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해보기란 쉽지가 않죠. 평점을 매긴다는 것 자체가 의미없다고 봅니다. 순전히 저의 주관적인 평점매기기라면 별 10개라도 모자랄겁니다. 4,900원이면 극장에서 영화 한편 보는 것보다 더 싼가격인데, 집에서 편하게 디비디로 영화를 볼수 있다면 그 값어치는 충분히 하고도 남죠. 오히려 너무 싼 가격에 이게 웬 횡재냐 싶더라구요. 언제 또 이런 기회가 다시 올런지 알수도 없구요. 기회란 건 주어질때 놓치지 말아야죠. 아주아주 오래된 흑백영화라서 화질이 좋다고는 말하기 어렵지만, 고전명작을 이렇게라도 소장할수 있다니 정말 기쁘답니다. 두번다시 이런 가격에 만나보기 힘들지도 모르니, 여러분들도 이 기회 놓치지 마시고 꼬옥 소장하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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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오즈의 마법사',' 스미스, 워싱톤에 가다'' 역마차' 이 작품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1939년작이라는 것이다. 모두 영화사적으로 수작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유난히 명작이 많았던 1939년 작으로 지금까지 고전으로 꼽히는 작품이 이 작품들 외에 또 있다. 널리 알려진 에밀리 브론테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폭풍의 언덕', 흑백인 이 작품은 어렸을 때 TV로 본 기억이 난다. 전부는 아니고 토막토막 몇 장면 뿐이지만, 로렌스 올리비에의 얼굴에 그림자라도 질 것 같이 어두웠던 표정은 지금까지도 떠오른다. 오늘 오랜만에 '폭풍의 언덕'을 다시 보니,여주인공 멀 오버른 얼굴이 내 기억과는 조금 달랐다. 기억 속의 얼굴보다 훨씬 날카롭다고 할까. 멀 오버른이 맡은 캐시는 사랑과 욕망 그 어느 쪽도 놓치지 않으려는 뜨거운 여인이다보니 전형적인 미인형 여배우를 캐스팅하지 않은 모양이다.
어느날 아버지 언소우는 집시 소년을 집으로 데려와 히스클리프(로렌스 올리비에)라고 부르며 위더링에서 함께 살게 한다. 캐시는 히스클리프와 가까이 지내는 걸 캐시 오빠인 힌슬리는 싫어하는데, 아버지가 급작스레 죽자, 힌슬리가 위더링의 주인이 된다. 히스클리프는 위더링에서 마굿간에서 지내며 마부로 일하고, 힌슬리의 냉대를 묵묵히 견뎌낸다. 그가 모욕을 견뎌가면서도 위더링에 남아있는 이유는 오로지, 사랑하는 캐시 곁에 있기 위해서였다. 히스클리프와 캐시는 힌슬리의 눈을 피해 패닌스톤 바위에서 만나 여전히 사랑을 키워 가고, 힌슬리는 술과 도박에 빠져들어 가세는 기울어져만 갔다.
캐시는 히스클리프를 사랑하면서도 비단 옷과 화려한 무도회, 사교가 펼쳐지는 상류층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히스클리프와의 사랑을 고민하기도 한다. 그러다 그 지역의 최고 부자인 에드가 린톤(데이빗 니븐 )의 청혼을 받고는 기쁜 나머지 하녀에게 히스클리프와 결혼하는 건 창피한 일이라고 속내를 고백하는데, 캐시의 말을 여기까지만 엿들은 히스클리프는 절망하며, 쏟아지는 폭퐁우를 뚫고 미국으로 떠나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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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뒤 캐시는 에드가와 결혼하고 상류층의 삶을 만끽한다. 겉으로 보기엔 히스클리프를 깨끗하게 잊고, 여유롭게 행복을 만끽하는 듯했지만 히스클리프가 위더링으로 돌아오자 캐시는 이내 흔들린다. 부자가 돼 돌아온 히스클리프는 빚에 시달리던 힌슬리에게서 위더링 집을 사들이고, 캐시의 시누이 이사벨라의 마음을 사로잡아 버렸다. 오빠 에드가가 히스클리프와의 교제를 반대하자 이사벨라는 집을 나와 위더링에서 히스클리프와 함께 지내는데..하지만 히스클리프는 그녀에게 마음을 열지 않고 차갑게 대한다.
캐시가 폐렴에 걸려 죽음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히스플리프, 그는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캐시를 찾아간다. 캐시도 환하게 웃으며 히스클리프를 반기고, 두 사람은 입맞춤을 한다. "난 당신 것이야, 그게 바로 나라고." "그 바위가 보여 우리의 성은 어디 있는 거야.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거야. 당신이 올 때까지" 캐시는 이런 말을 남기고 히스클리프의 품에 안겨 죽음을 맞이한다. 히스클리프는 그런 캐시의 시신을 침대에 눕히며 자신이 캐시를 죽였으니, 캐시의 영혼없이는 죽을 수도 없다고 자학에 빠진다.
그뒤 40년동안 캐시의 유령은 히스클리프 곁을 떠나지 않았고, 눈보라가 치던 깊은 밤 히스클리프는 캐시가 부르는 소리에 그녀를 따라 가는 것으로 영화는 끝을 맺는다.
이 작품은 격정적이고 탐닉적으로 서로를 원했지만 이루지 못했던 두 남녀 주인공의 사랑을 좇아가고 있다. 그런데 생각보다 훨씬 연극적이라는 느낌이 들게 했다. 문학 작품을 각색해서 그런지 대사에서 문어체적인 어투와 심오한 표현이 상당히 많았는데, 구어체를 넘어서 너무 가벼운 속어나 욕설이 많은 요즘 영화에 귀가 질려있던 지라, 그래서 오히려 신선했고, 품격이 느껴져서 좋았다. 또 위더링의 집과 에드가 집안,패닌스톤이 거의 전부다시피 공간 이동이 적은데다 로렌스 올리비에의 표정이나 동작에서 여전히 햄릿의 분위기가 묻어나는 듯해서 그런 모양이다. 그리고 등장 인물 중, 어렸을 때 볼때는 에드가가 데이빗 니븐인지 몰랐는데, 데이빗 니븐의 젊은 얼굴을 만나서 무척 반갑기도 했고.
내가 20대였다면 히스클리프와 캐시의 사랑을 영원한 사랑이라고 동경했을지도 모르겠다. 히스클리프와 캐시, 두 사람이 서로 끝내 사랑의 감정을 놓지 않는 것에 대해 아마도 슬프지만 멋지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때론 저렇게 영원히 너를 사랑했다고 고백하면서 죽는 비극적인 사랑을 낭만적이라고 꿈꿨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한참 나이 들고 현실적이 돼서 그런지 이젠 생각이 바뀌었다. 도대체 저렇게 아무도 행복해지지 않는 사랑, 모두를 불행한 방향으로 이끄는 사랑을 할 수 밖에 없었나? 하는 생각이 더 들었다. 충분히 저런 상황이 되지 않을 수도 있는데. 당사자인 두 사람은 그렇다치더라도, 두 사람의 사랑에 희생양이 된 린톤 남매는 무슨 죄인건지.. 사랑할 때 최선을 다해 진심을 다하는 거지, 끝난 사랑은 고이 접어 가슴 한 켠에 묻어둘 줄 아는 것도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저렇게 집요하게 파멸을 향해 모두를 불행을 향해 치닫게 하는 사랑이 과연 사랑일까. 자기 만족이고 집착이 아닐까.
'폭풍의 언덕'은 탐닉과 격정적인 사랑의 극단을 보여준다. 사랑은 아름답지만 때론 이렇게 불나비처럼 자신이 불타는 것도 불사하며 불 속으로 뛰어 들어가는 법이다. 그런데 이젠 그래서 사랑이 아름답다고는 말하고 싶지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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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된 영화인데 그 후에 만들어진 것보다도 더 잘 만든거 같다. 에밀리 브론테를 좋아하기에 영화는 다 보았는데 그런 생각이 더 강해졌다. 샬럿 브론테나 에밀리 브론테나 영국 최고의 작가임에 틀림없다. 둘다 소녀시절에 봤는데 그때는 기괴한 폭풍의 언덕보다는 제인에어가 더 좋았던 거 같다. 하지만 조금 나이가 들어서 보니 그 나름대로의 폭발력이 있는 히스클리프라는 악인이면서도 너무나 정열적인 멋진 남자를 창조해낸 에밀리 브론테의 상상력에 경의를 표한다. |