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퓰리처 상을 받은 작품이다. 1897년 작가로 거의 고전의 반열에 오른 작품인데 유명하긴 [우리 읍내]라는 작품이 더 많이 읽히고 연극으로도 만들어졌다고 들었다. 재난 후의 남겨진 사람들의 아픔은 무얼로도 설명이 안되고 위로가 안될 것이다. 도대체 왜 우리 가족이 희생된 것인지 하필 왜 그 자리에 있었는지 무엇으로도 납득이 안 될 것이다. "우리는 우연히 살고 우연히 죽는 것일까. 아니면 계획에 의해 살고 계획에 의해 죽는 것일까" 이런 철학적 명제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 쯤 질문한다. 하지만 죽음이 가까이 왔었거나 그로인해 장애를 얻었거나 가족을 잃은 사람에게는 치명적이고 폐부를 찌르는 질문일 것이다. 1714년 7월20일 금요일 정오, 페루에서 가장 멋진 다리가 무너지며 다섯 명의 여행자가 그 아래의 골짜기로 추락했다. 로 시작한다. 그렇게 뉴스거리가 될 문장에서 '주니퍼 수사'라는 사람이 목격하게 되고 "왜 하필 저 다섯 사람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우주에 어떤 계획이 있다면, 인간의 삶에 어떤 패턴이 있다면, 갑자기 중단된 저들의 삶 속에 불가사의한 무언가를 밝혀낼 수 있을 것이 분명하다며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간다. 결론 부터 이야기 하면 어떤 패턴도 루틴도 일률적인 공통점도 없었다. 모두 천벌을 받아야 하는 악인도 아니었고, 유용하지 않은 인물도 아니었다. 또한 사랑받지 못한 사람들도 아니었다. 오히려 자기 자신을 사랑했고 누군가를 꾸준히 사랑하고 열망하며 표현했다. "사랑 안에서는 우리의 실수조차 오래가지 않는 것 같더군요" 가족들을 잃고 아픔을 호소하고 나누기 위해 수녀원장을 찾은 사람들에게 원장이 한 말이다. "사랑을 위해서는 기억조차 필요하지 않다. 산 자들의 땅과 죽은 자들의 땅이 있고, 그 둘을 잇는 다리가 바로 사랑이다. 오직 사랑만이 남는다. 오직 사랑만이 의미를 지닌다. (207) 몇일 전에 읽은 시 한편이 딱이다. [천 개의 아침], 메리 올리버(잘가렴, 여우야 중에서) 그래 맞아. 당신은 삶에 대해 당신의 똑똑한 말들로 그 의미를 숙고하고 곱씹으며 야단법석을 떨지만, 우린 그저 삶을 살아가지 아! 궁극적으로 삶의 의미를 알아낼 수 있는 존재가 있을까? 그런데 왜 그걸 알아내려고 그 많은 시간을 쓰는 건지. 당신은 야단법석을 떨고, 우린 살지. 그는 이제 늙은 몸이라 천천히 일어나서 어슬렁어슬렁 걸어갔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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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4년, 페루에서 가장 멋진 다리가 무너지면서 우연히 그 다리를 건너던 다섯명에 사람들은 순식간에 목숨을 잃게 되는 사고가 일어난다. 그때 마침 그 사건을 목격한 자가 있었는데..바로 북이탈리아 출신의 프란체스코회 선교사인 주니퍼 수사이다. 주니퍼 수사는 그 사고가 왜 그 다섯사람에게 일어나게 된 건지에 대한 의문을 품게되는데..그는 이 사고는 신의 섭리인지, 아니면 단지 우연에 의한 사고인지..에 대해서 밝혀내기 위해 그 다섯명의 희생자들의 삶을 추척해나가기 시작한다. 그렇게 이책은 주니퍼 수사가 다섯명의 희생자들의 삶을 추적하며 기록을 남긴 그들의 생애를 들려주므로써 죽음과 삶에 대한 얘기를 심도있게 그려내고 있다. 죽음을 맞이한 다섯명의 희생자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통해 그 다섯명의 삶의 모습이 지구상에 사는 인류전체의 삶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책은 1927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작품뿐만 아니라..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회자되는 불후의 명작이라고 한다. 영문학자 故 장영희 교수가 그토록 번역하고 싶었던 책이기도 한다던데..정말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작품이었던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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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질에 대한 영적인 울림 -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 손턴 와일더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생각한다. 자신이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끊임없이 생각한다. 개인이 의식하지 않더라도, 인간은 자신의 삶에 대해 본능적으로 회의를 거듭한다. 자신에게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인생이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된다. 물론, 아무리 부와 명예를 얻은 사람이라도 자신의 인생에 완벽하게 만족하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으며, 처한 현실에 조금의 불만조차 없는 사람도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어쩌면 인간은 근본적으로 자신의 존재 자체에 불안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는 그러한 인간의 본질에 대한 영적인 성찰과 울림을 안겨주는 작품이다.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는 미국 문학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는 작품이다. 1920년대에 출간된 작품이지만, 여전히 문학적인 찬사를 받으며 널리 읽히고 있다. 이 작품이 수많은 극찬을 들은 이유는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 고풍스러운 문체에 철학적이며 진지한 작품의 성향을 보면,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은 요인을 쉽사리 찾기 힘들다. 그렇지만, 실제로 작품을 접한 이후에 느끼게 되는 표현하기 어려운 영적인 울림은 상당히 충격적이다. 작품 속의 상황들과 거리를 유지하는 감정적으로 절제된 표현과 묘사는 물론, 종교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하는 엄숙함도 인상적이다. 특이한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우 쉽게 읽힌다는 점이다.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는 일반 독자들에게 거리감을 느끼게 만드는 예술적인 문학적 포장이 없다. 그저 인간의 삶에 대한 성찰을 담담하게 새겨나갈 뿐이다.
손턴 와일더는 여러 편의 소설과 희곡으로 유명한 작가이다. 뿐만 아니라, 수필과 외국문학의 번역, 시나리오 집필 등 다양한 문학 장르에서 재능을 발휘하였다. 특히, 20세기 전반에 걸쳐 3번이나 퓰리처상을 수상하면서,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명성을 떨쳤다.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가 그에게 명성을 안겨준 첫 번째 작품이라는 점은 그가 추구하는 문학의 방향성을 엿보게 한다. 즉, 고급문학의 본질이 어려운 미사여구의 남발이나 문학적인 기교의 향연이 아니라, 진정성에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가 문학적으로 깊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음에도, 독자들에게 매우 쉽게 다가서는 이유에는 인간의 본질에 대해서 진심으로 다가서려는 작가의 태도에 있음을 알게 된다.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는 인간성에 대해서 깊은 성찰을 보여주는 작품이기는 하지만, 그 답을 제시하려는 작품은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독자들을 향하여 그러한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사실 질문에 대한 답은 사람들에 따라 달라질 가능성이 많다. 인생이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인간은 과연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에 대한 답도 마찬가지다. 작가는 질문에 대한 어떠한 답도 부정하지 않는다. 모든 답이 정답일지도 모르고, 오답일지도 모른다. 단지, 인간은 삶을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해답을 찾아가고 있을 뿐이다.
문학의 본질은 인간에 대해서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는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는 그러한 면에서 문학의 본질에 매우 근접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출간된 지가 벌써 80년도 넘은 작품이 여전히 마음속에서 깊은 울림을 주는 이유에는, 문학과 인간에 대한 겸허한 태도와 사람들의 마음속에 숨어있는 본질적인 질문을 깨닫게 해주기 때문이리라 생각된다.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는 문학과 인간의 본질에 대해서 깊은 사색을 원하는 독자라면, 반드시 읽어볼 필요가 있는 명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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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좋은 이 계절에 읽기에 너무나 좋은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 이책은 출간되기 전부터 무척이나 기다렸던 책이다. 이 책의 저자는 '손턴 와일더'로 그동안 국내에 출시된 적이 없어서 만날 기회가 없었지만, 그는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로 인정 받고 있으며 한번도 수상하기 힘든 퓰리처상을 3번이나 수상한 유일한 작가라는 점과 함께, 퓰리처상 수상, 퓰리처상 수상 이후 지금까지도 읽히고 회자되는 불후의 명작, 20세기 미국 문학의 백미,20세기 최고의 영미소설, <타임>이 선정한 최고의 영미소설을 비롯한 수많은 찬사,또한 문장가들의 교과서로 불리며 문학계는를 비롯한 유력 잡지들로 부터 폭발적인 찬사를 받았다고 하기에 도대체 어떤 소설인지 직접 확인 해보고 싶었기에 책이 나오자 마자 읽게 된 책이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하지만 기대 이상의 울림을 주는 책으로 '가장 위대한 문학적인 선물'이라는 평처럼 올해 만난 최고의 선물이라고 할 수 있다. 1714년 7월 20일 금요일 정오, 페루에서 가장 멋진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가 무너져 여행객 다섯명이 죽게 되는데,마침 인디언들을 개종시키기 위해 페루에 와 있던 '주니퍼 수사'는 다리가 반으로 갈라지면서 다섯명이 떨어지는것을 지켜보면서 "왜 이러한 일이 하필 저 다섯 사람에게 일어나야 한단 말인가?"라는 의문을 갖게 되면서 '우리는 우연히 태어나 우연히 죽게 되는 것일까? 아니면 정해진 섭리에 의해 태어나 정해진 섭리에 따라 죽게 되는 것일까?'라는 의문을 가지면서 순수한 상태에서 신의 의도를 밝혀 내고 싶어서 그들의 비밀스러운 삶을 조사하고, 그들의 추락이유를 밝혀 내려고 하면서 이야기는 시작이 된다. 추락한 다섯명을 추적하면서 밝혀지는 그들의 아픈 과거가 밝혀지는데 그들은 아픈 과거를 잊고서 '다시 시작할 거야'라는 마음으로 같은 시간 그 다리를 건너는 중이였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수사, 그러나 이 사건을 조사하던 주피터수사는 이단으로 몰리게 되면서 주피터수사를 혼란에 빠뜨리게 된다. 많은 페이지가 아니기에 두번을 읽었는데 문장가들의 교과서라는 명성답게 문장들이 하나 하나 살아 숨쉬는 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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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때로 삶이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떤 커다란 흐름에 따라 흘러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말하자면 태어날때부터 정해진 운명, 점집에서 말하는 사주팔자가 있어서 개인이 아등바등 발부둥쳐도그런 운명에서 살짝 벗어날 수는 있지만 결국은 그 운명대로 살아진다는 생각말이다. 내 아내와의 인연을 살펴보면 이런 추측은 다소 확신을 갖게된다. 수많은 경우의 수 중에서 어떻게 그렇게 결혼하고 아이낳고 살 수 밖에 없는 길로만 찾아왔는지... 그것이 나의 '의지'였는지 정해진 '운명'이었는지 궁금할 때가 있지만 결과적으로 그 과정은 정말 '이건 운명이야!'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이 책은 같은 맥락의 주제를 다룬다.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삶에 개개인의 의지를 넘어서는 방향이나 의미가 있는가?'하는 문제이다. 페루에 있던 '무너진다는 것은 꿈도 꿀수 없었던'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가 갑자기 무너져 마침 그 다리를 건너던 다섯 사람이 떨어져 죽는다. 우연히 다리가 무너지는 장면을 목격한 주니퍼 수사는 '왜 이런 일이 하필 저 다섯 사람에게 일어난 것일까?'라는 의문을 품게되고 그 다섯 사람의 인생행적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그는 이렇게 함으로써 인간을 만들어낸 신이 그들의 운명까지 신의 뜻으로 정해놓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죽은 다섯 사람은 책에 등장하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또 각기 다른 삶의 문제로 괴로워하다 그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순간 모두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이제 좀 살만하니까, 이제 좀 잘 살아보자 라고 다짐하자 마자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이다. 추천의 글을 쓴 김성곤 교수는 '우연히 같은 장소에서 재난을 당해 함께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과거를 추적함으로써 사람들의 삶이 사실은 얼마나 서로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는지, 또 인간의 운명이란 기실 얼마나 불가해하고 아리러니컬한 것인지 그리고 인간의 죽음에 과연 신의 섭리가 작용하는 것인지 심층적으로 탐색한 불후의 명작이다'라고 매우 친절하게 이 책의 주제와 미덕을 요약해 준다. 이 책은 물론 답을 알려주지는 않는다. 대신 이 문제를 생각할 기회를 준다. 어차피 정답은 없는 질문이므로 개인의 경험과 사유의 바탕에 따라 다다른 결론에 이를 것이다. 책을 읽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책을 놓았다가 잡았다가 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큰 맘 먹고 다 읽어냈다. 김영하씨의 말마따나 나의 '감성근육'이 부족해서 일수도 있겠다. 고전이라고 이름붙여진 책을 읽을 때마다 이런다. 어려운 숙제를 간신히 해낸 느낌이다. |
아마도 이 책을 고전으로 만들게 한 명문장이 아닐까 싶어 옮겨 보았다. 언뜻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가실텐데, 이해를 돕기 위해 설명을 하자면 위 문장에 등장하는 에스테반과 페피타, 피오 아저씨와 카릴로의 아들, 그리고 백작부인의 어머니인 마리아, 위 다섯 사람은 1714년 7월 페루의 산 루이스 레이 다리를 건너다 사망한 사람들이다. 한 세기 전에 만들어져 날마다 수 백명의 사람들이 지나 다닌 다리가 한순간에 무너졌다. 다리가 붕괴되리라곤 상상도 못했던 사람들에게 그 사건은 큰 충격으로 다가온다. 특히나 죽은 사람이 ' 나' 일수도 있었다는 자각은 리마 사람들에게 공포와 동요를 몰고 온다. 성대한 미사가 올려지고 회개의 공물이 물밀들이 밀려온다. 그런 소동 가운데서 유난히 침착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주니퍼 수사다. 때마침 다리가 무너지는 광경을 목격한 그는 "왜 다른 사람이 아니고 그들이었을까?" 라는데 의문을 가지게 된다. 그것이 하느님의 예정된 조화 내진 계획이었을 것이라고 확신한 그는 다리를 건너다 사망한 다섯 사람들의 인생을 조명해 보기로 한다. 그들의 사망이 우연이 아닌 "신의 섭리 "라는 확신이 그로 하여금 개인들의 비밀스런 삶을 추적하게 만들기에 이른 것이다. 말하자면 그 사건이야말로 '신의 의도'를 밝혀낼 수 있는 실험실로 그에게 안성맞춤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그가 밝혀낸 ' 신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그런 것들이 존재한다고 그는 증명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그가 6년동안 각고의 노력을 거쳐 만든 책은 광장에서 불태워지고 마는데...
그렇다면 여기서 주니퍼 수사가 밝혀낸 사망자들의 삶을 들여다 보기로 하자. 후작 부인인 마리아는 자신이 갖지 못한 미모를 타고 태어난 딸을 맹목적으로 사랑한다. 자신의 사랑이 딸에겐 집착으로 느껴질 것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 마리아의 행동은 결국 딸을 숨이 막히게 한다. 자신을 되도록 멀리 데려다 줄 남자를 구해 결혼한 딸은 그제서야 안도한다. 그러나 스페인으로 시집을 갔다해도 편지를 통해 여전히 자신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는 엄마가 딸은 성가시기만 하다. 냉정하게 거리를 두는 딸이 한없이 얄밉고 서운하던 마리아는 딸이 아기를 가졌다는 소식에 반색을 한다. 하지만 딸에게 달려갈 수 없는 것이 자신의 처지,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울적한 마리아는 자신이 보낸 길고 세련된 편지가 실은 딸에 대한 강박적인 사랑의 수단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고아로 자라난 페피타는 수녀원장이 자신의 가능성을 알아봐주자 감격한다. 하지만 자라는 동안 사람들에게 주로 질타와 무시를 당해왔던 페피타는 수녀원장의 호의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하기만 하다. 용기를 내서 수녀원장에게 자신의 뜻을 밝히려 결심한 그녀는 마리아 부인과 함께 다리를 건너게 된다. 쌍둥이 고아였던 마누엘과 에스테반은 서로에게 텔레파시가 흐른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할 정도로 친밀한 사이다. 상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을 하지 않아도 알아 채던 둘은 마누엘에게 사랑하는 여자가 생기면서 사이가 벌어진다. 에스테반의 반발로 여자를 포기한 마누엘은 얼마있지 않아 죽고 만다. 쌍둥이 한쪽을 잃어버린 에스테반은 마치 죽은 것이 자신인양 절망한다. 자살하고 싶어하는 그에게 선장은 죽지 않은 자는 그저 앞으로 나가는 수밖엔 없다고 조언한다. 열살 이후로 자신이 재능만으로 세상을 살아온 피오 아저씨는 카밀라를 만나면서 그녀의 재능을 알아본다. 이성적인 사랑이 아니라 순수하게 성장의 가능성을 사랑했던 피오 아저씨는 곧 카밀라는 리마의 최고 여배우로 만든다. 카밀라가 자신의 재능을 낭비하지 않고 올바르게 살기를 바랐던 피오는 그녀가 방탕한 삶을 살아가자 실망한다. 페루 총독의 정부가 된 카밀라는 흥청망청 살아가다 천연두에 걸려 미모를 잃게 된다.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이 미모덕이라고 생각해온 카밀라는 이제 그 누구의 사랑도 믿거나 받아들이지 않게 된다. 하지만 카밀라에 대한 사랑은 변함없던 피오 아저씨는 그녀를 만나 설득하기 시작하는데...
<변신 인형>(왕멍 저)이란 책에서 이런 이야기를 읽은 기억이 난다. 칠순이 넘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 내 인생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내 인생의 화양연화는 이제 올 것이다" 라고 말하는 장면이다. 음, 그 나이 정도 되면 포기할 때도 됐는데 말이다. 실제로 대부분은 포기를 하고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의 칠순의 아버지처럼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달라라고 주장하면서 포기를 모르는 의지의 인간을 만나면? 철 좀 들라고 말해주고 싶다. 인생은 매일 다른 버전으로 들려주는 드라마나 영화가 아니니 말이다. 물론 자신의 인생이 드라마 주인공처럼 풍성하고 다채로우며 성공적이고 사랑으로 가득한 삶이되길 바라는 맘은 이해한다. 하지만 현실은 환상과는 억만년만큼 차이가 있다. 우리에게 죽음이란 한계가 있고, 우린 그저 우리에게 주어진 단 한 가지 인생만을 살 뿐이다. 비록 그것이 안타깝게 끝이 나건 애절하게 끝이 나건 중간에서 끝이 나건 사랑에서 실패한 채 끝이 나건 간에, 삶이 무한할 거란 추측은 착각일 뿐이다. 그렇게 우리는 죽음이라는 화두 앞에서 한계가 지어지고 만다.
내 가까운 지인의 죽음은 엄청난 비극이지만, 백 단위로 표시된 죽음은 그저 숫자일 뿐이라 하질 않나. 마찬가지로 나의 실패한 삶은 내 자신에게는 비극일지 모르나, 전세계 인류와 그 전에 죽은 선조까지 합한다면 역사가 흘러가는 자연스런 과정일뿐이다.. 그런면에서 붕괴된 다리를 우연히 건너는 바람에 죽게 되었다는 다섯 사람 역시 역사적인 면에서 아무것도 아니다. 티클만큼의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그들을 알고 있던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못하다. 그들은 왜 그들이 죽을 수 밖에는 없었는지 생각을 하게 된다. 전혀 그들과 관계없는 주니퍼 수사 같은 경우는 자신의 논리에 그들을 끼워 맞추길 바라고. 신의 의지이자, 어떤 예정된 계획으로서의 인간의 삶을 증명하기 위해서 말이다. 무언가 뜻이 있을거야. 그렇게 우주가 신이 무위적일리는 없지 않아? 라고 그들을 말한다. 만일 그렇다면 인생은 너무 허무한 것이니 말이다. 허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인생은 우연이 아니여야 할 듯 싶다. 그렇다면 현실은?
이 책의 저자가 말했듯이, 우리는 본능적으로 안다. 주니퍼 수사의 열정이 비록 가상하기는 하나 ,그의 결론을 우리가 받아들이긴 힘든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 다리는 그저 우연히 붕괴된 것이고, 죽은 다섯명이 그 자리에 있었던 것 역시 그저 우연이었을 뿐이다. 가뭄과 수해가 평등하게 배분되지 않듯이 그저 인생이란 공정하지고 평등하지도 않은 것이다. 모든 것이 신의 예정일 뿐이라고 믿는다고 해서 딱히 손해될 것은 없겠지만서도, 마음 속으로는 그런 것은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렇다면 우연의, 무작위적인, 신이 아무것도 예정하지 않은 이런 인생을 사는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나보다 먼저 죽은 사람은 내 기억속에서나 존재한다. 내가 죽으면 그 기억마저 사라질 것이다. 그러는 나는 과연 이 역사속에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나 역시도 죽은 다음엔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이렇게 펄펄 살아서 내 개성과 열정을 토로하고 있지만서도 말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의 삶은 아무것도 아닌 것일까?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기에?
그에 대한 작가의 답이 바로 맨처음 옮겨놓은 문장이다. 그래, 우리에겐 사랑이 남는다. 우리가 살아있었다는 증거로 말이다. 그것이 비록 어떤 역사서 속에서나 편지나 일기에 적혀 있지 않다고 해도, 사랑만은 우리의 영혼 속에는 남는다. 우리가 사랑했던 기억과 우리가 사랑한 사람들에 대한 추억이 말이다. 비록 그것이 성공한 것이었건 올바르지 못한 것이었건 간에 상관없다. 찬찬히 들여다보고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것만이 남데, 라고 말하는 저자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떡일 수 밖엔 없었다. 통찰력있는 견해이자, < 우리 읍내 > 라는 탁월한 희곡을 쓴 작가가 내뱉을만한 지혜다. 어떠신가, 당신이 보기엔? 내 보기엔 꽤 설득력있는 주장 같아 보이는데 말이다. 만일 당신에게 인생에 이보다 더한 것이 있다고 생각되신다면 소설을 써보기실 권해본다. 신선한 주장으로 각광을 받을수 있을지 모르니 말이다.
비교적 얇은 책이지만 얄밉게도 자신이 하고픈 말만 조리있게 군더더기 없이 서술한 책이라서, 다른 두꺼운 책들보다 훨씬 더 양질의 영양가를 보장하고 있었다. 다만 그가 아무렇지 않게 내뱉은 말들이 쉽게 얻어지는 지혜가 아니라서, 독자에 따라 어떻게 읽힐런지는 장담 못하겠다. 독자 각자 , 자신의 경험에 비춰 살뜰하게 읽으시면 되겠다 싶어 추천작으로 넣는다. 깔깔대고 웃기는 책은 아니라 재미는 원하시는 독자라면 실망하실지도 모르지만서도, 그것이 아니라면 인생에 한번쯤은 해봄직한 의문에 함께 질문하고 답해 나가는 과정을 경험하실 수 있을 거라 본다. 75년전에 쓰여진 책이라고 하는데, 참...요즘 작가 중에서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있을지 의문이다. 놀라웠다. 그건 그간 눈부시게 발전했다는 과학이며 광범위한 교육이 결국 인간의 지성엔 별 영향을 주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니 말이다. 그런면에서 보자면 우리는 인간이란 향기에서 과거보다 뒤쳐지고 있는게 맞지 싶다. 부끄럽고 안타까운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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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란 책을 통해 손턴 와일더란 작가를 처음 접하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무척이나 궁금했던 이유가 있었다.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는 출간과 동시에 문장가들의 교과서로 찬사를 받았고 20세기 미국 문학의 백미로 불리며 퓰리처상 수상이란 화려한 타이틀을 가진 작품이었는데 무엇보다 장영희 교수가 그토록 번역하고 싶어했던 작품이란 소갯말은 오랫만에 읽게 된 소설에 대한 기대감을 더욱 불러 일으켰고 최고의 영미소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란 설레임을 안겨 주기도 했다. 1714년 7월 20일 금요일 정오, 페루에서 가장 멋진 다리가 무너져 여행객 다섯 명이 다리 아래 깊은 골짜기로 추락했다. 리마와 쿠스코를 연결하는 큰길에 있는 이 다리는 매일 수백 명의 사람이 지나다녔다. 페루 사람들에게 이 다리는 영원히 존재할 것처럼 보였던 다리였고 무너진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이내 1994년 성수대교 붕괴란 커다란 참사가 일어났던 때가 떠올랐다. 책의 스토리와 그 당시 실제 상황이 묘하게 오버랩 되면서 이름없이 죽어간 이들이 가슴 아프게 떠올랐던 것이다. 어느 누가 감히 상상이나 했겠는가.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가, 성수대교가 무너질 것이라고.. 이 엄청난 참사에 모든 페루 사람이 심하게 동요했지만 이탈리아 출신의 빨간 머리카락을 가진 프란체스코회 선교사인 주니퍼 수사만큼은 다리가 붕괴되는 것을 목격한 후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의 붕괴는 신의 행위라 확신하게 된다.
우연히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불의의 재난을 당해 함께 목숨을 잃은 사람들. 우리는 우연히 태어나 우연히 죽게 되는 것일까 아니면 정해진 섭리에 의해 태어나 정해진 섭리에 따라 죽게 되는 것일까 십 분만 늦었더라도 그 끔찍한 사고를 피할 수 있었을 사람들이었지만 주니퍼 수사는 다섯 사람의 비밀스러운 삶을 조사하고 그들의 추락 이유를 밝혀내기로 결심하게 된다. 못 생기고 말을 더듬는 자신에 대한 보상심리였을까? 딸에 대한 집착으로 인생을 망쳐버린 몬테마요르 후작 부인과 수녀원에서 성장한 고아 페피타, 수녀원에서 고아로 자라난 쌍둥이 에스테반과 마누엘, 그리고 다리에서 죽은 나머지 두 사람은 카밀라를 발굴해 배우로 성공시킨 피오 아저씨와 카밀라의 아들 돈 하이메이다.
이들은 모두 각기 다른 이유로 비탄에 빠져 저마다 조금씩 문제가 있던 사람들이었는데 다섯 사람의 인생을 알아갈수록, 이들이 금요일 정오에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를 건너야 했던 이유를 알게 될수록 죽음에 몰린 다섯 사람의 운명에 초점이 맞춰진 소설인만큼 궁극적으로 인간 존재의 의미를 따라가며 신앙과 진실 사이의 간극을 좁히려는 시선을 느낄 수 있었고 무엇보다 모순적인 인간의 본능과 삶에 대한 집착과 치유의 과정,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삶과 죽음. 그 커다란 의미에 대해 다가설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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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문학다운 문학을 만났다. 게다가 철학적인 주제를 문학 장르에 균형있게 다루고 있었다. 200페이지가 되지 않는 짧은 분량의 이 작품은 독자에게 '인간의 삶이란 신에 의해서 예정된 것인가, 아니면 그저 우연히 살아져가는 것인가!', 라는 한 가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러한 작가의 일관된 물음은 독자에게 넓고도 깊은 사유의 시간을 선사해준다. 자, 이제 각자의 답을 찾으러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 속으로 들어가 보자. ![]() 1714년 7월 20일, 페루의 리마 근처 가장 아름다운 다리가 무너진다. 그리고 그 순간 다리를 건너던 다섯 사람은 영영 돌아오지 못할 강을 지나게 된다. 이 사건은 단순히 참담한 사건으로써 고인들을 향해 잠깐의 묵념을 보내진 후, 덮어질 그런 종류의 것이었다. 하지만 다리가 붕괴된 순간을 우연히 목격한 주니퍼 수사는 다른 사람들은 생각지 못한 의문을 갖게 된다. 그들은 왜 하필 그 자리에서 죽음을 맞아야하는가? 이 궁금증은 다섯 사람의 인생을 조사하게 만드는 발단이 된다. 그리고 그들의 삶이 수면 위로 차츰차츰 드러날수록 자신이 믿고 있는, 믿어야하는 '神'의 존재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독자 역시 어느 순간 주니퍼 수사처럼 인생의 여정에 대해서 함께 고심하게 된다.
외모로 인한 콤플렉스를 아름다운 딸에게 집중시킨 몬테마요르 후작부인, 고아로 수녀원장의 조그마한 관심을 갈구했던 페피타, 쌍둥이 형의 자살로 혼돈의 세계에 빠져버린 에스테반,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카밀라에게 무조건적인 헌신을 보여준 피오 아저씨. 5인은 다리가 붕괴되면서 함께 인생의 종지부를 찍게 된 사람들이다. 그들이 보여준 집착에 가까운 이해 불가한 행태는 사랑의 결핍에서 출발한다. 문제로 인한 반응은 제각각이었지만 그 원인은 모두 '사랑'인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죽기 전에 자신의 문제를 깨닫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려던 상태였다. 그런 그들의 죽음은 참으로 어이없고 허탈한 사건이라 할 수 있겠다. 작가는 그들의 죽음을 매개로 하여 삶의 상실감에 대한 문제를 하염없이 던지고 있고 독자는 그에 해당하는 답을 찾아야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문제에는 정답이 없다는 것이다. 각자의 인생관에 따라서 수없이 많은 답변이 존재하기에 작가는 자신만의 결론은 배제하고 질문만을 남고 둔 채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결국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의 운명에 대해서 묻고 있다.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는 인생사에 대해 원론적으로 집중해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는 철학적으로 인생에 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게다가 와일더의 문장력은 매우 수려하다. 이 작품을 집필할 당시 작가는 프랑스 문학에 열중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는 작품 안에서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하나의 문장조차 그냥 지나칠 수 없게 표현되어 있고 내재적 의미가 깊게 산재되어 있어 여러 번 곱씹어봐야 한다. 게다가 상당히 객관적인 위치에서 이야기를 풀어가기 때문에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독자 입장에서 해석하기가 용이하다. 이러한 점들은 읽는 이에게 이 작품이 자칫 어렵게 다가올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이러한 복잡다단함에게 기인된 사유의 세계를 독자는 마음껏 즐길 수 있다는 것이 강력한 매력이라 할 수 있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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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 이벤트란에도 소개글로 故장영희 교수님께서 매우 번역하고 싶어했다는 글이 있었는데.. 책을 받고 제일 먼저 보이는 광고띠지도 그 얘기가 쾅 하고 박혀있어서 조금 웃음이 나왔다. 故장영희 교수님의 작품이나 교수님을 매우 좋아하긴 하지만.. 왠지 현번역자가 있는데 돌아가신 분 성함이 거론되는 게 조금 이상하달까; 책 서평에 할 말은 아니지만... 광고효과를 거기서 노렸다면 뭐 효과적이었다고는 하겠지만, 딱히 감동이나 따뜻함을 주는 광고효과는 아닌 것 같다.
여담은 여기서 줄이고...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 퓰리처상 수상작이며 '문장가들의 교과서'라 불리는 20C 최고의 영미소설- 난 처음 듣지만.. 김성곤교수의 추천글까지 읽고있노라니 이 책이 정말 대단한가 보구나.. 하고 시작부터 긴장을 하게 되더라.
이국적인 나라 페루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1714년 페루에 있는 산루이스 레이 다리가 붕괴되며 죽음을 맞이하게 된 5명의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들의 죽음을 목격하게 된 주니퍼수사는 이들이 죽음에 이르게 된 '운명'이 바로 '신'이 점지은 '운명'이라고 확신을 하고 자신의 신적신념을 증명시키고자 이들 인생을 추적해 풀이해나기 시작한다. 딸과의 삐걱이는 관계를 풀어내려고 편지를 써내려가는 몬테마요르 후작부인과 수도원출신 고아소녀 페피타. 자신의 일부나 다름없던 쌍둥이형의 죽음 이후 자살까지 시도하지만 이를 극복하고 다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 위해 떠나던 에스테반. 페루의 여배우를 키웠지만 그녀가 결혼한 후 그녀의 아들을 키우기 위해 리마로 떠나던 피오아저씨
보기엔 전혀 상관없는 이들 5명의 삶. 그리고 갑작스런 다리의 붕괴. 그리고 이들의 죽음. 이것에 대해 담백하고도 간결한 어투로 써내려져가는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는 굉장히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하지만 이 책에 대한 들어가는 글과 추천글이 아니었다면 내가 이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것들을 염두에 두고 읽었음에도 소개글에 써져있는 것의 반도 이해를- 혹은 동감을 못하고 넘긴 것 같은 느낌이기 때문이다. 가장 인상깊었고, 공감이 갔던 것은 이 작품이 이후 만들어진 모든 대재난 영화의 효시라 평을 받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 <포세이돈>이나 <타이타닉>과 같은 종류의 작품 말이다. 모두가 재난을 당한 사람들의 과거를 추적해, 그들이 각기 어떤 사연으로 왜 그 순간 그 자리에 있게 되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이 책속 이면에 숨겨져 있는 철학적 의미를 아직까진 확 이해하진 못하겠다. 아무래도 몇번 반복해 읽어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여운을 남기면서, 서평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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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장영희 교수가 그토록 번역하고 싶어 했던 바로 그 책! 이라는 문구와 퓰리처상을 받은 작품이라는 점에서 책을 접하기 전부터 굉장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책이다. 페루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라 그런지 영미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분위기는 마치 남미소설을 읽는 느낌이다. 또한 소설같기도 하고 실화다큐같기도 한 내용과 함께 매우 독특한 구조를 띄고 있다. 1714년 7월 페루의 가장 멋진 다리인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가 붕괴되면서 매일 그 다리를 건너는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운명의 다섯사람만이 그 순간에 다리를 건너다 떨어져 죽게 된다. 이 사건을 목격한 주니퍼 수사는 이 불행을 당한 다섯 사람의 운명에 대해 신이 허락한 죽음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그들의 인생을 추적해나가게 된다. 사랑하는 딸과의 소원해진 관계를 편지로 풀어나가려고 노력했던 몬테마요르 후작부인과 그녀의 충직한 하녀인 수도원출신의 고아소녀 페피타. 자신의 쌍둥이형의 죽음으로 인한 괴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살까지 시도하지만 이를 극복하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 위해 바다로 나가려던 에스테반. 그리고 페루의 여배우를 키우고 그녀의 아들을 데리고 리마로 떠나려던 피오아저씨. 이 5명은 각자의 힘들었던 삶에서 벗어나 새로운 출발을 하기 위해 이 산 루이스 레이 다리를 건너려던 순간에 불의의 사고를 당하게 된 것이다. 다리를 건너기 바로 직전까지의 그들의 각자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결국 그렇게 끝나버린 그들의 삶이 참으로 안타깝고 맘이 아프다. 매일매일 일어나는 사고중에도 이렇듯 참으로 안타까운 죽음을 자주 접하게 된다. 과연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이라는 것이 있는 것일까..운명을 미리 알고 과거를 바꾸려고 노력하지만 결국 바뀐 과거에 의해서도 그 운명의 결과는 마찬가지였던 어떤 책의 내용이 생각난다. 작가가 20세가 되기도 전에 이런 심오한 주제를 가지고 소설을 썼다는 사실이 대단하게 느껴지고 과연 퓰리처상을 3번이나 받은 작가답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이쉽게도 이 책은 거의 별 다섯개의 평점을 받은 훌륭한 책임에는 분명한데 한번 읽고는 그 느낌이 잘 전달되지 않았다. 다시 한번 읽으면 이 책이 주는 그 이면의 매력을 느낄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