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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인기를 끄는 모 금융회사의 CF중 이런 문구가 있다.
"금융의 해외진출은 힘들다
오늘날 고도화된 자본주의 세계 속에서 자본이 얼마나 쉽고 간단하게 그 국적을 바꿀 수 있는가? 분명히 세계는 하나가 되고 있는데, 이것은 '화폐' 라는 물신 하에서 그러하다. 화폐는 국적을 따지지 않고 더 나은 수익의 원천을 찾아 이동한다. 이러한 움직임은 오늘날 당면한 '국민국가의 위기' 또는 '국민국가의 무용론' 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물적 토대로 작동하고 있다.
그렇다면 '국민국가' 라는 어휘는 낡은 것이 되었나? 이 책을 쓴 피에르 노라는 이 물음에 '그럴지도 모른다' 라고 답한다. 무엇을 '기억' 하고 '기념' 하는 행위는, 역설적으로 말해 '그것이 오늘날 살아있지 않기 때문' 이라고 한다. 노라는 최근에 프랑스에서 역사적 전통을 기념하는 행위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는데, 이 '기념' 은 '역사' 와 '기억' 과는 다른 개념이라고 서술한다. '기념' 은 더이상 어떤 역사적 장소나 물건이 현재의 상황과 관련이 없을때, 그것을 '잊지 않기 위해' 인류가 행하는 특별한 의식일 뿐이라고 한다.
노라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 비판적으로 인식하고 있었고 그래서 이 책을 썼다. '기념' 이 원자화되어있고 상업적으로 변질되고 있다고 비판하며, 그래서 그 기념을 다시 '역사' 를 통해 '기억' 으로 전환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은 '원자화된 기념' 과는 달리 역사적 맥락에서 모든 사건과 사물을 검토하고, 이 과정에서 '민족' 은 필수적인 개념으로 다루어진다.
우리는 세계사 교과서에서 1793년 프랑스혁명을 기점으로 '민족' 이 형성되었다는 견해에 익숙해져 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민족사' 를 고대 골족까지 소급시켜 적용하는 역사관을 볼 수 있다. 그리하여 프랑스의 민족사는 고대 골족- 중세 가톨릭 전통- 근대 프랑스 혁명 - 현대 68혁명을 잇는 계보 속에서 파악된다.
이 책에서 흥미로운 것은 역사를 매끄럽게 쭉 서술하지 않고, 다소 모순되고 울퉁불퉁한 역사를 최대한 '보여주었다' 는 것이다. 프랑스 혁명은 민중의 혁명이었으나 그것은 자유를 지향하는 혁명이기도 하였다. 또한 그것은 민족을 인식하게 하는 혁명이기도 하였다. 이 삼중의 모순점은 1793년 로베스피에르와 나폴레옹 제정기, 2공화정과 2제정, 3공화정을 통과하면서 최후엔 '민족' 으로 수렴되기에 이른다. 심지어 '민족' 은 고대 골족과 중세 가톨릭까지 모두 흡수하면서, 마침내 완결된 '프랑스' 를 만들어 냈다. 프랑스혁명때 타도의 대상이었던 베르사유 궁전은 오늘날까지 잘 보존되면서 대외 행사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명물이 되고 있다. 이렇게 '민족' 은 울퉁불퉁하고, 모순된 것 같지만 그것은 매우 힘이 있다. 이 지점이, 온건한 민족주의자였던 드골이 승리하고 프랑스 공산당이 공산당 본연의 '국제주의' 에 동화하지 못하고 끝내 프랑스에 수렴되고 만 지점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끊임없이 들었던 생각은 이러한 민족 중심의 역사관을 한국에 어떻게 적용시킬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한국엔 과연 사람들이 모두 공유할 수 있는 '기억의 장소' 가 있을까? 만든다면 무엇을, 어떻게 만들어 낼 수 있을까? 한국의 근대는 일제에 의해 폭력적이고 단절적으로 진행되었다. 민족이나 민중이 개입할 여지는 없었고, 조선시대까지 신분제의 굴레를 유지하다가 일제에 의해 식민지근대화가 진행되었다. 더구나 지금은 같은 기억을 공유하고 있었던 민족과 분단 상태에 접어든 지 어언 60년이 지났지 않은가!
그래서 어려운 길이 되었다. 최근 탈민족 담론이 거세게 유행하고 있지만, 우리에게 언제 '민족' 을 기억할 수 있었던 기회가 있었을까 하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유행이라고 생각이 든다. 그러나 어렵지만, 분명 도전해야 할 길이며 이 점이 역사를 공부하고 공부하고자 하는 나에게 어떤 직관이나 지향점을 주었다는 점에서, 이 책을 읽은 기억은 상당히 중요한 지점으로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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