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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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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죽게 내버려 둬. 내 권총을 줘요. 나를 좀 불쌍히 여겨줘요." (...) 죽음과 고통 사이에 일종의 경주가 시작되고 있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그처럼 불쌍히 여겨달라고 애원했을 때에도 어떻게 모른 체하고 그의 고통을 더 연장시킬 수 있는 것인지 의아스러웠다. 그리고 죽음이 승리를 거두는 때에도 왜 그리 가증스럽게 천국을 들먹이며 신비화시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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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죽게 내버려 둬. 내 권총을 줘요. 나를 좀 불쌍히 여겨줘요." (...) 죽음과 고통 사이에 일종의 경주가 시작되고 있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그처럼 불쌍히 여겨달라고 애원했을 때에도 어떻게 모른 체하고 그의 고통을 더 연장시킬 수 있는 것인지 의아스러웠다. 그리고 죽음이 승리를 거두는 때에도 왜 그리 가증스럽게 천국을 들먹이며 신비화시키는지! (100쪽)

 

 

《죽음의 춤》(원제: 아주 편안한 죽음,1964)은 시몬느 보부아르가 그의 나이 56세 때 발표한 자전소설이다. 갑작스러운 어머니의 암 선고와그에 따르는 죽음의 과정을 지켜보는 화자의 시선은 대립되는 두 개의 세계를 통찰한다. '산 자와 죽은 자의 세계' 또는 '실존 혹은 공허의 세계'가 그것이다. 익숙한 일상의 시간에서 추방당한 영혼은 삶과 죽음이 줄다리기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에 놓인다. 늙은 어머니의 죽음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인 동시에 그 주변인들의 삶에 깊은 파문을 일으킨다. '일상에서 추방당한 영혼'은 죽어가는 자이면서 그것을 지켜보는 자이기도 하다. '죽어가는' 어머니를 쫓는 화자의 시선은 동시에 '죽어가는 어머니를 바라보는' 자기자신에게로 향한다.

 

 

  세상을 떠난 사람들 뒤에서 시간은 사라져버린다. 그리고 나이를 먹어갈수록 나의 과거는 압축되어진다. 내 나이 열 살 때의 '사랑하는 엄마'와 사춘기 시절을 억누르던 그 적대적인 여인은 다르게 보이지 않는다. 늙은 엄마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는 동안에 나는 그 두 모습의 여자 모두에 대해 슬퍼했다. 엄마와 나 사이가 멀어지자, 슬픔을 느끼면서도 그것을 그냥 받아들이고 말았는데, 그 슬픔이 다시 내 가슴에서 되살아났다. (189쪽)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극적인 사건은 가슴속의 슬픔을 되살렸지만, 화자는 그 슬픔을 똑바로 응시하면서 과거 어머니와의 반목의 세월과도 화해를 할 수 있게 된다. 무수한 바늘과 선들이 꽂힌 어머니의 육체는 "깔끔하고 고상한 취향의 여인(94쪽)"의 자존심과 부끄러움마저도 무화(無化)시키고 만다. 최후의 동물성만 남은 그 육체 앞에서 화자는 어머니의 죽음(개인의 죽음)과 인간의 죽음(공동의 죽음)을 생각한다. 모든 인간은 죽는다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 앞에서 초연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타자(他者)의 것일 때에 국한된다는 것, 그 '당연한 죽음'이 개인, 즉 자기자신의 일로 닥칠 때 그것은 큰 충격적 사건이라는 것을 죽어가는 어머니를 지켜보며 깨닫는다.

 

 

  "네가 보이는구나!" 엄마는 매번 캄캄한 어둠에 시력을 빼앗겼다가 다시 찾곤 했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마치 손톱으로 시트를 움켜쥐듯 세상을 움켜쥐고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지 않으려고 했다. '살아야 해! 살아야 해!' 엄마의 말이 자꾸 떠올랐다. (139쪽)

 

 

  늙은 여인의 죽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독자에게도 굉장히 힘겨운 일이다. 기계적인 의사들과 가식적인 간호사들에 내맡겨진 무력한 인간의 고통, 주변 사람의 죽음의 과정을 지켜보고 그를 보내주는 것 또한 언젠가 우리가 겪어내야 할 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실제로 닥치기 전까지 '죽음'은 하나의 관념으로, 삶의 '당연한' 사실로 저 멀리에 놓여 있다는 것. '실제적인 죽음', '자기자신의 죽음'은 우리가 알던 것과 다를 수 있음을, 아니 다를 수밖에 없음을 이 책은 깨우쳐준다.

 

 

 

   살아있는 모든 것, 생명 가진 것들은 삶의 욕망을 본능으로 안고 태어난다. 죽음은 삶의 과정이고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도 우리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삶과 죽음이라는 모순을 동시에 안고 걷는 우리의 마지막이 '죽음'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아찔하다. 갑작스럽게 죽음을 선고받은 것처럼 두려움과 공허감이 엄습해 온다. 그 두려움과 공허감이라는 '검은 구멍'을 우리는 못 본 체 걷는다. 돌이켜 보니 지금까지 내가 보아온 '죽음'들은 모두가 돌연하고 잔인한 것이었다. 길고 긴, 그래서 지루하기까지 했던 투병 끝에 닥친 내 엄마의 죽음 또한 마찬가지였다.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죽음의 과정을 지켜보던 화자가 차라리 어머니의 죽음을 바랐다가, 실제로 어머니의 죽음이 닥치자 충격과 슬픔에 빠졌던 것처럼 그 어떤 죽음도 자연스럽지 않다는 것. 아래 인용하는 보부아르의 문장은 그 잔인한 진실을 꿰뚫고 있다.

 

 

   자연사란 없다. 인간에게 닥쳐오는 어떤 일도 결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인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이야말로, 세상에 그들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은 죽는다. 그러나 개인에게 자신의 죽음은 하나의 돌발 사건이다. 죽음은, 그가 인식하고 받아들인다 할지라도 무엇으로든 정당화할 수 없는 폭력이다. (195쪽)

 

 

   "죽음의 춤을 추면서 찌푸린 얼굴로 조소를 보내는 사신死神(193쪽)"의 "폭력" 앞에서 우리 인간은 한없이 무력하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그 '폭력'과 '무력함' 속에서 분노와 슬픔을 느꼈다. 살아있는 자의 오만과 용기가 뒤흔들리는 것을 온몸으로 느껴야 했다. 노인들의 일상을 비춰주는 tv프로그램에서 배우자를 먼저 보낸 노인들이 인터뷰 도중 감정의 동요를 보이는 것을 볼 때마다 나는 의아했다. 노인들이 '죽음' 앞에서 초연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노인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장래 나의 모습을 보았다. "만약 내가 죽을병에 걸렸고 가망이 없는데, 그 사실을 내가 모른다면 나한테 굳이 알리지 말아줘." 남편한테 얘길했다. "아니. 나는 꼬옥, 기필코 당신한테 사실을 알릴게!" "안돼! 싫어!" 우리는 낄낄거렸다. 언젠가 우리에게도 폭풍처럼 죽음이 닥쳐올 것이다. 그때 우리는 이렇게 웃을 수 없을 것이다. '죽음' 앞에서 웃을 수 있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공포가 엄습해오는 순간에 내 이마에 손을 얹어줄 사람, 고통이 온몸을 휘저을 때 그것을 잠재워 줄 진통제, 텅 비어 침묵이 흐르는 공간을 채워줄 수다스런 거짓말을 해주는 사람이 나 죽어가는 순간에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 또한 죽어가는 누군가의 곁에서 그의 마지막 '춤'을 지켜볼 수 있는 용기와 사랑을 키워가야겠다.

 

 

 

 

 

g*******s 2010.10.03. 신고 공감 3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죽음 앞에 후회 없이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더 열심히 치열하게 ..
"죽음 앞에 후회 없이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더 열심히 치열하게 .." 내용보기
[죽음의 춤] 책의 제목을 보며 왠지 모를 오싹함이 전해져서 책의 내용을 빨리 읽어보고 싶은 충동과 다른 한편으론 책을 읽으면 죽음에 공포가 생길 것 같다는 주저함이 들더라구요.. 시몬느 드 보부아르는 참 유명한 프랑스 작가인데, 어쩜 전 이제껏 유명세와 이름, 작품이름은 들어서 알고 있건만, 작품을 읽지는 않았더라구요..조금은 부끄럽지만..취향이 미국작가, 러시아작가의
"죽음 앞에 후회 없이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더 열심히 치열하게 .." 내용보기

[죽음의 춤] 책의 제목을 보며 왠지 모를 오싹함이 전해져서 책의 내용을 빨리 읽어보고 싶은 충동과 다른 한편으론 책을 읽으면 죽음에 공포가 생길 것 같다는 주저함이 들더라구요..

시몬느 드 보부아르는 참 유명한 프랑스 작가인데, 어쩜 전 이제껏 유명세와 이름, 작품이름은 들어서 알고 있건만, 작품을 읽지는 않았더라구요..조금은 부끄럽지만..취향이 미국작가, 러시아작가의 작품이 맞았는지..ㅎㅎ  

책의 내용은 보부아르의 어머니인 프랑수아즈 드 보부아르여사의 암발병에서 죽음에 이르는 모습을 딸인 시몬드가 기술하는 내용이에요..

프랑수아즈 여사는 조금은 까칠하기도 하고, 사랑스런 소녀같기도 한 감성을 가지신 분인 것 같아요.. 

하지만, 삶의 의욕은 그 누구보다 강하고, 뜨겁다는 생각을 하게 했어요..

사실 저도 친정아버지가 직장암으로 돌아가셨거든요..

돌아가시기까지 암투병을 하는 몇년간은 심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지치는 날들이었어요..아버지의 아픈 모습을 보는 것도 힘들고, 그 고통을 덜어줄 무엇도 구할수가 없다는 것이..

시몬느의 가족과 다른 점이라면 친정어머니가 항상 아버지 곁에서 함께 계셨다는 것이구요..

비슷한 점이라면 시몬느와 저의 바라보는 시각이 무척이나 흡사해서 10년도 더 지난 일이 바로 어제처럼 다시 생생하게 느껴지고 생각해 보게 하더군요..

죽음..삶...언젠가는 누구라도 다 맞이하는..

프랑스 사람들의 철학이나 생각은 아주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지는 것과 같은 느낌을 항상 주네요..

프랑스 영화도 볼 때는 조금은 어렵고 당장은 재미가 없지만, 두고 두고 꺼내서 되새김질을 하게 하거든요..

시몬느 드 보부아르의 [죽음의 책]도 책을 읽을 땐 침울하고 왠지 도피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는데, 책을 다 읽은 지금은 자꾸 자꾸 생각이 나고..시몬느와 여동생 푸페트의 상실감과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그들의 마음을 자꾸 들여다보려 하고 있더라구요..

 

시몬느 드 보부아르는 그녀의 사생활 때문에 편견을 갖게도 하지만, 현대의 여성들에게도 그녀의 대담함은 놀라운데요..시몬느가 살았던 당시로서는 정말 파격이었겠지요..

제가 시몬느의 책을 읽지 않았던 것도 그 편견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어요..

당차고 강한 느낌의 그녀지만, 책에서 느낀 모습은 겉모습만 그럴 뿐..마음은 한없이 여리고..가족을 사랑하고 지켜주고 싶어하는 모습..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는 아주 좋은 기회가 되었어요..죽음의 춤..

우리나라에선 검은 한복에 갓을 쓴 저승사자가 있다면, 서양 프랑스에선 낫을 든 저승사자가 있다는 것도 흥미롭긴 했어요..

날이 쌀쌀해진 가을..이맘때 유명한 사람들의 갑작스런 죽음도 많아서 마음이 휑~하다면 [죽음의 춤]을 읽어보라고 권해주고 싶네요..

삶의 의욕을 한층 더 가질수 있을 것 같아요..몸의 건강도 중요하지만, 열심히 살고자 하는 마음의 건강 또한 무척이나 중요함을 느낍니다.. 

b*****3 2010.10.0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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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의 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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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의 내용은 별 거없다. 누구나 겪었거나 겪게 마련인 부모의 죽음을 다루고 있을 뿐이다. 이름도 유명한 보부아르 역시 죽어가는 엄마 앞에서 그리고 죽은 엄마 앞에서 갑남을녀와 다를 것 없다.이책을 처음 열었을 때 느낀 것은 노골적인 솔직함이엇다. 주방에서 넘어져 뼈가 부러진 어머니는 몇 시간을 기어 겨우 구급차를 불렀다. 78살이면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이다. 급히 병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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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의 내용은 별 거없다. 누구나 겪었거나 겪게 마련인 부모의 죽음을 다루고 있을 뿐이다. 이름도 유명한 보부아르 역시 죽어가는 엄마 앞에서 그리고 죽은 엄마 앞에서 갑남을녀와 다를 것 없다.

이책을 처음 열었을 때 느낀 것은 노골적인 솔직함이엇다. 주방에서 넘어져 뼈가 부러진 어머니는 몇 시간을 기어 겨우 구급차를 불렀다. 78살이면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이다.

급히 병원으로 달려간 저자에게 어머니는 여전했다. 저자의 눈에 비친 어머니는 사소한 것에 별 것 아닌 것에 흔들리는 가벼운 여인이었다. 의연함, 품위가 없는 어머니. 저자는 그런 어머니를 냉정하게 그린다.

가벼움은, 줏대 없이 흔들리는 것은 어머니의 천성이었다. "평생, 엄마의 자아는 늘 외부 세계를 향하고 있었다."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기 보다는 주변에 맞춰 행동도 자신의 생각도 카멜레온처럼 변하는 어머니. "엄마는 상당한 독서를 하셨고 기억력이 좋았음에도 거의 모든 것을 금방 잊어버렸다. 상황에 따라 생각이 바뀔 수도 있는데 확실한 지식이나 명료한 의견은 어쩌면 자신의 입장을 바꿀 수 없도록 하기 때문이었던 것같다."

어머니의 그런 성격은 어머니의 어머니 때문이었다. 외할머니는 더 예쁜 동생을 노골적으로 편애했고 그런 편애 때문에 어머니는  자존감을 키울 수 없었다. 소녀에게 사람들이 사랑 대신 준 것은 빅토리아 식의 숨막히는 족쇄였다. "어린 시절 사람들은 엄마의 육체, 엄마의 마음, 엄마의 정신을 규율과 금기라고 하는 재갈을 물려 억압했다. 엄마는 허리띠를 단정히 꽉 졸라매도록 배웠다. 하지만 엄마의 내부에는 피가 끓고 불타오르는 여인이 숨쉬고 있었다. 뒤틀리고 여기저기 잘려나간, 스스로에게 조차 낯설게 되어 버린 한 여인이 말이다."

자존감을 가질 수 없엇던 소녀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는 사람으로 키워졌다. 자신의 색을 모르기에 어머니는 자기 주변의 색을 자신의 색으로 삼는데 능숙하게 되었다.

그런 그녀도 결혼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여자의 일생에서 절정인 30대 중반이 넘어 여자로 시들어 가면서 그녀의 남편은 바람기가 되살아났다. 그녀가 뺐긴 것은 남편의 애정만이 아니었다. 갑자기 집안이 기울기 시작했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남편도 부유햇던 그녀에게 가난은 낯선 것이었다. 남편은 집구석은 나몰라라 했고 과부 아닌 과부가 된 그녀는 많은 것을 희생해야 했다

"그 누구도 씁쓸한 기분을 느끼지 않으면서 '내가 희생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엄마가 가진 모순의 하나는 분명 엄마는 헌신의 위대함을 믿으면서도 너무나 오만한 자존심과 고상한 욕망, 그리고 그런 식의 삶에 대한 혐오감을 가지고 잇어서 자기 자신을 학대하는 그런 생활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는 점이다. 강인하고 열정적인 성품을 타고났던 엄마는 포기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 많아지자 마음이 비뚤어지고 대하기 어려운 사람이 되었다."

그런 그녀에게 남은 것은 두 딸 밖에 없었고 그녀는 딸들을 사랑햇다. 그러나 사랑을 받지 못했기에 사랑을 어떻게 주어야 하는지 몰랐던 어머니. 그런 "엄마는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로 나를 불행하게 만들었고 엄마 자신도 불행해졌다. '적어도 나는 이기적이지는 않았어. 나는 줄곧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살아 왔으니까.' 나중에 엄마는 내게 말햇다. 그렇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살아오기도 햇지만 또한 다른 사람들 덕에 살아온 것이기도 햇다. 우리를 소유하고 지배하려 들던 엄마는 우리들의 존재를 몽땅 당신 손아귀에 넣어두고 싶어햇다."

어머니의 품을 떠난 후 수십년이 지나 병실에 누운 어머니를 보는 시선이 냉정한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왜일까. “나는 평소 엄마에게 무심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꿈에 나타나는 일은 드물었던 데 비해 엄마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꿈속에서 엄마는 사르트르와 잘 어울렸고, 우리는 서로 행복했다. 그리고 그꿈은 악몽으로 바뀌곤 했다." 그런 어머니였는데 왜 그런 것이었을까?

어머니는 사는 것이 서툴렀다. 그러나 그 서툰 어머니의 사랑은 진짜였기 때문이다. "우리를 위하는 엄마의 사랑은 독점적이면서도 또 깊은 것이어서 우리가 엄마의 사랑과 함께 느끼는 아픔 속에는 바로 사랑의 갈등도 그대로 드리워져 있었다."

어머니가 입원해 암이 발견되고 수술을 한 후 병원에 있었던 기간은 6주였다. 길지 않은 시간이다. 그러나 집을 떠난 이후 어머니와 그렇게 오래 마주한 시간은 없었다. 긴 시간 동안 어머니를 보면서 어머니와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기에는 충분했고 어머니를 이해하기에 충분했다. "평생, 엄마의 자아는 늘 외부 세계를 향하고 있었다. 그렇게 살아온 엄마가 갑자기 내면의 무의식 속에서 헤매는 모습을 보니 애처롭게 느껴졌다." 죽음 앞에 선 어머니는 더 이상 주변에 맞춰 자신을 바꿀 필요가 없어졌다. "엄마는 삶에 대한 동물적인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 점이 엄마가 보여줄 숭 있는 용기의 원천이기도 했으며 자기 육신의 속박을 알았을 때 진실할 수 있게 해준 요인이기도 하다. 엄마는 비로소 내면의 진실되고 매력있는 면들을 가리고 있던 상투적인 말들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엇다. 그렇게 되자 나는 엄마가 지닌 애정의 따스함, 질투심 때문에 흔히 왜곡되고 표현하는 데 그토록 서툴렀던 그 따스함을 느끼게 되었다."

"내 나이 열 살 때의 '사랑하는 엄마'와 사춘기시절을 억누르던 그 적대적인 여인은 다르게 보이지 않았다. 엄마에게 우리는 많은 잘못을 범했다. 특히 지난 몇년 동안 우리는 엄마에게 지나치게 무관심했고 소홀했고 피해왔기에 더욱 그렇다. 그러나 우리는 엄마를 간호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우리가 곁에 있어서 엄마가 느끼게 되었던 평온함 그리고 공포와 고통과 싸워 얻은 승리를 통해 우리의 우리의 잘못에 대해 얼마간의 보상을 했다고 느꼈다." 그러나 언제나 누구에게나 그렇듯이 그것은 너무 늦은 화해였다.

“엄마와 나의 두 장의 사진을 바라본다. 열여덟 살 소녀와 마흔 가까운 여인의 사진이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엄마의 엄마, 그 슬픈 눈을 가진 이 어린 소녀의 할머니라도 되었을 나이가 되었다. 두 모습을 보니 애처로운 연민이 느껴졌다. 나는 너무 어려서 아무 것도 모르는 모습이고 엄마는 그 막막한 미래에 대해 아무 것도 이해하지 않으려는 듯한 모습이다. 나는 그들에게 아무런 충고도 해줄 수가 없을 것이다.”


"엄마의 죽음은 태풍처럼 나를 흔들어놓았다. 왜일까? 집을 떠나 엄마와 따로 살기 시작한 뒤, 엄마로 인해 감정적으로 흔들린 적은 거의 없었다.

"엄마가 거기 계셔?"
"그래"
동생이 울면서 말했다.
"한가지 위안이 되는 것은 나도 엄마처럼 저 속에 들어가게 되리라는 거야. 그게 아니라면 너무나 불공평할테니까 말이야."

그렇다. 우리는 우리들 모두의 장래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불행한 사실은 누구나 똑같이 겪게 될 이 일을 우리는 각자 혼자서 겪어야 한다는 점이다."

젊은 신부가 '프랑수아즈 드 보부아르'라는 이름을 말할 때마다 엄마는 다시 살아 돌아왔고, 어린 시절에서부터 결혼하고 혼자되고 관에 누울 때까지 엄마의 삶이 압축되어 펼쳐졌다. 프랑수아즈 드 보부아르, 자신의 이름으로 불린 적이라고는 거의 없었던 초라한 여인이 하나의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살아야 해! 살아야 해!' 엄마의 말이 자꾸 떠올랐다. 외할머니는 삶에 대해 별다른 정열을 보이지 않았다. 여든 네 사람이던 그 분은 우울하고 단조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던 터라 죽는다는게 그다지 마음을 상하게 하거나 괴롭지 않았다. 아버지도 그만한 용기를 보였다. 그러나 엄마는 내가 그렇듯 삶을 사랑햇고 인생을 사랑했으며 죽음에 대해서도 나와 같은 저항감을 느꼈다.

쉰살이 된 여자가 어머니가 죽었다고 괴로워할 때 나는 그 여자가 신경과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죽어야 할 운명이고 80세면 죽어도 그다지 억울하지 않을만한 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사람은 태어났기 때문에 죽는 게 아니었다. 다 살았기 때문에 죽는 게 아니었다. 늙었기 때문에 죽는 것도 아니었다. 사람은 그 '무엇인가'에 의해서 죽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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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춤 - 시몬느 드 보부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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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물론 시몬느 드 보부아르라는 작가의 명성도 함께 했지만 미리 공개된 이 책의 마지막 구절 때문이었다.   '자연사란 없다. 인간에게 닥쳐오는 어떤 일도 결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인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이야말로, 세상에 그들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은 죽는다. 그러나 개인에게 자신의 죽음은 하나의 돌발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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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물론 시몬느 드 보부아르라는 작가의 명성도 함께 했지만 미리 공개된 이 책의 마지막 구절 때문이었다.

 

'자연사란 없다. 인간에게 닥쳐오는 어떤 일도 결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인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이야말로, 세상에 그들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은 죽는다. 그러나 개인에게 자신의 죽음은 하나의 돌발 사건이다. 죽음은, 그가 인식하고 받아들인다할지라도 무엇으로든 정당화 할 수 없는 폭력이다.'

 

자연사란 없고, 죽음은 무엇으로든 정당화 할 수 없는 폭력이라는 작가의 사유에서 그만만 한 특별한 스토리가 펼쳐질 줄 알았다. 하지만 이 책은 시몬느 드 보부아르의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짤막하게 풀어놓은 수필에 불과했다. 죽음에 대한 진지한 사유나 해석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은, 위 구절이 거의 다 였다고 보면 되고 책의 내용을 이루는 실제는 병상 위에 계신 엄마의 사소한 변화가 대부분이다. 물론 그러한 이야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죽음에 다가서는 한 인간과 그것을 바라보는 주변 사람들의 감상이 어우러진 글은 나오겠으나, '죽음' 자체에 대한 보편성은 찾기 힘들다. 그냥, 작가의 개인적인 가족사이고, 개인적인 이야기일 뿐이다.

 

이 책을 통해 시몬느 드 보부아르와 사르트르가 비공식적인 부부 관계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수확은 크다. 죽음을 생각하자니, 몇달 전 읽은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가 다시 읽고 싶어진다. 물론 그 책도 기대에 미치지는 못하였으나...  

m*****m 2010.10.0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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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느 드 보부아르 죽음의 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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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란게 어떤걸까. 사후의 세계라는 곳이 있는 것일까. 만약 사후의 세계가 확실히 있다면 아마 죽음이라는 것도 두렵지 않을 것 같다. 그 곳에서 또 한번의 삶을 살면 되는 것일테니까. 몇해전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때 큰 충격을 받았었다.내 가까운 곳의 사람이 죽음을 맞이했을때 그 고통과 허무함, 좀 더 잘해드렸어야 했다는 후회스러움, 죄스러움. 그리고 난 다음 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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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란게 어떤걸까. 사후의 세계라는 곳이 있는 것일까.

만약 사후의 세계가 확실히 있다면 아마 죽음이라는 것도 두렵지 않을 것 같다.

그 곳에서 또 한번의 삶을 살면 되는 것일테니까.

몇해전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때 큰 충격을 받았었다.내 가까운 곳의 사람이 죽음을 맞이했을때

그 고통과 허무함, 좀 더 잘해드렸어야 했다는 후회스러움, 죄스러움.

그리고 난 다음 친정부모님을 생각하는 마음이 확연하게 달라졌다.

절대 후회되지 않게 좀 더 신경써 드려야 겠다고 다짐하고 또 눈물 흘렸었다.

이 책은 어머니의 암선고를 받고 6주 동안의 시간동안 딸의 입장에서 그려낸 투병일기와도 같다.

만약 내 어머니가 암선고를 받으신다면 나는 그 사실을 알릴수 있을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동안 죽음이란걸 숨기고 편안하게 보내드려야 하는건지.

아니면 남은 인생을 정리 할 수 있도록 도와드려야 하는건지.

뭐가 정답인지는 모르겠다. 뭐가 되었든 고통 받고 있는 어머니를 먼저 생각하는 마음일테니.

점점 말라가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약간의 돌봄외에는 뭘 할 수 있는건지.

죽음이란 정말 철저하게 개인적인가 보다.

투병생활 속에서 작은 것 하나라도 절대 즐거운 느낌을 잃지 않으려는 어머니.

그리고 "살아야해, 살아야해" 작은 외침.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사람에게 죽음이란게 얼마나 억울한 일까 생각하니 마음이 먹먹해 진다.

이 책에서는 죽음이란 슬픈 감정을 최대한 억누르며 때론 냉정하게 묘사하고 있다

좀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자연스레 받아들일수 있게 해주고 싶었을까.

나의 어머니, 우리 어머니의 이야기가 될 지 모른다는 생각에 편하게 받아들일수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또 지나서 어쩔수 없는 일. 편안한 시작일지도 모른다고 여기게 될지도 모르겠다...

p****j 2010.10.0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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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죽음의춤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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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없이 강할것같은 어머니.하지만, 나약하고 볼품없는 어머니를 보는순간 실망과 좌절,그리고 아픔을 동시에 느끼게된다. 어머니에대한 연민은 오간데 없다. 어머니곁에 죽음의 그림자가 다가온뒤로는 더하게된다. 그런어머니를 이해하지못하는건 아니지만,그래도 당당하고 자존심 강했던 어머니께서 그토록 아픔에 시달리는 모습에 약하디 약한 사람의모습을 보게된다. 어머니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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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없이 강할것같은 어머니.하지만, 나약하고 볼품없는

어머니를 보는순간 실망과 좌절,그리고 아픔을 동시에

느끼게된다.

어머니에대한 연민은 오간데 없다.

어머니곁에 죽음의 그림자가 다가온뒤로는 더하게된다.

그런어머니를 이해하지못하는건 아니지만,그래도

당당하고 자존심 강했던 어머니께서 그토록 아픔에

시달리는 모습에 약하디 약한 사람의모습을 보게된다.

어머니와 함께한 마지막 6주가 살아온날들보다

더 간절한 만남이었지 않나 한다.

마음은 세월이 아니라 얼마나 함께할수있느냐를 보여준다.

사람은 누구나 똑 같은 것이다.

세월이 흐르면 자연히 땅으로 돌아간다

땅으로 돌아감에 있어서 아픔과 같이하느냐 아니면

즐겁게 돌아가느냐 그 차이이다.

죽음앞에서는 그렇게 두려움이 존재한다

어느누가 두렵지 않으리!!!!

죽음 그 순간까지도 자신은 살것만 같은 실날 같은 희망을

잡으려고 하는것이 사람이다.

그 이유말고는 다른 이유가 없다.

조금이라도 조금 더 세상을 보고 싶은 것이다

그것이 삶이다.

 

초라한 모습을 보여주는것조차 자신에대한 마지막 자존심을

잃게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것이 삶과 죽음을 동시에 볼수있게 만든다.

삶속에 죽음이 존재하듯  죽음속에 삶이 존재하는것이다.

아무리 죽음을 받아들이고 초월한 사람이라도 이승과의

작별은 너무 힘든 자신과의 마무리 싸움인게다.

받아들이기 싫지만 받아들일수 없지만 그러는 사이에

앗아 가버린다. 자신도 알지 못하게 말이다.

이것이 아쉬울뿐이다.....

 

 

언제나 사람은 죽음과 함께 살아간다.

하지만, 죽음은 그 자신과 자신이 속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렇게 죽음 또한 이기적이다.

어머니의 곁에서 어머니의 아픔을 온전히 받아내고

아픔을 동시에 느끼면서 삶에대한 또다른 모습을 보게된다.

어떻게 삶을 극복해야하고 어머니를 잃어버렸지만

어머니의 가슴에서 전해진 마음은 잃지 않는다.

 

 

가족이면서도 가족들도 이해하기 힘든 일이 다반사이다.

이해할려고 굳이 노력도 하지 않는다.

어머니의 죽음보다는 사적인 일이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언제나ㅡ 그렇듯이 자신이 우선일수 밖에 없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어머니와 함께한 시간을  보내며 많은오해와 그동안

보지못했던 어머니의 모습들을 지켜보면서 자신의 우매함과

미련스러움도 발견하게된다.

그토록 이해하기 힘든 어머니의 삶을 온전히 이해한다는것은

어렵다. 하지만, 그런모습에서 조차 어머니는 삶을 놓치지않았다.

이해해달라고 하지 않는다. 그저 느끼면 되는 것이다.

그런삶을 두고 어머니는 떠나게 되지만 받아들여야한다

떠난다고 영원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이름하나만으로 어머니는 이름을 가지게되고 또다시

우리곁에 머무를 테니 말이다.

 

 

삶과 죽음의 여정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지만, 그렇게

독자들에게 어필은 못하지 않나 싶다,

스토리 전개도 밋밋해보인다.

죽음과 삶의 교차로에 선 지금

아름다운 죽음과 아름다운 삶을 조명하지 못하는것이

최대의 약점이다.

 



c******e 2010.09.2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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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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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를 알게 된건 우연하 기회였다. 세계의 여성편에 계약결혼이라는 충격적인 말과 함께 다루어졌던 다큐멘터리 였다. 지금생각에도 그 당시에는 상당히 파격적인 여성상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저자는 상당히 많은 닉네임을 가지고 있다. 실존주의, 사상가, 소설가, 그이 사르트르와의 관계까지 말이다. 저자의 이력을 생각한다면 이 책이 그렇게 특별난 것은 아니지만 삶과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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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를 알게 된건 우연하 기회였다. 세계의 여성편에 계약결혼이라는 충격적인 말과 함께 다루어졌던 다큐멘터리

였다. 지금생각에도 그 당시에는 상당히 파격적인 여성상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저자는 상당히 많은 닉네임을

가지고 있다. 실존주의, 사상가, 소설가, 그이 사르트르와의 관계까지 말이다. 저자의 이력을 생각한다면 이 책이

그렇게 특별난 것은 아니지만 삶과 죽음의 경계 그리고 자식으로서 바라본 엄마와의 시간을 슬프게 그려내고 있

다.

 

어느날 엄마의 부상소식과 그것이 암이라는 말과 함께 엄마와 병상에서 펼쳐지는 일상이다. 자식된 도리라면 부

모를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저자는 엄마를 보살피고 세상을 뜰때까지 그동안 못해왔된 도리에 뿌듯함을

느낀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에서 참 아이러니한 생각이 아닐까 했다. 겨우 그거가지고 도리를 다했다. 그래서 나온

말이 평소에 잘 하라는 말일것이다.

 

의사의 무관심과 바쁜 간호사의 틈에서 제대로 된 관심을 받지 못하고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나도 한편으로는 저자

가 엄마에게 느끼는 감정에 통할 뻔했다. 하지만 역시 아닌건 아닌 것이다. 문화적인 차이가 나를 이렇게 만드는 것

일까.

 

죽음은 폭력이 아니라는 말이 새겨진다. 살다가 죽는것은 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일이지만 죽음 그자체를 경견하

게 받아들일수는 없을것 같다. 생각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슬픈 일이니깐. 사상가답게 죽음에 대한 접근도 철학적

으로 말해주어 인상이 깊었다.

 

엄마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눈물이다. 나에게 잘해주었든 못해 주었든 분명한 사실은 나를 위해서 고생하셨고 무덤

덤한 말속에는 나에 대한 깊은 애정이 있다. 그 어떤 죽음에 대한 책보다 개인적인 수필집에 가깝지만 마치 일기장

을 훔쳐본 느낌이다. 아주 개인적인 생각들을 말이다. 병상에서 엄마를 지켜보면서 지난 과거를 회상하고 현재의 자

신의 삶을 관찰하는 모습이 좀 우울하긴 했지만 말이다.

 

갑작스런 아버지의 죽음앞에 어린시절 난 상처를 받았고 그것을 이겨내기까지 상당히 긴 시간이 필요했다. 나의 개

인사를 고백하게끔 하는데 왠지 말하고 싶었다. 그만큼 죽음이 고통스럽고 살아남은 자에게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좀 무거운 분위기의 소설이지만 다시 한번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함을 느낀다.

b*****8 2010.10.0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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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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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뜻하지 않게 들려온 엄마의 부상소식! 욕실에서 넘어지셔서 병원에 입원하셨단다. 뭐.. 건강한 사람들도 잘못 넘어지면 뼈가 부러지고 상해 입원하는 경우는 흔하다. 하물며 78세의 노인이 욕실에서 넘어져 대퇴부 골절로 입원했다는것은 그리 놀랄일은 아니다. 하지만 입원한 병원에선 엄마의 숨겨진 또다른 병을 찾아내고.. 그것은 암이란다.. 엄마의 병을 안순간부터 약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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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뜻하지 않게 들려온 엄마의 부상소식! 욕실에서 넘어지셔서 병원에 입원하셨단다. 뭐.. 건강한 사람들도 잘못 넘어지면

뼈가 부러지고 상해 입원하는 경우는 흔하다. 하물며 78세의 노인이 욕실에서 넘어져 대퇴부 골절로 입원했다는것은 그리 놀랄일은 아니다.

하지만 입원한 병원에선 엄마의 숨겨진 또다른 병을 찾아내고.. 그것은 암이란다..

엄마의 병을 안순간부터 약 100일이란 시간동안 겪게되는 엄마의 투병과 딸의 병원생활이야기..

현시대에서도 사람의 나이 78세라면 그리 서러울것도 없는 나이다 하지만 남들이 아니라 내부모 내 가족의 이야기라면

78세가 아니라 100세가 넘었다 할지라도 다를 것이다.

소설속의 엄마는 본인의 병환에 대해서 아는지 모르는지 나날이 더해만 가는 고통속에서도 삶의 끈을 놓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을

가꾸는등의 더욱더 큰 애착을 가졌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문득 11년전 돌아가신 친할머니 생각이 났다. 나의 할머니또한 소설속의 엄마와 비슷한 연배로 병명또한

유방암이셨다. 소설속의 인물과 다른점이 있다면 우리 할머니는 본인의 병을 알고 계셨다는것..

워낙 연세가 있었던터라 병원에서도 그다지 수술을 권하지는 않았다 나이가 드신 분들은 암같은 세포도 그리 활발하지 않다고

그냥 나두고 더 커지지 않게 치료만 하자고 했지만.. 자식들이 그렇게 말려도 본인이 수술을 받길 원하셨다..

뭐.. 자식된 입장에선 부모가 적극적인 치료를 받길 원하니 강하게 말릴수도 없고 .. 할머니의 뜻대로 수술을 받고난 후의 결과는 참담했다.

건드리지 않아도 될 병을 괜히 건드려 괜한 성만 키워버렸고 유방암은 위암으로 전이되어 급속도로 커져 수술받으신지 3개월후에 돌아가셨다.

그때 어렸던 난 상황을 잘 알지는 못하였으나 할머닌 삶에 엄청나게 큰 집착을 보이셨던 것으로 기억된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집착이 더욱더 큰 고통으로 다가왔고(돌아가시기 3개월간은 굉장히 아파하셨다)오히려 화만 키운 결과가 되버린것이기에..

소설의 제목.. 죽음의 춤.. 문득 그것이 뜻하는 바가 뭘까? 생각해본다.. 엄마가 죽음을 맞이하는 100여일의 기간동안 겪게되는

자신의 신체의 변화를 소설가인 딸이 그저 아름답게 표현한 것일까?

만약 내 생각이 맞다면 엄마가 겪는 고통을 너무 잔혹하게 표현한것 같다.. 하긴 딸은 엄마의 죽음을 너무나도 담담하게 그저 받아들이고

엄마의 죽음의 과정을 너무도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으니..

성정과정을 그리며 엄마와 본인의 관계에 대해 설명하고는 있으나.. 이 둘의 사이가 너무도 프랑스적이라 큰딸이 조금은 밉게 느껴지기도 하였다.

그저 담담한 자연의 섭리를 따르듯 겪게되는 인간의 죽음의 과정을 특히 병에걸린 사람의..

그저 그런 담담한 이야기라 읽고난후의 내 마음은 그저 무겁기만 하였다..

소설속의 인간들은 너무나도 자연적인 인간이였기에..

a*****i 2010.10.0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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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죽음의 춤은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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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타인에 의한 살해만이 폭력이라 생각했던 나에게 노부인에게 갑자기 찾아온  죽음이란  폭력으로 다가올수 있겠구나.. 죽음은 삶을 살고자하는 자에게  정당화 할수 없는 폭력이 될수 있다. 부모의 갑자스런 병완에 삶을 연장하기 위해 수술이나 처치를 하지 않기로 했지만 그 생각과 달리 그렇게 할수 밖에 없는 현실 자식으로써 마땅히 할수 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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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타인에 의한 살해만이 폭력이라 생각했던 나에게

노부인에게 갑자기 찾아온  죽음이란  폭력으로 다가올수 있겠구나..

죽음은 삶을 살고자하는 자에게  정당화 할수 없는 폭력이 될수 있다.

부모의 갑자스런 병완에 삶을 연장하기 위해 수술이나 처치를 하지 않기로 했지만

그 생각과 달리 그렇게 할수 밖에 없는 현실

자식으로써 마땅히 할수 밖에,의사로써 마땅히 할수 밖에 없는 사실에..

유서가 있어도.. 상황에 따라 달라질수 밖에 없구나..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과 그외의 상황에..

시몬느 드 보부아르는

사랑하는 엄마를 이렇게 보냈구나..

나또한 내 부모와 주위 노인들의 죽음을 보면서 죽음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수 있는 계기가 된것 같다

 

 

자연사란 없다.

인간에게 닥쳐오는 어떤 일도

결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인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이야말로,

세상에 그들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은 죽는다.

그러나 개인에게 자신의 죽음은 하나의 돌발사건이다.

죽음은, 그가 인식하고 받아들인다 할지라도

무엇으로든 정당화 할 수 없는 폭력이다.

-본문중에서

 

나이가 들면 당연히 가는것이 이치인데..

나는 어떤 모습으로 갈까? 남겨진 사람에게 어떤 고생을 시키고 갈까?

요양병원을 다니면서 죽음을  연장하는 모습들을 바라보며..

죽음에 대한 준비를 온전한 정신일때 가다듬어 보아야겠다 생각을 하지만

내부모가 아프면 나도 당연히

시몬느 드 보부아르처럼.. 엄마의 비명앞에

수술대로 보내지 않을까?  죽음은 아이러니하다

하지만..  생전에..부모와의 시간을 많이 갖지 못했던..

여러가지 이유로 사이가 나빴던 시몬느 드 보부아르를 보면서..

있을때 잘해야지.. 그게 정답같다..

죽음의 춤을 추기전에..

살아있을때.. 아름다운 춤을 완성해보자..

---

엄마에게 안부전화를 걸어본다.

m****e 2010.10.0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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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관한 다른 시각을 갖고 바라보게 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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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어렵게만 느껴지는데 철학적 분위기도 느껴지고 그 아래에 엄마와 함께 한 마지막 6주 모든 인간이 죽는다는건 이미 다 알고 있는 평범한 사실이지만 내 엄마가 그럴 수 있다 하고 생각을 해본적은 한번도 아직은 없기에  내용이 정말 궁금하고 호기심이 많이 느껴졌어요   그동안 읽은 책들은 그냥 가볍게 읽어내려간 그런 책들만 위주로 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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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은 어렵게만 느껴지는데 철학적 분위기도 느껴지고
그 아래에 엄마와 함께 한 마지막 6주
모든 인간이 죽는다는건 이미 다 알고 있는 평범한 사실이지만
내 엄마가 그럴 수 있다 하고 생각을 해본적은 한번도 아직은 없기에
 내용이 정말 궁금하고 호기심이 많이 느껴졌어요
 
그동안 읽은 책들은 그냥 가볍게 읽어내려간 그런 책들만 위주로
읽었는데 책을 한번에 내리 읽지를 못하고
출퇴근의 짧은 시간을 이용해 읽어야 해서
흐름이 끊기고 내용의 전달이 다소 어려웠던 그런 느낌이 듭니다
 
지금 다시 한번 처음 부터 읽어보고 있어요
머리속이 복잡하지 않을때 읽으니 내용이 좀 더 쉽게 눈에 왔어요

 
 
암과 싸우는 엄마의 고통과 죽음을 곁에서 지켜본다는것이 얼마나 힘들지
가족의 건강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한번 건강에 대해
소중함을 느끼게 되곤 있는데
아직까지는 엄마가 건강하시단 생각에
방심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이 됩니다
 
누구나 이런 상황이 닥치지 않는 법이 없을 거란 생각에
딸만 넷인 우리집은 친정부모님을 챙길 가족이라곤
아직 시집을 가지 않은 막내동생뿐인데
 늘 안그래도 친정 부모님이 편찮으실때가 가장 걱정이 되고 있어요

 
 
이 책의 가장 마지막 부분이 많은 그동안
해오던 생각을 바꾸게 하는 그런 부분입니다
시몬느 드 보부아르가 엄마의 병상을 지켜보면서
느꼈던 생각들이 남다르게 느껴지고 있어요

 
 
사람은 태어났기 때문에 죽는게 아니었다
다 살았기 때문에 죽는 게 아니다
늙었기 때문에 죽는 것도 아니었다
사람은 그  '무엇인가'에 의해서 죽을 뿐이다

 

엄마도 연세가 있었기 때문에 죽음의 날이

멀지 않을 거라고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엄마가 암에 걸렸다는 사실에 대한 끔찍한 충격은

줄어들지 않았다

ㅡ 본문 194쪽 중에서 ㅡ

 

명절을 앞두고 최근에 돌아가신 큰할머님이 계셨는데

이제 80을 넘기셨으니 사실만큼은 살다

돌아가신거라고 그저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믿기지가 않았었는데

여쭤보니 한 5개월전부터 편찮으셨다고 하던데..

해마다 뵙던 분을 만나지 못한다는 생각에

잠시 우울하기도 하고 이젠 부모님들도

머지않아 그런 일이 가까워 올거란 생각을 막연하게나마

해보게 되었었는데

사람은 그 무엇인가에 의해서 죽는다는 말이

정말 다르게 느껴지고 공감이 느는 부분이었어요


 
 
 죽음에 관한 정의를 내려진 부분도

죽음은 폭력이라고 쓰여진 부분도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엄마와 함께 한 마지막6주라고 해서

그저 감동적인 이야기일거라고

생각을 하면서 읽었었는데

 

엄마의 간병을 하면서 눈물이 막 나는 감동있는 편안하게 읽어내려가는

그런 화법이 아니라서 좀 어렵게 느껴졌던 부분인거 같아요

철학가라서 그런지 많은 부분을

생각하게 하고 느끼게 하는 그런 느낌이 들었거든요

 

내용의 이해를 어렵게 생각을 해서 그런지

어렵다 어렵다 계속 그렇게 읽고 있으니

너무나 어렵다만 계속 생각을 하고 있다가

마지막에 씌여진 부분을 보고서는

미쳐 생각지 못한 죽음에 관한 생각이

나름 반성을 하게 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태어나 지금까지 엄마는 늘 일을 하고 계셔서

엄마와 같이 있어 본 기억이 오래였던건 큰아이를 낳고

산후조리할때 2주 동안이었지만 너무나 좋았었는데

그 뒤로는 여전히 지금까지도 엄마는 일을 하고 계시거든요

 

늘 그리운 대상이 엄마의 품이었는데

이젠 결혼을 해서 따로 멀리 있게 되어 더욱 가까이에서

잘 해드리지도 못하고 철이 들만한 즈음에

결혼을해서 시부모님들께는 잘 하려고

마음에 들려고 노력을 하면서 사는 모습을 보면서

그동안 30년 넘게 키워주신 친정 부모님께는

잘해드리지 못한것이 못내 아쉽고 죄송했었는데

 

내년에 환갑이 될 우리 엄마를 비롯해 부모님께

건강하실때 좀 더 잘 해드려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계실때 다하는 도리를 해야 하는데 늘 마음뿐이라 죄송한데요

p****i 2010.10.0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