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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공지영 작가의 비교적 예전 작품인 '고등어'를 읽었다. 고등어라는 단어가 왜 제목일지 사실 책을 읽는 초중반까지는 잘 느끼지 못했다. 책을 서서히 읽어 나갈수록 나 역시 어쩌면 '고등어'로 살아오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언제부터 '고등어' 였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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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라는 말은 얼마나 아름답가 멋진가? 하지만 자유를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의 희생과 눈물이 있었을까? 30살을 2달 목전에 둔 나는 어떤 세대일까? 빼앗긴 세대일까? 잃어버린 세대잃까? 생각없는 세대일까? 지금은 군사독재는 없다. 하지만 정보자유와 인권이란 이름아래 국가를 향하는 저항속에서 우리는 길잃은 양뗴일지도 모른다. 고등어에서 명우와 은림, 경식과 여경 그리고 정신병원에 있는 은철 모두가 같은 시대의 아픔속에서 누구는 더아프고 누구는 덜 아팠을텐데 책을 덮을 때는 똑같이 아파했을것이란 생각이든다. 병의 증세가 조금 빨리 오고 늦게오는 차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젊은 세대는 정치보다는 대중문화를 향해 비난을 한다. 정치에 대한 관심은 사라진지 오래다. 자유가 너무 흘러넘쳐서 방종으로 까지 보여지는 요즘날에 10년후의 나를 생각해본다. 나는 그 시간에 지금의 나의 행동과 생각들에 대해서 어떤 평가를 내릴수 있을까? 잃어버리고 빼앗기는 것은 입장의 차이일것이다. 작가세대가 잃어버린 것을 독자세대인 우리가 얻고 있을까? 자유라..소금에 절여진 고등어는 자유를 버렸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의 뱃속에서 등푸른생선의 오메가3로 변신해서 우리를 살찌워줄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은 고등어는 자유를 잃어버린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그 자유를 양보한것이라고 생각한다. 청년실업과 경제대란으로 힘든 이시점에 내가 바다의 자유를 누비는 고등어가 되지 못해 저녁식사 밥상의 자반고등어로 올라가도 슬퍼하거나 우울해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결국 고등어는 어떤 형태로든지 자기의 역할을 다 한것이다. 이땅의 자유를 위해 몸부림치며 아파했던 모두에게 감사하며 나 역시 10년 후의 내 후배들을 위해서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살겠다. 공지영작가님 역시 당신은 시대를 연결하는 힘을 가지신 놀라운 분이십니다. 30대가 되면 작가님의 글이 저에게 어떻게 느껴질지 궁금해지면서 계속되는 집필활동 왕성하게 하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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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공지영 작가님의 다른 신간 기념으로 작가와의 만남을 가진적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어느 고등학생이 작가님의 고등어를 8번 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난 아직 못 읽어 봤는데 작가님 책을 여러권 읽었지만 아직 이 책은 읽지 못했는데 그 책의 어떤 마력에 8번이나 읽었다는 것인지 솔직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보통의 경우 소설은 한번에서 두번정도 읽는 것이 보통이고 기억이 가물그럴때즘 다시 읽는 것이 나의 경우다. 소설을 8번 읽었다는 것은 나의 상식으로는 책을 다 외워서 암송도 가능 할 듯해 보였다. 그래서 공지영 작가의 책을 좋아 하는 나 또한 이 책 고등어를 안 읽어 볼 수가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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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 작가의 장편 고등어 이 소설은 80년대 민주화 운동당시 운동권 세대, 운동권 사람들의 현재의 모습을 담아낸 책이다. 장편소설이지만 중간중간 에세이를 읽고 있는 느낌을 주는 소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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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공지영이란 작가를 처음 접한 것은 영화<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보고 원작 소설을 찾아 읽으면서이다. 그 이후로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봉순이 언니>, <즐거운 나의 집><수도원기행>, <사랑한 후에 오는 것들>을 읽었고, 영화 <도가니>를 보았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 읽은 책이 <고등어>이다. 내가 작가 공지영에게 푹 빠진 것은 처음 접한 작품인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읽고서였다. 그때 나 역시 삶과 죽음에 대해 치열하고 절박하게 고민하던 시절이었기에 책과 영화 모두 가슴 속에 박혀버리는 듯 했었다. 또 그 무거운 주제의 이야기를 결코 우울하지 않게 풀어내는 작가의 내공이 정말 존경스러웠다. 무거운 주제를 어둡거나, 칙칙하고 우울하지 않게 풀어내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작가 공지영’의 가장 탁월한 능력이다. 그런데 <고등어>는 비교적 그녀의 초기 작품이라 그런지 몇 페이지 읽지 않아서부터 그 무거운 분위기에 짓눌려 버렸다. 음울한 80년대 말과 거기서 막 깨어난 90년대 초반이 이야기들은 읽어 갈수록 숨이 막힐 만큼 무거웠다. 물론 그런 시절이었고, 나 역시 마지막으로 대학가에서 최루탄이 쏘아지던 90년대 중 후반에 대학을 다닌 사람이라 글 속에 나타난 이들의 고민과 갈등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하고 공감하는 세대라고 생각하지만 가슴이 먹먹해질 만큼 짓눌러오는 소설을 읽어 나가기는 쉽지 않았다. 지금껏 내가 만나온 작품들을 통해 보면 공지영이란 작가라면 같은 이야기를 풀어내더라도 읽는 이에게 좀 더 여유를 줄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책을 덮고 나니 나 역시 함께 했던 ‘친구’가 아닌 ‘동지’들이 생각나는 것은 나이가 들었기 때문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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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고등어 (1994)
고등어 공지영 저 1994년 작품(한국), 2010년 단행본(오픈하우스) A5 148*210mm, 303page, 12800 ISBN 9788993824384 추천 9 / 10
25번째 만남
그들은 생각할 거야. 시장의 좌판에 누워서 나는 어쩌다 푸른 바다를 떠나서 이렇게 소금에 절여져 있을까 하고. 하지만 석쇠에 구워질 때쯤 그들은 생각할지도 모르지. 나는 왜 한때 그 바닷속을, 대체 뭐하러 그렇게 힘들게 헤엄쳐 다녔을까.
갑자기 이 세상을 힘겹게 살아가는 모든 친구들의 얼굴이 어둠 속에서 떠올랐다. 대체 무엇이 그들을 아직도 '시대착오적'으로 '불화'하게 하는지. 대체 어쩌자고 이다지도 이 변화에 적응도 하지 못하는지…. 그리고 나는 어쩌자고 이 밤에 일어나 그들을 생각하고만 있는 건지…. 사실은 이 모든 게 한심했고, 한심했지만 나는 울컥 그들이 보고 싶었다. 이 소설을 시작한 것은 그날 이후부터였다. 벗어나려고 했지만, 나 역시 한때 그들과 함께 넉넉한 바다를 헤엄쳐 다니며 희망으로 온몸을 떨던 등이 푸른 자유였으니까. 그리고 나는 아직도 그 등이 푸른 자유를 포기할 만큼 소금에 절여져 있지는 않았으니까. 공지영
고등어, 표지 中
자유의 한 부분은 말한다. 푸른 자유의 잣대는 무엇인가하고 말이다. 우리는 어떤 모양을 취하고 있는 자유의 잣대를 들이대며 자유의 타당성을 외치고 있는가.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도태되고 나태한 청춘은 그렇게 푸른 자유를 빼앗기고 결국에는 소금이라는 자유를 내다 바치고 받은 미약한 대가성 뇌물에 현혹되며 절여지고있다. 그렇게 사그라들고 있다. 슬프게도 우리의 현실이 그러했다.
공지영의 1994년도 작품 '고등어'는 푸른 자유를 갈망하는 청춘들, 또는 그런 청춘을 지내온 사람들에게 푸른 자유의 안타까움을 말한다. 푸른 자유의 나약함을, 푸른 자유의 위태로움을 말이다. 우리는 현대 사회에서 물질, 명예, 성공 등과 같은 소금들에 절여져 있지는 않은가. 이것은 비단 한 계층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들. 청춘에서부터 황혼기의 어르신까지. 우리들은 안타깝게도 그물이라는 허망한 사회속에서 허덕이다가 결국에는 소금에 절여져 석쇠에 구워지고있다. 허망하기 그지없지만, 결국에는 모든 푸른 자유는 그렇게 사그라들고 이내 체념하게 된다. 체념하는 우리의 안타까운 푸른 자유. 이것은 나약한 인간들이 만들어낸 질 나쁜 변명이다. 안타까운 푸른 자유는 없다. 그렇게 만들고 있는 것은 바로 내 자신이다. 정작 소금은 생선 장수들에게 뿌려짐 받는 것이 아닌, 내 자신이 내 몸에 소금을 뿌리고 있다. 보통 뿌리는 것이 아니다. 아예, 소금통에 내 자신을 내 던지고 있다. 공지영 작가는 '고등어'를 통하여 흔들리는 청춘에게 조금은 쉬어감의 미학을 전달하고 싶어한다. 한 시대를 살아온 동료들에게, 선배들에게, 또는 다른 시대를 살아갈 후배들에게 자식들에게. 조금은 더 푸른 자유를 느껴보라고 외치고 있다.
청춘은 나약하다. 비바람에 바다가 넘실 거리면 푸른 자유의 청춘들은 무리를 이탈하고 안전한 곳을 찾아 헤메이게 된다. 나 혼자라도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존본능에 푸른 자유는 그렇게 그물 속으로 자신의 몸을 의탁하는지도 모르겠다. 내 자신을 잘 생각해보자. 내 자신을 주인공, 명우에게 이입해보자. 푸른 자유를 빼앗겨 소금에 절여살던 명우가 내 자신은 아니었는지. 현실에 굴복하거나 체념하고 살지는 않았는지, 변명하지는 않았는지 말이다. 우리는 한 마리의 고등어이다. 등이 푸른 자유이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생선가게에 있는 푸른 자유이다. 그 누가 나를 구입해서 바다에 놓아주겠는가. 나는 지금 매우 위태롭다. 명우와 같이 나는 지금 생선 가게에 있는 푸른 자유이다. 하지만 아직 다행인 것은 석쇠에 내 몸을 지지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 위로라면 위로일 것이다. 그렇게 우리들의 현실은 아주 격한 상황에 놓여있다.
명우에게 있어서, 청춘은 무엇이었을까. 혼돈과 갈망의 시기였을까. 그런 혼돈과 갈망의 역사를 지나 명우는 웃을 수 있는 시대를 맞이하였지만 그의 웃음이 과연 진정한 자유에서 오는 웃음이었는가는 고민해봐야할 일이다. 그는 시대를 살아가면서 많은 것을 내던진다. 그리고 결국에는 많은 것을 뒤로 한채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는 현재 생선 가게에서 두 눈을 부라리며 자신의 푸른 자유를 홍보하고 있다. 그런 그를 찾아온 은림. 그녀는 어쩌면 명우의 자유를 구원해 줄, 그를 바다로 내 던져줄 구원자일 것이다. 그를 청춘의 굴레에서 사로잡혀버린 사슬같은 그물 속에서 벗어나게 해줄 단 한명의 구원자말이다. 은림은 순수했고, 현명했으며, 또한 잔인하게 미련했다. 명우의 자유를 되돌려 주기에 은림은 많은 것을 감수 해야 했다. 연숙과 여경사이에서의 고통, 자신의 과거, 명우와의 재회. 그 모든 것들이 은림에게 있어서는 명우의 푸른 자유를 되돌리게 할 고등어 구입 가격이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만큼 푸른 자유를 되찾을 때의 대가는 잔인하다. 푸른 자유가 이미 바다에서 건져 올라왔을 때의 대가는 너무나도 잔인하고 슬프며 냉혹하기까지했다. 그래서 모두들 석쇠로 가는 길이 더 편하다며 그렇게 안락하게 누워있나보다.
당당한가. 우리는 당당하지 못하다. 나를 포함한 청춘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얼마 전 필자는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공지영 작가의 '고등어'보다 먼저 읽어서 이렇게 더 청춘의 아픔을 느끼는 것인지 모르겠다. 우리가 무엇을 향해 그렇게 열정적으로 뛰고 있는가에 대한 회의와 허망함은 말로 설명할 수 없다. "지금 너는 무엇을 원하니?" 라는 질문에 나는 속세의 더렵혀진 사상을 받들어 "성공을 원합니다." 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있지 않을까. 길을 잃었다. 높은 파도에 길을 잃어 안전한 곳을 향하다가 결국에는 그물에 사로잡혀버렸다. 멀리, 그물에 크지도, 작지도 않은 구멍이 난 것을 보았지만 저곳으로 나가 다시 높은 파도의 소용돌이에서 헤엄칠 자신이 없는 푸른 자유는 고민한다. '나는 살고싶어, 안전하고 싶어, 고통받고 싶지 않아.' 라며 속으로 엄청난 고민에 빠지겠지. 그리고 결국에는 숨도 못쉴 더 힘든 현실이라는 곳에서 더욱 펄덕거리며 안간힘을 쓰다가 소금에 절여지고 "아, 나는 왜 이렇게 힘들게 살아남으려고 했을까." 라며 자신의 청춘과 지난날을 조롱하지는 않을까. 나는 그것이 무섭다. 현실을 살아가는 것의 힘듬보다 미래의 내 몸에서 풍길 냄새, 빛깔, 미동이 무섭다. 바닷내가 아닌 비린내가 윤기 아닌 썩음이 열정이 아닌 나태가 무섭다. 그런 오늘날이 무섭다.
공지영 작가의 대단함을 작품 '고등어'를 통하여 다시금 느꼈다. 나는 생각지도 못했던 청춘의 자유를 고등어에 비유한 그녀가 대단하다. 그리고 고등어에 비유된 현대인들의 현실이 처절했다. 작품 '고등어'는 명우라는 남자가 대표가 되어 푸른 자유를 찾기 위한 발버둥을 치며 많은 현실의 고통을 간접적으로 느끼게 해주었지만 나는 그와 같이 그 험난한 세상을 살아갔던 은림과 연숙, 여경에게도 또는 경식과 은철에게도 눈물이 났다. 모두들 이렇게 치열하게 헤엄치면서 살아가고 있구나. 모두 푸른 자유를 찾기 위해, 지키기 위해 힘차게 헤엄치고 있구나. 나는 그들을 보면서 혹시는 그물 속으로 헤엄쳐 가고 있을 나를 되잡아 본다. 그리고 그 푸른 자유는 뒤돌아 보며 잠시 나를 보겠지.
"푸른 자유, 그 곳이 너가 원했던 꿈의 이상향이니?"
나는 이렇게 나의 푸른 자유를 향해 외쳐본다. 그리고 내 푸른 자유가 아주 잠시라도 고민할 순수함을 지니고 있길 기도해 보는 바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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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어 * 저 : 공지영 약 15년 전, 대학에 입학했을때 데모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남자애들이 많는 과이다 보니 당구장도 가보고 PC방도 가고 했드랬죠. 어느 날인가, 강의 시간 사이 시간이 비어 아이들과 학교 앞에서 당구를 치고 있을때, 사건이 벌어졌죠. 당구장 내에까지 들어오던 그 가스. 그리고 내려와서 교실까지 걸어갈때 그 매캐한 냄새. 울지 않으려고 해도 자동적으로 주르륵 나오던 매운 연기. 대학 1학년때 친한 친구들이나 몇몇 선배가 운동을 좀 했죠. 꼬드겨도 왠지 안 맞아서 제외. 이 책을 보니 그 때 그 시절이 생각납니다. 그때가 아마 그런 운동하던 마지막 세대가 아니었나 생각해봅니다. 이 책의 배경이 되고 주인공이 되는 이들은 우리보다 약 10여년 전 선배들의 이야기죠. 작가가 책을 낸 94년도에 전 막 고등학교에 입학한 학생이었으니 말이에요. 감정을 가다듬고 일어서면서 명우는 그제서야 세 여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세 여자
누구도 먼저 움직이려고 하지 않았지만 명우가 먼저 자신의 작업의자에 털썩 앉아 담배를 피워물었고 이어 여경이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연숙이 천천히 자리에 앉았고 맨 마지막에 은림이 앉았다. 소파에 세 여자가 나란히 앉은 것이었다. 바라보고 있자니 명우는 갑자기 웃음이라도 터질까 봐 겁이 났다. 옛 애인과 옛 아내와 현재 애인을 이렇게 나란히 앉혀 놓고 바라보는 행운을 가진 남자가 또 있을까. 명우, 은림, 여경, 그리고 연숙..
참 희한한 인연입니다. 그리고 건섭과 은철, 경식, 그리고 명희. 등장인물은 주인공을 중심으로 한 몇 안되는 주변인들이지요. 주인공은 명우와 은림. 어느 영화에서 나올법한 상황으로 젊은 날 후배의 아내를 탐한 남자와 그와 사랑에 빠진 여자. 그리고 남편을 두고 떠나기로 한 날에 배신을 한 새로운 남자. 그 여자는 어떻게 세월을 버텼을까요? 6년의 시간을... 그것도 한창 젊을때. 명우라는 남자도 대책 없어보입니다. 연숙을 사랑하긴 했을까요? 명지는... 그리고 여경은 어떤가요? '난 어쩌면 정말 유토피아를 꿈꾸었던 건지도 몰라. 이 세상에 없기 때문에
이름이 유토피아라지? 이 세상에서 우리가 상상했던 모든 좋은 세계에 대한 상상을 사회주의 속에 다 가져다 부어 놓고, 그것이 단지 꿈으로 끝날 수도 있다는 상상은 해 보지도 않았어. 다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었어, 굳게 믿었지. 그리고 아직도 아직도 그 미망에 사로잡혀 있으니까.' 이 말이 꽤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습니다.
이 세상에 없기 때문에 유토피아라.... 은림과 명우의 관계가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되어지기를 바란것도 꿈이었을까요? 자신이 버린 여자 대신 다른 여자와 결혼하고, 그리고 이혼. 현재는 옛 애인과 닮은 이와 만나는 이 남자 명우. 여자로서 이해는 잘 안되지만 은림을 결국 계속해서 사랑하고 있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왜 결말에서 은림을 꼭 그렇게 했어야했을까... 그래야 여운이 남아서 그런 것일까요? 그랬다, 잔인한 시절이었다. 수줍은 청년을, 부끄러워서 형
친구들이 권하는 농주를 마시지 못했던 한 소년을 열사로 만들었던 그런 모진 시절이었다. 그 소년에게 농주를 권하던 호쾌한 청년 은철을 정신병자로 만들어 버린 그렇게 무정한 세월들이었다.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유행가를 부르며 가볍게 몸을 흔들어도 얼굴이 해맑을 수 있는 저 후배들을 붙들고 이야기하기에는 너무 복잡하고 미묘한, 이제는 다만 전설로 전해질 이야기들이라고 명우는 생각했다. 우리가 현재 누리고 있는 자유는 우리보다 앞서 살았던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민주화를 이루기 위해서 치룬 이들의 그 희생이 얼마나 컸던가요. 그런 배경을 전제로 깐 책이랍니다. 하지만 이론적으로 깊이 있게 그 방면으로 배우지 않아서 그런지 약간 깊게 이런 내용들이 나오면 어려워졌습니다. 내용보단 마음이 말이지요. 90년대 중반, 사회의 모습을 담고 있는 그러면서 남녀의 사랑을 이야기한 소설. 보는 이에 따라서 많은 호불호가 갈릴 내용이 아닌가 합니다. "살아 있는 고등어떼를 본 일이 있니?" "아니." "그것은 환희의 빛깔이야. 짙은 초록의 등을 가진 은빛 물고기 떼. 화살처럼 자유롭게 물 속을 오가는 자유의 떼들, 초록의 등을 한 탱탱한 생명체들. 서울에 와서 나는 다시 그들을 만났지. 그들은 소금에 절여져서 시장 좌판에 얹혀져 있었어, 배가 갈라지고 오장육부가 뽑혀져 나가고." "." 여경의 숨이 골라지고 있었다. 그도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말했다. "그들은 생각할 거야. 시장의 좌판에 누워서. 나는 어쩌다 푸른 바다를 떠나서 이렇게 소금에 절여져 있을까 하고. 하지만 석쇠에 구워질 때쯤 그들은 생각할지도 모르지. 나는 왜 한때 그 바닷속을, 대체 뭐하러 그렇게 힘들게 헤엄쳐 다녔을까 하고." 왜 책 제목이 고등어인데 이런 내용이 있을까 읽으면서 내내 의아했는데요. 이부분을 읽어보니 좀 이해가 되네요. 현재의 명우의 위치를 그대로 이야기 해주는 내용이 아닐까 합니다. 무엇때문에 은림은 7개월 아이를 사산할 정도로 파업 현장에 있었는지.. 은철의 젊은 날의 보상은 정신병원이 될 수 밖에 없는지.. 순진했던 고등학생이 왜 대학생이 되어 분신을 하고 세상을 떠나야 했는지.. 공지영 작가의 책은 이 책의 2번째 책이랍니다.
은근 거의 안 읽었네요^^; 보면서 아직은 팍 빠져들만한 임팩트 있는 느낌은 많이 오지 않습니다. 도가니가 아주 이슈가 되었는데 그 책도 같이 읽어봐야겠어요. 이 고등어에서 약간 뭔가 사회비판적인 느낌도 사랑 이야기도 같이 버무려 놓아 정작 어떤 것을 중점으로 이야기하고자 했는지... 독자 능력 부족으로 캐치를 못해서 말이지요. 아무래도 경험이 부족한 탓이려나요... 중간 중간 나오는 유고라는 글 때문에 결말을 알고 보는 책. 그래서 더 긴장감이 사라진채로 볼 수 밖에 없었던 아쉬움이 묻어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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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고등어 떼를 본 일이 있니?'
'아니' '그것은 환희의 빛깔이야. 짙은 초록의 등을 가진 은및 물고기 떼. 화살처럼 자유롭게 물 속을 오가는 자유의 떼들, 초록의 등을 한 탱탱한 생명체들. 서울에 와서 나는 다시 그들을 만났지. 그들은 소금에 절여져서 시장 좌판에 얹혀져 있었어, 배가 갈라지고 오장육부가 뽑혀져 나가고.' '.....' 중략 ' 그들은 생각할 거야. 시장의 좌판에 누워서. 나는 어쩌다 푸른 바다를 떠나서 이렇게 소금에 절여져 있을까 하고. 하지만 석쇠에 구워질 떄쯤 그들은 생각할지도 모르지. 나는 왜 한때 그 바닷속을, 대체 뭐하러 그렇게 힘들게 헤엄쳐 다녔을까 하고..'
예전에 읽을 때는 도저히 몰랐는데.... 나이 먹어 다시 보니 또 다른 생각들이 드는 책..
왠지 지금 나이 많은 어른 들의 안하무인 격인 태도도 왠지....그에 기인한 것은 아닐까..? 지금의 대한민국을 가꾸었으니 대접해줘야 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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