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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대할 때 마다 가끔은 정말 제목이 기발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어떤 경우에는 도대체 왜 이런 제목을 붙였는지 도저히 파악이 안되는 경우도 있지만, 어떤 경우에는 책을 다 읽은 후에 '아 , 이런거였구나!' 하고 감탄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있다. 2010년도 이효석 문학상 수상작품집의 수상작인 이기호의 '밀수록 다시 가까워지는'은 전형적인 후자의 경우에 속한다. 집안의 많은 기대에도 불구하고 노총각 신세를 벗어나지 못한 채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삼촌의 전기적 이야기인 작품은 1980년대 최고의 히트작이었던 기아자동차의 프라이드와 함께 한다. 삼촌의 삶은 프라이드의 삶이었고, 프라이드는 삼촌과 동의어였다. 시골 출신의 삼촌이 결혼을 못한 노총각으로 늙어가는 것은 오로지 차가 없기 때문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으로 인해 할머니와 고모의 쌈지돈을 추렴해 그 당시 한참 유행이던 프라이드를 한 대 뽑아준다. 시골 출신의 별볼일 없는 삼촌이 오너 드라이브가 되는 순간이었다. 차만 있으면 서울 여자들이 졸졸 따르고 결혼하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은 시골에 계신 할머니 뿐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프라이드와 삼촌의 기나긴 동거가 시작된다. 잠시 서울의 공장에 다녔고, 그곳에서 잠시 어느 여자와 염분이 있을뻔 했지만 프라이드의 등장이후 삼촌은 역마살에 걸린 사람마냥으로 전국 팔도를 떠돌아 다니게 된다. 그의 분신인 프라이드와 함께. 일정한 거주지도 없이 그의 애마 프라이드와 함께 한 삶. 어쩌다 명절이 되어 시골에도 내려오는 날에도 어김없이 삼촌은 집에는 들어오지 않고 그의 프라이드안에서 잠을 청하곤 했다. 삼촌의 프라이드는 삼촌과 이음동의어 였다. 그렇게 아끼던 삼촌의 프라이드가 어느 날 집앞에 나타났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안에 삼촌이 없었다는 것이다. 단 한순간도 삼촌과 떨어져 본적이 없던 그의 애마가 혼자 내버려 진것이다. 삼촌에게 무슨일이 생긴것일까? 삼촌과 심하게 다투기라도 한 것일까? 평생을 같이 살아온 부부처럼 그 들은 뗄레야 뗄수 없는 존재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삼촌이 그렇게 애지중지 하던 프라이드를 버리고 사라진 것이다. 그 새 딴 살림이라도 차린 것일까? 요즘 나오는 근사하게 생긴 차와 눈이라도 맞은 것일까? 호기심에 며칠을 기다리던 조카는 드디어 삼촌의 프라이드를 운전하게 된다. 운전이라는 것이 처음에 면허를 따게 되면 안하고는 못배기게 만드는 마약과 같은 힘이 있지 않은가? 조카는 그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프라이드에 올라타게 된다. 그런데, 얼마 안가서 그 프라이드의 치명적인 문제점을 알게 된다. 다름 아닌 후진이 안된다는 것이다. 앞만보고 달려야하는 자동차. 후진이 되지 않는 자동차.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되는 것이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후진 이라는 것이 그다지 운전하는데 있어서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기능인 것도 아니었다. 후진은 오로지 주차할 때에만 필요한 기능이다. 주차할 때에도 처음에만 조금 어색하지 차에서 내려서 살살 밀면 그다지 어렵지도 않은 것이고, 조금만 단련이 되면 굳이 내리지 않더라도 문만 열고서 아주 자연스럽게 할수있는 일이다. 조카는 이제 미는데 아주 익숙해 졌다. 처음처럼 여자 앞에서 당황해하지도 않고, 다른 이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미련한 행동도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과연 삼촌은 도대체 어디로 간것일까? 그리고, 이 차는 왜 후진이 안되는 것일까? 후진이 안되는 것의 비밀은 우연히 삼촌이 남긴 기록에서 단서를 발견하게 된다. 삼촌의 단골집인 다시 말해 프라이드의 주치의를 찾은 것이다. 프라이드의 전속 주치의에 의해 밝혀진 비밀. 후진이 안되는 반쪽짜리 차가 되게 된 비밀은 무엇일까? 프라이드를 앞만 보고 달리게 만든것은 다른 사람도 아닌, 바로 삼촌이었다. 주치의에 의해 밝혀진 그 비밀은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왜 삼촌은 그가 그토록 아끼던 차를 반쪽짜리 차로 만들어야 했을까? 출생의 비밀은 어느날 우연히 고모(다시 말해 삼촌의 여동생)에 의해 밝혀지게 되는데, 그게 또 복잡한 여자 관계가 얽히고 섥혀 있고, 거기에는 고모도 한 몫 제대로 하게 된다. 정확히 말하면 한 때 고모부 였던 , 그리고 그 전에는 잘 나가는 경찰 이었던 사람이 반 쪽 짜리 프라이드가 되게 된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하게 된 것이다. 프라이드에 얽힌 비밀을 알게 된 조카는 그 순간부터 삼촌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후진을 할 때마다, 다시 말해서 프라이드를 밀 때마다 조카는 멀게만 느껴졌던 삼촌에게 한 발씩 다가가는 자신을 느끼게 된다. 점점 더 삼촌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밀수록 다시 가까워지는.... 이 제목은 정말이지 기가 막히다. 차를 밀수록 삼촌과 가까워 지는 것일수도 있고, 자신에게서 멀리 밀어 버릴수록 다시 나에게 점점 가까워질수도 있다는 의미일수있다. 제목만 가지고 이야기가 많이 길어졌다. 이기호의 소설은 그의 거침없는 입담이 그대로 녹아 있기에 읽는 이로 하여금, 많은 상상을 하게한다. 두번 째 작품 '원주통신'에서 이기호의 구라는 한층더 업그레이드된다. 자신의 고향인 원주. 그 중에서도 박경리 선생과 이웃에 산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토지'의 후계자가 된 저자. 토지라는 이름의 룸살롱을 개업한 친구에게 '토지' 사용권을 부탁받는 저자. 그의 상상과 구라는 읽는이로 하여금 유쾌하게 속는 즐거움을 준다. 그게 이기호식 소설의 매력일 것이다. 심사위원들의 말대로 이야기에 충실한 그의 작품이 나는 좋다.
이 작품집의 공통점은 모든 단편들이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별볼일 없는 강사의 눈으로 본 이주노동자의 문제를 지하철이라는 배경으로 독특하게 그린 김미월의 중국어 수업. 이젠 너무도 당연시된 이주 노동자들의 아픔을 색다른 방법으로 이야기하는 작가의 이야기가 흥미롭다.
이야기에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작가 김중혁 또한 예외는 아니다. 제목도 독특한 그의작품 c1+y=:[8]: 도시와 정글. 그 사이의 매개체로 등장하는 스케이드 보드. 도시속에 정글을 접목시키고자 하는 화자. 스케이드 보드를 타고 도시의 골목을 달린다. 도시의 골목은 스케이드 보드를 타기에 아무런 불편함이 없다. 스케이드 보드를 타면서 단 한순간도 신호에 걸리거나 어떠한 장애물에 간섭을 받은 적도없다. 스케이드 보드를 타고 신나게 달리다 보면 어느 덧 막다른 길을 만나게 된다. 그 막다른 길 앞에는 거대한 바다가 있다. 화자가 꿈꾸는 정글 과 같은 도시의 모습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가 그런 모습이라면 얼마나 낭만적이고 행복할까? 갑갑하기만 한 이 도시에 그런 매력적인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면 숨쉬기가 조금은 편할지도 모른다.
김숨의 쥐는 그가 왜 매력적인 소설가인지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만든 작품이었다. 집에 나타난 쥐를 잡기 펼쳐지는 소란. 정말 별 것 아닌 소재를 정말인 것 처럼 풀어내는 작가의 구라도 꽤나 매력적이고, 조만간에는 꽤 큰 문학상의 맨 앞에 그녀의 이름이 놓여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장은진의 '나쁜이웃' 은 단절에 대한 이야기다. 단절을 이야기 하면서 저자는 지나친 간섭을 먼저 이야기 한다. 아파트라는 지극히 현대적이고 과학적인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웃들과의 문제. 사람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관심도 없는 우리들은 단절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그 단절을 조금 극복하고자 하면 그게 간섭이 되어버린다. 간섭이 되는 순간 대다수의 모든 이들에게 단절이라는 아픔을 맛보게 된다. 하지만, 간섭 혹은 관심이라는 것도 단절의 변형된 모습일지도 모른다. 사람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는 척 하는게 나쁜이웃일까? 관심을 받기 위해 다른 이를 단절시키도록 만드는 것이 나쁜이웃일까?
정영문의 '아무것도 아니 것을 위한'은 역시나 정영문 다운 작품이었다. 이 책의 심사위원의 말대로 소설의 본령이 '이야기'라고 한다면 이 작품은 절대로 소설의 본령에 충실하지 않은 작품이다. 한 문장이 끝도 없이 이어지는 것은 둘째치고, 도대체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도저히 감을 잡을 수가 없다. 작품의 화자인 작가의 끝도 없는 독백. 어쩔수 없는 관념적이 작가라는 독백이 그나마 저자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게 만든 작품이었다. 어쩌면 이상문학상에 더 어울리는 작품같다.
이 책에서 처음만난 편혜영은 꽤 충격적이었다. '통조림'이라는 지극히 평범한 주제에서 작가의 이야기는 어마어마한 날개를 달기 시작한다. 그의 상상은 통조림이라는 지극히 평범한 객관성을 너머, 그 속에 숨어있는 은밀함을 이야기한다. 밀폐된 공간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통조림의 크기나 내용물 만큼이나 다양하다. 전부다 똑같을 것만 같은 통조림의 내용물. 그 과정이 믿음직 스럽지 않기에, 유통기한이 길다는 것이 꺼림직하기에 통조림에 대한 신뢰는 그다지 크지 않다. 그렇기에 그에대한 실망감또한 반비례 한다. 믿지는 않지만 배신감 또한 크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한 순간에 멀리 차버리는 것또한 쉽지 않다. 어느 순간 우리는 통조림속에 갇혀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통조림 속에 갇히는 것이 아니다. 통조림 속에 내 자신을 가두고 싶어 하는 것이다. 통조림 속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많은 것들이 들어갈 수 있다. 정확히 말하면 밀폐될 수 있다. 깡통이 진공처리되어 뚜껑이 밀폐되는 순간 우리는 그 속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아무도 모른다. 누군가에 의해 그 밀실함이 깨어지기 전에는.... 그 녀의 다른 작품이 꽤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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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이야기와 다양한 말투, 또 너무 너무 다른 각각의 사람들.. 여러 작가의 작품이 모여 있는 작품집을 읽을 때면.. 그 다채로움과 뚜렷한 개성감에 매번 놀란다. 각각의 작품에 대한 여운조차도 느낄 틈을 주지 않는 짧지만 매우 강렬한 느낌..
요번 수상집은 내가 요근래 관심갖게 된 장은진 작가 때문에 읽으려고 구입하긴 했었지만, 이번 책에서 주목하게 된 건, 김미월 작가와 김숨 작가..!! 뭐.. 장은진 작가도 당연히~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지만, 이번 수상집에서는.. 수상작가인 이기호 작가의 작품도 좋았지만, 김미월 작가의 [중국어 수업]이 자꾸 마음을 끌었다. 그리고 선득하지만 자극적이였던 김숨 작가의 [쥐]도 꽤.. 인상적이였다. 뭐라~ 주저리 주저리 설명할 순 없지만, 순간 멈짓~!하는 그 무언가가 있었다.
p.230 '썩을 놈의 노인네! 날 위해 좀 죽어 줘야겠어. 이젠 늙어서 살날도 얼마 안 남았잖아. 여기 모인 사람들 앞에서 개망신당할 순 없다고. 내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데. 신뢰와 정의를 쌓기 위해서 어떻게……' - 장은진 [나쁜 이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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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호, 밀수록 다시 가까워지는 할머니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옛 정서. 쪼글쪼글한 할머니의 가슴을 만지며 앞니 빠진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었을 손주가 채록하듯 가정사를 기록했다. 그것은 그 자체로 한국 현대사, 즉 역사가 된다. 삼촌의 숨겨진 사랑이야기는 이제는 단종된 프라이드처럼 구닥다리일 수도 있으나, 후진은 하지 못하고 전진만 하는 자동차처럼 순정적이라 애닯다. 밝혀진 사실은 다소 신파적이고 상투적일 수 있으나 그것마저 애상적으로 만드는 것이 바로 차곡차곡 쌓아올린 이야기의 힘. 이기호, 원주통신 쓸쓸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이야기가 웃음으로 승화됐다. 이런 짧고 가벼운 콩트 같은 글, 웃으면서도 여운이 짙다. 그때 내가 가진 전 재산이라곤 엊그제 어머니 콩나물 심부름 하고 남은 이백 원이 전부였다. 그러니 그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던 것이었다…… 아무리 친구가 술을 산다지만, 그래도 내 나이 스물일곱인데…… 일곱 살짜리들도 친구를 만날 땐 이백 원을 들고 나가지 않을 텐데, 하는…… (65) 김미월, 중국어 수업 2010 젊은 작가상 수상작 작품집에서 읽었던 작품이다. 김숨, 쥐 언젠가부터 김숨의 작품에 눈이 간다. 이 작가의 프로필 사진과 자신의 작품을 읽는 이 작가의 목소리를 들은 후부터였을 것이다. 감정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얼굴과 역시나 감정이라는 게 묻어나지 않은 목소리. 나른하다고도 할 수 없고, 지루나 권태와는 거리가 먼, 슬프다고도 할 수 없고 분노한다고도 할 수 없는 그런 표정과 목소리. 대성통곡은 한 번도 안 해봤을 것 같은, 울음도 속으로 삭이며 그저 소리없이 눈물을 뚝뚝 흘릴 것만 같은. 나와 동갑이라는 이 작가에게서 내가 발견한 건 무엇이었을까? 작품은 시종일관불길하다. 작품 전체가 불길함을 감지하고 있는데 그것이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인지 알 수 없기에 불안함은 극에 달한다. 우리 일상을 쥐처럼 야금야금 좀먹고 있는 건 무엇일까? 일상에 균열을 일으키는 어떤 것들. 그들이 신발장 안의 신발들을 죄다 밖으로 꺼내 놓는 것을, 망치로 테이블을 내리쳐 그 위에 깐 유이를 깨뜨리는 것을, 티브이 받침대 서랍을 망가뜨리는 것을, 그녀는 망연자실 바라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당장 꼬리조차 보이지 않는 쥐보다는, 엉망이 된 집을 치우는 것을 더 걱정해야 할 판이었다. 그들은 쥐를 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녀의 집과 살림살이를 부수어 놓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만 같았다. 그녀는 이 집을 마련하느라 은행에서 얻은, 결코 적지 않은 융자금을 떠올렸다. 통장에서는 다달이 적지 않은 이자가 자동으로 빠져나가고 있었다(145). 김중혁, c1+y=:[8]: 글쎄… ‘별로’라는 느낌도 없지만 딱히 ‘좋다’싶지도 않다. 김중혁스럽게 재치 있고 발랄한데, 앞으로도 이 작품이 이 작가의 대표작이 될 것 같지는 않다. 김중혁의 더 좋은 작품을 이미 봐버렸기 때문이라고 좋게 생각하자. c1+y=:[8]:는 그해 가을 발표한 내 논문의 제목이다. 상교동의 골목에서 발견한 낙서였는데 ‘시티는 스케이트보드’라는 뜻을 재미있게 표현한 것이다.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있는 두 개의 발, 도시와 스케이트보드 사이에 있는 ‘=’의 속도감이 보기 좋았다(177). 이장욱, 변희봉 이 작품 작년에 역시 2010 젊은 작가상 수상작 작품집에서 읽었었다. 장은진, 나쁜 이웃 최근에 관심은 갖게 된 작가. 내 기억이 맞다면 처음으로 읽은 이 작가의 작품인데, 딱히 인상적이지는 않았다. 이 작품을 읽고 이 작가의 작품을 좀더 읽어보고 싶어서 『앨리스의 생활방식』을 바로 읽었는데, 뭐랄까? 단편과 장편이라는 차이에도 불구하고 여러모로 유사하다. 계단식 아파트의 이웃 간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다만 그 이웃이 404호인가 305호인가의 차이만 있다. 이 작가의 특징을 찾아보자면, 뭐랄까? ‘생활자’의 감성이 보인다. 그러니깐…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모델 하우스가 아니라 정말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을 보고 있는 느낌? 그게 뭔데, 라고 한다면 구체적으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 정영문, 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한 문학이나 소설에 대한 이 작가의 집요한 천착은 끝이 없다. 작품의 제목은 달라지지만 작품에서다루는 것들은 한결같다. 이 작가의 프로필 사진을 보면, 작품은 작가를 닮는 게 아닐까 싶어진다. (전략) 어쩌면 관념은 사물의 핵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물을 둘러싸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다시 한 번 이야기로서의 소설이 아니라 관념에 대해 말하는 소설을 생각했고, 어느 날에는 맥없이 방귀를 뀌며, 내가 이번 여름 벌레를 몇 마리 잡고, 방귀를 뀌기도 했지만, 그리고 복숭아와 자두와 포도를 많이 먹긴 했지만, 하루를 복숭아와 자두와 포도만 먹으며 보내지는 않았지만, 사실은 이 말할 수 없이 시시한 이야기가 어느 날 복숭아 하나를 조용히 먹고 난 후, 그 일과는 상관없이, 하지만 입안에서 느껴지는 복숭아 맛의 희미한 어떤 여운처럼 이어지는 생각들 속에서 하게 된, 지루하지만 조용하지 않은, 다소 수선스러운 체념에 빠져 가고 있는 누군가에 대한, 처절한 심정은 아니지만 처철한 모습으로 벌레나 잡으며, 방귀나 뀌며, 방귀에 대해, 그리고 방귀를 뀌고 난 후 드는 생각들에 잠기며 그 이상으로 할 만한 일이 없다고 생각하며 여름을 보내는, 스스로 자초한 고립 속에 점점 깊이 빠져들며, 홀로 조용히 늙어 가는 초로의 남자에 대한, 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한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한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를, 어떤 절망에 관한, 완전히 관념은 아니지만 어떤 관념에 가까운 이야기를 쓰고자 한 순간에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264-265). 정용준, 벽 2011 젊은 작가상 수상작 작품집에서 ‘떠떠떠, 떠’로 처음 접한 작가. 이 작품집을 통해 두 번째로 만나게 됐는데, 이 작가가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이라든가 사회를 보는 작가적 시선이나 이런 건 마음에 드는데, 글쎄… 나는 잘 모르겠다. 적어도 내겐 큰 인상을 주진 못했다. 조건이 거의 완벽에 가까운 남자가 있다고 마음이 동해야만 하는 건 아니니깐. 이런 건 그냥… 쉽게 말해 취향의 차이라고 보면 되겠다. 그리고 가끔, 그래서는 안 되지만 도망가려는 놈이 있어. 그래서 왼쪽 발목은 딱 사 분의 일만 자를 거야. 걱정 마. 일주일만 지나면 걸어다닐 수 있어. 좀 절기는 하겠지만. 걱정 마. 여기 일은 뛸 필요가 없거든. 느긋하게 일하기에 더없이 좋은 다리를 가지게 되는 거지. 사실, 진짜 우리도 피곤해. 너희들에게 일자리 주지. 월급 주지. 인간 만들어 주지. 암튼. 끝까지 살아남아서 훌륭한 일꾼이 되길. 이상! (280) 극단의 폭력과 모멸은 인간으로 하여금 삶의 의미를 앗아간다. 죽음이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곳에서는 죽는다는 것이 의미를 갖지 못한다. 염전에서의 죽음은 더 이상 특별하지 않다. 죽음이 너무도 사소하고 끊임없이 반복되기 때문이다(283). 냉동실에 무거운 겨울코트처럼 걸려 있던 사람들, 아니 도저히 사람이라 부를 수 없을 만큼 비현실적으로 보였던 냉동된 하얀 물체들. (중략) 지금, 냉동실은 텅 비어 있다. 반장 5의 말은 사실이었다. 딱딱하게 얼어 있는 손목은 망치질 한 번에 고등어 몸통처럼 쉽게 떨어져 나갔다. 달이 뜨지 않은 그믐밤, 냉동된 시체의 몸에 벽돌을 묶어 바다에 하나씩 퐁당퐁당 던질 때, 반장 21은 주문처럼 같은 말을 되뇌었다. 이것은, 사람이 아니라. 이것은, 사람이 아니다. 이것은…… 사람이 아니다(294). 윤대녕, 풀밭 위의 점심 윤대녕의 기존 색깔이랄까, 윤대녕 하면 떠오르는 어떤 것들이 그다지 짙게 드러나지 않는다. 하다만 이야기처럼 뭔가 아쉽다. 편혜영, 통조림 공장 2010 젊은 작가상 수상집에 실린 ‘저녁의 구애’에서도 역시 통조림은 중요한 상징 기호로 사용됐었다. 작품만 두고 보자면 ‘저녁의 구애’ 쪽이 훨씬 낫다. 전반적으로(분위기나 문체 등등) 존 스타인벡의 <통조림공장 골목>을 연상시킨다. [총평] 전반적으로 이 작품들이 2009년과 2010년 사이에 나온 수많은 단편들 중 가장 우수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새로운 작가나 새로운 작품들을 접하게 되었다는 데 의의를 둘 수는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아, 이거다!’ 무릎을 칠 만한 작품은 솔직히 없다. 이미 평단이나 독자들의 기대를 받고 있는 몇몇 작가들의 경우에도, 그들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는 없을 듯하다. 이기호, 김중혁, 김숨, 정영문, 편혜영, 이장욱, 장은진, 김미월, 정용준, 윤대녕... 포진한 작가들만 보면 이보다 화려할 수 없는데, 이 책 자체는 극히 평범하다. 어떤 강렬한 인상도 주지 못해 아쉽다. 다만 ‘이기호’라는 작가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고 이 작가의 작품을 찾아 읽어보게 됐다는 게, 이 작품집을 통해 얻은 수확(?)이라면 수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