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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현실을 직시하는 시인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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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눈이 충혈 되어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멍하니 누워있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누군가 곁에 앉아서 시를 읽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읽는 사람도 부담이 없고 듣는 사람은 오래 곱씹을 수 있는 시를 듣는다면 애써 무언가를 보려하지 않고 그대로 잠 속에 빠져 들 것 같은 즐거움.   한 편의 시를 읽는 일은 하나의 이야기를 듣는 것과 다르지 않다. 다만 시는 드러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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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 눈이 충혈 되어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멍하니 누워있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누군가 곁에 앉아서 시를 읽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읽는 사람도 부담이 없고 듣는 사람은 오래 곱씹을 수 있는 시를 듣는다면 애써 무언가를 보려하지 않고 그대로 잠 속에 빠져 들 것 같은 즐거움.


  한 편의 시를 읽는 일은 하나의 이야기를 듣는 것과 다르지 않다. 다만 시는 드러난 부분이 빙산의 일각처럼 아주 적을 뿐. 그래서 한 편의 시를 읽는 일은 아주 천천히 이루어진다. 처음엔 시인이 쓴 시를 읽고, 그 다음엔 시인이 숨겨놓은 이야기를 찾고, 그 후엔 시를 쓸 때의 시인이 되어 함께 시 속에서 나부껴 보는 일, 알고 보면 한 편의 시를 읽는 일은 얼마나 장대한 일인가.


  구독하고 있는 신문에 매일 한 편씩 시를 소개하는 코너가 있다. 어느새 나는 신문이 들어오면 맨 먼저 시를 찾아 읽는 시의 애독자가 되었다. 시를 소개하는 사람은 평론가나 시인일 때도 있고 나무해설가일 때도 있다. 나는 그 분들이 이끄는 대로 시의 길을 따라나선다. 어느덧 내 마음 안에는 시의 이야기들이 가을 산처럼 각양각색의 빛깔로 채워져 있다.


  이 시집을 사게 된 것은 권혁웅 시인이 그 신문의 지면에 소개한 「그늘 속의 탬버린」을 읽고 나서다. 시의 한 구절인 “화양연화 화양연화 화냥년아”를 읽으면 신기하게도 탬버린 소리가 나는 듯해서,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은 사라져버릴 것 같은 사람”이라고 쓴 시인의 이야기가 궁금해서『아픈 천국』이라는 이 시집을 사서 읽었다.


  시인의 표정이 어떠해야한다는 공식이 있는 것은 아니다. 대게 시인은 웃는 거 보다는 우울하거나 심각한 표정이 어울린다고 생각해온 건 순전히 내 편견이다. 표지 안쪽에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 소개된 시인의 모습은 아프게 보이지 않아서 마음이 놓였다. 시를 쓰는 사람이란 모름지기 세상의 상처 곳곳에 스며들어 그 아픔을 보듬고 위로하는 거라고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일까. 시인은 함부로 웃거나 가볍게 들떠선 안 된다고 지레 생각하고 있던 터에 이를 다 드러내고 환하게 웃고 있는 시인의 모습은 뜻밖이면서도 보기에 좋았다. 그는 왜 아픈 천국이라고 했을까? 이렇게 웃고 있으면서


  시인은 말을 부리는 사람이다. 말로 자신을 표현하고 말로 자신을 가꾼다. 하지만 사람들은 시인이 너무 많은 말을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해서 시인의 말은 대개 축약이다. 그런데 이번엔 어렵다고 아우성이다. 생략된 행간의 의미를 찾기가 힘이 드니 알아듣기 쉽게 쓰라고 난리다. 시인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세상에 떠도는 말을 새롭게 해석해주되 어렵지 않게, 긴 말은 말고. 이러니 시인이야말로 속 터지는 직업이다. 시인이란 '슬픈 천명‘이라고 윤동주가 말했고, 이영광은 시인을 두고 ’아픈 천국의 원주민‘이라고 했다. 시인은 천국을 보고 아프다고 하고, 방긋 웃는 앞보다는 묵묵한 등을 들여다보며 어둠 속에 스며드는 존재를 읽으려고 깊은 눈길을 던진다. 그 곳이 어디든지 시인이 보는 곳은 밝은 쪽이 아니라 가려진 쪽이라서 아프다. 하지만 그 곳 또한 엄연히 세상 안이기에 피할 수도 없는 곳. 외면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면 직시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 용기를 갖고 시인이 깊은 눈길로 바라본 곳이 이 시집 전편을 감싸고 있다.


 나는 3부로 나뉜 시집에서 1부에 눈길이 갔다. 나와 공감대가 맞는 부분이 많다고 느낀 곳이다.  감상의 몫은 오로지 독자의 전권이지 않는가. 더구나 시에 있어서야. 아무 말하지는 않지만 백 마디 말보다 더 진실해 보이는 등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왜 이 시인이 천국을 아프다고 말했는지 짐작이 갔다. 찬란한 앞쪽을 보기보단 묵묵히 남겨진 뒤를 돌아보는 것을 더 좋아하는 구나. 남들이 잘 보지 않는 등을 보며 앞쪽을 더 잘 보는 구나. 눈을 감으면 사방의 모든 것들이 더 잘 느껴지는 것처럼. “앞이란 언제나 휘둥그런 간판 같은 녀석”이지만 그래서 앞을 보는 이들에겐 그 모습이 예쁘고 미더워 박수를 보내다가도 잠깐 한 눈을 파는 것이 보이기라도 하는 날이면 가차 없이  할퀴려고 드는 이들 앞에 서야하는 것이 앞의 운명이라면, 그 앞을 “숨겨주고/ 눕혀주고/ 붙잡아 일으켜 세워”주는 등이 있어서 쉴 틈 없이 바람 부는 이 현실도 살아갈 만 한건 아닌지. 앞에서 큰소리로 떠드는 사람들이 정작 위로가 필요할 땐 돌아서더라도 그 돌아서는 등조차 “울음을 내놓으려 하는 얼굴을” “점퍼로 단단히 여민/ 등”처럼 말없이 위로해주는 존재임을 알고 있으므로.(「등」)


  반달을 보고 ‘구정물에 뜬 밥알’같다고 말한 시인이 드디어 검은 젖을 말한다. 검은 젖이라니. 우리가 기억하든 말든 엄마의 젖은 뽀얀 우유 빛깔이 아니었나. 그렇게 믿고 살아온 우리에게 시인은 검은 젖이 있음을 똑똑히 기억하라고 일러준다. 모르고 지나가고픈 ‘불편한 진실’을 기어코 알려주려고 몸 사리지 않고 헤매는 시인의 시선이 시장의 생선가게 좌판 위에, 도시의 어두운 지하도 계단에, 신문의 사회면에, 폐업 현수막이 나붙은 막판의 매장에 머문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일에 대해 혹은 죽는 일에 대해 끊임없이 천착하고 있는 시인의 시를 읽으며 시인은 다른 곳도 아닌 이 땅에서 어느 순간도 빠짐없이 늘 사람답게 살고 싶다고 아우성치는 거라는 걸 느꼈다. 사람답게 살 수 있다면 그 것이 무엇이든 할 것이라고 용기를 내보이는 것이다.


  시집의 전편에 흐르고 있는 죽음. “죽음을 들여다보지 않으면 아무 것도 되지 않는다” 그래서 시인이 찾아가서 휴식처럼 수혈을 받고 싶어 하는 곳은 “햇빛이 기름띠처럼 떠다니는 나의 성지” 무덤들 사이다. 죽음이 없다면 삶조차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고, 혹은 “아무 것이나 다” 될 수 있게 하고. 그래서 죽음이 주는 삶을 검은 젖이라 표현하며, 그 검은 젖이야말로 유일한 영양분임을 자각하고 있는 시인은 열심히 그것도 아주 열심히 삶을 살고 싶은 것이다.( 「검은 젖」)


 시인의 가슴에도 나이가 있을까. “요즘 나는 노안이 왔다” (「한마음」)  45세는 “깎지 못할 형량”일뿐 아니라 생이라는 수감생활 동안 더 늘어날 수밖에 없는 숫자다. 마흔이면 “누가 나를 완전히 포기할 것만 같은 나이”(「현기증」)에서 보듯 시인은 시를 쓰는 동안 먹어버린 나이에 대해 비명을 지른다. 그것이 즐거운 비명 같지는 않다. 시인의 이런 비명소리를 듣는 독자인 나는 시인이 아직 청춘이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해버린다. 요즘 세상에 마흔이란 나이는 청춘이다.


  청춘인 시인은 자꾸만 죽음을 이야기 한다. 산다는 것은 죽음을 들여다보려고 가는 길이다. 한시라도 죽음을 잊지 않기 위해 고향인 무덤을 향해 걸어가는 길이다. “밤이 깊으면” “모든 것을 포기한 생”도 벌떡벌떡 일어날 수 있는 것은 결국 인생은 “깨지는 순간도”(「밤이 깊으면」) 있다는 거를 인식하며 살아가는 거. 그래서 시인의 하루는 힘겹고 두려울 수밖에 없다. 죽음은 주변에 언제나 도사리고 있다. 차도에서든 발밑에서든. 전태일이나 체 게바라는 흠모의 대상이지만 유영철이나 강호순은 분노와 절망을 주는 존재다. 우리 모두 그 사이에 있으면서 죽이는 존재도 아니고 죽임 당할 혁명적인 인사도 아니기에 그냥 열심히 살아내는 것, 열심히.


 정신없이 살다보면 이유 없이 울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럴 때조차 달려오는 미래는 우리에게 여전히 무언가를 요구하고 있다.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는 현실. 누가 이렇게 될 줄 알았나. 될 수만 있다면 제대로 사람대접 받는 게 더 좋지.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니 사람 노릇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닌 가. 그래서 이 세상엔 매일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유령으로 떠돈다. 유령은 이미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이런 유령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매연을 공기라고 치부할 만큼 당연한 이 시절에 사람답게 살라고 윽박지르지만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일은 응용문제를 푸는 일 같이 아득하다.


 우리 모두가 알면서도 애써 외면하고 있는 ‘불편한 진실’들을 또박또박 지켜보고 그 것을 찾아가는 시인의 모습은 비틀거리는 오솔길처럼 애처롭지만, 그 길마저 없으면 헤매게 될 수많은 천국의 원주민들에게는 햇빛과도 같은 이끔이 아닐런지. 해서 아픈 천국을 곱씹으며 하루를 살아가는 일의 장대함을 느껴보는 나도 “아픈 천국”의 원주민이 되고 싶은가 보다.



t******e 2012.03.16. 신고 공감 6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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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 하나 달랑 들고 참전중이었으니. / 아픈 천국의 퀭한 원주민이었으니.” - 이영광, 아픈 천국
"“목숨 하나 달랑 들고 참전중이었으니. / 아픈 천국의 퀭한 원주민이었으니.” - 이영광, 아픈 천국" 내용보기
그의 이름은 백남기이다. 그는 1947년 전남 보성군에서 태어났다. 1968년 중앙대학교 행정학과에 입학했다. 법대 학생회장을 지냈고 군복무를 바쳤다. 1971년 위수령 시 시위 혐의로 1차 제적되었다. 1973년 유신 철폐 시위를 주도했다. 1975년 전국대학생연맹에 가입하여 2차로 제적되었다. 1980년 3월 복교하였으나 1980년 서울의 봄 때 계엄군에 의해 다시 체포되었고 퇴학당했
"“목숨 하나 달랑 들고 참전중이었으니. / 아픈 천국의 퀭한 원주민이었으니.” - 이영광, 아픈 천국" 내용보기

  그의 이름은 백남기이다. 그는 1947년 전남 보성군에서 태어났다. 1968년 중앙대학교 행정학과에 입학했다. 법대 학생회장을 지냈고 군복무를 바쳤다. 1971년 위수령 시 시위 혐의로 1차 제적되었다. 1973년 유신 철폐 시위를 주도했다. 1975년 전국대학생연맹에 가입하여 2차로 제적되었다. 1980년 3월 복교하였으나 1980년 서울의 봄 때 계엄군에 의해 다시 체포되었고 퇴학당했다.


  “목숨 하나 달랑 들고 참전중이었으니. / 아픈 천국의 퀭한 원주민이었으니.” - <아픈 천국> 중


  1980년 계엄 포고령 위반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고 1981년 3.1절 특사로 가석방 되었다. 1981년 고향 보성으로 귀향하여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1986년 카톨릭농민회에 가입하였다. 1989년에서 1991년까지 카톨릭농민회 전남연합회장으로 활동했고, 1992년과 1993년 카톨릭농민회 전국 부회장으로 활동했다. 1992년 우리밀살리기운동을 시작하였다. 그 사이 결혼을 하였고 1남 2녀를 두었다.
 

   대(大)


  대한민국이여, 대가리에 쓴 그 대(大)자는
  음경확대수술 후유증 앓는 곪은 귀두 같구나
  커질 수만 있다면 문드러져도 좋아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죽어도 좋아
  반쯤 얼어터진 봄이 다 가도록
  사람 죽여 원혼 만들고
  전쟁과는 전쟁할 줄 모르는 공포의
  대한민국이여, 함께는 사실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
  그것이 절망이겠지
  무수히 적을 물리쳐도 예부터
  전쟁을 무지른 용사는 없었는데
  대한민국이여, 겨우겨우 키운 좆 움켜쥐고
  사창가로 쳐들어가는 취한 수컷 같구나


  2015년 11월 14일, 농민 백남기는 민중총궐기대회 행사 중 폭력 경찰의 살인적인 물대포 살수에 의해 쓰러졌고 혼수상태에 빠졌다. 그는 귀향 후 삼십여 년 농촌과 농민을 살리는 일에 헌신한 사람이었다. 2015년 11월 24일, 그가 상경한 것은 쌀 수매가의 정상화 (박근혜는 대통령 후보자 시절 쌀 80kg 한 가마를 21만원에 수매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지키지 않았다) 그리고 TPP 가입 등에 의한 농산물 수입 전면개방 반대를 위해서였다.


  


  시를 쓰면서 사나워졌습니다
  타협을 몰라서 그렇습니다
  아니, 타협으로 숱한 밤을 새워서 그렇습니다


  약한 자는 나날이 악해져 핏발 선 눈을 하고
  더 약한 것들을 찾아다니는 세월이라지요


  날마다 지기 때문에 심장에서 무럭무럭 자라온 한 뼘,
  칼이 무섭습니다


  지난 달 12일 국회에서 열린 백남기농민 청문회에서 강신명 전 경찰청장은 “사람이 다쳤거나 사망했다고 해서 무조건 사과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당시 살수차를 운용한 경찰관들의 신변 보호를 위해 청문회장에는 가림막이 설치되었다. 살수 운용 매뉴얼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고, 실전 경험이 없는 살수차 요원을 무리하게 동원하여 과잉 진압이 이루어졌으며, 이후 사후 조치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청문회에서 있었다.


  “사람이 아니라고 여겨서 / 죽였을 것이다 / 사람입니다, 밝히지 못하고 / 죽었을 것이다” - <유령 3> 중


  농민 백남기에게 물대포를 살수한 인물 중 한 명이 지방 경찰서에서 근무 중 길 잃은 아이를 집에 데려다준 선행으로 기사에 이름을 올렸다. 얼마 전 새로운 경찰청장이 자리에 올랐다. 그는 강원지방경찰청에서 근무하고 있을 때 음주 운전을 하였고, 당시 경찰관 신분을 숨겨 불이익을 피했다. 농민 백남기는 2016년 9월 25일, 폭력적인 공권력에 의해 쓰러지고 317일째 되는 날, 영면에 들었다.


  2016년 9월 25일, 검찰은 시신에 대한 부검을 원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고, 경찰은 얼마 전부터 그가 입원해 있는 서울대병원에 병력을 배치하였다. 지금 병원에서는 시민단체와 경찰이 대치중이다.

 

이영광 / 아픈 천국 / 창비 / 133쪽 / 2010 (2010)

YES마니아 : 플래티넘 k******i 2016.09.2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