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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확실해진다. 아니, 매번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 작가의 책을 다 사서 꽂아 두고 보리라고. 없이 살더라도 이 품목만큼은 채워 두고 살리라고. 한 권씩 늘어나는 이 작가의 책을 보고 있으면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르리라고 믿으면서.
이번 소설집에서는 내 안의 화살을 찾았다. 나를 찌르고 내 가족을 찌르고 내 친구를 찌르는 나의 화살. 알게 모르게 내가 날리는 화살에도 상처 하나 입지 않고 버티는 내 사람들을 보면서 도로 단련되는 내 심성. 내가 이런 성향을 좋아하고 있나 보다. 나를 무조건 끌어 안기만 하는 게 아니라 냉정하게 볼 줄 아는 시선을 가지고 싶다거나, 내 가족이라고 해서 무조건 편을 들기보다는 위선이나 거짓들을 거침없이 밝혀 낼 줄 아는 표현들에 박수를 보내는 걸 보면. 내게 없는 자질이라 더 그럴 것이다.
소재나 배경의 분위기가 비슷하다고 해서 내가 다 좋다고 느끼지는 않는다. 이 소설집에 담긴 글의 소재나 배경이 다른 작가의 글과 아주 다르게 낯설거나 새로운 것은 아니다. 아니, 늘 보던 내용이라고 보는 게 더 맞다. 지지리궁상인 삶이나 스스로의 위악에 빠져 있는 인물이나 조금도 나아질 것 같지 않아 보이는 막막한 내일 등등. 어떤 작가의 글은 지루하고 역겨워서 읽기에 피곤하기까지 했는데 이 책은 그렇지 않았다는 게 나랑 맞았다는 뜻일 것이다.
2010년에 출간된 소설집이라면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세상의 글이다. 10년은 길다고도 짧다고도 말할 수 있을 기간이겠다. 이 소설집은 10년을 무색하게 만들어 놓고 있는 듯하다. 옛날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소설 속 인물들이 비슷한 모습으로 아웅다웅하며 살고 있을 것 같다. 비루하다는 말을 가져와본다. 천하고 너절한 삶, 그래도 살아야 하는 삶, 비겁하면서도 악착같은 삶. 이런 이야기라도 외면하지 않고 자꾸만 읽고 싶도록 만드는 게 작가의 역량이겠지.
다음 책을 주문해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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퍽 오랜 시간 동안 문장 좋은 글을 읽고 싶다는 갈증이 있었다. 섬세하고 예리하여 저 마음 깊은 곳을 훅훅 쑤셔대는 문장. 좋은 문장에 대한 갈증이 심했는데, 이 책이 이런 내 마음의 갈증을 오랜만에 쑤욱~ 풀어 주었다. 그리고 이 책으로 인해 이 작가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 퐁퐁 솟아 올랐다. 감정의 미세한 떨림을 정말 예리하게 몇 마디 문장으로 설명하기 아쉬운 여러 갈래들의 사람들 간의 감정선을 슬적슬적 가슴 서늘하게 혹은 쿡쿡 아리하게 쑤셔대며 표현해 내는 문장들을 만날 때 마다 잠시 책을 덮어 두고 숨을 고르곤, 문장을 놓칠새라 언능 페이지를 펼치고 문장들을 탐닉했을 정도다. 모든 이야기가 다 좋았고, 모든 문장이 좋았다. 특히나 이 작가의 책 3권을 읽으면서, 사람 간 의사 소통의 허망함, 관계의 부질 없음을 생각한다. 모든 것은 그리 각자의길로 각자의 이야기로 그리 허망하게 다 사라져 갈 터였다. 그리고 이리 개별의 상처로 남을 거고. 그렇게 다들 묻고, 잊히며 사라져 가겠지... 내가 '아'라고 세 사람에 외쳤을때, 그걸 3사람은 모두 다르게 받아 들인다는 것, 거기에서 비롯 되는 마음의 상처를 이리도 개별의 이야기로 잘 쓰는 작가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다. 아마 이 책은 두고두고 아껴 읽고, 다시 읽고, 자다 깨서 꺼내 읽게 될 거 같다. 이 작가의 다른 책을 좀 더 읽어야 곘다. 그리고 뭔 해설이 그리 긴지. 흥~ 읽다 말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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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여선의 단편집 중에서 최고는 <안녕, 주정뱅이>겠지만 나는 이 소설집을 그 옆에 나란히 두고 싶다.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사랑을 믿다>가 수록되어 있고, 또 표제작인 <내 정원의 붉은 열매> 역시 수작이기 때문이다. 지나간 사랑에 대한 회환, 애틋함의 감정을 아주 잘 담아낸 이 두 편의 소설을 거듭 반복해서 읽었다. 단편 <내 정원의 붉은 열매>에서는 투르게네프의 소설 <첫사랑>의 한 구절이 소제목처럼 나뉘어져, 이 길을 따라오라는 표지처럼 사이 사이에 놓여 있다. 유일하게 솔직했던 선배에 대한 기억을 담은 이 소설에서 그 선배는 김소진으로 짐작된다. 사랑이 지나갔는데, 그게 사랑인 줄도 몰랐다가 한참 후에야 어렴풋이 알게 되었을 때 인간은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될까. 좀처럼 설명이 되지 않는 이 감정에 내가 공감을 느끼는 것은 내게도 이런 경험이 있다는 것인가. 이 소설을 읽다보면 언젠가 내게도 있었을 어떤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것만 같다. 아름다운, 소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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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아마도 이상문학상에 실렸던 '사랑을 믿다'를 아주 감명 깊게 읽어서, 다시 보려고 구매했다. '사랑을 믿다'는 한 번씩 뜬금없에 생각나는 소설이었다.
몇 년 전 읽었을 때도 좋았지만, 지금 읽어보니 더 좋다. 그때에는 왜 제목이 '사랑을 믿다'였는지 잘 이해되지 않았지만, 지금 다시 읽어보니 어렴풋이 이해가기도 한다. 권여선 작가의 소설을 좋아해서 단편집과 장편집을 여러 권 읽었다. 단편집은 대체로 난해하고, 좀 이해하기 힘들지만 또 그만큼의 매력이 있다. 그 이해 안되는 게 매력이라면 매력인 것 같다. 책에 실린 모든 단편소설을 아직 다 읽어보진 않았지만, '권여선 소설집'이라는 하나의 이유만으로도 살 만한 가치가 충분한 책이 아닐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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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쓴글을 읽고 나면, 마음이 풍성해 지는 것 같다. 내 몸도 마음도 별로인 이 시기에 읽어서인지, 새삼 독서를 통해서 위안을 얻는다는것이 무엇인지 실감하였다. 권여선은 글을 꽤 잘 쓰는 작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글을 읽고 나서 '상념에 잠긴다'라는 말을 절로 하고 싶을 만큼 여운이 깊었다. 이 소설집의 앞의 작품 세 개는 특히 내가 좋아하는 문학적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다. 잘 읽힌다는 것. 생활밀접형 글쓰기라는 것. 읽고 난 후에도 잔상이 남는 다는 것. 아마 이 글 속의 비슷한 상황을 살면서 비슷하게 경험했었으리라. 글들을 읽으면서 이제는 가물 가물한 누군가를 떠올려 보기도 하였고, 그 즈음의 나를 되돌아 보기도 하였다. 소설 집 속의 '사랑을 믿다'는 이상 문학상을 받기도 하였지만, 수상작들 중에서도 꽤나 괜찮았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그래서, 임팩트가 강했던 하나코는 없다, 아내의 상자, 천지간, 부석사, 몽고반점들처럼...아니, 그런 작품들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 즈음의 그 사람은 지금 어디에서 무얼하고 있을까. 그때 나는 왜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그리고 세월이 지나니..어렴풋이 느껴지는 그 애잔함들이...한동안 권여선의 글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했다. 나는 이런 책들이 읽고 싶은데...이런 책을 만나는 것은 정말 재수 좋아 얻어걸리는거다. 그렇게 읽어댔던 책들 속에서 마음에 드는 책 한권을.. 그리고 그 책 한권 속의 단편 하나를 만나기는 정말 어렵다. 책 출간된지 10년이 다 되어가는데, 이제라도 읽게된 것은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즈음에..이 책을 읽을 수 있어서 정말 고마웠다. 권여선의 다른 작품들도 찾아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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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약간 떨어진 곳에서 살다 보면 한국과 관련된 것들이 그리워 진다. 순대국부터 청주까지. 혹은 마을 버스부터 찜질방까지. 그 중에 언어가 있다. 나는 한국어를 모국어로 받아 들였고, 한국어로 말하는 법을 배웠으며, 한국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속에서 약 25년이 넘는 시간을 보냈다. 내 생각의 상당 부분이 한국어를 통해 이루어 진다. 때문에 아무리 연습을 통해 단련한다고 해도 영어를 비롯한 제2 외국어들을 접할 때 느끼는 불편함은 쉽게 사그러들지 않는다. “좋은” 이라는 앞에 붙이면 한국어에 대한 굶주림은 더 커진다. 한국인과 수다를 떨거나 쓰잘데기없는 글 따위를 쓰는 것으로 말하기와 쓰기에 대한 갈망은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으나, 마음 깊은 곳을 건드리는 좋은 문장을 충분히 읽을 수 없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꽤 많이 서글픈 일이다. 그래서 그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한국의 인터넷 서점을 통해 가끔 책을 주문하는데, 그 비용은 한국에서 책을 구입할 때의 배를 넘어선다. 가끔은 배송비가 책값보다 더 많이 나오기도 하고, 주문 후 도착까지 일주일이 넘게 걸리기도 한다. (요즘 내 소원중 하나가 퇴근하고 교보문고에 들려 책을 한권 집어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언제쯤 가능할런지!) 책을 읽는 버릇이 달라진 이유가 여기에서 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난한 과정을 통해 어렵사리 도착한 책들에 박힌 한글자 한글자를 소중하게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같은 것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