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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접하는 독일 미시사 연구서적이다. 저자 위르겐 슐룸봄은 197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약 30여년간 독일 농촌지역의 산업화 과정을 연구해왔다. 연구 방법은 주로 독일 오스나브뤼크(Osnabruck) 지방에 있는 벨름 교회공동체(Kirchspiel)에 있는 가족 관계 문서들을 꼼꼼히 살펴보는 것. 교적에 있는 영세, 혼인, 장례 기록 등등의 문서를 바탕으로 저자는 어떤 시점에서 가족 및 친족 관계가 어떠하였는지를 파악하여 독일 농촌 인구의 사회적 구성과 이동, 성격 등을 말한다.
그동안 이탈리아, 프랑스 미시사 위주로 읽어서 그런지, 뭔가 좀 독특한 예외적 현상을 소소히 파헤치는 서술에 익숙했나보다. 자신의 결혼식이나 자식의 세례식에 사인한 농부의 숫자 등등 소소한 기록을 통계내어 당시 농민들의 삶을 그려내는 방식, 소작농 자식의 세례식에 대부모가 되어준 지주의 숫자와 친족 관계 등을 추적하여 독일 농민 계급 분화를 파악하는 방식,,,, 등등 책은 매우 신선하고 흥미롭다. 연구 과정이 재미있지, 엄청난 새로운 역사 사실을 제공하거나 시각의 전환을 주는 편은 아니다.
이 책은 통사식 구성이 아니다. 한 주제로 구성된 책도 아니다. 전체 7장으로 구성된 저자의 논문 모음집이다. 1~4장, 독일지역 소작농의 모습을 담은 부분은 내게 매우 유익했다. 기존 통사류에서 대강 몇 문장 결론으로 서술하고 지나가는 서구 농촌사회 관련 내용을 깊이 볼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1장인 '1. 농민들은 과연 글을 쓸 줄 알았는가 - 18~19세기 벨름 지역 농민들의 문자 해독 능력에 관한 연구' 부분은 농민들의 문자 해득 능력에 대한 연구 논문이다. 가족 경제 능력의 차이, 출생 순서 차이, 성별 차이에 따라 문자 해득력에는 차이가 있었다. 너무 뻔하고 당연한 결론인가? 다음 2장인 '2. 농가주인이 소작농을 다 잡아먹습니다 - 19세기 독일의 소작제도를 비판한 한 농민의 편지'는 참으로 통쾌유쾌하다. 이 농민의 편지는 지주의 횡포에 지쳐 미국 이민을 떠난 독일의 소작농이 떠나기 직전에 관청에 '찌르고' 간 편지이다. 게다가 이 농민 아저씨가 미국에 가서 자기 땅을 경작하며 성공한 후일담도 있다. (하지만 이 독일 소작농의 성공은 미대륙 원주민의 좌절과 실패이니 이 또한 역사서를 읽는 사람으로서, 마냥 통쾌할 일도 아니다.) 특히 3장인 '3. 남의집살이, 계층 현상인가 통과의례인가 - 17~18세기 유럽사회에 널리 퍼진 남의집살이 현상'은 서유럽의 계절 농촌 노동자와 하녀 집단에 관심있는 내게 저절로 유레카 소리가 나오게 하는 논문이었다. 저자는 인구 동향 분석을 통해, 서유럽의 하녀 등 남이집살이하기라는 직업은 그 직업이 영구불변의 계급이 아니라 일생에서 지나가는 단계였다고 본다. 오랫만에 흐르는 침 닦으며 재미있게 읽었다. 솔직히, 이 책은 내용보다 연구 방법이 흥미롭다. 그런데 다른 일반 독자들이 읽어도 흥미로울지는 모르겠다. 서구 농촌 역사나 농촌 아니더라도 역사 서술 방식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현재 절판이지만 꼭 한번 구해서 읽어볼만하다. 백승종 선생님 번역이고, 뒤에 저자와 역자 대담도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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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페이지의 분량이니 그리 많은 편은 아니지만 소재 때문에 자칫 흥미를 잃을 수도 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당연히 가능하다. ^^) 이 책은 독일의 저명한 역사연구가 위르겐 슐룸봄이 쓴 7개의 논문을 모아놓은 책이다. 부제에서 볼 수 있듯이 17~19세기 유럽의 일상세계를 엿볼 수 있다. (특히 농촌사회) 책을 보면서 놀랐던 점은 가족재구성이라는 방법으로 사회적 관계망을 수치적 자료로 환산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소규모 집단을 표본으로 하기 때문에, 표본의 수가 너무 작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속에서 의미를 발견해나가고 기존의 거시적 통설과는 다른 모습들이 현실감있게 살아나고 있는 것은 참 인상적이었다. 슐룸봄 교수가 책에서 이미 말하고 있듯이 그는 미시사 연구 대상 중에서도 특히 '평범한 사람들'에게 주목을 하고 있다. 긴츠부르크의 '치즈와 구더기'와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누가 옳다 그르다를 떠나서 슐룸봄 교수의 접근법도 분명 의미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단, 기존의 (경직된) 역사학 입장에서 보면 해석(부정적으로 말하면 추측)의 영역이 너무 넓고 명확한 '결론'이 보이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에 부정적인 인상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 그러하듯, 명확한 삶의 모습은 그리 쉽게 드러나지도 않으며 또 어찌보면 그런 것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을런지도 모른다.
글 전체 중에서도 착취구조의 농업사회에서 적극적인 불평(?)을 했던 소작농의 편지를 다룬 논문과 한 재단사의 자서전에서 그 시대를 살던 한 인간의 모습을 생생하게 살리는 시도를 하는 논문, 그리고 출산의 주체에 대한 인식과 주체가 되지 못한 임산부들의 '전략'을 다룬 마지막 논문이 참 흥미로웠다. (그 전략이 조금더 구체적으로 살아났으면 더 흥미로왔겠지만)
사실 이 책은 소재 자체가 우리와는 너무 거리가 먼 듯 하고 또 말 그대로 '논문'이기 때문에 재미로 읽기엔 약간 거리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읽기 전에 그러한 생각이 든다면 이 책의 번역자와 슐룸봄 교수의 대담에 나오는 한 구절을 인용해 드릴까 한다.
백승종 - 자, 그럼 이제 마지막 질문입니다. 방금 이 책을 끝까지 독파한 한국의 독자들에게 선생님이 바라는 점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말씀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슐롬봄 - 한국의 독자들에게 저는 무엇인가 막연한 바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차라리 한국의 독자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습니다. 이 책을 읽은 한국의 독자 여러분은 지리적으로 대단히 멀리 떨어져 있는 독일의 어느 한 마을, 또는 어느 한 도시에 살았던 농민과 소작농의 세계에 대하여 호기심을 표하였습니다. 이름 없는 어떤 재단사의 삶이나 미혼모의 일생에 관해서도 깊은 관심을 가져주었습니다. 이제 저로서는 도리어 궁금한 점이 없지 않습니다. 한국의 독자 여러분은 이 책을 읽고 나서 근대 유럽의 일상세계가 낯설게 느껴지는지, 아니면 한국의 역사와 꽤나 비슷한 점이 많다고 생각하시는지 저는 그 점을 여쭤보고 싶습니다. 독자 여러분이 이 책에 적용된 문제 의식이나 연구 방법을 이용해서 한국의 역사를 직접 연구해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셨다면, 저로서는 그 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
사실 '현미경으로 보는 역사'라거나 '능동적인 과거 속의 인간'이라는 말보다도 슐룸봄 교수의 이 말 속에 그의 역사관이 잘 드러나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꽤 낯설었다. 내가 아는 한국의 역사에 비해서도, 내가 아는 유럽의 역사에 비해서도. 자, 그럼 내가 알고 있는 한국의 역사에는 또다른 '낯선 부분'이 존재하지 않을까? '낯익음은 배우는 자에게 있어 毒과 같다'라는 엉터리 말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