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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들을 지휘하는 경찰의 내면을 알 수 있는 독특한 작품.
"경찰들을 지휘하는 경찰의 내면을 알 수 있는 독특한 작품." 내용보기
지금까지 본 경찰 추리 소설이나 경찰이 등장한 소설 가운데 가장 지위가 높은 주인공이 등장하는 작품이다. 영국의 경찰 지위는 잘 모르겠지만 많은 경감들이 주인공이었는데 이 작품의 주인공 기데온은 그런 경감들을 지휘하는 우두머리다. 그의 주된 일은 경찰청에서 경감들의 사건을 지휘하는 일이다. 이 작품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에서 주된 이야기는 연쇄 방화 사건이다
"경찰들을 지휘하는 경찰의 내면을 알 수 있는 독특한 작품." 내용보기

지금까지 본 경찰 추리 소설이나 경찰이 등장한 소설 가운데 가장 지위가 높은 주인공이 등장하는 작품이다. 영국의 경찰 지위는 잘 모르겠지만 많은 경감들이 주인공이었는데 이 작품의 주인공 기데온은 그런 경감들을 지휘하는 우두머리다. 그의 주된 일은 경찰청에서 경감들의 사건을 지휘하는 일이다. 이 작품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에서 주된 이야기는 연쇄 방화 사건이다. 하지만 이 사건 이외에도 각 경감들이 맡은 어린 아이 성폭행 후 교살한 사건, 은행 강도 사건, 주식 조작 사건, 여자들만 살인한 살인 사건이 등장한다. 

 

일선 경찰서의 경감들의 우두머리인 경시청의 부장 기데온을 주인공으로 그의 사건 처리 방법을 소개한 작품이다. 그는 발로 뛸 필요가 없는 높은 인물이다. 그의 발은 아래의 경감들이고 경감들 밑에는 경찰들이 있다. 그는 전화로 지시를 하고 보고서를 점검한다. 책상에 앉아 있는 경찰이라고 할 수 있다. 간부 경찰의 삶이란 어떤 것인가를 알고 싶은 독자라면 이 작품을 보면 된다. 물론 이 작품은 1961년 작품으로 그 당시 영국의 수도 런던의 스코틀랜드 야드의 지휘 체계를 알 수 있게 하지만 말이다.  

이 작품에서는 범인을 찾으려는 노력을 할 필요는 없다. 범인은 모두 보여 지고 그들과 경감들과 기데온의 추격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대부분은 기데온이 전화로 지시하고 만나는 과정을 보여준다. 여기에 순직한 일선 경찰들의 이야기, 그들의 가정사와 기데온의 가정사도 등장한다. 이 작품은 추리 소설이라기보다 경찰들이 어떤 일을 하는 지를 알려주는 경찰 소설이다. 그들도 인간이며 때론 실수도 저지르고 여자아이가 성폭행 당하면 자신들의 딸을 생각하고 같은 경찰이 당하면 동료애로 분개하고 그러면서 가정의 문제를 안고 사는 평범한 사람들임을 보여준다.  

 

이 사건의 제목은 기데온과 방화마이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기데온과 사건들이라고 해야 적당할 것 같다. 방화마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다. 강간범, 은행 강도, 살인자, 주식을 조작한 경제 사범까지 등장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사건은 해결되지만 잡지 못하는 범인도 있고 빠져나갈 구멍을 마련해 빠져나가는 범인도 있다. 그리고 방화범은 두 명의 경찰을 살해한다. 하지만 그 경찰들은 말단 순경들이지 간부는 아니다. 경감들 중에 상처를 입는 인물도 나오지만 기데온같은 높은 사람은 해당되지 않는다. 그 대신 그는 더 큰 문제를 안고 산다. 책임감이라는 문제. 범인을 잡기 위해 뛰어다니는 경찰이 아닌 그 경찰들을 지휘하는 경찰의 내면을 알 수 있는 독특한 작품이었다. 시리즈라고 하는데 계속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d*****g 2009.10.06.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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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무기력한 불구경꾼이었을뿐
"그저 무기력한 불구경꾼이었을뿐" 내용보기
Gideon's Fire :: J.J. Marric (John Creasey)국보 1호 숭례문이 방화로 전소된지 두달이 넘었다. 짧지 않은 시간인데 '아직 그것 밖에 안되었나' 싶을 정도로 체감상 너무도 빨리 잊혀진 '뉴스거리' 가 되었다. 출퇴근 동선이 그쪽이라 현장에 오고 갈 일이 많은 이라면야 볼때마다 그 상징이 시사하는 바를 각인할 수도 있겠지만, 미디어에서 조명해주지 않는 이상 눈으로 볼 수 없는
"그저 무기력한 불구경꾼이었을뿐" 내용보기
Gideon's Fire :: J.J. Marric (John Creasey)

국보 1호 숭례문이 방화로 전소된지 두달이 넘었다. 짧지 않은 시간인데 '아직 그것 밖에 안되었나' 싶을 정도로 체감상 너무도 빨리 잊혀진 '뉴스거리' 가 되었다. 출퇴근 동선이 그쪽이라 현장에 오고 갈 일이 많은 이라면야 볼때마다 그 상징이 시사하는 바를 각인할 수도 있겠지만, 미디어에서 조명해주지 않는 이상 눈으로 볼 수 없는 나같은 사람들에겐 다음 뉴스, 또 다음 뉴스의 홍수에 밀려 설령 바로 엊그제의 일이라도 오래된 일인 마냥 쉽게 망각해 버리고 만다. 안전 불감증이니 문화재 관리 소홀이니 해도 소재가 궁핍한 글쟁이들이나 미디어 관계자들에게 길어야 일주일치 양식이 되어줄 따름이지 뒤늦게 발제 해봤자 그야말로 뒷북치기에 불과할뿐, 쓰는 이에게도 읽고 보는 이에게도 주제 환기나 새삼스런 자각이 되어주지 않는다. 이를테면 기묘한 암묵의 카르텔이 형성된달까. 정말로 사후 처리가 잘되어가는지, 향후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을거란 보장이 가능한지에 대해선 모두 미온한 채, 행여라도 그렇지는 않겠지만 짐짓, 재발되면 슬그머니 '안전 불감증, 관리 소홀' 이라는 문장을 재활용 할 기회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도 보이는 것이다.

정말로 숭례문 화재가 우리에게 남긴 것이 많았을까. 일선에 있는 사람들에겐 어떨지 모르겠지만 일개 시민인 나에게는 사실 그다지 와닿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가치 있었고 미관상으로도 훌륭했던 고대 건물이 허무하게 전소 되어가는 장면을 지켜 보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었으나 그 장면이 나에게 얼마나 깨우침을 주었는지에 대해서는, 아니 내가 얼마나 보고도 깨치는 바가 없는지가 더 한탄스러운 노릇이다. 왜 그것이 나에게는 '방화' 가 아니라 '분신자살' 로 보였을까. 왜 불길 속의 허약한 자태에서 생계의 위협으로 궁지에 몰려 스스로를 불태운 농민의 절규를 겹쳐 보았을까. 사회에 대한 개인의 분노를 애꿎은 '공공 물건' 에 화풀이 한 정신 나간 노인의 탓일까? 국민을 위해서라며 관대한 척 개방해놓고 방비에 무책임한 정부 기관 탓일까? 니가 끄느냐 내가 끄느냐 아웅대다 불끌 시간만 흘려버린 전문가들 탓일까? 참 이상하다. 이렇게 써놓고보니 왠지 숭례문 화재 사건 얘기가 아니라 FTA의 한 단상을 써놓은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에 대한 국민의 냉소적이고도 무관심한 태도를 숭례문 화재에서 다시 보게 되니 아이러니하다 하지 않을 수가.

나라탓이고, 미숙한 전문가 탓이고, 미친 방화범 탓일 뿐 내 죄는 없다 하기엔 너무 면구스럽다. 있을 땐 최소한 눈으로나마 실컷 즐기고 누려놓고선 없어지니 네놈이 태웠네 네놈이 지키지 못했네 내껀데 도로 내놓아라 하는 호통을 어떻게 입밖으로 내놓을 수 있단 말인가. 고작 60여일도 안되어 새까맣게 잊어놓고선 다시는 그러지 말아라 또 그러면 더 혼내줄테다 하고 으름장을 놓는 것이 정녕 내가 당연히 가질 수 있는 권리란 말인가. 누구에게는 그럴지 몰라도 적어도 이렇게 빨리도 잊어버리고 뒤돌아 찾아 볼 생각도 안하고 '소유주' 였던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깨치는 거 하나 없었던 나는 아닌 것 같다. 정부의 '머슴론' 에 동조하여 내 물건이라도 남의 손에 맡겨 관리하기를 바라는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진짜 그것이 내 것이었고 애지중지할 물건이었다면 무조건 종놈에게만 맡기지도 않았을뿐더러 더 들여다보고 더 아끼도록 관심과 만전을 기했을 것이다. 그런데 내 것이었으나 먼지가 쌓이도록 무관심 해왔던 것이 없어졌다하면 정녕 도둑놈과 종놈만 탓할 수 있을까? 그 물건이 스스로 떨어져 박살났다 하더라도 할 말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하여 개인이 국보 앞에 서서 불침번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누가 해할 위험이 있는지, 그럴 빈틈이 보일 만큼 관리가 철저한지에 대한 감시는 결국 국민 모두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미디어가 선봉에 나서주면 더없이 좋겠지만, 어느 미디어에서 때지난 뒷북을 울리더라도 잊을 뻔한 것에 감사하고 새삼 자각을 해야하는 것은 개개인이 자발적으로 해야될 일이다. 단지 국보만의 문제가 아니라 나라를 지키는 모든 일에 있어서 그렇다. 물건이 되었든 사람이 되었든, 방화가 되었든 분신이 되었든 다시는 그럴 일이 없도록 모두가 보살피고 늘 마음 써야 될 일이 아닐까. 숭례문은 어쨌든 국민과 국가의 비호 아래 재건되고 있지만 불에 타버린 사람은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 공감할 수 없다해도 개인의 억화 심정을 자제 못하는 잠재적 방화범들을 보듬을 제도가 필요하고 개중 진정 억울한 처지에 놓인 이에게는 충분히 보상할 사회적 보완 장치가 필요하다. 국가 정부 기관과 국민을 대표하는 이들에게야 당연한 업무이지만 또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원 해야할 시민의 의무이기도 하다. 그것을 수행 해야만, 최소한 마음가짐이라도 가져야만 진정한 '소유주' 가 되는 게 아닐까.

책의 내용과는 다소 거리가 먼 글일지도 모르겠다. 혹, 숭례문 화재를 보며 [방화, 오래된 건물] 이라는 키워드만으로 나와 같이 이 책을 연상시킨 미스터리 팬이 있었을까? 기억도 안날 만큼 오래전에 읽었다가 이번의 화재로 불현듯 떠올려 새삼 책장에서 찾아내 첫장을 읽다가 내친 김에 죄다 읽게 되었는데, 사회에 불만을 가진 방화마가 각성 차원에서 불을 저지른다는 부분에서는 맥락이 같아도 사실 이 책은 '방화마' 에 관한 이야기라기보다 런던 경시청의 베테랑 형사 기데온의 수사일지, 혹은 일상 이야기에 가깝다. (수사와 상관없는 자식에 대한 고민까지 시시콜콜히 묘사되어 다소 뜬금없게도 보이지만 이것이 홈즈나 뤼팽처럼 시리즈물의 일부라는 것을 인지하면 비교적 자연스럽게 읽힌다. 다만 우리나라는 물론 중역으로 이용한 일본에서도 기데온 시리즈는 전부 발간되지 못했다.) 철저히 기데온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 되기에 주범인 방화마에 대한 내용이나 심리 묘사는 지극히 단편적인데다 다른 여러 사건들과 비슷한 경도로 다뤄져서 제목에서 오는 박력만큼 수사반장과 방화마 사이의 치밀한 신경전 같은 것은 기대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이 소설의 가장 강렬한 인상이라면 그것은 '희생자' 에 있다. 무분별한 방화로 인해 빈민굴에서 어렵게 살아가는 일가족이 처참하게 불에 타 죽고, 다른 사건에 있어서도 희생자는 어린 아이이거나 힘없는 여성이다. 기데온은 일선에서 최선을 다하지만 고작 범인을 추적하는 것뿐 속출하는 희생자는 막지 못한다. 그 개인이나 수사 기관의 몇명으로만 막아지는 일이 아닌 것이다. 기데온은 회의한다.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끝없이 죄를 저지르는 것일까?' 라고.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알 수 없어 미필적 고의를 저지르는 것이 사람이라면, 아무리 자신과 접촉이 무관하다 하더라도 늘 속죄와 겸허의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나 때문은 아니라해도, 나의 무관심과 소극적인 태도탓에 어딘가에서 무참히 타죽고 스러지고 잊혀져가는 희생자가 정말 없겠는지.
YES마니아 : 로얄 q****e 2008.04.1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