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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 자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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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오늘날도 그때나 마찬가지로 3등 객실은 불결하고 변소 시설도 나쁘다. 3등 객실의 승객들은 양떼처럼 대접을 받고, 그들의 편리는 양의 편리 같은 것이다. 유럽에서도 나는 3등칸으로 여행을 했고 다반 한 번, 어떤 것인가 보려고 1등칸을 탔었는데, 1등칸과 3등칸 사이에 그리 큰 차이가 없었다. 남아프리카에서는 3등칸 승객은 주로 흑인들인데, 그래도 3등칸의 시설이 여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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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오늘날도 그때나 마찬가지로 3등 객실은 불결하고 변소 시설도 나쁘다. 3등 객실의 승객들은 양떼처럼 대접을 받고, 그들의 편리는 양의 편리 같은 것이다. 유럽에서도 나는 3등칸으로 여행을 했고 다반 한 번, 어떤 것인가 보려고 1등칸을 탔었는데, 1등칸과 3등칸 사이에 그리 큰 차이가 없었다. 남아프리카에서는 3등칸 승객은 주로 흑인들인데, 그래도 3등칸의 시설이 여기보다는

 

나는 이미 기타를 믿고 있었고, 거기 매혹되어 있었다. 매일 한두 구절을 따로 외우기로 결심을 하고 그것을 위해서는 아침 목욕시간을 이용하기로 했다. 거기 35분이 드는데 칫솔질에 15분을 쓰고 목욕에 20분을 쓴다. 첫번째 것은 서양식으로 곧추서서 한다. 그래서 맞은편 벽에다 기타의 구절을 쓴 종이를 붙여놓고 그것을 이따금 보면서 외웠다. 이 시간이면 그날 것을 외우고 이미 외운 것을 반복하는 데 충분했다. 그렇게 해서 열세 장을 외웠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기타외우기는 그 외의 다른 일과 사티아그라하는 지금도 그렇지만 내 모든 사색 시간을 다 차지해버렸다. 나에게 기타는 완전한 행동의 지침이 되었다. 이것은 내가 날마다 찾아보는 사전이 되었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영어가 있을 때면 영어사전을 찾듯이, 내 모든 난 문제와 시련에 대해 미리 준비되어 있는 해답을 얻기 위해 나는 이 행동의 사전을 찾았다. 아파리그라하(무소유)나 사마바바(한결같음,평등관) 같은 낱말들이 나을 괴롭혔다. 평등한 마음을 어떻게 길러가며 지켜가느냐가 문제였다. 어떻게 하면 모든 소유를 내버릴 수 있을까? 내 몸부터가 훌륭한 소유가 아닌가? 내가 가지고 있는 책장도 다 부숴버려야 하는 것일까? 나는 내가 지닌 모든 것을 내버리고 '그이'를 따라야 하나?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버리지 않는 한 나는 '그이'를 따를 수 없다. 무소유나 평등관은 심정의 변화, 태도의 변화가 먼저 있어야 한다는 것이 청천백일같이 내 마음에 명확해졌다.

 

'누가 감히 저 태어난 바탕의 물결을 향해 이만큼만 하고(그 이상도 말고) 말할 수 있을까? 누가 감히 자기가 태어날 때의 인산을 지워버릴 수 있을까? 제 자식들이나 돌봐조는 것들에 대해 자기가 밟아온 진화의 방향을 반드시 따라올 것을 기대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다. 희생과 간소한 생활의 이상이 점점 더 구체화되어가고, 일상생활 속에서 종교적 의식이 점점 더 생기를 띠어감에 따라 채식주의를 하나의 사명으로 알자는 열망이 더욱더 높아지게 되었다. 아무리 개혁을 열심히 하자고 하더라도, 제 역량에 넘치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그리고 또 그렇게 말은 돈을 빌려주는 데서 나는 기타의 교훈, 즉 평등관을 가지는 사람의 의무는 결과를 바라는 마음 없이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어긴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의 생활이 점점 더 간소해짐에 따라 의약을 싫어하는 생각이 더욱 심해졌다. 그 발기인들의 주장대로라면 영국 사람은 너무 자주 너무 많이 먹는다. 밤중이 될 때까지도 먹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의사에게 주는 돈이 많다. 이러한 꼴을 면하려면 적어도 아침은 안 먹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결과 나는 내가 이때까지 필요 이상으로 먹고 있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 책 속에서 신선한 과일과 견과를 인간의 자연적인 식물로 권하고 있었다. 나는 일생에 두 번 아주 중병을 앓아본 일이 있기는 하지만, 사람이 약을 먹을 필요가 없다고 믿는다. 1천에 999는 음식 조절, , 물 치료, 또는 그와 비슷한 가정요법으로 나올 수 있다. 조금만 아프면 곧 양의요 한의요 하며 의사에게 달려가고 식물성, 동물성의 가지가지 약을 삼키는 사람은 스스로 제 목숨을 단축시킬 뿐 아니라, 몸의 주인 노릇을 못하고 종 노릇을 하는 동안에 자제하는 힘을 잃어서 사람 노릇을 못하게 되고 만다. 병상에 누워 있으면서 쓴 것이라고 해서 이런 생각들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내가 왜 앓았느니 그 이유는 내가 안다. 그 병들의 책임이 오직 내게만 있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알기 때문에 능히 참아갈 수가 있다. 10년 동안, 그러니까 1914년까지 내가 감옥에서 억지로 쉬게 된 것을 제외하고는 내 논설을 싣지 않고 발행된 인디언 어피니언은 한 호도 없었다. 글자 한 자라도 생각 없이 썼다거나, 단순히 재미나게 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과장해서 썼다는 기억은 없다. 실로 그 신문은 나에게는 자제의 수련장이 되었고, 친구들에게는 내 사상과 끊임없는 접촉을 해나가는 매개체가 되었다. 비평가는 반박할 만한 것을 거의 찾아내지 못했다.

 

이것은 전쟁이 아니라 사람 사냥이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런 종류의 봉사를 할 수 있는 기회는 앞으로 점점 더 많아질 것이고, 내가 만일 가정생활의 쾌락과 자녀의 출생과 양육에 빠져 있었더라면 나는 그 일을 감당할 수 없게 될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한마디로 나는 육과 영을 다 따를 수는 없다. 가령 예를 들어서, 현재 내 아내가 임신중이라면, 나는 이 전란 속에 뛰어들 수 없었을 것이다. 브라마차리아를 지키지 않고는 가정 봉사와 사회 봉사는 양립이 될 수 없다. 브라마차리아를 지키면 둘은 완전히 양립된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y****a 2020.06.2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