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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 문명을 비교하는 새로운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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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학문이 세분화 전문화되어 심화된 연구성과를 올릴 수 있는 반면 연구대상에 몰입하다보면 유관분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게 되는 부작용을 낳게 되는 것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즉, 과거에 숲은 보되 나무를 보지 못하였기 때문에 숲으로 접근해가는 형세였다면 최근의 경향은 숲으로 접근해가다 보니 나무는 볼 수 있게 되었지만 숲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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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학문이 세분화 전문화되어 심화된 연구성과를 올릴 수 있는 반면 연구대상에 몰입하다보면 유관분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게 되는 부작용을 낳게 되는 것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즉, 과거에 숲은 보되 나무를 보지 못하였기 때문에 숲으로 접근해가는 형세였다면 최근의 경향은 숲으로 접근해가다 보니 나무는 볼 수 있게 되었지만 숲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해답으로 학문 간의 경계를 칼로 무 자르듯 하지 말고 경계를 겹치도록 해서 폭넓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는 ‘통섭’의 개념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책을 받고 보니 역사인류학이라는 분야가 생소하다는 느낌이 들어 다음 백과사전을 찾아보았더니 ‘역사인류학’에 대한 설명은 나오지 않고 인류학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이 나와 있습니다.

 

인류학(人類學, anthropology)은 인간에 관한 모든 것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따라서 연구의 대상과 범위가 매우 광범위하다. 19세기 이후 학문으로서 체계화되었으며 미국과 유럽에서 서로 다른 관심을 갖고 발전되어 왔다. 오늘날 인류학은 보다 전문적인 여러 하위 학문으로 나뉘어져 있다. 하위 학문으로는 형질인류학, 고고학, 문화인류학 등이 있다. 형질인류학의 연구 분야로는 인간의 기원과 진화를 다루는 분야와 현대 인류의 다양성을 연구하는 분야가 있다. 고고학은 선사시대와 같은 오래된 인류의 유적 등을 연구하여 당시의 문화 등을 규명하는 것을 주요 연구 분야로 삼고 있다. 문화인류학은 오늘날 다양하게 존재하는 여러 문화들에 대해 총체적으로 연구하는 것이다.”

 

역사인류학은 아직 인류학의 하위 학문으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잭 구디는 역사인류학의 정체를 똑 떨어지게 설명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잭 구디의 역사인류학 강의>의 12장 ‘인간과 자연 세계: 역사와 인류학에 대한 고찰’의 ‘..학적 경계를 넘어서’라는 소제목으로 쓴 글에서 “나는 인류학과 역사학의 노력 모두 상대방이 하고 있는 바를 고려하지 못해 약화되었다고 주장했다. 좀 더 단순히 사회에서 자연과 문화가 너무나 조화롭게 연결되었다고 여기는 흔히 이후 사회들에 따르는 것으로 여겨지는 종류의 양면성이나 죄의식의 증거를 간과한다. 근대의 역사학자들은 그들이 선택한 시기에 자연에 대한 새로운 감정들이 출현한 것으로 여기려는 경향이 있었던 반면, 확실히 좀 더 과거의 사회들과 현재의 좀더 단순한 사회들에서 통제와 착취라는 좀 더 기본적인 문제들에 대한 무언의 자각이 나타난다.(355쪽)”라고 역사학과 인류학을 포괄할 분야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지만, 단순명료하게 정의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현장조사를 통해서 시간과 공간적 차이를 보이인 인류 집단의 삶을 비교하는 인류학이, 역사기록에 남아 있지 않은 일반대중의 삶을 외면해온 역사학의 틈새를 천착할 필요성을 제기한 것이 역사인류학의 탄생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리햐르트 반 뒬멘의 <역사인류학이란 무엇인가>라는 개설서를 읽으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본서로 돌아와서 <잭 구디의 역사인류학 강의>는 <Love and Food>라는 원제를 따라 ‘요리, 사랑, 문자로 풀어낸 동서양 문명의 발달사’라는 부제를 달고 있습니다. “잭 구디는 동양과 서양이라는 이분법에 비판적인 문제의식을 제기하며 역사인류학계에 새로운 통찰을 던진 위대한 학자이다. 『잭 구디의 역사인류학 강의』에는 서양 위주의 학문이 가진 한계를 지적하고 유럽에서 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문명을 검토하며 인류 전체사적 조망을 담았다. 저자는 ‘가족, 음식, 사랑, 글쓰기 문화’라는 보편적 키워드로 세계 문화의 발달과 개성, 공통점을 밝힌다.”는 출판사 리뷰처럼 지금까지 동양과 서양을 대표하는 아시아와 유럽의 문화 혹은 문명을 유럽중심으로 비교해온 틀 자체를 비판하면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 새로운 시각에는 유럽문화가 아시아보다 우월하다는 인식이 근본적으로 잘 못되었다는 점과 유럽과 아시아로 국한되었던 비교문화인류학의 대상을 아프리카까지 넓히고 있다는 점은 분명 색다른 시각이라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저자가 사랑과 음식을 주제로 유럽과 아시아 그리고 아프리카의 문명발달사를 비교하려는 시도는 색다르기는 하지만 격차를 유발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라고 봐야 할 것인가에 의문이 남습니다. 지금까지 지구상에서 인간의 삶을 주도해온 국가나 문명은 없었습니다. 모두 흥망성쇠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던 것입니다. 서양의 시각에서 보면 현재는 서양문명이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동양의 문명과 비교도 되지 못했던 시절이 있었던 것입니다. 서양의 현재는 르네상스를 기점으로 하여 다양한 분야의 학문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데 반하여 동양에서는 기왕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 정체와 피탄압의 구렁에 빠진 것이었다고 보여 집니다. 

 

 이런 관점에 대해서는 피터 디어교수의 <과학의 혁명; http://blog.yes24.com/document/3340046>에서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유럽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는 계기가 된 학문의 발전의 배경에는 학자들이 사유할 수 있는 자유와 적극적 지원이 가능한 사회적 배경이 있었던 반면, 아시아에서는 중앙권력의 강력한 통제 아래 학자들의 사유에 제한이 있었던 점이 비교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한 유럽에서 재화의 유통부문에서 혁명이 일어나고 있는 동안에 아시아에서는 역시 중앙권력의 통제아래 있었던 것도 동양이 서양에 밀리는 요인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더 먼 과거로 눈을 돌리면 동양문명과 서양문명의 우위가 서로 교차되어온 것을 알 수 있는 것처럼 지금 우위에 있는 서양문명을 동양문명이 따라잡고 올라서게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주말에 시청한 안견의 몽유도원도에 관한 프로그램에서 서양회화에서 적용한 원근법과는 차별되는 우리 옛그림의 원근법에 대한 설명이 있었습니다. 몽유도원도를 보면 왼쪽의 현실세계와 오른쪽의 이상향인 도원의 세계, 그리고 그 중간에 도원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고 있는데, 현실세계는 높은 곳에서 아래쪽을 폭 넓게 조망한 시각(평원법平遠法)으로, 도원을 찾아가는 길은 깎아지른 높은 산을 아래서 위로 치켜다 본 시각(고원법高遠法)으로 그리고 도원은 엇비슷한 높이에서 뒷산을 깊게 비껴 본 시각(심원법深遠法)으로 본 정경을 한 폭에 담아내고 있다는 점이 서양회화에서는 볼 수는 차이점이라고 합니다. 현재와는 분명 다를 미래의 문명에서는 과연 어떤 사회문화적 요인이 인류를 한 단계 도약시키는 계기가 될지 궁금합니다. 혹시 삼차원공간에서 복닥거리는 현재와는 달리 시간이 가미된 4차원의 시대가 열릴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몽유도원도를 그린 안견처럼 현재와는 다른 차원이 시각에 어느쪽이 먼저 눈을 뜨느냐가 관건이 될 것 같습니다.

 

책에 대하여 조금 아쉬웠던 점은 437쪽이나 되는 두께에 가족, 사랑, 음식, 종교, 글쓰기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유럽, 아시아 그리고 아프리카 문명을 비교해 나가면서도 뚜렷한 결론을 맺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는 점입니다. 아마도 저자가 서론의 말머리에 적은 것처럼 몇 년에 걸쳐 써온 기고문을 토대로 만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y*****2 2011.02.28. 신고 공감 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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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를 알아가는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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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빛깔의 표지그림이 궁금했다. 네덜란드 농민의 삶을 주로 그렸던 피터 브뤼헐(1525~1969)의 ‘농부의 결혼식’이라고 한다. 우리는 과거의 삶을 재현한 예술이나 구전되어 온 내용들에게서 과거 우리의 모습을 발견한다. 아마도 ‘농부의 결혼식’을 보고 당시 결혼과 피로연, 신분과 음식, 의상과 식사예절 등을 읽어내고 인류와 사회의 모습을 해석해가는 과정이 인류학이 아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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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빛깔의 표지그림이 궁금했다. 네덜란드 농민의 삶을 주로 그렸던 피터 브뤼헐(1525~1969)의 ‘농부의 결혼식’이라고 한다. 우리는 과거의 삶을 재현한 예술이나 구전되어 온 내용들에게서 과거 우리의 모습을 발견한다. 아마도 ‘농부의 결혼식’을 보고 당시 결혼과 피로연, 신분과 음식, 의상과 식사예절 등을 읽어내고 인류와 사회의 모습을 해석해가는 과정이 인류학이 아닐까. 과거 인류학자들은 좀더 경험적 지식을 고증하기 위해 전근대적인 삶을 유지하고 있는 문명을 신기하게 들여다보며 지금껏 우리가 알아온 인류학 지식을 만들어왔을지도 모른다.

저자는 통상 이렇게 인류학자들이 증명해온 동서양의 차이 혹은 상대적인 서양의 선진성을 전제로 한 주장에 반발하여 그들의 유사성을 발견하려 한다. 그러나 그 선진성의 근원으로 보이는 산업화는 이제 전 세계가 유사한 수준에 이르렀고 산업화가 진정 발전, 인류의 이익을 위한 진보였는지는 판단조차 논쟁의 대상이 될 만하다. 이에 현 시기에서는 저자의 방법론이 아니더라도 유럽우월주의적 해석은 다양하게 비판받을 여지가 있다. 그러나 분명 저자와 같은 몇몇의 이러한 노력들이 인류학 연구의 방법론에 영향을 매우 끼쳐 올바른 연구에 기여했을 것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자주 마르크스를 언급하는데 마르크스가 16세기에 근대 자본주의의 역사의 시작을 유럽이라고 언급한 것과 이 명제를 맹목적으로 전제하는 인류학 연구의 방법론에 문제제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자본은 지위, 계급과 동일화 되는 시공간으로서의 근대자본주의를 의미하고 있으므로 16세기 유럽이 그 발생이라는 것은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비록 인류학적이고 역사적 사실로는 반박을 받을 수 있을테지만 말이다. 이 자본주의의 탄생은 마르크스가 유럽의 우월성에 대해 증명하려고 정의한 것은 더더욱 아닐테니 이 또한 굳이 인류학연구에 있어서 마르크스가 유럽우월주의를 부추긴 결과로 책임을 물을 일은 아닌 듯 하다. 저자도 언급했듯 마르크스와 베버가 보기에 아시아가 예외적 특성들을 가지고 있어서 자본주의에 적합하지 않았고 이에 지금의 자본주의의 모습으로 빨리 변화하지 않았던 것에 오히려 상당 부분 공감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신분제도가 뿌리 깊었고 자본가=세도가의 성립구도에서 상인이 신분적 하위층에 해당했기 때문에 자본주의와 근대화의 도입은 유럽에서의 자본주의와는 다른 모습의 자본주의 쯤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잭 구디가 말한 것처럼 유사성과 차이성을 동시에 지닌 다양한 인류로서의 해석이 타당해진다. 그러나 무엇보다 앞에서도 말했듯 그 산업화로 인한 본격적 자본주의의 도입의 시기가 그 문명의 우월성을 설명할 수 없고 더군다나 그 자본주의라는 것이 발전적 문명의 모습인지 심히 의심스럽다. 물론 이를 차치하고 생각해본다면 자본주의의 도입은 인류의 삶을 변화시켰을 수 있다. 그러나 분명 근대화의 시기적 선행과 변화에 따른 차이를(예를 들어 가족구조의 변화) 동서양의 차이로 볼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는 독자의 사유에 달려있다.

저자가 가장 먼저 우려했던 ‘관련없어 보이는 주제들이지만 그 주제들 사이엔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고 번역된)는 말은 옳은 말이나 직역된 이 책에서 주제어 자체만으로는 그 유기성을 찾고 이해하기란 쉽지 않은 일일지도 모른다. 이는 음식과 금기와 축제와 문자 등 그 모든 것은 서로 유기적인 것이다는 문장 자체로 읽는 것이 맞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잭 구디가 들려주는 아프리카 부족의 ‘연인’과 같은 다른 언어의 사용, 유럽에서의 ‘말’과 음식 등의 이야기들은 매번 흥미롭다. 그가 직접 많은 시공간을 공유하면서 얻어낸 살아있는 증언일 것이기 때문에 생명력을 가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중국의 사례들을 읽으면서는 오리엔탈리즘적인 시선은 절제하고 있는지 일반화 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 것인지 하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되었다. 우리의 경우를 잭 구디가 연구했다면 어떤 사례가 되었을까. 인쇄술의 최고最古 기술을 가졌던 동양의 작은 민족이 인쇄술과 문자보급의 발전으로 여성계급의 변화를 가져왔다거나 ‘로맨스’ 개념이 여성 문인을 중심으로 굳어졌다든지 회계의 문자적 사용으로 인해 자본주의가 유럽과 그것처럼 정착한 것은 아니지 않는가. 각각의 고유의 문명과 거기에서 좀 더 나아간다면 교역으로 인한 문화흡수와 변화된 모습으로의 정착(이는 구디의 예가 정확하다. 말린 과일이 수입됨으로써 과일 이름 자체가 타 민족에게는 말린 과일을 지칭하는 단어인 경우들처럼 말이다)의 모습을 관찰하고 이해하는 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인류학이 아닐까. 역사인류학을 포함해서 모든 인류학은 누군가에게는 민족간의 상호관계를 증명하여 역사의 직선적 시간을 채워넣는 일일 수 있겠지만 나에게는 나와 주변을 알아가는 과정으로 느껴진다.

잭 구디의 인류학을 배우며 인류학 자체의 모습에 대해 많은 생각을 가장 많이 하게 되었지만 인류의 여러 모순에 관해 생각하게 된 것도 큰 재산이 되었다. ‘최후의 툰드라’ 다큐멘터리에서 본 곰사냥꾼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곰을 사냥하고는 가죽을 벗겨 가족으로 받아들여 곰을 끊임없이 위로하는 전통을 가진 가족이야이이다. 자연에 대한 경외와 생존의 모순적 상황에서 머리와 가죽 뿐인 곰 가족을 신성시하는 그들의 삶 또한 잭 구디가 말하는 카니발과 여행처럼 계층간의 대립에서 파생되는 모순의 구조와 닮아있다. 이는 개인 안의 모순, 계급으로 인한 모순적측면, 민족주의에 대한 반발과 모순적 애국주의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 또한 인류학이라는 것이 나와 주변을 이해해가는 과정 그 자체임을 반증하는 것이 아닐까.

유럽문화가 산출한 개념처럼 여겨지는 ‘로맨스’의 경우처럼 서양의 우성적 선입견으로 인류연구의 접근하지 말라는 저자의 교훈은 충분히 전달되는 듯하다. 여기에 또 하나, 잭 구디 특유의 방법론은 동서양의 이분법적 인류학 연구에 거부하는 논증으로 동양에도, 서양에도 포함되지 않는 아프리카를 상당부분 논의하고 있다는 것이다.

잭 구디의 역사인류학의 키워드는 기존의 인류연구가 동양은 원시주의적이며 서양은 선행된 산업화로 인해 좀 더 진보한 것으로 전제되는 해석경향을 인정함으로써 그 문제점을 드러내는 데 있다. 그 문제점에 있어서는 유럽과 아시아의 동질성과 아프리카와의 이질성으로 (물론 저자의 여러 설명에도 나는 이것이 일반화 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가 연구하는 역사인류학적인 관점으로 이 모든 것은 그저 다름으로, 다양성으로 인정하는 것만이 인류학이 상하관계의 연구가 아니라 말 그대로 인류의 삶 연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증명하려 시도한다.

우리가 특히 미술관련 도서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아시아 문명, 중앙 오스트레일리아 문명들을 ‘원시주의, 원초적’ 등으로 표현하는 인류학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일이다. 표현 자체가 서양의 언어이며 서구우월주의 의식을 드러냄이 명백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지극히 서양의 근대화 기준에서 과거형으로 아시아 문명을 평가하고 있기 때문에 서구의 연구에서 아시아와 오세아니아, 아프리카 등의 문명은 원시주의로 표현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서양 인류학자의 이분법적인 시선으로 관찰된 결과로서의 인류학의 모습에서 벗어나려는 노력만으로 잭 구디의 저작은 존귀한 가치를 지닌다. 물론 우리 스스로의 문화를 연구하고 서양 혹은 타문화와의 비교대조를 통해 우리 인류학을 완성해나간다면 더욱 좋겠지만 말이다. 저자가 이제는 연로해서 우리나라의 인류학과의 교류를 위해 방문과 연구를 할 리는 거의 없겠지만 자신에 대해 잘 연구한 자국의 인류학을 교류하는 방식의 세계인류학연구가 근본적으로 이분법적이고 우월주의를 벗어나는 방법론이 아니겠는가.

최근 TV에서 오지체험을 모토로 한 다큐멘터리를 흔히 볼 수 있다. 잭 구디의 이야기를 듣고보니 인류학이 따로 있겠나 싶은 생각이 든다. 잭 구디가 연구하고 있는 역사인류학으로서의 접근방법으로 최대한 객관적이고 다양한 면에서의 그들의 삶을 보여주려 하고 있다는 점에서 요사이 다큐멘터리는 매우 정제된 제작의식 수준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그러나 그 또한 문명을 서구 근대화로 보고 접근하여 서양매너, 혹은 신분적 우위 계층의 젠틀(이 또한 서양적 개념이 강한 것은 사실이나 동양에도 신분제도로 인한 예의, 체통, 왕실문화 등의 비슷한 예가 있음을 전제하자)에 미치지 못하는 면을 강조하는 면이 있지는 않았는지 갑작스럽게 기억을 더듬어 보게 된다. 우리가 타자를 재현하는 시선을 접기 힘들듯, 인류학연구에 있어서도 서양의 동양에 대한 이분법적이고 근대화 중심적인 시선에 대한 인식의 변화 또한 그렇다. 저자와 같은 학자의 노력과 함께 절대 민족주의적이 아닌, 서로의 이해를 향한 인류의 역사와 삶에 대한 지식의 가치가 우선되기를 기대해보고 싶다.

f*****5 2011.03.03. 신고 공감 2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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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구디의 역사인류학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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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이래 인간은 수많은 문명 발전을 꾀하면서 삶의 개선과 풍요로움을 안겨 주기도 하는 반면 마음 속에 내재되어 있는 개인과 집단,부족,사회,국가의 이해 관계에 따라 손을 맞잡기도 하고 때로는 적이 되어 등을 돌리면서 이합집산의 역사를 엮어 왔다.그러는 가운데 인간이 가장 본능적 허기,추위,의사 소통의 기본으로 삼는 음식 만들기,유전자 생식으로 인한 번식 본능,문자 창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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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이래 인간은 수많은 문명 발전을 꾀하면서 삶의 개선과 풍요로움을 안겨 주기도 하는 반면 마음 속에 내재되어 있는 개인과 집단,부족,사회,국가의 이해 관계에 따라 손을 맞잡기도 하고 때로는 적이 되어 등을 돌리면서 이합집산의 역사를 엮어 왔다.그러는 가운데 인간이 가장 본능적 허기,추위,의사 소통의 기본으로 삼는 음식 만들기,유전자 생식으로 인한 번식 본능,문자 창조에 의한 의사 소통,영구 기록등이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발전과 퇴보,수난과 회생의 점철을 밟아왔음을 직.간접적으로 체득하고 역사인류의 과거,현재,미래에 대한 관점등을 저자 잭 구디는 유럽,아프리카를 중심으로 문화와 문명을 중심으로 들려주고 있는데,음식,사랑,문자라는 3대 요소를 주로 서양의 관점으로만 해석되어 있고 자민족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한 편협된 우월주의 사상이 짙다는 인상마저 든다.물론 동양의 중국,인도의 문화는 맛배기 정도로의 체면을 살려주었지만 읽는 내내 동서양의 균형잡힌 인류문화의 지난 모습을 사료연구와 발견으로 입증해야 마땅하지 않을까 한다.

 주지하다시피 서양은 청동기 시대 도시혁명과 18세기 산업혁명으로 인하여 자본주의 맛을 일찍이 맛보게 되면서 물질과 개인주의가 앞서나갔고 지주 교육과 인쇄술의 발달로 세계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과 영향을 주었으며 그들의 제국주의의 팽창 역시 문화 및 문명의 우월의식에서 비롯되었으며 상대적으로 낙후된 동양권 및 아프리카,아메리카로 팽창하는데 힘들이지 않고 각개전투식으로 속속 발을 뻗쳐 나갈 수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한국을 비롯한 동북아 국가들은 유럽이 산업화 및 자본주의가 도입되던 시절 부모를 모시고 농경을 일구며 살던 가부장제의 틀 안을 벗어나지 못하고 국가 체제는 왕조를 중심으로 봉건적인 관료제에 찌들어 있어 경제적,문화적 발전이 그들보다 오랫동안 지체되고 체제를 고수하다 보니 신구파간의 갈등,반목,대립이 상당기간 존속되었던 것도 역사를 통하여 알 수가 있다.

 특히 서양은 종교개혁과 더불어 프로테스탄트의 다양성에 근대화 과정의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서양이 우월하다는 생각이 강화되었고 그때부터 서양은 집단을 중시하는 대가족보다는 핵가족화가 주흐름이었고 개인주의를 보편적인 사회 구조로 인식되었음도 간파할 수가 있다.이에 일본의 경우는 19세기 중반 미국과 맺은 미일화친조약에 의거하여 일찍이 서양과 문호를 개방하는 개국의 장을 열어 나갔던 것이며,일본은 사이고다카모리가 제창한 정한론을 명분으로 한국을 침략하고 병탄하려는 기도를 오래전부터 획책했던 것인데 구한말의 한국 사정은 신구세력의 갈등과 서양 세력의 틈바구니 속에서 일본의 침략 구실을 주고 말았던 것이다.역사를 통하여 문화와 문명의 발전과 국가의 힘을 착실하게 기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사랑이라는 것에 관해서 유럽에선 남편과 아내,부모와 자식간의 사랑이 애정 어린 근대 가족의 고유한 특징이라고 여기며 이는 최초의 산업국가인 잉글랜드가 ’근대화’과정을 선도했다고 여기며 정신세계를 연구하는 역사학자들 다수가 특정한 일단의 감정들이 근대 유럽의 특징이라고 여기며 로맨틱한 사랑과 ’섹슈얼리터의 출현’을 전통 사회가 아닌 근대 사회에 귀속시키고 있다.한국,중국은 보수주의적이고 이념적인 체제로 인하여 로맨틱하고 개방적인 남녀사이의 사랑은 아직도 서구에 비하면 사회적인 의식,분위기와 맞물려 보수적인 면이 강하다고 느껴지며 이는 개인차가 깊게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음식은 13세기 유럽에서 ’궁정식’ 음식 이데올로기가 탄생하고 르네상스 시기엔 전쟁이 줄어들면서 귀족들이 호사스러운 연회를 베풀면서 식사가 시작되기 전에 손님은 물론이고 일반 대중들에게도 음식을 돌리며 전시하는 일이 자주 있었다고 한다.’잉글랜드식 스프’나 ’카탈루냐식 블랑망제’와 같은 국적을 대표하는 요리가 발견되고 동양권에선 인도의 카레와 필라프,중국의 찹수이(야채탕)와 챠오멘(볶은 밀국수)가 서양인의 입맛을 사로잡았다고 한다.진귀한 음식이면서도 싼 가격에 부담없이 카레와 찹수이등이 그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인류는 벌거벗은 원시시대로부터 농경,부족사회를 거치며 영주가 봉토를 관리하는 봉건사회,산업화가 시작되면 근대 자본주의의 물결을 타고 문자와 문명이 급속도로 발달되고,이에 서양은 개인의 복리 및 경제수준을 제고하며 그들의 힘의 논리를 내세워 제국주의의 발판을 마련하고 힘없는 나라를 침략하고 식민국에 씻지 못할 멍에를 안겨 주었음을 알고 있다.탈산업화를 앞세워 점점 약육강식의 국가간 이해관계가 팽배해져 가고 있으며 인간은 동물과 구별되고 우월한 문화의식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학대하고 말살하려는 동물의 이름이 지니는 가치와 모든 동물들을 억압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관습들' 사이에서 보다 나은 인류의 행복은 무엇이고 인류 역사를 발전시키는 참다운 것은 무엇이며 어떻게 실천해 나가야 할지를 숙고하는 계기가 되었다.벽안의 저자가 서양의 관점에서 쓴 역사인류학은 촘촘하게 연구하고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이기에 읽을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j******6 2011.03.1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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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떨어진 두 섬의 연결고리를 엿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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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때보다도 국경이 낮아지고 나라간의 경계가 불분명해지고 있는 요즘이다. 자본이라는 하나의 기준에 의해 세계의 모든 것이 판단되는 요즘과 같은 시대에는 동양과 서양보다는 상대적으로 더 발달되고 덜 발달된 경제라는 구분이 더욱 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이 역시도 전자에 주로 미국과 유럽의 국가들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동-서양의 구분으로부터 완
"동떨어진 두 섬의 연결고리를 엿보다" 내용보기

여느 때보다도 국경이 낮아지고 나라간의 경계가 불분명해지고 있는 요즘이다. 자본이라는 하나의 기준에 의해 세계의 모든 것이 판단되는 요즘과 같은 시대에는 동양과 서양보다는 상대적으로 더 발달되고 덜 발달된 경제라는 구분이 더욱 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이 역시도 전자에 주로 미국과 유럽의 국가들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동-서양의 구분으로부터 완전히 탈피했다고 보긴 힘들 듯하다. 생각해보면 우리의 사고는 동양과 서양이라는 이분법적인 구분에 길들여진 상태이다. 서양의 모든 것이 찬미의 대상으로 부각되면 부각될수록 동양적인 속성은 부정해야만 하는, 저개발의 원인으로 해석되곤 했었다. 그렇지만 이 둘 사이에는 절대적인 차이란 있을 리 없다. 간단히 생각해 보아도 두 사회 모두 사람이 살아가는 삶의 터전이라는 점에서, 어떤 인종이 다른 인종보다 절대적으로 우월하다는 식의 인종주의적 사고를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그렇다. 비교라는 수단을 통해 어느 한 쪽의 장점 혹은 단점을 다른 쪽의 특징보다 부각시키다 보니 이 둘 사이의 경계가 보다 분명해지지 않았나 싶은 생각마저 든다. 동양과 서양을 뛰어넘어, 인류라는 하나의 거대한 공동체를 살펴봄에 있어서 그는 무엇이 오늘날과 같은 사고를 가능케 했는지를 우선 살펴보기 시작했다.

전세계가 혁명의 열기로 들끓었던 시절에 비하면 그 이름이 지닌 무게감이 덜하게 느껴질 수도 있으나, 여전히 마르크스는 20세기 이래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인물이라 하겠다. 자본과 노동이라는 구분뿐만 아니라 그의 역사 해석은 페리 앤더슨과 로버트 브레너에게 사고의 틀을 제공하였는데, 이 두 학자의 견해가 서양의 역사학자 대부분이 따르는 노선이라는 점에서, 적어도 역사 분야에 있어서의 서양중심적인 해석에 마르크스가 일말의 힘을 발휘했다는 생각을 해본다. 다분히 서양적인 느낌이 묻어나는 봉건제는 그러나 서양에만 존재했던 질서가 아님이 분명하다고 저자는 본다. 중국을 중심으로 펼쳐졌던 동아시아 세계의 조공 질서를 굳이 틀에 끼워 맞춘다면 서양의 봉건제적 질서와 유사하다고 보는 것이다. 아시아 세계에 있어서는 불행이라고 할 수 있는 서양의 제국주의적 움직임은, 자본주의라는 오늘날 거대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체제의 발전이 있었기에 가능한 바였다. 서양이 동양 세계를 잠식할 수 있었던 까닭으로 언급되는 이러한 움직임은 후진성과 비개방성 등에 얽힌 동양 사회로서는 발전시킬 수 없는 것으로 이제껏 이야기 되어왔다. 그러나 중세라는, 인간 아닌 신이 세계의 중심에 놓인 반동적(?)인 흐름이 서양 세계에서 존재했었기에 그에 반하는 움직임이 가능했고, 자본이 무엇보다도 부각될 수 있었던 것도 어쩌면 인본주의의 뿌리가 동양만큼 깊지 아니하였기 때문 아닐까란 의문을 던진다면 진보와 미개라는 우리의 고착화된 시선에 대해 되돌아보게 된다.

가족, 여성, 계급, 음식 등 어찌 보면 소소한 주제들을 통해 저자는 서로 전혀 다른 문화를 이룩해온 세계간에 적지 않은 유사성이 있음을 우리에게 입증해 보인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우리가 이제껏 간과한 요인이라 할 수 있는 아프리카 대륙에 대한 고려도 잊지 않았다. 많은 정부가 통제권을 제대로 발휘하고 있지 못하며 절대다수가 빈곤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긴 하지만, 인류가 뻗어나감에 있어서 아프리카 대륙의 존재는 무시할 수가 없다. 이 대륙을 동양에 넣어야 할까, 아니면 서양에? 우리가 지닌 전형적인 사고에 끼워 보려 애를 써도 아프리카의 존재는 어느 쪽이다 단정짓기가 쉽지 않다. 어쩌면 동양과 서양이라는, 사이에 거센 물살이 존재해 서로간의 교류가 불가능해 보이는 이 둘 사이의 두드러진 차이점을 완화시키는 영역으로서 아프리카 대륙을 바라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듯하다. 다르다고만 여겨져 온 문화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수렴, ‘인류의 역사라는 거대한 틀을 형성하는 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최근 자연에 관한 인류학의 논의들은 다양한 형식을 택했다. 첫째, 자연과 문화를 나누는 잘 알려진 구조주의의 이분법이 존재해 왔는데 이것은 자주 모든 혹은 거의 모든 사회의 특징으로 상정되었다. 이어 그런 대립은 여성-남성의 이분법과 여러 이분법적 범주들과 연결되어 왔다. 나 자신은 컨텍스트를 벗어난 이런 대립쌍들, 예를 들어, (=, 마녀)과 백(=, 개방성)의 대립쌍은 애석하게도 기호의 활용에 대한 이해에서 오도되어 왔고 그래서 다른 컨텍스트에서의 활용, 의도적인 역전, 창의적인 언어 놀이, 내가 혹은 아름답다(black-is-beautiful)의 문제라 부르는 것을 위한 충분한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p341,342

 

어쩌면 편의를 위해 생성했을 기준이 절대적인 무언가가 되어 인류의 사고에 제약을 가하는, 문명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얼마나 획일적이었는가에 대해 묻게 되는 독서였다. 물론 저자의 방식 역시 전적으로 옳다/그르다 말할 수는 없겠지만, 당연하다 여겨온 것들에 대한 의문을 제기할 때 비로소 우린 우리가 속한 사회,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 더 나아가 지금의 나를 가능케 해준 모든 것에 대한 긍정적인 의미 부여가 가능할 것이다. 내 것이 아니기에 자연스레 배척 혹은 동경해 왔을 타 문화권에 대한 수용 역시 틀에 박힌 사고를 깨트리는 노력을 시도함으로써 이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해본다.

이달의 사락 q*****2 2011.03.01.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