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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선계] 무협소설의 최고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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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간을 온통 빼앗아버린 책 [쟁선계].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2002년부터 시작해 일 년에 한두 권씩 발행되던 책이 2006년 9권 출간 이후 기약도 없는 휴지기에 머물다 2013년에야 다시 이어지기 시작한데다, 실로 방대한 내용에 수많은 협사들이 등장하는 만큼 나의 기억력으로는 새로운 책을 읽으려면 처음부터 다시 읽어야하니 말이다. 하지만 몇 번씩 다시 읽는 건 단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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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간을 온통 빼앗아버린 책 [쟁선계].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2002년부터 시작해 일 년에 한두 권씩 발행되던 책이 2006년 9권 출간 이후 기약도 없는 휴지기에 머물다 2013년에야 다시 이어지기 시작한데다, 실로 방대한 내용에 수많은 협사들이 등장하는 만큼 나의 기억력으로는 새로운 책을 읽으려면 처음부터 다시 읽어야하니 말이다. 하지만 몇 번씩 다시 읽는 건 단순히 잊어버렸기 때문만은 아니다. 단순히 무협소설이라고 치부해버릴 수 없는 작품성과 재미를 동시에 갖추고 있는 이 책에는 엄청난 중독성이 내재되어 있다. 너무 황당하게만 느껴지던 옛 무협지의 이미지를 확 깨버린 김용의 [영웅문] 3부작을 접하고 무협소설이라는 장르에 눈을 뜬 이래 최고의 작품을 만났다고 감히 이야기하고 싶다. 중국 무협에 슬슬 식상하던 무렵 용대운의 [태극문], 좌백의 [대도오]를 거치며 신무협의 새로운 경지에 한껏 빠지게 되었지만 근래에는 판타지의 영향으로 정통 무협의 맛을 느끼지 못했었는데 이런 최고의 작품을 다시 읽을 수 있어 행복하다. 하루 종일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개인적인 시간을 몽땅 빼앗는다고 해도 그저 즐겁다.

 

쟁선계의 대단한 점은 여러 가지다. 우선 기존의 무협소설과 다른 점은 주인공이라 할 만한 비중을 차지하는 인물이 상당히 많다는 것이다. [수호지]처럼 문파도, 나이도, 성격도, 재능도, 실력도, 모든 면이 제각각인 협사들이 등장해 강호를 누빈다. 석대원이라는 청년이 중심에 있긴 하지만, 한 장에 전혀 등장하지 않을 때도 있을 정도로 이야기는 여러 갈래로 뻗어간다. 하지만 결국에 대결해야 할 상대는 한 곳을 가리키고 있다는 큰 줄기는 흔들리지 않는다. 흩어졌다 모이고 꼬였다 풀어지는 사건들, 헤어졌다 다시 만나고 또 다른 갈림길로 향하는 사람들, 엇갈린 사랑과 뜨거운 우정, 숨어있던 반전의 묘미, 손에 땀을 쥐게 하는 혈투, 장쾌한 명승부, 유머와 해학... 읽으면 읽을수록 작가의 내공에 감탄하게 된다.

 

이 책의 주목할 점 중 또 한 가지는 절대악과 절대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 부모를, 내 사부를 죽인 그들에게 복수를 해야 한다는 강호인들의 법칙에 따라 산다면 돌고 돌 수밖에 없는 세상. 내게는 원수지만 누군가에겐 은인인 관계에서 누구를 탓하고 누구를 미워해야 하는 것인지 누구를 위한 복수인지 무엇을 위한 승부인지 상실감과 허무함 속에 각자의 화두에 던져지는 무림인들. ‘나는 무엇을 얻고자 이리 애써 왔던가?’ 하나의 대답을 구하면 또 다른 의혹이 생겨난다. “행하려는 것을 행하게. 그러면 얻으려는 것을 얻게 될 걸세. 하지만 결국에 가서는 얻음과 잃음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될 테지. 그것이 자네에게 드리운 끈일세.” 난세에 접어드는 무림에서 앞세우는 명분이란 속을 들여다보면 추악한 욕망과 이익을 위한 얄팍한 껍질에 불과한 것인데, 그런 혼란의 세상에도 영웅은 탄생하고 희망도 어딘가에는 존재하고 있다.

 

무협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요소들을 갖추고 있다는 점 또한 이 작품을 대작으로 만들어주는 요인이다. 소림, 무당, 개방을 비롯해 매화, 화산, 형산, 사천당문 같은 유명 문파는 물론, 신무전과 무양문, 황궁의 동창과 금의위, 서장 밀교와 자객, 녹림과 하백, 기타 가문들을 대표하는 고수들이 즐비하다. 덕분에 온갖 종류의 무공과 기인들을 만날 수 있으며, 주원장이 건국한 이후의 명과 몽골 오이라트 등 당시의 정세까지 엿볼 수 있다. 게다가 인생에 대한 명제들까지 곳곳에 등장하니, 웬만한 문학작품 못지않은 무협소설의 완결판이라 해도 좋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조심하라. 해결하라. 만족하라.”
“삶이란 문제의 연속이다. 조심하라. 그러면 문제를 피할 수 있다. 그럼에도 문제를 만나게 되면, 문제가 야기한 압박감에 휩쓸리지 말고 중심을 잡아 해결하라.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 낸 결과에 만족하라. 이 세 가지 경구를 실천에 옮길 수 있다면 네 삶에 큰 실패는 없을 것이다.”



 

y*****p 2017.09.02.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한국 무협사에 일획을 그은, 21년만의 완성작, 쟁선계
"한국 무협사에 일획을 그은, 21년만의 완성작, 쟁선계" 내용보기
한국 무협의 전설, <쟁선계> 마침내 완간! 한때 무협팬이었다. 지금은 무협을 거의 읽지 않는다. 나이를 먹고, 세상을 보는 기준이 높아졌는데 무협 수준은 현격히 낮아졌다. 이따금 요즘 무협을 펼쳐보면 실소를 금치 못한다. 무협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졸작이 수두룩하다. 무협의 입지가 줄어들 수밖에 없는 이유다.  최근 하이텔 시절부터 무협 팬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을 받은 바
"한국 무협사에 일획을 그은, 21년만의 완성작, 쟁선계" 내용보기

한국 무협의 전설, <쟁선계마침내 완간!

 

한때 무협팬이었다. 지금은 무협을 거의 읽지 않는다. 나이를 먹고, 세상을 보는 기준이 높아졌는데 무협 수준은 현격히 낮아졌다. 이따금 요즘 무협을 펼쳐보면 실소를 금치 못한다. 무협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졸작이 수두룩하다. 무협의 입지가 줄어들 수밖에 없는 이유다.

 

최근 하이텔 시절부터 무협 팬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을 받은 바 있는 이재일 작가의 쟁선계가 마침내 연재를 마치고 발간되었다. <쟁선계는 용대운의 군림천하와 함께 이승에서 완간을 못 볼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돌 정도로 극악의 연재 주기를 자랑하던 작품이었다. 연재 주기가 무려 21년이었으니 이건 뭐.

 

21년의 시간은 헛되지 않았다. 출간된 쟁선계를 보면 원고 수준이 한 단계 올라간 것은 분명하다. 제본 방식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무려 양장이다. 전집을 사서 책꽂이에 꽂아놔도 품격이 느껴진다. 예전의 싸구려 종이로 만든 세로 판형 방식을 감안한다면 비용이 몇 배나 더 드는 방식이다. 이재일의 쟁선계는 내용이나 형식 면에서 국내 무협 장르의 위상을 격상시켰다고 봐도 좋다.

 

 

쟁선계>, 한국 무협의 위상을 드높이다

 

하이텔 시절부터 이재일은 팬과 무협 작가들 사이에서 유명했던 인물이었다. 아마추어임에도 그가 내놓은 작품은 프로 무협 작가들도 손 들 정도의 퀄리티를 자랑했다. 한국 무협의 중흥을 이끈 좌백도 습작 때 이재일의 작품을 참고했을 정도라고 하니 글솜씨는 타고났던 모양이다.

 

이번에 외전 포함 총 21권으로 완결된 이재일의 쟁선계를 면면히 살펴 보면 그의 작품이 왜 무협팬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고, 땅에 떨어진 한국 무협의 위상을 높이는 작품인지를 알 수 있다. <쟁선계는 여러 가지 면에서 무협소설의 클리셰를 극복하고 새로운 시도를 거침없이 행함으로써 독자들 사이에서도 쟁점을 만들어낼 정도였다.

 

 

쟁선계>, 한국 무협의 경계를 넘어서다

 

쟁선계는 무협 장르가 추종해야 하는 규범을 유지하면서 그전까지 국내 무협의 단점으로 지적되던 천편일률적인 구성을 탈피하는 데 성공했다. 80-90년대 전성기를 구가하던 무협이 너나할 것 없이 비슷비슷한 스토리와 구성을 반복하면서 독자들로부터 외면을 받은 사례를 감안한다면 이는 장래 무협의 발전을 위해 무척 고무적인 현상이다.

 

쟁선계는 석대원과 석대문 형제가 주인공이지만 전체 분량에서 이들이 차지하는 부분은 많지 않다. 비각의 비영들, 무양문주 서문숭과 부하들, 구대문파, 중원을 노리는 오이라트, 신무전의 소철 등 수많은 캐릭터들이 번갈아 등장하는 바람에 두 사람이 주인공이 맞나 싶을 정도다. 영화의 교차편집을 연상케 하는 구성인데, 주인공의 역할이 희미해지는 단점은 있지만 이야기가 더 풍부하고 깊어지며, 캐릭터들에게도 더 생생한 역할을 부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쟁선계를 읽다 보면 가장 먼저 작가의 유려한 필력이 다가온다. 이 작품이 과연 무협 소설인지 의문이 갈 정도로 감성적이면서 풍부한 표현들이 이곳저곳에서 독자들을 반긴다. 게다가 지명이나 무공, 바둑 등 글의 소재에 대한 근거 자료도 구체적이고 풍부해서 읽는 재미가 더하다.

 

 

쟁선계>, 구절양장식 추리 요소로 재미를 더하다

 

이재일이 이 작품을 쓰면서 무협 소설의 범주를 벗어나고자 했던 의도는 제목을 보면 명확해진다. <쟁선계(爭先界)>. ‘앞을 다투는 자들의 세상, 남을 이기려는 자들의 세상". 일개 무협 소설의 제목 치고는 너무 거하지 않은가 

 

이재일은 제목에 걸맞는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작품의 배경으로 송나라 멸망 시기부터 원나라 건국, 명나라 건국, 호남의 옥, 정난의 변, 토목의 변을 인용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누대에 걸친 은원과 사연은 결코 간단치 않다.

 

혈랑곡주의 정체, 석가장의 비극, 혈랑검법의 연원 등 작품 속 사건들은 오랜 세월 속에서 수수께끼적인 요소를 안고 있다. 독자들은 이재일의 인도를 따라 퍼즐을 푸는 것처럼 이야기를 읽어나간다. 비밀은 등장인물들의 입을 통해, 혹은 행동을 통해 마침내 신비를 벗어던진다. 대개 직선적인 구성을 표방하는 여느 무협들과 달리 곡선과 단절, 매듭의 변주로 독자의 흥미와 궁금증을 교묘하게 자극하는 솜씨는 가히 일품이다.

 

 

쟁선계>, 차세대 무협작가들에게 숙제를 던져주다

 

말도 많고 화제도 많이 양산했던 쟁선계는 완결과 함께 새로운 과제를 국내 무협계에 던져놓은 셈이 되었다. 압도적인 찬사와 호평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쟁선계의 단점으로 이야기되는 지적들은 의미심장하기 때문이다.

 

프로 작가들조차 경탄해마지 않았던 이재일의 유려한 글솜씨가 혹자에게는 단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대하소설처럼 수많은 캐릭터가 교차하며 등장하는 방식은 먼치킨 류의 단독 주인공에 익숙한 요즘 세대들에겐 불편하다고 한다. 이는 세대의 변화에 기인한 것이다. 간결하고 감각적인 글과 동영상을 선호하는 젊은 독자들에게 맞는 글쓰기란 과연 무엇일지 궁금해진다.

 

쟁선계는 압도적인 무게감으로 무협 소설계의 앞자리를 쟁취하였다. 따지고 보면 무협 소설 내 뿐만 아니라 그 소설을 그려내는 작가들의 세계도 쟁선계아니던가. <쟁선계이후 철중쟁쟁을 논할 작가들이 과연 어떠한 차별점을 가지고 이재일의 아성에 도전할지 주목된다.    

o******e 2018.03.1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