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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량이 부족함을 느끼면서도 좀처럼 시간을 내기 어려운 요즘.
게다가 술술 넘어가는 소설도 아닌 어려운 인문서에는 더욱 손이 가지 않기 마련이다.
몇달 남지않은 2010년 안에 내가 인문서를 얼마나 더 읽을지는 솔직히 나도 모르겠다. 어쩌면 한권도 안 읽을수도 있다.
안 그래도 먹고사느라 힘들고 머리아픈데 쉬는 시간에까지 머리아픈 책을 읽고 싶지 않은 것이 요즘 사람들 대부분의 마음이 아니겠나. 나도 마찬가지다.
인문서고 인문학이고 관심없다. 책이란 그저 여가시간을 재미있게 보내기 위한 것이다. 하는 사람은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고 본다.
하지만 정신없이 살다가도 이래도 되나 하는 불안감이 자꾸 고개를 쳐드는 사람. 게다가 맘편하게 공부하는 분들, 아니면 나보다 훨씬 부지런해서 일도 열심히 하는데 공부까지 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어쩐지 주눅이 들고 그분들이 줄줄 말하는 어려운 책들이 뭔지 몰라서 얼굴이 붉어질 때가 있는 사람. 그러니까 나 같은 사람은 한번쯤 읽어볼만한 책이 바로 [하버드 인문학 서재]다.
나보다 훨씬 잘난 직장상사나, 친구들이 어려운 책을 줄줄 주워섬길 때 웃으면서 고개만 끄덕인 적이 있지 않나. '나도 학교다닐 땐 공부 꽤나 잘했는데, 왜 지금은 이렇게 무식해졌나' 이런 생각 해본적 있지 않나.
그래서 그냥 이거 한권 읽는 것으로도 어느정도 자기방어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일단 사보기로 했다.
결과적으로는 내 선택이 어느 정도 옳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두어 번 읽는 것으로도 누가 어려운 책들 주워섬길 때 끼어들수는 있을 거 같은 자신감이 생긴 거 같다. (내가 모르는 책 말하고 있을 땐 여기서 읽은 비슷한 분야의 책에 대해 말하면 오히려 상대가 기죽어서 더 이상 말을 안 할 때도 많다 ㅋㅋ)
서울대 선정 100선 이런 것보단 솔직히 하버드 선정 50선이 더 있어보이는 것도 사실이고 말이다.
무엇보다 이 책을 사기 잘했다고 생각한 이유는, 그냥 각 책들이 무슨 내용이다, 라고 똑똑한 교수님들이 써놓은 다른 책들과 달리 하버드 인문학 서재는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 하버드 클래식을 읽고 어떻게 느꼈는지, 그리고 50권의 하버드 클래식 중에서 어떤 책을 내가 왜 읽으려고 했는지 쓴 점이 마음에 들었다.
인문서를 많이 읽을 자신이 없어서 산 책이지만, 오히려 저자가 난 이래서 이 책을 읽었고 이 점이 좋았다 하고 쓴 것을 보고 나도 한번 읽어볼까 하는 마음도 들었고 말이다.
별로 안 좋아할 거 같긴 하지만, 이번 추석에 조카한테 한권 사다줄까 생각 중이다. 어려운 책 읽기 싫지? 이거라도 읽어봐~ 하면서 말이다. 물론 이모는 여기 있는 책 다 읽었단다, 라고 말해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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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하버드다. 세계초일류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어린시절부터 맞춤교육을 받고 특목고를 거쳐 아이비리그 최정상의 학교 하버드로 보내는 것이 부모들의 소원이자 출세와 부의 예비상징으로 비쳐지는 하버드, <정의란 무엇인가>로 하루아침에 비소설분야로는 보기 드물게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른 마이클 샌델 역시 하버드 교수이다. 그리고 세계적인 석학을 비롯한 각계각층의 리더들이 졸업한 학교 바로 하버드 하버드하는 하버드이다. 그러면 한번쯤은 왜 세상사람들이 하버드라고 하는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성이 있을 것이다. 오랜전통, 뛰어난 교수진, 우수한 재정지원등 여러가지 이유를 쉽게 찾을 수 있지만 요즘 왜만한 대학교육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밀려나기 쉽상이다. 그것보다 다른 견인차역활을 하는 무엇인가가 하버드에 있기 때문에 세상은 하버드를 주목하는 것일게이다.
아마도 어쩌면 <하버드 인문학 서재>가 그 해답을 제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군주론],[수상록], [아이네이스],[국부론]등 50여편의 서양고전을 한데 묶어 출간한 하버드 클래식 시리즈는 한번쯤은 누구나 들어보거나 읽어보았던 전형적인 서양고전들이다. 마치 우리에게 [연암집],[한중록],[북학의]등의 고전에서 볼 수 있듯이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쉽게 접근할 수 없거나 이해하기 난해한 고전들의 목록자체만 접하는 것으로도 일반적인 독자들에겐 그저 부담으로 와닿을 수 밖에 없는 책들이 즐비하다. 솔직히 이중 과연 몇권의 책이나 읽어나 봤을까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이다. 그나마 한때 인문학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접근으로 인해 인문학에 대한 세인들의 관심이 증폭되어 학계나 출판계 전반에 걸쳐 고무된 적이 있다. 물론 지금도 뜻있는 학자들이나 출판계에서는 꾸준하게 인문학 출간에 매진하고 있다는 점이 그나마 위안거리이지만 아직도 선진산업국에 비하면 갈길이 멀기만 한것 역시 사실이다.
<하버드 인문학 서재>는 하버드 클래식의 50여권의 고전에 대한 저자의 리뷰중심으로 1년이라는 세월에 걸쳐 독서계획에 의해 읽어나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 살아있는 독서기록들로 구성되어 있는 보기 드문 책이다. 그때 그때 읽었던 책들을 정리한것이 아니라 컬럼비아대학의 교양수업을 통해 고전의 참맛을 일깨워 주었던 데이비드 덴비의 <위대한 책들과의 만남>처럼 자신이 직접 읽고 느낀 바를 간략하게나마 정리해서 같은 책을 읽었던 독자라면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을 것이다. 그리고 비단 접해보지 못했더라도 각 고전에 대한 리뷰와 그 책을 읽게되는 동기 및 주변여건등의 설명만 미루어 짐작하더라도 충분히 가슴에 와닿는 표현들과 책에 대한 느낌을 가져오게 한다. 다만 접해보질 못했던 책들이 너무 많아 리뷰자체가 어렵기도 하고 구름잡는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 고전을 이해하는 폭을 넓혀주기엔 부족함이 없다.
인문학에 지속적인 관심과 더불어 왜 인문학을 제대로 알아야 하는 가에 대한 많은 생각을 갖게 한다. 하버드라는 대학에 들어가야 하는 이유가 출세와 부의 상징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제대로 된 학문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여길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인것 같다. 저자처럼 인문학이라는 바다속에서 한 1년쯤은 허우적 거려 보는 것 또한 그 다지 나쁘지 않을것 같다는 생각만 간절할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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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인문학 서재>라는 책에는, ‘5피트 책꽂이(five-foot shelf)’라고도 불린다는 총51권의 ‘하버드 클래식’을, 글쓴이가 1년 동안 쉬지 않고 읽어나가는 이야기가 담겨 있답니다.
당연히 고전을 소개해 주는 ‘보통 책’이겠거니 했죠. 모진 세월에도 고전의 굳건함, 그 찬란함은 변함없더라. 그 많은 고전, 그 중에서도 하버드 클래식의 귀중함은 이루 말로 전할 수 없더라. 난 1년 동안 정말 열심히 읽었다. 읽고 나니 정말 뭔가 다르긴 다르더라. 그러니까 용기 내어 시작해보지 않겠느냐 등의 ‘보통 생각’이 담긴 ‘보통 책’ 말이에요.
그런데 <하버드 인문학 서재>는 안타깝게도(?) ‘보통 책’이 아니랍니다. 고전에 대한 소개, 감동보다는 ‘내가 이 책들을 왜 읽으려 했을까’라는 물음이 곳곳에 등장하거든요(그러면서 왜 읽었지?) 흠... 그건 아마 글쓴이가 발간된 지 자그마치 100년이나 지난 ‘하버드 클래식’을 읽었기 때문 아닐까요? 그 목록이라면 지금도 재발간, 재번역된 책들이 많은데...
‘인간이 심리적 위기에 닥쳤을 때, 정신적 힘을 부여해주는 책’이라는 클래식(Classic), 즉 고전(古典)의 굳건함, 찬란함, 귀중함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그걸 알면서도 읽지 않는, 혹은 읽지 못하는 핑계를 탓하거나 달래고 싶을 때, 저는 ‘보통 책’을 읽어요. 언젠가는 보석들을 몽땅 깨끗이 닦아 놓고 말거라는 소심한 다짐과 함께.
‘생전의 친지와 과거 역사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겠다 싶어(157쪽)’ 먼지 하얗게 뒤집어 쓴 하버드 클래식을 읽기 시작 했다는 글쓴이. 그도 사실은 ‘많은 이들이 하버드 클래식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로 이 전집 자체, 즉 ‘오브제’로서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꼽(84쪽)’듯이 똑같이 그랬던 건 아니었을까요?
어쨌든 저는 고전을 소개하는 ‘보통 책’이 좋아요. 물론 내 취향을 내 스스로 알고, 손수 골라 한 권씩 읽을 수 있다면야 그 작가과 그 작품을 직접 만나는 것에 비할 수는 없겠지만요. 참, 고색창연한 1909년판 ‘하버드 클래식’ 보다, 2005년 선정된 “서울대 학생을 위한 권장도서 100선”이 훨씬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는 건 말할 필요 없겠죠?
♣ 서울대 학생을 위한 권장도서 100선 ( 출처 : http://book100.snu.ac.kr/book/ )
헉, 근데 이 책들 언제 다 읽는데... 아! 중요한 건 ‘다 읽었다’는 게 아니고 ‘뭘 읽었느냐’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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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도서관 서가에서 빼낸 이유는 실로 단순하다. 빨간색으로 나타난 '인문학'이라는 글자 때문이었다. 하버드나 서재라는 단어는 눈길도 주지 않았던터라 책을 읽는 순간 당황했다. '앗, 이거 독서 기록장이었어?'라고. 그저 인문학 강좌와 관련된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저자는 「하버드 클래식(일명 '5피트 책꽂이')」이라는 전집을 읽게 된다. 이 전집은 외할머니의 서가에 꽂혀 있던 책이었고, 우연히 가족들과 할머니를 회상하면서 할머니뿐만 아니라 많은 가족들이 읽었다는 대화를 나누게 된다. 그 이후 그는 하버드 클래식을 독파하기로 마음 먹고 1년을 계획하고 읽는다. 『하버드 인문학 서재』는 저자의 '1년 간의 독서 일기'라고 할 수 있다.
사실 『하버드 인문학 서재』에 언급된 책들은 내가 들어본 책은 있지만 읽어본 책은 열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였다. 그나마도 「고린도전서」,「시편」,「전도서」등을 성경이라는 이름으로 한 번에 묶어버리면 다섯 손가락이 겨우 꼽힐까 말까 한다. 그렇다보니 잡지에서 신간 소개 글을 접하는 느낌이었다. 고전이라 불리는 책의 내용과 유명 작가의 이야기들을 슬렁슬렁 읽으면서 관심가는 책을 적어두는 것으로 끝냈다.
그렇다고 책의 내용이 지루하진 않았다. 나와 다른 문화권에 사는 사람임을 인지하게 될 때도 있고, 간간히 재미있거나 아름다운 문장이라고 제시한 글에서 갸우뚱하는 내 모습이 보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1월부터 12월까지 그 달에 읽은 책을 서평하고 달마다 짤막한 자신의 일기를 적어놓았다. 처음에는 '이건 왜 적어뒀나?' 했었는데, 오히려 그것이 책의 재미를 더해주는 요소가 되는 달도 있었다.
글의 오타는 없었지만 띄어쓰기가 잘못 되었거나 『』와 물음표가 타자를 치는 중에 잘못 표시된 것으로 보이는 곳(p191)이 있다.
p.s. 책의 마지막에 부록처럼 나와 있는 '권별 목차 및 해제'는 책의 정보를 얻는데 유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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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하버드 클래식의 50권에 담겨져 있는 주옥 같은 고전 작품들의 평론집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버드 대학 강단에 섰던 찰스 윌리엄 엘리엇이 소위 말하는 5피트 책꽂이에 몇 년 과정의 일반 교육과정을 담아서 교육의 민주화에 앞장 선다는 취지로 전집이 탄생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50권이나 되는 책을 이 책 한 권으로 만나본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저자가 1년 동안 50권을 읽은 후 짧게 간추려놓은 감상을 독자가 전해받는다는 게 맞을 것 같다. 전집 속의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외에는 접해본 적이 없는 고전들로 이루어졌다는 것이 평소의 나의 독서 습관을 대변하는 듯 했다. 제인 오스틴이나 찰스 디킨스와 같은 제법 대중적인 클래식 소설은 이미 소장하는 독자가 많을 것이라는 그야말로 상업적인 인식으로, 하버드 클래식에 픽션의 비중은 거의 없는 단점이 있다. 그러나 그 후 이런 점들을 보완한 하버드 픽션 클래식이 출간되게 되었고, 책의 마지막 부분에 그에 대해 대략적으로 소개해주고 있다. 책의 저자가 1년 동안 전집의 50권을 모두 읽는 기염을 토했음에도 그 책들이 자신이나 세상을 완전히 바꿔주지 않음을 알고 있다는 것을 저자는 겸허히 받아들이고 있다. 이건 내가 지금까지 무수히 많은 책을 접한 후 느낀 회의감과 비슷한 느낌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겸허하지 못했다. 지식의 축적으로 완전히 달라진 내가 되기 위한 욕심으로 독서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은 전과 다름없이 돌아가고 많은 책을 읽은 나도 그 전과 다름 없음에 허무해 하는 것은 어쩌면 바보 같은 생각으로 바로 앞을 내다보지 못한 결과가 아닐까. 시간이 흘러도 변함 없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면 그 깨달음을 가장 잘 담은 그릇이 고전이며 깨달음에서 더 나아가서 이해하는 것이 바로 고전을 읽은 후의 자세일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고전 읽기의 가장 주된 목적인 것이다. 인문학을 전공하면서도 정작 하버드 클래식에서 다루어진 고전들은 내게 생소한 작품들이 더 많았다. 짧게나마 각 작품을 이 책을 통해 들여다보았기에 더 깊이 알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고전이 왜 고전으로 전해지고 있는지, 인문학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 직접 부딪쳐서 느껴보고 싶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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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예스24를 오랫동안 이용하면서 한번도 리뷰써야겠다는 생각을 한적이 없는데, 이책을 읽고 처음으로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맨날 강의교재 사는데만 쓰던 예스에서 내가 처음으로 직접 고른책이기 때문이다.
강의교재를 사다보니 포인트가 좀 쌓였는데 뭘 살까 고민했다. 소설책같은 건 솔직히 한번 읽으면 다시 읽지도 않고 주로 학교도서관에서 빌려서 읽기때문에 사는건 싫었다. 뭔가 계속 가지고 있고 다른사람한테도 보여주고 싶은 책을 사고싶다고 생각했다.
새로 오픈한 교보에 구경갔다가 이책을 언뜻 본적이 있는데 표지가 예쁘고 제목이 눈에 확 들어와서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신간이라 도서관에도 아직 안 들어왔고, 산다면 역시 이책이다! 생각해서 사보았다.
솔직히 사고 처음에는 조금 후회했다. 표지가 귀여워서 재미있는 내용일 줄 알았는데 앞에 소개글을 읽어보니 무슨 어려운 인문서에 대한 책이라고 하는 것이다.
대학 들어온지 얼마 안 되는 나는 고등학생때는 공부하느라 교양을 쌓을 틈이 없었던 것이 사실인데, 대학교에 들어가고 난 다음에도 소설책말고는 거의 읽은책이 없다. 근데 내가 이런 어려운 인문서를 그것도 하버드에서 골랐다는데 읽을 수가 있을까.
그래서 한 일주일 처박아뒀을까. 주말에 할일이 없어서 마음잡고 읽어봤다. 근데 의외로 이책은 어려운 인문서가 아니었다.
이책은 어려운 인문서를 안 어렵게 소개한 인문서인 것 같았다.
중간중간 그림도 있고... 처음엔 대충 봐서 몰랐던 것이다. 내 친구들도 다 갓 대학생이 된 애들이라 어려운 책 같은 건 강의교재 말고는 읽은 적이 없을 텐데, 이 책을 한 3분의1쯤 읽고 가서 친구들한테 이런 책 아냐고 물어봤더니 다들 모른다고 했다. 왠지 엄청 유식한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버드클래식이라고 하버드에서 고른 책 50권이 있는데, 그걸 다 세우면 길이가 5피트나 된다고 말해줬더니 그런 책도 읽냐면서 대단하다고 했다.
아직 다 읽은 건 아니지만, 친구들이 완전 다르게 보는 거 같고, 독서를 하는 기쁨이 뭔지 조금 알거 같은 기분이 든다. 인문서 같은 건 제대로 읽은적이 한번도 없고 그거랑 관련된 과도 아니지만 여기 실린 책중 한권 정도는 읽어봐도 될 거 같다. 지하철에서 들고다니면 조금 폼날거 같다.
추석 지나면 10월달것부터 읽어보려고 한다. 나도 이책을 쓴 저자처럼 1년에 맞춰서 해보고 싶기 때문이다. 저자는 하버드클래식 50권을 1년에 걸쳐서 읽으라고 한 거지만, 나같이 귀찮은 사람은 이 책을 1년에 걸쳐서 한달에 한챕터씩 읽는 것도 괜찮을 거 같다. 내가 쫌 무식해진 거 같은 날 맘잡고 한 30페이지만 읽으면 되는 거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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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고전문학 읽기에 관심이 있던터라 제목과 목차를 보고 바로 구입하게 되었다. 그러나 기대에 너무나 못 미치는 책이었다. 내가 왜 이런 글을 읽고 있나 싶을 정도였다. 차라리 목차에 있는 책들을 구입해서 직접 읽어보는 것이 나을 듯 하다. 저자의 개인적인 독후감들인데 내겐 전혀 공감이 되지 않았다. 댓글 다신 어떤분은 저자의 풍부한 상식에 놀랬다고도 한다. 그러나 논란의 여지가 많은 부분들에 있어서(다윈의 종의 기원) 개인적인 생각을 상식인양 쓰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 성경을 읽고 느낀 점에 있어서도 전세계 많은 사람들이 읽고 있는 성경에 개인 생각을 말한다. 물론 독후감이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왜 내가 이런 글을 읽고 있어야 되나 싶다. (278페이지. ...욥기, 시편, 전도서는 모두 구약성서에서 가장 훌륭한 책들이지만 가장 기대에 못 미치는 책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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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인문학 서재”는 1월부터 12월까지 단, 1년 동안 ‘하버드 클래식’ 읽기에 도전한 저자의 독서 여정을 담은 책이다. 그런데 ‘하버드 클래식’이란 무엇일까? ‘5피트 책꽂이(five-foot shelf)’라는 별칭으로 잘 알려진 ‘하버드 클래식’은 40년 동안 하버드 대학교 총장으로 재직했던 ‘찰스 엘리엇’이 은퇴할 무렵 1909년에 편집해 내놓은 ‘인문학 고전 선집’이다. 역사의 시작부터 19세기까지 출간된 저작물 중에 학문적으로 인정받는 고전들만을 담아 묶은 것이다. 그 양이 자그마치 ‘50권, 22000페이지, 150여 편’의 작품이라고 하니 입이 떡 벌어져 다물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저자는 왜 이런 무모한 책읽기에 도전을 하게 된 것일까? 그는 우연히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이러한 결심을 하게 된다. 학교를 다닐 수 없어 배움의 길이 막힌 그의 할머니는 ‘하버드 클래식’을 읽으며 독학을 하게 된다. 일반인들에게 교양을 제공하고자 만들어진 이 선집을 통해 그의 할머니는 지식인으로서의 교양을 갖추게 된 것이다. 해가 바뀌는 어느 날, 저자는 인생의 큰 결심을 하게 된다. 그는 그의 할머니처럼 하버드 클래식의 첫 장을 펼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의 독서 여정을 독자인 나도 뒤따르게 되었다. 본문에서 인상적이었던 글귀 5선 : (1) “실제로 에머슨은 ‘내가 다른 영혼에게서 받을 수 있는 것은 교훈이 아니라 자극이다’라고 했다.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 적절히 피신할 곳으로 고전 작품을 접해볼 것을 권한다. ‘당신 내부와 바로 주위에 이미 있는 것 말고는 이 책들은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에머슨은 마치 그렇게 말하는 듯하다. 여기에 역설이 존재한다. 에머슨의 말대로라면 그는 우리가 내면으로 시선을 돌리도록 가르칠 수조차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을 가르치기 위해 자신으로부터 배워야 한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다.” (p.59) (2) “그러므로 인간은 거대한 진짜 양서류다. 인간은 본성상 다른 생명들처럼 갖가지 환경에 맞춰 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확연히 분리된 양쪽 세계를 동시에 살 수 있다. 인간이 감각할 수 있는 세계는 하나뿐이지만, 사유할 수 있는 세계는 둘이기 때문이다. 하나는 눈에 보이고, 다른 하나는 보이지 않는다.” (토마스 브라운의 종교의학 중에서) (3) “루칠라는 베루스의 죽음을 보았고 그러고 나서 루칠라도 죽었다. 세쿤두스는 막시무스의 죽음을 보았고 그러고 나서 세쿤두스도 죽었다. 에피틴차누스는 디오티무스의 죽음을 보았고 그러고 나서 에피틴차누스도 죽었다. 안토니누스는 파우스티나의 죽음을 보았고 그러고 나서 안토니누스도 죽었다. 다 그런 것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중에서) (4) “모두 알다시피 싸우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법에 따라서 싸우는 것이고, 또 하나는 힘으로 싸우는 것. 전자는 사람에게 어울리는 방식이고 후자는 짐승에게 어울리는 방식이다. 하지만 앞의 방식은 종종 효과가 없어서 뒤의 방식을 선택할 필요가 생긴다. 그러므로 군주는 사람과 짐승을 둘 다를 잘 다룰 줄 알아야 한다.”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중에서) (5) “치유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지속적인 고통에 시달려야만 하는 질병에 걸려, 사제들과 판사들이 그가 생의 의무 중 그 어떤 것도 수행할 수 없고, 그의 목숨을 연명하려는 몸부림이 다른 사람들에게 불쾌하고 넌더리나는 일일 뿐더러 그 자신에게도 끔찍하다고 판단할 경우 그들은 이 치명적이고 고통스런 질병으로 더 이상 고통받지 않을 것을 결정하도록 권고하여야 한다.”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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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인문학 서재 크리스토퍼 베하 지음/21세기북스 이 책은 한 출판인이자, 저널리스트인 저자의 독서노트다. 저자는 프린스턴 대학을 졸업하고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며 시사지에 에세이와 평론을 기고하고 있다. 그는 어느 날 돌아가신 외할머니 집에서 책꽂이에 꽂혀있던 하버드 클래식 전집을 1년 내에 1권부터 50권까지 전부 읽기로 결심한다. 그가 이 전집의 1권인 벤자민 프랭클린 자서전의 첫 장을 펼친 그 날은 새해가 되기 직전의 떠들썩한 기대로 세상이 온통 들떠있던 시간이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그 책들은 보아왔지만 그 책을 모두 읽어내기로 결심한 데는 그만의 특별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여기서 그 자신의 개인적인 동기는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고 있으나 그 중 한 가지 이유는 투병중인 이모를 통해 기억한 할머니의 모습이다. 젊었을 때의 할머니는 정규 교육을 받지는 않았으나 이 유명한 책들을 읽어낼 만큼의 열정적인 독서가였다. 미미이모와 엄마의 대화를 통해 할머니와 할머니의 독서를 떠올린 그는 어떤 것에 이끌린 듯 책에서 자신의 길을 묻는다.
하버드 클래식의 편집자는 찰스 윌리엄 엘리엇이다. 엘리엇은 1861년, 남북전쟁 직후부터 1차 세계대전 직전까지 약 40년간 하버드 대학의 총장으로 재직했다. 그는 재직 시절 “5피트 책꽂이면 몇 년 과정의 일반교양 교육을 대체할 만한 충분히 담을 수 있다.”라고 늘 말했다고 한다. 그는 은퇴를 앞두고 이 ‘5피트 책꽂이’라 불리는 50권, 2만 2000페이지, 150여 편의 작품이 담긴 하버드 클래식 시리즈를 완성했다. 이 책의 편찬 취지는 정식 교육을 받지 못해도 이 책들을 읽음으로 누구라도 대학 교육의 수준의 교양과 지식을 얻게 하는 데 있다. 주제는 역사, 철학, 교육, 종교, 문학(소설, 시, 동화), 과학 등 거의 전 분야에 걸쳐있다. 여기에 그 시대 굉장히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던 작가들의 문학작품은 빠져 있어 이 시리즈 이후 픽션 시리즈는 새롭게 출판되었다. 책이 대중적으로 보급되지 못하고, 값비싼 책을 소유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때에 이 전집을 가진다는 것은 굉장한 의미였을 것이다. 책의 요약 정보인 출판목록도 귀하던 시절 세계 최고의 석학들이 한꺼번에 독자들을 찾아오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문득 우리 이모의 처녀 적 자취방에 있던 세계문학전집이 생각난다. 저자의 할머니처럼 이모도 거의 배우지 못했지만 이모의 그 좁은 방에는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전 세계의 유명한 작가들이 다 모였었다. 독서에 취미가 있어 보이지 않았던 이모가 그 책들을 다 읽었으리라고 생각지는 않지만 순탄치 않았던 이모의 삶에서 그 책들의 의미를 지금은 조금 이해할 것 같다. 저자를 통해 하버드 클래식을 훑어보며 나도 한번쯤은 어떤 목표를 정한 독서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굳이 다 이해하고 읽어내지 못한다고 해도, 저자의 말처럼 독서의 폭을 넓히는 것도 독서에 있어서 중요한 것 같다. 이런 독서는 나의 세상을 떠나, 다른 세상으로, 익숙한 나의 사람들을 떠나 타인에게로 눈을 돌리는 것이 아닐까. 요즘은 다 읽은 책을 한 꾸러미씩 묶어 누군가에게 선물하곤 했다. 이 특별한 선물은 받는 사람을 향한 나의 마음이 담긴 꽤 괜찮은 이벤트였다. 이제 나의 5피트 책꽂이를 만들어보고 싶다. 독서를 좋아하는 내 뒤의 누군가를 위해 그가 행복하게 읽어 줄 정말 가치 있는 책들을 모아 남기고 싶다. 아, 그리고 이 책은 오래 보아도 너무나 매력적인 삽화 때문에라도 나의 그 책꽂이에 꽂히게 될 것 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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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는 그 이름만으로도 뭔가 대단한 아우라를 풍긴다. 속된말로 간지나는 이 황홀한 명성을 들을 때면 나는 뒤에 어떤 단어가 오는지는 상관없이 무조건 한 번쯤은 쳐다보게 되는 것이다. 아마 ‘하버드의 매춘부들’이라는 과격한 문구라 하여도 나는 바로 관심을 갖게 될 것이 뻔하다. 그런데...그런데... 이 책은 내가 동경해 마지 않는 ‘하버드’ + ‘인문학 서재’란다. 완벽한 단어의 조합은 말할 것도 없고 가까이 하기에 조금은 두려운 인문학 책들이 어떤 것일까? 정말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사실, 목차만 쭈욱 살펴보더라도 안 읽어본 책들이 태반이라서 좀 어렵지 않을까 내심 걱정도 생기고 저자의 감상평을 이해할 수 있을까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휴...어렵긴 어렵다. 그저 호기심으로 무작정 달려들기에는 참 버거웠다. 그나마 책의 초반에 저자가 어떻게 해서 이 하버드 클래식을 읽기 시작했는지를 밝히는 부분이 은근히 마음에 들어서 느슨한 기분이 들었다가 얼마 못가 플라톤이니 프랜시스 베이컨이니 하는 철학자가 불쑥 튀어나와 버리는 바람에 정신이 번쩍 들어버렸다. 읽지 않은 책을 상상하는 것도 어렵지만 그런 책을 소개하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쉽지는 않다. 하물며 이 책의 저자가 읽고 자신의 것으로 곱씹고 체화한 것을 받아들이기엔 나의 내공이 참으로 부족함을 다시 한번 느꼈다. 예전에 10대 시절에 글쓰기를 좋아하고 책읽기에 푹 빠져있던 친구가 도서관 철학책 코너에서 하이데거니 니체니 하는 책들을 읽고 있는 것을 보면 도대체 저런 책을 왜 읽지?라는 생각이 참 많이 들고는 했었지만 나이가 들어 어느 정도 삶을 살다보니 철학자들의 이야기들에 한 번씩 공감이 갈 때가 있었다. 뭔가 있어보이는 겉멋이 들었다기보다는 그저 몸으로 체험한 어떤 것들을 그들의 사상과 이론들에서 발견할 때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책은 말 그대로 하버드 클래식으로 명명된 50권 150작품을 꾸준히 읽고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이다. 앞에서도 고백했지만 이 하버드 클래식이라는 것이 저자나 제목만 들어도 머리가 지끈거리고 어려운 책들도 가득하기에 1년이라는 기간 동안 이 책의 작가가 꾸준히 인문학 서적들을 읽어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에게는 대단하게만 보였다. 아무리 그가 이 방면에 실력 있고 유능한 지적 능력을 갖추고 있더라도 말이다. 한때 우리나라가 인문학의 위기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고 처세술이나 자기계발류의 서적들만 불티나게 판매된 적이 있었다. 어떤 신문기자들은 지식인은 다 죽었다라는 책도 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인문학, 특히 고전의 힘은 죽지 않았음을 나는 여기저기서 발견해 왔다. 고전의 명작속에서 그대로 드러난 인간의 삶이 결국 우리 자신의 삶이었음을 우리는 얼마나 많은 책들 속에서 발견해왔는지를 기억해 낸다면 말이다. 세월이 흘러 인간의 양식이나 사회도 많이 변해왔지만 그 저변에 흐르는 인간의 존재에 대한 근간은 그리 쉽게 변하는 것이 아님을 잘 알기에 이 특별한 인문학 서재는 오래된 벗같이 느껴진다. 조금은 다가서기 어려운 벗인것도 사실이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