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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흥길
[네이버 제공]
윤흥길이라는 작가는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라는, 읽어보지도 못한 소설의 작가로서 기억이 된다. 사실 '소라단 가는 길'이 처음으로 읽어보는 윤흥길 소설.
소라단 가는 길은 여기저기 문학잡지에 연재한 연작소설이다. 고향 초등학교 동창들이 중늙은이가 되어서 모인 총동창회 모임에서 각자 이야기 한토막을 끌어내 모으는 형식이다.
사람마다 개성이 다르고 살아온 길도 다르지만 이들의 이야기는 한결같이 비극만이 있다. 전쟁을 겪어내고 전후를 살아낸 세대에게 어린 시절은 봉인된 악몽의 창고였을 수 밖에 없는 듯 하다. 소설가 스스로가 얘기하듯이 육이오 전후의 어린시절을 풀어놓았고 그럼으로써 자유를 얻었다. 무엇 하나 비극이 아닌 것이 없는 시대를 살아온 이야기를 풀어내고 '힐링'을 한 마음밭에 무엇이 들어설까가 궁금해서라도 저자의 다음 소설을 읽어보고 싶다.
고향말의 힘이 오래묵어 튀튀하게 짙어진 장맛과도 같다. 이 말의 힘이 무거운 비극들의 슬픈 빛을 옅게하는 듯도 하지만 무게감을 더하면서 오래오래 살아있는 느낌을 만들어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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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어린 시절은 반드시 갖고 있는 이야기 보따리다. 윤흥길의 <소라단 가는 길>은 육십이 다 된 중학교 동창들이 모교에 모여 저마다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모깃불을 가운데 놓고 둥그렇게 둘러 앉아 수건돌리기라도 하는 듯, 어린 시절, 6.25 전쟁 그 시기의 이야기를 잘근잘근하게 씹어 내민다.
어린 시절, 땟국물 뒤집어쓰고 뛰어다니던 아이들은 어른들에게는 잔인하리만치 잔혹하게 겪은 6.25 전쟁을 '신바람이 나서' 종알종알거린다. 아무렇지 않게 꺼내놓는 보따리 안의 이야기들은 고스란히 그 때 당시 아이들의 눈동자에 투영된 채 읽힌다. 꽤 정감 가는 추억이라 느껴지면서도 무서우리만치 생생하게 전쟁 상황이 묘사되어 있다. <개비의 집>은 이념이 서로 다른 공산주의 명숙이 누나와 부르주아의 딸인 금옥이 누나를 떠올리면서 둘 중 어느 하나는 행복해야 하는 게 맞는 거 아니냐며, 전쟁은 둘 중 하나는 승리해야 하는 거 같은데 명숙이 누나도 금옥이 누나도 둘 다 행복해지지 않았던게 참으로 이상하다고 말한다. 금옥이 누나는 인민군의 진격으로 멀리 도망가야 했고 명숙이 누나는 인민군의 후퇴로 빨치산이 되었다는 소식 후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안압방 아자씨>에 등장하는 안압방 아저씨나 <묘지 근처>의 상이군인은 참전 후 다리 한 쪽을 잃거나 미치광이가 되어 일상생활을 할 수 없는 모습으로 귀향한다. <큰남바우 철둑> 이야기에서는 빨갱이 정신을 가졌다고 어른들이 내치나 꾸벅꾸벅 인사성 하나 기특한 소년이 동네끼리 담력 싸움을 하던 중 상행열차에 치여 죽어가면서 나는 인민군이 아니라 국군이라니깨 라는 말을 남긴다. <소라단 가는 길>은 피난 중 가족을 잃고 혼자 살아가는 소년이 분명 서울에서 가수가 되었을 거라는 자신의 누나를 찾는 과정을 그려낸다. 찾아낸 가수는 누나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자 소년은 완전한 전쟁 고아로 변모한다.
전쟁으로 인해 피폐해진 마을 풍경, 어수선한 마을 인심, 이산 가족, 전쟁 상황을 있는 그대로 '놀이'에 적용시키는 아이들, 군인들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 포성, 총성 등. 6.25 전쟁 당시 모습을 무언가로 포장한다거나 덮어 씌우지 않고 가식 제로인 아이들의 시선이 그려낸 <소라단 가는 길>은 그래서 소탈하고 그래서 장난스럽고 그래서 아련하고 그래서 슬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