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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감정을 조금씩 떼어 섞고, 주무르고, 이리저리 포개 보아야 그나마 어렴풋이 이해할 것 같은 난해한 감정이었다. 말로 어떤 장면이 충분히 해석되지 않을 때가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119페이지)
'말'에 대해 생각한다. 머릿속에서 생각하지만 멈춰있는 게 아니라 소리가 되어 나오는 말. 그렇게 쏟아낸 말은 공감을 이루기도 하지만 오해를 부르기도 한다는 걸, 항상 그 말이 어떤 사건의 단초가 되기도 하다는 걸, 안다. 그래서 더 어려운 게 말이 되어버렸다. 언젠가부터 그 말은 점점 줄어들었고, 타인을 이해하는 말은 더 아끼게 되었다. 내가 하는 말의 높이와 상대가 하는 말의 높이가 다르다는 걸을 알게 되면, 말의 아낌은 더 많아진다. 같은 것을 보고 있는데도 다르게 나오는 말들이 우리 삶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알아서였다. 그러니 말이라는 건, 그냥 최소한의 의사소통 수단이 되곤 했다. 상대가 오해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적당히, 이해하고 공감하지만 부담스럽지 않게... 그래서였을까. 말이 줄면서 동시에 표현도 줄어들더라는 이상한 결과를 얻었다. 어쩌면 이상한 게 아니라 너무 당연한 거였는지도 모른다. 말이 줄어드는데, 표현이 늘어날 수가 없지 않은가. 이 책의 부제가 더욱 눈에 들어오는 이유는 그래서였다. '말이 닿지 못한 감정에 관하여' 우리가 이야기하고 싶은 걸 쏟아내지 않을까 하는 궁금증으로 읽기 시작했다.
때로는 의도와 상관없이 내뱉은 어떤 말들이 누군가를 난처하고 부끄럽게 만들 수 있다는 걸, 그로 인해 말로 빚을 질 수 있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나는 그날의 감정을, 살면서 한두 번쯤 의무적으로 마주해야 할 과제쯤으로 생각한다. 변변치 않은 말 앞에서 한참을 머뭇거리다 고른 말이, 못내 미안할 때가. 그렇게 말을 고르더라도 별 소용이 없어서, 말이 모자라다고 생각될 때가. 그런 때가 우리에게 몇 번쯤 있었다. (34페이지)
뭐라고 해야 할까. 많은 부분 공감하면서 읽었는데, 막상 그 느낌을 표현하는 게 너무 어려운 책이었다.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한다고, 그런 순간을 건너와서 상대와 더 애틋해졌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그게 다는 아니었다. 이해나 공감 같은 걸 넘어서서, 말이 전하는 감정을 그대로 느끼고 있다고 말해야 했다. 그가 골목 어귀에서 만난 사람들, 힘들어서 말이 사라질 것만 같은 노동의 현장에서도 이루어지는 말들,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뤄놓은 현재의 삶에 녹아든 흔적들. 세상에 무수히 많은 사람이 그렇게 내놓고 담아가는 말들을 그는 부딪치면서 들었다. 말이 다 하지 못한 말들을 눈으로 마주하고 감정으로 들었던 거다. 늘 말의 뒤에서 의도와 다르게 읽히는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일을 경험하지 않고서는 이해할 수 없는 순간들을 겪는다. 그런 말이 전하는 외로움을 진정으로 들을 수 있다는 게 위로였고, 공감이었다.
나는, 내 위로가 누군가의 슬픔을 기피하려는 변명처럼 들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슬픔은 늘 일인칭이었다. 누가 대신하여 아파준다는 말은 실행력이 없었다. 누가 먹어준다거나 들어줄 순 있어도, 아파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여, 슬픔을 이해하는 데에는 많은 말들이 필요했다. 그래야 조금이나마 그 슬픔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정성을 다해 주물을 매만져야 보기 좋은 형상이 나오듯, 대상에게 깊이 물이 들어야 구체화될 수 있다. (243페이지)
작가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다. 이 책도 읽으려고 해서 읽은 게 아니었다. 그저 우연처럼, 실수처럼 내 손에 들어온 책이었다. 그러니 기대도 없었던 건 당연하다. 그렇게 펼친 책에서, 오히려 일부러 골라 읽었던 책보다 더 가깝게 다가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문장들 속에서 작가는 여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어느 부분을 읽다가 작가가 남자라는 걸 알았다. 사실 그런 부분이 아니었다면, 나는 어떤 선입견에 작가가 여자일 거로 생각하고 계속 읽었을지도 모르겠다.
타인의 아픔을 이해하는 일은 어렵다. 가능하지도 않다. 다만 그 아픔에 내 말이 전해지기를 바라는 순간이 생겨날 뿐이다. 완전한 치유가 아니라, 그 아픔을 공유하고 있다는 마음이 전해지기를 바라는 거다. 그건 우리가 말을 '주고받는다'는 걸 증명하는 일이다. 우리가 겪는 슬픔은 늘 우리의 몫이기에, 작가의 말처럼 '슬픔은 늘 일인칭'이기에 누가 대신 아파해주고 이해해준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여겼다. 그런 불가능을 공유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 한계를 넘어갈 도구가 필요했다. 내 안의 말이 가 닿아야만 했다. 상대의 슬픔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노력이어야 했다. '뽈'을 차러 가서도 외로운 아버지, 손끝에서 완성되는 옷에 감춰둔 어머니의 자존심, 평생 이어온 이발소를 정리하며 마지막으로 손자의 머리를 잘라주던 할아버지, 아버지의 마음을 읽어보고 싶다며 두부를 팔던 남자. 말은 분명 우리 마음을 전하고 표현하는 수단인데도, 그게 다 전해지지 못하는 미완성으로 남을 때가 많다는 걸 말하려는 걸까. 말이 다 들려주지 못하는 감정들에 다가가기 위한 우리의 몸짓을 이렇게 보여주려는 걸까.
말들은 수시로 내게 찾아와 버려지거나 읽혔다. 그건 어머니의 삶이 내 삶에 보내는 안부 같은 걸지도 몰랐다. 그래서 문득, 내가 누군가의 말을 따르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때마다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내 삶이 한 삶을 품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그러니까, 철을 넘기면서 동시에 말도 넘어온 것과 다름없었다. (202페이지)
여전히 밤은 어려웠고, 잠 못 들게 하는 게 도대체 무엇인지 해명하는 말들도 어려웠다. 그래서 나이가 든다는 건 말이 쉬워지는 것이라고, 다룰 수 있는 말의 가짓수가 점차 늘어나는 것일 거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소통은 말로 이뤄지는 게 아닐지도 몰랐다. 누군가에게 아픔을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데에는 단순히 ‘말’이 필요한 게 아니었다. 그보다는 일종의 ‘경험’이 필요했다. 대개 말은 누군가에게서 흘러나와 또 다른 누군가에게 들어가고, 그건 한 삶이 다른 한 삶에게 보내는 우편 같은 거니까. 말의 종착지는 결국 누군가의 삶이고, 하여 자신의 범위 내에서 이해 가능할 뿐이라고. (192~193페이지)
저마다 가진 말의 높이를 계이름으로 말하며, 그 말의 표현으로 감정을 읽는다. 너무 높아서, 너무 낮아서 닿지 못한 말들 때문에 우리는 외롭고, 아프고, 상처받고, 오해한다. 너무 가벼워서 상대에게 가 닿지 못하고 날아가 버린 말들에 더 외로워지곤 한다. 일상처럼, 습관처럼 주고받는 말에서 우리가 마주한 감정은 상대의 삶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자기만의 사연을 표현하지 못하고, 안부를 묻기 어렵고, 이해가 버거웠던 순간들을 마주할 때 필요한 건 말이었다. 온몸으로 읽어야 하는 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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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을 때도, ‘이 것이 에세이일까? 소설일까?’라는 자문에 빠져들곤 했습니다. 물론 카카오 브런치북에서 대상을 수상한 공감 에세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요.
그리고 책을 다 읽고 나서는 뭐라고 써야할지 고민하게 되네요. 만약에 한줄평 같은 것이
가능했다면, “아름답고 아련한 글”이라고 정리해보고 싶지만, 그 곳을 구체화시켜서 글로 풀어내는 것이 참 어렵게 느껴지는 시간입니다.
어쩌면, 소통에 대한 글이 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사람들은 소통을 하는 도구를 ‘말’로
생각하곤 하죠. 하지만 소통에 필요한 것은 ‘경험’이라고 하더군요. 누군가에게서 말이 흘러나와 도착하는 곳은 바로 또
다른 누군가의 삶이고, 그래서 그 사람의 경험의 범위만큼 이해할 수 있는 것이죠. 어쩌면 저 역시 경험이 부족해서, 이 책을 읽고 나서 막연한 고민에
휩싸인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러고 보니, 제가 생각한 한
줄보다는, “타인의 아픔을 섬세하게 표현하는 능력이 탁월하다”라는
평에 ‘좋아요’ 버튼을 누르고 싶어지는군요. 이 책을 정말 잘 표현한 한 줄이거든요.
사실 제목을 좋아했기 때문에, 제목부터 참 아름다운 <당신의 계이름>이라고 말하고 싶네요. 그리고 이 책을 쓴 사람은 ‘이음’
입니다. 내용도 좋지만, 이규태의 그림 덕분에
따듯한 느낌이 책장을 감돌았는데요. 전에 <마티네의
끝에서>,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를 읽으면서, 그림이 좋다고 생각했는데, 같은 작가의 그림이었더군요. 책 제목과 작가의 이름이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데요. 수많은
계이름이 어우러져 연주되는 음악회를 가면, 시작 전에 악기의 음을 조율하는 시간을 갖지요. 이처럼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계이름으로 표현한다면, 이를 어우러지게
하는 것 역시 사람들이 이어져서 그 음을 조율하는 과정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그런 생각을 한
거 같습니다.
지금을 ‘초연결사회’라고
부르지만, 사람들의 마음이 연결되는 것은 참 부족한 시대라는 생각도 합니다. 모든 것이 가상의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경향이 있어서인지요. 왠지
예전보다 사람의 가치에 대한 평가가 많이 떨어지는 기분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가장 기억에 남았던
‘다정했다가 무심했다가’라는 글에서도, 처음에는 “대우를 바라지 않고도,
나서서 존중을 권했”던 남자의 화법을 배우고 싶다는 마음이 컸지요. 하지만 금새, 적어도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말을 쉽게
던지지 않은 것이 우선이겠지 라는 생각을 하는 것을 보면, 저 역시 말을 곱게 하는 편은 아닐지도요. 책을 읽으면서 참 이런저런 생각에 자주 빠져들게 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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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당신의 계이름 제3회 카카오브런치북 프로젝트 대상 수상작인 당신의 계이름. 사실 요즘에 카카오로 나오는 책이 굉장히 많고, 그 책들이 다 실시간으로 독자들에게 공감을 받아서 나온 책들이라 나온 것들 중에 참 좋은 책들이 많아서 기대했는데, 기대한 만큼 <당신의 계이름> 역시 읽으면서 참 마음이 따스해졌던 그런 책입니다.
이 책은 저자가 일본여행을 갔다가 아이들이 이름을 부르는 것을 보고 착안해서 <당신의 계이름>으로 제목을 짓고, 저자의 이야기, 나의 이야기, 당신의 이야기를 대변해서 적은 내용의 글입니다. 저자의 경험담이지만, 우리가 살아가면서 충분히 겪을 수 있을만한, 그렇지 않더라도 공감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는지라 글을 읽는 내내 정말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가 서로 상처를 주기도, 서로 위로를 주고 받기도 한 순간들이 담겨있는 <당신의 계이름>
책은 약간의 그림과 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림이 참 따스한 색감이라서 읽는 글의 내용과 잘 어울려서 읽는 동안 더 마음을 울렸던 것 같습니다.
생각을 담은 글인데, 여러 챕터 글 중에서도 표현이 너무 좋았어요. 긴 시차를 두더라도 삭제되지 않는 장면. 그런 장면이 나에게는 어떤 장면일까.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글이었어요.
에필로그입니다. 처음 출판 계약서를 받던 날의 기억. 저도 언젠가는 글을 써서 출판을 하자는 목표를 가지고 있기에, 저자분의 설렘과 긴장이 같이 느껴지더라구요. 그저 살아가면서 있었던, 있을 수 있는 글을 담았지만 글을 읽으면서 얻는 것은 그냥 공감이 아니라 더 큰 따스함이었던 <당신의 계이름> 더운 여름철, 시원한 선풍기 앞에서 차분하게 읽을 수 있는 따스한 책으로 추천드립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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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에 이해한다는 말대신, 지금의 당신에게 물들어 볼께요라고 되어있다
아무런 댓가도 아무런 설명도 필요없이 물들어 간다는 것 그것은 조용한
몸짓이라는걸 말이다. 책마지막 문장에 서로가 서로에게 물드는 찰나의 이야기를
전한다.
슬픔을 대신하여 아파해 줄수없다는 말, 그래서 서툰 사람은 많은 말들이 필요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슬픔을 위로해줄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말이다
지인에게 면도기를 우연히 받으면서 아무 생각없이 건넸던 이야기가 그사람이 자신에게
먄도기를 선물을 할줄은 몰랐다는 것이다
하지만, 받은 면도기로 이젠 면도를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불편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감정이 남아돈다. 그렇게 그사람에게 물들어 버렸다
이젠 자신이 그녀에게 물들어 버린일이다 그녀는 힘든 일을 마치고 집으로 와서는
고단한 몸을 주체하지못하고 쓰러지고 만다. 그런 그녀를 뒤로하고 글을쓰고자한다
자신을 위해 그녀 자신의 삶을 포기한듯하게 말이다. 등을 긁어달라는 그녀의 등을
긁어주면서 전하지 못한 감정들을 손가락사이로 드러낸다
예정된 일은 아니지만 배가고파 국밥집에서 국밥을 말아먹는 그녀의 충혈된 눈을 보고
자신의 아픔마저 그녀가 지닌 몫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을 위해 불편한 삶을 기꺼이
짊어지겠다고 말이다.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물들어간다. 몸과 마음으로 말이다
뽈을 차고 온다는 아버지 이야기이다
이젠 더이상 사회생활을 영위하지 못하는 이시대의 아버지이다. 아버지가 실업을 하게되면서
일어나는 일이다. 온종일 집밖을 나서지 않는 아버지.그누구도 아버지를 찾지 않았다
아니, 아무도 없다는 표현이 맞는듯하다.
유일하게 하는 일이라면 그건 바로 축구였다. 그런데 늘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던 아버지의
기가죽은 모습을 보고는 아무렇지않게 말을 건네고만다. 왜 안끼워주냐고 말이다
마지막 아버지의 자존심까지 무너뜨려 버린것이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아버지에게서 모든것을 지워버리게 만들어버린 일들은 한마디 말로 누군가를 상처를주고
누군가에게는 삶을 뺏을수 있다는것을 깨닫게된다.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고 말이다
언제나 사람들은 모든걸 자신의 위주로 생각하고 판단하게 된다, 그것이 가정이던 직장이던
말이다, 받아들이는 사람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런데 그것까지 고려한다는것은 받아들이는 사람도 또한 상대방을 배려할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어야한다
그렇지않으면 혼자 마음 아퍼하고 과로워 하니 말이다, 상대방은 전햐 이해와 배려심이 없음에도
말이다,
전달하지 못한 상황과 말들이 존재함에도 그럼에도 함께 살아가는것은 서로가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앞서기 때문이 아닐까한다
그래서 혼자 마음 아파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이세상에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존재하기 때문에 말이다
일일이 이해시킬려고 할 필요는 없다. 그건 상대방의 마음이 조금씩 열려야 해결할수 있다고
본다. 그러기 전에는 억지로 열필요가없다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 애쓰는 마음보다는 자신의 마음을 추스리고 감정을 달래고 되돌아
보는 시간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전하지 못한 말들 , 어릴때 이해하지못한 숱한 말들, 감정들. 말이아닌 몸짓으로 대화
를 나누던 어른들을 세상은 이제는 많은 말일 필요없음을 알게된다
눈빛으로도 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수 있는 시간이 오기 때문에 말이다
그저 한사람으로 묵묵히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의 몫을 하면된다, 그리고 아무런 위로도 필요
없다는 것을 알게될것이다, 그냥 같이 들어주면 된다는 것을 말이다
이책이 전하고자 하는 수많은 이야기들, 그리고 전하지 못한 이야기들도 많이 있을것이다
하지만, 이책 하나만으로 이해하기는 쉽지 않아보인다. 기대한만큼 가슴에 스며들지 못했던
이유이다. 뭉클한 순간도 있지만 조금은 집중해서 전달할려고 하는 내용이 산만해보인다 |
![]() ![]() ![]() "이해한다는 말 대신, 지금의 당신에게 물들어 볼께요" 이 보다 더 내 마음을 반영하는 말이있을까? 예나 지금이나 마음이라면 잘 들어 주고 싶고, 손도 잡아 주고 싶고, 당장 달려가고 싶지만, 마음과는 달리 말이 이리도 궁색하고 이리도 적구나 싶은 나 자신을 반영하는 이 한줄의 책 소개 글을 보자마자, 꼭 읽어야겠구나했지요. 말을 잘하는 재주를, 아니 아파하는 이들의 마음을 잘 위로하는 말주변을 가졌다면 싶다. 이럴땐 어떻게 해야 하나? 난 뭘 하고 있어야 하나? 지금도 여전히 인생의 유일하면서 오랜 절친이 친구의 인생에있어 가장이라고 표현해도 될지 모르겠으나 혼자서 지나기 힘든 시간을 지나고 있슴에도 불구하고 그냥 서성이고만 있다. 책을 열어 보면 가끔씩 하나의 제목씩 한주에 걸쳐서 읽고 실천하라는 과제가 주어지는 책이 있다. 그렇지만 언제 실천까지 한단 말인가. 그냥 쭉쭉 읽고 마는데, 이 책 [당신의 계이름]은 감상에 젖어 진도 나가기 너무 좋은 책인데 한 가지 이야기씩 읽으며 깊은 감흥에 젖었다. 책 뒤, 에필로그 부분에 작가가 처음 작가가 되던 싯점의 이야기가 언급되어있는데 출판사로부터 "문장이 좋아요" 라는 말을 들은것이, 그래서 작가로 계약을 시작하게 된 것에 같음 공감을 했다. 저자의 세심한 마음씀에, 그런 글이 좋았다. 혹시 자신이 쓴 글이 마음에 쓰였는지 글에서 언급한 자신의 부모님께, 다른 이들에게도 조심스럽게 자신의 마음을 전달 한다. "사람의 감정을 한 단어에 가두거나 쉽사리 연민하지 않기 위해 삶과 사람을 잇는 말을 관찰하고 매일 조금씩, 조심스럽게 글을 옮겨 적습니다" - 책날개에서.. 말도 글도 사실은 자신을 전달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세월이 흐르면서 더 느낀다. 지금보다 훨씬 전에는 그런 비중을, 무게를 알지 못했다. 그냥 쓰고, 그냥 말했는지도. 지금보다는 좀더 가벼운 무게로 말이다. ![]() "아무렇지 않아요. 괜찮습니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자신의 아이를 해명하는, 하루 24시간을 쩔쩔매는 그녀의 시간을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한 마디로 그를 안심시키고,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상담이라는 분야가 폭넓게 인식되고, 공감이라는 소통이라는 단어가 우리들 사이에서 자주 언급되고, 중요하게 인식되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사람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너무 곤란하지 않은가 생각하는 요즘이었는데, 최소한 이 책을 시작하게 된 나 자신의 고민에 대하여 아주 다소나마 그래. 이런 고민이 어쩌면 맞는 것이지. 쉽게 이해하고, 말해 줄 수 있는 말이 가뿐히 떠오르는 재주라는 건 처음부터 없는 것이구나. 아니 바래지도 말자 싶다. 예능 프로를 너무 심각하게 해석하는 면이 없지 않아 있긴 하지만^^; 런닝맨 362회에 박서준과 강하늘이 출연했던 이야기를 잠시 빌려 보고자 한다. 이날 여느 때와는 달리 이광수는 그간의 자신의 캐릭터와는 전혀 다른 '비밀 경찰' 역을 맡는다. 자신을 경찰들에게 어필해야 했기에 그는 너무 정직하고, 노골적으로 자신의 신분을 노출하고 계속해서 어필하고, 다른 이들의 어필이나 교란 작전에 심각해하고, 심지어는 다른 때와는 달리 그의 존재감이 위협을 받기까지 한다. 마지막 부분까지 경찰들은 이광수를 제지하고, 그의 말을 믿어야 할지 계속 갈등 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보아왔던데로 이광수라는 캐릭터에 대하여 마음을 쉽사리 내려놓지 못한다. 이날 방송을 보면서 인간이란 이런 존재구나. 내가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 누군가에게 어떤 말을 해준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내 감정이고 내 생각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 아니겠는가. "이해한다는 말 대신, 지금의 당신에게 물들어 볼께요" 이해한다는 말 대신, 지금의 당신에게 물들어 본다니... from 오렌지자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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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의 선입견으로 '계' 에 대해서 가볍게 생각했다. 엄마의 계, 아빠의 계, 아줌마의 계 등으로 생각했다. 두레, 공동체 등의 표현보다는 동네 계 모임 등으로 생각했음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책을 펼치는 순간부터 오래된 계의 선입견은 사라졌다. '말이 닿지 못한 감정'에 관한 이야기들이 전개되어 있음을 보았다.
사람들은 언어를 통해 소통한다. 언어는 소통의 중요한 도구이다. 그렇지만 현대인들은 말 속에 담겨있는 감정과 표정 등을 드러내지 않고 문자로 소통하기를 원한다. 문자가 보편적인 소통의 수단이 되었기 때문이기도 한다.
누구에게도 간섭 받지 않고자 하는 것이 현대인들의 특징이다. 혼자만의 세계를 꿈꾸며 살아가지만 결코 혼자만의 세계를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인생은 더불어 살아가야만 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살아가는 삶속에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낸다는 것은 쉽지 않다. 감정에 따라 살아간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것이다. 밤 하늘에 떠 있는 별들처럼 우리들의 다양한 감정을 조화와 균형속에 정리해 사용한다는 것은 사람들과의 관계속에 매우 필요하다.
말로 표현되지 못한 감정을 우리는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해야만 한다. 표현되지 않는 감정은 결국 흐르지 않는 물이 썩듯이 우리의 감정의 병이 들게 된다. 그게 저자는 단전된 암실로 표현하고 있다.
요즘 간간히 고독사에 대한 뉴스가 화제가 된다. 고독사에 대한 현실문제에 정부가 대처해야 한다는 요구가 대두 되어지기도 한다. 혼자만의 세상을 살아가다 혼자 삶을 마감하는 쓸쓸함이 모두에게 동정심을 갖게 한다. 그러나 어느누구도 혼자만의 세상을 꿈꾸지는 않는다. 감정적 동물이기에 혼자서는 살 수 없음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혼자는 외롭다. 혼자는 두렵다. 혼자만의 세계는 어느누구도 원하지도 바라지도 않는다.
결국, 인생은 감정을 나누며 살아가야 한다. 왜곡되고 변질된 감정을 나누자는 것이 아니다. 서로의 아름다움과 사랑, 아픔과 눈물 등을 나눌 수 있는 건강한 사회가 되어야만 한다. 서로에 대한 배려와 관심을 기울이며, 서로를 품고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적 모습을 다시금 회복되어야 한다. 가족이라는 굴레에서 다양한 관심사를 함께 나눌 수 있는 소통된 감정 나눔의 세계와 공동체를 이루어갈 때 새로운 계의 모습들이 형성되어질 것으로 본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현장의 면면과 사회를 바라보며 살아가는 자신의 세계를 오버랩하여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본다. 우리는 감정적 반응을 정직하고 나누는 공동체에서 살고 싶어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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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회 카카오 브런치북 프로젝트 대상 수상작으로, 책의 제목은 한 사람과의 관계를 파악하는 데에 있어 그 사람이 이제껏 불러온 이름들의 음을 헤아려 보는 것만큼 좋은 건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짓게 되었고 타인의 이름을 열심히 불러본 흔적들을 모아 쓴 책이다. 저자의 이야기이자 우리의 이야기이기에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사람 사는 세상을 전한다. 소중한 추억들을 모아 놓은 기억의 보물상자에서 꺼낸 듯,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친숙하고 편안했다. 거기에 동화 같은 그림이 더해져 더욱 따뜻하게 다가온다. 저자가 풀어놓는 이야기 보따리들을 듣고 있다보면 나도 모르게 어느 순간 깊게 빠져들어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 어린 시절을 회상하기도 하고 일기인 듯 소설인 듯한 글에 매료되어 마음을 쉽게 빼앗겨 버린다. 평범한 일상이 담겨 있지만 화려하지 않고 꾸밈없는 글에서 저자의 소박한 성품이 느껴졌다. 마치 눈 앞에서 펼쳐지듯 생생한 표현이 가득한 이야기에 단숨에 몰입되어 이야기의 끝은 어떨지 궁금하고 끝이 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팍팍한 현실에 조금이나마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그렇기에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책이었기 때문이다. 영원히 이런 기분 좋은 느낌을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람과 사람 사이, 그 관계의 고리에 있는 무수한 계이름들을 발견한다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저자는 말들의 몸짓을 읽어내고 글로 표현했다. 앞으로 그려나갈 저자의 계이름들이 기대되는 이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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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말보다 글이 편한 것 같다. 말로는 정리되지 않는 것들이 글을 쓰다보면 하나 하나씩 정리되곤 한다. 가지런히 써내려간 글을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내가 내게 위안을 받는다. 그게 글을 쓰는 이유가 되었던 적이 있다. 문학을 옆에 둔 이유였기도 하다.
이음 작가의 [당신의 계이름]은 말이 닿지 못한 감정에 관하여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이해한다는 말 대신, 지금의 당신에게 물들어볼게요라는 푸른빛의 문장은 슬며시 내 마음에 다가왔다. 나도 같이 당신의 계이름에 물드는 시간은 1장부터 4장까지 이어진다.
당신의 계이름의 곳곳에는 이규태 일러스트레이터의 시선이 담겨있다. 푸근하면서도 정겨운 그의 시선은 보면 볼수록 따듯함이 밀려왔다.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시간은 이음 작가의 말과 이어져 잔잔히 내 마음에 스며 들었다.
![]() 일기처럼, 때로는 편지처럼 써내려간 이음 작가의 [당신의 계이름]에 담긴 그의 말은 상처로 가득한 마음의 어느 한 부분을 살뜰하게 어루만져주는 느낌이 들었다. 한 줄 한 줄, 그가 써내려간 문장을 읽으며 정림동에 가고 싶어졌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정림동에 가서 나는 그의 계이름에 물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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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서평을 쓰기 힘든 책은 참으로 간만에 만났다. 세상사, 여러가지 사람과 그만큼의 감정들이 많고 그렇게 수많은 사람과 감정들이 만나 생겨나는 또다른 세상이 주는 온갖 에피소드와 미세한 차이와 결을 가지고 있는 저마다의 세계가 있지만 이음 작가의 <당신의 계이름>은 "내가 읽고 있는 것이, 에세이인가? 소설인가?"하고 자꾸 작가의 말을 들춰보게 하는 책이었다. 말 그대로, 말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 순간을 작가가 길어올려서 '차갑지 않은 시원한 바람'으로 내 마음 속에 흘려보내는 느낌을 말이 닿지 못한 감정들을 실어내는 이야기마다 수묵화의 농담처럼 제각각 느꼈다. 작가의 에필로그에서 밝힌 바와 같이 작가의 무대에 펼쳐진 '평생을 여전한 내 부모'의 일상의 사소한 모습들. 나의 부모로 만난 존재이지만, 또 하나의 남자고 여자이며, 사람인 그들의 뒷모습과 말하지 못한 말과 표현하지 못한 감정들이 물방울처럼 섬세하고 비누방울처럼 아려서 이 책을 읽는 내내, 울컥거리는 감정에 나의 부모이자 내가 세상에 태어나 가장 빽빽하고도 누추한 시간을 함께 보낸 두 명의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볼 때가 잦았다. 부모의 범주를 떠나 작가가 만나는 사람들의 모습은 새로웠다. 어쩌면 '그런 사람들'처럼 -여기서 이 책이 소설인가? 하고 더욱 고개를 갸웃했다- 나의 일상에선 정물처럼, 풍경처럼 채우고 있었던 사람들에게 '존재감'과 '의미'를 담게 되었다. 지구별에 온 어린왕자처럼 현재 대한민국의 '그런 사람들'을 보고 '의미'를 주는 작가의 어찌할 바 없는 독백같은 마음이 책의 여러 곳에서 조용히 번져갈 때 그 때마다 일상의 외로움, 괴로움, 쓸쓸함, 번잡함, 자책감, 우울감을 위로하고 공감하고, 경청해주는 여타의 다른 에세이와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그렇다고 그런 에세이가 별로라는 것은 아니다. ^^ 각각의 소리는 그 파동만큼 의미와 존재 이유가 있으니까.) <당신이 계이름>은 외로움과 상처를 덜어낼 목적으로 읽어서는 안되는 책이다. 슬픔은 언제나 일인칭이고 각자 삶의 중력을 견디며 살아가다가, 모처럼 나와 함께 있어주는 존재를 만날 때, 비로소 늘 보던 로맨스나 액션영화 대신 '혼자서는 볼 수 없는 공포영화'도 볼 수 있게 되는 법이라는 걸 알게 되고, 용기를 갖게 만드는 책을 만나서 참 좋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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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한다는 말 대신,
카카오
브런치에 연재될 당시에 독자들의 사랑과 응원을 듬뿍 받았던 <당신의 계이름>은 제3회 카카오 브런치북 프로젝트 대상을 수상하게 되었고
독자들이 가장 사랑했던 글 12편과 새로운 글 8편이 추가되어 책으로 출간하게 되었다고 한다. 세상이 오선지라면, 모든 사람은 저마다의 계이름으로 사랑을 말하고 아픔을 표현한다고 한다. 우리는 종종 상대방의 음정보다 높거나 낮은 탓에 오해하고, 상처 주고, 외로워한다. 우리는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줄 수 있을 거라는 용기와 확신으로 깃털처럼 가벼운 위로의 말들을 건네기도 한다. 하지만 말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 순간이 우리 모두에게는 있다. 살면서 한 번쯤은 맞닥뜨리게 되는 어떤 말로는 규정할 수 없는 먹먹한 순간들, 난데없이 떠오른 외로움과 서러움, 아픔을 말로 내뱉는 대신 찬찬히 곱씹다 보면 말보다 말에 담긴 마음에 먼저 가닿는 순간이 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진심을 다해 위로하고 위로받게 되기도 한다. <당신의 계이름>은 말이 닿지 못한 감정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공감 에세이다. '글을 읽고 내 주변을 다시 한 번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다.'라는 소감처럼 나의 본 마음과는 달리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던 나의 소심함과 말로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던 외로움과 상처들이 글을 읽는 동안 떠오르기도 했다. 외로움과 상처로 인한 슬픔을 말없이 온몸으로 버티며 이겨내려 애쓰고 있는데 어설픈 위로나 이해한다는 말은 귓가를 맴도는 메아리처럼 들릴 때도 있었고 오히려 화를 부르기도 한다. 슬픔은 늘 일인칭이다. 누가 대신하여 아파준다는 말은 실행력이 없다. 슬픔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많은 말들보다 서로가 서로에게 물드는 그 찰나가 더 큰 위로가 되어주진 않을까? P.34 때로는 의도와 상관없이 내뱉은 어떤 말들이 누군가를 난처하고 부끄럽게 만들 수 있다는걸, 그로 인해 말로 빚을 질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변변치 않은 말 앞에서 한참을 머뭇거리다 고른 말이, 못내 미안할 때가. 그렇게 말을 고르더라도 별 소용이 없어서, 말이 모자란다고 생각될 때가. 그런 때가 우리에게 몇 번쯤 있었다. P. 50 그는 누군가를 무안하게 하지 않으면서, 대회를 잘 인도하고 맺는 법을 알았다. 단순한 처세술이 아니었다. 상대에 대한 배려랄까. 대우를 바라지 않고도, 나서서 존중을 권했다. 그건 처지나 계급과 관련된 격식이 아니라, 인정이 많아 자연스럽게 배어 나오는 태도였다. P.164 슬픔은 힘이 세다. 금방 소거되지 않는다. 이상하게 지난 기억을 돌이켜 보면, 대개의 일들이 슬프게 느껴졌다.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간에, 어쩌면 기억이라는 거, 추억이라는 거, 이런 거 모두 '슬프다'라는 말을 돌려 말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랬다. 그게 아주 지난했던 시절이어도, 나쁜 일이라 다행이어도, 그냥 그 시간 자체가 그렇게 멀리 지나왔다는 생각이 들면 마음에 물이 찼다. 결코 거스를 수 없다는 사실이, 그토록 간단한 이유가 서럽게 느껴졌다. 사람이 사람에게 남기고 가는 감정도 결국 그런 것밖에 없을 거라 생각했다. 가장 밑바닥에 감춰져 있는 감정이어서가 아니고, 가장 무게가 나가서도 아니다. 시간과 관련한 모든 일에는 미약하게나마, 슬픔이 섞여 있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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