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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둡다. 몹시 깜깜한 어둠을 헤치고 한 사람이 출근을 준비한다. 그는 노동자다. 매일 몸을 놀려서 먹고 산다. 그가 어둡고 커다란 건물들로 둘러싸인 좁고 높은 골목길을 걸어 기다란 계단을 오른다. 고행처럼 걷는 길에 부랑자, 떠돌이 개, 경찰관과 경찰견이 경계의 눈빛을 보낸다. 공장의 문은 닫혀있다. 그는 이제 밥벌이를 잃었다. 더 이상 일할 곳이 없어진 그는 더욱 어두운 눈빛으로 집으로 돌아온다.
비가 내린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거리의 광고판이 지나는 이들을 유혹한다. 집으로 돌아와 그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자신의 이야기다. 그리는 만화는 현실과 뒤섞인다. 비가 쏟아지고 도시는 잠긴다. 그의 집도 잠기고 그는 물로 잠긴 도시 위를 떠돈다. 고양이와 그만 남기고 도시는 홍수로 잠긴다. 책은 대사가 없다. 말없이 표현되는 현실은 어두운 그림체와 함께 '과연 이것이 뉴욕이란 말인가'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 그것이 우리가 영화, 미디어 등을 통해서 경험하고 있는 그곳과는 완전히 다른 뉴욕의 또 다른 현실이다. 현실에 대한 비판은 거칠고 어두운 그림으로 극대화된다.
거리의 부랑자, xxx로 대표되는 성 산업의 현실, 지하철의 그래피티 등은 겉으로 화려한 미국에서 현실의 이면을 효과적으로 대변한다. 겉은 멀쩡하고 속은 썩어가는....곧 겉으로도 드러날 심각한 문제들에 대한 항변이다. 누가 들을 것인가. 이억만리 떨어진 곳에서 우린 남의 처지를 걱정할때가 아니다. 국가는 국민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고, 어렵고 소외된 이웃을 경쟁에서 뒤떨어진 루저로 취급하고 오로지 밟고 일어서는 자만 살아남을 수 있는 극단 이기주의를 어린시절부터 심는 곳. 그곳에서 살고 있는 '나'를 돌아볼 시간이 필요한 때이다. "1992년에 발간된 이후 현재까지 독자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이 책은 레이건 대통령이 위대한 미국을 건설하겠다면서 거리로 무수한 노동자들을 내몰고 있을 때인 1980년에 작가가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 레이건의 경제정책인 신자유주의가 세계화되면서 지구촌 어디라도 빈부의 격차의 심화와 노동자들의 어려움은 격화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일 수는 없으며, 빈부 문제의 극단적 표현이 용산참사일 것이다. 이처럼 드루커가 그리는 뉴욕 묵시록은 비단 뉴욕, 미국의 문제가 아닌 전 인류에 대한 암울한 메시지다."라고 하는 출판사의 설명은 구지 필요하지 않은 듯 하다. 책을 펴서 읽는 순간 다가오는 충격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
![]() 리뷰는 그림으로 올렸으니 모처럼 까칠한 tip. 1 내용과는 다소 동떨어지는 표지-_- 차라리 작가의 느낌을 살려 흑백 표지를 했으면 더 강렬할 뻔 했다. 원서표지도 감상했는데...내 취향은 원서표지구만.
까칠한 tip. 2 이 책엔 페이지표시가 없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있기는 하지만 작품해설 부분에만 있을 뿐 그림에는 페이지표시가 없다는 것. 꼭꼭 숨어있는 "L"을 찾는데 잠시 애먹음. 그만큼 이 책은 꼼꼼히 보고 읽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순식간에 넘어가는 것들이 한 두가지가 아니기에. 물론 나는 지금도 많이 놓치고 있다.
까칠한 tip. 3 이건 까칠까지는 아니고 앞부분에 악보가 있는데 악보에 한해서는 까막눈이라 그 노래를 짐작도 할 수 없는 지경이다. 악보의 노래를 듣고 싶다. 궁금.
다른만화 시리즈 04번을 달고 나온 "대홍수" 확실히 기존의 만화들과는 다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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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없는 책을 좋아한다. 글이 없어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재치와 유머가 고스란히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그림책에 한해서였다는 것을 이번에 깨달았다. 이 책은 그야말로 글이 없는 만화책이다. 그러나 내용은 무척 무겁고 진지하며 때로는 난해하다.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장르였건만 이건 그렇게 간단하게 읽히지 않는 책이다. 무엇보다 작가가 아주 신랄하게 현실을 비판하기 때문에(그런 장르를 더욱 좋아하건만) 세세한 이미지들을 따라가느라 상당히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솔직히 여러 곳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이해하지 못했으나 뒤에 작품에 대한 설명과 작가 소개, 그리고 인터뷰를 '읽고' 나머지가 이해되었다. 그리고 이해하는데 해설이 필요했던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의 문화를 정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만약 여기서 일어나는 일이었다면 시사만화를 보는 느낌이지 않았을까 싶다. 여하튼 그래도 나름 의미있고 그림의 숨어 있는 뜻을 찾는 재미가 쏠쏠했던 책이다.
세 편의 이야기가 들어있는데 모두 상당히 직설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는 노동자가 아침에 일어나서 평상시처럼 출근을 하지만 직장이 폐쇄되었다는 글을 본다. 힘차게 계단을 올라가던 남자는 내려올 때 어깨가 축 쳐져있다. 그리고 거리릴 배회하는 그림에서는 살짝살짝 현대의 문제점을 보여준다. 모 햄버거를 의미하는 그림이 있는가 하면 직장을 잃고 술을 먹다 원망의 눈으로 독자를 쏘아본다. 그러다 결국 과일을 훔치고 지나가는 사람의 가방에서 지갑을 훔치다 감옥까지 간다. 평범했던 한 남자가 부랑자가 되는 과정을 처음에는 큼직한 그림으로 보여주다가 나중에는 점점 작아지며 급박한 모습으로 보여준다. 사라질 때까지.
두 번째 이야기는 환상적이다. 한순간의 꿈이라고나 할까. 지하철을 타고 조는 모습이 재미있게 표현되었다. 꿈속으로 들어간 장면에서는 다양한 동물과 사람이 나오다가 완전한 환상세계로 빠져들었을 때는 테두리가 앞의 그림과는 다르다. 해설에서는 '도시인들이 음악, 동료, 예술에 대해 원시인들과 그리 다르지 않은 갈망을 갖고 있다'고 표현하는데, 솔직히 거기까지는 모르겠고 그저 한 남자가 환상세계에서 신나게 돌아다니다가 경찰견 때문에 깨어났을 때의 허탈함만 확연히 느껴진다. 힘없이 계단을 올라가는 모습에서 매일 반복되는 일상의 무료함까지 느껴진다고나 할까.
그리고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나 또한 가장 재미있게 '읽은' 대홍수 이야기가 마지막에 펼쳐진다. 비가 오는데도 그림을 그리는 남자. 작가가 그린 그림인지 이야기속에서 화가가 그린 그림인지의 구별은 파란색 잉크로 알 수 있다. 그리고 반가운 것은 여기엔 약간의 글이 있다는 것. 처음엔 둘을 구분하지 못해 약간 헷갈렸다. 그러나 의미를 파악하고 나서는 아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현실에서 비가 점점 와서 화가는 급기야 우산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 헌데 그림 속에서도 비가 온다. 아주 세차게. 여기서도 환상적인 모험이 펼쳐지지만 그다지 희망적인 메시지는 아니다. 결국 작가는 자신의 고양이만 방주에 태워주고 화가는 남겨 놓았다. 물에 빠진 화가를 타고 있다 구출되는 고양이 그림이란. 그렇게 뉴욕이라는 도시는 거대한 홍수에 묻혔다. 방주만이 덩그러니 남아있다.
에릭 드루커는 미국에서 주목받는 작가인가 보다. 어렸을 때 할아버지가 글이 없는 만화책을 보여준 것이 이런 만화를 그리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또한 거리에서 직접 행상을 하며 경찰에게 체포되기도 했다니 그가 그리는 소외받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래서 더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관념적으로 소외받는 사람들의 아픔을 그려야겠다가 아니라 그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마음을 가졌으니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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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읽기 쉽지 않았다. 다 읽고 나서도 멍하게 무슨뜻일까를 고민했었다. 흔하디 흔한 그림책이 아니다. 대사 한마디 없는 그냥 그림의 '연속'일뿐이지만 그 속에는 수만 마디의 말이 숨겨져있다. 그림을 또렷히 보면서 음미한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말들이 보일것이다. 이 책은 분명, 즐거우라고 만든 책이 아니다. 괴로우라고, 좀 생각하라고 만든 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현실..진실..그것이 그림에 오롯이 그려져있다. 우리가 아주 맛있는 것을 먹거나 아주 멋진 풍경을 볼때 말이 필요없다 말을 할수가 없다란 표현을 쓴다. 말 그대로 다른 수식어가 필요없을정도로 뜻이 통한다는 게 아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오히려 대사가 있는것이 사족일 정도였다. 어떻게 보면 그림을 수백 수천장 그려서 그것을 그대로 연결한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냥 명화 수백장을 보는것이다.
이 책의 그림은 판에 잉크를 바른뒤 면도칼로 긁어내는 방식으로 그려졌다고 한다. 알듯 모를듯한게 어릴때 학교 미술 수업 시간에 비슷한걸 해봤던 기억이 난다. 그때 그림을 그리고 파내는 과정이 그리 쉽지 않았는데 그 볼품없던 작업도 그리 힘들었는데 이 책의 그림을 보니 상상이 안간다. 아주 세밀하게 그린것은 아니지만 선들이 정확하고 참으로 사실주의적인 스타일로 그린것이 더욱 인상이 깊다. 그래서 그림 한컷 한컷이 하나의 예술작품인것이다. 그래서인지 그림의 원본은 미국도서관협회에서 사들여서 전시를 한다고 한다. 후대를 위한 살아있는 교육이 될것이다.
내용은 3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있다. 첫번째인 '집'은 한 평범한 노동자가 직장을 잃고 방황하다가 결국 노숙자의 처지로 떨어지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뭐 내용이 깜짝 놀랄일도 아니다. 바로 우리의 이야기다. 사회안정망이 불안한 우리나라로서는 언제 짤릴지 모르는 비정규직이 늘어날수록 신분이 불안정하고 결국 집도 잃은채 노숙자가 될수도 있는것이다. 지은이는 이런 현실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고 있다.
두번째 작품인 'L'은 한 남자가 지하철 승강장에 들어서면 원시의 춤판으로 변하는 환상의 모습을 보여준다. 현대인들이 느끼는 예술적인 감정이 원시인들과 크게 다른건 아니란걸 표현한다고 하는데 사실 인간이 가진 가장 기본적인 욕망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표현 수단이 더 풍부해졌을뿐. 하지만 그 환상여행에서 깨서 현실로 돌아온 순간의 그 씁쓸함이란. 어쩌면 그런 환상을 꿈꾸기에 이 힘든 현실을 헤쳐나가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세번째 작품인 '대홍수'는 말그대로 대홍수가 나게 되는 장면을 그렸다. 지하철에서 나온 어떤 남자는 비를 피할 도리가 없는데 한 현자가 우산을 씌어준다. 그리고 이어지는 폭우,에스키모,물에 잠긴 뉴욕등의 모습에서 모든것이 끝났나 싶다가 마지막에 현장에게 고양이가 구출된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는 메시지가 아닐까.
뉴욕이라는 거대 도시의 소외되고 낮은 곳에 사는 사람들을 주된 주인공으로 삼은 이 그림들은 꼭 미국만이 아니라 현대의 어느나라 도시민에게도 다 해당되지싶다. 나같이 그림 한번보고 멍해진 사람들을 위해서 끝에 길다란 '글'로 해설과 추천글, 지은이와의 인터뷰를 실은것이 좋다. 작품에 좀더 가깝게 다가갈수 있었다.
말랑말랑하고 쉽고 재미난 그림도 좋지만 가끔은 이렇게 딱딱하고 멍해지지만 뭔가 탁 머리를 깨게 해주는 그림책을 보는것도 좋을꺼 같다. 맛난것만 먹고 편식하면 제대로 크지 못하듯이 이런 책도 읽어줘야 좀 덜 바보가 될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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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명화에서 깊은 감동을 느끼는 이유는 뭘까. 단 한장의 그림이지만 그 속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를 읽어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림을 나타내는 글씨도 없고, 부연설명도 없지만 단순한 그림앞에 오래도록 서있는건 작가가 나타내고자 하는 많은 이야기를 읽고, 듣고, 마음으로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에릭 드루커의 그림을 보면서도 같은 전율을 느꼈는데, 다른 만화와 달리 작가가 그림을 설명하는 긴 문구 하나 없었으나 그림 하나하나에 많은 설명이 담겼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대홍수를 설명하는 그림에만 파란색이 섞였을 뿐, 모든 그림에는 오로지 검은색 뿐이다. 검은색과 바탕을 이루는 흰 색만이 처연히 섞여들며 많은 것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섞여 있는 뉴욕-하지만 그 곳은 개개인이 소외감과 외로움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직장을 잃고 노숙자로 전락하는 사람, 혹은 깊은 굴 속에 갇혀 밝은 빛을 보지 못하는 사람 등등 우리 사회 어느곳에서나 볼 수 있는 사람들이 에릭 드루커의 만화 속에 등장한다. 굳이 검은 색으로 어둡게 칠하지 않아도 충분히 어두워 보이고 슬퍼보인다.
그렇게 어둡고 외로워보이는 그림 속에서도 희망을 가진 것은, 대홍수 후에 노인에게 구조되는 고양이 때문일 것이다. 모든 슬픔과 쓰레기가 홍수에 휩쓸려가고 남은 것은 없지만,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이 우리 역시, 그리고 어두운 도시 역시 새롭게 출발할 여지가 남아 있는것은 아닐런지.
아무 글씨도 없이 그림만 가득한 책이였지만 읽는 속도는 빽빽한 소설책을 읽어가는 것보다 더 느렸다. 그만큼 그림 하나하나가 이야기 하는 것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명화 앞에서 소리죽여 이야기를 듣듯이, 나 역시 에릭 드루커가 이야기하는 것을 듣느라 책장을 넘기지 못했다. 그가 이야기 하는것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그림에 눈을 고정하고서는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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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긁어내는 작업을 통한 진실과 생명력을 담고자]
만화책에 대한 편견은 없지만 좀처럼 만화책을 읽기 않는 내가 다른의 <나는 왜 저항하는가?>를 통해서 사회문제의식을 담은 만화 작품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에릭 드루커라는 인물은 생소하지만 그의 그림은 첫대만만으로도 오래도록 기억되도록 강렬하다. 그렇지만 그 내용은 단번에 휘리릭 넘길 정도의 쉽고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사회 현상에 무딘 나로써는 오래도록 한 그림을 봐야 하거나 그 의미가 무엇인지 곰곰히 생각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대부분 검은색과 흰색만이 존재하는 에릭 드루커의 대홍수는 판화를 연상하게 한다. 그러나 그가 사용하는 기법은 스크래치보드로 판에 검은 잉크를 발라 면도날로 긁어내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선이 모두 칼에 베일듯이 날카로웠나 보다.
대사가 거의 없다는 점때문에 대홍수를 읽으면서 그림에 더 집중하게 되는가 보다. 수많은 말로 설명하거나 섬세한 그림으로 여백을 채워넣기 보다는 필요한 최소한을 사용했다는 느낌이 든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의 손을 떠난 그림은 작가가 독자들을 향해 던지는 가장 걸러낸 언어가 된다.
<집>이라는 작품에서 집은 사람이 쉴 수 있는 공간이고 안식처가 되어야 하는 어느날 해고 통지를 받고 집에서조차 쫓겨나게 될 위기에 처한 무기력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거리로 나서고 싶어서 나서는 이들은 없다. 작품 속의 그도 집에서 거리로 내몰리는 과정, 하나의 인격에서 외면당하는 거리의 사람이 되는 과정이 큰 컷의 그림에서 점차 소멸되어가는 작은 컷의 무수한 그림 속에 파묻힌다. 대중 속에 소외되어가는 약자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담긴 작품이었다.
두번째 작품인 <L>은 처음에는 그 경계를 모호하게 지나친 작품이다. 알아채지 못하고 이야기가 계속 흐르는 줄 알았다. 거리의 부랑자가 된 인물이 자하철을 타고 가면서 꿈꾸는 환상인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L>이라는 소제목이 붙어있었다. 구지 나누지 않아도 하나의 이야기 같은 느낌이 든다.
세번째 작품인 <대홍수>역시 전작의 마지막 지하철의 장면과 연결되듯이 시작된다. 지하보도에서 쏟아지는 빗속의 지상 세계를 향해 발걸음을 내딪는 남자의 모습은 도시 사회에서 소외되는 인간의 모습이 담겼다. 빗속에서 지나치는 수많은 우산 속에서 비를 피하게할 우산은 그 어디에도 없는 듯하다. 무심히 지나가는 인파 속에서 군중의 고독이 더 짙게 느껴진다. 집으로 돌아온 남자는 자신의 작업실에서 그림 그리기에 몰두하는데 이때 처음으로 그림 속에 푸른 빛이 등장한다. 검은 잉크와 푸른 잉크로 그가 그려가는 만화 속의 세상이 어느세 현실과의 경계선이 무너지면서 그려져간다. 그림 속에 숨어있는 세상은 탄압하는 사람과 그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교차된다. 문명의 이기와 부질없는 욕심을 잠재우는 모든 세상이 물 속에 잠기고서야 고요가 찾아온다. 그것이 문명과 사회에 대한 외면인지 아니면 새로운 세상을 향한 시작인지 좀더 고민해봐야겠다.
마침 작품 해설과 작가에 대한 소개, 작가와의 인터뷰 글이 있어서 낯설고 생소한 그의 작품 세계를 조금이나마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분명한 것은 가진 자가 아닌 낮은 곳에 있는 자들의 목소리를 그림 속에 담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진실과 아름다움을 같은 것으로 보고 단지 긁어내는 작업을 통해 생명력을 드러내고자 하는 그의 노력은 더 이상이하로도 꾸며지지 않은 삶의 진실을 담아내는 과정인 듯하다. 솔직히 그의 작품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지만 강렬한 그림과 메시지를 통해 그가 말하고자 하는 사회현상이 어떤 것인가 관심을 기울이게 될 것 같다. 물론 미국의 일이기는 하지만 분명 통하는 바가 있으니 말이다. |
이 책은 '나는 왜 저항하는가!'를 출판한 출판사에서 그 다음편으로 출간한 시사 만화라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물론, 다른 작가이지만, 비슷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것 같아서 읽고 싶었거든요.![]() 차가워보이는 거센비바람 사이에 희망을 잃지 않는 빨간 하트의 심장이 제 눈을 사로 잡았습니다. 이 책은 '집', 'L', '대홍수' 이렇게 3편으로 나눠져 있습니다. 일반 시사만화처럼 몇컷으로 처리된것이 아니기 때문에 시사만화치고는 장편이라 말할수 있겠네요.
3편의 만화중에 'L'이 그래도 울적하지 않게 본것 같아요.
군중을 위해 연설하는 여자를 그냥 지나쳐봤었는데, 만화를 다 보고 나서 그의 작품을 찾다보니 발견하게 된 책이예요. 이 책의 여주인공과 위의 여성이 비슷해보이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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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정확히 말하면 봤을 때!)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심히 당황스러웠습니다. 글은 하나도 없고 그림만 가득. 심지어 지금 얼마나 읽었는지 알 수 있는 페이지 표시조차 없더군요. 이렇게 그릴 수도 있구나 싶기도 하고 발상이 재미있네 싶기도 하고.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느낀점을 글로 쓰라면 아무 것도 쓰지 못할 것 같았어요. 마음에 와닿는 것도 없고 작가가 뭘 말하고 싶어 하는지도 잘 모르겠더군요.
한번 더 읽으면 작가의 의도를 알게 될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한번 더 읽어 보았지만 마찬가지였습니다. 그저 노숙자가 되기 까지의 과정이 '집'에 그려져 있었고 'L'에는 가장 밑바닥을 다니는 지하철에서부터 상상해낸 원시시대가 있었고, '대홍수'에서는 현대식 노아의 방주 이야기를 볼 수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노숙자가 되어서 어찌되었다는 것인지, 원시시대의 본능을 표현해서 어쩌자는 것인지, 뉴욕에 대홍수가 날 것을 상상해서 그렸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다는 것인지 온통 알쏭달쏭한 것들 뿐이더군요. 결국 책 뒤쪽의 작품 해설, 작가 소개, 작가 인터뷰를 읽고 나서야 작가가 뭘 전달하고 싶었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배경이 뉴욕이라 그곳의 현안에 대해서 모르기 때문에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는 게 힘들었을까요? 만약 이 책을 한국화한다면 어떤 작품이 나올까 궁금해졌습니다. 뉴욕은 노숙자가 골칫거리인 모양이네요. 산뜻하고 행복한 뉴욕의 이미지에 맞지 않은 그들의 존재가 거슬렸던 거에요. 한국에서는 어떨까요. 미관상 좋지 않다고 허름한 집들을 헐어 재건축하는 과정에서 정부와 그곳 주민들이 싸우곤 하죠. 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잃지 않기 위해 싸우고 정부는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라고 말하면서도 그 주민들이 살길은 제공해주지 않습니다. 이 책의 방식대로 표현하자면 어떤 한 가장이 가족을 데리고 여기 저기 떠돌다가 겨우겨우 허름한 지역에 자리잡게 된 과정을 그리게 되겠지요. 정부와 싸우고 살던 곳에서 쫓겨나는 과정은 그릴 필요가 없겠지요.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 직접적인 횡포가 아니라 모두가 그들처럼 될 수도 있고 이런 사람들의 모습조차 포용할 있는 곳이 되어야 한다는 것일 테니까요.
'L'은 일단 제목부터가 왜 이런 제목이 붙었는지 잘 모르겠더군요. 뒤에 작가 인터뷰를 읽고서야 이게 뉴욕 가장 밑바닥을 지나는 지하철 노선 이름이라는걸 알 수 있었어요. 가장 땅 깊숙히 지나는 지하철과 인간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는 원시성을 연결시키는 작가의 센스가 놀라웠답니다. 만약에 한국식으로 이걸 표현한다면 어떻게 바꿀수 있을까 고민을 해봤는데 쉽지가 않더군요. 이런게 바로 뉴요커의 감성이라는 것일까요. 고개를 갸우뚱 갸우뚱 하고 있는데 갑자기 어릴적 보던 전래동화책이 생각났습니다. 우리의 옛날 이야기. 뉴욕에서 태어나고 자란 작가에게 뉴요커의 감성이 있다면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저에게는 한국만의 감성이 있겠죠. 깊숙한 우물, 거기서 물을 긷고 있는 예쁘장한 여인, 바닥이 보이지 않는 우물을 뚫어져라 바라보다가 빨려들어갑니다. 그곳에서 고인돌 시대를 마주하는 거죠. 언제나 요조숙녀이기를 강요하는 현실과 달리 그 곳은 자유분방하기만 합니다. 차츰 그 분위기에 젖어 자유를 만끽할 때 쯤 시어머니가 우물가에서 잠든 여인을 깨우며 여인은 현실로 돌아오는거에요. 전형적으로 다소곳한 부인의 밑바닥에 잠재된 그 본능. 현재의 뉴욕에 사는 남자와 과거의 한국에 살았던 여자의 원시적 본능은 결국 같을 겁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인간이란 결국 한 갈래에서 퍼져나온 것이니까요.
"태초에 신께서 말씀과 뉴욕을 창조하셨다... 보시니 모든 것이 쓸모없더라" 책의 표지에 있는 말입니다. 보시니 모든 것이 쓸모없는 것 같아서 대홍수를 일으켜 뉴욕을 쓸어버리셨죠. 작품 해설에서는 이 이야기가 희망적으로 마무리되었다고 말하는데 저는 영문을 모르겠더라구요. 왜 인간은 하나도 살아남지 못했을까요? 겨우 작가(이 작품에서 그림을 그리던)가 기르던 고양이만이 작가의 시체를 타고 겨우 노아의 방주에 구출이 되지만 그 방주 안에는 동물만 가득할 뿐 인간은 없습니다. 뉴욕 시가지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높은 고층 빌딩의 꼭대기만 머리를 빼꼼 내밀고 있네요. 사실 작가한테 '그래서 이 그림을 그린 의도는 뭐요?' 하고 물어보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림 속에서 한참 길을 헤매다 진땀을 뺐네요. 아이들이 그림책을 보면서 가끔 왜 이런 그림인지를 궁금해 할 때가 있는데 공감이 됩니다. 그림책도 결코 쉬운 독서가 아니었어요. 절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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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말보다 더 직접적인 언어입니다. 말은 항상 한 단계가 더해지게 됩니다. 우리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언어적 상징으로기호화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판독이라는 과정이 필수적입니다. 그림은 가장 먼저 등장한 표기의 형태이고, 읽고 쓰기를 배우기 한참 전의 어린아이였을 때 우리는 무언가를 그림으로 그렸습니다"(184) 에릭 드루커의 말처럼 그림은 말보다 더 직접적인 언어이다. 그래서 어쩌면 한권의 이야기책보다 더 강렬한 것은 어린시절에 읽은 한권의 그림 동화책일지도 모르겠다. 어릴적에는 만화책에도 글자가 많이 씌여있으면 내가 볼 만화책이 아니라는 생각에 그림이 아무리 이쁘고 좋아도 제대로 들춰보지 않고 구석에 던져넣고 말았었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은 그렇게 보지 않고 던져버린 책이 나중에 커서 무척 좋아하게 된 '베르사유의 장미'다. 혁명기의 시대에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간 이들의 이야기지만 내게는 처음으로 왕조사 중심이 아닌 역사를 보게 해 준 만화책으로 기억한다. 어릴적부터 그림책보다는 글자만 가득한 이야기책만 읽어서 그런지 나는 그림으로만 표현된 이야기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다. 스스로 이미지에 약하다는 강박관념에 빠져있어 더 부추기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만화책을 볼때도 그림컷으로만 표현된 이야기를 놓쳐버리고는 이야기의 결과에 의아해할때도 많았다. 물론 그러한 것은 조금 더 찬찬히 그림을 살펴보게 되면서 제대로 볼 수 있게 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나는 이미지를 통해서만 그 안에 담겨있는 뜻을 이해하는것은 느리다. 그래서 대홍수를 펼쳤을 때 처음 느낀것은 당혹감이었다. 이 날카로운 그림들과 너무나 강렬해서 오히려 무겁고 더 폭력적으로 느껴지는 이 그림들의 상징은 무엇인가... 에릭 드루커의 작품들은 모두 판에 잉크를 바른 뒤 그것을 면도칼로 긁어내는 방식의 스크래치보드에 작업되었다. 그래서 다 날카롭고 강렬하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외로움은 더 처절하게 다가왔고, 절망은 그 심연을 알 수 없게 깊은 어둠을 표현하고 있고, 간혹 보여주는 축제의 장면은 생동감이 넘쳐나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작품의 내용이 그가 직접 겪은 사실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더 강한 생명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L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는데, 저자의 인터뷰에서 그것은 뉴욕의 지하철 노선이며 뉴욕 14번가 아래로 지나가는 것임을 알았다. 다른 열차 아래로 다니는 지하 깊숙한 곳에 놓여있는 노선. 각각의 이야기 '집'과 'L'과 '대홍수'는 여러가지의 상징과 신화, 성서이야기가 떠오르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미국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는 느낌도 갖게 된다. 착취와 침략과 수탈과 억압과 좌절이 담겨있지만 물 위에 떠 있는 노아의 방주는 새로운 희망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오늘날에는 있는 그대로 찍는 카메라가 있지만, 이 기계는 오로지 겉모습을 찍을 뿐입니다. 따라서 미술가의 작업 또는 시인의 작업은 겉의 층을 꿰뚫어 내면의 진실에 다다르는 것입니다. 진실은 매우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아마도 진실과 아름다움은 결국 같은 것이 아닐까요...... 난 잘 모르겠지만요. 내가 진실 또는 아름다움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을까요? 나는 단지 여기에서 긁어낼 뿐입니다..... 긁어내서 생명력을 드러내기 위해 노력할 뿐입니다."(189)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천천히 느릿느릿하지만 좀 더 깊이있는 통찰력으로 그림판 하나하나를 살펴봐야 할 것이다. 특히나 이해가 느린 나에게는 더욱더 깊은 통찰이 필요하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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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수상 경력과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는 다른만화 시리즈 중 한 권이라 관심이 갔다. 사실 다른만화 시리즈를 읽으면서 한 번도 실망한 적이 없다. 아직 읽지 않은 <바시르와 왈츠를>를 언젠가 읽게 되겠지만 다른 사람들의 서평을 보면 더 확신이 생긴다. 가볍게 읽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속에 담고 있는 내용이 결코 가볍지 않은 그래픽노블이기에 이번에도 역시 기대를 많이 했다. 그런데 책을 받아 넘겨보면서 당황했다. 단 하나의 지문도 대사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읽어온 만화는 대부분이 일본만화의 영향을 받았거나 일본만화다. 그 덕분에 내용에 상관없이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읽지 않는 작품들이 많다. 나중에 그 작품들의 가치를 깨닫고 몇 편 읽기는 했지만 알게 모르게 놓친 작품이 적지 않다. 아마 어릴 때 이 작품을 손에 들었다면 대충 넘겨보고 한 곳에 팽개쳐두었을 것이다. 그림체는 판화 같고, 대사는 없고, 뭔 이야기를 하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 다르다. 뭔 이야기인지 정확히 모르지만 이 색다르고 강렬한 그림과 그림으로 전하는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판화 같다고 했는데 사실은 스크래치보드 작업으로 만들어졌다. 판에 잉크를 바른 뒤에 그것을 면도칼로 긁어내는 방식이다. 이 방식으로 그려낸 그림들이 판화 느낌을 준다. 의도된 작업이다. 이 작업을 통해 만나게 되는 이야기는 날카로우면서도 강렬한 인상을 준다. 한 컷 한 컷을 따로 두고 보아도 멋진 작품인데 이야기로 이어진 것을 보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그 강렬함을 조금은 잊게 된다. 그것은 그림 탓이 아니라 대사와 지문이 없다보니 상상력으로 작가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끝없이 유추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상상력이 어느 순간은 확신 부족으로 뭔 뜻인가 고민하게 만들지만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게 도와준다. 모두 세 편의 단편 만화가 실려 있다. <집>, 미국의 뒤틀린 가치관과 뉴욕이라는 대도시에서의 소외라는 주제로 했다지만 나에겐 도시 빈민과 그들의 삶에 더 눈길이 간다. 뉴욕의 마천루와 부랑자나 좀도둑으로 변하는 그를 보면서 현실의 무거움과 무서움을 느낀다. 스크래치보드 작업으로 만들어진 그림과 다양한 장면 구성은 보면서 호흡을 조절하게 만들고, 한 면에 실린 그림을 통해 작가의 의도를 유추한다. 그것이 맞는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다고 하는데 이 낯설음을 생각하면 그 명성과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이 현실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대하소설이니 마음의 눈이니 아름답다고 하는데 지금 이 순간 고개를 끄덕인다. 컷과 컷 사이에, 컷 그 자체에서 수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충분히 아름답기 때문이다. 혹시 일본만화에 질렸다면 혹은 그림만으로 충분하다면 이 책을 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