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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선계] 앞을 다투는 세상
"[쟁선계] 앞을 다투는 세상" 내용보기
드디어 종장을 맞았다. 곤륜산 무망애에서 시작된 악연은 다시 그곳에서 앞을 다투는 자들의 무대로 끝을 맺는다. 무엇이 옳고 뭐가 그른가를 떠나 대의와 명분을 정리하며 제작기 자신의 길로 떠나는 강호의 사나이들. 2002년부터 시작된 앞을 다투는 세상은 2015년 11월, 희망의 여운을 남기며 또다시 아침을 맞으러 나아간다. 우리 앞에 어떤 내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누구도 알 수는
"[쟁선계] 앞을 다투는 세상" 내용보기

드디어 종장을 맞았다. 곤륜산 무망애에서 시작된 악연은 다시 그곳에서 앞을 다투는 자들의 무대로 끝을 맺는다. 무엇이 옳고 뭐가 그른가를 떠나 대의와 명분을 정리하며 제작기 자신의 길로 떠나는 강호의 사나이들. 2002년부터 시작된 앞을 다투는 세상은 2015년 11월, 희망의 여운을 남기며 또다시 아침을 맞으러 나아간다. 우리 앞에 어떤 내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누구도 알 수는 없지만 세상을 향한 길은 여러 갈래로 향해 있다. 남은 건 나의 선택일 뿐.

 

석대문은 앞을 가리켰다.
“봐라.”
석대전의 눈길이 형의 손가락을 좇아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활인장 전방의 대로를 향했다.
“너와 내가 지금 바라보는 앞이 같듯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같은 앞을 바라보며 살아간다. 저 앞에서 기다리는 것은 권력일 수도 있고, 황금일 수도 있고, 절세적인 무공일 수도 있고, 어쩌면 네가 말한 대의일 수도 있지. 그것들을 향해 빠르게 달려가는 사람도 있고, 더디게 기어가는 사람도 있고, 저만치 앞쪽에서부터 출발하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뒤편에서 출발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니까 남과 다투는 것이다. 바라는 자들이 많으니까. 하지만...”
석대문은 다른 방향을, 길이 아 있지 않아 나무에 가려졌거나 담벼락에 막혀 있는 방향을 둘러보았다.
“모든 사람이 동일한 앞을 바라보는 것은 아닐 것이다. 누구는 왼쪽을, 누구는 오른쪽을, 또 누구는 뒤를 앞이라 여길 수도 있겠지. 어쩌면 한자리에 붙박인 채 어느 방향으로든 움직이지 않는 쪽이 가장 좋다고 여기는 이도 있겠고. 앞을 다투는 자들에 의해 돌아가는 이 세상에서, 이 작은 ‘다름’들은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질까?”
(본문 중에서-p94~p95)

 

아마도 ‘다름’이 있어 세상은 원활하게 돌아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누구나 똑같은 길로 달려간다면 숨 쉴 틈 없이 다투어야할테니. 서로 다른 우리들, 선택의 길은 각자의 몫이겠지만 결국 행복을 추구하는 바람만은 같지 않을까. 산다는 것은 고난과 불행의 연속이라고 한다. 그러다 마주치는 행복의 순간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겠지만 그 작은 행복이야말로 삶의 보람이며, 드물기 때문에 더욱 소중하고 기쁘게 느껴지는 것이리라.

 

고해(苦海)인 삶은 본디 불행하다.
모든 사람들이 삶의 목표로서 추구하는 행복이란 불행이 부재하는 시간과 공간에 나타나는 그늘 같은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 햇볕이 따갑게 내리쬐는 한여름 이 그늘에서 저 그늘로 피해 다니는 작은 벌레들처럼, 인간은 불행이 이글거리는 삶의 길 위에서 행복의 작은 그늘을 찾아 이리로 또 저리로 뛰어다니며 위안을 찾는다. 자체로 어떤 기준을 갖는 자리가 아니라 불행이라는 뚜렷한 기준으로부터 조금이나마 자유로워진 자리, 그 자리가 바로 인간들이 말하는 행복이다.
불행은 잦고 강성한 반면 행복은 드물고 미약하다. 불행이 야기하는 고통은 차라리 운명 같기까지 하다.
그러므로 삶은 가치 없는 것일까? 그렇다면 왜 살아야 하는 것일까?
불행이 삶의 원형, 고통이 삶의 규칙이라면, 그 삶에 이미 적응되어 있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불행을 외면하고 고통을 망각하는 능력이 모든 인간에게 이미 내재되어 있다. 인간은 허무감으로 무너지지 않도록 설계된 강인한 종이기도 하다. 그들은 언제나 극복한다. 그 극복의 수단이 치졸한 변명이든 나약한 회피든 굴강한 돌파든, 허무감을 견뎌 내고 다시금 불행과 고통의 바다를 건너 항해할 준비에 나선다.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지는 것이라고 자조해도 괜찮다. 삶은 ‘삶’이기에 가치 있다. 바로 그것이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다. (분문 중에서-p359~p360)

 

엄마가 늘 하시는 말씀이 생각난다. 삶이 너무 힘들어 울고 있을 때 할머니께서 해주셨다는 말씀. “어쩌겠노. 사는 데까지 살아야지.” 내게 이재일이라는 작가를, 그리고 쟁선계라는 책을 가르쳐준 오빠도 끝까지 함께 읽을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저무는 한해를 보내며 아쉽고 그립고 보고 싶다.

 


 

y*****p 2017.09.0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