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종교는 더 나은 인간을 만들어줄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학생들이 교과서를 배우듯이 불자들도 붓다의 가르침인 경전을 배워야 합니다. 이것이 바른 불교 공부입니다. 우리 스님이 많이 하는 말이기도 하다. 학생이 학교에 교과서를 가지고 가듯, 불교신자가 경전을 가지고 절에 가는 것이 당연하다. 보시금을 많이 내고 울력에 많이 참가하는 신도들을 보면 존경스럽다. 그러나 그들을 보면 불교를 제대로 알고 익혀서 실천하는 모범신자들이다. 붓다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비구들이여. 마치 연금술사가 금을 정제해서 잘라 보거나 태워보거나 긁어보는 것처럼, 너희도 내가 설한 법을 두루 살펴보아야 한다. 그래서 이것이 정말로 내 마음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 실질적으로 내 마음을 변화시켜 주고 있는가를 살핀 다음에 나의 법을 믿고 따르고 의지하라’ 종교는 삶의 철학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무조건 믿고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공정한 마음으로 옳은 가르침인지 먼저 살피고 이를 배우고 실천해야 한다. 물론 이를 배우고 실천하는 데는 강한 의지가 있어야 한다. 삶의 기준이 되어줄 종교관을 선택하고 지속하는데 ‘엄마가 절에 다녀서 같이 가요,’ ‘어쩌다 그냥 절에 가게 되었어요’ 흔히 말하는 모태신앙자거나 어쩌다 불교신자의 종교관은 피해야 한다. 불자라면, 붓다의 법을 제대로 아는 것이 기본이다. 종교의 시작은 공정하게 알아가는 것에서 시작이다. 붓다는 위대하니 붓다의 말씀은 무조건 옳다. 그러니 무조건 받아들이자는 것은 곤란하다. 법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붓다의 가르침이 과연 이치에 맞고 현실적인 것인가? 불교가 내 마음에 어떤 변화를 줄 수 있는가? 곰곰이 생각한 뒤에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오직 나만 믿고 따르라 하는 신앙은 위험하다. 다양한 종교가 있음을 인정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신앙심을 기르되 제대로 알고 나에 맞는 종교와 수행법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어쩌면 종교를 믿고 안 믿고가 중요한 게 아니다. 내게 맞는 종교, 종교관이 무엇일까. 아마도 존재하는 모든 삶, 물건, 상황을 의미있게 만들어 나에게 의미있는 것이 되어야 한다. 내적인 가치를 키워갈 수 있는 힘, 마음 자세가 있다면 내면이 강한 사람이 될 것이다.
나는 30세가 되기 전까지 종교가 무엇입니까, 물어보면 “저를 믿어요. 믿을 건 세상에 저뿐입니다.” 답하곤 했다. 나는 안하무인이었고 자기중심적이었으며 의심이 많고 남을 쉽게 믿지 않는 성격 때문에 이렇에 대답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내가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을 즈음, 내 마음에 와 닿는 말씀 하나를 접했다. 그 글 속에서 내 삶이 바뀌었다. 그 큰 어른이 스님이셨고 그 스님의 글을 읽다가 불교신자가 되었다. 종교를 통해 내 삶의 철학적 종교관이 생겨난 것이다. 물론 그 후로 규칙적으로 절에 가거나 법회 참석을 하지는 못한다. 백팔배를 하며 참회를 하는 것도, 기도하는 삶을 사는 것도 아니다. 나에게는 그렇다할만한 절도 없고 경전도 없다. 바쁘다는 뻔한 핑계다. 그저 내 마음에 절을 짓고 책 속에서 종교가 주는 힘을 배우고 조금씩 실천할 뿐이다. 그러면 되는 거다. 나에게 종교는 장엄할 필요가 없다. 내 종교는 소박하지만 강하다. 종교적인 문제로 서로 다투고 고집을 부리고 심지어는 전쟁과 죽음으로 퍼져나간다. 종교를 가졌고, 가지지 않았고는 주요한 게 아니다, 나와 다른 종교를 믿는다고 해서 차별과 분별할 필요도 없다. 윤리와 도덕을 가지고 살아가는 바른 사람들이라면 굳이 종교를 가진 자와 가지지 않은 자를 구분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같은 인간으로서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