메커니즘 안에서 통증측정은 어떻게 하고,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알려주고 있다. 통증측정은 치료를 시작하기 전 꼭 해야 하는 중요한 단계임에도 불구하고, 통증은 언제나 자가측정을 우선시 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환자의 통증을 가장 잘 측정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환자 자신이기 때문이다. 통증을 측정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어디까지나 환자의 주관적 판단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러나 이렇게 통증을 측정하는 것도 일반인인 경우에나 가능하다. 신생아나 태아, 그리고 다중장애아의 통증은 어떻게 측정해야 할까? 그들은 자기표현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가 그들의 통증을 알 방법이 없다. 따라서 그들이 표현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것을 그대로 방치하는 야만사회로 돌아가야 하는지 묻고 있기도 하다. 신생아의 경우 통증으로 인해 특정호르몬이 생성되는, 스트레스에 대한 생리학적 반응들을 분석하는 간접적인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예전에는 신생아는 통증을 느끼지 않으므로 수술에 마취제를 사용하지 않았으나, 이제는 스트레스에 신생아들이 보이는 호르몬 반응을 적절한 마취로 예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임신 24주를 넘으면 진단이 목적이건, 치료가 목적이건 시술된 침투행위에 대하여 태아가 통증을 느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고 한다. 이것은 조산아들의 반응을 관찰함으로써 확인된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우리가 흔히 뇌성마비 환자라고 부르는 다중장애인들은 이들이 자신의 통증을 측정하기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타인이 환자와 소통하고, 그 환자의 통증 정도를 평가할수 있게 해주어야 이들의 통증 식별이 가능하다고 한다. 우리가 흔히 고통스럽다고 말하는 것은 고독한 감각을 뜻하고,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는 자신만이 알수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고통은 종종 다른 사람들로부터 나를 고립시킨다고 한다. 그러나 통증은 보편적인 것 이라고 한다. 아픈적이 없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치료는 통증이 진짜라는 것에 대한 증거를 조건으로 하는 것 이어서는 안되며, 아무 조건 없이 행해져야 하며, 따라서 통증에 대한 첫번째 무기는 환자가 호소하는 통증에 대한 존중 바로 그것이라고 한다. 책은 또 인문학적으로 통증을 바라보고 있기도 하다. 철학적으로 통증은 주관적이고 개인이 배타적으로 겪는 경험으로 여겨졌으며 삶에 대한 의지로 설명되기도 한다. 유대교나 기독교에서 본 통증은 더욱 엄격하게 관리된다. 고통은 그리스도의 이미지를 나타내고 있으며, 그것은 구원의 통로로 여기기도 했다. 문학적으로 볼 때도 많은 작가들이 그들의 작품 속에서 통증을 얘기하고 있다. 그들이 작품속에서 통증과 고통을 재현하는 것, 그 자체가 미학적 도전으로 받아들여 지기도 했다. 그러나 인간의 노력은 어떤 철학적, 종교적, 문학적 시각을 취하던 간에 통증이란 극복할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은 아니란걸 책은 말하고 있다. 통증, 나는 아픈데, 고통스러운데 남들은 느끼지를 못하기 때문에 시큰둥하다. 병원에 가서도 아프다고 호소해보아야 그러려니 한다. 이런 통증에 대해서, 병의 징후을 알려주는 증상이 아닌 통증 그 자체로 처치되어야 한다는 것이 새롭게 느껴진다. 지금까지 질병에 대한 연구는 그토록 활발하게 진행되어 왔으면서, 그 질병의 표현인 통증에 대해서는 얼마나 무관심했는지를 생각해보면 역설적이다 못해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신생아들이 고통을 못 느낀다고 생각하고, 마취 없이 수술했다고 생각해 보라. 또 다중장애아들이 통증을 호소하는 행동을 우리들은 알아채지 못하고, 그저 아무일 없다는 듯이 그들을 바라보고만 있다고 생각해 보라. 나, 아니 우리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은 통증에 대하여 치료받을수 있어야 하며, 그 치료는 즉각적이어야 함을 이 책은 말하고 있다. 저자 베르나르 칼비노는 서문을 과학사가인 로즐린 레이가 그의 저서 [통증의 역사]를 시작했던 글로 시작한다. “살아있는 존재는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선한 군주를 반기듯 쾌락을 추구하고 즐기며, 악한 군주를 대하듯 통증을 싫어하고 가능한 멀리한다. 아직 타락하지 않고 자기에게 남아있는 천성이 순수하고도 공명정대하게 판단할 때는 그런 식으로 행동한다.” 그리고 이 문장이 그녀로 하여금 통증에 대해서 연구하게 만들었다고 우리에게 알려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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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통증을 길들이다'는 문학동네 출판그룹의 알마에서 펴낸 '과학과 사회 시리즈' 10번째 책이다. 바칼로레아 시리즈(대입 논술때문에 널리 알려져 있다)를 펴낸 르 포미에Le Pommier 출판사와 파리 과학산업관Cité des sciences et de l'industrie 이 매년 '콜레주 드 라 시테'라는 제호 아래 펼쳐지는 12번의 컨퍼런스에서 발표된 내용들을 취합하여 공동으로 편찬한 기획전집 <르 콜레주 드 라 시테Le College de la Cité>를 독점 번역한 결과물의 하나이다. 짧지만 독창적이며 최근 연구 성과나 통계치까지 적용된 여러 학자들의 발표 내용을 책의 형태로 다듬은 이 시리즈는 우리 시대의 중요한 쟁점들을 골라 주제로 삼고 이와 관련된 여러 분야 학자들의 이론을 잘 정리한 텍스트다. 학제간 연구 시스템을 우리보다 먼저 도입한 프랑스에서 행해지는 통합적인 연구의 결과물로써, 각각의 주제는 매우 흥미롭고 쟁점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으며 대중들의 관심을 끌만하다. 그리고 중요한 요소, 과학적인 주제에 대해서는 인문학적인 시선으로 탐구함과 동시에, 인문학적인 주제에 대해서는 과학적인 근거를 제시해주는 통섭의 시각이 특징이라 하겠다.
이 책을 손에 잡은 이유는 회식의 술자리가 거해질때마다 토로하는 동료의 넋두리 때문이었다. 이 친구의 선대인(先大人)이 평소에 친구삼아 간다는 질환을 자식된 도리로 두고보다못해 수술을 하시게 했고 그 후 오래지 않아 저 세상으로 갔기 때문이다. 천수를 다하셨기 때문이겠지만 자식으로서는 한이 된 것이다. 그 이후 통증을 친구삼아 살아간다는 그 말이 가슴에 항상 여운으로 남아있었는데, '통증을 길들이다'는 제목이 얼른 눈에 들어왔다. 13.5cm X 19.5cm, 158쪽 짜리 밖에 안되지만 그 내용은 참 녹녹치 않다. 통증을 바라보는 전문적인 내용도 그러하지만 번역 또한 지성인을 대상으로 한 듯하여 두어번은 읽어봐야 전후 문맥을 이해할 수 가 있었다.
통증이 감각인지 감정인지에 대한 파악과, 다루고자 하는 내용이 고통인지 통증인지에 대한 개념 정리부터 이 책은 시작한다.
의학적 관점에서 보면 이 책이 다루는 것은 고통이 아니라 오로지 통증이다. 통증, 고통, 이 두 단어는 동일한 아픔을 표현하는 말일까? 언어학적으로 이 두 단어는 서로 혼용된다. 반면 통증 전문가들에게 있어서는 이 두 단어가 다른 의미를 지닌다. 통증은 우선 신체 기관의 지엽적 신체 상해와 관련이 있고 물리치료사가 다루는 것이다. 반면 고통은 훨씬 광범위한 개념으로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차원에서 사람의 온전한 상태를 위협할 만한 전반적인 형상이고, “성찰, 언어, 자신과의 관계, 타자와의 관계, 의미와의 관계, 물음과의 관계에 열려 있는”(폴 리쾨르) 정신 상태이며, 심리요법 의사의 소관이다. 우리는 이 책에서 통증만을 다루기로 했다. 이것은 하나의 선택을 의미하는 것이지 다른 것을 부정한다는 뜻은 아니다(16~17쪽)
우리가 쉽게 '아프다'라고 표현할 수 있는 통증은 의학적으로는 "세포조직의 실제적 또는 잠재적 상해와 관련된 또는 그러한 통증의 표현들로 묘사된 불쾌한 감각적 감정적 경험"으로 고상하게 정의하고 있다. 침해수용적 자극으로 풀어내는 통증의 과학적 의미는 어려워 한참을 헤매이나, 통증이 주관적이고 복합적인 신경심리학적 현상이라는(45쪽)관점에서 통증환자의 치료는 통증의 모든 구성요소들을 아우르는 인격체에 대한 전반적 평가에 속하는 일이다는 귀절에 수긍을 해본다. 때때로 몸이 아파 병원에 가면 너무 많은 환자들로 인해 통증호소를 건성으로 듣는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의사의 입장에서는 핵심만 듣고 빠르게 일을 처리하여야 하겠지만 "통증은 환자의 어휘이다"는 말에 깊은 공감을 한다. 환자는 의사가 자신의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기에 고통을 표현하는 것이며, 그런 아픔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 또한 의사 밖에 없기 때문이지 않겠는가! 그러기에 통증에 맞서는 의사의 첫번째 무기는 '존중'이란 말에 맞장구를 쳐본다.
철학적 관점에서 칸트는 '통증은 활동의 자극제'로, 통증을 겪는 상황 속의 인간행동들을 관찰하는 것 자체가 개인의 내밀한 속성을 매우 잘 드러내준다고 하였다. 통증은 인생을 밝혀주는 일종의 자극 같은 것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일 것이다. 스토아 학파의 세네카 또한 통증이란 자기영혼의 위대함을 시험해보고 모두의 눈에 자기 의지와 우월성을 확인시킬 아주 좋은 기회하고 하였다. 쇼펜하우어에 이르러서는 "삶에 내재한 질병들은 고통 상태인 '욕구'와, 마찬가지로 고통 상태인 '권태' 사이에서 필연적으로 망설이는 인간의 '삶에 대한 의지'로 설명된다.(100쪽)". 철학적으로보면 통증은 극복할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이 아니라는데 촛점을 맞출 수 있겠다.
정말 몇 쪽 안되는 책이 생각외로 많은 시간을 소요하게 하였다. 통증이란 주제를 놓고 과학, 심리학, 철학, 문학, 종교의 입장에서 다각적인 접근의 필요성을 보여준, 얼른 이해 안되는 부분도 많았지만 안목을 높이는 독서였다. 관련 분야의 지성인이라면 읽어볼 만한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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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적 감각과 감정으로 느껴지는‘통증(痛症)’이란 것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하면 소위 고통(苦痛)이란 언어로 표현되는 것만큼 생각해 본적이 없다. 다만, 분명 통증을 느끼는데도 불구하고 별다른 신체상 사유가 없다는 진단의 경우 당혹스럽기도 하고, 의료진의 처방이나 치료에 불만족스러웠던 기억이 전부라 할 수 있다. ‘대체 내가 아프다는 데 왜 이상이 없다고 하는거야!’하고 말이다. 이 저술이 매력적인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처럼 다분히“주관적이고 복합적인 신경심리학 현상”인 통증(douleur)을 현대의학은 어떻게 이해하여야 하는가에 대한 의료진의 관점에서부터 철학과 종교, 문학에서 바라보는 통증의 관념, 그리고 이의 치료와 처치방법에 대한 자세와 태도 등 사회 인식의 당위를 제시하고 있다.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차원에서 사람의 온전한 상태를 위협하는 전반적 현상”이라는 고통과는 달리, 통증이란 “세포조직의 실제적 또는 잠재적 상해(傷害)와 관련된 또는 그러한 통증의 표현들로 묘사된 불쾌한 감각적 감정적 경험”이라 정의된다. 결국 통증에 감정적 경험이 포함되는 것처럼 상처나 정신적 고통이 신체적 통증으로 전이되어 다가오는 느낌까지 있다보니 그 범주가 모호해지는 것도 사실이며, 이는 통증이란 환경, 심리적 상황에 따라서도 변화할 수 있는 인지적 감각이라는 말이 된다.
저술은 독특한 구성을 하고 있다. 통증의 범주와 생리학적 양상 등을 말하는 의학적 검토에서부터, 인간의 삶에서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와 같은 인문학적 성찰, 그리고 통증의 치료에 대한 의학계의 관심과 발전적 이해의 과정을 통해 보편주의적 윤리로서의 지향점을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사람의 통증에 대한 의료계 및 사회전반이 지향해야 할 전방위적 과제와 목표를 제시하기 위하여 필히 요구되는 윤리적 사상과, 사람 그리고 사람의 삶에 대한 보다 깊은 통찰, 사회의 통합적 공감대의 확대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를 앞에 둔 의사는 단순히 진단을 위한 척도로서만이 아니라 통증은 바로 환자의 어휘이며, 존중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될 것이며, 환자는 통증 지속이 곧 병리학적 진행이라는 오해를 불식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또한 통증을 호소하지 못하거나 할 수 없는 소아나 노인, 다중장애인과 같은 의사소통이 힘든 환자들에 대한 진전된 통증의 측정 방법들이 의미하는 휴머니즘의 이해는 물론, 인간 삶에서 통증이 의미하는 그 진정의 유대에 대한 인식을 기초로 사회 및 국가의 통증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와 관심의 당위성을 납득케 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통증의 의료적 이해를 위한 설명 중에서 심각한 정신지체에 운동장애가 결합된 다중장애인인 환자의 경우 통상적으로 알려진 코드에 따라 설명할 줄 모르기 때문에 그들의 통증을 간과할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 그네들의 신체와 감성적 징후들을 포착하여 통증을 진단하고 처치하는 전문적 방법들의 소개는 의학이 지금까지의 단순한 생리학적 차원을 넘어서야 하는 것임을 일깨우고 있으며, 임신 24주면 이미 태아의 경우에도 통증감각을 통합하는 수용체는 물론 통증 투사의 주요경로가 완성되고, 기억력까지 획득한다는 연구결과는 태아와 신생아에 대한 통증의 의료적 대처는 물론 생명윤리 차원에서도 중차대한 의료적, 사회적 인식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기도 하다.
특히 환자들의 통증 호소가 의학적인 객관적 징후들에 앞서야 함을 강조하는 일반의(醫)인‘마르탱 빙클레르’가 들려주는 일화는 감동적이다. 통증을 과다하게 표현하는 환자가 있어 과장되고 시끄러운 환자라고 치부하자 아버지가 그에게 호통을 쳤다는 것이다. “너는 그렇게 말할 권리가 없어! 이 사람이 아프다고 말하면 너는 믿어야 해! 의사가 뭐라 해도 통증이 옳아! 네가 그의 말을 믿지 못한다면 너는 직업을 바꿔야 할 것 같다.” 이 치료사로서의 행동원칙은 그가 의사로서 환자를 대하는 일생의 신념이 되었다는 것이다. 치료는 통증이‘진짜’라는 것에 대한 증거를 조건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과연 우리의 의료계 현실은 어떤지 모르겠다.
한편 이 저술의 아주 흥미로운 부분인데, “통증이란 자기 영혼의 위대함을 시험해보고 모두의 눈에 자기 의지의 우월성을 확인 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라고 정의한‘세네카’의 말을 시작으로 소크라테스의 죽음에 대한 스토아적 의연함이나, 18세기 프랑스 외교관이자 정치가였던‘탈레망’의 가혹하고 잔인한 무마취 수술을 견뎌냈던 이야기는‘칸트’가 말했듯이“우리 삶에 대한 감정을 갖게 되는 것은 통증 속에서이고 일종의 인생을 밝혀주는 자극 같은 것”이라는 얘기처럼 통증은 인간 삶의 실제일 것이라는 점에 공감케 된다. 더구나 “자기 자신의 고통을 표현하기 위해, 또는 남의 고통을 증언하기 위해 하나의 언어를 창조하는 일”이 문학이라고 하면서 들려주는 문학 속의 통증의 이야기들과 온갖 형태의 예술화에 대한 근본적 문제제기가 통증에서 시작된다는 미학적 도전에 관한 담론은 숭고함, 때론 신성화의 언어로, 드라마틱하고 관능적인 인내의 격앙으로 인간 삶에 깊숙이 스며드는 통증 해석의 명문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통증은 인간에게 있어 한낱 상해와 관련된 불쾌한 감각적 감정적 경험에 머무는 것이 아닐 것이다. 통증 치료는 그래서 통증 속에 갇혀 고통스러워하는 존재의 짐을 덜어주는 것만큼이나 인간의 유대를 증명하는 것이며, 저술의 말미에서 지적하듯이 치료에 대한 심리학과 학제간의 접근이나 인문학과 철학교육의 의학교육에의 적극적인 확충, 여전히 불충분한 기초 및 임상연구의 강화, 국가적 프로그램의 법적 도입 등을 통한 통증치료에 대한 이해와 관심의 확산은 진정한 휴머니즘의 실천이 될 것이다. 신경생리학, 생체의학, 철학, 종교학, 비교문학을 아우르는‘통증’이란 감각과 감정에 대한 이보다 압도적인 저술은 당분간 없을 것이다. 의료인은 물론 모든 사람들에게 일독을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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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냐? 나도 아프다...' 이 유명한 대사를 기억할 것이다. 아직까지도 명장면, 명대사로 꼽히는 이 말은 TV 드라마 ‘다모’에 나왔던 말이다. 좀 우습게 들릴지 모르지만 통증에 대한 이 책을 읽으면서 새삼 오래전 드라마에서 나왔던 이 대사가 다시 생각났다. 그리고 이제야 이 대사의 힘을 깨닫는 느낌이었다. 이 책이 설명하고자 하는 육체의 통증과 영혼의 아픔 사이의 경계를 모두 아우르면서 사랑하는 두 사람사이의 교감을 표현했기에 묘한 울림을 줬던 것이다.
다음은 철학과 종교와 문학 속에서 통증이 어떻게 표현되어 왔는지를 살핀다. 고대부터 시작하여 철학의 전통을 따라 내려오며 시대별 유명 철학자들이 통증에 대해 가졌던 사고를 살핀다. 결론은 행복하다.:
다음은 종교와 통증의 관계이다. 고통받는 그리스도상이 고통주의의 한 형태를 기독교 신앙 속에 자리하게 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작가의 병력은 문학작품에 어떤 그림자를 던질까? 알랭 몽탕동은 병약했던 수많은 작가들의 이름을 나열하면서 그들의 문학작품은 바로 고통을 증언하기 위해 창조된 언어라고 언급한다. .
마지막 장은 통증에 대한 환자의 권리에 대한 장이다. 여러가지 법제에 관한 언급이 있고, 통증의 치료의 변화의 양상에 대해 언급하며, 바로 민감한 윤리적측면까지 이어진다. 통증 완화를 위한 개인적 선택을 존중하기 위해서 많은 시간이 흘렀음을 강조하면서 새로운 윤리의 필요성을 지적한다. 통증 치료의 발전은 휴머니즘의 한 형태임을 강조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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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어느 한 사람 빠짐없이 누구나가 다 고통을 느낀다고 한다. 확실히 누구 하나 죽는 그 순간까지 한번도 아프지 않았다고 말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나만 해도 어렸을 때부터 뛰어놀면서 다치기도 많이 다쳤고, 감기도 자주 걸려서 약도 많이 먹었었고, 또 얼마전에는 가벼운 수술도 받았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단 한번도 아프지 않았던 적은 없었다. 심지어 수술을 받은 후에는 너무 아파서 병원에 입원해 있는동안은 수술한 부위도 많이 아팠기 때문에 통증을 덜 느끼게 해주는 무통주사도 계속 맞고 있었다. 이렇게 통증으란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그 순간에는 사라지지 않는 영원한 병같은 걸지도 모르겠다. 통증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하는 둘도 없고 셋도 없는 가장 친한 친구(?) 하고나 할까..?? // 그렇다면 우린 그 친구와 함께 사이좋게 지내는 방법을 터득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책들도 시중에 나와있는 것이 아닐지 모르겠다.
일단 이 책은 "통증"에 관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서 쓴 글로 좋은 글들을 모아서 책으로 엮어 만들었다고 한다. 모두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기 때문에 비 전문가들이 하는 말보다는 이 책 한권을 읽는 것이 훨씬 더 이득이고 정보도 많이 알 수 있을거다. 게다가 책 구성도 흥미를 유발하는 문장들로 채워져 우리 스스로가 내용에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게 만들기도하다. 단 흠이라면 의학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굉장히 유익한 책이라고도 소개되어있을 만큼 그런 쪽에 관련된 단어들이 많이 나온다는거, 그거 하나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이 분야를 공부하는 대학교 학생들, 이 분야에 일하는 사람들, 그리고 이과 학생들에겐 이 책이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책일 수도 있겠지만 생소한 단어를 접하는 사람들에겐 이런 단어들을 신경쓰다가 책 내용을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것 같다. 이런 점을 염두해 두고 그냥 내용을 읽는 것이 훨씬 더 도움이 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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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통증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이러한 만성 통증으로 고생하는 환자들이 통증클리닉을 찾는 경우가 급격하게 증가하는 추세이다. 흔히 경험할 수 있는 통증을 유발하는 다양한 질환과 이로 인한 통증의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통증은 원인과 기전이 매우 다양하고 또한 치료도 쉽지 않은 경우가 많고 통증으로 인해 몸과 마음이 고통을 받게 되므로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게되며 심하면 수면 장애나 우울증까지 동반한다고 하니 인간의 삶에서 가장 원초적인 감각중 하나임에 틀림없는것 같다.
이 책 '통증을 길들이다'는 프랑스의 저명한 <르 콜레주 드 라 시테>라는 컨퍼런스에서 통증 관련 발표 내용을 엮은것으로 우리 몸은 신경생리학적으로 통증을 어떻게 느끼고, 이를 어떻게 전달하는지를 설명하면서 통증 치료는 어떻게 가능한지 살피고 있다. 책은 '베르나르 칼비노'교수의 '통증이란 무엇인가'로 시작한다. 통증은 감각 판별적 성분, 감정적 성분, 인지적 성분, 그리고 행태적 성분이라는 모두 네 가지 성분으로 구분되는데 이 성분들은 서열이 있고 상호 간에 영향을 미치고 변조되는 만큼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다. 통증의 범주도 임상적으로 세 개의 범주로 구분 할 수 있는 데 노시셉션 과다로, 신경질환이 원인이 되어, 그리고 심리적 원인의 범주로 구분되어 진다는 것이다. 이어 통증의 생리학적 양상에 대한 설명은 다분히 전문적인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 쉽게 이해가 되지는 않지만 복잡한 신경계의 전달과정을 통해 느껴지는 듯 하다.
감각생리학에서부터 심리학까지, 노시셉션으로부터 통증 지각까지, 감각에서 감정까지 통증에 관한 현재의 개념 속에서 통증은 중추신경계에서 통증의 중심에 의해서가 아니라 많은 경로들과 구조들에 의해 발효되는 다요인적(多要因的)과정으로 나타난다.(p40)
국제 통증 학회에서는 '통증이란 실제적이거나 잠재적인 조직 손상과 관련되거나 혹은 그러한 손상으로 기술된 불쾌한 감각적인 그리고 감정적인 경험'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통증은 질병의 시초를 이루는 것으로 인류가 가장 일찍부터 알게된 경험으로 통증은 곧 질병이었다. 통증은 비교적 간단한 신경계통을 통해서 이루어지나 통증을 유발하는 질환, 부상으로 오는 불안과 공포, 통증에 대한 과거의 경험, 인격, 문화적 배경, 의사에 대한 신뢰, 경제적, 가정적, 안정상태등에 따라 달라진다.
특히 통증의 다차원적인 성격을 다루며 통증의 역사나 사회적·경제적·문화적·종교적 환경 때문에 통증 앞에서 우리들이 무력한 삶을 사는 안타까움에서 벗어나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통증의 원리에 대해 이해하고 이를 길들일 수 있는 지혜를 얻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게한 책읽기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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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가장 기억나는 최고의 통증은 치통이었고 평소 병원 근처에 얼씬도 안하는 성격이지만 이때만큼은 한걸음에 치과로 달려갔던 게 기억난다. 벌써 그 고통을 잊은 지는 오래 되었지만 당시의 기억은 이런 통증이 계속된다면 차라리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뿐이었다. 통증은 실재하는 생리학적, 의학적 증상이지만 통증은 우리 삶을 규정하는 필연적인 무엇이기도 한 것 같다.
먼저 고통과 통증을 구분한다. 심리적, 정신적 영역까지를 포괄해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고통과 감각적 증상이 있는 생리학적 의미의 통증으로 한정짓는다 해도 문제는 있다. 통증의 정도는 매우 개인적이고 주관적이어서 수치로 객관화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어제보다 오늘이 더 아픈지, 여기보다 저기가 더 아픈지 등을 표현할 수 있지만 지금 느끼는 통증이 10점 만점에 8.5점이라고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 더구나 이 수치를 보편화, 표준화 시킨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개인마다 성격과 개성의 차이만큼이나 통증에 대해서도 다르게 느끼지 않을까? 그럼에도 이런 통증에 대한 정도를 객관적으로 수치화, 시각화 하려는 방법들이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통증이 발생하는 생리학적 경로는 전문적 용어들 때문에 쉽사리 이해할 순 없었지만 최소한 통증이 감각적 경험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걸 말해준다. 감각 경험은 신경 조직의 여러 단계를 거치면서 통합되고 그 과정에서 자극이 완화될 수도 있고 증폭될 수도 있다고 한다. 우리가 종종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을 땐 통증을 잊게 되듯이. 이는 통증이 정신적, 심리적인 문제와도 관련되어 있음을 말해준다. 또한 통증에 대한 태도는 철학적, 종교적, 문학적, 윤리적 대상이기도 하다. 기독교 중심의 서구 사회에서 나온 책이기에 고통을 통한 구원이라는 기독교적 메시지에 의해 통증이 다소 방치되어 왔던 역사를 소개하고 철학과 문학에서 통증이 갖는 의미를 고찰하고 있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신생아, 또는 아직 임산부의 뱃속에 들어있는 태아, 그리고 중증장애인 등 그들의 의사를 표현할 수 없는 경우에 있어 통증이 존재하는지와 이를 어떻게 판별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해 다루는 장은 우리가 인간을 어떻게 정의하고 바라보아야 하는지 생각해 보게 한다. 태아의 경우 24주 이후엔 통증을 느낄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그럼에도 오랫동안 태아는 물론 신생아의 경우에도 통증을 느끼지 못할 것으로 보고 별다른 조치(마취 같은)없이 치료가 행해졌다고 한다. 의료가 발달하고 오래 살 수 있게 되면서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 중요해지고 있다. 달리 바꾸어 말하면 모두가 충분히 오래 살고 싶어 하지만 또한 고통 없이 살다가 죽고 싶은 것이다. 통증에 대한 생리학적 지식뿐만 아니라 사회, 문화적 측면까지를 다루고 있는 이 책은 삶의 질과 행복을 좌우하게 될 통증에 대해 짧은 내용이지만 많은 생각거리를 던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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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순간 통증을 겪고 있기 때문에 그런지 이 책의 내용들이 눈에 쏙쏙 들어온다. 일주일전 부터 몸에 한두개씩 빨갛고 가려운 것이 올라오더니 급기야 목요일밤부터는 얼굴이 울퉁불퉁 해지도록 벌겋게 되어버렸다. 그야말로 가려움을 견디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새삼 알았다. 긁으면 안된다는 것을 알기에 고통은 더욱 커졌다. 겨우 두드러기가 돋았을 뿐인데 마치 암에 걸린 사람이라도 되는냥 힘들어하고 있는 내모습을 보면서 통증앞에 얼마나 사람은 나약한 존재임을 다시 느낀다. 얼마전 행복전도사라는 최윤희씨 부부가 자살을 해서 충격을 주었다. 바로 우리에게 희망을 입버릇처럼 강조했던 강사아니던가. 그런 사람이 자살이라는 방법을 택하다니... 그 때는 참 세상이 너무한다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막상 그 사인이 참 기가 막힌다. 바로 통증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 얼마나 얼마나 그 통증이 참기 힘든 것이었으면 입으로 행복을 부르짓던 사람이 자살을 택했을까 싶다.
통증을 길들이다 라는 제목처럼 이 책은 딱딱한 책이 아니다. 꽤나 어려울 것 같은 제목에 주제인 것 같아 읽기도 전에 겁을 낼 필요는 없다. 생각보다 통증에 대해 알면 알수록 재미있어 진다. 왜그럴까? 아마 통증은 누구나 겪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 통증이 작은 것이건 견디기 힘들만큼 큰 것이건 그 당시에 느끼는 통증의 강도는 비슷하지 않을까 통증에 대해 좀더 지혜롭게 이겨내려면 먼저 통증에 대해 제대로 알고 식별해야 한다고 한다. 24주된 태아도 통증을 느낀다는 사실은 충격이다. 물론 낙태에 대한 의견은 아직도 분분하지만 어쨌든 뱃속의 태아도 통증을 느낀다는 생각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끔 해준다.
현대사회에 이르기 까지 통증에 대한 많은 이론과 관심이 이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임종이 다가왔을 때 임시 처치로서 진통제를 투여한다거나, 신생아 분만 때 경막 마취제를 투여할 수 있게 되었다. 통증을 의학적인 것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좀 더 휴머니즘의 참여를 작가는 강조하고 있다. 통증에서 벗어나고픈 원시적인 생각만이 아니라 통증을 길들일 수 있는 지혜를 우리가 찾아야 할 것이다. 역시 모든 학문은 따로 따로 별개일 수 없다. 통증도 의학용어에서 국한할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과학적으로 인간적으로 받아들여야할 하나의 개념일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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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증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우선은 통각. 감각으로서 몸에 느껴지는 생물학적 물리적인 그런 의미의 통증이 나는 먼저 생각난다. 하지만 이런저런 책들을 읽다가 보면 다른 통증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사고로 잃어버린 팔이나 다리가 절단되어 몸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팔이나 다리가 있었던 곳에 아픔을 느끼는 현상이다. 종종 그런 현상들이 있다고 하는데 그런 것들 덕에 더욱더 헷갈릴 수밖에 없다. 통증이 감각인지, 아니면 감정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다만 그 통증이라는 것은 그것이 감각이든 감정이든 간에 사람들이 거부하는 고통스러운 종류라는 사실은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하리라. 그러한 통증에 대한 책이 나왔다. 바로 이 <통증을 길들이다>. 물론 대부분의 일상 생활에서는 잊고 살지 모르지만 실제 조금이라도 다치거나 배만 아파도 그 통증이 얼마나 견디고 싶지 않은 종류의 불유쾌한 감각인지는 나도 안다. 다만 그 통증이 내것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겠지. 하지만 병이나 사고에 대해서 완전히 벗어나지 않는 한은 누구나 어느 순간 마주칠 수 있는 것이 바로 통증이다. 이 책은 그 통증이라고 하는 것은 단편적이 시각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의사, 과학자, 철학자, 종교인, 간호사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 말하는 통증에 대해 알 수 있는 재미있는 책이다. 물론 책의 내용은 어렵다. 몇번씩 읽어도 이 말이 뭐였는지 기억이 나지를 않아서 앞서 읽었던 내용을 다시 한번 찾아본 적도 참 많다. 하지만 미지의 것 - 자신이 지금까지 모르고 있던 것들을 알아가는 소소한 재미는 그 어려움을 딪고 고심하면서 한번 더 읽게 만들더라. 감각생리학에서부터 심리학까지, 노시셉션으로부터 통증 지각까지, 감각에서 감정까지 통증에 관한 현재의 개념 속에서 통증은 중추신경계에서 통증의 중심에 의해서가 아니라 많은 경로들과 구조들에 의해 발효되는 다요인적인 과정으로 나타난다. 이 개념은 다양한 유형의 통증들 간의 차이를 좀 더 잘 이해하게 해주고 물리치료, 약리학, 심리학 등의 다양한 수단을 더 효과적으로 결합하면서 통증 치료의 전반적 접근을 용이하게 한다. - p.40-41 개인적으로는 두번째 장인 <통증을 밝히다> 라는 파트가 가장 흥미로웠다. “철학과 통증”, “유대-기독교 전통에서 본 통증”, “문학과 통증”으로 구성이 된 이 <통증을 밝히다>라는 장은 각각 철학, 종교, 문학이라는 서로 상이한 분야에서 통증이라고 하는 것을 보는 관점들을 읽을 수 있었던 파트여서 통증에 대해 여러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볼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예전에 읽었던 책에서 병에 의해 동반되어지는 고통에 대해 “그 아픔을 잊을 수만 있다면 눈이 보이지 않고 귀가 들리지 않아도 좋다고 절규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느냐!”며 피를 토하듯 외치던 장면이 생각이 났었다. 통증이 사람에게 얼마만큼의 고통을 안기는지는 당사자만이 알 수 있겠지만 그 통증에 대해 다각적인 측면으로 접근하면서 알아본다는 것은 고통받는 이들에 대한 이해와 존중으로 이어질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통증에 대한 우리의 첫 번째 무기는 존중이다” 라고 말한 이 책의 공동 저자인 마르탱 빙클레르의 말처럼 통증을 호소하는 이를 존중할 수 있으려면 먼저 통증에 대한 이해가 먼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통증에 대해 다각적으로 이해해보기를 원하는 분이라면 이 책을 한번 읽어보기를 권유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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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증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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