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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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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 왜 살다가 곤혹스런 일을 당하면 산으로 들어가시지 않던가? 산에 들어가 임재하시는 아버지 앞에서 깊이 묵상하고 자기를 비우는 일을 계속하시거든.   예수는 결국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자기를 지우는 일에 성공한 사람이었지요.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십시오'를 최후 순간까지 실천한 사람 아닙니까? 그건 철저한 자기 부정 또는 자기 포기지만 그보다 더 완벽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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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 왜 살다가 곤혹스런 일을 당하면 산으로 들어가시지 않던가? 산에 들어가 임재하시는 아버지 앞에서 깊이 묵상하고 자기를 비우는 일을 계속하시거든.

 

예수는 결국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자기를 지우는 일에 성공한 사람이었지요.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십시오'를 최후 순간까지 실천한 사람 아닙니까? 그건 철저한 자기 부정 또는 자기 포기지만 그보다 더 완벽한 자기 긍정이 없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특히 불가의 禪防에서 흔히 있는 일인데, 절실한 선생이기 때문에 제자에게 주먹을 후려치거든, 그러면 또 깨달음의 순간 제자가 선생을 후려친단 말씀이여. 그래도 선생은 깨달은 제가가 그 엄청난 근원에 도달한 것을 보고 희열에 넘치지 않는가? 두들겨 맞으면서도 말이야. 바로 그게 중요한 거라.

 

그럼 그것이 자연의 란 말이지.

 

하긴 사철이 운행하는 걸 보면 그렇습니다. 봄은 봄이 할 일을 열심히 하지요. 그래서 싹이 나고 움이 돋고 꽃이 피고 하다보면 어느새 여름이거든요. 여름은 여름의 일을 한 다음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어느새 가을이 와 있지요. 어느 철도 자기 공을 내세워 그것을 소유하려고 하지 않는단 말씀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공을 다투고, 나아가 자기의 공이 아닌 것까지 차지하려고 하니, 얼마나 자연의 와 거리가 먼 모습입니까 

 

 

사람이 자기가 만든 것에 노예가 돼서는 안 되지. 그러니까 일체로부터 자유로운 존재가 되자는 건데 그것은 여기서 노자가 얘기하는 바, 와 합일했을 때에 비로소 가능한 일이라. 인간이 스스로 설정해 놓은 질서 속에 묶여서는 안 된다는 얘기지. 그래서 옛날에 석가라든가 그런 분들이 제자들에게 자기를 넘어서라고, 자기를 깨뜨리라고, 그러시잖았는가? 내가 무슨 말을 했다고 해서 거기에 묶여 돌아가지 말라는 거야.

 

엊그제 한 후배가 와서 저에게, 공동체 운동을 좀 해야겠는데 분명하지 않다고, 뭘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그래요. 그래서 제가 웃으면서 공동체 운동에 대해서는 그렇다 치고 그럼 너에게 분명한 것은 뭐냐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한참 생각한 끝에, 하느님을 잘 믿고 그 말씀대로 사는 것이라고 그러더군요. 전도사거든요. 그래서, 그럼 우선 너에게 분명한 것부터 실천하라고, 그러다 보면 그게 공동체 운동으로 될 수도 있고 사회 변혁 운동으로 될 수도 있는 게 아니겠나요, 그렇게 대답해 준 일이 있었지요. 물론 그것과 이것이 별개의 것은 아니겠지만, 우선은 자기에게 분명한 것부터 시작해야지, 잘 모르겠는 것을 잡고 뭘 해보려고 하니까 억지도 부리게 되고 술수도 부리게 되고 그러는 게 아니겠습니까 

 

노자가 말하는 무지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그런 무지가 아니거든. 죄다 겪고 난 뒤에 그것들을 넘어서는 무지란 말이여. 사실이지 사람들이 너 지금 뭐 하느냐고 물으면 대답할 게 별로 없고 무엇을 희망하느냐고 물으면 그것도 없고…… 그냥 사는 게 하루하루 즐거울 뿐이지. 그냥 즐기는 거라. 고요하여 아무 의도나 욕심이 발동하지 않으면 천하가 스스로 바르게 되는 거라. 사는 것도 죽는 것도 결국은 세상사 아니겠나 

 

 

임진왜란이 끝나고 일본에 통신사로 다려농 사명대사에게 선조가 영의정을 제수하려고 했을 때, 그때 사명당의 대답이, 소승은 그 자리를 받을 수 없다고 말이지, 소승은 솔바람 부는 산속에서 칡덩굴 사이로 달빛이 비추는 그 속에서 뭐냐 하면 좌선이라도 하고 있는 게 맞지 저에게는 그 자리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그렇게 고사하고 떠나거든. 그게 그러니까 뭐냐 하면, 선승이, 를 닦는 사람이 자기 주변에서 사람들이 어려운 일을 겪을 적엔 말이지 스스럼없이 떨치고 일어나서 그들을 도와주다가 그 일이 다 끝나면 공적을 다투거나 세상이 주는 명예와 부를 누리려 하지 않고 다시 제 자리로 초연하게 돌아가는 거라.

 

야나기다 세이잔이 쓴 달마를 읽자니까 이런 말이 나오더군요.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에게 맡기지 않고 사물에 맡기기 때문에, 취함과 버림도 없으며 거스름과 순응함도 없다. 어리석은 사람은 사물에 맡기지 않고 자신에게 맡기기 때문에, 취함과 버림이 있으며 거스름과 순응함이 있다. 만약 마음을 활짝 열고 사물에 맡겨 최후로 천하를 잊을 수 있다면, 이것이 바로 사물에 맡겨 시간에 따르는 것이다. 사물에 맡겨 시간에 따르는 것이 易行이며 저항하여 사물을 변화시키는 것은 難行이다. 사물이 오면 그에 맡겨 거스리지 말며 떠나가면 떠나가는 대로 좇지 말며 무엇을 말하였든지 간에 지나간 것은 후회하지 말며 아직 오지 않은 것은 염려하지 말라. 이를 두고 을 행한다고 한다."

 

 

전에 형무소에서 보니까 사형수들이 있어. 대개 사형수들이 죽음을 기다리면서 하루하루 살아가는데 혈혈단신 지독한 외로움을 느끼게 마련이지. 그렇게 됐을 적에 뭐냐 하면 형무소에서 주는 밥을 사분지 일쯤 남겨가지고 창가에 새들 먹으라고 놔주기도 하고 또 마루 구석에 쥐를 위해서 놔주기도 하는데 새들이 와서 사형수 어깨에 앉기도 하고 머리 위를 날아다니기도 하고 또 쥐는 사형수 손바닥에 안기기도 하고 그러더라구. 그러니까 세상에 대한 미련도 없고 俗氣라고는 털끝만큼도 없는 사형수들한테는 말이지 그런 미물까지도 다 형제요 벗이 되는 거라.

 

경남 어느 암자엔가 독사하고 한 방에서 살아가는 스님이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빨을 뽑거나 한 것도 아닌 완전한 독사인데 한 방에서 살고 있답니다. 낯선 손님이 들어오면 한 구석에 또아리를 틀고 잔뜩 경계하다가 스님이 손님한테 잘 얘기해서 뱀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풀어지면 뱀도 경계심을 늦추고 부드러워진다는 거예요.

 

YES마니아 : 플래티넘 y****a 2020.09.01.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