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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광장, 고대 그리스의 그 곳으로부터 광장은 고대 그리스의 정치 논쟁의 장이었다. 어찌보면 그 때의 정치는 지금과 같이 직업적이라기 보다는 삶과 사회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를 정치라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아고라 광장, 그 곳에서 시작되었던 삶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은 시간이 흐르며 사라져왔다. 어쩌면 광장에서 모여서 논할만큼 '여유'를 잃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이야기 한다고 변할 것이 없고, 결과물을 만들어 내야한다는 '산업화 시대'의 시대정신일 수 있었다. 그렇게 광장은 '넓은 장소'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고 사람들이 믿기 시작했다.
2. 한국, 광장을 만나다. 촛불을 들고서 그러다가 광장의 의미가 다시 살아나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것은 정치적 논평이나, 누군가의 계몽적 외침이 아니라 그저... 아주 오래전 사람들이 그러했듯이 삶에 대해 이야기 하려고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요즘 저는 5.18 민주화 운동에 대해서 한가지만 생각해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 지금이 5월 26일 밤 8시 32분이라고 상상해봅시다. '오늘 밤에 계엄군이 들이닥친다, 도청에 남을래, 집에 갈래?' ... 이런 상황에서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하고 생각해 보십시오. ... 지금 제 세대에서 아직도 소위 '운동판'을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은 그 질문을 내려놓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한 교수님은 그 회복의 역사가 518민주화 운동에서 시작되었다고 본다. 특히 저 물음,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가 그 시작이었다고 본다. 나 역시 역사를 역사로만 볼 뿐, 누군가의 이야기이고 삶이었다고 보지 않았다. 누구나 그랬으리라. 그러다가 가장 최근의 역사들로부터 시작하자면, 대통령의 탄핵, 광우병 소고기 파동, 미선이 효순이 사건, 그리고 또 그 이전 대통령의 탄핵 소추.. 지금은 역사책으로 들어가 버린 이야기가 우리의 삶이었고, 우리의 기억 속에 있는 삶의 한 모습이었다. 그렇게 보자면 518민주화 운동도 누군가의 이야기였고, 목숨을 걸고 지키고 싶은 그 무언가 때문에 광장으로 모여들었던.. 그런 이야기였다. 그렇게, 우리는 삶으로부터 광장을 회복한 것이었다.
3. 광장에서 기회를 잡아라 한홍구 교수님의 광장과 민주주의 관계는 한 편의 축구경기와도 같다. 수비수가 공을 뺏어서 중앙 미드필더에게 패스, 그리고 공격수가 그 공을 이어받으면 골까지 연결될 수 있다. 하지만, 공격수가 집중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공격수는 집중해서 그 골을 성공시켜야만 기쁜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곧잘 역습당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여전히 좋은 세상이 왔다고 느끼지 못할까요? 그것은 우리가 만들어낸 변화의 기회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찬스가 왔을 때 골을 넣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 1987년부터 20년동안 세번의 찬스가 왔다면 정말 많았던 것입니다."
역사적 기원을 따라 우리 사회의 적폐들, 즉 청산 대상들을 헤아려보면서 한 교수님은 말한다. 공격수들이 공을 잡고 골문 앞으로 쇄도해 간 흔적이... 아니 어쩌면 '노마크 찬스'가 세번이나 있었다고. 그러나 그들은 실패했다. 공격수 혼자의 문제가 아니었다. 수비수가 반칙을 해도 모른 척하는 관중과 심판, 즉 우리 모두의 잘 못이라고 지적한다.
최근 고 노무현 대통령 추모제에서 이재명 시장이 그렇게 이야기 했다고 한다.
"개혁을 시도하는 정치권력은 기득권 세력을 건드리게 되어 있다. 기득권 세력은 경제권력일 경우가 많다. 시민들이 무관심하면 정치권력은 경제권력에게 잡아먹히게 되어있다."
이것이 우리가 광장을 다시 찾는 이유이다.
4. 광화문 대통령 시대, 광장은 무엇입니까? 새로 취임한 문재인 대통령이 자신을 광화문 대통령이라고 천명했다. 그것은 광장을 주목하라는 대통령의 외침이기도 하다. 왜 광장인가? 대의민주주의가 대한민국 정치의 근간이었다. 대신 뜻을 전해서 국회가 그 뜻을 법으로 혹은 행정명령으로 만들어 나라가 나아간다는 말이었다. 허나 문대통령도, 한교수님도 대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분명하다. 어쩌면 중간단계를 조금 생략하고서라고 시민들의 뜻을 듣고 싶어하는지도 모르겠다.
역대 정권이 불통의 아이콘으로 뽑혔던 것은 주부들이 유모차를 끌고 광장으로 나올 수 없도록 만들었고, 시민들 역시 광장에서 시시콜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스스로 믿게 되었기 때문이다.
역사를 거슬러, 광장에서 삶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민주주의의 근간이다. 나만 겪는 아픔, 나만 고민하는 문제라고 생각하고 사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가 아니다. 이것을 다만 현대사회의 폐해라고 말고 넘어가지 말자. 광장은 우리의 삶이 얼마나 보편적이며, 우리가 주인이 될 수 있는 나라에서 우리의 고민이 적어도 '고립'되지 않도록 도와주는 곳이다. 더 나아가서, 이런 우리의 뜻이 정치인들에게 전달되고, 입법권자들과 행정권, 사법권자들이 사회를 고칠 때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아야 할 곳이 '광장'인 셈이다.
이제 대한민국은 후반전으로 접어들었는지 모른다. 좌우 진영이 바꼈고, 공격수가 바꼈다. 시민들의 일은 공정한 심판이 되어주고, 골을 넣기를 응원하며 쉬지 않고 지켜보는 것이다. 그 곳은 바로 "광장"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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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근현대사는 늘 역동적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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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창비에서 출판하는 책을 좋아하는 편이라 페이스북에 뜬 서평단 모집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촛불집회를 참여했던 1인으로써 '지금의 우리 정치는 어디까지 왔을까?', '민주주의란 정말 존재하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점이 생겼다. 마침 내게 온 책은 한홍구 교수님의 "광장, 민주주의를 외치다" 였다. 근현대사를 너무도 일목요연하게 사건별로 정리해주셨던 내용은 내 궁금증을 일부 해결해주었다. 강의를 그대로 듣는 듯한 느낌으로 편안하게 이어지던 내용들 어렵게 느껴졌던 근현대사가 저절로 눈에 들어오며 더 알아보고 싶다는 호기심도 생기게 해주었다. 책의 시작은 2016년 촛불집회에서부터 과거의 촛불집회, 과거 대통령들의 사건들, 집회의 변형 등을 얘기해주었다. 책의 마지막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대한민국호의 선장은 예전에 도망간 적이 있습니다. 한국전쟁이 일어났을 때 이승만은 다리를 끊고 저 혼자 피란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김기춘, 우병우 같은 사람들이 대한민국호의 기관장, 항해사였다면 대한민국호가 어떻게 기우뚱하면서도 침몰하지 않고 오늘날까지 왔을까요? 그 복원력이 어디에 있을까요? 그것은 대한민국호의 무게중심이 여러분이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긴 강의를 통해 확인한 그대로 매번 짓밟히면서도 다시 촛불을 들었던 여러분이 대한민국호의 무게중심이기 때문입니다." 헬조선인 대한민국에서 더이상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이민을 가는 사람들이 종종 보였다. 나는 이민을 갈 형편두 아니었기에 이런 절망을 지니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만 하였는데 "광장, 민주주의를 외치다"를 보면서 우리는 아직 미성숙한 민주주의지만 좀 더 협치가 잘 이루어지는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과정에 있다는 희망을 조금은 가지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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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민정수석으로 서울대 조국 교수가 임명되었다. 창작과 비평사에서는 박근혜 탄핵 기념(?)으로 <정치의 시대> 강연을 열었고 책으로 엮었다. 리뷰를 쓰는 도중에 새로운 뉴스가 나왔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이란 곳은 검찰의 꽃이라 불리며 사회적 이슈가 큰 아주 굵직한 사건들을 맡아서 지휘하는 곳이다. 그렇다면 윤석렬 검사가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각종 비리를 적극 수사하게 되어 좋은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검찰의 힘이 수사를 하는 데서 나오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검찰의 힘은 수사를 안 하는 것에서 나온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해야 하는 걸 반드시 하면 그걸 처리하는 의무기관이 되기 때문에 이른바 '끗발'이 생기지 않습니다. 해야 되는 걸 안 하는 데서 힘이 생기는 겁니다.
또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장은 고등검찰 정장과 동급의 자리라서 이후 검찰청장으로 승진할 수 있는 자리이었지만 이번 인사를 통해 서울중앙 지방검찰청장의 자리를 원위치 시켰다. 법이 정치를 심판하는 도구가 되기보다 정치를 통해 올바른 법이 만들어지고, 법을 집행하거나 법을 통해 판단하는 이들은 정치적 영향력에서 벗어나 주권자의 입장에서 가장 올바른 길이 무엇인가를 늘 고민하고 선택하는 것이 훨씬 건강한 민주주의의 길입니다. 올바른 정치는 주권자의 뜻이 그대로 구현되는 것입니다. 올바른 정치가 이루어진다면 법은 당연히 정치의 아래에 놓여야 하지요. 현실이 그렇지 않다면, 법이 올바로 만들어지고 올바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정치를 복원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민주주의를 실현하려는 주권자에겐 일종의 의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P.111)
그동안의 법은 항상 정치권력 또는 재벌권력 눈치를 보며 움직였다. 법은 건전한 상식의 범위를 뛰어넘을 수도 없고 뛰어넘어도 안 됩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원칙과 기준이 곧 법에도 통용되고, 상식이 확립된 사회가 정의롭고 민주적인 사회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정치에 대한 관심을 절대로 놓으면 안 됩니다. 우리가 정치에 관심을 가질 때 올바른 법이 만들어집니다. 그 법에 의해서 올바른 법 문화가 만들어져야 비로소 주권자인 시민들이 법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느낄 수 있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법치주의입니다.
저자는 말한다 법은 태생적으로 약자의 편에 서야 한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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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 처음으로 사전 서평단을 신청했다. 나는 정치에 무지하나 조금의 관심은 있다. 공짜로 책을 보고 싶다는 1차원적 의도로 서평단을 신청했다. <정치의 시대> 는 총 4가지의 시리즈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 내가 읽고 싶었던 시리즈는 <만국의 알바여, 정치하라 - 은수미> 였다. 허나 사람일은 역시 원하는 대로 되는 게 아니다. 어느날 갑자기 택배로 도착한 <법은 정치를 심판할 수 있을까?> 는 제목부터 나를 쫄게 만들었고, 이토록 얇은 책을 펴기까지 1주일 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책의 구성은 딱딱하리라는 예상과 달랐다. 강의 내용을 문어체가 아닌 구어체로 말하듯 담아놓아, 책 바보 & 정치 바보 인 내가 읽기에도 부담이 없었다. "생활 정치 가이드북" 이라더니 일단 가이드북 답게 읽기 쉽다. 이 책의 저자는 책을 펴자마자 제목에 대한 답변부터 내놓는다. "법은 정치를 심판할 수 없다" 올바른 정치란 주권자의 뜻이 구현되는 것. 올바른 정치가 이루어 진다면 법은 당연히 정치 아래에 놓인다. 저자는 위의 내용을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간결하고도 재미있게, 그러나 흥미를 잃지 않도록 풀어나간다. (부럽다) 나는 이 책을 정치를 좋아하고 싫어하는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다. 정치라는 타이틀을 걸고 있지만, 조금 많이 배우신 어른이 유쾌하게 들려주는 이야기 같다는 느낌이 컸다. 옛날 이야기 처럼 듣고, 현실을 느끼고, 미래를 고민할 수 있는 책이었다. #정치의 시대 #강추 #책을 읽읍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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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일 때에는 수능만 잘 보면 된다고, 다른 거 신경 쓰지 말고 너는 공부만 하라고 해서 내내 공부만 했다. 그런데 스무살이 된 내게 갑자기 낯선 투표권이 생겼다. 개념은 알고 있지만 무엇이 옳고 그른지, 내 정치에 관한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생긴 투표권은 부담스러운 권리였다. 애써 정치를 쫓아가보려 하지만 정치는 어떤 진리가 아닌 생각이기 때문에 책을 보아도, 인터넷을 보아도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도대체 뭐가 뭔지 알기 어려웠다. 너무 어려웠기 때문에 다가가기도 겁났고 알아보려하면 할수록 정치는 더러운 것으로만 보였다. 그러나 지난 촛불집회와 19대 대선을 통해 정치에는 내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여전히 어떻게 그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하는지가 어려웠다. 가뭄의 단비와 같게도 ‘정치의 시대’ 중 ‘만국의 알바여, 정치하라‘ 소책자를 만나게 되었다. 필리버스터로 유명해진 은수미 님의 강연 내용을 담은 ‘만국의 알바여, 정치하라’는 옆에서 알기 쉽게 정치를 조곤조곤 설명해주는 것만 같았다. 민주주의 사회의 헌법은 국민에게 주권이 있다고 말한다. 이 말은 방법은 다 다를지라도 모든 정치 행위가 결국 국민을 위한 행동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크게 볼 때 자유를 가진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 받는 사회를 만들고 유지하기 위한 것이 정치 활동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제도권에서만 정치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일상 속에서도 정치가 다루어질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우리는 일상에서 정치를 만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제도 정치는 늘 우리와 동떨어져 있는 것이었다. 특히나 ‘호모 인턴스’, ‘호모 알바스’라고 불리는 비정규직 사회에서 우리는 정치에 다가가기 힘들다. 은수미 전 의원은 이런 상황을 노동 문제 전문가의 시각에서 해석하여 우리에게 우리만의 잘못이 아니라고 이야기 해준다. 제도권에서 모두가 정치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사회, ‘국민 기본선’이 보장된 사회를 만들려고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이 역시도 제도 정치뿐만 아니라 우리들이 촛불 집회와 같이 계속 관심을 가지고 그 관심을 표출해서 제대로 이루어지도록 일상 정치도 활발히 일어날 수 있어야한다고 주장한다. 여전히 정치는 아직 어려운 문제이지만 정치의 베이스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존중 받을 자격이 있는 ‘우리’ 국민이 살만한 사회를 만들도록 하려는 노력이 바로 정치라고 나는 이 책을 읽고 다시금 깨달았다. 대학교에 오기까지 사회 교과서로만 너무 간단하게 배웠다, 주권은 국민에게만 있다는 그 말을 쉽고 가장 마음에 잘 와닿게 풀어준 책이었다. 나와 같이 정치를 어렵다고만 생각하고 멀리하려는 사람, 지난 국정농단 사태로 인해 정치가 무엇인지 궁금해진 20대에게 정말 강력하게 추천해주고 싶다. 우리 모두 함께 좀 더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더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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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이다. 법과 정치에 관심은 많았지만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 든 적이 처음이다. 최근에 읽은 책들은 미리 계획이라도 한 듯이 서로 같은 방향을 쳐다보고 있었다. 김두식 교수님의 '헌법의 풍경'과 서평단으로 책자를 먼저 받은 최강욱 변호사의 '법은 정치를 심판할 수 있을까?' 이 두권의 책은 우연한 기회로 같은 시간에 읽어졌고 결론이 묘하게 이어져 있어서 낯선 이 분야를 쉽고도 깊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이 되었다. 최강욱 변호사의 '법은 정치를 심판할 수 있을까?' 이 책의 서두는 책 제목의 해답을 먼저 내리고 시작한다. 심판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제까지 살면서 체감한 바 결론을 미리 알고 있었지만 설마 그럴까? 과연 그럴까? 생각했던 것들이 '심판할 수 없다'는 말 한마디에 시원하면서도 알 수 없는 섭섭함이 느껴졌다. 법은 정치를 왜 심판할 수 없을까? 법은 약자의 편이 아니라 강자의 편이었으니까 늘 그래왔다고 생각하며 외면했던 모습들이 그들의 체제를 공고하게 쌓아왔다고 필자는 말한다. 한국 사법의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심판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예전 어느 강연에서 들었던 말이 기억이 난다. “우리는 사람의 선의를 너무 믿습니다. 착한 사람에 기대어 너무 많은 걸 요구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선의도 어느 순간 변질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변했다고 욕하지 말고 사람이 변해도 사회의 나쁜 영향을 미치지 못하도록 시스템 체제 구축이 필요합니다.” ‘헌법의 풍경’에서도 이 문제를 지적한다. 공적인 분야를 위해 일하고 싶어 하는 변호사들의 선의에만 기대기는 쉽지 않다고. 변화하고 싶다면 공적인 분야에 올바른 법조인들이 일할 수 있는 구조적인 환경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사법 환경이 정치를 심판할 수 없었다면 시스템과 환경을 변화하는 방향으로 가야하지 않을까? 큰 스케치만 그려보다 책을 점점 읽으면서 역사가 깊은 이 환경을 바꾸는 게 정말 쉽지 않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법치주의란 법을 권력으로 휘둘러서 국민을 지휘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잘못된 권력으로부터 지켜내는 것. 권력을 가진 자들이 어렵고 무섭다는 인식을 앞세운 법을 무기로 국민들을 테두리로 가두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의 시선으로 테두리를 만들어 권력을 가진 자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것. 국민들의 주권의식이 변화의 출발이 될 수 있음을 또다시 새기게 되었다. 누군가 말했다. 헌법은 가장 진보적인 정신을 담고 있다. 헌법이 가장 잘 구현된 사회가 이상적인 사회라고. 최강욱 변호사의 '법은 정치를 심판할 수 있을까?' 와 김두식 교수님의 '헌법의 풍경'은 잃어버린 법의 모습을 가장 안타까워하면서 그 내막을 친절하게 알려주는 책이다. 촛불로 부터 조용했지만 치열하게 성숙한 주권자들의 모습이 법의 참 모습과 역할을 통해 조금 더 공고해 질 수 있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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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에서 기획한 특강을 책으로 엮어 나오게 된 『정치의 시대』
사실 보니양은 이 사실을 몰랐고,
『정치의 시대』 는 총 6분의 강연자들의 강연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 법이 정치를 심판할 수 있는가? 저자는 시작부터 질문에 대한 답을 한다. 답은 NO!! 법이 정치를 심판하는 도구가 되기보다, 정치를 통해 올바른 법이 만들어져야 한다.
이것이 저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인 것 같았다.
올바른 정치는 주권자의 뜻이 그대로 구현되는 것이고
하지만 정권이 바뀔때 마다 구속되는 전 정부인사들을 보며
이제 더이상 검찰은 정치권의 눈치를 볼 것이 아니라
* 검찰이 반드시 해야할 일 저자는 검찰에 대한 많은 정보를 전달하는데
특히, 검찰의 힘으로 알려진 '수사'를 하는 것에 대해
반드시 해야하는 일을 해주실
* 법은 태생적으로 약자편 마지막으로 인상 깊었던 것은
법이 나한테 무서운 것이 아니라 내가 억울할 때 법이 해결해 줄 것이라는 믿음
하지만 아쉽게도 법률가들이 앞장서서 할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 국민들이 더욱 정치에 관심을 갖고
*정치의 시대 『정치의 시대』는 대중을 상대로 한 강연을 옮겨놓은 책이라
보니양이 읽은 최강욱 변호사님의 강의 뿐만 아니라
보니양도 다른 강연자 분들의 책을 꼭 읽어봐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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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6년 말에서부터 올해 초까지 우리나라는 광장의 민주주의를 보여줬습니다. 초겨울에 참여했던 저는 그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각자가 자신들의 목적과 욕망을 표출하는 것을 생생히 지켜봤습니다. 그들은 믿고 있는 사실과, 그리고 삶의 이해관계 속에서 이를 표출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공통된 의견의 표출은 정치인들을 움직이게 하고, 의회를 움직였습니다. 이렇게 광장을 통해 우리의 의견은 표출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주장, 그리고 제가 믿고 있는 것들 이 모두 옳은 것이라 딱 부러지게 말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보고 듣고 알린 것이 사람이기 때문이며, 이를 해석하고 주장하는 것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생각이 다른 것을 대중 앞에서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권리, 표현의 자유 제가 이 말을 넣은 이유는 한홍구 저자님의 생각이 저와는 같으면서도, 일부는 다름을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광장에서 외치던 우리들은 분명 변화의 매개체였지만, 또한 혼란과 선동의 매개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모두가 평등할 수는 없기에, 저는 이 부분이 대의 민주주의가 있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즉, 상호 주관적이어야 합니다. 서로 견제하고 의견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대통령, 국회의원을 새로 뽑았다고 다 원하는데로, 정의롭게 되진 않을 겁니다. 그건 과거에도 그렇고, 지금도, 미래에도 그렇습니다. 대의 민주주의와 광장, 그 둘은 분명 양립해야 하면서도 평등한 관계를 지속해야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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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라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결코 가깝게 느끼지 않을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어렵고 딱딱하리라 생각했지만 궁금해서 책을 들었다. 정말 예상외로
너무나도 책장이 잘 넘어가서 스스로 놀라웠다. 최강욱 변호사님이 눈높이를 맞추어 용어부터 차근차근 이야기
해 주셔서 계속 읽어 나갈 수 있었다.
용어를 설명해주시는 것에서 이 책 정말 쉽구나, 누구나 읽다 보면
다 읽은 나를 발견하겠구나 생각했다. 용의자가 입건되면 피의자. 피의자가
기소되면 재판에 가서 피고인이라고 불린다. 이때까지 여러 매체에서 많이 들었지만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리고 고소와 고발의 차이도 알게 되었다. 한 끗 차이의 단어로 그저
비슷하게 쓰이는 줄로 알았지만 신고하는 사람이 누구 인가에 따라 본인이면 고소, 주변인일 경우에는 고발이라고
한다.
또 흥미로웠던 것은 정의의 여신상에 관한 것이었다. 우리나라의 정의의 여신상이 다른 모습인 것을 부끄럽지만 처음 알았다. 그만큼
무지하고 무관심했던 것이다. 눈을 가리고, 한손에는 저울을, 다른 손에는 칼을 들고 있는 모습을 떠올렸는데, 우리나라의 그것은
눈을 가리지 않고, 저울과 책을 들고 있었다. 상을 만들
때의 목적은 그것이 아니었겠지만 안타깝게도 그 모습을 보자 마자 법이 사람들을 가려 판단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수남 검찰총장이 자진 사퇴하여 퇴임식에서는 ‘인자함이 지나쳐도 화가
되지 않지만 정의로움이 지나치면 잔인하게 된다.’ 라는 소동파의 시를 인용했다. 그의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할지 모르겠다. 검찰총장을 사퇴하는 이로써
적절한 말이 였을까. 이 책을 읽으며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사실, 정치의 시대책을 받고, 법은 정치를 심판할 수 있을까? 라는 물음이 적인 책 표지를 보고는 법은 그래야 마땅한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읽고 난 이후 나의 생각은 다르다. 지난해 최순실사태가 있을 때, 너무나도 충격적인 사건들이 연이어 나오는 것을 보면서 처음에는 이게 정말인가 사실관계를 따지다가 이후로 갈수록 더 이상 놀라기도 지쳐가며 정치적 피로감을 느끼고 그것이 무관심으로 이어지는 것을 느꼈다. (지금 생각하면 굉장히 부끄럽다.) 하지만 국민들이 촛불을 들었고, 대통령은 탄핵되었다. 이 책을 읽고 현실에 더 다가간 기분이다. 그러나 그 현실들에 주저앉아버리고
뒤돌아서는 것이 아니라 더 큰 관심과 감시, 비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국가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 그리고 약자의 편에 설 법을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